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벚꽃이야기]


도쿄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토노 타카키와 시노하라 아카리는 부모의 전근으로 막 이사 왔다. 가정환경도 적극성이 없다는 것도 작은 체구에 병약한 부분도 같아서 닮은 꼴이 많았다. 무엇보다 취향이 비슷해서 우린 서로가 좋았다. 그 시절에 함께였던 두 사람이지만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카리의 이사가 결정되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초조함… 어린 아이이기에 쌓아올 수 있던 시간은 어린 아이이기에 무너트려지게 된다.그리고, 다시 벚꽃의 계절을 눈앞에 둔 중학교 1학년 3학기, 이번에는 타카키가 카고시마로 전학을 가게 된다. 어린 시절의 후회, 그리고 아카리에게 줄 편지를 가슴에 품고, 타카키는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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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코스모나우트]


미래라고 하기에는 멀고, 장래라고 하기에는 가까운 이 앞날에 대해 모른 척 걸어나가던 귀갓길. 카고시마. 이 섬에서 살고 있는 고교 3학년인 스미타 카나에의 마음을 지금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섬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NASDA(우주개발사업단)의 로켓 발사도, 더구나 가장 심각해야 할 진로에 대해서도 아닌 한 소년의 존재다. 중2때 도쿄에서 섬으로 전학 온 토노 타카키. 이렇게 옆에서 걸으며 대화를 하면서도 저 너머로 느껴지는 가장 가깝고도 머나먼 그리움. 고동이 무거우면서도 빨라져 가기에 말투가 빠르고 가벼워진다.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만큼, 시점은 항상 그를 향해 있다. 내가 제대로 보드에 서서 서핑을 탈 수 있다면, 그 때는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을 전하고 싶어. 익숙하게 타고 싶은 파도. 뛰어넘고 싶은 이 순간. 조금씩 서늘함이 늘어가며 섬의 여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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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초속 5센티미터]


회사를 그만두었다. 3년간 사귄 여성에게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 토노 타카키는 어린 시절보다 수수해 보이는 도쿄의 거리에 있었다. 그런 그의 가슴에 복받친 것은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 그것은 지금 다시 도쿄에 살고 있는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노하라 아카리는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 집에서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키타칸토의 마을에 와있었다. 그 곳에서 발견한 타카키 앞으로 썼던 편지. 그립게 떠오르는 존재. 어린 시절의 커다랗던 마음. 아카리와 타카키가 본 시간, 풍경, 장소, 나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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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제 12회 DOGA 그래픽 콘테스트에서 모든 과정을 혼자 작업한 5분 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彼女と彼女の猫)’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애니메이션계에 해성처럼 나타난 작가이자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 그는 2002년 2월 독립영화로 제작된 디지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와 이후 상업용 극장 애니메이션이었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를 발표하며 그 특유의 감성적인 영상과 작화, 그리고 깊은 여운과 아련함이 물씬 묻어나는 스토리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근래 가장 주목받는 애니메이션 감독 중 한 명이다.

