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풀8 (The Hateful Eight, 2015)

타란티노의 첫 번째 오리지널 서부 영화



레드 락 타운으로 ‘죄수’를 이송해가던 ‘교수형 집행인’은 설원 속에서 우연히 ‘현상금 사냥꾼’, ‘보안관’과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거센 눈보라를 피해 산장으로 들어선 4명은 그곳에 먼저 와있던 또 다른 4명, ‘연합군 장교’, ‘이방인’, ‘리틀맨’, ‘카우보이’를 만나게 된다.  큰 현상금이 걸린 ‘죄수’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에게 ‘교수형 집행인’은 경고를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참혹한 독살 사건이 일어난다. 각자 숨겨둔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서로를 향한 불신이 커져만 가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증오의 밤은 점점 깊어지는데...  (출처 : 다음영화)


쿠엔틴 타란티노의 8번째 영화 '헤이트풀8 (The Hateful Eight, 2015)'은 그의 장기가 집대성 된 영화다 (아, 그 전에 헤이트풀팔 이라는 국내 제목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냥 증오의 8인 정도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관련 글 링크). 또 한 번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수다는 재료가 아니라 핵심이며,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 자유롭게 노는 것도 여전하다. 타란티노는 이미 전작들을 통햇도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장르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빌어 다양한 진화된 결과물을 보여주었었는데, 이번 '증오의 8인'이 전작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바로 오리지널리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헤이트풀 8'은 어떤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거나 오마주를 활용해 더 흥미로운 작품을 만든 경우가 아니라, 명백한 장르 영화로서 첫 번째 오리지널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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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롤이나 엔딩 크래딧 등만 보아도 이전 그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활용된 적이 있으나, 전작들에서는 말그대로 명확한 컨셉에 따른 선택이었다면 이번 경우는 어떠한 의도를 갖기 이전에, 그냥 진짜 서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성향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이번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이미 가장 많이 화제가 되기도 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어? 예전에도 타란티노의 영화에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은 많이 나오지 않았나?'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어쩌면 모리꼬네의 열렬한 팬이었던 타란티노의 선택으로 인한 일종의 삽입곡인 경우였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곡들 외에도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그가 선택하는 유명한 넘버들로 인해 사운드 트랙 측면에서도 매번 끝내주는 앨범을 선사하곤 했는데, 전작들의 사운드트랙이 컴필레이션 앨범에 가깝다면 이번 '헤이트풀 8'의 사운드 트랙은 오리지널 정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이 영화 만을 위해 새롭게 만든 스코어들은 앞서 언급한 첫 번째 오리지널 영화로서의 의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타란티노는 모리꼬네의 새로운 곡을 받고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 흥분이 스크린 밖까지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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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에 가까운 168분의 러닝 타임이지만 영화는 아주 한정된 공간만을 무대로 한다. 잡화상 건물 안에 각기 다른 이유로 오게 된 인물들을 가둬두고 챕터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제약을 가장 큰 장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 한정된 인물들이라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무기는 대화가 된다. 타란티노에게 대화 시퀀스란, 아니 수다란 가장 매력적인 도구이자 자신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도구가 아니던가. 타란티노는 이 수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장인답게 오로지 수다 만을 통해 각 인물들의 성격을 부여하는 동시에, 묘한 긴장감과 이야기의 복선과 반전 등을 이끌어 낸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고나면 서부 영화를 봤다는 느낌과 함께 한 편의 설화를 전해 들은 듯한 느낌이 남는다. 즉, 캐릭터가 빛나는 캐릭터 영화이기도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중심에 있는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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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풀8'은 제목의 요상함 보다도 그 화면비에 대한 이야기가 더 화제가 되었는데, 다행히 스타리움 관을 통해 최대한 감독의 의도에 가까운 화면비로 감상할 수 있었다. 타란티노는 오리지널 서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조금은 집착에 가깝게 고전적인 화면비율을 고집했는데, 일반적인 2.35:1 화면비가 아닌 울트라 파나비전 70렌즈와 70mm 필름 촬영을 통해 무려 2.76:1의 극단적인 화면비로 이 영화를 완성하였다. 요즘 관객들은 위아래로 가득 찬 화면비를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좌우로 길게 뻗은 시네마스코프 화면 만이 만들어 내는 영상미는 분명 존재하고, 또 압도적인 순간들을 만들어 낸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작품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타란티노는 와이오밍의 설원을 배경으로 인물들이 작게 언덕 넘어 등장하는 이 장면 하나 만을 위해서라도 아마 이 화면비를 고집했을 감독이다. 바꿔 말하면 이 장면은 최근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화면비를 선택한 것치고는 풍광을 담은 로케이션 장면이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인데, 하지만 잡화점 내에서도 이 화면비는 감독의 의도를 구현하는 데에 탁월한 영상을 선사한다. 타란티노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주로 인물들 간의 대화와 구도로 이뤄지는 영화의 내용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 될 수 있도록 이 화면비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1.85:1의 비스타비전 화면비에서는 다 표현되지 못하는 인물 간의 거리와 그 거리를 이용한 신선한 구도들은, 8명의 인물들이 이야기의 전개 과정 속에서 계속 구도가 달라지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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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데이지 도머그 역할을 맡은 제니퍼 제이슨 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타란티노의 영화 속에서 더욱 빛나는 여러 배우들 가운데서도 (마이클 매드슨, 커트 러셀, 팀 로스 등) 단연 돋보였던 제니퍼 제이슨 리는 이 작품의 상징과도 같다. 뭐라고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이 도머그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이고 심지어 사랑스럽게까지 만든 그녀의 연기는 진정 올해의 캐릭터로 꼽힐 만하다. 아마도 타란티노 만이 창조할 수 있었을 이 캐릭터를 구현해 낸 그녀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헤이트풀 8'은 지루하지 않다 (그녀는 심지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도 한다). 국내에서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미국에서는 도머그 성대모사도 나오지 않을까? ㅋ



1. 응답하라 시리즈의 라면처럼, 영화 속 스튜가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아, 그리고 이제 어디가면 커피는 좀 가려 마셔야겠어요.

2. 벌써 블루레이 국내 발매 소식이 전해졌는데, 무조건 구매입니다.

3. 사운드트랙도 구입했는데 오히려 타란티노의 전작 OST에 매력을 느낀 분들이라면 조금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어요. 본문에 쓴 것처럼 전작들은 삽입곡 위주의 컴필레이션 같은 구성이었다면, 이번엔 스코어의 성격이 더 강하거든요.

4. 아래는 이전에 썼던 타란티노의 최근 작 글들


* [블루레이] 장고 : 분노의 추적자 _ 울분을 토해내는 타란티노식 서부극

* 바스터즈 _ 타란티노가 말하는 내 생애 최고의 걸작

* 바스터즈 _ 블루레이 서플먼트 다시보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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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인 타임 (Back in Time, 2015)

백 투 더 퓨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화시켰나


지난 해 10월 21일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처'의 탄생부터 현재 이 작품이 갖는 의의에 이르기까지 진심으로 이 작품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제이슨 아론 감독의 '백 인 타임 (Back in Time, 2015)'이다. 최근 국내에 런칭한 넷플릭스를 둘러 보던 중 발견하게 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백 투 더 퓨처'의 팬들이라면 꼭 한 번 볼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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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른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백 인 타임' 역시 '백 투 더 퓨처'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시 시간 여행 영화라는 것의 이미지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스튜디오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던 일이나, 마이클 J.폭스의 스케쥴로 인해 결국 그를 캐스팅하지 못하고 에릭 스톨츠를 캐스팅하여 5주 동안이나 촬영을 진행했던 일이나, 관객들에게 처음 선보인 자리에서 마치 '스타워즈'같은 작품에서나 가능할 법한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얻은 일 등 '백 투 더 퓨처'에 관한 흥미로운 제작 뒷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마 이 영화의 열혈 팬들이라면 상당 부분 알고 있는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실제 제작에 참여했던 스텝과 배우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를 유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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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만 담겨 있다면 '백 인 타임'은 조금은 평범한 영화가 되었을 텐데, 그 보다 더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던 건 바로 '백 투 더 퓨처'의 열혈 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영화를 사랑하고 이로 인해 삶에 깊은 영감을 받게 된 팬들이 이 영화의 영향력 아래에서 어떠한 일들을 만들어 내고 삶을 살아갔는가에 대한 각각의 이야기는, 반대로 '백 투 더 퓨처'가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가를 다시 한 번 끄덕이게 만든다. 극 중 등장하는 타임 머신인 드로리안을 갖기 위해 혹은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나, 영화 속 호버보드를 실제로 연구하여 만들어 낸 팬들, 그리고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마이클 J.폭스와 함께 이 병의 치료방법 연구를 위해 자원봉사와 여러 사회활동을 해 나가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한 편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는지 알 수 있게 만든다. 즉, '백 인 타임'은 '백 투더 퓨처'의 여러 트리비아를 통해 흥미를 이끌어 내는 것에 그치는 팬무비가 아니라, 이 영화의 팬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사랑하는 영화를 얼마나 위대하게 만들었는지, 반대로 이 영화의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변화시켰는지를 소개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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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백 투 더 퓨처'의 팬들이라면 꼭 한 번 봐야 할 작품이라고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이런 다큐영화 감상으로는 드물게 뭉클해 지는 감동도 느낄 수 있었던, 여러모로 흐뭇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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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

3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감독판



이미 지난 11월 개봉해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로는 상당한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는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이 무려 50분 분량이 추가 된 '디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의 감독판으로 다시 개봉했다. 만약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고민할 것 없이 '디 오리지널'을 선택했을테지만, 이미 2시간 10분 버전의 '내부자들'을 보았고 아주 만족하지는 않았던터라 이 감독판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이 들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극장을 잘 못 찾아가서 시간이 되는 영화를 고르다보니)결국 이 3시간 분량의 감독판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부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는 지난 글을 참조하고, 이번에는 간단하게만 소감을 추가하고자 한다.




내부자들 _ 뜨거운 연기로 살려낸 암울한 현실 - 리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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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가 된 분량의 대부분은 안상구 (이병헌)와 이강희 (백윤식)에 관한 내용으로 특히 안상구가 어떻게 이강희를 형님으로서 믿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이 강조되었고, 이강희를 중심으로 한 조국일보의 기획회의 부분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일반판을 보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내러티브에 대한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는데, 충분한 시간을 부여 받은 감독판에서는 이러한 부족한 점이 확실히 보완된 느낌이었다.


2. 전체적으로 내러티브의 완성도가 높아지다보니 3시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은 물론, 이미 그 가운데 2시간 10분의 내용을 보았음에도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오프닝을 조상구의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한 것이 좋았고, 추가된 장면에 권력자들의 과한 접대 장면이 더 추가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 정도면 이미 충분했기에.


3. '디 오리지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조국일보를 배경으로 편집위원(?) 5인이 참여하는 기획회의 혹은 밀실회의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본편에서 아예 빠져 있던 시퀀스였는데, 그렇다보니 여기에만 등장하는 배우들은 아예 첫 출연이나 다름 없었다. 이 중에는 동룡이 아버지이자 학주 역할을 맡았던 유재명 배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명백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오마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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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고 메시지가 더 직접적이었다. 이전 리뷰를 하면서 말미에 '과연 우장훈이 강 건너로 가지 않을까?'라고 했었는데, 이번 감독판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이강희의 전화 통화 장면이 추가되었는데, 여기서 더 직접적으로 암울한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객들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이 마지막은 아마 '내부자들'이 가장 말하고자 했던 추악한 현실에 대한 메시지일 것이다.


