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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哭聲, 2016)

의심과 현혹으로 탄생한 지옥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 (哭聲, 2016)'은 인간의 의심과 무지 그리고 그로 인한 현혹을 주제로 신과 악마의 이야기를 가장 현실적인 공간의 배경에 풀어 놓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감독이 분명한 하나의 의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이나 이해가 가능하도록 만든 구조의 작품들인데, '곡성'도 그 중 하나다. 개봉 첫 날 부터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데 (담론이라기 보다는 궁금함으로 인한 해석과 설명들), 이런 영화들은 사실 한 가지의 답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몇 가지의 답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긴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그만큼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불러 모았던 나홍진의 '곡성'은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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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시작 인용한 성서 구절과 마지막 동굴 시퀀스에서 외지인이 들려주는 대사는 그렇게 의심이라는 주제로 수미상관을 이룬다). 그리고 그 의심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의 가벼움에 대해서도 말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이 발생하고 동네에서는 사람들의 입을 거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바로 외지인인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범인이라는 혹은 귀신이라는 얘기. 경찰인 종구 (곽도원)는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웃어 넘겼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게 되 그 역시 외지인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몇 가지의 확신할 만한 상황들이 벌어지게 되면서 이 의심은 더 확고한 확신으로 번져 간다. 한 번 생겨난 의심 그리고 이를 더 확고하게 해 줄 만한 말들과 현실들이 더해지면서 사태는 것잡을 수 없이 빠르게 전개 되어 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종구의 의심과 현혹됨이 관객에게도 동시에 진행되고 발전된다는 점이다. 관객은 주인공인 종구의 시점을 공유하며 같은 입장에서 인물들을 의심하고 그 현혹된 시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의심에 관한 텍스트는 주인공의 결백 등과 맞물려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만나볼 수 있었던 이야기인데 '곡성'은 여기에 종교적인 이야기를 적절하게 겹쳐 놓았다. 신, 특히 종교야 말로 의심이라는 것에서부터 태어났으면서도 의심이 허용되지 않는 존재가 아니던가. 나홍진은 이를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관객들의 의심 역시 십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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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무라 준이 연기한 외지인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가장 (특히 초반)공포스럽고 악마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벌거벗은 채로 고라니를 뜯어 먹고, 그것이 설령 꿈이라고 하더라도 새빨간 눈동자를 한 모습과 피해자들을 전시해 놓듯 사진들로 가득 찬 그의 공간은 그를 연쇄 살인마 이상의 악마로 (혹은 귀신으로)의심하고 확신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이 외지인 귀신을 떨쳐내기 위해 고용된 무당 일광 (황정민)은 그 등장에서 부터 완벽하게 일본인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서 묘사된다. 더 나아가 일광이 한참 귀신을 쫓기 위해 굿을 벌이던 중, 종구가 결국 약해진 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 굿판을 중지 시키게 되었을 때 관객은 '아, 조금만 더하면 귀신을 죽일 수 있었는데 아쉽다..'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 후 외지인은 힘을 잃고 일광도 떠나고 종구의 딸은 병원에 맡겨진 뒤 영화는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그간 일방적으로 확신을 가졌던 종구의 시점을 뒤흔든다. 귀신이라고 믿었던 외지인이 만져지고 죽음에 이르는 것을 종구가 직접 목격하게 되는 것 (그 시체를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길 아래로 던져버리는 행동도)이나 이를 멀리서 마치 귀신처럼 지켜보는 무명 (천우희)의 모습은 무명 = 목격자, 외지인 = 귀신이 아니라 일광의 전화가 알려준 것처럼 무명 = 귀신, 외지인 = 무당 이라는 해석으로 단숨에 전환된다. 그러면서 영화는 마치 이것이 반전인 것처럼 급박하게 휘몰아 친다. 마치 귀신일지도 모를 무명을 종구가 다시 마주하게 되는 위기의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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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가족의 목숨이 귀신 혹은 악마에게 모두 빼앗겨 버릴 위기에 놓여있는 종구 앞에 이제는 가장 두려운 존재인 무명이 나타난다. 무명은 딸과 가족을 살리려거든 닭이 세 번 울 때까지만 참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직접 외지인의 시체를 목격한 경험과 일광의 전화로 무명의 존재에 대해 깊이 의심하게 된 종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 상황은 외지인이 악마임을 확신하고 죽이고자 찾아간 부제인 이삼 (김도윤)의 상황과 겹쳐진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귀신이 아닌 악마 적인 모습을 대놓고 드러내는 외지인과 이삼의 대화가 영화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외지인은 이삼에게 '너는 나의 존재를 의심해서 알아보고자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묻는다. 대답하지 못하는 이삼에게 외지인은 마치 영화의 시작 성서에서 인용된 예수의 말씀처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있느니라' '나를 만져보아라'라고 말하며 마치 십자가의 못 박힌 예수의 상흔과 같은 손바닥의 상흔을 보여준다. 


