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엽기 발랄뿐이 아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전작 <워터보이즈>는, 겉보기에는 남자 고등학생들이 여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싱크로 나이즈를 한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를 것이 없는 유쾌, 발랄, 엽기 코미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단지 그것 뿐은 아닌 작품이었다. 그것은 현재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가 있는 츠마부키 사토시의 어린(?)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웃음에 포인트가 억지스럽지 않으며 왠지 모르게 인물들에 동요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소소한 감동까지 전해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워터보이즈>의 여학생 버전이라는 조금은 오버스런 홍보 문구와 함께 2006년 국내에 개봉했던 <스윙걸즈>(일본 개봉은 2004년)는, 오히려 <워터보이즈>보다 더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는 야구치 감독의 대표작이 되었다.



<스윙걸즈>는 조금만 보아도 금세 야구치 감독의 영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워터보이즈>를 비롯 <비밀의 화원>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등에서 보여주었던 야구치 특유의 만화적인 상상력이 동원된 장면들이나 인물들, 상황설정, 특히 다른 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의 독특한 표정 하나 하나는 <스윙걸즈>에서 거의 경지에 오른 무르익은 연출력을 선사한다. 마치 만화책을 넘기는 듯한 느낌이라기보다는, 만화만이 갖는 장점을 영화라는 다른 장르에 자연스레 융화시킨듯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이러한 요소가 대표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멧돼지 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비슷한 시퀀스가 등장하여 더욱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이 시퀀스는, 그야말로 작정하고 만든 장면이다. 처음 이 장면을 보게 되면 CG를 사용하여 작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이 장면은 감독의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낸 멋진 장면이다. 장면 속 배우들은 별다른 기술에 도움을 받지 않고 그대로 멈춰있었을 뿐이며(잘 보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예전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코너 ‘추억은 방울방울’과도 같이, 움직이는 듯 한 멈춤 자세와 순간 포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코믹한 표정들, 그리고 여기에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야구치 감독의 영화들에서 만나볼 수 있는 궁극의 표정들!

<스윙걸즈>가 야구치 감독의 전작들과 가장 크게 구분되는 점은, 이 영화가 다름 아닌 음악영화라는 것에 있다. 여기에 다른 음악영화들과 크게 구분되는 것이 있다면 영화 속 연주를 배우들이 직접 소화해냈다는 점이다(최근에는 'Walk the Line'의 호아퀸 피닉스의 경우도 그렇고 직접 소화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음악영화의 경우 영화 속 노래나 연주를 배우들이 실연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사실 단순한 차이를 넘어서서 굉장한 차이를 갖게 하는 요소이다. 특히 이 영화처럼 배우들이 모두 어린 소년, 소녀들로 이루어진 경우에 이 차이는 더 크게 작용할 터. 영화 속 캐릭터처럼 실제로 연주를 하나하나 배워가며 겪는 어려움을 체험하고, 나중에 비로소 멋진 연주를 하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희열은, 아무리 배우가 직업이라지만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플먼트를 보다보면 14명의 배우들의 대부분이 실제로 악기를 처음 연주하고(밴드의 일원들 가운데 주연 배우 5명은 악기를 잡아본 적도 없는 초보였으며, 나머지 멤버들 중 몇 명은 그래도 각자 연주 경험들이 있는 경우였다), 영화 속 캐릭터들보다도 더 많은 노력과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정된 시간 안에 악기를 다룰 수 있게끔 하려는 노력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그리 유쾌하고 즐겁기 만한 시간들은 아니었다는 것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연주할 때의 몸동작이나 표정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연주를 하며 본인이 재미와 흥을 느끼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다. 이렇듯 배우들이 실제로 연주한 장면들은 이 영화에 가장 큰 자랑거리인 동시에 영화를 한층 더 재미있고 멋지게 그려내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에도 비슷한 시퀀스가 삽입되어 더욱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멧돼지씬'!'

우에노 주리를 비롯한 배우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알려진 우에노 주리는,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이다. 감독과 제작자들이 오디션을 본 뒤 ‘바로 토모코다!’하고 다들 생각했을 정도로 엉뚱하고 게으르지만 사랑스러운 토모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이 영화의 주연을 꼽으라면 우에노 주리를 비롯, 히라오카 유타, 칸이야 시호리, 다케나카 나오토, 모토카리야 유이카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비중에 차이만 있었을 뿐 '걸즈 (and the boy)'라는 타이틀처럼 14명의 배우 모두를 소중하게 다뤄야 할 듯싶다. 특히나 DVD에 수록된 서플먼트를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이런 생각은 더할 듯싶다.



