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12년은 정말로 정신 없이 빠르게 지나간 한 해였다. 2012라는 숫자가 미처 익숙해지기도 전에 2013이라는 더 어색한 숫자를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회사 일과 개인사로 정신 없는 한 해 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정말 블로그를 놓치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 블로그라는게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려서 쉽다는 것이 아니라, 이 나선에서 한 번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끈을 놓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그 결과 2012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이렇게 소소한 결산 글이라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좋지 아니한가?


1.

글 개수로만 보자면 지난 1년간 약 143개의 글을 블로그에 썼으며 그 대부분은 영화에 대한 글이었다. 올해는 이전 해들과 비하자면 영화를 그리 많이 보질 못했는데 약 88편 정도를 극장에서 본 것 같다 (100편 아래로 본 것은 요 몇 년간 처음이다).


2.

개봉작 리뷰보다도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글들은 블루레이 리뷰 글인데, 많이 쓴 것 같지만 막상 세어보니 그리 많이 쓰지는 못했더라. 14편 정도를 썼고 대부분은 DVD프라임에 공식리뷰로 올라간 원고들이었다. 블루레이 리뷰는 시간이 워낙에 많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 만큼 쓰고 나면 보람이 가장 큰 글이기도 한데, 좀 더 기획적이고 자유로운 글들을 더 못 쓴 것이 못내 아쉽다.


3.

2012년 내게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일이라면 역시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에 내 글이 수록된 사건을 들 수 있겠다. 몇년 전부터 그냥 막연히 꿈만 꾸더 일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과 '옥희의 영화' 블루레이 커피북에 내 글이 수록되게 되었고, 이후 이윤기 감독의 영화 '멋진 하루' 블루레이 한정판에도 수록되어 감독님께서 직접 잘 보았다는 말씀까지 전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기도 했었다. 두 작품 다 너무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영광인 동시에 부담도 되었었는데, 제작사와 감독님이 만족해주셔서 정말로 뿌듯했다. 올해는 이렇게 세 작품에 내 글을 실을 수 있었고 2013년에도 한 작품 벌써 예약되어 있는 상태라 어깨가 더 무거워지고 있다.





4.

'북촌방향'과 '옥희의 영화'에 수록될 때에는 별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아쉬타카'라고만 올라갔었는데, '멋진 하루' 때에는 '영화 애호가'라는 타이틀로 올라가게 되었다. 사실 별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를 뭘로 불러야 할까 고민되는 순간들이 많았었다. '파워블로거'라는 호칭은 끔찍하게 싫어하고, 부담스러울 뿐더러 영화 평론은 하질 않으니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그냥 '리뷰어'라고 하기엔 뭔가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었는데, '영화 애호가'라는 호칭은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내가 쓰는 글이라는 것이 어차피 좋아서 쓰는 글이고, 그 '좋아함'을 어떻게 전달할까 만을 고민하는 글인 경우가 많기에 더더욱 '애호가'라는 호칭은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영화 애호가'로 남고 싶기도 하고.





5.

올해도 어쩌다보니 일본에 또 가게 되었는데 (매년 한 번씩 꼭 가는 듯), 도쿄를 정말 가고 싶었으나 방사능 때문에 오사카로 선회하여 결국 보고 싶었던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 Q'를 보고야 말았다. 이 때 워낙 짧은 일정이라 바로 다음 여행 계획을 3월로 잡아버렸는데, 이 때는 또 무슨 테마로 여행을 할지 벌써 부터 고심중이다.


6.

2012년은 개인적인 삶에서도 그랬지만 블로그에서도 장대한 계획이 특히 많았던 한 해였다. 2013년에도 적지 않은 계획이 있는데 이 계획들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열악한 올해도 몇가지를 이뤄냈던 것처럼 새해에도 조금씩이나마 차근차근 이뤄나갈 예정이다. 2013이라는 숫자가 조금은 덜 어색해졌을 즈음엔 계획한 것들 역시 조금은 이뤄져있길 바래본다.


