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그러하도록 만드는 치유의 영화


얼마 전이였다.
TV 영화관련 프로그램에서 5월 장애우 주간을 맞이하여 관련 영화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레인맨>, 조승우 주연의 <말아톤>등이 소개된 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소개되었다. 프로그램이 다 마치고 난 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왜, 조제...가 장애우 관련 영화에 소개 되었지?’ 개봉 시에 극장에서 보고, 일반판 DVD출시 시에 감상하였으며, 스페셜 에디션이 재 출시된 뒤에도 다시 감상하였었지만, 단 한 번도 <조제...>가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장애를 반드시 극복해야 할 도전 과제가 아니라 유모차를 타는 것이나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이 그저 습관 정도로 느껴질 정도로, 즉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작품 속에 녹여버린 이누도 잇신 감독의 연출력을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되는 소소한 체험이었다. 일본 영화의 새로운 작가 주의 감독으로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최신작 <메종 드 히미코> 역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제 더 이상 <조제...>만을 만든 감독으로 기억되지 않도록 하는 작품이다.





<메종 드 히미코>는 게이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순 없지만 주된 배경과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이 게이 노인들이 모여 사는 양로원인 만큼, 이 영화를 얘기할 때 게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직접적인 명령조에 어조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 선입관과 잘못된 시각으로부터 치유되도록 자연스럽게 이끄는 이야기의 마술사이다. <조제...>의 경우보다는 조금 더 관련 에피소드를 자주 노출 시키는 편이지만, 역시 게이에 관한 잘못된 시각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 삼기보다는, 극 중 사오리가 처음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와서 겁을 먹고 불편함을 느끼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이해하고 댄스홀에서 이들을 조롱하는 그의 옛 동료 남자에게 끝까지 사과를 요구할 정도로 변해가는 과정과 같이, 관객들도 처음에는 이상한 옷차림과 짙은 화장을 한 노인들의 모습에 웃음과 괴리감을 느끼게 되지만, 러닝 타임이 흐를수록 이런 것들에 대해 별다른 특별함을 느끼게 되지 못하게 된다. 극중 사오리가 자연스럽게 이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에서 이 ‘자연스러움’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보통의 영화 같았으면 어떠한 계기나 사건을 통해 주인공의 생각이 변화하게 되는 터닝 포인트가 있지만, <메종 드 히미코>에는 특별한 사건이랄 것이 사실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동기부족으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이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동성애’라는 소제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면, <메종 드 히미코>는 일반인들에게 게이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없어지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바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기 보단, 오히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 게이가 된 아버지 히미코를 미워하던 사오리가 ‘메종 드 히미코’에서의 시간들을 통해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랄까. 특히 극중에는 등장하지 않는 히미코와 어머니와의 일들을 통해 사오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과 어린 딸을 버린 남편을 죽을 때까지 미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메종 드 히미코’에서 보낸 시간들에 행복해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히미코’가 아닌 ‘아버지’로 점점 생각하게 된다.





나중에 서플먼트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습고 극 전개상 꼭 필요하지 않은 장면 같아 빼려고 했었다는 댄스홀의 단체 댄스 씬은, 제작자들이 이제와 밝히는 것처럼 본편에 포함한 것이 백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바보스런 장면이 있어야 슬픈 장면들이 더욱 슬퍼지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시종일관 특유의 ‘뾰루퉁’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사오리가 환하게 웃는 장면도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배경에 흐르는 댄스 곡의 가사가 곱씹으면 씹을수록 영화의 분위기와 딱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 날까지, 헤어질 수 없는 그 이유를. 얘기하고 싶진 않아
왠지 쓸쓸해질 뿐, 왠지 허전해질 뿐, 서로가 상처를 주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버리면, 그제 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주겠지.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 날까지,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아. 그것은 듣고 싶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과거로 되돌아가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버리면 그제 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주겠지. (댄스 홀에서 흐르던 곡의 가사)





