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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몽 (A Quiet Dream, 春夢, 2016)

꿈처럼 유령처럼 살아있는 존재들


장률의 신작 '춘몽 (A Quiet Dream, 春夢, 2016)'은 제목 그대로 꿈이라는 구조를 현실에 녹여낸, 소소한 에피소드 같지만 사실은 쓸쓸한 영화였다. 익준과 종빈, 정범 이 세 남자는 예리라는 인물과 그녀가 있는 고향주막을 중심으로 엮여, 아니 모여 있다. 이 세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는 쉽게 홍상수 영화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고 실제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은 얼핏 그런 듯도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들의 관계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마치 세 감독의 전작에서 자신들이 연기했던 캐릭터의 연장선처럼 보이는 이들과 그 중심에 있는 한예리가 연기한 예리라는 캐릭터는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각자의 이유들로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포용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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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수색이라는 공간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수색은 내게도 어렸을 때부터 머물지는 않았으나 종종 지나치는 동네로 익숙하지는 않아도 어색하지는 않은 공간인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차 있는 상암이 디지털시티라는 이름의 화려함으로 거듭나면서 오히려 수색이라는 공간의 그늘짐은 더 짙어진 경향이 있다. 장률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수색을 떠올렸을 때 컬러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고 흑백으로만 기억이 되는 공간이라 흑백을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나 역시도 적은 기억이지만 수색이라는 동네를 떠올리면 흑백과 전신주, 송전탑 등의 차가운 느낌만이 남아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며 새삼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근래에는 어떤 동네보다도 첨단을 달리고 있는 상암동의 바로 옆, 지하로 연결되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수색동의 이미지는 주인공 네 사람의 이미지와 그대로 겹쳐진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중심이 아닌 주변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지만, 마치 수색동이 그런 것처럼 화려함과 사회의 중심에서 아주 먼 곳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유령'과 '살아있다'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는데, '춘몽'은 단지 사회의 중심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 유령처럼 느껴지는 존재들이 바로 곁에서 살아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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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를 비롯해 이들의 삶은 항상 죽음 혹은 위험과 맞닿아 있는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그렇게 고요하고 평온하게 묘사하는데도 말이다), 그러한 긴장감을 오히려 현실로 느끼게 해주는 장치가 바로 꿈이 아닐까 싶다. '춘몽'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마치 꿈과 같은 장면들이 현실에 개입하는 것을 통해, 이들 삶의 위태로움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한 편 위로하는 듯한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장률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두만강'인데, 그 이유는 경계인이라는 장률 감독 자신의 정체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른 한국 출신 감독은 소화하기 어려운, 그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묘사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춘몽' 역시 많이 유연해지기는 했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이야기가 짙게 깔려 있다.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의 관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쓸쓸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가 처한 유령 같은 또 다른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가, '춘몽 (春夢)'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왠지 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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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익준, 윤종빈, 박정범 이 세 감독의 메소드 연기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포인트에요. 이 세 명이서 만드는 짧은 대화 시퀀스들의 재미는 앞서 이야기했던 홍상수 영화의 그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빅재미가 ㅋㅋ


2. 아, 세 감독의 메소드 연기 못지않은 이준동 대표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ㅎ 왠지 현장에서는 많이 즐거웠을 듯한 ㅎㅎ


3. 이주영 배우도 인상적이었어요. 어서 '꿈의 제인'도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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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나라 (かぞくのくに Our Homeland, 2012)

