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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자이언트 (The BFG, 2016)

아이들을 위한 스필버그 영화



오랜만에 만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라 좋지 않은 흥행 성적과 평에도 제법 기대를 했었던 '마이 리틀 자이언트 (원제는 The BFG, 즉 Big Friendly Giant (우리말로는 '착한 거인 아저씨'정도)인데 그냥 국내에 출판 된 적이 있었던 로알드 달의 원작 제목인 '내 친구 꼬마 거인'을 그대로 썼어도 되지 않았나 싶다)'를 보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치 스필버그가 80년대 만들었던 영화들,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들과 유사한 구성을 취하고 있었는데, 실사와 그래픽이 결합된 기술적 측면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조금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구성이 너무 느슨하고 헛점이 많은 전개와 유아적인 표현 들이 다분한, 조금 아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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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아원에서도 왠지 친구가 많지 않을 것만 같은 소녀가 거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 거인 역시 거인들의 세계에서는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는 존재. 이 두 사람이 친구가 되면서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 인간 아이들을 잡아 먹는 거인들과 이런 거인들을 막지는 못하는 대신 인간 아이들에게 꿈을 전해주는 작업을 하는 BFG의 설정은, 영화 만드는 작업에 대한 은유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리 깊게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의미를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확실히 이건 해석을 위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적 깊이에 신경은 덜한 모습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 즉 호기심과 웃음을 유발시킬 수 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하다.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돌아가 잠이 들기 전에 '혹시 우리 동네에도 거인이 늦은 밤 돌아 다니는건 아닐까?' '내가 꾸는 꿈도 거인이 불어 넣은 것이 아닐까?'라고 한 번쯤 상상하게 되도록 말이다. 실제로 영화를 본 아이들은 이 세계와 영화 속 유머에 집적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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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래도 성인의 입장에서 보기엔 조금 대책없이 낙천적인 전개들이 헛점으로 느껴졌다. 또한 캐릭터들도 지극히 평면적이어서 어른의 시각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거나,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장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거인들의 세상을 다룰 때는 나쁘지 않았으나 영국 왕실이 등장하는 인간 세계 파트는 너무 유아적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라, 그간 들려주었던 매력적인 꿈 이야기의 만족도마저 조금 식어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 만찬 장면의 가스 배출(?)장면에서는 극장 내 너나 할 것 없이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ㅎ). 스필버그의 영화라 기대치가 높았던 것일까. 아이들을 위한 스필버그 영화는, 내겐 조금 아쉬웠다.



1. 스필버그의 첫 번째 디즈니 영화군요.


2. '스파이 브릿지'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마크 라일런스가 거인 BFG를 연기하는데, 그 인자한 웃음과 눈 주름은 여전하더군요.


3.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렇게 느끼지 않은 것 같지만 저는 왜인지 영화 속 빨간 자켓과 관련된 이야기에 마이클 잭슨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몹시 짠하게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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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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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A Netflix Original Series : Stranger Things)

80년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장르영화의 선물세트



딱 봐도 8,90년대스러운 이미지에 끌려 보게 된 8부작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는, 그 특유의 신디사이저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타이틀 영상 만으로도 단 번에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과 추억을 바로 소환하는 타이틀 영상의 폰트 디자인은, 어린 시절 CIC비디오들을 통해 보았던 수 많은 헐리웃 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타이틀만 보고도 '아, 이 시리즈는 추억을 소환하려고 작정했구나'싶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그리고 그 작정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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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이야기 속에서는 여러가지 추억의 작품들을 쉽게 떠올려볼 수 있다. 일단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은 '구니스'와 닮아 있고 미지의 존재인 일레븐은 마치 'E.T'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기본적으로 'E.T'와의 유사점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아이들이 일레븐을 숨기는 것이나 자전거를 무리 지어 타거나, 음모를 꾸미는 어른들을 피해 도망을 가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또 극중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캐릭터의 모습에서는 흡사 '미지와의 조우'의 장면들이 겹쳐진다. 그 밖에도 '에일리언'이나 '폴터가이스트' '나이트메어' 등 어린 시절 호기심 가득하게 보았던 많은 SF/공포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들이 넘처난다. 아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좀 더 자세히 비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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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오마주가 되려면 원작의 요소들을 단순히 가져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요소들을 잘 활용하여 또 한 번 재미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해내야 하는데, '기묘한 이야기'는 혹여 80년대 SF영화들에 대한 추억이 없더라도 충분히 빠져들 만한 꽉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총 8화로 이뤄진 구성도 한 호흡으로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빠져있으며, 작품 곳곳에 녹아 들어 있는 추억의 아이템과 정서들을 발견하는 것 만으로도 벅찬 작품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캐스팅이 완벽하고, 이야기 측면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위노나 라이더와 경찰 서장) 그리고 윌의 형과 마이크의 누나가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 시키는 동시에 하나의 사건에 각각 접근해 가는 방식 역시 짜임새가 훌륭하다. 