이 영화를 알기 전 개인적으로 두 주연배우인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대표작들은 각각 다른 영화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배우를 이야기 할 때 현재로서는 <메종 드 히미코>를 대표작으로 꼽게 되었다. <조제...>에서 조제가 신비스럽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캐릭터라면 <메종 드 히미코>에서는 오다기리 죠가 연기한 ‘하루히코’가 그러하다. 배 바지도 아닌 것이 쫄 바지 같지도 않은(어쩌면 배 바지이면서 쫄 바지 인지도 모르지만)바지를 입고, 레이스가 있는 셔츠를 바지 속에 넣어 입었음에도(거기에다 매번 헝크러져 있음에도 멋지기 만한 헤어스타일은 또 어떤가) 한 번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 기는 커녕, 멋지기만 했던 ‘하루히코’는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그러하지만, 감독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낸 캐릭터이다. 오다기리 죠가 만들어낸 ‘하루히코’는 영화를 외적인 아름다운 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으로 느껴지게 하는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사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는 바로 시바사키 코우가 연기한 ‘사오리’이다. 시종일관 또렷 하다기 보다는 흐릿하고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오리는 <조제...>의 츠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들이 영화에 쉽게 동화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시바사키 코우는 <고 (Go)>에서도 인상에 남는 연기를 보여줬었는데, 이번 사오리 역할이야 말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고 생각된다. 두 멋진 주인공외에 히미코 역할의 다나카 민은 무용가로서 모 시상식 장에서 너무도 멋진 모습에(무대 위 모습이 아닌 보통의 모습) 너무나도 반한 감독에 의해 적극 캐스팅되었는데, 히미코라는 표현해내기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력이기 보다는 모습 자체로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밖에 양로원에 살고 있는 게이 노인들 역할의 배우들은, 리얼리티를 위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쓰도록 감독이 특별히 당부했을 만큼, 배우 출신도 있고 일반인도 있으며, 연극 연출과 각본을 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인물들이 캐스팅 되었다. 양로원의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개별 조명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이 쉽게 인물에 동요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같은 리얼리티를 중시한 캐스팅에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출시된 <메종 드 히미코 SE> DVD타이틀은 같은 제작사에서 출시되었던 감독의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SE>와 같은 컨셉의 패키지로 제작되었다. 디지팩의 소장가치 높은 케이스와 2장의 디스크, 그리고 엽서 5종 세트와 <조제...>때도 큰 인기를 끌었던 하드보드지형 필름 컷이 포함되었다. 16:9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를 외곡 없이 전달한다. 특별히 우수한 화질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최신작에 걸맞는, 영화에 분위기와 걸 맞는 최상의 화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는데,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의 분위기상 크게 강력한 사운드나 채널 분리도가 필요 없는 만큼 2채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음질을 들려준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감독과 촬영, 프로듀서의 음성해설, 그리고 예고편들과 <조제...>의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감독과 프로듀서의 음성해설이 수록된 것은 물론 반가운 일이나,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 등 주연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두 번째 디스크에는 오랜만에 만나보는 짜임새 있고 다양한 서플먼트들이 우리를 다시금 기쁘게 해준다. 가장 주된 서플먼트는 아마도 메이킹 오브 ‘메종 드 히미코’일 텐데,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촬영이 모두 끝나고 시사회까지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다. 프로듀서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 그리고 캐스팅에 관련된 에피소드들, 로케이션에 관한 이야기 등을 상세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모 시상식에서 반해버린 다나카 민을 ‘히미코’ 역에 캐스팅하기 위해 감독과 프로듀서가 정말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는 다나카 민을 찾아가게 된 에피소드와 주된 활동 배경이 되는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어울릴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러브 호텔 등을 전전한 이야기, 그리고 본래에는 바닷가에 위치한 건물로 그려지지 않았으나 너무도 멋진 건물 탓에, 처음 대본과는 다르게 바닷가에 위치하는 것으로 수정하게 된 에피소드 등이 등장한다.





서플먼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음악을 맡은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 작업이 영화 전반에 끼친 영향에 관한 일들인데, 감독과 프로듀서들도 애초 의도하지 않았고 몰랐던 장면과 내용들이 호소노의 음악 작업을 통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 특히 이 영화를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나 게이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느꼈다는 호소노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낸 음악들과, 사진으로만 등장하는 사오리의 어머니에 대한 테마를 만드는 등 어머니 캐릭터에 대해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는 호소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또한 음악이 덧 입혀지기 전에는 한 번도 이 대본이 헤피 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호소노가 작업한 엔딩을 들으며, 자신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헤피 엔딩을 찾아낸 점 등이 놀랍다는 프로듀서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이렇듯 프로듀서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자신들 보다 더 위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음악감독 호소노 하루오미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도 영화를 보면서 미처 몰랐던 음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 밖에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미공개 장면이 10장면 수록되어 있으며, 스텝들이 꾸며낸 단편 ‘변호사 아사카 레이코의 사건수첩’ 가족 협주곡도 빼놓을 수 없는 서플먼트이다. <메종 드 히미코 SE> 서플먼트에 장점이라면 감독과 프로듀서, 배우들의 인터뷰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것인데, 단순한 인터뷰가 아닌 영화와 캐릭터에 관한 깊은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인터뷰들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두 주연 배우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인터뷰는 별도로 수록되었으며, 이 밖에 일본 내에서 무대 인사 영상과 도쿄 FM 공개방송 영상, 토크쇼에 출연한 영상들을 통해 중복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독과 오다기리 죠가 내한했을 때의 영상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단순 소개 영상이 아니라 내한 시에 가졌던 관객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메종 드 히미코>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가슴을 파고 들어와 이내 떠나지 않는 사랑스런 작품들이다. 슬픈 장면임에도 왠지 모를 행복함이 전해지거나 환하게 웃는 장면에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게 되는 것은, 이제 이누도 잇신 감독의 트레이트 마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것, 소외되고 가려져 있는 아름다움, 우리가 잘 모르고 지냈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자연스레 일 깨워주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누도 잇신 감독. 이젠 그의 대표작을 이야기할 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가운데, 어느 것도 한 작품만을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2006.05.22
글 / ashitaka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만든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알게 되었고 보게 된 영화.
 
다 보고 난뒤, 그 동안 얼굴과 이름이 매치가 되지 않았던
오다기리 죠를 확인한 영화.
 
게이를 소재로 한 이야기인줄은 전혀 모르고 보았지만
그것이 감상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는 않았다.
<조제..>때와 마찬가지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일 뿐이며
게이라는 소재는 그야말로 '소재'일 뿐이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연출력은 독특한 소재를 자신이 말하려는 이야기에
말그대로 소재 뿐으로 녹아내는데에 있다.
영화 초반부에 여장을 한 노인들에 모습에 대부분의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렸지만, 영화가 계속될 수록 그들의 모습 자체에
웃음짓는 사람은 없었으며, 게이를 게이로 보지않고
그저 인물로만 보게 만드는 그 연출력말이다.
 
이누도 잇신 감독과 각본을 쓴 와타나베 아야의
공동작업은 이번 작품에서도 도 한번 빛난다.
 
 
여운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이미지를 남기는 감독의 능력도
<조제...>에 이어서 여전하다.
 
'메종 드 히미코'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랑에 관한 담론.
 
여운을 글로 정리하기는 역시 어렵다...
 
 
글 / ashitak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