5. 감독판에서도 달라지 않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병헌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끝내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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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에 신이 산다 (Le tout nouveau testament, The Brand New Testament, 2015)

현재의 사람들을 위해 다시 쓰는 성서



유럽 브뤼셀의 수상한 아파트, 그곳에는 못된 심보의 괴짜 신이 살고 있다. 어엿한 가정까지 꾸리고 있지만 인간을 골탕 먹이기 좋아하고, 아내와 자식들에겐 소리 지르기 일쑤,‘진상’ 그 자체가 바로 ‘신’이다! 심술궂은 아빠‘신’의 행동에 반발한 사춘기 딸 ‘에아’는 아빠의 컴퓨터를 해킹해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는 날짜를 문자로 전송하고, 세상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세상을 구원할 방법은 오로지 신약성서를 다시 쓰는 것뿐! 에아는 새로운 신약성서에 담을 6명의 사도를 찾아 나서는데… (출처 : 다음영화)


'제 8요일'과 '미스터 노바디' 등을 연출했던 벨기에 감독 자코 반 도마엘이 연출한 '이웃집에 신이 산다 (Le tout nouveau testament, The Brand New Testament, 2015)'는 '신(God)'이라는 존재를 빌어 현재의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신이라는 절대자의 존재는 영화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해 왔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신은 '이웃집에 산다'는 국내 개봉 제목처럼 그저 딸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사람의 남편으로 그려진다. 아, 하지만 아주 괴팍하고 불같은 성격이라는 점이 좀 다르다. 인간들을 사랑해서 창조했다기 보다는 심심해서 괴롭히는 것에 가까운데 이를테면, 줄을 서면 꼭 내가 서지 않은 다른 줄이 먼저 빨리 줄어든다던지, 첫 사랑이 나를 사랑할 확률은 0에 가깝다던지, 잼을 바른 식빵을 떨어트리면 꼭 잼을 바른 면이 바닥에 떨어진다던지 하는 것은 이 신이 만든 법칙으로 이런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을 만드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존재로 등장한다. 신의 딸이 그에게서 탈출해 인간 세상 벨기에 브뤼셀에 오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이 소녀가 만나게 되는 6명의 사도들은 하나 같이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혹은 장애로 인해 상처 받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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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사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듣는 과정은 마치 각각의 에피소드처럼 혹은 동화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녀의 존재는 우리가 현실에서 보지 못했거나 혹은 외면했던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영화는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신이라는 절대자의 활용을 이 여섯 사도와의 접점을 통해 흥미롭게 전개한다 (여기서 신이라는 존재의 진부함은 마치 '브루스 올마이티'처럼 전지전능한 능력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경우도 포함한다. 즉, 이 영화는 절대자적 신으로서의 익숙한 이야기는 물론, 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기존의 다른 이야기들과도 한 차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코 반 도마엘의 '이웃집의 신이 산다'를 대단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신이라는 존재와 죽음을 다루면서 일반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저 흥미위주로만 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큰 메시지와 감동을 전하는 것까지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 사도들의 이야기를 웃고 즐기는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편견을 버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데, 한 편으로는 지금의 시대와 세상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살고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도록 조금은 극적인 설정과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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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야기를 이미지와 음악 등으로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이 작품은 몹시 환상적이다. 21세기의 동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설정과 이야기, 그리고 이를 전달하는 이미지의 삼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금은 판타지적인 설정들이 등장하지만 결코 현실과의 거리를 멀리 하지 않아 여기에서 오는 이질감이 없고, 한편으론 익숙한 이야기임에도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스토리텔링에 주목하게 되며 마지막으로 이를 전달하는 영화적 표현력에 있어서도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놓이기 때문에 영화적으로 매력적이고 재미 요소를 가득 느낄 수 있는 동시에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 임에도 자연스럽게 전달해 내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사실 영화를 보는 중간에도 이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고는 있지만 감동까지 느끼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의 후반부 전혀 예상하지 않은 장면, 아니 한 줄의 텍스트에서 눈물이 왈칵 터져버렸다. 그저 동화 같기만 했던 이 영화가 완전하게 내 영화가 되는 순간이었는데, 계속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들려주는 듯 했던 영화는 바로 그 순간 내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눈물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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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 나오며 처음 들었던 생각은 요즘 보았던 '마카담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이 영화 역시 여러가지 볼거리도 좋았지만 그 근본에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래서 계속 다음, 다음을 궁금해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보니, 새삼스럽지만 이야기가 주는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기에 마치 미셸 공드리와 타셈 싱을 섞어 놓은 듯한 이미지와 연출 방식은 하나도 뺄 것 없는 내 취향으로, 이 영화를 더 오래 더 자주 꺼내보게 만들 듯 하다. 


1. 극 중 삽입된 'La mer'는 유명한 샹송곡인데 개인적으로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엔딩에서 워낙 인상 깊었던 터라 그 이후로 깊게 각인되어 이번 영화에서도 단 번에 알아챘다는! 이번 영화에는 (아마도) 샤를 트르네 버전으로 수록되었는데 그래도 훌리오 이글레아시스 버전이 더 강렬하긴 한듯 ㅎ




2.  블루레이가 꼭 나왔으면 좋겠네요. 블루레이로 꼭 봐야 할 만큼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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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담스토리 (Asphalte, 2015)

우연이 만들어 낸 외로운 이들의 판타지



아무런 정보 없이 저 포스터에 이끌려 보게 된 '마카담스토리 (Asphalte, 2015)'는 오랜 만에 만나는 작지만 따듯하고, 심플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품 같은 영화였다.




 ‘당신이 찍은 사진을 보고 싶어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수리비를 내지 않아 엘리베이터 타는 것이 금지된 40대 독신남 스테른코비츠. 밤에만 몰래 외출하던 그는 우연히 나이트 근무를 하는 간호사를 만나게 된다. 그녀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포토그래퍼 행세를 하고, 그 다음 날 같은 시간에 다시 그녀를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을 한다.  


‘우리 함께 영화 봐요’ 옆 집에 새로 이사온 여자가 궁금한 10대 소년 샬리. 시크한 그녀는 알고보니 왕년의 유명 여배우 ‘잔 메이어’, 라고 하지만 샬리는 그녀를 알 길이 없다. 그 둘은 잔이 출연한 영화를 함께 보기로 한다. 


‘오늘 저녁으로 쿠스쿠스 해줄게’ 낡은 아파트 옥상에 불시착하게 된 나사 소속의 우주 비행사 존 매켄지. 도움을 받기 위해 우연히 방문한 집에는 알제리 출신의 ‘하미다’가 살고 있었다. 불어를 모르는 미국인 우주 비행사와 영어를 모르는 하미다는 함께 쿠스쿠스 저녁을 먹기로 한다.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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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벤쉬트리 감독의 '마카담스토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예상과 달리 이야기 그 자체였다. 우주복을 입은 마이클 피트의 이미지를 보았을 때 미니멀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작품이 아닐까 했는데 (물론 이미지도 인상적이다), 그 보다는 같지만 다른 세 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유려하고, 각기 이야기가 완전히 독립되어 존재하면서도 하나의 공간에서 이뤄진 다는 것 이상의 메시지도 공유하고 있는 점은, 이 영화를 좀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 장점이라 하겠다. 세 가지 이야기를 짧은 시간 내에 시작하고 끝내는 것까지 하다보니 불친절한 것이 아닐까 오해하기 쉽지만, 이 영화는 불친절하기보다는 필요한 것 외에는 전혀 추가하지 않은 아주 미니멀한 구성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겠다. 또한 이런 미니멀한 영화는 자칫 이미지나 감성에 너무 기댄 나머지 영화가 스스로 취해 과잉으로 흐르는 경우가 잦은데, 감정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페이소스는 놓치지 않으면서도 과하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세 가지 이야기가 각자 마무리 될 때 이 세 커플의 이야기 모두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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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이런 비슷한 영화를 기다렸던 이들에게는 딱 맞아 떨어질 그런 영화임은 분명하다. 생각보다 여운이 더 길게 남을 듯한 영화.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감상하기에 참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1. 화면비가 풀스크린(4:3)으로 제공됩니다. 아마도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느낌을 더 극대화하고자 풀스크린을 활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2. 원제는 '아스팔트 (Asphalte)'인데 국내개봉 제목은 '마카담스토리'라 무슨 뜻일까 했는데, 마카담은 아스팔트 발명가의 이름이자 공법 이름으로, 프랑스 피카소 단지에 있는 한 낡은 아파트의 애칭이라고 하더군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아파트가 '마카담 아파트'가 되는 것이죠.


3. 극중 이자벨 위페르가 소년과 함께 보는 영화에 대한 정보가 크래딧에 나오기는 했는데 (1970년대 작품인걸로), imdb에도 정확한 정보가 나오질 않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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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올해의 영화 10편 그리고 올해의 한국영화 5편


2015년도 어느 덧 며칠 남지가 않았네요. 올해는 개인적으로 참 다사다난한 한해였는데, 그 만큼 영화도 더 간절해져서 더 많은 영화를 찾았던 것 같네요. 매해 이 쯤이 되면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영화들을 정리하는 글을 쓰곤 했었는데, 올해도 기록의 의미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야 알게 되었는데 지난 해에는 정리를 하지 못했네요. 지금 알았음;;;) 

올해의 영화 10편과 한국영화 5편을 별도로 선정하였으며, 각각 순위는 없습니다.



* 2015 올해의 영화 10편 (무순)




1. 내일을 위한 시간 / 다르덴 형제 (Deux jours, une nuit, 2014)


다르덴 형제가 객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풀어낸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40




2.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 조지 밀러 (Mad Max : Fury Road, 2015)


완벽한 성평등 영화이자 액션으로 내러티브를 완성해 내는, 아름답게 끝내주는 영화.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15



3. 버드맨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Birdman, 2014)


가끔 영화와 현실이 혼동되는 것으로 놀라움을 만들어 내는 영화들이 있는데, 올해는 이냐리투의 '버드맨'이 그랬다. 




4. 폭스캐쳐 / 베넷 밀러 (Foxcatcher, 2014)


올해의 영화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던. 아주 무겁고 스산한 분위기를 담아낸 걸작. 한참을 고생해서 레스링 라운드셔츠를 구한 노력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5. 더 비지트 / M.나이트 샤말란 (The Visit, 2015)


진작 이런 작품으로 샤말란은 돌아왔어야 했다. 장르적 쾌감이 절정에 다다른 작품. 공포와 재미의 전환속도가 몹시 빨라 두눈 질끈 감는 동시에 킥킥 거리게 만들었던 작품. 반갑다!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29





6. 투모로우 랜드 / 브래드 버드 (Tomorrowland, 2014)


투모로우 랜드는 분명 범적으로 올해의 영화 리스트에 들만한 작품은 못되겠지만, 취향저격이라고 해야할까. 순진에 가까운 순수함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던 영화. 아테나 역의 라피 캐시디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7. 마션 / 리들리 스콧 (The Martian, 2015)


영화 장인 리들리 스콧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싶은 화성을 배경으로 한 우주영화를 또 한 번 완성도 높게 그려냈다. 오락적으로는 물론이고 작품성 측면에서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수작.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17




8. 택시 / 자파르 파나히 (Taxi, 2015)


자파르 파나히의 '택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처한 현실의 이야기를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와 그의 나라가 어떤 현실에 놓여 있는지 현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영화는 올해 최고의 걸작이 된다.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53




9.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 드니 빌뇌브 (Sicario, 2015)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는 '제로다크서티'와 '카운슬러'를 하나의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놓지 않는 긴장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49





10. 바닷마을 다이어리 / 고레에다 히로카즈 (海街diary, 2015)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번에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평범하게 그리고 동화처럼 그려냈다. 언제 꺼내보아도 따듯해질 수 있는 코타츠 같은 영화랄까.



