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 (The City of Violence)
류승완, 정두홍 콤비의 리얼 생짜 액션!
류승완 감독은 그리 길지 않은 필모그라피에도 불구하고 자신 만의 색깔로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렇다면 그의 색깔이란 어떤 것인가. 류승완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액션, 이젠 한국 영화에서 액션 영화하면 류승완 감독이 절로 떠오른다. 인디영화이자 화제의 데뷔작이었고, <짝패>와 마찬가지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시작으로, 전도연과 이혜영이라는 두 여배우를 내세운 하드보일드 액션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와이어 액션과 CG를 사용하여 환상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던 무협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비롯하여, 승자와 패자가 불분별한 결말을 맺는 드라마 <주먹이 운다>에 이르기까지, 류승완 감독에게는 항상 액션이라는 주요 맹점이 있었다.
이미 여러 인터뷰, 보도자료 등을 통해 그가 예전의 쇼브라더스 무협 액션 영화 등은 물론, <폴리스 스토리> <프로젝트 A>와 같은 성룡의 액션영화, 그리고 <와일드 번치>의 샘 페킨파 감독의 팬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그 동안 류승완 감독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그의 성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쉽게 말해 본격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정도였다. 류승완 감독 본인에 말 만 따라, 그 동안은 영화를 만들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해왔다면, 이 영화 <짝패>는 자신이 그 동안 영화감독이 되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영화,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탄생시킨 영화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이러한 결심이 끝까지 가장 잘 살아있는 프로젝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짝패>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과 가장 많은 비교를 받곤 하는데, 그건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앞서 얘기했던 류승완 감독이 보아왔고 좋아하는 장르와 감독의 영화들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좋아하는 장르와 감독의 영화이기도 하다. 비슷한 영화를 좋아하는 감독들이 각각 이런 것이 집약된 영화를 한 번 만들어보자 작정하고 만든 영화이니 태생적으로 어느 정도 유사성을 지닐 수밖에는 없었을 터.
하지만 류승완 감독이 이에 대해 밝혔듯이 타란티노의 <킬 빌>은 마지막의 액션 시퀀스에서 좁은 공간에서 시작하여 점점 넓은 공간으로 이동해 결국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인 뒷마당에서 결말지어지는, 즉 액션과 폭력으로 인해 점점 해방되어 가는 결말이지만, 류승완의 <짝패>에서는 넓은 마당에서 시작하여 점점 공간으로, 지하로 이동해 가며, 결국 폭력으로 해방을 얻는 다는 것보다는 복수 뒤에도 해방감을 얻지는 못한 다는 정서를 담고 있다.
<짝패>에서 류승완은 공간을 이용한 액션을 기존 어느 영화보다 더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마지막 운당정에서의 액션 시퀀스는 좁고 길게 뻗은 공간 일 때와 이후 동그란 형태의 2층 공간에서처럼 공간이 틀려질 때마다 액션의 스타일을 달리 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마치 장철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폭력적인 액션 스타일과 물건을 집어 던지고 구조물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며 발차기를 하는 등, 사물과 장소를 100% 활용하는 성룡 스타일을 장면 마다 각각 사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액션 장면에서는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엔니오 모리꼬네 풍의 음악이 배경에 흐른다. 이러한 장면 장면의 설정 들은 물론 영화의 기본이 되는 조직과 배신, 복수의 스토리는 흡사 영웅본색을 비롯한 8,90년대 홍콩영화들과 그대로 닮아있기도 하다. 또 무술의 고수인 주인공이 다수의 적을 화려하게 물리친 뒤 나중에 자신들의 실력에 버금가는 고수들과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시스템은 홍콩 무협 영화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짝패>는 얼핏 봐서는 짜깁기 영화 혹은 <킬 빌>처럼 오마쥬를 스타일로서 승화시킨 영화로 보기 쉽지만, 많은 스타일을 차용했음에도 전자나 후자에 느낌이 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레 류승완 만의 스타일로(한국적인 토종 액션) 녹여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짝패>는 물론 표면상으로도 류승완과 정두홍 콤비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배우로서가 아니라 액션 영화의 감독과 무술감독으로서 각자 해보고 싶은 것을 모두 투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둘은 이미 오래전부터 감독과 무술감독으로 혹은 감독과 배우로서 오래 손발을 맞춰왔는데, <짝패>에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듯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테러리스트>를 비롯해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액션 영화의 무술감독으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있던 정두홍은 류승완 이라는 감독을 만나면서 자신의 액션 연출에 있어서 두, 세 단계 높은 결과물을 얻게 되었으며, 류승완 감독 역시 정두홍 무술 감독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액션 스타일을 좀 더 구체적이면서 영화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서로에게 날개를 단 겪인 이 두 콤비는 연기적인 면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데, 그간 무술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 정두홍을 오래 지켜봐왔던 류승완은, 그간 영화에서 어색한 연기로 아쉬움을 남겼던 정두홍을 위해 미리 그를 염두에 두고 '태수'라는 캐릭터를 만든 결과, 정두홍이 연기한 인물들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캐릭터가 되었다.
