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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아이덴티티 (Split, 2016)

샤말란의 히어로 영화, 그 속편


M. 나이트 샤말란의 신작 '23 아이덴티티 (원제 - Split)'는 그의 두 번째 히어로 영화이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 2000)'의 속편이다. '언브레이커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샤말란의 영화이자 가장 매력적인 히어로 영화 그리고 가장 속편을 기다려 왔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렇게 은근한 방식으로 (사실상의) 속편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그 반가움과 쾌감이 더 컸다. '23 아이덴티티'라는 국내 개봉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23개의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벌이는 사건을 통해 샤말란은 다시 한번 히어로 영화라는 장르를 자신 만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참고 글 : 언브레이커블 - 코믹스 세계 속 선과 악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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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언브레이커블'이 전혀 다른 시작점에서 시작한 두 인물 데이빗 던 (브루스 윌리스)과 일라이저 (사무엘 L.잭슨)의 이야기가 한 곳에서 만나게 되면서 (정확히 말하자면 이 경우는 우연히 만났다기보다는 의도적이고 간절했던 만남이었지만) 더 큰 깊이를 갖게 된 것과 같이, 이 영화 '23 아이덴티티' 역시 크게 보면 두 명의 전혀 다른 인물이 각자의 트라우마와 하나의 사건에서 싸우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흔히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한 다중인격의 인물에 관한 것으로 한정 짓기 쉽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안야 테일러- 조이 (Anya Taylor-Joy)가 연기한 케이시 역시 절반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언브레이커블'이 데이빗 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23개나 되는 다중 인격이 하나의 인물에게서 표현되는 외부적인 요소가 드러나있지만, 이를 그저 일반적인 시선을 통해 비정상의 범주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병이나 흥미요소 정도로 즐긴다면 이 영화는 오히려 심심한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가장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은 마치 영화 속 플레처 박사와 같은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23개의 자아가 하나의 몸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진짜 이 자아들을 각기 다른 인물들로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면, 그들 각자의 이야기와 갈등 요소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좀 더 외적 요소에 휘둘리지 않고 그 (여러 자아를 통칭)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이런 얘기를 일부러 하는 이유는, 단순히 하나의 신체에 여러 자아가 존재해 수시로 등장과 퇴장을 반복한다는 흥미로운 사실 보다도, 이 여러 자아들이 하나의 신체에 존재하기 때문에 겪는 갈등과 문제들이 더 중요하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분은 결국 이 영화가 히어로 영화라는 점에서 히어로 혹은 빌런의 탄생 과정에 핵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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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개인적 트라우마 혹은 결핍 등이 존재하고 그것이 일종의 도화선이 되거나 영웅이 되고자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주 다르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언브레이커블'이 더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일라이저라는 캐릭터가 그토록 히어로가 되고 싶었던 이유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돌연변이라고 소외되고 버려져야 했던 이들이 주인공인 '엑스맨'의 영웅들도 유사한 매력 혹은 공감대가 있었다.


 '23 아이덴티티'에 등장하는 그 (아까 말한 다중 자아를 통칭)와 케이시라는 캐릭터 역시 본인들은 원하지 않았던 이유로 인해 능력(사회에서는 병이라 일컬어지는)을 갖게 되었거나, 그것이 목숨을 구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는 점은 샤말란이 '언브레이커블'에 이어 다시 한번 말하고 싶었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샤말란이 이 인물들에게 보내는 시선과 이들에게 부여한 이야기의 가장 깊은 곳에는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아무 문제도 없어'라는 위로가 담겨 있다. 그 위로가 느껴져서인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두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는 그 어떤 드라마 못지않은 감정적 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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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자연스럽게 예전에 썼던 '언브레이커블'에 관한 글을 찾아봤더니, 그 글 맨 끝에는 속편에 대한 바람이 있었다. 아, 이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언브레이커블'의 속편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엇? 설마... 이 둘이 만나는 3편도 가능하지 않을까?


1. 샤말란은 '더 비지트'로 재능이 죽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더니 오래 기다렸던 '언브레이커블'의 속편으로 이렇게 또 한 번 팬심을 자극하네요. 

