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ur ros - Valtari Film Experiment (blu-ray review)

짧은 필름으로 담아낸 시규어 로스


처음 이 타이틀이 정식 수입 발매된다고 했을 때 오랜 음악 팬이자 수집가로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라이브나 뮤직비디오 컬렉션 블루레이의 소개도 흔치 않은 시기에, 다른 뮤지션도 아닌 시규어 로스 (Sigur Rós)의 블루레이가, 그것도 라이브 타이틀도 아닌 단편 필름 형식의 영상이 국내에 소개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반가움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초기부터 비욕 (Björk)에 흠뻑 빠져 그녀의 다양한 뮤직비디오 DVD 타이틀들을 수집하기 위해 쉽지 않은 해외 주문에 많은 시행착오도 겪는 등 어렵게 좋아하는 뮤지션의 영상물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경험이 있기에, 이번 시규어 로스의 블루레이 정식 수입이 더 남다르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비욕의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단순히 개인적 경험 때문 만은 아니다. 시규어 로스와 비욕은 같은 아이슬랜드 출신의 뮤지션이자 음악적으로도 유사한 점이 많고, 더 나아가 뮤직비디오 측면에서도 일찍이 뮤비를 예술의 단계로 승화시킨 유니크하고 희소성 높은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매번 신비스러운 음악만큼이나 감각적인 뮤직비디오와 아트웍을 선보였던 시규어 로스답게, 2012년 발매한 앨범 'Valtari'의 음악들을 또 다른 새로운 비쥬얼 프로젝트인 'Valtari Film Experiment'로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각기 다른 스타일의 인디 영상 감독, 사진작가, 행위예술가, 설치 예술가, 비쥬얼 아티스트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동일한 제작비를 가지고 자신 만의 색깔을 시규어 로스의 음악에 녹여냈는데, 각 아티스트들과 출연자들 가운데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도 있어 먼저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Valtari Film Experiment'는 그 이름 값에만 기대고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다.






아무래도 이 타이틀을 처음 받아보고 나면 대부분은 '헤드윅'의 감독이자 배우로 유명한 존 카메론 미첼의 이름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의 이름들은 잘 모르겠는데.. 하고 시작해도 이 타이틀은 충분하다. 적어도 그렇게 하나씩 보기 시작한 단편들은 시규어 로스의 몽환적인 음악과 더불어 완전히 보고 듣는 이를 빠져들게 만든다.


이 짧은 필름들이 인상적인 데에는 시규어 로스의 음악과 이를 영상으로 표현해 낸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궁합을 들 수 있겠다.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 이전에 관련한 영상이나 이미지를 보지 않았더라도 - 머리 속으로 이미지나 영상을 떠올려 보게 되는 힘을 갖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내제된 힘을 더 표면적으로 끌어낸 것이 바로 이 단편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만큼 'Valtari Film Experiment'에 수록된 시규어 로스의 음악과 아티스트들의 영상은, 음악이 먼저였는지 영상이 먼저였는지 분간하기 힘들 만큼 완벽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엘르 페닝, 샤이아 라보프, 존 호크스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디까지나 그들 주연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출연하는 시규어 로스의 단편 필름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번에 16편의 단편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바이지만,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정말 심연을 경험하게 하는 훌륭한 매개체인 듯 하다.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이미 접해본 이들은 아마 그들의 앨범을 통해 이런 심연을 경험해 보았을 텐데, 이를 극대화 시켜주는 영상이 곁들여진 이 프로젝트를 접하게 되면 아마 더 깊은 심연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 Audio

사실 이 타이틀의 출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아무리 블루레이라 하더라도 화질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는데, 기존 DVD로 출시되었던 유사한 성격의 타이틀들만 해도 화질이나 음질 측면에서는 아쉬운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블루레이로 출시된 'Valtari Film Experiment'는 작품 마다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저절로 '아, 이런 영상미를 제대로 즐기려면 HD 고화질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출을 맡은 각 아티스트의 특성에 맞게 영상의 성격도 정해져 있는데, 디테일과 클로즈 업에 상당한 중점을 둔 작품의 경우 화질 측면에서도 블루레이의 장점을 100% 활용하고 있으며, 엘르 페닝과 존 호크스가 출연한 단편 필름 역시 뿌연 듯 하지만 블루레이의 고화질이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질감을 표현해 낸다.






