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5th EIDF _ 히어 앤 나우 / Hear and Now
삶의 적응 그리고 러브 스토리


제 5회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이 오늘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다큐멘터리 장르는 어느새 부턴가,
뮤지컬이나 애니메이션 만큼이나 좋아하는 장르가 되어버렸는데, 요즘 워낙 정신이 없는 탓에 날짜도 미처 기억 못하고 있던
이번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의 한 작품을 우연히도 TV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이래서 이번 페스티벌이 좋다. 잠시 신경을 못써 놓칠 수도 있는 작품들을 다행히 TV에서 방영하는 관계로 극장에서만
상영할 때 보다는 훨씬 놓칠 확률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오늘 감상한 <히어 앤 나우>같은 경우도 집에서 해야될 일이 있어서
컴퓨터를 하던 중 틀어놓은 EBS채널에서 다큐가 시작되었고, 바로 컴퓨터를 접어두고 TV앞에 집중하게 된 경우다.
(참고로 이번 EIDF 영화제는 EBS를 통해서 뿐 아니라 이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도 만나볼 수 있어,
TV뿐만 아니라 극장에서도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 시놉시스

감독은 청각장애인인 부모가 처음으로 소리를 경험하는 생애의 기념비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노부부는 65세의 나이에 내이(內耳)수술을 받기로 하는데, 고요함에서 소리로의 여정은 쉽지가 않다. 얻는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은 이들의 경험은, 다큐멘터리이자 한 편의 러브 스토리로 남는다. - 자료출처 : EIDF 홈페이지 (http://www.eidf.org/)

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단순히 '인간극장' 풍의 장애를 다룬 소소한 에피소드, 그 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마치 애초부터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소스같은, 두 주인공 부부의 어린 시절 사진과 동영상들,
그리고 담백하지만 힘이 있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무언가 일반적이지 않은 색다른 느낌을 갖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65년이나 청각 장애를 갖고 살아온 부부가, 65세의 노년이 되어서야 내이(內耳)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여기서 이들이 겪는
감정과 변화에 다큐는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통 '인간극장'같은 형식의 일반적인 구성이었다면,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로
고통받는 부부의 삶을 조명하다가 마지막에가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예전에 장애를 소재로 다룬 영화를 리뷰하면서도 이야기 했던 말이지만, 이런 해피엔딩은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결말이라기 보다는, 비장애인이 장애를 갖고 있는 이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해피엔딩에 지나지 않는다.
장애가 없어지고 극복되어지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의 시선은 장애인이 반드시 장애를 극복해야만 하고
극복되었다 여겨지면(물론 일방적으로) 그걸로 바로 끝내버리려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장애를 다루었던 대부분의 영화들(물론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은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행복한 세계를 그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었다.

하지만 이 작품 <히어 앤 나우>는 수술이라는 것을 종점으로 선택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수술 전에 앞으로의 일들을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부부의 심정 만큼이나 수술 후의 그들의 겪고, 견뎌야만 했던 시간들에 대해 더욱 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시선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인 아이린 테일러 브로드스키(Irene Taylor Brodsky)가 바로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인
노 부부의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부모의 고단함과 두려움을 잘 알고 있고, 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가장 외곡없이 바라볼 수 있는 화자로서, 아이린은 이 다큐멘터리를 단순히 꿈만 같은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수술 이후에 이 노 부부가 겪는 일들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소소한 것부터,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애써 무시하려했던
중요한 이들까지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부부 역시 수술을 통해 들을 수만 있겠된다면 모든 것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들리지 않은 것에 익숙해진 이들은,
오히려 들리는 비장애가 장애로 다가와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되고, 그들이 그토록 바랬던 들리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는 행동까지 보이게 된다. 그 말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내이 수술은 부모님에게 그저 들리는 것만 주었을 뿐이라고'
'그저 들릴 뿐이라고'. 극중 어머니는 오히려 수술 이후에 더 큰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너무 많은 소리를 한꺼번에 접하다
보니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주의에서는 자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보라며 기계를 착용하라고만 하는데, 이 어색하고
혼란스럽기만한 기계 착용이 어머니에게는 오히려 더 큰 부담과 장애로 다가오게 된다.
내이 수술을 한 뒤에도 보청기와 같은 기계를 귀에 착용해야만 듣는 것이 가능한데, 들리는 자유보다 들리지 않는 장애에
오랜 세월 익숙해진 부부는 오히려 이 자유를 만끽하기 보다는, 기계를 벗어놓고 있을 때 훨씬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그리도 바라던 출소를 했던 모건 프리먼이 너무도 오랜 세월 감옥에서 지낸
탓에 출소 후에도 다시 감옥을 그리워 할만큼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노 부부는 그토록 바랬던 들리는 환경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남편은 조금 더 환경에 빨리 적응해 기계에 익숙해지려고도 하고 더 많은 소리를 듣게 되는데,
아내는 자신이 남편에 비해 적응이 느린 것 또한 스트레스고, 자신도 남편과 비슷한 속도로 적응을 해야만 한다는 것에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런 매우 현실적인 부분은 일반적인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에서도 잘 보기 힘든 디테일로서,
이 이야기를 단순히 장애에 관한 것으로 만들지 않고, 노년에 접어든 두 부부의 깊은 삶과 러브 스토리로 감싸 안고 있다.
남편은 이런 아내를 위해 너무 앞서나가지 않고 속도를 맞춰주고, 3개월, 6개월이 지나도록 쉽게 적응하지 못하던 아내는
1년이 지나고서야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것조차 '완전히 수술이후에 적응해 이젠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라는
식이 아니라, '그들은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이 두 부부의 대화와 뒷 모습이 쓸쓸하지만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오랜 세월을 함께 겪어오며 깊어진 그들의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저들처럼 오래 살지 않고서는,
저들처럼 오랜 세월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을 바로 '그것' 때문에, 한적한 길가에서 서로 '당신이 날 챙겨줘야지'
하며 서로를 툭툭 건드리며 장난치는 모습에서 깊은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나 다큐는 많이 봐왔지만, 단연코 이 다큐처럼 더도 덜도 없이, 하지만 따뜻한 심정으로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영화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던 것
같고. (최근 재미있게 보았던 러브 스토리라면 '월-E'가 있겠다 ;;;)

아내 - 경적을 울리는 것도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편 - 그것도 대화지. 이쪽으로 비켜, 저쪽으로, 이렇게 경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니까.
아내 - 근데 이건 뒤 차에서 일방적으로 보내는 거 잖아요. 그러니까 대화라고 할 수 없죠.
남편 - 그렇네. 이건 대화라고 할 수 없겠네.


한 번 본 기억으로만 쓴거라 정확하진 않겠지만, 아....이런 대사는 절대 시나리오 작가는 쓸 수 없는 경지의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 작품을 꼭 나중에라도 보여주고 싶다.


1. EBS Space 2008-09-25 10:00
   아트하우스 모모 2008-09-26 11:00
   아트하우스 모모 (2차) 2008-09-27 10:30   

  아직 못 본 분들 가운데 시간이 되는 분들은 EBS Space나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위와 같이 상영 예정이니 
  관람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시간대가 별로 좋지는 않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제5회 EBS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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