최근 출시된 DVD타이틀은 일본에서의 제작년도와 비교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흘러 출시된 것이지만, 국내 개봉일과 따져보자면 제법 빠른 시간 내에 출시되었다고 하겠다. 총 2장에 디스크로 출시된 타이틀은, 영화의 재미만큼이나 재미있고 다양한 서플먼트들이 수록되었다. 재미있는 서플먼트를 살펴보기에 앞서 화질과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1.8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 치고는 조금 부족한 화질을 수록하였다. 감상에 불편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최신작임을 감안한다면 일부 노이즈가 발생하는 등 최상에 퀄리티를 수록하였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극선명한 화질이 수록되지 않은 점은 영화의 분위기상 어울리는 부분도 있으니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닌 듯하다.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한 사운드는 매우 만족스럽다. 센터스피커를 통한 대사의 전달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연주 장면에서 웅장한 사운드를 전달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 'Mexican Flyer' 의 도입부분에서는 그 강력함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DVD타이틀이 만족스러운 것은 바로 서플먼트에 있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2가지 종류의 음성해설과 각종 예고편들이 실렸는데, 오랜만에 보는 2가지 이상에 음성해설이라 우선 반갑다. 첫 번째 트랙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과 우에노 주리, 히라오카 유타, 그리고 타케다 유코 아나운서의 설명으로 진행되고, 두 번째 트랙은 감독과 나머지 걸즈의 멤버들, 타케다 유코 아나운서가 참여하였다.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이 주축이 된 음성해설인 만큼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더불어 색다른 재미를 맛 볼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매우 짜임새 있는 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메이킹 필름은 30분 가량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분량이지만 하나 하나 모두 소중한 영상들을 담고 있다. 14명 배우들이 연습하는 과정은 영화 보다 더한 감동을 전해준다. 또한 메이킹 영상 시작부분에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을 엑스트라에 가까운 비중을 갖은 배우들까지 한 명 한 명 소개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메이킹 필름 자체가 하나의 작은 ‘스윙걸즈’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영상이다.



‘스윙걸즈 만드는 법’에서는 감독과 제작자가 말하는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와 우에노 주리를 비롯한 배우들의 오디션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처음에 어느 시골의 학교에서 여학생들이 재즈 밴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감독의 말과 이후 캐스팅에서 연주와 연기가 함께 가능한 배우들을 찾지 못해 결국에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캐스팅 한 뒤, 연주실력이라고는 전무한 배우들을 데리고 막막한 상황에서 영화를 시작해야 했던 제작자의 고민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배우들이 직접 말하는 연습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캐릭터들의 헤어스타일과 의상, 조명, 세트 디자인에 관해 담당 스텝들이 전하는 에피소드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신호등에서 시작된 주인공 5명의 유쾌한 이동장면에서 아파트 앞을 지날 때에 베란다에 나와 있던 인물들이 다른 엑스트라들이 아닌 걸즈들이 아줌마 변장을 하고 등장했다는 사실과, 피트병을 무섭게 빨아드리는 장면과 엘피판이 굴러가는 장면, 공에 눈을 맞아 심하게 부은 장면 등 영화 속에서는 금방 스쳐 지나갔던 장면들이 의외로 많은 노력과 기술이 투자된 장면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멧돼지 씬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수록되었다. ‘스윙걸즈 만드는 법’의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본편처럼 넷 킹 콜에 LOVE에 맞춰 스텝들이 멋진 에필로그를 장식하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일 듯. 이밖에 ‘로케이션 촬영지 탐방’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역과 장소의 헌팅 계기와 이유 등이 담겨있다.



'영화 속 연주 장면은 모두 배우들이 실제 연주한것이라는 사실!'

서플먼트 가운데 메이킹 필름이 흥미와 감동을 선사했다면, 'Side Stories'에 수록된 단편들은 마치 스윙걸즈 외전을 보는 듯한 색다른 재미를 전한다. 일반적으로 DVD에 수록되는 단편들이 감독의 전작들이나 관련된 단편들이 수록되는 것과는 달리, 본편에 출연했던 캐릭터들이 그대로 등장해 갖가지 다양한 다른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 중에서도 드러머인 나오미 타나카의 눈물겨운 다이어트 의지를 엿 볼 수 있는 단편 ‘하루’와 조용조용한 캐릭터인 세키구치가 주연인 ‘플라잉’은 혼자 보는 가운데서도 웃음을 참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수록하였다. 그 밖에도 5개의 단편들은 모두 나름대로 본편에 버금가는 재미와 완성도를 지닌 작품들로 이번 DVD에 보석과도 같은 서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Secret Clips'에서는 엔딩 크레딧인 L-O-V-E에 풀 버전과 영화에는 수록되지 않은 다른 버전, 그리고 애니메이션 버전이 수록되어 골라보는 재미를 준다. 그리고 포크듀오로 재결성한 그들의 곡 ‘실연해도 러빙 유’의 풀 버전도 만나볼 수 있으며, 몇 가지 미 공개씬과 NG컷 등을 담은 Outtake 모음도 수록되었다.



이 밖에 'Music'에서는 각 악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걸즈 멤버들이 직접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Cast'에서는 한 명 한 명 짧지 않은 분량의 자기소개와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어, 주연 배우들 외에 다른 멤버들에 대한 각각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2006.06.05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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