사실 당초에 제목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야옹이형의 비밀’이었다. 하지만 저 제목과도 같이 다양한 장르를 이 자그마한 애니메이션 안에 담았다는 놀라움이, ‘야옹이형의 비밀’을 잠시 뒤로 미루게 했다.
Synopsis
보노보노의 숲의 가장 높은 언덕. 그곳에 있는 쿠모모의 나무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었다. 그 나무의 아래에 앉으면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들을 잊을 수가 있었다....
소중히 기르던 재 벌레가 도망가 버리자 보노보노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쿠모모의 나무로 간다. 나무 밑에 도착한 보노보노는 우연히 포포를 만난다. 언제나 쿠모모의 언덕에 있는 포포는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조금은 이상한 아이였다. 시간이 지나자 보노보노와 친해진 포포는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올꺼야. 아버지가 그랬거든. 꼭 데리러 온다고. 그래서 나는 여기서 매일 기다리는 거야”라는 말을 한다. 어느 날 ”쿠모모의 나뭇가지를 훔쳐가는 녀석이 있다”라는 소문이 숲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범인은 포포였다. 큰 상처를 입은 아버지의 아픔을 잊게 하려고 매일 나뭇가지를 훔쳐와 간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바람이 불던 날 포포의 아버지는 죽고 만다. 보노보노가 걱정이 되어 포포의 집에 갔지만 이미 아무도 없었다. “틀림없이 쿠모모의 언덕에 갔을거야”라고 확신한 보노보노는 언덕으로 향하지만 그때 숲의 동물들도 나뭇가지를 훔친 범인을 찾으러 언덕으로 모이고 있었다.
쿠모모의 나무아래에서 보노보노가 포포를 발견했을 땐 커다란 벼락이 쿠모모의 나무에 떨어졌다. 그리고 나무가 타면서 이상한 향기가 언덕에 퍼졌다. 연기가 걷히며 쿠모모의 언덕으로 향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은 포포를 데리러온 사람인가? 그리고 숲의 동물들이 보는 가운데 쿠모모의 나무가 가진 다른 불가사의한 힘이 밝혀진다....
CG로 재탄생한 베스트셀러 보노보노
[보노보노]는 86년 일본에서 발표되어 지금까지 무려 85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이다. 그리고 본래에는 4컷 만화로 시작되었으며, 95,96년간 TV에서 방영되었던 시리즈 물이기도 하다. 그러한 보노보노가 2D에서 3D로 옷을 바꿔 입고, 극장 판으로 다시 출시되었다. 사실 보노보노가 워낙에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이고 주인공 ‘보노보노’를 비롯한 ‘너부리’, ‘포로리’등의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의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고 3D화 하는 것은 제작진의 큰 고민이자 과제였다. 오래된 시리즈 물이나 오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일수록, 팬들은 새로운 것보다는 정겨운 추억의 이미지를 그리길 원하기 때문에, 어쩌면 3D로 인해 따뜻함을 잃을 수도 있는 부담을 앉고 시작된 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그 시도는 결코 헛되지 아니한 듯싶다.