이 동굴에서의 대화는 겉으로는 반그리스도 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곡성'의 반그리스도적 상징과 묘사들은 '의심'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스며들어 있다. 언급 했던 것처럼 종교, 신 과 같은 절대적인 믿음의 상징들은 의심이라는 주제를 설명하기에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의심이 아니라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려고 온 것이 아니냐는 질문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참으로 별 것 아닌 말들과 오해들로 갖게 된 의심이 어떻게 확신이 되고 그 확신을 포기하는 것을 인간이 과연 해낼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비관적인 질문은 영화 '곡성'이 던지는 진짜 질문이다. 악마, 악, 공포 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심과 그 의심이 스스로 끌어들인 현혹이 어떤 지옥을 만들어 냈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인물이 귀신도 그 귀신을 쫓으려는 무당도 될 수 있고, 악마가 신(예수)의 모습과도 하나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통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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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영화가 지속적으로 말하고자 한 또 한 가지가 바로 무지다. 귀신을 봤다는 사냥꾼이 자신의 텅빈 냉장고를 보여주며 '이게 바로 증거다'라고 말할 때 종구와 관객 모두가 웃어 넘기지만 사실 이 장면 역시 영화의 메시지와 깊게 맞닿아 있다. 부활한 예수를 보고 직접 손과 발을 만져보고서야 믿게 된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라고 말한 예수의 말처럼, 이 장면 역시 의심의 관한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 


'곡성'에서 말하는 무지란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무명도, 귀신에 씌인 딸도 종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묻는다. '뭐가 중요한지 알기나 해'.

몇 번을 묻지만 이 질문은 오히려 너무 직접적이라 종구는 결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미 종구의 마음엔 확신 만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벌어지는 상황들로 인해 계속 불안해 하는 종구에게 무슨 확신 만이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보면 종구는 불분명한 것들로 인해 불안함을 겪어 왔다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확신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그 확신이 계속 옮겨 갔을 뿐이지. 편협된 혹은 어쩔 수 없이 편협된 정보들로 이룬 자신 만의 결론과 확신을 두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스스로 혼란에 빠져 버리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이 비극은 더 깊어져만 가고, 맨 마지막 종구가 남긴 '괜찮아, 아빠가 다 해결할께'라는 말은 이 비극을 쉽게 해피엔딩으로 위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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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은 이번에도 관객들을 아주 불편하게 하고 특히 영화 속 인물들을 아주 고약하게 괴롭히고 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영화가 주인공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을 대부분의 관객들은 불편해 하는데, '곡성'은 결과만 보면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딸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종구에 대한 연민과 위로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악마와 맞서 싸우는 퇴마사의 이야기거나 혹은 연쇄 살인사건을 파해치는 형사나 전문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별다른 걱정 없이 살아온 듯한 평범한 주인공이 어느 날 연쇄 살인과 귀신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맞닥 들이게 되고, 더 나아가 바로 자신의 딸이 휘말리게 되면서 겪게 되는 과정은, 영화의 주제인 의심과 무지의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어쩔 수 없이 당할 수 밖에는 없었던 한 인물의 비극 그 자체라는 점을 영화는 주지 시킨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 과연 자신의 딸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의심과 자가 비판 등을 통해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의 위로. 그리고 끊임 없이 '왜 우리 딸이'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딸에게 이런 일이'라고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래야 스스로 이해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묻지만, 마치 낚시 처럼 그저 네 딸이 걸려든 것 뿐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는 종구의 모습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가족을 잃거나 상처를 받아야 했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가 엿보인다. 다시 말해 영민한 전문가가 자신의 꾀에 빠져 스스로 자멸하는 패배가 아니라, 어쩌면 의심할 수 밖에는 없고 빠르게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종구의 비극을 말이다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밖에는 없었던 존재가 악마의 하수인이었던 일광이었다는 점도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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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곡성'을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로만 본다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을 듯 싶다. 개연성을 중시하는 시점으로 바라 본다면 몇 몇 장면은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측면이 있고, 어떤 측면으로 보아도 모든 퍼즐 조각이 다 맞아 떨어지는 명쾌한 해석은 어렵기 때문이다 (아, 환각 버섯으로 인한 사건으로 보면 100%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글의 마지막 이야기했던 것처럼 만약 '곡성'을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방식으로 본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거나 특히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원인과 이유에 대해 (반드시)정답을 알고자 하는데, 세상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거나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왜 나인지 알 수 없는 일 가운데는 가족을 잃게 되는 끔찍한 일들도 있으며, 피해자들은 결국 의심하고 또 확신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옥같은 현실에 놓이기도 한다는 것. 나홍진의 '곡성'은 의심과 현혹으로 탄생한 지옥을 그리지만,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도 담아낸 작품이었다.