어린 시절 스필버그의 SF영화들을 비롯해, 당시 유행하던 공포/미스테리 영화들과 스티븐 킹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거의 '무조건' 봐야 할 시리즈라 아니할 수 없겠다. 다행히 시즌 2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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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사이드 스쿼드 (Suicide Squad, 2016)

아직 멀기만한 DC의 마블 따라잡기



할리퀸, 조커, 데드샷, 엘 디아블로, 캡틴 크룩 등 DC코믹스의 여러 캐릭터들이 한꺼 번에 등장하는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Suicide Squad, 2016)' 즉, 자살 특공대는 여러모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영화다. 많은 팬들이 '어벤져스'급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더라도 마고 로비의 할리 퀸을 비롯해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조커까지 등장하며 마블의 '데드풀 (Deadpool, 2016)'에 대적할 만한 똘기 넘치고 스타일리쉬한 영화가 되길 바랬던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총체적 난국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보통은 안타깝다, 아쉽다 이런 표현을 자주 하는 나인데, 이번엔 그보다 실망스럽다가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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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볼거리 위주의 슈퍼 히어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 각기 다른 캐릭터가 함께 모여서 하나의 막강한 적과 싸운다는 전제의 논리가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비올라 데이비스가 연기한 국장이 이 강력한 캐릭터들을 모아 팀을 꾸려야 겠다고 생각한 것부터가 잘 설득이 되질 않는다. 영화가 전제하는 건 슈퍼맨 같은 존재가 만약 우리 편이 아니라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대응으로 메타 휴먼인 범죄자들을 하나의 팀으로서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잘 드러난 것처럼 진짜로 슈퍼맨과 같은 존재의 위협을 대비하려고 했던 것이었다면 배트맨과 플래시 등의 팀 (이 영화엔 안나오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에 나오는 원더우먼과 아쿠아맨까지 더해서)으로서 준비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굳이 배트맨의 팀이 이들을 잡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이 메타 휴먼들을 팀으로 준비하는 것이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영화는 전혀 설득하지 못한다. 