내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



양영희 감독의 신작 '가족의 나라 (かぞくのくに Our Homeland, 2012)'를 보았다. 일본의 유수 영화제들을 비롯해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 및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더 주목받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던 '디어 평양 (2006)'과 '굿바이, 평양 (2009)' 두 작품의 다큐멘터리 이후 극영화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그녀가 만드는 극영화는 과연 어떨까 하는 기대감으로 충만한 작품이었다. 그렇게 보게 된 '가족의 나라'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놓여 있었고,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또 한 번 다루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보편성을 갖고 있는 한 가족에 관한 영화였다. 아, 정말 '가족의 나라'라는 제목은 생각하면 할 수록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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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조국 북한에서 치료를 위해 일본 집으로 돌아온 오빠. 감시자와 함께 돌아온 그로 인해 이 가족은 잠시나마 기쁨과 변화를 겪는다. 정말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서로 많을 듯 하지만, 의외로 이 가족은 서로 말이 많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북의 명령으로 인해 계획되었던 일정보다 빨리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미처 서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 조차 없었던 이 가족은, 처절하면서도 고요하게 이 또 한 번의 이별을 맞이한다. 그러고는 막이 내린다.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무엇이 남았는지는 결국 보는 이의 몫으로 남는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는 감독이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북송과 남북, 북한과 일본을 둘러싼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 감독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 영화를 하고 싶었던 점이 아닐까 싶었다. 다큐멘터리, 특히 그녀가 선보였던 두 작품은 완전히 본인이 하고 싶었던, 개인적이면서도 역사를 관통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 '가족의 나라'는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감독 스스로가 과거 혹은 현실에서는 하지 못했고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극 영화를 통해 표현해 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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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라는 것도 장르의 일종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전달한다기 보다는 감독을 통해 일정 부분 연출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양영희 감독은 다큐를 만들 때 절대 인물들에게 디렉션을 준다거나 어떠한 의도를 담지 말자라는 원칙으로 전작들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러한 감독의 원칙은 극 영화인 '가족의 나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데, 영화로 표현된 장면들과 이 장면들이 만들어진 그 뒷 이야기를 듣고나서도 쉽사리 믿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 영화의 대부분은 (다른 의미로) 만들어졌다. 배우들에게 역시 어떠한 디렉션을 주기 보다는 그저 본인이 직접 겪었던 것에 근거해서 이럴 때 이 인물은 이런 심정이었다 라는 정도만 알려주는 것에 그쳤으며, 캐릭터에 더 깊게 동화되고자 한 배우들의 노력 탓에, 그리고 어쩌면 다큐멘터리를 찍는 방식처럼 컷을 나누지 않고 긴 호흡으로 촬영한 방식 속에서 이 영화는 극 영화인 동시에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형용하기 힘든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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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나라'는 일부러 감정을 극적으로 유도하지도 않고 실제로 그럴 수 있는 부분들 조차 절제하는 듯 하다보니,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감정적으로 흔들리기 보다는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게 되지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시작되는 순간, 그 동안 참고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보편성을 갖는다는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일부러 평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특별한 실제의 일화를 있는 그대로 그렸으나 그 안에서 보편적인 감정들을 이끌어 냈고, 그 감정들을 러닝 타임 내내 조심스럽게 유지시키는 것은 물론 영화가 끝난 뒤까지 오랜 여운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고나니 자연스럽게 이 영화가 놓인 특수한 상황과 이야기에도 관심을 넘어선 몰입을 하게 되는데, 그 동안 이러한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사안을 다룬 작품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었기에 오히려, 이야기의 표면적인 이슈 측면이 아닌 그 내면에 있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더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즉, 북송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북한과 일본 정부 간의 정치적 이슈로 발생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또 다른 조국이라 할 수 있는 우리 (남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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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입장은 그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동책임을 느끼고 해결을 노력해야만 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은 이들의 이야기의 관심을 갖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라 아예 그 존재조차 모르고 안다해도 부정하기 바쁜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는 더 특별할 수 밖에는 없다. 그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우선 알기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 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북한과 일본 사이 뿐만 아니라 이런 비슷한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가족들이 다른 곳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 자체를 그저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북송된 이들의 문제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라는 존재는 제 3자가 아니라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고, 관심을 갖고자 하는 마음 조차 열려있지 않은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아주 좋은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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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가족의 나라'가 여러 나라의 영화제에 초대받고 호평을 받은 이유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 때문 만이 아니라, 영화적 완성도 측면에 있어서도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완벽'이라는 표현 보다는 '놀랍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다. 재일 교포 2세에 대한 이야기나 북송된 사람들에 대해 이전에는 알지 조차 못했던 일본 배우들과 우리 배우 양익준이 연기한 극 중 인물들은, 메소드 연기를 펼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놀라운 장면과 이야기를 완성해 낸다. 사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익숙한 양익준을 제외한 배우들은 재일 교포 출신의 일반인이거나 배우인줄로만 알았었다 (반대의 경우로 양익준을 이전에 몰랐더라면 똑같은 오해를 했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일찍 올해의 영화를 만났다.



1. 이 날 상영은 기자 시사보다도 앞선 특별 상영이었는데 양영희 감독님과 양익준 배우의 GV까지 만나볼 수 있어서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하나 버릴 것 없이 유익했던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어요.


2. 극 중 등장하는 '하얀 그네'라는 곡 입니다. 영화를 보고 들으니 참...



3. 3월 7일 개봉예정입니다. 전 개봉하면 꼭 한 번 더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양영희 감독님과도 직접 뵙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더 많은 관객들이 '가족의 나라'를 보게 되기를 바라면서요.


