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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A Taxi Driver, 2017)
목격자로서 정의롭게 기록하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항상 위험함이 존재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흥미를 자극하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까운 과거의 경우, 또 그 역사적 사실의 피해자가 존재하는 경우는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될 정도로 앞서 언급한 장점에 비해 위험성의 부담이 더 큰 장르가 바로 과거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측면에서 장훈 감독의 신작 '택시운전사'는 아직 그리 오래되지 않은 80년 광주 5.18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주 위험한 영화다. 


5.18 광주를 다룬 영화는 상업영화 가운데도 이미 여러 편이 있었는데 '화려한 휴가'처럼 제대로 된 방향성을 잡지 못해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영화도 있었고, '26년'처럼 많은 기대를 모은 것에 비해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아쉬운 평가를 받았던 영화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효과적인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 (Scout, 2007)'를 주저 없이 꼽을 수 있겠다. 


당시 한창 코미디 영화로 주가를 올리던 임창정 주연의 영화로 코믹한 느낌을 강조한 포스터와 홍보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이 영화는 놀랍게도 1980년 광주의 공기를 가장 잘 표현해 낸, 특히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간접적인 방식을 택하면서도 5.18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가장 올바름을 보여준 영화였다.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섣불리 피해 당사자의 입장으로 참혹한 역사의 중심에 서서 어설픈 공감대를 자랑하듯 전시하지 않고, 스스로 최대한 한 발 물러섬으로써 광주를 바라보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스카우트는 광주 얘기가 나올 때마다 추천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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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스카우트'에서 조심스럽게 한 발 더 접근한 영화다. 영화는 이번에도 제삼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좀 더 당시의 현실을 전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딛는 것을 선택한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잘 알려졌다시피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에게 아주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당시 완전히 통제되었던 언론 탓에 광주의 참혹한 현실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토마스 크레취만 분)는 한 택시운전사의 도움으로 광주에서 취재를 할 수 있었고, 영화 '택시운전사'는 이 과정을 중심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바라본다. 즉, 서울 택시를 몰던 소시민으로 우연히 광주에 오게 된 김만섭 (송강호 분)과 독일 기자 피터의 목격자적 입장이 이 영화의 시선이자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많은 재난 영화 혹은 특수 상황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이런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재난 혹은 사건과는 전혀 무관했던 평범한 인물이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관객들에게도 공감대를 유도하는 방식 말이다. 이런 구조는 또한 대부분 평범했던 인물이 영웅적 면모를 보여주면서 문제의 중심에 도달, 해결하는 이야기로 귀결되곤 하는데, 일반적인 액션, 재난 영화에서는 오락적인 측면으로 쉽게 수용되는 부분이지만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주저해야만 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택시운전사'는 분명히 '스카우트'와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이 한 편만 두고 보아도 제삼자가 역사의 중심에 더 많이 접근해 있는 영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이런 실수를 범했던 다른 역사 배경 영화들에 비해 좋았던 건 접근에 주저함이 보일 정도로 조심스럽고, 최대한 제삼자이자 목격자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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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섭이 피터의 탈출을 위해 벌이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나 그 이전에 금남로 현장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자칫 타자의 영웅적 면모로 비칠 수 있는 (그저 장르적 장치로 소비될 수 있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만섭과 피터는 목격자임을 잊지 않고 목격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고민하는 것에 집중한다. 만섭은 집에 홀로 남겨진 어린 딸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만 직접 목격한 참혹한 현실 앞에 보통의 인간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만섭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양심의 갈등은 거대한 정의나 영웅적 면모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느껴야 할 것들로 인한 지극히 현실적인 갈등이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만섭이 광주로 다시 돌아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깊이 갈등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만약 만섭이 다른 재난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태의 중심으로 들어가 해결하려고 했다면, 설령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관객들에게는 더 큰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할 바를 다했고, 누구 하나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욕하는 이도 없을 것이고, 더군다나 홀로 남겨진 어린 딸을 위해서라도 서울로 가야 할 이유가 충분한 상황을 알기에 눈물로 결심하는 이 장면은 정의롭지 못한 일을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목격자로서, 제삼자로서 그럼에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하는 것에서 한 발만 더 나아가 행동할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이 또 어떤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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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택시운전사'를 보며 또 하나 생각해 보게 된 건 직업인으로서의 윤리랄까, 역할에 관한 점이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도 이와 비슷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거대한 음모와 부정의가 판치는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힘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직업인으로서 각각의 개인이 각자의 맡은 바를 제대로 하기만 해도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메시지를 이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독일 기자 피터는 실제 인터뷰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엄청난 사명감으로 당시 광주로 향했던 것이 아니라 기자이기 때문에, 기자로서 알려야 할 일이 있다면 취재를 해야 한다는 직업윤리에 기반해 행동했던 것이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광주 택시운전사들의 대사에서도 '택시운전사가 손님을 가려 받으면 되나'처럼 기본적으로 택시운전사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바를 충실히 했다는 것을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직접 데모에 나서지 않는 이들도 데모에 참여한 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내주고, 쉴 곳을 내주며 응원의 힘을 불어넣었던 것처럼, 당시 광주는 광주 시민 모두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행동으로 옮겼던 현장이었다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이 역시 최대한 있는 그대로, 하지만 목격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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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역사적 비극을 당사자가 아닌 목격자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자 호소가 담긴 질문의 결과물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아직도 많은 이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영화는 당시를 기억하고 5.18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보다는 아직 제대로 광주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이들을 위한 영화다. 그래서 철저하게 목격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반대로 목격자만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1. 이 영화에서 가장 판타지스럽다고 생각되었던 후반부 검문 장면은 사실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라고 하더군요.
2. 자동차 추격 장면은 확실히 조금 이질적인 시퀀스였어요. 이 부분이 조금만 더 세련되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 듯.