* 2015 올해의 한국영화 5편 (무순)






1.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A Midsummer's Fantasia, 2014)


장건재 감독의 이 영화는 제목이 참 좋다. 내용을 포장하고자 한 제목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더도 덜도 없이 표현해낸 제목. 그것이 '판타지아'라는 점이 놀라울 뿐.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1978




2. 극비수사 / 곽경택 (The Classified File, 2015)


사실 기대가 크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보고나서 곽경택 감독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감명 받았던 영화. 유해진이 최근 출연한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았던 영화이기도 한. 실화의 감동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진심이 묻어나는 수작.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1977




3. 베테랑 / 류승완 (Veteran, 2014)


류승완의 '베테랑'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작가가 무언가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할 때 그 방식을 어떻게 가져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가에 관한 대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이었다. 액션과 오락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현실의 메시지를 많은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영화.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1994




4. 검은 사제들 / 장재현 (The Priests, 2015)


엑소시즘을 다룬 한국영화가 이 정도의 재미와 퀄리티를 가질 수 있다면 더 무엇을 바라랴. 강동원의 캐스팅은 영화와 배우 모두에게 효과적인 선택이었으며, 속편이 가장 기다려지는 한국영화다.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42




5. 나쁜 나라 / 김진열 (Cruel State, 2015)


'위로공단'은 올해의 한국영화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세월호 유가족들과 이 나라의 현실을 다룬 '나쁜 나라'를 선택했다. 조금이나마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길 바라며.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51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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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 (大虎, 2015)

모노노케 히메의 향기를 느낀 조선 호랑이 설화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의 각본을 쓰고 '신세계'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박훈정 감독의 신작 '대호'를 보았다.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지리산 산군으로 불리는 호랑이를 잡으려는 일본 군과 한 때 조선 최고의 포수로 불리웠던 천만덕(최민식)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대호'는 무엇보다 호랑이라는 존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영화가 호랑이를 다루는 방식은 마치 배우, 그것도 최민식에 버금가는 비중의 캐릭터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점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지점이다. 왜냐하면 극중 천만덕과 일본군들이 대표하는 세계와 산군 호랑이가 대표하는 세계가 서로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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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의 핍박 받는 삶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 3국의 관객들이 본다면 공생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이 시대 배경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즉,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처럼 이 시대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이 구도를 써먹지 않는 다고 보기도 어렵다. 영화는 오히려 이 호랑이와 명포수였던 천만덕의 캐릭터에 집중하여 스토리를 천천히 전개해 간다. 다시 말해 호랑이가 등장한다고 했을 때 중후반부에 가서야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했으나, 천만덕의 등장이 그랬던 것처럼 초반부터 등장하여 캐릭터 소개와 자신 만의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최민식이 연기한 천만덕 만큼이나 공감대를 형성이 가능한 구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박훈정 감독의 '대호'가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호랑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배경 혹은 상대로서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에 가까운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흔치 않은 구도로서 호불호와 상관없이 일단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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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천만득의 세계과 호랑이의 세계가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것의 장점이라면 바로 그 다른 두 세계가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인간 캐릭터 못지 않은 성격을 갖게 되면서 마치 동물농장에나 나올 법한 (이건 결코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감동적인 스토리가 가능해졌는데, 개인적으로도 고양이를 오래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동물과의 교감이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극적인 상황 속 인간과 호랑이의 교감을 묘사하는 방식이 너무 판타지 같이, 그러니까 유치하지 않게 묘사된 건 분명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다. 이런 시도는 흔히 너무 순진하게 묘사한 나머지 유치하고 설득력을 얻지 못하게 되는, 그래서 갑자기 너무 심한 판타지로 빠져버리게 되는 경우가 잦은데 '대호'는 그렇지 않고 그 다른 세계 간의 조우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같은 경우는 호랑이에게 더 깊은 공감대를 느꼈을 정도로 이 캐릭터의 묘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CG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부 액션 장면에서 살짝 이질감이 느껴지는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전혀 극의 몰입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였다. 호랑이가 배경으로 살짝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주연급으로 다양한 액션과 표정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다수의 늑대 때가 등장하는 장면까지 여러 CG가 동원 되었는데, 그간 한국 영화의 CG에 비교하자면 괄목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종병기 활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반대로 이 호랑이가 중심이 된 내러티브가 꽤 괜찮았기 때문에 일본군과 포수대의 이야기, 그리고 천만덕의 이야기까지, 인간 세계의 내러티브가 상대적으로 아쉽게 느껴졌고 그렇다보니 조금은 부수적으로, 특히 엔딩에 가서는 차라리 하나의 이야기로 빠르게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단순히 긴 러닝 타임 때문이 아니라 중후반부의 전개는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빠르게 하나로 만들기 보다는 아직도 각각의 이야기를 한참 더 하는 식이여서 오히려 몰입도가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한참을 호랑이 중심으로 전환 없이 전개하다가 다시 천만덕의 이야기가 등장하니, 마치 영화가 끝날 시점을 지나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후반부의 선택과 집중이 더 효율적으로 이뤄졌더라면 좀 더 오래 남는 영화가 되었을 것 같은데, 호랑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기에 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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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덕의 캐릭터와 포수대의 이야기가 나쁜 것은 아닌데, 호랑이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다보니 차라리 더 호랑이 중심의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보다 10배는 더 슬픈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도 호랑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정도지만.


1.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영화는 다름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였어요. 그런 느낌이 적지 않은데, 아예 진짜 그렇게 가버렸더라면 초명작이 되거나 망작이 되긴 했을듯. 천만덕의 아들을 산군 호랑이가 어렸을 때 부터 키워서 나중에 명포수인 천만덕과 호랑이 손에 자란 아들이 만나게 되는. 호랑이가 말도 하고. 으하하;;;


2. 천만덕과 아들의 대화 시퀀스가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구수한 사투리와 유치하지 않은 대화와 유머가 재밌었다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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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2015)

새로운 삼부작의 시작



조지 루카스로 부터 메가폰을 물려 받은 J.J.에이브람스가 새로운 스튜디오인 디즈니에서 만든 새로운 스타워즈 영화인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를 드디어 보았다. 전설이 된 클래식 삼부작인 에피소드 4,5,6편과 찬사보다는 비판을 더 많이 받았던 프리퀄 삼부작 에피소드 1,2,3편에 이어 만나게 된 에피소드 7은 기존 프리퀄 삼부작과는 또 다른 의미로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드는 시리즈일 수 밖에는 없었다. 이미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을 통해 성공한 덕후로서 완벽한 리부트를 성공시킨 J.J.에이브람스가 연출을 맡았다는 것은 걱정보다는 기대와 믿음을 더 갖게 되는 부분이었지만, 프리퀄 삼부작과는 달리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야 하는 이번 삼부작의 첫 번째 영화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될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드는 부분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새로운 삼부작을 시작하는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는 올드 팬들의 향수와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앞으로의 이야기에 또 한 번 귀 기울일 만한 장을 마련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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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의 '스타워즈'는 명백하게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 새로운 희망'을 레퍼런스로 삼고 있다. 삼부작의 첫 번째 영화였던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의 캐릭터와 구성을 레퍼런스로 삼아 새로운 삼부작의 시작을 하고 있는데,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기존 팬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무리한 새로운 이야기를 확장했을 때의 위험 보다는 조금 안전하면서도 충분한 만족을 주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즉, 에피소드 4를 비롯해 클래식 삼부작에서 많은 것을 차용한 이번 '깨어난 포스'는 새로움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아마 '새로운 희망'을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이번 스타워즈의 줄거리를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J.J는 단순히 스타일 뿐만 아니라 줄거리와 캐릭터, 구성에 이르기까지 아주 깊은 수준으로 레퍼런스를 활용하고 있다. 이 부분은 정확히 반대의 경우 즉, 단점으로도 받아들여 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기존 클래식 삼부작을 내러티브 측면으로 보았을 때 그리 완벽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연성 측면에서는 클래식 삼부작 역시 헛점이 많은 편인데 그런 점들까지 이번 '깨어난 포스'는 그대로 참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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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으로 볼 수 있는 측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확실히 앞서 언급한 개연성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는 편이다. 팬의 입장에서 보아도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설정이나 생략도 등장하고 (이를 테면 카일로 렌과 레이의 듀얼 장면 같은 경우), 조금은 허무하게 마무리 되는 감이 없지 않은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점들이 큰 단점으로 여겨진다면 이번 '깨어난 포스'는 유쾌하게 즐기기 힘든 영화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것은 단순히 이번 '깨어난 포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리퀄 삼부작은 제쳐두더라도 클래식 삼부작 역시 비슷한 개연성 부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는 몹시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였다.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작품인데도 말이다. '새로운 희망'과의 유사점을 몇 가지만 들어보자면 일단 캐릭터 구성에 있어서 카일로 렌은 다스 베이더와 연결되고, 레이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포 다메론의 캐릭터는 한 솔로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으며, 이번에 등장하는 나이 든 한 솔로는 오비완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각 캐릭터의 히스토리가 아니라 각 작품에서 이 캐릭터들이 맡고 있는 구성상의 역할을 보자면 그러하다. 특히 이번 새로운 삼부작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레이 역할의 경우 루크 스카이워커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유사점을 드러낸다. 거의 루크의 테마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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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레퍼런스 참고는 부정적으로 보았을 때 답습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나는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재현으로 바라보고 싶다. 답습도 재현의 범위 안에 든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번 재현은 팬으로서 오히려 반가운 재현이었다. 더군다나 에피소드 7의 타임 라인 상 기존 시리즈의 캐릭터들이 몇몇 겹쳐서 등장하게 되어 있는데, 그 주인공들이 새로운 시대의 스타워즈를 통해 재현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적인 사실이라는 걸 J.J는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새로운 엑스 윙 편대와 밀레니엄 팰콘호가 함께 작전을 하는 장면이나 스타워즈 상징 중 하나인 R2-D2와 새로운 삼부작의 상징이 될 BB-8이 마주하는 장면은, 새로운 스타워즈가 어떠한 성격을 갖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또한 영화가 포스를 말하는 장면들은 하나 같이 인상적이었는데, 영화 제목처럼 포스가 깨어나기 직전의 시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솔로나 레아 등의 캐릭터가 포스에 대해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스타워즈 삼부작도 기존과 화법을 달리하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즉, 단점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들까지도 이 프랜차이즈 만의 성격으로 규정하고 가져가겠다는 일종의 선언 처럼 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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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 스타워즈가 팬으로서 좋았던 건 기존 영화들처럼 여백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누군가에게 이 여백은 개연성 부족이라는 단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스타워즈라는 세계관을 미뤄 보았을 때 영화에서 다 말하지 않은 여백들을 다른 다양한 방법들, 애니메이션이나 단편, 외전, 게임 등을 통해 채워주거나 더 나아가 팬들 스스로가 확장 시켜나갈 것이기 때문에, 영화가 모든 공간을 꽉꽉 채우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명확히 영화가 삼부작의 시작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만한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머지 두 영화 역시 에피소드 5,6편을 그대로 참고해도 나쁘지 않을 듯 한데 (어느 정도 이미 그런 테크를 타고 있기도 하고), 이번 '깨어난 포스'에 대한 더 정확한 평가는 나머지 두 작품이 완료된 후에 가능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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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다 말하지 못했지만 이번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는 스타워즈의 오랜 팬으로서 (심지어 에피소드 1,2도 그럭저럭 본 입장에서) 평가나 분석 이전에 감동이 먼저 밀려드는 영화였다. 첫 타이틀이 등장했을 때, 존 윌리엄스의 가슴을 치는 그 유명한 테마곡이 처음 흐를 때, 밀레니엄 팰콘호와 한 솔로, 츄이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스타워즈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테마곡이 흐를 때.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가슴이 떨려 왔다. 이미 스타워즈는 내게 그런 영화였다. 아마 내가 클래식 삼부작을 인상 깊게 보지 않았더라면 프리퀄 삼부작은 물론, 이번 에피소드 7 역시 아쉬움이 더 많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랜 팬으로서 이번 '깨어난 포스'는 앞으로의 새로운 삼부작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매력과 감동을 지닌 작품이었다.



