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이 눈물 나는 영화.
<왕의 남자>는 <괴물>의 천 3백만 관객 동원 기록이 있기까지, 한국영화 흥행의 역사를 새로 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었다. 원 제작비를 따져보자면 천 만을 넘어선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였을 때 훨씬 저렴(?)한 제작비로 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왕의 남자>가 어쩌면 기대 밖이었을, 아니 아마도 기대 밖이었을 큰 흥행을 거두면서 이준익 감독의 차기 작에 대한 엄청난 기대가 모아졌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터. 이렇게 전작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경우, 차기 작에서 엄청난 부담 때문에 감독 스스로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처음부터 큰 기대와 동시에 걱정을 안고 있는 작품이었다. <왕의 남자> DVD의 서플먼트를 보면서도 느꼈고 <라디오 스타> 개봉 시에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또 한 번 느꼈던 것은, 이준익 감독은 이러한 부담감에서 어쩌면 어느 정도 초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자신의 말대로 완전히 초월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가 이 막중한 부담감에서 초월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는 애초에 시작할 때부터 큰 흥행을 노리고 있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최근 영화 소비의 주 타겟이 되고 있는 10대는 물론, 20대의 취향도 아닐 뿐더러, 그들 취향에 맞는 젊은 배우들이 주연도 아니고, 액션물은 더더욱 아닌 잔잔한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에 이어 이 같이 큰 규모의 영화가 아닌 일종의 작은 영화를 선택한 순간부터, 이 선택이 잘한 선택이 되었다고 해야 될 것이다. 이런 감독의 선택은 박찬욱 감독이 <친절한 금자씨> 이후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었을 때 많은 관객들이 배신 등등을 운운했던 것과는 달리, <왕의 남자>의 감동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에게도 배신의 감정 따윈 느껴지지 않을 결과를 낳았다. 물론 흥행 면에서는 왕의 남자의 거의 7분의 1에 가까운 관객 동원을 거두었지만, 감독과 배우, 스텝들이 모두 입을 모아 얘기 하듯이 천 만 부럽지 않은 180만이라는 말을 실감하듯, 거창하진 않지만 본 사람들의 마음 속엔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한 때 가수 왕 까지 할 만큼 잘나갔던 가수와 매니저가 세월이 흘러 흔히 말하는 한 물 간 스타가 된 뒤에, 우연한 계기로 다시금 인기를 얻고 하는 과정에서 가수와 매니저 간에 겪게 되는 감정, 그 감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렇다 할 특별한 이야기도 아닐 뿐더러 자칫하면 뻔한 신파가 될 위험이 많은 이 영화가 특별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에 있었다. 글쎄 뭐랄까, 쉽게 말해서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는 너무 영화 같으면서도 한 편으론 실제 안성기와 박중훈, 두 배우의 관한 이야기 같았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에 다른 두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면 그 두 배우가 아무리 초절정의 연기 고수라 할지라도 지금 같은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칠수와 만수>부터 <투캅스>를 거쳐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이르기까지, 함께 출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도 많았던 이 두 배우. 하지만 최근에도 계속 꾸준히 영화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던 안성기 와는 달리, 한 때 한국 최고 흥행 배우였던 박중훈은, 수 많은 코미디 영화들이 점점 관객에게 흥미를 일어갈 때쯤,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고 이후에 코미디 연기를 포기하고 조나단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의 출연하고, 악역으로 출연한 <세이 예스>, 눈물의 정극 연기를 선보였던 <불후의 명작>에 이르기까지, 배우로서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였지만,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영화 속 추억의 록스타 ‘최곤’이 더 와 닿았던 것은 ‘최곤’을 ‘박중훈’이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영화계에서 거의 20년 가깝게 함께해오며 친분을 쌓고 있는 안성기와 박중훈이 동반 출연한 자체도 극 중 ‘최곤’과 ‘박민수’의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청룡 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며 잔잔히 감격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젠 주연 조연 가리지 않고 불러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던 박중훈의 수상 소감을 들으면서,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가 어쩌면 이를 보고 즐긴 관객들보다도 이 두 배우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감동을 준 