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개척한 장르 영화 이상의 영화
유명한 수록곡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과 함께 서부영화 팬들은 물론, 예전 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라도 알만한 작품 <내일을 향해 쏴라>. 베트남 전쟁과 혼란한 정국 속에 전성기를 누리던 서부 영화의 붐도 종착역으로 향할 때 쯤, 새로운 스타일에 서부 영화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 바로 <내일을 향해 쏴라>이다.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틀에서는 벗어난 작품이지만, 오히려 일련의 서부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고 시도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영화적 기법들과 이야기 구조 등으로 인해, 기존 서부 영화 팬들은 물론 모든 영화 팬들에게 어필하고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남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1969년 작으로 개봉한지는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오늘에 비춰보아도 멋스러움이 묻어나는 장면들은 물론, 당시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기법들과 스타일들이 넘쳐 나고 있다.
<내일을 향해 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서부 영화이자, 버디 무비이며 추격(Chase) 영화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 부치와 선덴스가 그들을 잡으려는 정예 무리에 쫒기면서 지나치게 되는 로케이션들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온통 노랗게 펼쳐진 사막과 애리조나와 콜로라도의 바위산들을 비롯하여 스튜디오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로케이션만의 장점이 극대화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풍경도 풍경이지만 이런 멋진 풍경을 담아낸 감독 조지 로이 힐과 촬영감독 콘라드 홀의 역량도 참으로 대단하다. 특히 지금처럼 첨단을 달리는 촬영 기법이 없었음을 감안하다면 아이디어만으로 멋진 풍경들을 담아낸 것으로 더욱 높이 살만한 장면들이다. 캐릭터들에게 과감한 클로즈업으로 긴장감을 더하였으며, 풍경을 담을 때에는 먼 거리에서 줌 아웃으로 시작하여 줌 인 해가는 방식으로, 장면에 스케일을 더하였다. 초반 사막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언덕진 사막 특유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말을 탄 두 주인공이 화면에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면서 말소리를 비롯한 소리들도 들렸다가 안 들렸다가를 반복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촬영기법과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낸 멋진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두 주인공을 추격해오는 무리들을 다룰 때에는 아주 먼 거리에서 촬영하는 방식만을 선택하였는데, 이런 촬영기법 역시 오히려 거리를 두어 촬영한 것이 더욱 주인공과 관객을 죄어오는 긴장감을 주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기존 서부 영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촬영기법들이 사용된 것은 물론, 영화음악은 여기에 한 발을 더 나아가 더 무모할 수 있는 실험을 감행하였다. 이 영화를 90년대 혹은 2000년대에 처음 본 사람들은 그 유명한 수록곡이 흐르는 자전거 시퀀스를 이 영화의 대표 장면으로 기억할 만큼 인상 깊게(혹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보았지만, 당시로서는 다른 영화도 아닌 서부 영화에서 스코어가 아닌 노래가 등장하는 것은 굉장한 실험이었다. 특히나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제목과 가사 (빗방울이 내 머리위로 떨어진다는...)는 더더군다나 모험이었을 것이다. 감독이 노래를 넣자고 했을 때, 음악감독인 버트 바차라크 또한 이것이 자신의 커리어에 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기도 했을 정도였고(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처럼 이 곡은 그의 커리어의 대표곡이 되었다), 로버트 레드포드를 비롯한 배우들 또한 이 시퀀스를 불쾌하게 여기거나 빼달라고 요구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조지 로이 힐의 선택은 적중했으며, 배우와 스텝들이 우려하고 어쩌면 감독 자신도 확신이 서지 않았을 이 선택은 이 영화를 명작에 반열에 들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얘기할 때 대부분,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평화스런 이 시퀀스를 떠올리니 말이다.
이 자전거 시퀀스 외에도 볼리비아에서 강도짓을 벌이며 지내는 날들을 표현할 때, 대사 없이 보사노바 풍에 음악만으로 처리한 것은 정말 멋진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어둡지 않고 밝고 빠른 리듬을 통해 사건들을 속도감 있게 처리하는 한 편, 중간 중간 세 주인공 사이에 감정들이 교차 할 때는 음악을 템포를 늦춰 대사가 없음에도 관객들이 주인공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배치한 이런 구조는, 이 영화의 백미다. 이 장면 외에 세 주인공이 볼리비아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역시 스틸 사진과 음악만으로 처리한 시퀀스 역시, 조지 로이 힐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만약 이 두 시퀀스를 지금처럼 처리하지 않고 일반 적인 영화들처럼 음악 없이 대사들로 처리했다면, 아마도 <내일을 향해 쏴라>가 지금처럼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지금 봐도 멋진 이런 영화적 기법들은 당시로서는 난해할 정도로 새로운 것으로(특히나 서부 영화에서는), 모험수가 있었던 선택이었다.