1. 이 영화를 보고 '인사이드 르윈'을 다시 보면 재밌을 것 같네요 ㅎ

2. 여주인공 레이가 예고편이나 포스터만 봐서는 별 매력이 없어 보였는데, 매력이 있어요! 표정이 좋아요.

3. 스타워즈의 여러 인상적인 디자인들 가운데서도 역시 최고는 밀레니엄 팰콘인듯. 이번에 아주 최신 CG기술을 동원한 화려한 팰콘호의 액션이 볼 만 했다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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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Taxi, 2015)

영화는 죽지 않는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 '택시 (Taxi, 2015)'는 그 이면을 반드시 돌아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감독이 직접 출연해 택시기사로 분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택시 안에서 만나고 한 편으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대화들이 담긴 이 영화는, 이란 정부로부터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어 해외출국금지 및 20년간 영화촬영이 금지 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그 상황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려 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촬영할 수 없게 된 그는 택시 기사로 분해 테헤란 시내를 돌아다니며 승객들로 분한 지인들과 함께 이 위대한 영화를 완성해 냈다. 그가 택시 안에서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한 편으론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현재 이란의 현실에 대한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처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예술가로서 영화 감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자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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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정세와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단 번에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 입장에서는 그냥 느껴지는대로 영화를 한 번 감상하고, 그 다음에 이란의 현실과 감독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처한 상황에 대해 정보를 찾아 본 뒤 다시 한 번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보았을 때도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다큐멘터리 사이에 있는 듯한 영화는 어렵지 않고 제법 즐겁게 감상할 수 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은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택시'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기 때문이다. 배급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어린 조카의 이야기나, 감독과 뜻을 함께 하는 인권 변호사의 이야기, 불법 DVD를 판매하는 몸이 불편한 남자의 이야기 등 이 작은 이야기와 대화 속에는 한 편으론 농축되어 있고 한 편으론 직접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참고로 극 중 등장한 조카는 실제 감독의 조카이고, 인권 변호사로 등장한 여성 역시 실제 인권 변호사인 나스린 소투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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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현실을 리얼리즘 방식으로 담아냈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택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같은 배경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메시지가 되었다. 또한 자신과 자신의 조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생존해 내는지 그리고 우리가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까지. '택시'는 전달해 냈다. 생각할 수록 대단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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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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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 (Cruel State, 2015)

미약한 촛불이 불꽃으로 타오르길



여기 나쁜 나라가 있다. 극장에서 흔히 보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모 기업의 자랑스러운 나라. 생명이라는 존재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나라가 있다. 기업의 광고처럼 차라리 그 자랑스러움을 잊고 있었던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리고 냉정하게도 그 나라는 바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갔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같은 배를 타고 있던 일반인들까지, 수 많은 생명들을 깊은 바닷 속에 묻어야 했던 세월호 사건은 지금까지 내가 현실에서 겪었던 어떠한 사건들 보다도 충격적이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아팠던 참사였다. 그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이제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관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 (Cruel State, 2015)'를 만나게 되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가 제작한 '나쁜 나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 소중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어떤 현실과 싸워야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차지만, 자식 잃은 부모가 거리로 내몰려 단식하고 더위와 추위와 싸우며 목이 터져라 울부짖고, 삭발하고, 무릎 꿇어야 했던 슬프지만 현실인 기록이다.



ⓒ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All rights reserved


흔히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두 번의 대통령을 겪게 되면서 이 말은 결코 통용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모르는 것은 죄고, 알고자 하지 않은 것 역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일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기업의 비리나 일부 선원들의 잘못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만약 거기서 끝났더라면 어쩔 수 없었던 참사로 기억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참사가 벌어진 그 순간부터 국가가 국민들을, 그것도 생명을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대했는가에 대한 것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될 더 참혹한 참사가 되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알 수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어도 틀린 것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정치라는 것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싸우는 과정이라 할 지라도, 인간의 생명이나 죽음 앞에 섰을 때는 그 어떠한 정쟁도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는 것. 더군다나 그 모든 과정의 기회를 이미 스스로 놓쳐버린 세월호 참사의 경우라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유가족들,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사고의 정상적인 수습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인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행동이라는 것은 솔직히 양심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기본적인 상식 중의 상식,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나쁜 나라의 정부에겐 정말 최소한의 무엇. 양심이라고까지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아주 기본적인 것을 하지 않고 슬픔에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상처를 짓누르는 더 큰 고통마저 주었다. 오죽하면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이 나왔을까. 국가가 나서서 바닷 속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구해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죽하면 부모들이 내가 직접 바닷 속으로 뛰어드는 걸 막지만 말아달라고 했을까. 잘못돼도 너무 잘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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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것은 죄다. 모든 눈과 귀가 막혀버린 현실에 진실을 알고자하는 길을 더 번거로워졌지만, 번거롭다는 사사로운 이유로 외면하기엔 이건 너무 명핵히 우리, 아니 나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도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건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광화문에 수십만명이 모여도 그건 맨날 데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그냥 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그냥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또 그냥 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과연 이들의 이야기가 그들 만의 이야기일까.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다 운동권이고 (요새 운동권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본래 사회 불만 세력이고, 정부나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랬던 시절도 있었을지 모른다. 국가의 횡포가 일부에 한했을 때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일로 인해 거리의 투사가 되는 현실. 나는 이 같은 점이 가장 슬프다.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시위라는 것 근처에도 가본 적도 없는 것은 물론, 시위로 인해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이 오히려 불만이면 불만이었던 사람들. 뉴스에 시위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건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 그저 수학여행 간다는 아이한테 용돈 더 못 챙겨줘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한 사람의 엄마가 어쩌다가 짧은 머리로 수십만명이 모인 광장에서 그 어떤 투사보다 강하고 큰 목소리로 투쟁을 외치게 되었을까. 내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의 일들을 모르는 것은 죄다. 내가 이렇게 되고 나서는 이미 늦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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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는 그런 의미에서 꼭 알아야 할 진실이다. 기록이다. 사람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실제로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보낸 500일 넘는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가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유가족이 아닌 이들이 보낸 500일이라는 시간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시간의 깊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한 줄 기사로만 보았던 일들의 이면에는 얼마나 깊은 고통과 인내의 쓰디쓴 시간이 있었는 지를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예전 광우병 문제로 광화문 과장에서 작은 촛불을 들고 행진에 시민들과 함께 가담했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무참히 발포한 물대포 때문도 아니었고, 곧 죽일 듯이 달려드는 전경 들의 모습도 아니었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으로, 시청에서 다시 명동으로 행진했을 때 명동에서 만난 현실 때문이었다. 광화문과 시청에서 촛불을 들고 모인 이들의 분위기와는 달리, 명동의 밤거리는 쇼핑을 하고 저녁 시간을 즐기러 온 또 다른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은 '그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 때의 명동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바로 옆에선 모두가 촛불을 들고 있었던 것에 반해 이 곳은 너무 평화롭고 들떠있고 즐거워 보였다. 관심 없는 이들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언가 몹시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난 그저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몇 번 촛불을 들었을 뿐이었는데도 이 날의 다른 공기는 몹시 서럽게 느껴졌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요 근래에도 느낀다.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면 지겹다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피로감에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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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만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유가족과 실종자가족들 뿐일 것이다. 그들이 그만하기 전에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폭력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 '나쁜 나라'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세월호 참사 500일이 더 지난 지금에도 이 나쁜 나라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쁜 나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 시간 동안 미약하나마 생겨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내 일처럼 나서서 돕고자 하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서명 운동에 참여하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 기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말하고자 한다. 만약 이 영화가 단순히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나 비판으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면 그 이상의 희망은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더 많은 국민들이 잊지 말고 함께 해줄 것을 죄송하게도 조심스레 묻는다. 그래서 미약한 촛불이 언젠가 꼭 불꽃으로 타오르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각자가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 부터 시작하면 언젠간 불꽃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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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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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Sicario, 2015)

범죄와 현실의 가운데서



사상 최악의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미국 국경 무법지대에 모인 FBI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와 CIA 소속의 작전 총 책임자 맷(조쉬 브롤린), 그리고 작전의 컨설턴트로 투입된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극한 상황 속, 세 명의 요원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숨쉬는 모든 순간이 위험한 이곳에서 이들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출처 : 다음 영화)


드니 빌뇌븨 감독의 '시카리오 (Sicario, 2015)'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을 배경으로 거대한 마약 조직인 카르텔과 이를 소탕하려는 CIA를 비롯한 미국 정부 조직을 중심으로 한 소탕 작전을 그린다. 그리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이 작전의 한 가운데에 마약국 소속은 아니지만 현장 경험이 풍부한 FBI 요원인 케이트를 등장시킨다. '시카리오'에서 케이트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범죄 조직도 이를 소탕하려는 정부 조직도 서로의 이익을 위한 현실적인 것에 만족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종의 이방인 격이자 아직 이상적인 바를 주장하는 케이트는, 이 현실을 다시금 바라보고 질문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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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문은 권력이나 힘, 혹은 균형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했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팔아 넘기는 마약 범죄 조직은 잔혹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를 소탕하고자 하는 정부 조직의 행동이나 방식이 과연 그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조금 진부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참혹한 살인을 지시하고 행하는 범죄 조직원들이나 우두머리도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가족에게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상대적으로 주인공의 편에 서 있는 이들의 냉정함을 들어 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또한 주인공 케이트에 대한 시선 역시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녀가 꿈꾸는 합법하고 이상적인 방법들이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 다는 것. 법과 이상대로 범죄 조직을 어떤 피해나 시간이 들더라도 모두 소탕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또한 가능한 것인지를 묻고, 결국 소탕하지 못한다면 관리 하에 두는 일종의 타협안을 수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영화는 답하기를 유보한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럼에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담론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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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 '시카리오'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범죄 스릴러다. 마치 리들리 스콧의 '카운슬러 (The Counselor, 2013)'를 연상시키는 범죄 조직과 현실의 공포와 무게감, 그리고 캐서린 비글로우의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 2012)' 못지 않은 작전 과정의 치밀함과 디테일한 묘사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접하고 있는 범죄조직과 첩보조직과의 관계와 사건들을 실제하는 현실이라는 것으로 체감할 수 있게 만든다. 에밀리 블런트, 조쉬 브롤린, 베니치오 델 토로의 연기는 과장됨이 없어 더욱 섬뜩하고 현실적이며, 최근작 '스카이폴'에서 정말 멋진 영상을 선사했던 로저 디킨스의 촬영 역시 이 작품의 손꼽을 만한 매력 포인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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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타카의 레드필]