LPCM 스테레오 사운드 역시 멀티 채널의 필요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공간감을 들려준다. 이 단편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전달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단편 영상이기는 하지만 스테레오 채널의 사운드가 더 적절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시규어 로스의 음악 자체가 워낙 기존에 설계되어 있는 공간 자체를 무시하고 음악 속의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내는 성격을 갖고 있기에 멀티 채널로 표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조금 남는다.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으로는 짧은 메이킹 영상 세 가지가 수록되었으며 자막은 지원되지 않는다.


[총평] 시규어 로스의 음악과 다양한 분야의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이 각각 만들어 낸 단편 필름을 담은 'Valtari Film Experiment'는 단순한 뮤직비디오가 아닌 보는 이로 하여금 예술적 감각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시규어 로스의 팬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지 않고 호기심에 접해 본 이들도 그냥 잠시 시간 내어 한 편 정도만 보려고 했다가, 어느 새 5~6편을 훌쩍 넘겨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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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아이 러브 유 (New York, I Love You, 2008)
아기자기한 영화적 순간들


2006년작 <사랑해, 파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할 또 하나의 시티 옴니버스 프로젝트 영화 한편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파리를 배경으로 수많은 감독들과 배우들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로 만나볼 수 있었던 <사랑해, 파리>에 이은 프로젝트 영화로서 이번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참고로 영화 엔딩 크래딧 말미에 소개하듯이 이 프로젝트의 다음 행선지는 '상하이', 즉 다음 작품의 제목은 <사랑해, 상하이>이다). <사랑해, 파리>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 작품은 파리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다른 인물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뉴욕, 아이 러브 유> 역시 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기존 옴니버스 형식과는 조금 다른 '느슨한 옴니버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것이 무슨 말인고하니 기존 옴니버스 영화의 경우 각개의 작품의 맺고 끊음의 확실해 에피소드의 크기를 정확히 분간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암전등을 통한 완전한 맺고 끊음 없이 전체적인 큰 틀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되도록 애쓰고 있다. 물론 이렇다고는 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등장인물들과 이야기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몇몇의 컨 전환(뉴욕의 풍경을 비추는)과 흐르는 배경음악 만으로도 구별이 가능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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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 쿠퍼의 새로운 별명은 '택시남'??)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보여지길 원했던 제작자 에마뉘엘 벤비히의 의도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작품처럼 결국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 '우연'이라는 것을 가장해서 모두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하나의 작품이라는 느낌은 덜했고, 오히려 옴니버스라는 구성 특유의 맛은 조금 덜해진 감이 없지 않았다. 이 작품은 이냐리투의 그것처럼 각기 다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간의 조우를 시도하고 있는데, 크게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거나 시너지 효과를 내진 못한 듯 하다(오히려 몇몇 관객들에게는 혼란을 심어 주기도 한듯;;). 