그리고 국장이 이들의 목숨을 앱을 통해 쥐고 있는 설정이 이 팀이 운영 가능한 이유가 되는데, 이것도 너무 허술해서 저게 과연 무력화 시키지 못할 정도의 일인가 싶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적이 되는 인챈트리스와 그의 오빠(?)의 행동도 별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굳이 오랜 시간을 위험하게 공들여 가며 무슨 무기(?)를 준비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이 자살 특공대가 올 때까지 굳이 그 무기 만들기에 매달려야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 정도 능력이라면 자살 특공대를 맘만 먹으면 쉽게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뭐 능력치 밸런스에 대한 부분은 코믹스를 영화화 할 때 매번 논쟁이 되는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번 영화의 능력치 밸런스는 확실히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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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점들을 다 너그럽게 이해한다고 해도 이 영화의 완성도와 연출력은 정말 답답한 수준이다. 이 영화가 가장 잘 못 생각하고 있는 점은 삐딱한 캐릭터들을 한 방에 몰아 놓고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유머를 담아내면 흡사 마블의 '데드풀'처럼 쌈마이 스러운 히어로 물이 되지 않을까 했던 점인데, 이상향과 실력의 차이가 너무 현격하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유치한 전개가 되어 버렸다. 설령 극 중 캐릭터들이 구사하는 유머가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소수 마니아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송곳 같은 농담이라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그 농담들 만큼이나 전반에 삽입되어 있는 진짜 진지함은 솔직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참을 수가 없었다. 앞서 언급했던 '데드풀'이나 병맛 같은 영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마셰티'같은 영화의 경우 가끔 등장하는 진지한 장면들은, 극중 캐릭터가 진지한 장면이지 영화까지 진지한 장면은 아닌, 즉 갑자기 진지해 짐으로서 피식하고 웃게 되는, 사실은 웃음 포인트인 장면들인데, 첨에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도 그런 진지한 장면들이 나오길래 '아, 그런식으로 웃기려나 보구나' 했는데, 웬걸. 정말로 진지한 장면이어서 이걸 어찌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민망하더라. 그런 장면이 클라이맥스에 한 두 장면 정도 있으면 그냥 아쉽다 정도로 마무리 되었을 텐데, 이 영화는 마치 그게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영화 전반에 걸쳐서 아주 고르게 삽입되어 있어 피해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보니 맥은 5분 마다 뚝뚝 끊기고, 집중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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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영화는 마치 제작비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 에미넴, 퀸 등의 유명한 곡들을 영화 중간 중간 삽입하여 관객들을 선동하고자 하는데, 사실 곡들이 너무 좋아하는 노래들이라 선동될 뻔 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장면에서 남는 것은 영화가 아닌 음악 뿐이었다. 전혀 장면과 결합되지 않은 삽입곡들. 차라리 이 곡들의 라이센스 비용을 다른 곳에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그렇게 실망스러운 영화를 그나마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건 이미 익숙한 캐릭터들의 힘이다. 마고 로비의 할리 퀸은 관객들을 자신의 팬들로 만드는 것에 겨우겨우 성공한다 (겨우겨우 성공한 건 그녀가 매력이 덜해서가 아니라, 영화가 너무 별로여서다. 이 정도 매력이 아니었다면 아마 할리 퀸도 다 같이 무너졌을 것이다). 또한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조커는 오히려 분량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특히 이 자살 특공대들과 엮이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함이 살아 있는 케이스라 봐야겠다. 이야기에 더 깊숙이 엮였다면 그도 온전히 살아남는 것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하나 윌 스미스는 데드샷 캐릭터로서 보다는 오히려 윌 스미스라는 배우의 경력과 그로 인해 관객들이 갖는 신뢰로 연명한 경우다. 아주 유치한 장면들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윌 스미스라는 익숙한 배우 때문이었다.


DC코믹스, 그리고 워너브라더스는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너무 성급하게 마블 스튜디오가 이룬 성공 만을 쫓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만 해도 새로운 조커와 할리 퀸의 영화를 먼저 꺼낸 뒤 진행했더라면 더욱 인기를 끌었을 법한 영화인데, 너무 갑작스럽게 떼로 몰려 나오는 영화를, 그것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수준으로 내놓은 것은 앞으로의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캐릭터가 없다면 모를까,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포진하고 있는 DC코믹스의 영화화 작업을 마블과의 대결 구도(마블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을 것 같지만)만을 생각해 너무 성급한 행보들을 보여주는 것이 팬으로서 또 한 번 안타까운 점이다. 



1. 글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번 영화의 실망스러운 결과를 오롯이 감독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더군요. 워너가 편집 등 제작에 영향력을 행사한 부분 등의 뒷얘기를 들어보면 말이죠. 감독의 전작을 찾아보니 이 정도로 연출할 만큼 능력이 없는 감독은 아니었거든요.


2. 이 영화의 쿠키 장면을 보면 '와, 다음 편이 정말 기대되는데!'가 아니라 또 코웃음이 ;;;; 이 쿠키 장면은 일종의 자문자답 같아보였어요. 그러게 배트맨과 팀이 나서면 애초에 벌이지 않아도 될 일을, 왜 이 고생을 하는지.


3.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설레었던 장면은 캐릭터들이 배트맨과 플래시에게 잡혀오는 짧은 장면들이었어요. 이 과정을 길게 만드는 것이 차라리 훨씬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었을 듯.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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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海よりもまだ深く, 2016)