3. 초반부 만섭이 광주로 향하기 이전 장면들에 여러 복선들이 있더군요.

4. 이렇게 5.18 광주를 다룬 영화들은 조금씩 한 발씩 나아갔으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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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이대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몇 년 전에 류승범, 김아중 등이 출연하고 이해영 감독이 연출을 맡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나 아쉽게 더 나아가지 못했고, 이번에 조근현 감독과 진구, 한혜진, 임슬옹 등이 출연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제작두레 덕에 '26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잘 알려졌다시피 5.18 당시 군사독재정부를 이끌었던 전두환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그 유족들과 또 다른 피해자들이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 나는 영화 평론가도 아닐 뿐더러 그저 개인적인 영화 글을 쓰는 이로서 반드시 영화에 대해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소개해야 할 의무나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좀 더 내 감정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바가 아주 없다 고는 할 수 없을텐데,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 '26년'은 객관성을 갖기는 힘든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먼저 본 이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적지 않게 들어왔는데, 내가 보기엔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 없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이에 대해 완전히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는 얘기다. 나에게 '26년'은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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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는 내게 참 특별하다. 난 광주 사람도 아니고 5.18 유족도 아니며 직접적인 연관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한 사람이라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 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있지만, 분명 내게 5.18 광주는 특별한 의미였고, 그렇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흐른 눈물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날을 떠올려 보면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된, 아니 제대로 인식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첫 번째 한국사가 바로 5.18 광주가 아니었나 싶다.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5.18에 대한 자료들, 사진들, 영상들을 접해왔고, 이후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주변의 좋은 분들 덕택에 이 아픈 현실과 상처 받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5.18 광주에 대한 미안함을 담고 있는 공연 작품을 통해, 5.18 광주에 직접 내려가 금남로 거리 위와 5.18 묘역 앞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었다. 사실 이제와 떠올려 보면 이런 의미를 갖고 있던 공연에 직접 참여해서 여러 차례 노래를 불렀음에도 그 당시에는 어려서 인지 무언가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 광주와 광주 사람들을 둘러 싼 공기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내 일처럼 생각될 정도의 공감대까지는 느끼지 못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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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5.18 광주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몇몇 작품을 보면서도 느꼈던 바가 이번 '26년'을 보면서 비로소 정점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영화 '26년'은 1980년 5월, 참혹했던 당시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여준다. 만약 5.18 광주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이 장면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나에게 이 애니메이션 시퀀스는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눈물을 참을 수가 없는 장면들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저 애니메이션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실제 자료들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절대 영화적으로 보이지 않고 당시의 광주와 사람들이 그대로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영화적으로만 (일부러) 본다면 인물이나 내용에 공감대를 갖기 이전에 등장하는 프롤로그로서 사건을 사건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프롤로그는 한 장면 한 장면에서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는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슬픈 시퀀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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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광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악당을 연기한다)



이후 배우들이 펼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며칠이 지나 다시 떠올려보니 김갑세 (이경영)가 주도한 살해 계획은 영화적으로 치밀하기 보다는 투박하게 묘사되고 있고, 그렇기에 보통의 스릴러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은 덜하고 몇몇 인물은 그 행동의 당위성을 공감하기가 갸우뚱 거리는 부분이 있지만, 이건 다시 말하지만 며칠 뒤에 일부러 떠올려 보고서야 알게 된 부분이었다.


프롤로그의 애니메이션이 그랬던 것처럼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가 담으려 했던 5.18 광주의 이야기, 그 자체의 슬픔이 너무 컸기에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를 애초부터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보통의 영화 같으면 너무 신파라서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광주의 이야기는 그럴 수가 없었다. '금남로 거리를 싸 돌아 다닌게 쪽 팔려서'라는 건달 두목의 대사에도, 묘역 앞에 놓인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영정들을 보며 '이렇게 보니 다 가족 같네'라는 대사에도, 머리보다는 가슴이 더 먼저 신호를 보냈다. 내가 그냥 영화 속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 정도얐다면 후반부 '그 사람'이 두들겨 맞을 때 통쾌함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런 통쾌함조차 없었다. 과연 이 아픔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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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더 나은 완성도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영화라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영화가 영화가 아닌 메시지 만으로 평가 받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영화는 영화다. 이 영화 '26년'이 5.18 광주를 모두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으며, 반대로 모든 짐과 의의를 짊어져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이대로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전혀 반대의 의미로 하루하루를 정말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는 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너무도 무관심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26년' 영화 속 인물들이 결코 극 중 인물만이 아님을, 이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또 한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 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5.18 광주에게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1. 프롤로그의 애니메이션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연출했던 오성윤 감독이 만드셨더군요.