4. 마지막은 GV에 참여한 양영희 감독과 양익준 배우 사진 몇 장.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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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The King of Pigs, 2011)

그 때와 지금, 나는 어디에 있었나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한국 계급사회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다. 빈부격차, 권력으로 인한 계급차이 등 대한민국 사회에는 '계급사회'라고 어렵지 않게 부를 수 있을 만큼 그 그림자를 숨기고 있으며 (이제는 사실 더이상 숨기고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 이러한 계급사회를 꼬집는 작품들도 이미 여럿 있어왔다. 이러한 계급사회를 다룬 작품들은 주로 계급사회 자체를 주인공으로 하여 겉으로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는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는데, '돼지의 왕'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돼지의 왕'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거다.


'그 때 너는 어디있었어?'



ⓒ 돼지의 왕 제작위원회. All rights reserved


영화를 보고 나오며 같이 본 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뭔가 찜찜한 느낌이야'. 나는 대답했다. '이 영화가 불편한 건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고, 떳떳하지 못한 마음의 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작품은 계급사회 속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개'들에게 용감하게 맞서 싸운 돼지의'왕'에 관한 영웅담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돼지의 '왕'마저 잠식해버린 '돼지'들의 관한 이야기다. 사실 확률적으로도 그렇고 청소년기를 보낸 대부분의 이들은 돼지의 왕이거나 개이기 보다는 돼지였을 것이다. 개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공포를 느끼며 그저 이 시기가 빨리 지나기 만을 고대했던, 그냥 더 이상 볼일 없는 시간이 올 때까지 꾹꾹 참고 견뎠던 돼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돼지들에게는 극적인 스토리가 없어서 인지, 아니면 이 많던 돼지들이 어른이 되면 감쪽 같이 모두 다 돼지의 왕이나 개로 둔갑해서인지,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그리 주목하는 캐릭터가 아니었고 사람들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였다.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이 인상적인 것은 바로 이 돼지의 왕이 되지 못한 돼지들의 불편한 진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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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돼지의 왕으로 등장하는 '철이'는 힘든 가정형편 속에서도 개들에게 홀로 맞서 싸우는데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자주 설명한다. '그 놈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이 때를 즐거운 추억이었노라 얘기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겠다'고. 이런 뉘앙스의 대사가 제법 여러차례 등장하는데, 나는 그래서인지 이 대사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이 계급사회에서 어디에 속했었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는 계급사회가(지배세력인 개들이) 문제라는 얘기가 지속적으로 나왔음에도, 그에 반해 정작 (피지배 세력이라 할 수 있는)돼지들에 대한 깊은 성찰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철이의 대사를 연관지어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계급사회에서 지배층인 개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 땐 그랬었지'하며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하는 것도 물론 문제지만, 끝내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이 개였다고 거짓으로 말하고 다니거나 더 나아가 돼지의 왕이었노라 무용담으로 얘기하는 돼지들의 현실이 더욱 불편하고 쓰라리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라면 역시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되는 계급사회 때문일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나선에서 아직 내려오지 못한 그리고 개가 되지 못한 이들은, 자신들이 돼지였노라, 그 때 미처 돼지의 왕과 개 사이에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던 존재였노라 말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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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돼지의 왕'은 이런 돼지들의 이야기를 좀 더 극적으로 수면으로 꺼내놓기 위해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택했다. 이 작전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할 수 있도록 만든 매우 영리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 걱정되는 것은 많은 관객들이 스릴러와 반전에만 집중해 작품 본연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할까 하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죽고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는가 라기 보다는, 나는 그 때 어디에 있었고, 나는 그 곳에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돼지의 왕'이 그리고 있는 종석과 경민 그리고 철이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계급사회가 만든 희생양 혹은 불편한 진실 정도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것만으로도 괜찮지만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과연 돼지들이 정말 희생양일 수 밖에는 없었나? 라는 질문을 과감하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때 나는 개들에게 강렬하게 저항해 본적이 있었던가, 말만 따라 그냥 시간이 지나 더 이상 볼 일 없게 될 날 만을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나? 라는 아픈 자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역시, 그러한 일들에 돼지처럼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또 다른 돼지의 왕이 나서주기 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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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신있게 글의 부제목으로 '그 때 너는 어디에 있었니?'라고 물을 수 없음을 인정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 때, 그리고 지금. 나는 어디에 있었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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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Breathless, 2008)
폭력의 역사를 통한 가족의 탄생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던 양익준 감독의 영화 <똥파리>는 그 제목 덕분에 일단 관심을 갖게 되었던 영화였다. 제목에 흥미를 갖게 되었을 때쯤 해외 유수 영화제의 수상 소식들도 부수적으로 들려왔는데, 그것이 이 영화를 보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까지는 할 수 없겠으나(오히려 이유라면 지인들과 취향이 비슷한 평론가들의 칭찬들이랄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연출과 주연을 맡은 양익준 감독은 이번이 장편 데뷔작이기는 하지만 인디 영화계에서 감독보다는 배우로서 더 인지도가 있던 인물이었다. 사실 처음 이 작품 <똥파리>에 대한 매우 소극적인 정보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단순히 폭력에 관한 이야기 일 줄로만 알았다. 메이저 영화에서는 잘 다루지 못하는 인디 영화만의 에너지와 이야기가 담긴 제법 괜찮은 영화일 줄로만 알았었는데, 막상 뚜겅을 열어보니 <똥파리>는 참으로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많은 작품이자 폭력과 가족에 대해 깊은 성찰이 담긴 영화였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여자를 때리는 남자와 이후 이 남자를 때리는 상훈의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오프닝 장면은 영화에 대한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집약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처음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만으로는 단순히 '폭력'에 관한 것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가해자가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에 폭력에 의해 피해자가 되는 상황은 단순히 '폭력'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폭력의 되물림'과 '폭력의 역사'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똥파리>가 단순히 폭력 그 자체만을 다룬 영화였다면 그저 용역 깡패로 살아가는 상훈의 일상적 에피소드를 전면에 배치해도 좋았을테지만, 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는 그 자체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의미심장한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똥파리>는 크로넨버그의 영화처럼 폭력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어져왔고, 인간 내면에서 살아왔는지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폭력의 역사를 통한 가족의 이야기,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포스터에 새겨진 저 문구는 참으로 멋지다.