만약 이 작품을 보러오면서 일반적인 기승전결을 기대했다면 아마도 '이게 뭐야'할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아무리 한 작품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해도 엄연히 옴니버스 영화이고, 각개의 이야기가 스스로 서면서 큰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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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좋아하는 배우들이 화면을 가득채우며 각자의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나누어 쓰며 자신 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는 점,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 작품을 보러 올 때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예전 <사랑해, 파리>의 경우도 그랬지만 일단은 에피소드 마다 등장하는 익숙한 얼굴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레이첼 빌슨은 <점퍼>에 이어 또 한번 함께 연기하게 된 점이 흥미로웠고, 아무리 다른 영화들을 보아도(심지어 그 가운데에는 <미드 나잇 미드 트레인>이 있었음에도) 아직까지는 미드 <앨리어스>의 그 남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래들리 쿠퍼를 비롯해, 전작에 이은 출연과 동시에 이번에는 연출까지 맡은 나탈리 포트먼과 지저분해 질 수록 조니 뎁을 닮아가는 올랜드 블룸, 그리고 오랜만에 한 장면만으로 자신의 매력을 완전 발산한 크리스티나 리치도 빼놓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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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 호크가 이런 역할 맡은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데, 주름은 여전하지만 오랜만에 활발한 캐릭터로 등장한 그의 모습이 오랜 팬으로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얼굴에 주름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에단 호크와 자신이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를 보여준 로빈 라이트 펜, 역시 캐릭터와 멋진 조화를 이룬 매기 큐도 반가웠다. 제임스 칸과 앤디 가르시아, 존 허트, 엘리 웰라치, 크리스 쿠퍼, 버트 영 등 노련한 연기자들의 깊은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거리이며, <스타트랙>에서 반짝 했던 안톤 옐친의 경우 그 만의 귀여움을 드디어 제대로 보여준 듯 하다. 그리고 점점 나이들 수록 공리를 닮아가는 듯한 서기의 모습도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고, 점점 <트랜스포머>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샤이아 라보프와 줄리 크리스티의 연기 호흡도 정말 멋졌다. 줄리 크리스티의 경우 몇해 전 개봉했던 <어웨이 프롬 허>에 이어 그래도 익숙한 편이었는데, 역시나 줄리 크리스티는 줄리 크리스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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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크리스티와 샤이아 라보프가 연기한 에피소드는 따로 장편으로 만들어져도 기대할 만 하겠다. 무엇보다 줄리 크리스티를 만난 반가움, 그리고 샤이아를 재발견한 놀라움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세자르 카푸르 감독이 연출하고 줄리 크리스티와 샤이아 라보프가 출연한 순간이었다. 일단 샤이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예전 <이글 아이>를 리뷰하면서 점점 그에게서 <트랜스포머>를 벗어난 성인 연기자의 연기가 엿보인다 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좀 더 이런 생각을 굳건히 하게 될 정도로 깊은 내면연기를 선보였다. 샤이아의 조용한 눈빛을 크로즈업 했을 때 이런 감흥을 느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고, 캐릭터를 위한 독특한 억양들의 메쏘드 연기는 재쳐두더라도 이런 깊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상대역은 줄리 크리스티가 아니었는가!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뉴욕, 아이 러브 유>라는 작품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는 듯 보이기도 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 말할 순 없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훨씬 무거운 이야기와 절제된 표현들, 그리고 이야기를 보태려 삽입된 수많은 영화적 장치들로 인해 특별히 인상이 깊은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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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랑해, 파리>가 그랬듯이 전체적으로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파리와 뉴욕의 분위기가 같을 수 없기에 이야기의 느낌은 사뭇 다르지만, 이끌어가는 방식은 같다. 어떤 이야기는 뉴욕의 지명과 장소들을 직접적으로 이야기에 등장시키며 멋진 홍보영화에 가까운 구성을 갖고 있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뉴욕을 사는 사람들의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통해 '뉴욕은 이런 곳이에요'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 말하는 화자로는 귀여운 어린 소녀부터 종교적으로 다른 남녀와 이곳에서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 그리고 죽음과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등 여러 입장을 통해 다양하게 펼쳐진다.

