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의견 (2013)

피고 대한민국에게 진실을 묻다



용산 참사와 관련된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소식은 이전에 들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의 개봉도 그리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나 보다. 2013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2015년 6월이 되어 서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는데, 어쩌면 영화의 제목인 '소수 의견'과 같은 대우 혹은 처분을 영화 스스로가 받았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수 의견'이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좀 더 실화 자체에 바탕을 둔 영화인지 아니면 배경으로 픽션을 그려낸 것인지 하는 점이었는데, 김성제 감독의 '소수 의견'은 후자의 방식을 택한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방식은 영화가 본래 말하고자 했던 바를 관객에게 전달 하는 것에 있어서 더 영리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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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영화는 정치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응원을 받든, 질타를 받든 간에 말이다. 물론 지금의 결과물을 가지고도 충분히 이런 논란을 벌일 수는 있겠지만, 느끼기에 '소수 의견'은 최대한 이를 직접적인 방식 보다는 간접적이고 은유 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한 영화로 느껴졌다. 일단 아직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이 작품은 실화입니다'라는 방식의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이 영화의 경우처럼 '영화 속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입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결과적 효과를 만들 수 밖에는 없었다. 왜냐하면 실화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이 사건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실제 인물과 사건에 빗대어 생각할 수 밖에는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제 실화 임을 강조하는 방식은 오히려 사실을 늘어 놓는 것 이상의 효과는 없었을 텐데 (물론 제대로 된 사실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시대다.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이 그랬던 것처럼), 이보다는 관객들이 영화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이 사건의 진짜 문제와 이로 인해 알게 된 진실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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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의 어두운 면, 혹은 누군 가가 숨기고 싶어하는 진실에 대한 영화들을 요 근래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소수 의견'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들 만이 서로 원망하고 다투고, 결국 용서하고 눈물 흘리게 되는 잘못된 사회와 진짜 가해자에 대한 추적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법정 공방 과정 관련하여 기술적으로 보았을 때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물론 그랬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주고자 했던 것은 법정 공방에서 오는 서스펜스와 통쾌함은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작품의 법정 드라마는 진짜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추적하는 과정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다른 법정 드라마와 다른 점이라면 진짜 가해자는 원고 측에도 피고 측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한 소년과 한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간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농성자와 용역 깡패, 더 나아가 작전을 수행한 전경과의 대립 구도는 이 사건의 진정한 프레임이 아니다. 법정 공방은 이들 사이에서 이뤄지지만 진짜 주목해야 할 구도는, 작게는 이런 사건에 큰 관심이 없었던 두 변호사 윤진원과 장대석 같은 사람들과 앞선 프레임 대로 흘러가길 원하는 권력과의 구도, 크게는 이 사건을 그저 남의 이야기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국민들과 그랬으면 하는 권력과의 구도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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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도로 이 영화를 바라보게 되면 사실 영화는 더 답답해 진다. 왜냐하면 영화 내내 매달렸던 사건과 법정 공방의 결과 얻게 되는 건 결국 진실이 아직은 소수 의견일 수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뿐이다'라고 썼지만, 그리고 이 영화는 스스로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소수 의견이자 '뿐'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럴 '뿐'인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정말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나는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소수 의견을 내는 것은 여러 모로 부담스럽다. 특히 그것이 어떤 불안과 공포를 담보로 해야 할 땐 더더욱 주저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영화는 묻는다. 피고 대한민국에게 진실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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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2)