'세상은 엿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보통 영화가 관심을 갖고 관객들이 호기심을 갖는 부분은 '세상은 엿같고'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을텐데, 사실 <똥파리>를 보고 나니 그간 이 '엿같은 세상'을 사는 인물들을 그려낸 영화들이 초라하게 보일 만큼 그 자체로서는 적어도 이보다는 더 큰 의미를 갖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라는건 왠지 빠져나갈 수 없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엿같은 세상은 아무리 엿같아도 본인이 하기에 따라 즐길 수도 뛰쳐나갈 수도 있지만, 더럽게 아픈 핏줄은 어떻게 한다고해서 바꿀 수 있거나 탈출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양익준 감독이 만든 <똥파리>에서 이 더럽게 아픈 핏줄을 극복하거나 수용하는 방법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폭력의 역사'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현실들이다. 부모들의 싸움, 술먹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과 그로 인해 생긴 결손 가정. 그리고 나라에서 동원되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 세대가 겪는 아픔,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그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하는 현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긴 가난한 현실 역시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복합적인 요소들이 결국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생각해보면 영화의 시작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폭력 자체에서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내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상훈이 이 가족을 복원하기 위해 벌이는 피눈물나는 여정이며 결국 이뤘는지 이루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볼 만한 여정이다.

가난과 폭력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폭력으로 말미암아 생긴 가난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사용되는 것이 폭력이다. 영화 속 상훈은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 속에서 자라 결국 가난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되었지만, 그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직업으로 갖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용역 깡패, 즉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해 돈을 버는 일이다. 이런 관계는 영재에게서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는 그 피해로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고 어머니는 이미 죽어버린 이 가정 속에서, 영재는 마치 상훈이 그랬던 것처럼 폭력으로서 세상에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상훈도 그렇고 영재도 그렇고 이 과정을 단순히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 할 수 있겠다. 상훈이나 영재가 이렇게 폭력을 몸에 지니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가해졌던 폭력들 때문이며 자신 역시 폭력만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방법 밖에는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에 후반부 영재가 상훈에게 폭력을 가해 결국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깊다. 영재가 상훈을 공격했던 것은 단순히 돈을 훔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그저 혼내주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적당히 때렸어도 되었을터. 하지만 영재는 상훈이 죽음에 이르도록 폭력을 가하는데 이는 상훈에게로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가정에 대한 분노에로 향하는 폭력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영재가 상훈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은 영화의 첫 장면과 동일한 메시지를 준다. 절대적인 폭력의 존재로만 보였던 상훈을 아직 미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영재가 공격하는 장면은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결국 아버지 세대에서 가해진 폭력이 그 다음, 그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의 마지막, 연희가 우연히 상훈과 똑같이 용역 깡패로서 활동하는 영재의 모습에서 상훈의 모습을 겹쳐보는 것은 굉장히 노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폭력의 되물림과 악순환. 아마도 상훈처럼 나중에야 이 폭력의 고리를 끊어야 겠다고 깨울칠 영재의 모습. 영화는 다 끝났다고 생각된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되물림에 관한 아픈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따뜻하다'라고 느꼈던건 바로 주인공 상훈의 행동들 때문이었다. 