어제의 나에게 보내는 안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 (海よりもまだ深く, 2016)'를 보았다. 언제부턴가 신작을 가장 기다리게 되는 감독 중 하나인 그의 새로운 영화는, 또 한 번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삶의 진리를 어김 없이 찾아 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를 통해 발견하고 꺼내 드는 삶의 순간, 깨달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모두의 삶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부정하려 애쓰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인정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후자의 경우다. 인생을 살면서 후회하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이 영화는 누구나 한 번쯤 혹은 여러 번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후회하고 포기하고 자책했던 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당부 같은 이야기다. 막연하게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또 한 번의 마법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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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 중요하다는 것. 특히 가족의 죽음이나 부부의 이혼 등을 겪은 이후에 '그 때 잘 할걸'하며 그러니까 지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머리로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중요성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다룬 다른 영화들이 그 후회를 말끔히 씻어 줄 방법과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는지를 돌이켜 그 잘못된 매듭을 풀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반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는지에 대해 여러 번 되 묻지만 결국 그 답을 찾아내지 못한 주인공들을 그린다. 다시 말해 '태풍이 지나가고'의 이야기는 과거 나태하고 실수를 많이 하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인해 정신차리게 되는 이야기나, 과거 오해나 실수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이 비로소 해결되는 방식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말할 수 없는 삶의 행복이 느껴진다. 아베 히로시가 연기한 료타의 후회는 가족이라는 존재의 힘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바로 그 가족이 어떤 역할을 하는 가가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이기도 하다. 애써 무리하게 억지로 행복하려 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후회를 덮지 않도록 료타(아베 히로시)를 감싸고 돌보는 것 역시 가족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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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나니 문득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의 가사가 떠올랐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이 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인권의 그 노래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는 지나간 것을 지나간 대로 두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는 일인가를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 인정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에 영화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칫 허무맹랑한 낙천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약 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이 한 가족의 이야기는 그렇게 어른스러운 방식으로 자신 만의 결말을 맺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의 이야기를 연달아 그리는 가운데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계속 고심해 왔다. 어른스럽다 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것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인지에 대해 주로 아버지라는 존재를 내세워 그 고민과 답을 이어왔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어른이 되어야 하는 부모의 역할과 무게는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 것은 감독 자신이 부모가 되면서부터 어쩌면 당연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이 부모가 되면서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또한 과거의 후회스러웠던 일들에 대해 떠올려 보게 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고 있으면 그러한 감독의 고민과 지금의 답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분명 후회되는 일들이 있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고, 내일로 나아가는 것. 아마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 내일에 먼저 도달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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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에게 진정으로 안녕하고 안부와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영화는 많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나에게도 어제의 나를 미소 지으며 떠나보낼 수 있도록 (이건 쿨한 안녕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진짜 안녕이다)작은 용기를 불어 넣어준 영화였다. 나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알 수 있을까. '안녕'하며 인사할 수 있을까. 



1.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이 어머니가 홀로 사셨던 연립아파트단지의 기억을 이 영화에 그려냈다고 하는데,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 연립아파트의 모습이나 풍경이 마치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주공아파트의 기억과 겹쳐졌어요. 외할머니와 함께 살기도 했었고. 무언가 그 자체가 추억인 주공아파트의 풍경이...


2. 키키 키린의 연기는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곤 하는데,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장면을 그러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말하고자 하는 일상 속의 진리와 소중함을 관객에게 100% 전달하는데에 그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에요. 


3. 극 중 아베 히로시의 아들 '싱고' 역의 배우는 우리 배우 김새론과 몹시 닮았더군요 ㅎ


4. 사실 이번 작품은 전작 이후 텀이 좀 짧기도 했고, 포스터나 시놉에서 '걸어도 걸어도'가 연상되기도 해서 아주 큰 기대까지는 갖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아..... 또 한 번 완벽한 드라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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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 (Jason Bourne, 2016)

영원히 고통받는 제이슨 본



1. 이번 '제이슨 본'은 길게 쓸 내용까지는 없어서 간단히 코멘트 하는 방식으로만.


2.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이 다시 뭉친 '제이슨 본'은 확실히 또 한 번 요원물의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제 C.I.A.요원 이야기는 영화로나 다큐로 너무 많이 접해서 신선한 감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기대하는 바는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액션 영화였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본이 그 특유의 빠른 걸음걸이로 군중 속을 휘젓고 다니는 장면만 봐도, '아, 본이 돌아왔구나!' 싶다.