따뜻한 이미지를 그려내기 위해 가장 많이 신경 쓴 캐릭터들의 털의 질감은,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의 그것과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했다. 2D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질감과 양감은 보노보노를 비롯한 캐릭터들을 좀 더 리얼리티하게 그려내는데 성공하였다. 캐릭터 외에 향기나무가 있는 향기언덕과 배경들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유화적인 이미지와 푸근하면서도 사실적인 색의 조화로 환상적이고 인상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다. 향기언덕을 비롯하여,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포포네 집에서 돌아오는 장면이라던가, 마지막 그으름 벌레들의 하늘을 수놓을 때의 장면에서는, 여느 애니메이션 못지 않은 비주얼을 선보이기도 한다. [보노보노]는 그래픽적인 요소보다는 내용과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는 애니메이션이었지만, 극장판 [쿠모모 나무의 비밀]을 통해 영상에서도 수준급의 애니메이션으로 발굴림 하게 되었다.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애니메이션으로서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서는 [카우보이 비밥]과도 동등하다고 하겠다. [카우보이 비밥]이 액션, 느와르, 음악, 드라마, 코믹 등의 장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융합했다면, [보노보노]는 이러한 애니메이션에 속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깊은 철학과, 깨인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하이클래스 유머,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러브 로망스, 그리고 사건의 추리과정과 묘한 의문마저 남기는 스릴러까지, 온갖 장르를 포용하고 있다. 사실 얼핏 그림만 보게 된다면 그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될지 모르나, 조금만 집중해 보면 오히려 어른들이 더 재미있어할 애니메이션임을 알게 된다. 바보 같을 정도로 끊임없이 ‘왜요?’, ‘왜 그러는 건데요?’, ‘언제 되나요?’를 물어대는 보노보노의 모습은, 우리가 늘 상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평범한 의문들에 대해 ‘왜요?’하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자세히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냥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깐, 그러려니 하고 있었던 사실들에 대해 보노보노는 당당히 ‘왜요?’를 던진 것이다.
여기에 더해진 스릴러. 일단 [보노보노]는 향기 나무 가지를 꺽 어간 범인을 쫓는 스릴러 형식을 갖추고 있다. 보노보노는 이 과정에서 범인으로 오해받는 친구 포포를 위해, 숲의 현자라 불리는 야옹이형에게 조언을 구하고, 진짜 범인을 잡아내기 위해 매복(?)까지 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러한 가운데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고, 사건을 해결(보노보노가 해결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가슴 저리는 러브스토리. 수많은 영화와 수많은 남녀를 대상으로 한 러브스토리를 보아왔지만, 이 [쿠모모 나무의 비밀]만큼 그 과정은 숨겨진 채 전혀 예상 못한 결말로 엄청난 파급효과의 감동을 전해 준 작품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보노보노가 포포네 집에 놀러갔다가 오는 길에 숲 속에서 날카롭게 응시하던 포포 아빠의 모습은, 당시에는 그저 우습게만 느껴졌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아, 그랬던 거구나, 그랬었었었구나’를 연발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 결정적 장면과 결말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지만, 감동이 절하될 수 있으니 꾸욱 참도록 하겠다.
고정관념을 깨버린 우리말더빙
사실 필자는 외국 작품에 있어서는 철저히 본래의 언어 더빙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원작의 본래의 느낌이 잘 묻어나기 때문이고, 한국어 더빙으로 본 몇몇 작품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정확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본어 특유의 어감 때문에 더더욱 선호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보노보노]는 그와는 정반대다. 그동안 한국어 더빙 수록 문제로 출시가 연기되다가 결국 수록이 확정된 [엑스파일]의 경우처럼, [보노보노]역시 한국어 더빙의 중요성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필자는 자택에 투니버스가 나오지 않는 관계로 한국어 더빙의 보노보노에 익숙했던 것도 아니었고, 한국어 더빙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접하게 되었던 케이스였다. 물론 일본어 더빙도 참 좋았다. 보노보노 역할을 맡은 한국어 성우의 말처럼, 이전과는 다르게 실제 어린아이가 연기한 보노보노의 목소리를 비롯해 여러 캐릭터들의 목소리들이 역시나 일본어 특유의 어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어 더빙을 듣는 순간 일본어 더빙 트랙은 다시는 플레이 해 볼 기회가 없었다. 보노보노의 그 엉성한 듯 하면서도 귀여운 목소리와 포포리의 하이 톤의 작은 음성, 일본어 더빙보다도 그 느낌이 정말 잘 전달되어지는 너부리의 목소리, 그리고 너무나도 진지한 야옹이형의 목소리까지... 최소한 [보노보노]에 있어서는 이러한 한국어 더빙에 관한 맹신이 필자만의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2003. 06. 25
글 / 아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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