사실 정두홍에 한층 자연스러워진 연기보다 더 만족스럽고 놀라운 것은 감독인 류승완의 연기이다. 더 몸이 망가지기 전에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자신이 해보고 싶은 액션 연기를 마지막으로 한 다는 심정으로 연기했다는 류승완은, 이런 말이 무색할 만큼 화려한 발차기를 비롯한 액션 연기는 물론, 그 찰지는 사투리 대사의 소화능력! 정말 중견 연기자들도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사투리연기를 너무도 구성지게 만들어낸 배우 류승완은, <짝패>를 보는 가장 큰 재미이기도 하다. 사실 사투리라는 것이 단순한 코믹적인 소스 정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짝패>에서는 단순히 코믹스러움을 넘어서 리얼함과 스타일을 동시에 살려주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결과물이 되기까지는 대사 연기력만큼이나 시나리오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 자체가 액션과 비주얼에 중점을 둔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대사들이 짜임새 있게 쓰여 있었으며, 특히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들이 살아 숨 쉰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마치 <범죄의 재구성>의 ‘말빨’을 보며 혀를 내둘렀던 것 같은 희열을 느끼게 된다.
류승완 감독이 <짝패>를 찍으면서 가장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범수 라는 배우의 재발견이었다고 한다. ‘아, 이 배우가 <태양은 없다>에 출연했던 그 이범수였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짝패>는 그간 <슈퍼스타 감사용> 이후 휴먼 드라마나 순하고 착한 캐릭터들 혹은 코믹한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하며 비슷한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던 이범수라는 배우를 다시금 꺼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악랄하고 비열한 미소가 섬뜩하기까지 한 동시에 인간적인 연민마저 느껴지는 ‘필호’ 역할을 연기한 이범수의 재발견 또한 <짝패>가 갖는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 일 것이다.
1.8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상급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본래의 소스가 슈퍼16mm였음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본래 HD 디지털 프로젝트로서 저예산의 영화로 계획되었던 영화였으나 이후 점점 규모가 커지게 되었고, 이와는 별개로 감독의 의도에 따라 HD 디지털 보다는 슈퍼16mm 카메라가 더욱 영화에 어울린다는 판단 아래 지금에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디지털 후 보정 작업을 거쳤음으로 최신작에 어울리는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액션 영화이긴 하지만 폭발음이나 거대한 소리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음으로 dts와 돌비5.1 채널 간의 큰 차이는 없다.
2장의 스페셜 에디션 버전으로 출시된 타이틀답게 첫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본편에는 류승완 감독의 코멘터리가, 두 번째 디스크에는 다양한 서플먼트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번 서플먼트는 단순히 이 영화 <짝패>에 관련된 영상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류승완과 정두홍의 영화들을 거슬러오면서 이전 영화들에서의 액션과 <짝패>에서의 액션의 차이, 그들이 직접 말하는 자신들의 액션 철학에 관한 이야기 등, 액션 영화에 관한 총체적인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기존 서플들이 단순히 제작 다큐라는 이름을 통해 촬영장 스케치, 배우들의 에피소드에 관한 인터뷰 등이 수록되었던 것과는 달리, 주제에 맞춰 두 감독인 류승완과 정두홍이 생각하는 바를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으며, 그들이 중점을 두고 있는 ‘액션영화’라는 장르에 걸맞게, 총체적인 것이 아닌 집중적이고 구체적인 스킬과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의 수록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저 촬영 중에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전하는 영상들이 주를 이뤘던 다른 타이틀과는 달리, 매우 짜임새 있고 유익한 내용들로만 꽉꽉 담긴 터라, DVD타이틀로서 소장가치를 더욱 느끼게 해준다. 특히 카메라 기종, 촬영 기법 등 실질적인 영화적 기법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영화의 팬들은 물론 영화 스텝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료가 될 듯 하다. 이 밖에도 류승완 감독의 음성해설이 보태진 삭제장면과 추가 장면 등도 빼놓을 수 없으며, 베니스 영화제에 참여했던 영상들도 만나볼 수 있다.
2006.10.11
2006.10.11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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