3. 가장 격렬한 격투 액션을 보여주었던 '본 얼티메이텀'에 비하자면 이번 영화는 격투 액션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이미 레전설이 된 제이슨 본 답게, 직접 격투를 최대한 피하면서도 추격 장면만으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지 않다. 격투 액션 얘기가 나온 김에, 아무리 본이 최정상급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만한 특수요원이라지만 같은 C.I.A.요원들이 본에게 거의 한 방에 다 기절하고 마는 장면을 보면, 이것이 진정한 C.I.A.의 위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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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이슨 본의 과거 찾기 이야기와 더불어 영화에는 C.I.A.와 거래를 한 거대 IT회사 대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 흥미로운건, 보통 이런 첩보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위협이나 음모 등의 경우 현실성이 있는 수준의 가까운 미래 혹은 아직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 공포에 대한 것이 대부분인데,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감시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 비지니스의 이야기는 이미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스노든의 폭로를 비롯해 많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피부로 느껴지는 수준의 공포, 더 나아가는 과거의 위협으로까지 볼 수 있던 점이라 공포감이 덜했다고나 할까. 영화의 메인 테마가 제이슨 본 한 사람의 과거와 정체성 찾기에 맞춰져 있다보니, 이 거대한 위협은 비교적 축소되고 또 영화적으로 매력은 덜했던 측면이 있다. 차라리 이 이야기를 제외하고 본의 이야기에만 집중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


5. 스노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무래도 서브 테마의 이야기의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스노든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데, 미정부 그리고 C.I.A.에게 스노든의 폭로가 얼마나 큰 상처이자 걸림돌이었는지 (마치 영화 속 제이슨 본의 존재처럼)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참고로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티즌포'를 권하고 싶다. 



시티즌포 _ 다음 사람들을 위한 프로파간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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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줄리 스타일스도 참 오래 버텼다.


7. 아마도 이 영화가 제이슨 본 이야기의 마지막 편일 가능성이 높지만, 특성상 하려고만 하면 충분히 계속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이 가능은 할 것이다. 제목에 '영원히 고통받는..'이라고 쓴 것처럼, C.I.A.국장이 바뀌고, 담당자가 바뀌고, 조직이 개선되고, 프로그램이 완전 패기 된다하더라도, 그 자체가 실패한 프로그램의 상징인 제이슨 본을 가만히 둘리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게임은 제이슨 본이 죽어야만 끝나는 얘기이기 때문에, 그가 죽지 않는 이상 영원히 고통 받으며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


8.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정말 매력적인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한계가 있어서 그녀의 본래 매력을 다 뽐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뭐 그건, 뱅상 카셀도 마찬가지고.


9. 마치 아쉬운 점들만 늘어 놓은 것 같지만, 2시간을 쉼 없이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딱 기대했던 본 시리즈의 새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관람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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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를 찾아서 (Finding Dory, 2016)

영화는 장애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가


디즈니와 픽사의 신작 '도리를 찾아서'는 '니모를 찾아서'에서 니모를 찾는데 함께 했던 도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종종 픽사의 작품은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인트로 부분에서부터 감정을 울컥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도리를 찾아서' 역시 그랬다. 전편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그저 우스꽝스럽고 모험의 재미를 주는 요소로 활용되었던 도리를 이야기에 중심에 가져오게 되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도리가 단기기억 상실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도리를 찾아서'를 보지 않고 전편 '니모..'만 본 이들이라면 도리라는 캐릭터에 대해 장애라는 것까지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인식되어 있을 텐데, '도리를 찾아서'는 분명하게 도리가 갖고 있는 것이 병이고 그로 인해 겪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 명확하게 들려주고자 한다. 언제부턴가 디즈니, 픽사의 작품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도리를 찾아서'의 인트로 장면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갖고 그 장애로 인해 앞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할 자식을 바라보는 도리의 부모 심정이 느껴져서 인지, 시작부터 감정이 동요했다.