국적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개봉 영화 제목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살아가는 이상 많은 영어권 영화를 즐기려면 누군가가 번역한 버전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영어가 유창하면 어느 정도 자막 없이도 즐길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막 없이 외국 영화를 즐기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자막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영화의 첫 번째 이미지이자 메시지인 제목에 관한 것이다. 국내 개봉하는 외국 영화 제목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성격을 달리 해왔는데, 예전에는 오역이 잦았을 정도로 너무 과한 해석이 들어간 제목이 많았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영어 제목을 그대로 쓰되 발음나는대로 그대로 쓰는 형태가 거의 체감상 대부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많아졌다. 예를 들어 리들리 스콧의 '마션 (The Martian)' 같은 작품의 경우 '화성인'이라는 형태로 쓰지 않고 소리나는 그대로 '마션'이라고 쓰는 형태가 거의 주를 이루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최근 개봉 외화들의 제목들을 보니 거의 번역 된 형태의 제목이 없을 정도로 대부분이 이런 형태였다. '마션' '하트 오브 씨' '스파이 브릿지' '몬스터 헌트' '사일런트 하트' '더 랍스터' '프리덤' '재키 앤 라이언' '세컨드 마더' '싱 오버 미' 등, 오히려 '이민자' '하늘을 걷는 남자' 등 번역한 제목을 찾아 보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방식의 제목 짓기는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본래 감독이 의도한 제목의 의미를 전달 받을 권리를 빼앗겼다는 점이다. 이건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그 영어 단어가 쉽고 어려움을 떠나 100% 의미가 전달된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예를 들어 '마션'이 '화성인'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확실히 받아 들이는 느낌상 '마션'과 '화성인'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은 의미인데 말이다. '하트 오브 씨' 같은 경우도 별로 어려운 단어들은 아니지만 이것을 과연 대부분의 관객들이 '바다의 심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 랍스터' 같은 경우도 '바닷가재'라는 제목이었다면 아마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것도 분명 영어 제목의 뜻, 그러니까 영어 권의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바닷가재'일텐데 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제목이 익숙해지면 질 수록 점점 더 본래 원제가 갖는 의미와 발음나는 대로 표기한 제목의 전달되는 느낌의 차이가 커지게 된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도 이미 어느 정도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진행된 듯 하지만). '언브레이커블' 이라고 하면 뭔가 발음도 멋지고 느낌적인 느낌도 멋져 보이지만 실제로 이 제목을 보고 '깨지지 않는'을 연상하는 이들의 수가 많지 않고, 이런 현상은 추가적으로 'unbreakable'과 '언브레이커블'이 다른 느낌으로 사용되는 지경에 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발음대로 쓴 제목과 해석 된 제목을 나란히 놓았을 때 말그대로 발음이 주는 느낌 혹은 외형적, 디자인적인 표기상의 느낌의 차이만 있어야 하는데, 점점 더 의미상의 차이까지 가져오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라는 언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관객들이 쉽게 해석할 수 있는 언어라는 점도 그렇고, 이렇게 이미 흘러온 시장의 특성상 100% 우리말로 해석한 제목을 내어 놓았을 때 오히려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생경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를 홍보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땐 이런 위험을 감수하기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아쉬운 제목들이 있다. 일단 첫 번째로 단순히 느낌만 강조해 아주 쉬운 영어도 발음대로 쓴 경우다. '파터 앤 도터' 같은 경우가 그러한데, 그냥 '아버지와 딸'로 번역해도 충분했을 제목을 '파터 앤 도터'로 번역아닌 번역 한 것은 참 씁쓸함마저 든다. 기대작인 타란티노의 신작 'The Hateful Eight'도 마찬가지다. 그냥 '증오의 8인' 정도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헤이트풀 8'이 도대체 무슨 제목인가. 헤이트풀 1~7편까지 봤냐는 농담이 나오는 것도 그냥 웃을 일만이 아니다. 뭐 제목 얘기 나올 때마다 회자되곤 하는 우디 엘런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같은 말도 안되는 해석도 물론 큰 문제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불륜영화로 첨부터 예상하고 본 관객들은 아마 대한민국 관객 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또 다른 황당한 경우로는 발음대로 쓴 영어 제목인데 실제 원제목과는 다른 경우도 들 수 있겠다. 그런 제목의 영화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데 가짜 예를 들자면 본래 제목은 'Amy'인데 국내 개봉 제목은 '더 걸 오브 론리' 같은 식이다 (에이미는 다시 말하지만 가짜 예).


불만들을 가득 쏟아냈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실제로 현장에서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또한 갑자기 중국식으로 모두 한국어화 하자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본래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의도를 퇴색시키지 않는 수준에서 최대한 우리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과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요새 외화 개봉 제목들을 보면 몇몇은 너무 성의 없고 그저 멋만 부리는 (그런데 웃기는 건 별로 멋지지도 않다는 점) 이상한 제목들이 너무 많아, 조금만 더 있으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조차 쓸데없는 일이 될 것 같아 글을 썼다.


생각해봐라. 강동원을 좋아하는 해외의 팬이 '검은 사제들'을 자국에서 보게 되었는데 그 나라의 개봉 제목이 'The Priests'가 아닌 'Geomeun Sajaedel'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우리는 웃지 않을까?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크림슨 피크 (Crimson Peak, 2015)

더 아프고 더 차가운 유령 드라마였다면...



유령을 볼 수 있는 소설가 지망생 ‘이디스’(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상류사회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으며, 글쓰기 외의 다른 것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영국 귀족 ‘토마스’(톰 히들스턴)를 만나게 되고, 둘은 순식간에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아버지 ‘카터’의 만류에도 불구, 이디스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영국으로 향한다. 아름답지만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저택 ‘크림슨 피크’와 토마스의 누나 ‘루실’(제시카 차스테인)이 그들을 맞이한다. 이디스는 낯선 곳에 적응하려 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존재들과 악몽 같은 환영을 마주하게 되고, 그녀 주변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게 되는데… (출처 : 다음 영화)


길예르모 델토로가 연출하고 톰 히들스톤, 제시카 차스테인,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출연한 공포/멜로 드라마 '크림슨 피크 (Crimson Peak, 2015)'는 배우들에 대한 믿음과 감독의 대한 믿음으로 보게 된 영화였다. 마치 팀 버튼 영화 같은 비주얼을 하고 있는 영화는 공포와 멜로를 조합한 드라마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기대되는 바는 역시 토토로, 아니 델토로 감독이라는 점이었다. 뻔한 멜로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어떤 생경한 비주얼을 보여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기대하는 바였는데, '크림슨 피크'는 한 편으론 뻔한 공포/멜로 드라마들 보다 더 나아가지 못했고, 다른 한 편으론 그들에게는 없었던 부분을 충족시켜 준 만족과 아쉬움이 딱 절반씩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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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피크'는 비밀을 갖고 있는 남매인 토마스 (톰 히들스톤)와 루실 (제시카 차스테인)이 이디스 (미아 와시코브스카)에게 접근하여 자신들의 저택인 크림슨 피크로 오게 되면서 겪게 되는, 비밀스럽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진짜일지 가짜일지 모를 토마스와 이디스의 멜로가 섞여 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이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 연출자가 길예르모 델토로라는 점에서 특별히 기대했던 점은, 멜로가 중심이 된 일반적인 드라마가 아닌 공포와, 특히 배경이 되는 크림슨 피크 저택의 활용 비중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로맨스의 비중은 생각보다는 컸으나 절절한 로맨스 드라마로 보기엔 부족한 수준이었고, 델토로 감독이 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후자의 경우도 무언가 하다 만듯한 느낌을 주는 수준이었다. 차라리 한 편의 연출 비중이 더 커서 컨셉을 확실하게 잡는 편이 더 나은 작품이 되었을 듯 싶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강조된 경우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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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델토로는 멜로와 공포, 그리고 본인이 공포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 큰 덕목으로 생각하는 슬픔을 함께 구성하려 했는데, 그것보다는 확실히 깊은 슬픔이 담긴 공포로 집중하는 편이 더 색깔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확신)한다. 예를 들면 토마스와 이디스의 멜로를 넣지 않고 실제로 토마스가 이디스에 대한 사랑 역시 자신과 루실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고, 그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이 무서운 두 명에게 맞선 이디스는 다름아닌 바로 크림슨 피크에서 죽음을 맞아 유령이 된 토마스의 전 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 슬픈 사연이 담긴 크림슨 피크 저택의 사연을 종결 짓는 이야기였다면 훨씬 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 본편에서도 후반부 저택 지하실에서 유령이 살아날 수 있는 복선을 깔아두길래, 후반부 이디스가 위험을 맞았을 때 이 유령들의 도움으로 살아남겠구나 싶었는데 의외로 이런 전개가 없어서 크게 아쉬웠었다 (사실 좀 놀랐다). 만약 그랬다면 사랑한 죄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토마스의 전 부인들의 유령의 슬픔이 깊게 묻어난, 그러니까 영화의 구도가 남매와 이디스를 포함한 전 부인들의 구도로 이뤄졌더라면 '판의 미로'까지는 어려워도 제법 깊이 있는 슬픈 유령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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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이런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크림슨 피크 저택의 고풍스러운 스타일과 인물들의 의상 등 미술적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차가움 만큼이나 시릴 정도의 공기가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아마 이 영화는 한 여름에 보았더라도 손이 시려울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시종일관 입김이 느껴지는 이 추위와 공기의 차가움은 '크림슨 피크'가 담고 있는 매력 포인트다.



1. 제시카 차스테인이 연기한 루실의 후반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럼 그렇지, 차스테인이 어떤 여자인데. 다른 차원에 있는 아버지의 신호까지 알아차리는 진념의 여성인데, 저 정도로 포기할리가 없지' 싶은 ㅋㅋ


2. 여러 편의 출연작을 보았는데 아직도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이름을 못 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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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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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포 (Citizenfour, 2014)

다음 사람들을 위한 프로파간다 영화



몇 해 전 에드워드 스노든 이라는 이름이 세상을 떠들석 하게 했었다. NSA 계약 직원이자 전직 CIA 분석요원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세상에 폭로한 극비 문서들은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한 미국민들과 외국인들의 전방위적인 감시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티즌포 (Citizenfour, 2014)'는 스노든이 로라에게 이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접근했던 시점부터 그가 가디언지 기자인 그린 월드 등과 함께 이 비밀과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그 이후 겪게 되는 일들까지를 그 여느 스릴러 영화 못지 않은 긴장감으로 묘사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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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이 폭로한 미국의 범죄행위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미국 정부는 단순한 의심 만으로도 자신들이 원하는 미국인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전화, 인터넷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네트워크를 이용해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했고, 이 같은 범죄는 단순히 미국 정부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군사정부와 몇 번의 정부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도청, 감시 등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는 어느 정도 인지되어 있는 사실인데, 그럼에도 '시티즌포'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누구에게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일단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전방위적인 감시 활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 입장에서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가 정말 영화보다 더한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여 질 것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현재의 감시 활동은 감시대상자가 자유를 박탈 당하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고, 이런 행위들의 접근 방식 역시 훨씬 더 자연스럽고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쓰는 전화나 노트북, 이메일 등을 통해 자신의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그 정보들을 분석하여 개인의 생활 패턴이나 이동 경로, 취향, 성향 등 모든 것을 분석하고 혹은 가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행위들이 테러 집단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한 개인으로서 공포감과 동시에 무력함이 느껴지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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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포'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정부의 다른 행위를 폭로하는 고발 다큐멘터리와 달랐던 점은, 어떠한 충격적인 사실을 파해치고 밝혀내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건인 만큼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라는 점과 정부의 불법사찰이라는 국내외 뉴스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아마 이 영화가 주는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티즌포'는 다시 한 번 말하는 것처럼 미정부가 얼마나 많은 인원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랫 동안, 얼마나 조직적으로 감시해 왔는 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가끔 그 자체가 폭로의 핵심이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있는데, '시티즌포'는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시티즌포'는 분명한 프로파간다 (선동) 영화다.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은 최대한 스노든의 의도를 퇴색시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스노든은 이 스캔들이 제보자 개인인 스노든 자신에게 집중되고 그로 인해 이슈가 함몰 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한다. 즉, 이 감시 행위라는 일종의 자유를 빼았는 범죄 행위가 단순히 정부의 일급비밀을 폭로한 한 제보자가 일으킨 스캔들로 포장되고 전파 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선구자라고 말하는 것 처럼, 이 영화는 이 충격적 사건이 계속 진행 중이고 피해자는 우리 모두이며, 이 싸움은 결코 쉽지 않고 오래 진행되겠지만 누군가는 계속 이어 나가야만 할,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키고 싸워야 할 가치가 달린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아, 저런 무서운 일이 있었네' '스노든이 대단한 사람이네' 라고 그칠 것이 아니라, 이런 정부와 권력의 조직적인 비윤리적인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해 한 명 한 명이 쉽지 않은 용기를 내어주길 강력하게 바라고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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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내에서도 이런 불법사찰, 핸드폰 도감청, 개인정보 누출 등 여러가지 형태로 개인의 자유를 국가나 권력이 억압하고 박탈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가끔 주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그 시스템을 잘 알면 알 수록 얼마나 디테일하고 무서운 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더더욱 별 것 아닌 것에도 조심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티즌포'는 용기 내어 공객적으로 말하라고 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의미 있고 현재에 간절히 필요한 이유다.