Adios~ 2012. 제발 가라!







안녕, 중앙시네마


미리 예고된 일이었고 더군다나 마지막 상영회에 가보지도 못했지만, 막상 그 간의 추억을 돌이켜 보려니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중앙시네마는 내게 있어 참 좋은 영화들을 여럿 만나게 해 주었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멀티플렉스가 지금처럼 성행하기 이전, 보고 싶은 영화들을 비교적 좋은 분위기 (영화 팬들에게 이 '좋은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요즘들어 자주 느끼곤 한다)에서 관람할 수 있었던 명동성당 아래 작은 극장이었다. 아니 1층에 위치한 1관은 제법 큰 관이었다. 1,2층으로 되어 있어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야각이 나오기도 했다.




일단 중앙시네마에서 본 영화들이 여러 편 스쳐지나간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 (Dancer In The Dark, 2001)' 였다. 2001년 당시 홀로 극장에서 가서 마지막 회를 감상했었는데,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날 때까지 눈시울을 적셨던게 생생히 기억난다. 사실 영화를 한 해에 100편 넘게 보는 터라 따로 티켓을 확인하거나 기록을 해두지 않는 이상, 제목만으로는 이 영화를 어느 극장에서 보았는지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어둠 속의 댄서'를 보았던 중앙시네마는 너무도 생생한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중앙시네마는 스폰지를 통해 일본 영화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는데, 역시 폐관된 씨네콰논과 더불어 일본 영화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소중한 곳이기도 했다. 또한 위의 사진에 나와있는 거스 반 산트의 '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 2007)'도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2층에 위치한 작은 상영관에서 보았는데 그 아름다운 화면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분위기였다. 아, 이 작은 관을 떠올리니 2008년 보았던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2008)'도 떠오른다. 사실 몇몇 장면은 더 큰 스크린으로 보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겨울 스웨덴의 차갑고 고요한 풍경과 잘 맞아 떨어진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된다.





샐리 호킨스 주연의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2008)'는 2층 맨 앞 좌석에서 보았었고, 특별전을 통해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5)'도 일부러 찾아가서 다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런 좋고 작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극장이 사라졌다는 것에 안타깝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저 '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왜냐하면 대형 멀티플렉스와는 다른 '공간'의 추억과 의미가 있기 때문인데, 중앙시네마는 물론 영화를 볼 때 자주 찾던 곳이긴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명동 주변을 거닐 때, 항상 명동성당 뒤 조용한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와 코너를 꺽어 잠시 들렀던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씨네큐브, 씨네콰논, 필름포럼, 허리우드 극장 등은 분명 영화를 상영하는 의미로서의 극장도 극장이지만, 그냥 공간으로서 '극장' 그 자체로도 의미 깊은 곳이라 운영 주체가 바뀌고 개조되고 그런 것이 아닌 공간이 사라져버리는 이 현실이 더 눈물 겨울 수 밖에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도 명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공간이 명동성당과 중앙시네마였기에 앞으로 다가올 후자의 부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같다.








그냥 막연한 기억에 중앙시네마에 갈 때마다 혹은 자주 사진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했었는데, 막상 마지막을 남기려 사진을 찾아보니 정면 사진 하나 제대로 남겨둔 것이 없어 더 가슴이 아팠다. 누누히 얘기하지만 중앙시네마처럼 많은 추억이 깃든 공간은, 더 많은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멀티플렉스가 들어선다 할지라도 쉽게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이제는 추억 속에서만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린 '중앙시네마'.


중앙시네마의 마지막 편지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짠하다.




안녕, 중앙시네마.

2010.06.01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오늘 그래도 내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사진 한장.

물론 개인적으론 저정도로 우아하게 배웅하진 않았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악몽같던 시간이 이제야 어느 정도 끝이 났다.

안녕, 조지 워커 부시.

난 아직도 지구상에서 당신을 제일 증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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