작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 스타>는 가수와 매니저 사이의 관계에 집중이 된 나머지 크게 부각되진 않지만, 상당히 음악에 신경을 쓴 영화이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거창하게는 아니지만 한국 록 음악 계보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이 같은 마음은 영화 음악과 삽입곡들에 고스란히 반영이 되었는데, ‘유 앤 미 블루’출신의 방준석이 영화 음악을 맡은 것은 물론이요, 신중현의 ‘미인’ ‘아름다운 강산’ ‘빗 속의 여인’ 등을 비롯하여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 조용필의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는 물론,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에 이르기까지 간단하지만 한국 록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신중현부터 노브레인까지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고 있다. 노브레인의 캐스팅 역시 단순히 그들의 이미지나 캐릭터 때문에 캐스팅 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한국 록 의 계보를 따지던 중 막내 격인(물론 그들도 어느덧 데뷔 10년 차이긴 하지만)노브레인을 출연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캐스팅 했다고 한다. 노브레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극중 이스트 리버가 그들의 캐릭터와 닮아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종일관 떠들며 넘치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스트 리버가 미워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처음 연기를 하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에는 아주 괜찮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라디오 스타>는 극장에서는 크게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후에 입 소문을 타고 좋은 영화라는 평이 나돌았기 때문에, 극장에서 놓친 관객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DVD출시를 기다렸을 텐데,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제법 빠른 시일 내에 DVD가 출시가 되었다. 2장의 디스크와 1장의 O.S.T를 포함한 패키지는 ‘비와 당신’을 비롯한 영화 속의 수록 곡들을 인상 깊게 들었던 터라 무척이나 반갑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근 출시된 타이틀답게 올해 출시된 한국영화 타이틀 가운데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우수한 화질을 보여준다. 특히 밝은 부분에서는 이렇다 할 문제점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고, HD급의 TV로 시청하여도 큰 화질저하를 느끼지 못할 만큼 수준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인물들의 클로즈 업에서는 물론, 동강과 영월 시내를 훑어가는 와이드 샷에서도 화질의 우수성을 만나볼 수 있다.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한 사운드 역시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극중 이스트 리버의 공연 장면에서는 우퍼 스피커의 활용도가 늘어나며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주며, 감동적인 스코어 역시 깔끔하면서도 스케일있게 전달된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두 개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 트랙에는 이준익 감독과 안성기, 박중훈, 그리고 정승혜 대표와 최석환 작가가 참여하였고, 두 번째 트랙에는 이준익 감독과 음악감독 방준석, 그리고 노브레인이 참여하였다. 첫 번째 트랙에서는 안성기와 박중훈의 관계가 묻어나듯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음성해설이 이어지는 한 편, 감독과 제작자, 작가의 참여를 통해 촬영장의 에피소드는 물론, 본래 의도하려 했던 바와 스크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제작 뒷얘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 두 번째 트랙에서는 노브레인의 참여하여 재미를 더하는 한 편, 방준석 음악 감독이 함께 하여 영화의 전반 적인 음악에 관련한 이야기를 좀 더 세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서플먼트는 예전 LP를 회상하게 하듯 Side A와 Side B로 나뉘어 담겨있는데, 주로 배우들과 감독, 스텝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이후 <라디오 스타>를 선택하게 된 계기와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들려주고, 안성기와 박중훈 두 배우 역시 이 영화를 통해, 혹은 이번 인터뷰 기회를 통해 그 동안 못했었던 진솔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번 영화에 감초 역학을 톡톡히 한 노브레인에 관한 스페셜도 수록되었으며, 방준석 음악감독의 인터뷰와 O.S.T 녹음 현장의 모습도 수록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던 좋은 영화.
<라디오 스타>였다.
2006.12.26
<라디오 스타>였다.
2006.12.26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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