1. 다시 생각해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나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의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 자기 검열을 은연 중에 하게 만든 다는 건, 스스로에게 창피한 것도 창피한 거지만 그 보다는 이렇게 만든 이들이 명백히 잘못한 일인거죠. 움츠러들 수록 그들의 의도되로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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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Inside Men, 2015)

뜨거운 연기로 살려낸 암울한 현실



아마 '부당거래'를 본 관객이라면 '내부자들'을 보고 난 뒤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은 조폭, 검찰, 언론, 정부, 기업 등이 연루 된 이른바 권력 범죄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뭐 아시다시피 이 이야기는 결코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 가운데 누구 하나 마음껏 응원하거나 공감할 만한 캐릭터는 찾아 보기 어려우며, 권선징악을 무작정 바라는 것보다는 오히려 씁쓸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을 담고 있다. 또 다른 영화로는 역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을 들 수 있을 텐데, '베테랑'이 똑같이 암울한 현실을 유쾌한 방식으로 그려냈다면 '내부자들'은 그 암울한 현실의 커넥션과 세기의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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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런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의 관계와 범죄를 다룬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익숙한 시점에서 이 같은 영화가 인상적이려면 일반인들은 쉽게 예상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커넥션의 디테일과 판세를 뒤집을 만한 카드를 영화가 얼마나 잘 숨기고 또 잘 꺼내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내부자들'은 그런 측면에서는 완성도가 조금 아쉬웠다. 이 꼬인 현실 만큼이나 영화가 다루고 있는 권력 범죄의 구도는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그렇다보니 이 각각의 관계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에 조금은 버거움이 느껴졌다. 액션이나 감동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야기가 주는 반전이나 전개 과정의 긴장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이 같은 장르의 경우, 끝까지 그 짜임새를 유지하지 못하면 관객들 입장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되는데 '내부자들'은 중후반부로 갈 수록 조금은 완성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부자들'은 짜임새 측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거나 호평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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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내부자들'을 볼 만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확실하다. 이미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등의 배우들이 그 확실한 이유다. 올해 한국 영화에서 연기 측면으로만 보았을 때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이 대단한 배우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대단한 연기를 펼친다. 앞서 권력 범죄를 다룬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하다는 점과 마찬가지로, 조폭, 언론, 정부 관계자, 검찰 등 전문직 인물의 생활 연기 역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인데, 아주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 아님에도 '내부자들'의 배우들은 연기력만으로 그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살려낸다. 조연들의 연기들도 마찬가지다. 흔히 이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경우도 어느 정도 관성화 된 연기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조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서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새삼스럽지만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참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을 또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뭐,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 점도 있고 (이번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안상구라는 캐릭터는 묘하게 배우 이병헌을 겹쳐지게 하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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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부자들'을 제 2의 '부당거래' 혹은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조금 기대치를 낮추다면 배우들의 뜨거운 연기 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1. 참고로 CGV에서 관람하였는데 상영 전 나오는 '자랑스러운 나라' 광고와 이 영화가 보여준, 실제와 좀 더 가까운 현실의 괴리감은, 다시 한 번 이 광고를 하는 것이 홍보 측면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을 또 하게 만들었음.


2.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권력자들의 접대 장면의 수위가 조금 센데, 예전 같으면 '영화가 좀 심하네'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으나 언제부턴가 '현실은 더하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씁쓸한 현실이랄까.


3. 엔딩과 관련해서도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더군요. 우장훈 (조승우)이 과연 강 건너로 가지 않을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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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 (The Priests, 2015)

강동원이어서 가능한 매력적인 엑소시즘 영화



'검은 사제들', 무엇보다 '검은' 그리고 김윤석과 강동원이라는 조합 만으로도 이미 보통의 영화가 갖고 싶어하는 매력은 충분히 가진 채로 출발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 (The Priests, 2015)'은 그 매력을 끝까지 잘 활용해 낸 영리하고 매력적인 영화다. 엑소시즘이라는 우리나라 영화에서 흔히 찾아보기 힘든 소재와 신부복을 입은 강동원이라는 설정은, 안먹어도 배부른 반찬 같은 재료였는데, 하나 우려했던 건 그냥 재료로만 소비하고 마는 겉만 화려한 그런 영화가 아닐까 했던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무언가 특별한 설정이나 배우의 이미지를 가져오는 것이 너무 분명한 영화들의 경우, 그것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해 그냥 그런 영화가 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검은 사제들'은 기대 이상으로 영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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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놀랐던(?)건 이 영화가 엑소시즘을 다루는 방식과 비중이었다. 국내 상업영화에서 엑소시즘을 다룬다면 그저 커다란 설정이나 배경 정도로 활용하고 다른 갈등을 불러와 전개하는 경우가 예상되었으나, '검은 사제들'은 그야말로 엑소시즘이 중심이 된 그 자체의 영화였다. 물론 그 악의 기원이나 성장 등에 대한 과정과 설명을 역사적으로 풀어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가 택한 구성이 상업영화로서 거의 최적이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보여줄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정수를 이끌어 낸 편이다. 다시 말해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았다. 김윤석이 연기한 김신부 캐릭터의 과거나 트라우마 등을 드라마 적으로 길게 소개한다거나, 강동원이 연기한 최부제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딱 그 정도로만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쓸데없이 감동을 일으키기 위한 설정이나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바로 엑소시즘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이 작품을 끝까지 몰입도에 있게 즐길 수 있었던 요소였다.


부마자로 부터 사령을 끌어내기 위한 구마예식은 이 영화의 전부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구마예식을 이 정도 비중으로 전부로 만든 선택이 무엇보다 탁월했다. 그리고 이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구마예식을 관객들이 끝까지 몰입할 수 있도록 한 디테일들과 영화적 구성은 국내 영화에서 이런 수준의 엑소시즘 영화를 본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흥분되기까지했다. 이 작품을 보는 내내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콘스탄틴'이 떠올랐는데, 커다란 액션 없이 기도문 위주의 구마예식으로 '콘스탄틴'과 비슷한 재미를 이끌어 낸 것은 다시 생각해도 '검은 사제들'이 이뤄낸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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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매력적인 큰 이유 중 하나는 강동원이라는 배우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영화 역시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니까 영화가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의식해 일부러 캐릭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자체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여 이 캐릭터를 완성하고, 또 카메라도 최대한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마예식 중 최부제가 기도문과 외국어로 통역을 하는 장면의 경우, 이 긴장감과 몰입감에 적지 않은 이유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비주얼 그 자체였다. 키아누 리브스의 '콘스탄틴'이 그랬던 것처럼, 강동원의 '검은 사제들'도 강동원이어서 성립 가능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고 영화가 그걸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소담 배우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웰메이드 특수분장과 특수효과에 힘입은 그녀의 연기는 '검은 사제들'을 기억에 남는 엑소시즘 영화로 만든 포인트 중 하나였다. 관객을 그저 눈을 감았다 뜨거나, 갑자기 눈을 뜨거나 하는 것으로 놀래키는 수준이 아니라, 엑소시즘 영화답게 사령에 사로잡힌 (영화 내용상으로 보았을 땐 사로잡고 있는) 캐릭터를 이 보다 더 잘 연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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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적으로 보았을 땐 이 영화의 배경을 서울 명동 한복판으로 설정한 것이 인상적이었고, 영화는 반복적으로 이 사실을 인지시키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 인적드문 시골의 폐가나 외국의 오래 된 성당 등이 아니라,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동 한 가운데. 고몇 걸음만 나오면 바로 북적이는 상점들로 연결되는 이 골목과 건물에서 벌어지는 구마예식이라는 설정은, 이 엑소시즘 영화를 더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더 나아가 영화 속 대사로도 등장하는 것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일에 자의로 몸을 담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적지 않게 생각할 만한 거리를 주고 있어 이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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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속편의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이 이야기가 국내 시장에서 속편까지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검은 사제들'은 시리즈로 연결되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첫 번째 영화였다.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강동원이 출연했던 영화 중에 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작품이 하나 있었더랬다. '초능력자'라고. '검은 사제들'도 속편이 가능할까? 아마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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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펙터 (Spectre, 2015)

어쩌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마지막



샘 멘데스가 연출을 맡았던 '007 스카이폴 (Skyfall, 2012)'은 007이라는 브랜드이자 자존심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자 온고지신의 정석이라 할 만큼 고유의 정통성에 대한 주저할 것 없는 인정과 자부심은 물론,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객관적 평가 (인정)와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다. 바로 그 다음 007 영화이자 다니엘 크레이그의 4번째 007 영화인, 그리고 샘 멘데스의 두 번째 007 영화인 '스펙터 (Spectre, 2015)'는 역시 역사성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수용하고 있는 긍정적인 평가와 작품성 측면으로 아쉬움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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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스펙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스카이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영화적 완성도 측면으로 보았을 때 스펙터는 전작에 크게 못 미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다니엘 크레이그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대의 007영화에 더 익숙한 관객들 입장을 고려한다면 더욱 밋밋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완성도 측면에서 보았을 때 '스카이폴'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구성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에 대한 다양한 은유를 이보다 더 적절히 녹여낼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낸 수작이었다. 비교에 앞서 '스카이폴'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는 이유는, '스카이폴'이 처해진 상황이 '스펙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펙터'의 처해진 상황도 그리 녹녹하지는 않았다. 전작 '스카이폴'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제임스 본드를 완벽하게 정의해 놓은 동시에 무엇보다 역사성을 부활 시켰다는 것은 속편에 대한 부담이 될 수 밖에는 없었을 텐데, '스펙터'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끝까지 불안정한 채로 마무리한 결과물 같았다.




