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 (Brick, 2005)
누아르 장르의 진화
누아르 장르의 진화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이 되었다 혹은 선댄스에서 무슨 상을 수상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부터인가 개인적으로 깐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 등의 수상작이라는 수사들보다 한층 더 끌리는 홍보문구가 된 것 같다. 2005년작이지만 국내에는 최근 개봉한 <브릭> 역시, 그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 끌려서 극장으로 이끌렸던 영화였다. 재기발랄한 신인들의 등용문 혹은 무언가 주류 정서와는 다른 신선함을 맛볼 수 있는 영화들이 주로 출품되는 선댄스 영화제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배우들도 감독도 낯설은 영화였지만, 그래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선댄스의 선택답게 첫 감독작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치밀한 연출력과 내러티브, 그리고 장르적인 특성을 완전히 업그레이드한 라이언 존슨 감독은 주연을 맡은 조셉 고든 레빗과 더불어 앞으로 주목해야할 영화인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영화의 장르는 기본적으로 누아르 혹은 미스테리라고 보면 될 텐데, 누아르라는 장르는 사실 21세기에 성행하는 장르라기보다는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르가 아닌가. <브릭>은 기본적으론 누아르 장르이지만 그 배경을 완전히 현대로 가져오는데 성공하였다. 바바리 코드에 중절모를 쓴 형사가 주인공이 아니라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며, 배경도 무슨 암흑가 따위가 아니라 평범한 고등학교 일 뿐이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을 가져오는 시도는 자칫하면 코미디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데, <브릭>은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더불어 21세기 현대의 스타일에 완전히 녹여내면서 누아르 장르의 성공적인 진화를 이끌어냈다. 고등학교와 마약이라는 소재를 배경으로 그 사이에서 세력이 나뉘고 갈등이 생기며, 그 사이에 생긴 중요한 사건에 대해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앞서 말한 것처럼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것만 뺀다면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물론 배경을 바꾸더라도 이 정도 연출이면 평범함은 넘어서는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터). 하지만 고등학교와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면서 영화의 뻔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젊고 신선한 영화가 되었고,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 코스튬 플레이는 상당히 인상적이면서도 재미있었는데, 패거리를 형상화 하면서 한 편으론 이를 감각적으로
비꼬기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의 시작은 어느 스릴러 영화 못지 않게 미스테리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수구에 버려진 시체와 그를 바라보는 주인공. 주인공 브랜든은 아마도 이전에 내부밀고 형식으로 친구를 학교에 고발한 일로 인해 일종의 '왕따'가 되어버린 캐릭터로서 자신이 스스로 몸을 내던지고 고민해가며 홀로 사건을 풀어간다(물론 친한 친구 하나가 도와주긴 하지만). 그리고 여주인공인 에밀리 역시 주류 친구들의 무리에 끼기 위해 마약에 가까워지게 되고. 이렇듯 완전히 마약 얘기로만 가는거 같지만 한편으론 현재 고등학교 내의 현실적인 문제까지 슬쩍 껴넣고 있는 치밀함이 보인다. 그리고 지하실에선 엄청난 마약 거래와 음모를 꾸미지만, 지하실을 나와 거실로 올라오면 엄마가 시리얼과 음료수를 챙겨주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다시 한번 부각시킨다. 이렇게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에 충실하면서도 그 이면에 누아르 정서를 새겨넣으며 영화를 끝까지 몰입할 수 있고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거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잠깐 잠깐 정신을 잃고 깨어나는 부분을 삽입해 왠지 몽환적인 느낌도 들게 하고 있다.
(영화 속 브랜든의 저 포즈는 한동안 인상깊게 남을 것 같다. 점퍼를 입으면 꼭 손을 주머니에 깊게 파고 넣는
저 스타일. 점퍼를 안입으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더라 ㅎ)
분명 영화 시작해서 얼마 안되었을 때는 '이게 뭔가'하는 이질감이 느껴졌던 영화였지만, 사건이 진행되고 시간이 흘러갈 수록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재주가 있는 작품이었다. 히스 레저를 꼭 빼닮은 주인공 조셉 고든 레빗은 이 영화를 통해서 앞으로 더 많은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21세기에 누아르 장르가 진화하는 방법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 <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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