2. 베티 버클리는 볼 때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생각 남 ㅎ

3. 안야 테일러-조이는 출연작들을 보니 제대로 본 영화들이 없더군요. 이번 작품으로 완전 매력에 빠짐

4. 엔딩 크레딧을 자세히 보면 총 24개의 엔딩 크레딧이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즉, 그의 새로운 자아가 탄생했다는 말?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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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2010)
언브레이커블 돋는 초능력자를 지지한다


고수라는 배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건 순전히 마스크 때문인듯) 반드시 봐야 겠다는 생각은 사실 없었는데, 그래도 '초능력자'라는 구미를 당기는 제목 때문에 극장에서 놓치면 나중에 후회가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보게 된 영화 '초능력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설프다, 유치하다 등등의 많은 평들과는 다르게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강동원, 고수라는 두 배우의 이름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이 영화는 (물론 '초능력자'라는 제목자체가 엄청난 정보이긴 했지만) 봉준호, 김지운 감독의 연출부였던 김민석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특히나 데뷔작임을 감안한다면 아쉬움보다는 가능성을 훨씬 더 많이 엿볼 수 있었던 취향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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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불운을 타고 난 '초인 (강동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평범하지만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또 다른 인물 '임규남 (고수)'의 이야기를 슬쩍 얹어 놓는다. 눈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자유자재로 조종 가능한 초인은 여느 때처럼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손 쉽게 돈을 훔쳐내는데,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과 만나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개 된다. 사실 초능력을 갖은 주인공과 이런 초능력이 유일하게 통하지 않는 또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설정을 들었을 때부터 M.나이트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이 얼핏 떠올랐었는데, 막상보고 나니 '초능력자'는 '언브레이커블'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즉, 다르게 말하자면 '언브레이커블'을 보았느냐 말았느냐에 따라 혹은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초능력자'에 대한 인상이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언브레이커블'을 히어로 영화의 중요한 줄기 중 하나라고 여기는 입장에서, 이를 충실하게 따르며 또 다른 정서까지 담아내려 했던 '초능력자'가 인상적일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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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이 히어로물의 세계관의 충실한 영웅과 악당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초능력자'도 얼핏보면 단순한 에피소드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바로 이런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언브레이커블'은 좀 더 서사적이고 신화적인 측면에서 무겁게 다룬 것에 비해, '초능력자'는 영웅의 탄생을 유쾌하고 가벼운 터치와 더불어 다른 문화적인 공기를 좀 더 담으려고 애썼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유쾌함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부분들 때문이라고도 생각이 되는데, 특히 규남의 친구들인 외국인들의 경우 한국말을 능숙하게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웃음의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이 패거리의 이야기가 그냥 웃긴 것으로 뭉뚱그려 지는 부분이 있었고 규남의 이야기 역시 거꾸로 돌아보면 영웅의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태생부터 능력 위주로 연출했던 초인의 이야기에 비해 관객들이 규남을 영웅이 되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본래부터 영웅이었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언브레이커블의 데이빗 던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더 심각한 분위기와 신화적인 내용을 담아내려 했다면 영화는 더 실패했을 지언정 어쨋든 히어로 물의 범주에서 논의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영화가 그려내려 했던 그 분위기와 문화적인 주변의 이야기가 '초능력자'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규남의 외국인 친구들의 경우 한국말을 능숙하게 한다는 것 자체와 마치 이 3인조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도색된 다마스 차량 그리고 폐차장에서 일하는 특성을 살린 각종 수공예 무기들과 후반부 만화적인 상상력마저 폭발하게 하는 부스터 개조까지! 이 3인조는 분명 독특한 분위기를 영화 전체에 제공하고 있다. 주류 사회에서 외면당한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또 다른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보여준 '킥 애스'를 연상시키게도 했는데, 결국 주류 사회를 믿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인 이들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해결해야만 하는) 나서는 모습은, 그리고 멍청해 보일 정도로 무심한 주류 사회의 모습은 이 영화가 숨기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서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내면의 것들을 다 무시하더라도 일수회사가 몰려 있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배경으로 한국청년과 터키, 가나 청년 이렇게 셋이서 (그리고 다마스!)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이런 요상한 감성을 좋아하는 이들을 마구 자극하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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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규남의 이야기만 했던 것 같은데 초인을 그려내는 방식도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영화는 초인 역시 완전한 악당으로 그리기 보다는 능력을 타고 났지만 그 능력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캐릭터로 그려내려 하고 있는데, 확실히 이런 영화의 의도는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초인을 연기하면서 좀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즉, 관객들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영화의 내러티브와 큰 상관없이 강동원이 연기한 캐릭터에 공감을 담게 되기 때문에, 악한 일들을 저지르지만 태생적 고통에 대한 여지를 저절로 얻게 된달까. 물론 이로 인해 적어도 동등한 비중과 공감대는 얻었어야 할 규남의 이야기가 오히려 덜 공감을 얻게 되어 영화가 전체적으로 꼬일 확률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이런 외부적 요인들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영화가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규남과 초인의 이야기를 모두 비중있게 다루려 했다는 점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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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 카메라 그리고 음악에 있어서도 상당히 의도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콘트라스트가 강한 영상은 장면 장면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음악 역시 상당히 장르화 되고 매우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다른 부족한 부분들을 힘으로 커버하고 있는 느낌이다. 카메라의 경우 한 2~30도 쯤 기울여서 찍은 장면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초인과 규남의 대결 구도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에 전체적으로 리듬감을 주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특히 규남이 임대리로서 첫 출근하는 날의 그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중 하나였다. 