007 스카이폴 리뷰 : 50주년을 맞는 시리즈의 완벽한 대답

http://www.realfolkblues.co.kr/1769





일단 풀어놓은 이야기의 욕심이 너무 컸다. 아마 이 욕심은 (또 어쩔 수 없이) '스카이폴'에 기인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카이폴' 역시 실패했다면 욕심이 너무 과했다 라는 평가를 들을 수 밖에는 없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스카이폴'의 성공은 또 한 번 거대한 이야기를 1편의 이야기에 완벽히 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을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건 과욕이었다. '스펙터'는 또 한 번 등장하는 거대한 악의 조직을 빗대어 제임스 본드의 가족사를 통해 이 캐릭터 만의 역사성, 그러니까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했던 제임스 본드의 역사성을 집대성하고자 한다. 일단 이 내용이 주가 되는 후반부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스카이폴' 만큼 좋을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본드가 자신의 얼굴과 지난 인연들을 마주하게 되는 일종의 게임 같은 전개는, 단순히 악당과 맞서는 긴장감 외에 더 깊이 있는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요소이자 이 시리즈를 즐겼던 관객들에게 큰 흥미요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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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후반부에 비해 초중반부의 전개나 이야기의 무게는 그리 탄탄하지 못했다. 초중반부 까지의 전개는 마치 클래식 007 영화를 보든 듯한 느낌의 익숙하고 안정적인 느낌으로 회귀한 듯 했는데, 이 방향성의 호불호 와는 별개로 후반부에 던지는 제임스 본드라는 인물에 대한 거대한 질문은 무언가 급작스럽고, 이 영화가 감당하기 버거운 주제처럼 느껴졌다.


난 '스카이폴'보다도 '스펙터'가 훨씬 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방향성에서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듯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이전 숀 코너리,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등이 연기한 제임스 본드와는 확연히 스타일이 달랐다. 그 다름에는 수긍할 만한 논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제임스 본드가 살인면허를 따기 전의 이야기,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을 떠나보내기 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직 투박하고, 그렇기에 액션이 강력하고, 존재의 대한 무거운 질문들도 '내가 아는 본드는 이렇지 않아'라는 불만에 대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제임스 본드는 '스카이폴'에서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스펙터'는 정확히 과도기 같은 느낌이었다. 이 작품의 본드는 살인면허를 갖고 베스퍼에 대한 감정도 거의 잊혀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이 일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는 동시에, 우리가 예전 007 영화에서 보았던 면모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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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로얄'을 통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올드 팬들은 '이건 본드가 아니야'라며 부정적 입장을 많이 내비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이슨 본과 같은 근육질과 맨몸 격투의 달인인 본드에게서는 로맨스를 즐기고 시종일관 여유와 유머가 묻어나는 기존의 본드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스펙터'의 제임스 본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과도기에 놓인 인물이다. 아직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남아있지만 한 편으론 전작들에는 없었던 부드러움이나 유머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의 연출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위기 뒤에 섹스라던가, 한 편으론 너무 수월한 탈출 같은 걸 보면 최근의 관객들은 허무함이 느껴질 정도로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 007의 오랜 팬들 같은 경우는 '본드는 원래 이래요'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펙터'는 호불호가 더 크게 나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일 것이다. 의견은 더 하자면, 나는 '스카이폴'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줄타기가 아니라 좀 더 한 편으로 치중한 성격의 영화이길 바랐는데, 영화는 한 번 더 중심 잡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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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어쩌면 이번 '스펙터'가 다니엘 크렝그 시대의 마지막 007 영화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생각을 했다기보다 그런 편이 이 007이라는 브랜드에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나는 이전 007 영화들도 대부분 재미있게 보기는 했었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에 더 열광했고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카이폴'에 감동한 관객으로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더 오래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흘러 온 과정이나 샘 멘데스가 '스카이폴'과 '스펙터'를 통해 풀어 놓은 이야기의 전개로 보았을 때 다니엘 크레이그 본드의 시대는 마무리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 더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만나게 될지 못할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결정이 나든 다음 007 영화는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들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 될 듯 하다.



1. 이번에도 오프닝이 끝내줍니다. 끝나고 자연스럽게 박수칠 뻔!

2. 다른 이야기지만 볼드모트와 모리아티의 대결이라니.... 특히 '셜록'에서 모리아티를 연기했던 앤드류 스콧의 'C' 역할은 여러가지 재밌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서 흥미로웠어요 ㅋ

3. 과연 다음 007 영화는 어떻게 될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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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 블루레이 리뷰 (Two Days, One Night : blu-ray review)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관한 딜레마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그리고 명확하다. 직장으로의 복직을 앞둔 산드라 (마리옹 꼬띠아르)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회사에서 자신의 복귀와 보너스를 두고 투표가 진행되었고 동료들이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 하지만 산드라는 반장의 강요에 의해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를 받고는 사장에게 재투표에 대한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이틀 동안 16명의 동료들을 일일히 찾아가 보너스 대신 자신에게 투표해 줄 것을 부탁한다. 줄거리는 명확하지만 이 이틀 간의 시간 속에 담겨 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산드라는 물론 이 동료들이 처한 딜레마는 인간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드라가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도 부탁도 아닌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최근 본 영화 속 장면들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또한 집중하게 되는 장면이었으며, 그 상황 속 인물들의 대화 내용 역시 수긍할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의 수긍이란 영화의 방향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산드라의 입장은 물론, 그녀가 만나는 회사의 직원들의 입장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는 없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르덴 형제는 우울증을 겪고 있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일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역시나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산드라의 입장과 1천 유로라는 현실적인 보너스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직원들의 입장을 모두 정당하게 대변한다. 이런 이야기를 다룰 때 영화가 흔히 '영화적'이게 되는 지점은, 주인공에게만 타당성을 부여해서 반대에 서는 이들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을 잃도록 묘사하거나 일종의 악당으로 묘사하게 되는 부분인데, '내일을 위한 시간'에는 이런 양분론이 없다. 보너스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녀의 복귀를 찬성하는 이들 가운데도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고, 반대로 보너스를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16명의 상황은 모두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어느 한 사람의 입장도 이기적이라고 쉽게 지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산드라와 직원들의 대화 가운데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나에게 투표해줄 수 있어요?'라고 묻는 산드라에게 직원들이 하나 같이 처음 묻는 질문이 바로 '누가 찬성하기로 했어요?' '몇 명이나 찬성표를 던진 데요?'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각자의 입장이라는 점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직원들 대부분이 양심과의 갈등을 겪는 가운데 다른 직원들, 즉 사회라는 구조의 보이지 않는 구속 혹은 힘(꼭 나쁜 의미만은 아닌)을 크게 염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문제가 명확한 정답이 없어 보인다는 바탕 아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크게 모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결정을 재고하려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한 편으론 이 같은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을 보며 '어쩌면 저렇게들 다 이기적이지'라고 쉽게 되 물을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 속에는 그러한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으로 남편의 모습에서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직원들을 만나 설득하기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영화가 이 딜레마를 풀어가는 방식은 극도로 현실적이고 객관적이다.






이 영화는 산드라가 동료들을 하나 하나 만나고 표를 얻거나 못 얻게 되는 과정을 진행하며 관객에게 각자의 가치관을 비춰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아마 다른 영화 같았으면 철저하게 영화가 만들어 낸 정서적 아우라를 든든히 얻으며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펼쳐나갔을 주인공 산드라는, 앞서 언급했듯이 철저히 객관적인 영화적 조건들 속에서 외롭게, 혹은 그래서 더 처연하게 이 짧고 고된 여정을 이어간다 (산드라가 왜 우울증을 겪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제시한 방식에 따라 이 영화를 읽어보자면, '착한 것은 좋지만, 착하지 않은 것이 곧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것에 기인해 상황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산드라의 복직을 찬성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복직 대신에 보너스를 택한 것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극중 산드라의 대사를 통해 이 부분은 여러 번 설명되는데, 이 상황은 산드라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회사가 선택한 것도 아닌, 그냥 상황이 벌어진 것에 가깝다. 다르덴 형제는 이 상황을 아주 특별한 사건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회사와 노동자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는 영화다. 

 

당신은 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보너스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산드라가 아니더라도 곧 누가 실직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저 같이 일하는 직원 이상의 관계도 아닌 한 사람을 위해 내 가정의 경제적 보탬과 직장의 안정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이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보다 조금 더 위대한 점이라면, 이 문제를 단순히 '용기'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용기에 관한 것으로 풀어냈다면 영화는 오히려 맥이 빠질 정도로 허무하고 단적인 영화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결말을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던 이 이야기를 영화가 어떻게 마무리 할까 몹시 궁금했었는데, 마지막 산드라가 남편에게 전화 통화로 이야기하는 말을 듣고 나니 다르덴 형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다르덴 형제는 이 정답이 없는 딜레마에 자신들만의 답을 내어 놓았다. 그리고 그 답은 관객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할까?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할까?



Blu-ray : Plain Archive Collection

 

매번 소장하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플레인 타이틀답게 이번 '내일을 위한 시간' 블루레이 역시 안 밖으로 꽉 찬 구성과 알찬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아트웍과 컬러를 달리 한 A타입과 B타입으로 나눠 출시한 블루레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웃케이스의 질감과 영화의 내용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소장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 잡는다.





▲ 위 쪽이 A타입, 아래가 B타입

 

 

플레인 블루레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성물인 소책자의 경우 이번에도 고심한 흔적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기존 소책자들과는 조금 달리 날개 커버 부착 형 중철 제본 소책자로 아웃케이스 내부에 수록했을 때의 사이즈를 고려하면서도 책자의 넘김의 편의와 보관을 신경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소책자에서 또 마음에 들었던 점은 바로 종이의 질감인데, 인쇄 되었다는 느낌이 강한 빳빳한 느낌의 종이가 아닌 '소책자'라는 구성물의 오리지널리티가 바로 느껴질 정도의 질감이 마치 작은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전달했다. 

 

내용적으로는 현 LA영화비평가협회 부회장이자 영화/음악 평론가인 팀 그리어슨의 글과 김세윤 영화칼럼니스트의 마리옹 꼬띠아르의 관한 글, 그리고 씨네21에 수록되었던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통찰력 깊은 글도 만나볼 수 있어 유익하다. 여기에 다르덴 형제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글과 매거진M과 맥스무비를 통해 진행되었던 감독과의 인터뷰 대화 내용도 수록되었다.





다른 구성물로는 고화질 아트 카드 및 미니사이즈 트레이딩 카드가 수록되었는데 이를 수록하고 있는 고급 봉투가 이번에도 눈길을 끈다. 플레인이 이번 블루레이의 컨셉 컬러로 선택한 핑크 컬러가 돋보이는 이 봉투에는 지난 번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비즈 왁스 봉인 되어 있는데, 지극히 소장하는 입장에서 꼭 그대로 살리고 싶었던 이 봉인 문장을 더 쉽게(?) 살릴 수 있도록, 기존 과는 다르게 구부려도 잘 깨지지 않고 고무처럼 구부러지는 형태의 유연형 비즈 왁스를 사용했다고 하니, 전혀 예상 못했던 업그레이드다.






Blu-ray : Video & Audio

 

1.85:1 의 화면비와 1080P의 풀HD를 수록한 블루레이의 화질은 다르덴 형제가 담아낸 놀라운 자연광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런 드라마 장르의 블루레이 화질을 이야기할 때 자주 하는 이야기처럼 화질의 좋고 나쁨이 최고 우선 순위의 요소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내일을 위한 시간' 블루레이의 화질은 큰 흠집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좋고,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와는 또 다르게 분명 우수한 화질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앞서 언급한 자연광의 표현력은 이 같은 블루레이 화질의 우수함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인데, 밝기에 따라 미묘한 차이로 발견할 수 있는 그늘진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묘사는 단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화질이며, 산드라가 내내 입고 있는 분홍색 민소매 셔츠의 색감이나 한 여름 낮 시간의 좋은 날씨의 느낌도 블루레이로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선명함은 이 같은 드라마 장르에서도 분명 화질의 우수함이 도움이 된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도 크게 흠잡을 부분은 없다. 다만 사운드 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화려함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대사 전달은 선명하고 (잘 알다시피 이 영화의 9할은 대화 시퀀스다) 다른 사운드들도 감상에 크게 부족함이 없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이전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 블루레이 타이틀을 리뷰 하면서 로컬 음성해설 트랙 수록에 대한 칭찬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 '내일을 위한 시간'에도 플레인 버전에만 특별히 로컬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다. 이번 음성해설에는 김혜리 씨네21편집위원과 최근 '베테랑'으로 13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감독인 류승완 감독이 참여하고 있다. 기존 씨네21 지면이나 이동진 평론가와 함께 한 팟캐스트 등을 접했던 이들이라면 김혜리 기자의 팬들도 많을 텐데, 김혜리 기자만의 섬세한 분석과 더불어 이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다르덴 형제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과 평가들을 들려주고 있어 러닝 타임 내내 빈틈 없이 즐길 수 있는 편이다.