이야기 자체는 <사랑해, 파리>에 비해 신선한 맛이 떨어지고 감독 개개인의 장기들이 덜 부각되기는 했지만, 이런 측면보다는 익숙한 배우들 혹은 오랜만에 만나는 배우들의 아기자기한 순간의 연기, 그리고 대화의 스킬이랄까? 주고 받는 짧은 호흡에서 오는 영화적 쾌감에 포인트를 둔다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순간의 모음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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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시 이 작품은 엔딩 크래딧을 평소보다 더욱 주목해서 보게 되더군요.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어떤 감독의 작품인지 여기서야 뒤 늦게 확인할 수 있거든요. 이와이 슌지의 이름이 등장했을 땐 '역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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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와이 슌지 작품의 올랜도 블룸도 잘 어울렸습니다. 재미있는 건 극중 올랜드 블룸의 직업이 영화음악가 인데, 작업하고 있는 작품이 다름 아닌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인 <게드전기>였다는 점이었죠. 혼자서 알아보고 큭큭 거렸네요; 방안에 <데쓰 노트> 애니메이션 포스터도 붙어있고, 누가 이와이 슌지 작품 아니랄까봐 일본 작품의 소품들이 여러군데서 발견되더군요.

3. 본래는 스칼렛 요한슨이 연출한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하는데 빠지게 되어 아쉽네요. 제작자의 말로는 흑백으로 제작된 것도 있고 전체적으로 조화가 맞지 않아 최종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하네요.

4.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프로젝트의 다음 작품은 <사랑해, 상하이>입니다.

5. 이 작품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안소니 밍겔라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안소니 밍겔라 역시 이 프로젝트 중 하나의 에피소드를 직접 쓰기도 했죠.

6. 엔딩 크래딧 맨마지막에 스페셜 땡큐를 지나 퍼스널 땡큐에서 'Park Chan Wook'이라는 이름을 제일 먼저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박찬욱 감독이 맞는걸까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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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아이 (Eagle Eye, 2008)
시작이 좋았던 킬링 타임 무비