1. 홍경표 촬영 감독이 담아낸 영상미가 인상적이었어요. 오컬트적 요소를 담은 영화 답게 곡성의 아름답고도 서슬퍼런 풍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한.


2. 영화에 대한 평을 보니 호불호가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는데, 뭐 둘 다 그럴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물론 그 중에는 아예 잘못 읽고 있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영화의 주제와 빗대어 얘기하자면 이미 재미있게 봤거나 재미없게 본 이들이 나중에 평을 나누다가 바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재밌다는 사람이 재미없다는 글을 보는 이유는 '재미없을 리가 없는데'라는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래서 이 논쟁에 뛰어 들고 싶다가도 절대 끝날 수가 없는 (답이 없는. 둘다 맞는) 논쟁임을 깨닫고 현혹되지 말아야지 하고 있지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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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2010)
개싸움으로 풀어낸 카오스의 세계


나홍진 감독의 2008년 작 '추격자'는 분명 잘 빠진 데뷔작이었다.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밀어붙인 힘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품인 동시에, 극적인 공감대를 통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깊은 색의 작품이었다. 그런 그가 '추격자'의 김윤석, 하정우와 함께 또 한번 호흡을 맞춘 신작 '황해'는, 동일한 배우와 몇몇 추격하는 장면 탓에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전작과는 구성자체가 전혀 다른 감독의 야심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홍진 감독의 '황해'는 의도하지 않았던 카오스를 통해 어떤 결론을 도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 그 자체에 관한 담론이라 해야할 것이다. (이제 고작 그의 작품을 두 작품 보았을 뿐이지만) 어쩌면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이야말로 카오스를 그려내기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황해'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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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속 문구처럼 면정학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김구남에게는 그간 겪고 있던 삶의 고통보다 더한 카오스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4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제목은 (택시운전사, 살인자, 조선족, 황해) 단순하게는 주인공 김구남 (하정우)의 현실 혹은 상황을 가리키고 있으며, 더나아가 이 막 구성은 카오스를 그리게 된 영화적 특성을 보완하려는 친절한 구성으로 받아들일 수도 겠다. 어쨋든 '황해'가 흥미로운 것은 초중반까지는 김구남을 주인공으로 그가 매달려있는 구심점에 동조하도록 의도하지만, 갑자기 이 구심점이 변하고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김구남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더이상 김구남 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전작인 '추격자'와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추격자' 같은 경우는 확실한 극적인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에 (하긴 '추격자'는 이 구심점을 아예 처음부터 노출하고 시작한 작품이라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관객이 끝까지 공감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반면, '황해'는 어느 정도 중심의 이야기로 흘러가나 싶더니 이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에 잠식되어 갈피를 잃게 되는 동시에, '어? 지금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라고 막 느끼게 될 때쯤 이미 카오스의 중심에 서있게 되는, 그러니까 카오스 자체가 구심점이 되어버리는 흥미로운 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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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이번에도 도망자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황해'의 김구남은 자신도 모르는 일에 휩쓸려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물론 여기서 갈피를 잃었다던가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는 것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얘기가 복잡해져서 흔들렸다가 아니라 의도적인 흔들기로 볼 수 있겠다. 제목 역시 '서해'가 아니라 '황해'라고 한 것은 무언가 뿌연 느낌과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모호함을 의도하기 위한 제목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처럼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일들에 우연 혹은 더 큰 권력과 시스템에 의해 이용되어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영화들은 많은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황해'의 구남은 그냥 휩쓸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도박을 한 셈이라는 점이다. 조선족으로 많은 빚을 지며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미래를 꿈꿀 수 없었던 구남은 여분의 돈만 생기면 마작을 통해 더 큰 돈을 벌려고 하지만 매번 여의치가 않다. 그런 그에게 브로커인 면정학 (김윤석)이 접근하게 되고 김구남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도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초반 마작을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준다. 