ⓒ Pixar Animation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가져오면서 전작의 모험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모험과 드라마가 되었다. 많은 영화 특히 애니메이션을 보면 사실상의 장애를 갖고 있는 (특히 정신적 장애) 캐릭터들을 희화하거나 재미 요소만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이런 점은 평소 인식되지 못할 정도로 정상적인 주인공의 스릴 넘치는 모험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데, '도리를 찾아서'를 보고 나니 그런 모험의 주변에서 희화화 되어 특히 애니메이션을 보게 될 아이들에게 어떠한 잘못된 선입견을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전편인 '니모를 찾아서'만 해도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 니모를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이 이야기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 모험의 과정에 조력자로 등장하는 도리의 존재는 그저 우습기는 하지만 착한 캐릭터 정도로 묘사된 점이 없지 않다. 그런데 그 속편 격이라 할 수 있는 '도리를 찾아서'는 마치 속죄라도 하는 듯이 도리를 주인공으로, 또 도리의 장애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에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 우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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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갖고 있는 본인이거나 가족 가운데 장애를 갖고 있는 이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영화는 하나씩 말해준다.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것이 전작에 묘사된 것처럼 한 순간의 모험으로만 보았을 땐 재미와 변수, 흥미 요소로 그칠 수 있지만, 한 인생을 두고 길게 보았을 땐, 특히 부모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평생 조심스럽고 걱정되고 또 장애를 가진 본인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불편한 것 정도가 아니라 매순간 순간 삶을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걸 (물론 이 영화는 전체관람가이기 때문에 그 고통까지 직접적으로 묘사하진 않는다)영화 속 도리와 도리의 부모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도리를 찾아서'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장애에 대해 가볍지 않은 태도로 접근하고 바라본 점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인트로에서 어린 도리와 도리의 부모가 나누는 찡한 대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바로 도리가 처한 현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도리라는 캐릭터가 주는 재미와 웃음은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장애 때문이 아니라 도리 자체가 갖고 있는 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성격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건 단순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많은 작품, 애니메이션들이 놓치고 있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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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좋았던 점은 끝까지 이 장애를 극복해야 만 할 요소로 보지 않고 인정하고 함께 해야 할 요소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영화 말미에 기적같이 도리가 모든 기억을 되찾는다거나 하는 가짜 해피엔딩 대신, 그런 도리를 편견 없이 함께 하는 동료, 친구들의 모습으로 마무리 한다는 점이다. 혹자는 영화가 선택한 도리 가족의 이야기를 두고 이거야 말로 너무 영화 같은 해피엔딩이 아니냐 라고 질문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영화가 선택한 가족의 이야기야말로 더 현실적이고 또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응당 도달해야 할 정상적이고 영화적인 해피 엔딩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쉬운 점도 있었다. 마치 '니모를 찾아서'의 도리가 그랬던 것처럼, '도리를 찾아서'의 등장하는 일부 장애를 갖고 있는 캐릭터는 여전히 웃음거리로 묘사되는 안타까운 점이 발견되었다. 캐릭터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새(bird) 캐릭터와 물개 캐릭터는 분명 일종의 정신적으로 장애를 앓고 있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데, 여전히 활용 측면에 있어서 그 장애가 웃음거리가 되는 수준의 묘사를 넘어서지 못했다. 후반부 모험에 등장하는 고래상어 '데스티니'와 고래 '베일리'의 경우는 도리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앞선 두 캐릭터의 경우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으로 묘사된다는 점은 이 영화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니모를 찾아서'에 이런 캐릭터가 등장했다면 차라리 덜 아쉬웠을지 모르겠으나 장애에 대해 제대로 된 시선을 담고자 한 이 영화에서의 그런 묘사는, 정말 아쉽고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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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픽사 스튜디오의 신작 '도리를 찾아서'는 아쉬운 옥의 티가 있지만 그래도 나에겐 전작 '니모를 찾아서'보다도 훨씬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보러간 부모님들이 더 감동 받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1. 영화 시작 전 만나볼 수 있었던 단편 영화 'Piper'도 참 깔끔하고 좋았어요. 스토리도 좋고, 특히 CG수준이 한 차원 높은 수준이어서 놀랍더군요. 