사실 D.J.카루소 감독의 전작인 <디스터비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감독의 대한 기대감은 거의 없었고,
스필버그가 제작했다는 정보도 뭐 '제작'일 뿐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샤이아 라포프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도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스필버그가 정말 제대로 밀어주고 있는 이 젊은 배우가 아직까지 연기로서 무언가 큰 몰입감을
준 적은 없었다고 생각되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글 아이>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지금까지의 연기했던
캐릭터들 가운데는 가장 괜찮았던 연기라고 생각되네요. 영화는 2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 동안 내내 몰아치는데,
킬링 타임 영화로서는 전혀 손색이 없는 괜찮은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리뷰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D.J.카루소의 영화는 전작 <디스터비아>도 그렇고(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저는 못봤습니다만 ^^;), 히치콕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것을 알 수 있는데, 구성이나 모티브는 히치콕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하지만, 그 짜임새나 연출력에서는
아직은 아쉬운 점이 많은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래 한 단락에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오인을 받은 주인공이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떻게 벗어냐느냐가 주된 구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이글 아이>에서
주인공이 오해 받는 사건은 엄청난 테러범으로 오해받는 것이고, 누구인지도 모를 여성에게 지령을 받아 그녀의 대업을
하나하나 완성해 가던 제리 쇼는 이 과정 속에서 이 거대한 음모의 뒤에 '누가'아닌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일단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이 음모의 주인공이 '아리아'라는 컴퓨터라는 것을 너무 일찍 밝혔던 게 후반부의 단점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의 후반부를 보았을 때 이 존재가 밝혀진 다음에는 이렇다하게 세밀하게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어 더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사실 살짝 스포일러성 정보를 미리 알고 갔던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류의
영화들을 여럿 보아왔기 때문에 음모의 주인공이 '컴퓨터'일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는데,
어차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 디테일한 구성이나 과정의 세밀함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결정적으로
그렇게 엄청난 무소불위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아리아'의 보안 체계가 너무 허술하다는 것이
가장 헛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정보량을 통해 선택된 두 인물 가운데 쌍둥이인 제리 쇼야 어쩔 수 없다고해도,
미셸 모나한이 연기한 '레이첼'같은 경우는 아들이 주요인물들이 모이는 국회에 관련된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제이슨 본 급의 그 엄청난 운전 실력은 어디서 나온 건지가 잘 모르겠더군요. 그녀에게 어떤 과거가 있어서 그런건가도
싶었는데 영화 속에서는 설명되지 않았던 것 같구요. 여튼 시작은 매우 창대했으나 음모의 정체가 밝혀진 다음부터는
얘기가 많이 싱거워졌던 것 같습니다. 원래 이런 류의 영화는 정체가 밝혀지고 나면 '와!'하는 탄성과 함께 '이거 놀라운데?'
하는 생각이 들어야 성공인건데, 앞서서 신나게 몰아붙이면서 겁을 줬던 것에 비하면 조금은 허무한 결말이라 아쉽기도
하더라구요. 맨 마지막에 두 주인공이 야릇한 눈빛을 교환하길래 속으로 '만약 둘이 키스라도 한다면 이건 정말 아닌데'하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키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영화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좋았던 건, '아리아'가 처음 가졌던 생각은 그나마 덜 미국적이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테러범일 확률이
겨우 51% 밖에 되지 않아도 무참히 타지에서의 그야말로 '테러'를 범하고(결국 민간인이었죠), 자신들이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의
말도 필요할 땐 결국 자신들의 생각대로 하고야 마는 미국의 무소불위 권력에 조그마한 경종을 울리려 했었다는 것이죠.
정말 '아리아'가 처음 미국정부의 모순을 지적했던 그 마음(?)으로 결국 정부 주요요인들이 모인 곳에서의 테러가 진행되고,
제리 쇼도 마치 '다크 나이트'처럼 테러범으로 오인되어 목숨을 잃고 마는(전 죽은 줄 알았었는데, 팔만 다친채 멀쩡이 나와서
조금 놀랐었습니다;;)것으로 마무리 되었다면 오히려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지 않고 극장을 찾았었기 때문에 샤이아 라보프 외에는 출연 배우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보게 되었는데 미셸 모나한의 연기는 뭐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로맨스의 주인공보단 아이를 갖은 어머니의
모습이 더 잘어울리는 그녀의 모습에 짧은 아쉬움도 들더라구요. 출연하는지 조차 몰랐던 빌리 밥 손튼의 경우 뭐 특별할 만한
점은 없었던 것 같고, 더더욱 몰랐던 로사리오 도슨과 <판타스틱 4>에 모습이 아직 더 익숙한 마이클 쉬크리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이클 쉬크리 같은 경우 <판타스틱 4>의 그 돌덩이(?)에만 익숙했던 터라 이런 진중한 캐릭터가
사뭇 어색하게도 느껴졌지만 의외로 잘 어울렸을 정도로 괜찮은 연기였다고 생각되고, 로사리오 도슨의 경우 워낙에 강한
캐릭터로 등장했던 영화들을 많이 봐왔었기 때문에 이런 심심한 캐릭터에선 그녀의 매력을 다 뽐내기엔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인공 샤이아 라보프의 연기는 주인공 다운 비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글 아이>에서도
아직까지는 '어린' 캐릭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하긴 어린 성인(?)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샤이아 라보프 만이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인지도 모르겠네요), 극을 완전히 이끌 만한 포스는 충분히 보여준 것 같습니다.
뭐 워낙에 헐리웃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스필버그가 밀어주는 창창한 앞날이 보장된 젊은 배우이니, 앞으로 걱정은 하지
않는데 이 기회를 좀 더 멋지게 활용했으면 하는 바램은 드네요 ^^


만약 시니컬하고 굉장히 암울한 이야기를 만들기 좋아하는 감독이 이 시나리오를 영화화 했다면 좀 더 괜찮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남습니다. 9.11 이후 헐리웃 대테러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바로 그 '무기력'함을
좀 더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껄 하는 바램말이죠. 그래도 이런 때깔 좋은 디지털 영화스럽지 않게
아날로그적인 액션 장면들은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오랜만에 극장에 가보았는데 관객들이 (아이들을 포함해서)상당히 많았었는데, 킬링 타임용 영화로서는
별 손색이 없는 '재미'있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거의 3주 가까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다시금 스타트 하는 입장에서 부담없었던 영화이기도
했구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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