이 영화를 얘기할 때 두 주인공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를 빼놓고는 절대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본래 이 영화의 두 주인공으로 거론되었던 배우는 폴 뉴먼과 스티브 맥퀸 이었다고 한다. 당시 최고의 톱 스타였던 두 배우를 한 영화에 출연시키려던 스튜디오에 생각은,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요청으로 인해 결국 당시로서는 신예라고 할 수 있었던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돌아갔다. 스티브 맥퀸 역시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남자 배우라고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맥퀸 보다는 레드포드가 선덴스 역할을 맡은 것이 오히려 나았던 것 같다. 물론 스티브 맥퀸과 폴 뉴먼은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서로 의견을 물어볼 정도로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으나, 스튜디오 측에서는 두 배우의 이름 중 누구를 먼저 크레딧에 올릴까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두 대스타가 공존하기에는 미묘한 문제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요즘 관객들은(필자를 비롯하여) 브래드 피트, 조니 뎁 등 남자 배우들을 보면서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아마도 이 영화를 보게 된다는 폴 뉴먼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멋진 배우인지 알게 될 것 같다. 특히나 최근 할아버지가 되어 출연한 영화들만을 보았던 젊은 관객들에게는 꼭 이 영화를 권하고 싶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 폴 뉴먼은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첫 장면, 갈색 톤으로 채색 된 화면 속에서 말없이 등장하여 이곳저곳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폴 뉴먼이라는 배우가 참 멋진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머러스함과 진지함이 묻어나는 부치 캐시디 역할이야 말로 폴 뉴먼의 장점을 극대화 시킬 수 있었던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폭스의 새로운 컬렉션인 ‘시네마 리저브’ 시리즈의 첫 번째 출시작으로 출시된 <내일을 향해 쏴라 SE>는 고품격을 지향하는 컬렉션의 모토답게 깔끔한 패키지와 더불어 수준급의 스펙을 수록하고 있다. 2.3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에 가까운 수준 높은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높은 컨트라스트비로 날카로운 화질을 선보이며 먼 풍경을 담은 장면에서는 극 선명한 화질을 수록하지는 못했지만, 본 소스를 감안한다면 DVD로서 담을 수 있는 최상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서플먼트를 보다보면 영화 속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이 화질과 본편에 화질을 비교해보자면, 본편 화질을 우수함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는데 후반부의 총격 씬 등에서 5.1채널 사운드가 지원되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2.0채널로도 큰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깔끔한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시네마 리저브 컬렉션의 장점은 무엇보다 서플먼트에 있을 것이다. 2장에 디스크로 출시된 타이틀은 첫 번째 디스크에는 감독 조지 로이 힐, 주제가 작사가 할 데이비드, 다큐멘터리 감독 로버트 크로포트 주니어, 촬영 감독 콘라드 홀 이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과, 시나리오 작가 윌리엄 골드만이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 등 총 두 개의 코멘터리를 수록하고 있다. 배우들이 참여한 코멘터리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여러 기법들과 우수함에 대한 장본인들에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풍부한 서플먼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작비화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처음에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아니라 스티브 맥퀸이 거론되었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본래 영화 제목은 ‘Butch Cassidy & The Sundance Kid’가 아니라, ‘Sundance Kid & The Butch Cassidy’였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제작비화들은 이 영화를 최근에 접하게 되는 이들에게는 물론이요, 예전 극장에서 보았었던 이들에게도 그 동안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를 다들 할아버지들이 된 스텝들과 배우들을 통해 전해 듣는 색다른 시간이 될 듯 하다.
'The Truth Tale of Butch & Sundance'에서는 실존인물이었던 두 인물과 영화 속 이야기의 차이점을 비교하여 들려준다. 실존 인물이었던 부치 캐시디와 선덴스 키드에 관한 이야기는 이에 관해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많을 정도로 상당히 흥미 있는 역사인데, 그 중에서도 부치 캐시디가 실제로 볼리비아에서 죽었는가 하는 것은 아직도 미스테리로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이 같은 조금이나마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조지 로이 힐 감독은, 결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마지막 장면으로 멋지게 마무리한 것이다. 사실과 영화 속을 비교하는 서플에서는 이외에도 재미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영화 속에서는 볼리비아 도착했을 때 부치와 선덴스가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볼리비아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둘 모두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잠시 일한 것으로 나오지만 둘 모두 탄광에서 2년 정도 일하기도 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 밖에 영화에 관한 배우와 스텝들, 역사학자 등의 주요 인터뷰가 담겼으며, 1994년에 제작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역시 94년 제작된 7개의 인터뷰 클립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음성해설이 포함된 삭제장면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들려주는 조지 로이 힐 감독과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다른 버전의 크레딧 롤, 3가지 버전의 극장용 예고편 등이 수록되었다.
2006.10.04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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