상훈은 앞서 언급한 '엿같은 세상'을 그냥 막살고 말려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표현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되물림된 폭력의 사슬을 끊고, 이 모든 것을 잉태한 가족의 아픔을 다시금 새로운 가족의 탄생으로서 치유하고자 하는 인물에 가깝다.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 대사의 80%는 거의 욕설들로 채워져있다. 개인적으로는 욕설에 대한 상당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에도 잠시 머뭇거려지기도 했었는데, 영화 속 상훈의 대사는 분명 입에 담기 힘든 욕설들이기는 하지만 '똥파리'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그가 내뱉는 욕설은 단지 표현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마치 외국어나 사투리 등과 다르게 생각할 것이 없는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다. 영화 초반 상훈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때에는 그가 내뱉는 욕설에 관객으로서 불편하고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점차 그를 알게 되면서 그의 욕설들은 대화 그 이상의 의미는 주지 않는다. 마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에서 주인공과 이탈리아계 이발소 주인이 나누는 대화가 욕설로만 느껴지지는 않듯이, 상훈의 욕설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일반적인 자존심 정도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일종의 필요악인 것이다.

그가 가족을 이루려는 노력은 영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배다른 누나의 아들인 형인을 아들같이 챙기면서 돈도 주고 아버지 노릇도 하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만약 일반적인 자존심으로 똘똘뭉친 인물이었다면 이런 노력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폭력을 되물림한 아버지에 대한 연을 끝네 끊지 못하는 심정도 그러하며, 연희와의 관계를 맺는 장면도 그러하다. 영화 속 상훈과 연희의 관계는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인 연인관계는 물론 아닐 뿐더러 단순한 남매같은 관계로 보기도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이 둘은 서로에게서 서로가 원하는 이상향을 발견한 듯 하다. 서로 모두 벗어나고만 싶은 현실에 놓인 이 둘은,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평가하지 않는 눈을 가졌으며 이 눈은 서로의 진심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이 둘은 지옥같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순간에 가장 떠오르는 존재가 되었으며 표현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가 된다.




영화 속에서 이 둘을 그리는 묘사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보통 치정극이나 영화에서라면 가만 두지 않았을 설정을 보기 좋게 무시해버린다는 것이다. 연희의 가정이 더 어려워지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인 연희 어머니의 죽음은 바로 상훈이 저지른 것이며, 상훈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것은 다름아닌 연희의 동생 영재다. 보통 같았으면 이같은 관계설정을 영화 막판에 터뜨리면서 다시 또 하나의 갈등을 야기시켰을 테지만, <똥파리>는 이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이렇게 얽혀버린 각자의 아픈 역사 속에서 상훈과 연희를 지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처마저 남기기엔 두 주인공의 현실과 짐이 너무 크게 느껴졌을 감독의 배려랄까(이런 점 또한 이 영화가 따뜻한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는 끝내 이런 사실을 주인공들에게 알리지 않은채 끝을 맺는다.

연희로 인해 조금씩 변화를 겪던 상훈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자살기도를 통해 자신의 숨겨왔던 진심을 드러내고야 만다. 앞선 과정들만 본다면 상훈은 자신에게 되물림된 폭력에 분노하여 어떻게든 가해자인 아버지에게 이를 쏟아내려는 듯한 측면만 노출이 되지만, 사실 그는 이 더럽게 아픈 핏줄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었고 자신은 이 폭력의 역사를 되물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와중에도 연희를 찾아간 상훈은 아무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냥 울기만 한다. 이것은 연희라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리라).

상훈이 맺는 결말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칼리토>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결국 용역깡패를 그만 두고 자신이 꿈꾸던 가족을 이뤄 정착하려고 드디어 마음을 먹은 상훈에게 이는 허락되지 않는다. 형인이 다니는 유치원 재롱잔치에 상훈의 누나와 연희, 그리고 용역회사의 사장이자 친구인 만식, 그리고 상훈이 초대된 것은 일종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상훈이 꿈꾸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었으며 자신의 대에서 끝내고 싶었던 폭력없는 가정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훈은 여기에 오지 못한다. 또 다른 폭력의 되물림에 희생자인 영재가 가한 폭력에 사그라들고 만다.