이 도박이라는 점은 앞서처럼 무고한 인물이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와는 달리 공감대에 있어서 취약할 수 밖에는 없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관객이 김구남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그가 꾸는 꿈과 단편적인 이야기들 뿐이라 더더욱 그러한데, 이 점 역시 앞서 얘기한 카오스론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도적으로 관객들이 구남에게, 일반적으로 주인공에게 느끼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영화가 끝나고, 구남과 면정학 그리고 김태원 (조성하)의 이야기가 모두 마무리 되어도 그저 뿌연 안개같은 모호함만 남게 되는 결과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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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은 이러한 카오스를 더 극대화 시키기 위해 폭력성과 잔인성을 가미한다. 즉, 깔끔한 액션이 아닌 이른바 '개싸움'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대놓고 이런 '개싸움'의 이미지를 여기저기서 드러내고 있다). 인물들은 상대를 맞아 엄청난 칼부림과 도끼질을 휘두르는데, 여기에는 리얼리즘과 판타지적인 요소를 모두 느낄 수 있다. 개싸움이라고 했던 만큼 주인공들은 멋진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 뒹굴고 서로 상처를 입는 싸움이 계속된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개싸움 와중에도 구남이나 명정학은 항상 그 상황을 빠져나오거나 이겨낸다. 특히 이 정도 스케일을 모르고 휘말리게 된 구남의 생명력은 판타지에 가깝다. 전국의 수배령이 내려지고 뉴스 속보로 자신의 얼굴이 연일 나오는 과정 속에서 몇번이나 직접적으로 맞닥들였음에도 동에 번쩌 서에 번쩍하며 도망다니는 구남의 모습을 보면, 이걸 단순히 공권력에 대한 조롱으로 보기에도 너무 과한 건너 뛰기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면정학의 경우는 구남과는 다르게 애초 캐릭터 설정에서 부터 일반인과는 다른 아우라를 갖은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후반부 면정학의 모습을 보면 마치 신적인 존재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리얼리즘을 뛰어넘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처음부터 판타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리얼리즘에 근거하여 이런 존재의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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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조금 아쉬운 부분은, 이왕 카오스 그 자체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라면 구남과 아내의 관한 부분을 좀 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주인공에게 공감대를 완전히 실어 관객이 '구남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이 미칠듯한 개싸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길 의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여기에 관객이 계속 구남에게 여지를 남기도록 하는 부분이 바로 아내에 관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참으로 애매했다. 그러니까 의도한 모호함이 아니라 그냥 애매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결국 죽었는가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엔딩은 그런 의미에서 모호함을 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구남이 영화 내내 오해하고 의심했던 부분에 대한 따듯한 위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구남이 카오스에 빠져들게 된 동기로 그치지 않고 영화 내내 구남을 지배하는 구석으로 남아, 영화에 극적인 온기를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는 이보다는 오히려 이 감정적일 수 있는 부분을 과감히 정리하고, (어차피 카오스에 집중하려고 했던 만큼) 구남에게도 잔인하리만큼 황폐함을 남겨주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부분이 상업영화로서 마지막으로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구남에게 주는 위로가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이왕 가기로 마음 먹은거 더 밀어 붙였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 황폐함과 카오스의 끝으로 말이다 (쓰고보니 너무 잔인한 바램인 것 같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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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황해'는 다시 한번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해도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을 꺽으면서까지 대중과의 타협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즉, '나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관객에게는 내가 생각해도 불편한 작품일 것 같다'라고 생각될 때 타협을 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추격자'에 이어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이 투영된 '황해'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 확고히 한 것은 그의 팬에게도 팬이 아닌 이들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팬이던 팬이 아니던 앞으로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 나왔을 때 더 확실한 선택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1.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갔다던 카체이스 장면은 나쁘지 않았으나, 너무 카오스를 강조하려는 나머지 필요이상으로 카메라를 흔들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조금만 덜 흔들었어도 좀 더 멋진 카체이스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 바램은 이렇지만, 감독은 분명 더, 더를 외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ㅎ