2. 이 영화를 비판하는 이들 가운데, '더 좋을 수 있었는데' '더 좋았어야 했다'라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3. 영화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이승환의 '꽃'을 다시 듣게 되었는데, 이제 이 곡을 들을 때 마다 눈물을 어찌 참을 수 있을 런지 모르겠네요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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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愛 (No Name Stars)

우리의 오월은 끝나지 않는다



내게 있어 5.18 광주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사실이다. 나는 광주 사람도 아니고 당시를 치열하게 겪은 세대도 아닐 뿐더러, 직접적으로 가까운 이들이 피해를 입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좋은 부모 아래서 그 어떤 슬프고 참혹한 역사보다도 많은 자료와 이야기들을 전해들었던 터라, 5.18 광주는 결코 낯설지가 않았다. 처음 광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당시의 참혹한 참상이 그대로 담겨있는 사진들과 책들을 통해서 였는데, 이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너무 어렸었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이 들기 보다는 그저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그 이후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와 그 배경에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 곳에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간 광주시민들, 더나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보고 알아갈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이제와 새삼스레 드는 생각은, 이런 기회들이 내 인생에 가치관을 형성하는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광주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이후 정치적인 잣대를 세우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너무 이 진실 속에서 살아온 삶을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언제부턴가 진실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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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1년 5월. 나는 또 하나의 오월 광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월愛'를 보게 되었다. 사실 처음 이 작품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5.18 광주의 한 가운데에서 투쟁했던 이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보이지 않게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아주머니들, 어머니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오월애'에 그런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집중을 하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말들을 통해, 2010년 광주를 다시 돌아보는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이미 광주와 관련된 여러 다큐, 인터뷰, 영상들을 접해왔던 나로서는, 익숙한 얼굴들도 있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새롭게 접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 과거사에 왜 눈물을 흘리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한 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 번째로 이것은 우리의 역사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현 정권에 들어서서 다시금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아진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에는 1980년대 피흘려 싸운 광주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즉, 이것은 결코 남의 일,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우리의 일이며, 현대를 사는 모든 이들은 적어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따른다면 오월 광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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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할 과거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관련된 나의 일이라는 점에서 5.18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참으로 부끄럽고 화가 나는 일이지만, 아직도 오월 광주의 슬픔과 희생이 치유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채 잊혀져야할 과거사로 점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5.18은 혁명으로 인정받고, 희생자들은 민주투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참혹한 일들을 저질렀던 범죄자들은 죄값을 치르기는 커녕, 사과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슬픔을 고스란히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부유한 삶을 살고 있으며, 이들은 놀랍게도 아직까지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감정적으로 보자면 그들이 한 짓은 절대 용서받기 어려운 일들이겠지만, 이렇다하더라도 이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개숙여 사죄할 때나 가능한 일일텐데, 오히려 시간이 갈 수록 가해자가 자신의 가해사실을 점점 지워가고 있는 지금에서 어떻게 '용서'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부끄럽고 화가나지만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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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광주의 슬픔과 눈물은 아직도 흐르고 있다. 당시를 살았던 이들은, 함께 싸우다 먼저 자신을 던져 희생했던 이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보답하고자, 자신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오월 광주를 끌어 안은 채 또 다른 투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흘릴 눈물마저 남아있지 않은 이들에게, 이 작품을 보며 흐르는 내 눈물조차 죄스러울 정도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아직도 이들에게 너무 소홀했고, 사회와 정부는 또 다시 이들을 폭도로 내몰 궁리만 하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기는 커녕, 분노하게 만드는 일들만 자행하는 현실이 과연 제대로 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감출 수 밖에는 없었다.


사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 '오월愛'는 광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지난해 도청건물 철거를 두고 벌어진 일들만 제외하면 거의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담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렇다고해서 결코 이 영화가 갖는 의미가 퇴색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받아들이는 이들에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에게 '오월愛'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시금 책임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광주 시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나로서는, 적어도 내가 안다고 해서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미약한 노력이라도, 5.18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과 이를 접해볼 기회가 없었던 어린 세대들, 그리고 더 나아가 오해로 인해 잘못된 사실들로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전해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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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오월 광주가 아닌 우리의 광주. 그리고 우리의 오월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았다'로 한정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비관적인 미래로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의미를 담아 '끝나지 않는다'로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하겠다.


1. 보통 때 같으면 슬픔이 더 깊었을 텐데, 이번에는 사실 분노가 더 치밀어 올랐다. 이유는 단 하나. 아직도 가끔씩 TV에 등장하는 29만원 그 때문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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