2. 시고니 위버는 정말 시고니 위버 목소리였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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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 (Suffragette, 2015)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여성들의 투표권을 주장하며 거리에서 투쟁하는 '서프러제트 (Suffragette)' 무리의 이야기를 그린 사라 개브론 감독의 '서프러제트'는, 근래 개봉했던 스티브 맥퀸의 '헝거 (Hunger, 2008)'와 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셀마 (Selma, 2014)'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응당 누려야 할 권리 혹은 자유를 갖지 못했던 이들의 투쟁 혹은 그 투쟁 자체에 관한 이야기다.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 속 런던의 배경 역시 20세기 초로 아주 가까운 과거이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 올해가 되어서야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을 정도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근 과거의 이야기 혹은 현재 진행형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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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는 캐리 멀리건이 연기한 모드 와츠라는 평범한 인물이 어떤 일들과 변화를 겪으며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운동가로 변모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주목한다. 이런 구조는 전형적일지 몰라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쟁이나 운동에 큰 관심은 없었던 평범한 인물이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며 결국 서프러제트가 되는 이야기는 반복이지만, 투쟁 혹은 운동에 있어서 이 반복된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가를 떠올려 보면 이 영화의 선택은 옳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주장을 관철 시키기 위해 거리에 나와 운동을 하거나 투쟁을 하는 이들을 그저 원래 그런 사람들로 생각하거나, 특별한 이해 관계가 있어서, 성질이 그러해서 그러는 거라고 오판하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수 많은 사고 혹은 피해로 인해 거리에 투사가 된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평소 여성의 정치 참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역시 누군가 정해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로만 알고 있었던 모드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면서 운동에 뛰어 들게 되는 것처럼,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아주 평범한 이가 투쟁해야 한다는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이미 여러 차례의 반복이 있었음에도 재차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직도 다수는 내가 자의 혹은 타의로 인해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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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주인공이 겪는 고통의 묘사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공권력에 의해 폭력을 당하거나 하는 종류의 고통 보다는 오히려 주변과 가족으로부터 겪는 이질감과 몰이해에서 오는 외로움과 괴로움, 갈등에 주목한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줘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가치 판단의 중요성 보다는 사회의 분위기가 투표권을 주장하는 여성들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과 억누르려는 방향성을 갖고 있을 때, 나서서 피해를 감수하거나 투쟁하기 보다는 그저 조용히 침묵하기를, 적어도 나와 내 가족은 침묵하기를 바라는 답답하고 차가운 공기는, 모드에게 그 어떤 무력을 통한 폭력 보다도 더 큰 고통으로 파고 든다. 시위를 하다 경찰에게 잡힌 모드를 풀어주면서 '체포하지 말고 그냥 집 앞에 내려줘. 남편이 알아서 하게'라는 식의 대사는 이 같은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사 중 하나다. 그렇게 평범한 인물이 가족과 소중한 아들, 직장 등 모든 것을 잃고, 누군가는 목숨을 통해 쟁취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만, 반면 그 무언가를 남성들은 너무 쉽게 소유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부당함, 너무 쉽게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이들의 무지함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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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결코 과거의 역사 속 투쟁으로 읽을 수가 없다. 최근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 여성 혐오 범죄를 비롯해, 다른 곳도 아니고 '서프러제트'의 상영관에서 벌어진 여성 혐오 및 비하, 폭력 사건은, 솔직히 내가 지금 어떤 수준의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처참한 기분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서프러제트'는 누군가가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실은 그것들을 싸우지도 않고 애초부터 갖고 있어서 자신만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이들과, 왜 이것들을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부끄럽고 반성해야 할 역사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이들이 그것을 행동으로 거침 없이 옮길 정도로 사회의 분위기가 썩어버렸다는 것에 한심함 마저 든다. 지금은 우리 사회는 후퇴해도 너무 후퇴했다.



1. 벤 위쇼는 출연하는 지도 몰랐었는데 반갑더군요. 그래도 꾸준히 스크린을 통해 만나게 되네요

2.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아온 많은 것들에 대해 적지 않은 수가 혐오 혹은 분노를 느낀다는 걸 근래 종종 느끼게 되어 당황스럽고 공포스럽기까지 한 요즘이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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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The World of Us, 2015)