2. '추격자'의 마지막 슈퍼 장면에서 많은 이들이 허술함을 지적했던 점을 미뤄봤을 때, '황해'에는 이를 뛰어넘는 비약과 건너 뜀이 훨씬 많은 편이에요. 특히 구남이 도망치는 부분에 있어서 그렇죠. 여기서 너무 많이 '풋..'하게 되면 이 후의 개싸움도 빠져들기 어려울 것 같아요

3. 하정우, 김윤석의 경우 스크린에 보여지는 표정만 봐도, 얼마나 '찌들어 있는지' 그 질감이 느껴지더군요. 두 배우 모두 쉽게 '황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듯 싶네요.

4. 초반 김구남이 살인을 계획하는 시퀀스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멋진 장면이었네요. 이런 카오스가 주제인 작품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장면이라는 점만 빼면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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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시상식 이라는 것이 어차피 주최하는 신문사나 주요 스폰서에 구미에 맞게 진행되는 터라 크게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지만, 도대체 내가 보았던 영화들 가지고 상을 주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상했던 '청룡 영화제'가 워낙에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대한민국 영화대상'을 보는 마음은 한결 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카데미도 그렇고, 사실상 모든 시상식이 주최측에 입맛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국내 시상식의 경우 그 주최측에 판단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 항상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영화들이나 소외된 영화들에 특히 관심이 많기 때문에 어차피 주목 받는 영화들만의 잔치인
국내 영화 시상식이 취향에 맞지는 않지만, 최소한 대중적인 면이라던가 여러 사람이 공감할 만한 수상이라면
크게 불편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의지도 없는데, 그러면에서 제 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은 대부분 수긍할 만한
수상이었던 것 같다. <추격자>의 스윕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바. 그럼에도 불안했던 것은 <추격자>라는 영화가
이른바 나이 많은 심사위원들에 구미에는 그리 땡기는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혹시나...하는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는데(뭐 이미 이런 불안감이 현실로 들어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우주연상, 신인감독상, 각본/각색, 편집, 조명 등 대부분의 주요상을 <추격자>가
휩쓸고 말았다. 김윤석의 수상 멘트는 이미 여러번 들었던 것이긴 했지만, 말미에 아내나 가족 등이 아닌
파트너였던 '하정우'를 언급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여우조연상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우.생.순>의 김지영 수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이 영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실망했던 것이 작용했다고 봐도 되겠다. <놈놈놈>의 경우 MBC와는 사이가 별로인지 주요상의 노미네이트도
되지 않았으며, 방준석은 <고고 70>으로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여러가지 수상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여우주연상 부분이었다.
사실 올해 여우주연상은 모조리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이 수상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한해였는데,
역시나 이 영화나, 그녀의 연기나,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취향이 아닌터라 철저히 외면 당했었고,
이 날도 예쁘게 차려입은 손예진을 보면서 '설마.....'하는 걱정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뭐랄까, 배우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심하게 공감해 눈물 마저 글썽거렸던 적은 아카데미에서 포레스트 휘태커가
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공효진의 경우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여자 신인상을 받은 서우와 감독인 이경미는 정말로 펑펑 울었는데, <미쓰 홍당무>를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 중
한편으로 꼽는 나로서도, 왠지 모르게 공효진의 수상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무언가 금단의 벽을 넘는 듯한
승리가 엿보여서였달까.

어쨋든 '단상'이라고 했으니 여기서 마쳐야 겠다.



1. 윤정희씨는 등장할 때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2. 우리나라는 정말 제대로 된 시상식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상을 타는 사람만 참석을 하고, 못타는게 확정되면
    식이 끝나기도 전에 집에 가버리는 일들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3. 신성일씨의 파마는 조금 쇼킹했다.
4. 박철민씨의 시상 소감은 나름 신선했다!
5. 이제 '비'와 여배우들을 오가는 카메라 워크는 식상하다.


