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한 남자는 식물인간인 한 여성을 극진히 간호하고 매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한 남자는 똑 같은 상황에 놓였지만, 그녀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한다...우정과 사랑의 묘한 감정 선을 아우르는 걸작.
 
Synopsis
 
오랫동안 아픈 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보살펴왔던 베니그노.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우연히 창 밖으로 보이는 건너편 발레학원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고 있는 알리샤를 발견한다. 환한 봄 햇살처럼 생기 넘치는 알리샤. 베니그노는 창문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며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비가 오던 어느날, 알리샤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간호사였던 베니그노는 그런 알리샤를 4년동안 사랑으로 보살핀다. 그는 알리샤에게 옷을 입혀주고, 화장과 머리 손질을 해주고, 책을 읽어주고..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행 잡지 기자인 마르코는 방송에 출연한 여자 투우사 리디아에게 강한 인상을 받고 취재차 그녀를 만난다. 각자 지닌 사랑에 대한 기억과 상처를 가슴에 묻고 있는 두 사람.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해 주는 사이 그들은 사랑에 빠지지만, 리디아는 투우경기 도중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다. 그녀의 곁에 남아 그녀를 돌보기 시작하는 마르코. 그러나 마르코는 그녀와 그 무엇도 나눌 수도 없음을 괴로워한다.



두 남자는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들을 통해 병원에서 다시 만난다. 함께 그녀들을 돌보고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두 사람. 하지만 알리샤가 살아있다고 느끼고 지극한 사랑을 전하는 베니그노와 달리, 마르코는 리디아와 더 이상 교감할 수 없음에 절망한다. 몇 달 후, 그녀의 사망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은 마르코는 베니그노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를 찾아가는데...
 
아름다운 사랑인가 아님 스토커의 집착인가
 
[그녀에게]에 쏟아지는 찬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감독인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감성과 영화적 능력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퍼부었고, 관객 대부분도 지루해 할 수도 있는 이 영화에게 ‘가장 감동적인 드라마’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필자도 기본적으로는 참으로 인상적인 영화라는데 뜻을 같이 하고 있던 중, 어느 한 잡지에 기고한 여기자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기사의 내용의 핵심은 [그녀에게]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여성에 대해 진지하고 섬세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에게]에는 ‘그녀’의 의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식물인간이 된 두 여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두 남자의 얘기는, 요즈음에는 찾아보기 힘든 섬세한 감정묘사와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정작 그 모든 일들은 ‘그녀’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 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러한 반론의 입장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지만, 필자 개인의 생각은 그래도 엄지손가락을 꼽고 싶다.



알모도바르의 놀라운 영화적 기술

알모도바르의 놀라운 감성적 기술은, 그의 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인정할 수밖에는 없는 사실임에 분명하다. 커다란 클라이맥스 없이 잔잔한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나간 것이 일단은 첫 번째 재주라 하겠다. 영화는 아무리 이른바 ‘예술영화’를 표방한다 해도, 어차피 대중 예술이다. 그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감독은 자신이 가진 철학과 논지를 대중에게 어렵고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는데, 그러한 점에서 알마도바르는 거의 최고 수준의 능력을 보여준다. 단지 네 인물의 관계 설정과 감정의 교류만으로도(그것이 일방적이던 상호적이던 간에), 영화 하나를 훌륭하게 완성시킨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녀에게]는 대체적으로 식물인간이 된 여성에게 바치는 남성의 감정에 집중된 영화로 보이지만,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다른 면에 더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다. 그건 바로 두 남자 주인공인 베니그노와 마르코의 관계이다. 전혀 상관이 없던 두 남자가 ‘그녀’로 인해 서로를 알게 되면서 나누게 되는 우정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하 속에서 두 남자가 나누는 우정의 감정은 일반적인 우정의 개념과는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는데, 서로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는(여기서 사랑에 의미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사랑의 의미로 쓰였다)관계로서, 친구를 위해 목숨 바치는 우정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수준급의 타이틀
 
[그녀에게]타이틀은 [반지의 제왕 확장판]같은 대형 타이틀들과 견주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지만, 감히 수준급의 타이틀이라 불릴 만하다 먼저 화질과 음질을 살펴보자. 화질은 2.35: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제공하고 있는데, 투우 장면에서는 분홍빛 천의 색감과 아울러 투우사 특유의 복장에서 묻어나는 화려한 색체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고, 전체적으로도 선명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준다. 사운드는 돌비 디지털 5.1채널을 제공하고 있는데,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삽입된 피나 바우쉬의 무용 장면과 브라질 음악 하면 떠오르는 카에타노 벨로소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특히 벨로소의 공연 장면은 [그녀에게]사운드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서플먼트도 제법 다양하게 수록되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감독인 알마도바르의 음성해설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타이틀의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그 외에도 주연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이 배우별로 나뉘어져 있어서 선택하기에도 간편하다. 그리고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영화의 다양한 포스터 갤러리, 스텝과 배우들의 프로필 등등 유용한 부가영상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판 한정으로 포함되어 있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별도로 구매하려고 했던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 될 것 같다.


2003.06.27
글 / ashitak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