PA013 '내일을 위한 시간' 로컬 코멘터리 프리뷰 from PLAIN ARCHIVE on Vimeo.



아마 처음 류승완 감독이 '내일을 위한 시간'의 음성해설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을 텐데, 그가 액션 영화 감독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평소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들을 즐기는 것은 물론, 다르덴 형제의 영화 역시 팬을 넘어서 존경하는 감독이었기에 이번 음성해설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의 감독으로서의 시선은 김혜리 기자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이나 평론가 입장에서는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시선으로 바라 본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대한 소개는 흥미롭고 신선했다. 영화 전체의 러닝타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참여한 음성해설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꼭 추천하고 싶다.





부가영상으로는 전체적으로 인터뷰 영상과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로 만나 볼 '다르덴 형제와의 대화'에서는 약 14분 분량으로 감독의 입을 통해 이 작품에 대한 집약적인 내용을 전해들을 수 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를 말하고 싶게 만드는 동시에, 감독은 과연 어떤 의도와 메시지를 담으려 했을까가 듣고 싶어지는데 이 부가영상은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는 편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10년 전의 일이었으며, 그 당시에는 마리옹 꼬띠아르를 고려하지 않았으나 나중에 다시 제작하게 되었을 때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 출연 당시 본 적이 있는 그녀를 고려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다르덴 형제는 <러스트 앤 본>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마리옹 꼬띠아르와의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모두와 동일한 조건으로 촬영에 임해야 한다는 조건에서는 그들의 영화만큼이나 제작 방식에 있어서도 노동자 중심의 성향을 읽을 수 있었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리허설 방식에 대해서도 살짝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 감독과의 대화 영상이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특별히 좋았던 건 다르덴 형제의 영화인 만큼 질문의 수준도 뻔한 신변잡기나 에피소드 중심이 아닌 영화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들이었다는 점이다. 플랑 세캉스 기법을 선택하게 된 이유나 연출 방식에 대한 철학을 끌어낼 수 있는 질문들은 여러 모로 유익했다.





감독과의 대화와 동일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마리옹 꼬띠아르와의 대화' 부가영상은 그녀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았던 다르덴 형제 영화의 출연 소식에 대한 소감으로부터 시작된다. 평소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특별히 동경하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캐스팅이 그들의 필모그래피에 특별한 이벤트가 되기 보다는, 이미 익숙한 다르덴 형제의 영화 이길 바랬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그녀가 동경하던 그들의 영화임을 알고는 무척이나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외에 산드라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준비했던 점들이나 다르덴 형제 영화 특유의 리허설 작업에 대한 경험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인터뷰 내내 진심으로 다르덴 형제와 함께 작업한 것에 대해 아직도 무척이나 행복해 하고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이 부가영상에는 2014년 7월 파리에서 진행된 별도의 인터뷰 내용도 함께 수록되었다.





'파브리지오 롱지온과의 대화'에서는 남편 역할을 연기한 파브리지오 롱지온과의 대화 영상도 만나볼 수 있는데,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여러 번 출연한 배우답게 감독과의 만남과 그들의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가 연기했던 다르덴 형제의 다른 영화 속 캐릭터들과 이번 영화의 캐릭터와의 비교에 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예고편'에서는 이 작품 ‘내일을 위한 시간’과 마리옹 꼬띠아르의 주연작이자 플레인의 전작인 ‘러스트 앤 본’ 그리고 최근작으로 역시 마리옹 꼬띠아르의 출연작인 ‘이민자’의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참고로 ‘이민자’ 역시 플레인 아카이브를 통해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총평]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을 맡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고민하게 되는 딜레마에 대한 극도의 현실적인 질문이자, 그 과정과 결말을 통해 관객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는 의미 깊은 작품이었다. 플레인을 통해 출시 된 블루레이는 이 버전을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음성해설 트랙과, 블루레이는 안 봐도 책장에 하나 꽂아 두고만 싶은 매력적인 디자인과 구성물로, 이번에도 또 소장하고픈 최상급의 제품이라 부르기에 손색 없는 타이틀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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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타카의 레드필]

그래도 또 몬타우크행 기차를 탈거야



찰리 카우프만이 쓰고,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이 개봉 10주년을 맞아 다시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인생의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은 그 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었는데, 또 다시 보게 된 이 놀라운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 혹은 새로운 영화가 되어 있기 보다는 오히려 맨 처음 보았던 10년 전의 그 영화처럼 두근거림 가득한 영화가 되어 있었다.


한창 씨네필들 사이에서 이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 그랬던 것처럼 찰리 카우프만이 설계한 이 기억의 퍼즐 맞추기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가 해피 엔딩인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결론적인 것에서부터, 그 타임라인의 순서 맞추기에 있어서 어떤 것이 더 먼저인지에 대한 담론은 이런 장르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연구하고픈 흥미요소가 충분했었다. 나도 한 때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따져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분명 정답에 대해서 까지 분명히 확인했음에도 그 기억은 시간이 갈 수록 흐려졌다. 보통 반복 관람을 하는 경우 이런 팩트에 관한 것은 더 깊이 각인되기 마련인데, '이터널 선샤인'은 정반대로 보면 볼 수록 그 기억만은 점점 지워져 가는 듯 했다.


그리고 또 다시 보게 된 '이터널 선샤인'은 이제는 무엇이 먼저 일어난 일인지, 엔딩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에만 빠져들고 말았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나누는 모든 대화들은 그 시간 순서와는 별개로 하나하나 움찔움찔 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연애를 오래 한 커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다투거나 혹은 한 마디만 더 하면 되었을 것을 하지 못해 후회할 일을 만들거나 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관계에서는 그 열정과 냉정이 모두 느껴져 몹시 치명적이었다. 만약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열정과 냉정의 대화나 상황이 한 100가지 쯤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처음엔 한 2~30개 정도에 공감했었다면 지금은 한 7~80개 정도를 공감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이미 수 없이 반복하고 외우다시피 한 대사들이었는데, 그 변함 없는 대화들이 내가 그간 겪은 시간들과 내가 연인과 나눈 대화들로 인해 더 깊이 있는 대사들이 되어 있었다.


'이터널 선샤인'은 얼핏보면 후회에 관해 인정하는 수동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어차피 또 그럴 꺼니까 그냥 인정하자 라는 약간의 자조적인 느낌이 드는데, 사실은 정반대로 또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래도 또 사랑할 거라는 더 저극적이고 열정적인 이야기라는 걸 오늘 다시 보고 알 수 있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다시 만나도 또 후회할 일이 발생할 거고, 어쩌면 또 다시 서로를 너무 힘겨워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길 바랄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영화의 엔딩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다시 반복된다해도 뭐 어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다시 만나보고 싶어' 정도의 희망적 느낌이었다면, 이번에 본 '이터널 선샤인'은 그보다는 훨씬 더 강하게 '다시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난 너를 꼭 다시 만날거야'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즉, '다시 만나게 되면 이번엔 분명 다를 꺼야'가 아니라 '또 반복을 피할 수 없더라도 난 너를 선택할거야'에 가까운 더 큰 범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라는 이야기보다도 더 강력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난 후회할거야. 그래도 내 선택은 변하지 않아'

'난 그래도 또 몬타우크행 기차를 탈거야'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 2015)

신념을 지켜낸 자들의 우화 혹은 실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핵무기 전쟁의 공포가 최고조에 오른 1957년, 보험 전문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의 변호를 맡게 된다. 당시 미국에선 전기기술자 로젠버그 부부가 원자폭탄 제조 기술을 소련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간첩죄로 사형된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반공운동이 극에 달했던 단적인 예로 적국의 스파이를 변호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일이었다. 여론과 국민의 질타 속에서도 제임스 도노반은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며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 아벨의 변호에 최선을 다한다. 때마침 소련에서 붙잡힌 CIA 첩보기 조종사의 소식이 전해지고 제임스 도노반은 그를 구출하기 위해 스파이 맞교환이라는 사상 유래 없는 비밀협상에 나서게 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인인 변호사 도노반이 스파이 맞교환 비밀협상에 나서게 된다는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코엔 형제가 각본을, 야누즈 카민스키의 촬영 그리고 톰 행크스가 주인공 도노반을 연기한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 2015)'는 시놉시스를 통해 예상할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 소개에 앞서 이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이름을 굳이 나열한 이유는, 여러 번 반복 된 아주 새롭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이 베테랑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그 완성도로 인해 또 한 번 볼만한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 20세기폭스 코리아.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결국 신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철저하게 국가의 입장과 이익이 대변되던 시절, 다소 이상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신념을 지켜 낸 주인공 도노반과 스파이로 구속 된 루돌프 아벨 (마크 라일런스)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공기와 더불어 인간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거대한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도노반이라는 캐릭터는 톰 행크스의 연기를 통해 또 한 번 설득력 있게 묘사되고 있으며, 실제로는 스파이 행위에 대한 내용은 없는 이 영화에 스파이 영화의 공기를 불어 넣는 아벨 역의 마크 라일런스는 확실히 이번 영화의 발견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 단락에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20세기폭스 코리아. All rights reserved


'스파이 브릿지'는 결국 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비밀협상을 이상적으로 이끌어 낸 도노반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데, 영화가 내내 말하고자 했던 신념과 특히 후반부 도노반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내가 떳떳하면 그걸로 된거죠'라는 식의 대사는 조금 다른 결말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더 쓸쓸한 결말. 그러니까 결국 이데올로기나 다른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단순하게 자신의 일과 신념에 끝까지 충실했던 사람들을 그리면서, 결국 세상은 이런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는 (인정하지 않았다는) 결말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신념에 대한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마무리 된 뒤 뉴욕으로 돌아온 도노반이 지하철 밖 풍경을 통해 결국 동독내의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것 처럼, 집으로 돌아온 그를 아내가 모르는 척 말 없이 이해해주는 것이 더 강렬한, 즉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라는 메시지 전달 측면이나 실제 이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 따듯한 위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영화적으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결말은 오히려 조금은 기운이 빠지는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묘사들을 비롯해 아벨을 뒷자석에 태우는 것도 그렇고, 이 영화가 쓸쓸하게 끝낼 것만 같은 뉘앙스를 너무 주었기 때문에 이런 아쉬움이 더 들기도).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영화가 끝나고 실존 인물들의 뒷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뭐랄까 실화가 더 영화적이고 말이 안되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실화입니다'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였기에 차라리 실존 인물들의 후일담으로 마무리 하는 대신, 쓸쓸하게 결국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다는 것으로 마무리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그래도 남았다 (왜 이렇게 쓸쓸한 엔딩에 집착하는가...).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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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무리 방식은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스파이 브릿지'는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만큼 짜임새 있는 작품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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