미쓰홍당무 여우주연상/신인여우상 수상 기념 리뷰 다시보기!




추격자 (2008)
치열하게 몰아치는 서스펜스와 먹먹함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입소문으로 보게 된 영화였다.
이번 달 관심가는 영화 중에 처음에는 없던 영화였으며, 김윤석 씨의 연기는 다들 얘기하는 <타짜>의 '아귀'가
아니더라도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도 그랬고, 인상적으로 느꼈던 터였지만, 이 영화를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사회로 먼저 영화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나 같이
극찬, 그것도 대 극찬이었다. 다들 <살인의 추억> <세븐>등과 비교해가며 오랜만에 한국영화에서 만난
수작이라는, 그것도 데뷔작이 그렇다는 평들이 자자했었다.
간단히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의 감상평도 그러하다.
정말로 2시간의 러닝타임내내 어찌나 가슴을 졸이고 몰입을 하였는지,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먹먹해서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으며, 영화적으로도 중간중간, 장면장면에서 속으로 '와!' 하는 장면이
많았던 뛰어난 작품이었다!



제목인 '추격자'처럼 이 영화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한 전직 경찰의 이야기다. 이 전직 경찰은 현재는 성매매를
알선하는 포주로 생활하고 있으며, 자신이 연결한 여성들이 하나 둘 없어지는것을 의심하여, 점점 그에게
접근해 가던 도중, 그가 단순히 여성을 팔아넘기거나 하는 자가 아니라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이 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설정은 여기에 있다. 연쇄 살인범을 경찰이 쫓는 것이 아니라
(전직 경찰이긴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의심을 갖게 되고, 사실상 추격의 중간 이후까지도
(어쩌면 마지막까지도)개인적인 이유로 그를 쫓게 된다는 설정. 여기에는 감독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감독은 인터뷰에서 TV에서 본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듣고 무능한 경찰에 대해 분노의 감정으로 이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밝힌바있다)경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단순히 악한 놈을 쫓는 정의의 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배경에 사회의 부조리를 적당히 비꼰 설정은,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매우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서울 시장의 경호를 제대로 하지못한 실수를 덮기 위해서(거의 이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잡아들이는 뉴스로 덮으려는 경찰들의 모습과,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서 신고를 하였으나
근무태만으로 졸고 있느라(영화 속의 묘사는 사실 '존다'기 보다는 거의 '자는' 수준이었다), 또 한 사람의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장면 등을 보면 감독의 의도가 분명함을 알 수 있다(나중에 미행의 어설픔도 어느 정도
의도인듯 하다). 특히 슈퍼에서의 살인장면은 사실상 사건을 명확하게 종료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마련되었음에도 결국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이런 '무능함'에 대해 직설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영화가 다른 연쇄살인범의 영화와 조금 더 달랐던 점은 영화 초중반에 이미 범인이 잡힌 다는 점인데
(아마 보통의 다른 영화 같았다면 지영민을 범인을 쭉 몰아갔다가 후반부쯤 다른이가 범인이었다는 설정이
나왔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리듬이 전혀 줄기는 커녕, 오히려 속도를 내었다는 점이다.
경찰은 경찰대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지영민을 계속 압박하지만 여러가지 법과 제도의 틀에 맞추려다보니,
미치도록 잡아넣고 싶은 지영민을 잡아넣지 못하고(미치도록 잡아넣고 싶은 이유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살인의 추억>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영화 속 경찰은 그가 살인을 했던 안했던 그를 잡아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이런 설정은 영화 속 그 안경쓰신 경찰분이 지영민을 타이르듯 달래는 대화 장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엄중호는 엄중호대로 끝까지 미진이를 찾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추격을 계속한다.
이렇게 범인을 일찍 공개하고 잡혀있는 범인과 이를 완전히 끝내기 위해 밖에서 추격을 계속해가는 두 가지의
행보로 나뉘어 이야기를 전개한 것은 결과적으로 괜찮은 설정이었던 것 같다.