아, 그리고 말 많은 규남의 엔딩 장면에 대해서는, 이 영화가 그냥 '초능력자'였다면 필요없는 과한 장면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언브레이커블'과 마찬가지로 영웅의 탄생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그리는 방식이 좀 세련되다기 보다는 너무 직접적이고 코믹하긴 했지만 (그런데 이렇게 오버스러운 연출이 오히려 귀엽고 이 영화를 더 오래 기억하게 할 것 만 같다), 이 장면이 있어야 '아, 그래서 규남이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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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쉬움 보다는 감독의 마니아적 취향과 정서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고, 유쾌함과 통쾌함도 느껴졌던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좀 더 세련된 작품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인 것도 분명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속편이 나온다면 아, 속편이 나온단 얘기 따윈 없었지. 하지만 유토피아 임대리가 매편 다른 초능력자를 상대하는 시리즈물로 기획된다면 어떨까. 그럴리 없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작품 '초능력자'는 갈수록 의미있는 '임규남 비긴즈'가 될지도 모른다. 순전히 개인적인 공상이지만.


1. '유토피아 임대리다!' 아, 이 대사가 주는 정서가 좋았어요. '유토피아'라는 회사 이름도 의미심장하고 말이죠 ㅋ

2. 많은 분들이 단순히 '왜 안죽어?'라는 의문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어요. 여기서 자유로워지면, 아니 왜 안죽는지를 인정하고 나면 영화가 좀 더 재미있어지는데 말이죠;

3. 몇몇 말깔나는 대사들이 있었어요. '엄마가 단추 끝까지 채운 놈들은 조심하랬어'라는 대사 같은거요. 김인권 씨의 애드립일 수도 있겠군요. 

4. 두 주인공 만큼이나 두 명의 외국인 친구들이 주는 인상이 컸어요. 단순히 유창한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넘어서서, 연기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아, 이 3인조를 오래 기억하게만 될 것 같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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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 Blu-ray Review)
코믹스 세계 속 선과 악의 탄생