그가 처음 주목 받게 된 이유는 그가 디지털 세대의 장점을 그대로 다 사용하면서도, 즉 거대 스튜디오가 아닌 독립적인 제작 방식으로 홀로 디지털 방식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음에도, 너무나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완벽히 품고 있다는 점이였다. 특히나 ‘별의 목소리’의 경우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와 우주선, 로봇 등이 등장하는 SF적인 배경을 갖고 있지만, 그 속에서 아날로그적인 그리움과 애틋함을 너무도 잘 표현해 많은 팬들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했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는 ‘국경’과 ‘잠’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 경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를 그려내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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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독립작품이었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나 ‘별의 목소리’를 제작할 당시, 성우 더빙과 음악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해냈기에 더욱 화제가 되었었는데, 단편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혼자서 모두 해냈다고 하기에는 워낙에 뛰어난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당시 팬들은 더욱 열광하지 않았나 싶다. 이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DVD 출시 이후부터 계획에 들어갔던 그의 새로운 작품의 대한 기대는, 그의 팬 페이지를 통해 미리미리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어서 더욱 하루하루를 기다리게 했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표현대로 그의 상업용 극장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두 번째 작품인 ‘초속 5cm’는 기존 그의 전작들과는 배경과 이야기를 조금 달리하면서도 한 편으론 ‘신카이 월드의 집약체’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장점들이 고스란히 모여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은 그 작화만 봐도 딱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디지털 작품이기는 하지만, A4용지에 색연필로 그린 그림 콘티를 스캐닝 하여, 프레임으로 나누어 제작한 동영상 콘티를 기본으로 제작된 영상이라 그런지, 파스텔 톤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한 따뜻함이 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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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 두 작품을 감상한 이들이라면, ‘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SF적인 요소에 남다른 관심이 있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특별히 그렇다기보다는, 단순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소재를 찾던 중에 SF적인 요소를 삽입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이지, 의도적으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SF적인 요소를 택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초속 5cm’ 가운데 특히 2부인 ‘코스모나우트’를 보면, NASA나 우주비행선 같은 요소가 또 다시(잠시)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전작의 영향 때문인지, 무언가 또 SF적인 요소와 엮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다). 일부에선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라고까지 여겨지던 SF적인 요소 없이도,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초속 5cm’가 평가 받는 이유는, 그가 모든 작품에 보여주었던 ‘애틋함’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절실하게 표현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우주라는 경계에 놓여있던 ‘별의 목소리’나 국가와, 잠으로 인해 성장하지 않는 어려움을 극복하려 애썼던 ‘구름의 저편..’의 경우의 비하면, ‘초속 5cm’에서는 단순히 거리와 시간의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즉 공간이나 그 세계는 훨씬 좁아지고 단순해졌지만, 오히려 현실에 항상 존재하는 거리와 시간의 문제를 다루면서, 더욱 더 현실적이고 더욱 더 절실해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절실한 이야기. 이것이 신카이 마코토가 이야기하는 본인 작품의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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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계와 은하계, 시공간을 계산하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 등 어쩌면 복잡한 세상과 현실 속에 놓인 ‘별의 목소리’의 두 주인공과 비교하자면 제 1화 ‘벚꽃초’에 등장하는 아카리와 타카키의 애절함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단순한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오면서 항상 같이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반이 달라지고 학교가 달라지는 현실 때문에 그리워하게 되는 일, 먼 지방으로의 전학으로 인해 다시금 멀어지는 일. 그런 현실 속에서도 그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편지를 쓰고, 폭설로 인해 계속 지연되고 연착되는 전철을 몇 시간씩 타고서라도 만나러 가는 일. 어쩌면 너무나도 단순한 감정을 바탕으로, 너무나도 현실적인 조건들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을 그린 것인데, 그 어떤 극적인 스토리보다도 찡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특히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소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재주에 있어서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는 전철이라던가, 학교 끝나고 심심함을 달래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들렀던 편의점에서의 음료 한 잔, 매일 오고 가게 되는 등하교길,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나의 집, 기차를 기다리던 건널목 주변, 방안 창문에서 바라본 뒷골목 등 이러다할 특별함이 없는 공간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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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범한 일상의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기법을 전작들에서도 볼 수 있었다면, 이번 작품에서 좀 더 강조된 것은 ‘공간’ 뿐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의미 부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인 ‘초속 5cm’. 벚꽃 잎이 지는 속도를 내세움으로 인해 우리가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작은 찰나의 순간에도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한 편, 반대로 그에 비해 역시 인식하지 못한 채 너무도 빨리 흘러가 버린 뒤에야 알게 되는 세월의 시간을 더 확연하게 느끼게 해준다. 제 3화 ‘초속 5cm’에서는 1화의 등장했던 두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 다시 등장하는데, 기존의 다른 작품들처럼 극적인 만남은 이뤄지지 않는다. 세상의 시간의 몸을 맡겨 오랜 시간을 지내온 두 주인공은, 문득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다시금 그 때와 서로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리워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실 3화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제 3화인 ‘초속 5cm’는 대부분의 러닝 타임이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노래인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로 이뤄지는데, 이 곡이 끝날 때까지 너무나도 극영화 같은 편집과 이 작품을 위해 쓰여 진 것이 아님에도 너무나도 완벽하게 들어맞는 노래 가사 때문에 소름 돋을 정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혹자들은 3화에서 미완으로 끝나버린 엔딩 때문에 실망을 하기도 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같이 아려함을 그대로 둔 채 애틋하고 절실한 가사의 노래로 마무리하는 엔딩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1,2화를 만든 것이냐는 말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단순한 노래로 와 닿지 않고 ‘절실’하게 와 닿았던 것은 1,2화를 통해 보고 느꼈던 감정들 때문이었으며, 이런 애틋하고 애닮고 아련한 감정을 완벽하게 극대화 시키고 여운 또한 극대화 시킨 것은 바로 이 3화인 ‘초속 5cm’ 때문이었다. 타카키와 아카리가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그 시절과 서로를 떠올렸듯이, 개인적으로 앞으로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를 들을 때 마다 이 애절한 감정이 파고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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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는 우선 화질과 사운드 면에서는 모두 만족할 만한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디지털로 최종 제작된 작품답게 크게 부족함을 찾아볼 수 없는 수준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으며, HD급 디스플레이에서 재생 시에도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화질이었다. 돌비디지털 5.1&2.0채널을 수록한 사운드는 특별히 흠잡을 데는 없었으며, 역시나 주제곡인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를 감상할 때 가장 인상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예고편이 수록되어 있고, 두 번째 디스크에는 본격적인 서플먼트들이 담겨있다.

첫 번째로는 흔히 지브리 스튜디오의 타이틀에서 볼 수 있었던 스토리보드를 만나볼 수 있는데, 본편의 성우들이 전부 더빙한 버전이 아니라서 오히려 신선함(?)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PV가 수록되어 있는데, 본편의 수록된 버전과는 다른 편집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 1화 벚꽃화의 야후 프리뷰 버전이 수록되었고, 각 캐릭터들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성우들의 인터뷰와 스틸 갤러리가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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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덕션 스틸 갤러리는 기존의 스틸 갤러리의 성격과는 다르게, 메이킹 필름의 해당하는 장면들을 스틸로 담고 있는데, 제작초기의 실제로 헌팅을 가서 촬영한 장소의 모습들이라던가,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제법 여러 명의 스텝들과 함께 작업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업실 모습, 개봉 뒤 무대 인사를 하는 모습까지 다채로운 모습들은 만나볼 수 있다. 서플외에 이번 초회한정판에는 스토리 북이 추가되었는데,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서플먼트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감독의 말이라던가, 작품에 등장한 실제 장소의 대한 설명,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자세한 과정이 설명되어 있어, 특별한 메이킹 다큐가 없는 서플먼트를 보완해 주고 있다.

‘초속 5cm’는 단순함과 절실함이 미학이 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가 항상 그래왔듯이 평범한 일상을 돌아보게 하고, 지나왔던 찰나를 추억하게 되는 작품이다. 신카이 마코토. 그는 항상 나를 돌아보게 하고, 시간 속에 잊혀져가는 아련함을 끄집어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게 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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