이후 지영민이 풀려나고 나서의 이야기 전개도 박진감 넘쳤다. 슈퍼에서 아줌마와 대화를 나눌 때는
극장 내의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안돼'하고 짧은 외침을 절로 내뱉을 정도로 극의 긴장감이 극에 달한
장면이었는데, 이 슈퍼아줌마와 지영민이 대화하는 장면의 긴장감은 단편적으로만 봐도 그 미묘한 줄타기와도
같은 긴장감을 잘 살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연쇄살인범의 정체성에 대해서, 십자가 상을 직접
만들었다던가, 그래서 벽지 속에 이 그림이 가득 담겨있는 장면이라던가 하는 설정은, 흡사 희대의 연쇄살인범에 관한 외국 스릴러 영화에서나 볼법한 분위기를 연출해준 것도 좋았다.
이러한 분위기를 더하는 것은 누가뭐래도 이 두 캐릭터이다. 무슨 의도가 있어서 그랬다기 보다는
아무런 의도없이(물론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정도 의도가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지영민의 캐릭터는 이 나른함과 지루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죽였다고 말하는 것이나,
죽일 사람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안 아플거야' '이건 좀 아플거야' 등 말 그대로 그냥 살인을 저지르는
캐릭터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하정우의 연기도 크게 한 몫을 했다.
그가 나온 영화는 <용서받지 못한 자>만을 보았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정말로 앞으로
영화계에서는 적극 환영을 받을 지 몰라도, 식당에서는 덤은 커녕 쫓겨날 수도 있을 만큼, 진정한 악역의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하고 있다(그가 얼마나 연기를 잘 했는지는, 마지막에 엄중호가 망치로 내리치려고 할 때
많은 관객들이 속으로 '그래 쳐라'하고 생각하게 만든 것으로 대신할 수 있겠다).



그리고 엄중호 역할을 맡은 김윤석.
무언가 어두운 그늘이 있는 듯 한 인상의 김윤석은 이번 캐릭터에 그야말로 적격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굉장히 아날로그 적이고 거칠고 몸으로 뛰는 추격자의 모습은 그가 연기해서 더 실감이 나지 않았나 싶다.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 것 처럼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와 이미지가 겹쳐지지 않을 수 없는데,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가 조금 유머를 가미한 캐릭터였다면, 엄중호의 캐릭터는 좀 더 거칠고 날 것에
느낌이 나는 치열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치열하고 극박한 리듬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는 매끄러운 캐릭터보다는 이처럼 거칠고 뒹구는 캐릭터가 휠씬 어울렸지 않았나 싶다.
김미진 역할을 맡은 서영희의 연기도 그야말로 몸으로 보여주는, 그리고 비쥬얼로 말하는(여기서 말하는
비쥬얼은 피범벅의 비쥬얼;;)연기로서 굉장히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음악. 이런 극박한 리듬을 제대로 살려준 또 하나의 효과는 바로 음악이었는데,
뭔가 터질듯 터질듯 줄타기를 하는 긴장감을 고조시켰다가, 터뜨렸다가, 끌고 갔다가 하는 것은 바로
음악의 효과가 컸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국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을 보다가 메인 테마가 나왔을 때
한 번에 반가움을 느꼈을 정도로, 영화 속의 음악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감상기를 미친듯이 쓰다보니 빠트려버렸는데, 이 모든 것을 만든, 각본과 감독을 맡은 나홍진 감독을
빼놓을 수가 없겠다. 데뷔 작품이 이리도 인상적이라니, 정말 앞으로의 작품 활동이 너무나도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다. 데뷔 작품 답지 않은 치밀한 연출력과 더불어 각본가로서의 능력도 충분히 인정받으면서
앞으로 한국영화계의 기대주로 주목을 받게 될 듯 하다.

이 영화는 결론이 해피한 경우는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기분 좋은 영화, 또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다. 아주 불편한 영화라고 해야할 것이다.
극장을 나갈 땐 다들 힘겨운 몸을 일으키며 누구라도 뭐라고 한 마디씩 하게 되는, 심한 몰입도를 갖고 있는
영화였다.
사실 다들 좋다, 최고다 해도, 오히려 그래서 더 걱정이 많이 되었었는데,
그 이상이다. 오랜만에 그것도 한국영화에서 이렇듯 극적인 서스펜스와 영화가 끝나고 심한 먹먹함을
느꼈던 영화는 <추격자>뿐이었던 것 같다(개인적으론 <조디악> 이후 최고의 긴장감이었다)

또 한 번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정리되면
또 한 번 보고 싶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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