'언브레이커블'은 '식스센스'로 영화 팬들의 주목을 한 껏 받았던 M.나이트 샤말란에게 바로 연이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었던 수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샤말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차라리 식스센스가 없었더라면'하는 입장인데, 그래서 그의 작품 중에 '식스센스'를 가장 안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이 평가는 최근 결국 보고야만 '라스트 에어벤더' 덕에 이제는 더이상 쓸 수 없는 표현이 되고 말았다. 어쨋든 개인적으로 샤말란의 작품에 개인적으로 흥미를 보이게 된 작품은 '식스센스'의 다음 작품인 2000년작 '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 이었다. 지금이야 '다크 나이트'부터 '킥애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와 방법론의 히어로 물들을 만나볼 수 있지만, 2000년 당시 '언브레이커블'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굉장히 흥미롭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당연히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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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 노골적으로 이 작품이 영웅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만화(Comics)에 관한 이야기임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언브레이커블'은 오래 볼 것도 없이 굉장히 코믹스 히어로물의 기본 세계관에 몹시 충실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야기 자체는 이미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로 대표되는 만화책에서 수없이 보아온 영웅담에 근거, 아니 이 영웅담을 현재로 가져와 그대로 새로운 신화를 다시 써내려간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평소 코믹스에 관심이 있던 이들이라면 이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게 된다. 동어반복이라 지루하게 느껴진다기 보다는, 처음 히어로물을 접하게 될 때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이야기는 우리의 주인공이 어떻게 탄생되게 되고, 주적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나'를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충실한 작품이다. 즉, 이런 기대를 한치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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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웅과 주적의 탄생부터 천천히 그려간다. 물론 주적으로 나중에 밝혀지는 '일라이저 (사무엘 L.잭슨)'의 경우, 처음부터 적임을 알리지 않을 뿐이다. 또한 영화는 서로 정반대에 있지만 같은 과정을 겪은 영웅과 악당의 성장과정을 짧지만 의미깊게 전달한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뒤늦게 받아들인 한 남자의 이야기와, 반대로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각각 회상과 시간 흐름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가 처음 주인공 만큼이나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일라이저'의 이야기다. 그가 주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히어로물이 그러하듯 주인공 히어로의 정반대에 선 주적은 태초에 그럴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경우가 많은데, '언브레이커블'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이런 탄생과 성장과정을 가진 캐릭터가 간혹 영웅으로 변모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듯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하다가 큰 사고나 상처를 받고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곤 하는데, 영화는 전자의 경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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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저'가 탄생부터 특별함을 타고 난 탄생 과정을 그린다면,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빗 던 (브루스 윌리스)'의 이야기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깨닫게 되는 것을 통해 탄생의 과정을 그려낸다. 샤말란은 이 작품을 써내려가는데에 있어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재탄생 시키는 것에 큰 공을 들이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다른 히어로물 들에 비해 주인공의 초능력이 과장되게 그려지는 것보다는 설득력있는 수준으로 묘사되고 있는 동시에, 데이빗이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되고 시험하게 되는 과정 역시, 일반인은 쉽게 들기 어려운 무게의 역기를 드는 것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참고로 M.나이트 샤말란의 특기라면 아주 공상과학적이고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그릴 때에, 과한 SF적 묘사보다는 스릴러와 서스펜스에 포커스를 두고 현실감있게 그려낸다는 점인데(그래서 태초부터 판타지인 '라스트 에어벤더'는 실패했는지도 모르겠다),  '언브레이커블'은 그런 면에서 친근한 이웃인 '스파이더 맨'보다도 훨씬 현실적인 히어로 물인 동시에, 코믹스의 세계가 갖고 있는 기본 설정은 모두 갖고 있는 또 다른 영웅신화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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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극중 코믹스에 정통한 '일라이저'라는 캐릭터를 통해 직접적으로 만화의 세계관 속 영웅과 악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마지막에 데이빗이 일라이저와 접촉하기 전까지는 그저 일라이저가 코믹스 세계에 빠진 인물로서, 초능력을 가진 데이빗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일종의 팬 혹은 조력자로 그려지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면 자신과 다르지만 같은 데이빗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려 했다는 것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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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이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바로 데이빗이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시험하고 활용하게 되는 첫 경험에 있다. 우리가 적어도 극장용 히어로물을 통해 보아온 영웅의 자각 순간들은, 어린 시절이나 사춘기에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게 되 좌충우돌하고 호기심 가득한 장면으로 묘사되거나, 혹은 자신의 초능력에 대해 놀라움을 느끼고는 곧 쉽게 적응하게 되는 것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이 작품 속 이 순간의 묘사는 조금 달랐다. 데이빗은 처음 자신이 아직까지 한 번도 다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이것이 사실임을 점차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자신이 영웅임을 확신하는 일라이저를 만났을 때에도, 도저히 들 수 없는 무게의 역기를 들고 난 이후에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계속 의심한다. 즉, 데이빗은 이미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이 훨씬 많고 이미 아이가 있는 어른이기 때문에, 이 같은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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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데이빗은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원활하지 못한 부부관계를 이제 막 다시 맞추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더더욱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와! 나에게 이런 초능력이!!'하며 기뻐 날 뛰기 보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동시에 그로 인해 변하게 될지도 모를 현실 (가족)에 대한 고민이 그 누구보다 컸던 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처음으로 기차역에가서 자신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초능력을 사용하는 장면은, 그 어떤 히어로의 첫 경험보다 경건하게 그려진다. 또한 이것이 마냥 신나는 일이기 보다는 상당히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라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나서 데이빗이 실제로 악당을 무찌르고 아이를 구하는 장면에서도 역시, 사건 해결으로 인한 성취감이나 영웅의 탄생에 어울리는 두근거림 보다는, 무언가 슬프고 쓸쓸한 감정이 짙게 깔려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히어로로서 첫 임무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신문을 보여주며, 작은 목소리로 '네 말이 맞았어'라고 이야기하며 울먹이는 장면은, 다른 히어로 영화에서는 보지 못한 특별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신문을 보여주며 '봐! 아빠가 해냈어!'라는 뉘앙스가 아니라, 데이빗도 아들도 서로 눈물 흘리며 그야말로 운명을 숙연히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 하나 만으로도 '언브레이커블'은 특별한 히어로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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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나이트 샤말란은 본 블루레이에 수록된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은 다른 영화로 치자면 서막에 해당되는 것이며 이런 방식일 경우 2편에서는 선과 악이 대결을 펼치고, 3편에서는 최후의 악당과 싸우게 되는 이야기로 발전된다고 하며, 자신은 이런 전개보다는 오로지 서막에 해당되는, 그러니까 한 인물이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어 이것만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샤말란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겠지만서도 '언브레이커블'의 이야기가 워낙 흥미로웠기 때문에 이 캐릭터들을 가지고 더 전개할 수 있는 속편이 나오지 않은 것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서막의 이야기로만 보자면 분명 뻔한 히어로물의 전개대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물론 아닐 뿐더러, '언브레이커블'이라면 당연히 이 공식대로 흘러가야만 한다) 다른 영화들과는 또 다른 감동이 기대되는 바인데, 여기서 멈춘 것 같아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언브레이커블'의 속편을 기대한다면 역시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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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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