가지 않았던 길 앞에 서다



홍상수의 신작 '다른나라에서'를 보았다. 이자벨 위뻬르의 출연으로 더욱 화제가 되었던 '다른나라에서'는 전작인'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과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한 편으론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간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그냥 하는 말로 '재미있다'가 아니라 극장을 나오며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아, 정말 영화 재미있게 만들었네!'라는 생각이 드는 아기자기함과 그 속에 묘한 감정선이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홍상수는 전작들을 통해 같은 인물들을 두고 시공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거나 (북촌방향),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이야기로 풀어내 모호함 속의 논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옥희의 영화), '다른나라에서'는 모호함은 덜하고 좀 더 명확해졌으며 시공간은 같지만 같거나 다른 인물들의 또 다른 이야기 (가지 않은 길)를 통해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재미를 한가득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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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엄마와 함께 빚에 쫓겨 모항에 내려온 딸 (정유미)이 심심해서 써 본 세 편의 작은 이야기(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안느 (이자벨 위뻬르)에 관한 이야기다. 모항이라는 동일한 공간, 여름이라는 같은 시간대 그리고 그 시공간에 존재하는 같은 사람들. 하지만 세 명의 다른 안느가 만나는 이 시공간과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낸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는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물론 이자벨 위뻬르가 모항을 배경으로 유준상, 정유미 등 우리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신선함과 매력을 준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개인적으로 '다른나라에서'는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의 어느 한 접점이라고 생각되는데, 좀 더 명확해진 '옥희의 영화'이자 대놓고 챕터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정유미가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을 매번 삽입하면서 챕터화를 한 '북촌방향' 말이다. 이렇게 관계나 구성에서 좀 더 명확해지면서 영화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편안한 작품이 되었고, 그의 다른 여름 영화들처럼 (해변의 여인, 하하하) 좀 더 유쾌함과 살랑거림을 담은 가능성의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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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과의 접점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나라에서'의 가장 큰 매력은 세 명의 안느의 이야기가 모두 밀접한 점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블록버스터 영화였거나 반전을 핵심으로 내세운 영화였다면 영화 속 다양한 복선과 연결고리들을 굉장한 무기로 활용했겠지만, 홍상수는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또 다른 우연의 가능성인냥, 그냥 자연스레 흘러버린 물줄기인냥 손 가는대로 그려냈다. 세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을 때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그들은 모르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또 다른 모습 (그들이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일 텐데, 아마도 블록버스터 영화였다면 시간 여행을 통해 그 인물의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만나보게 될 때와 유사한 흥미로움과 영화 속 인물들은 처음 겪는, 처음 하는 일이지만 이를 본 관객들 입장에서는 반복을 보게 되는 것에서 오는 다른 재미와 다른 포인트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홍상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배열해 놓고 관객에게 반복과 가능성의 재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안느에게도 일부 관객과 같은 능력(?)을 부여하고 있다. 즉, 정말 각기 다른 이야기 속 다른 안느라면 (이럴 경우 같은 안느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지만)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주었는데, 이 장치를 묘사하는 방식이 관객으로 하여금 '엇, 이상한데?'라고 단순히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애잔함을 남기고 있어 특히 더 인상적이었다. 바로 안느의 뒷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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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가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가능성을 마치 인생극장처럼 펼쳐놓은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 앞에 선 안느의 모습 때문이었다. 한 쪽으로 가면 안전요원을 만나게 되고 다른 한 쪽으로 가면 등대로 가는 길인데, 안전요원과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등대에 가게 되면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서의 중요함 보다는, 이 길 앞에 잠시 멈춰선 안느의 뒷 모습이 무언가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안느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로 이루어진 짧고 응축된 대화들을 통해 단순히 프랑스 여인 안느 만이 '다른나라에서'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다른나라'를 경험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세트 하나 없이 실존 하는 장소들만 가지고 촬영한 이 영화가 마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모항'이라는 가공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모항의 자연적 아름다움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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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작들의 비하자면 정서적인 메시지는 좀 덜하고 유쾌한 편안함이 더 가미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몇몇 장면들은 정말 홍상수 영화의 다른 명장면들이 그러하듯이,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 눈물겹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예고편에서도 등장했던 유준상이 연기한 안전요원이 텐트 안에서 안느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그 장면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맥락이 없는 장면이라고 해도 무방한 순간이었는데, 그 장면이 주는 임팩트가 어떠하였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유준상이 너무 아름답게 노래해서도 아니고, 곡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만도 아닌데 그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ANNE, THIS IS A SONG FOR YOU.
ANNE, YOU HAVE A BEAUTIFUL NAME.
IT'S RAINING. BUT IT'S RAINING.
ANNE WANT TO GO TO… GO TO LIGHTHOUSE.
BUT IT'S RAINING, ANNE IS COLD.
DO YOU WANT TO GO LIGHTHOUSE?
BUT, WE DON'T KNOW. WE DON'T KNOW.
ANNE, ANNE, ANNE.





1. 전 개인적으로 안전요원의 텐트 안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은 것이 가장 훌륭한 선택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하긴 홍상수 영화에서 텐트 안을 잡아냈다면 그것도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네요 ㅎ


2. '하하하'를 보고 가장 크게 발견한 건 역시 유준상이었는데, '다른나라에서' 드디어 터져나왔어요! 주옥 같은 영어 명대사를 여럿 만드셨습니다 ㅋ


3. 홍상수 투어의 장소가 또 추가되었군요. 이제는 모항도 가봐야할 곳!


4. 이 작품에서 새롭게 발견한 이자벨 위뻬르의 모습이라면 '귀여움' 이었어요. 빨간 원피스를 차려입고 나선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더군요.


5. 도올 선생님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서 이미 첫 등장의 뒷모습부터 웃음이...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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