그런데 인상적인건 이제부터다. 상훈이 죽고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 시점에 벌어지는 장면들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다. 만식의 고깃집 오픈을 기념하려 모인 상훈의 아버지와 연희, 상훈의 누나와 형인의 모습 어디에서도 상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상훈의 죽음에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플래쉬백으로 스쳐 지나갈 뿐 고깃집에 모인 이들의 표정에서는 그 어디도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인상깊게 볼 또 하나는 상훈의 아버지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폭력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텐데 여기에 1세대이자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상훈의 아버지가 놓여있다. 이는 상훈과 상훈의 아버지는 결국 공존할 수 없음을 은연 중에 말하고 있는 듯하며 감독은 상훈의 아버지를 선택, 새롭게 탄생한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상훈이 스스로 자신 없는 가족을 꿈꿨다고 하기엔 (만약 그렇다면 이건 정말 슬픈 영화일듯) 믿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상훈은 분명 상훈이 아버지가 있는 자리에 본인이 있고 싶었던 것이고, 그것이 자신이 꿈꾸던 폭력의 역사가 지워진 새로운 가족이었을 것이다(상훈이 피범벅이 되어서도 조카 유치원에 가야된다고 중얼거렸던 것은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감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새롭게 태어난 가족에게는 여전히 불안요소가 있다. 영재는 이 가족에 직접적으로 속하지는 않았지만 상훈과 같은 폭력적인 전처를 그대로 밟고 있으며, 연희도 분식집 아르바이트로 생활이 갑자기 나아질리 없으며, 아버지의 언어폭력과 문제들은 여전할 것이다. 또한 상훈의 아버지 역시 완전히 죄를 뉘우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만약 그 자리에 상훈이 있었다면 좀 더 희망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관객이 바라는 장면일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이 지겨운 폭력의 역사는 '똥파리(상훈)'가 사라지는 것으로 잠시 멈추었으며, 그가 꿈꾸었을지도 모를 새로운 가족은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올해 지금까지 본 영화들 가운데 올해의 '대화장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위의 사진 속 장면을 꼽겠다!)


1. 영화를 보고 리뷰를 다 쓰고나서 여기저기 리뷰를 읽어보니 감독의 개인적인 인생사가 많이 녹아있는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그는 어떤 인생을 또 겪었을지 더 궁금해지네요.

2. 영화를 보고나서 고맙게도 무대인사자리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독님과 주연배우분들도 직접 뵐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똥파리 - 무대인사 사진 (2009.04.25, 아트하우스 모모)

3. 최근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할 얘기가 많았던 영화였어요. 진짜 위 장면처럼 포장마차에서 양익준 감독님과 밤새 얘기하고 싶을 정도로!!

4. 제 취향은 역시 <워낭소리>보다는 <똥파리>인것 같습니다 ^^; (왠지 어감이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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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우리 영화인 <똥파리>를 드디어 오늘(토) 감상하였습니다. 며칠 전 씨네토크 자리에는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해서 아쉬웠었는데, 오늘은 다행히도 무대인사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양익준 감독님은 딱 보는 순간, 과연 영화 속 상훈과 저 사람이 같은 사람인가 할 정도로 웃는 모습이 선해보이고(?) 매력적이시더군요 ㅎ 유머를 섞어가며 거침없이 이야기하시는 모습에 영화를 막 보고난 감정이 살짝 흔들릴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그 만큼 연기가 훌륭했다는 얘기도 되겠죠;). 관객과의 대화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작품의 의도에 대한 대강의 이야기와 배우들의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꽃비씨도 참으로 아름다우 시더군요 ^^; 아역 연기자인 형인 역의 희수군은 나이가 안되어서 못봤지만 다들 재밌다고 한다며 영화 많이 홍보해 달라는 귀여운 멘트를 날리기도 ^^; 감독님은 지난 번 씨네토크때 댄스도 보여주셨다고 하는데, 오늘도 살짝이지만 나름 스텝을 보여주시기도 ㅎㅎ 다들 새벽까지 인터뷰와 각종 스케쥴들로 바쁜 와중에도 즐거워 보이는 듯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영화는 참으로 인상적이더군요. 폭력과 가족. 힘있고 따듯한 영화였어요. 자세한 리뷰는 자고 일어나서 써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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