현실의 굴레를 꿰뚫은 치명적 섬세함의 결정체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 (The World of Us, 2015)'은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전체관람가의 영화다. 하지만 요즈음은 보기 드문, 말그대로 전체가 관람해야 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하게 된 건 화려한 색감과 일러스트가 인상적이었던 포스터 이미지에 끌렸기 때문이었는데, 이 포스터를 보고 '혹시...'했던 기대감은 '역시...'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가 연상되는 데뷔작인데, 대한민국의 현시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잔인하리만큼 섬세한 시선으로, 하지만 아이들이라는 순백의 도화지로 투명하게 그려낸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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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마도 집안의 경제적인 수준으로 인한 이유 때문에 선이 (최수인)는 보라 (이서연)를 비롯한 같은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외톨이다. 그러던 어느 날, 4학년 여름방학을 앞 둔 날 전학을 오게 된 지아 (설혜인)와 처음 만나게 된 선이는 바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많은 시간을 함께 놀며 보내게 된다. 그렇게 같은 반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선이는 지아와 친해지면서 하루 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지아가 같은 학원을 다니는 보라와 친해지게 되면서 지아 역시 선이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아이들이 겪게 되는 작지만 큰 우주의 이야기로 봐도 좋다. 극 중 방학을 맞아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너희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알아?'라며 방학동안 알차게 보낼 것을 당부하는데, 이 대사는 처음에 들으면 '피식'하고 웃게 되는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정말로 그 나이 때의 아이들에게 그 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깨닫고 피식했던 웃음을 지우게 된다. 아이들이 한 인간으로서 자아와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그 중요한 시기에, 친구와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반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왜 자신을 따돌리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왜 그런지 궁금하지만 그보다는 그 친구에게 어떻게 더 다가갈 수 있을지 조심스럽고. 선이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매일 같이 노는 친구에게 맞고 오는 선이의 동생 윤이 (강민준)에게는 그럼에도 그 친구와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어른들에게는 그저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고, 다투고 하루하루 다들 그렇게 보내는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또래의 아이들에겐 마음이 통했으면 하는 친구와 사이가 좋지 못한 것 보다 더 큰 고민과 괴로움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선이와 지아의 이야기를 통해 이 아이들이 겪는 복잡한 삶의 고민을 아주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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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관계에서 답답함과 힘겨움을 느끼는 선이를 보니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당시에는 나를 싫어하는 친구가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는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엄청난 괴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이야 '그럴 수도 있지'라는 어른의 가치관이 생겨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왜 나를 싫어하지?' '나는 잘못한게 없는데 무슨 오해가 있는거지?'라며 그 상황과 분위기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 했었던 것 같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선이와 지아의 이야기는 아마도 대부분의 어른들이 겪었을 어린 시절의 고민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미움을 받는 것. 그래서 그 미움이 왜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따져 묻기 이전에 당황스러움이 먼저 들게 되는 감정의 변화는 처음에는 누구나 겪었을 생경함이었을 거다. '우리들'이 놀라운 건 누구나 겪었지만 제대로 풀어내거나 표현된 적은 드물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과 처음 겪었던 답답함들을 정말로 100%에 가깝게 묘사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3D입체영화도, 물과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4D영화도 아니었으나 '우리들'은 가히 내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고 있다는 실감이 날 만큼 섬세한 감정선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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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들'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건 영화 속 아이들의 감정과 관계의 뒤틀림 뒤에 보일 듯 말듯 존재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 때문이었다. 즉, 선이와 지아 그리고 보라가 겪게 되는 문제의 원인이 되는 어른들의 현실의 문제 말이다. 경제적으로 잘 살고 못살고 하는 문제. 누군가는 더 큰 집에 살고, 누군가는 더 작은 집에 살고, 누구는 좋은 차를 타고, 누구는 차가 없고. 누구는 생일을 맞아 어디서 어떻게 파티를 할까 고민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는 생일 선물을 살 돈이 없어서 속앓이를 해야만 하는. 더 나아가 반 친구들이 다 다니는 학원을 다니고 싶지만 우리 집 형편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어서 스스로 마음을 접어야 하는 이런 현실 말이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 같은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그 답은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쉽게 생각하면 태어나면서부터 경제적인 환경을 통해 경쟁이 시작되는 아이들의 현실을 탈피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아이로 키워내고 싶지만, 이건 자칫 부모의 과욕 혹은 자만일 수도 있다는 불확신 역시 드는 부분이었다. 다시 말해 부모는 현실의 불합리함을 벗어나 현명한 삶을 이루고자 한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아이가 겪어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 영화 속에서도 등장했던 따돌림이나 사회의 일원으로 속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 들을, 그 작은 아이에게 선택권 없이 겪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을 내놓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바로 이 지점을 잔인하리만큼 꿰뚫고 있는 영화다. 그 섬세함이 좋았던 건 이 현실을 그리면서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되거나 섣부른 판단을 하는 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선이의 부모에 대한 묘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런 고민을 겪는 외로운 어린이 주인공을 그린 다른 영화였다면 아버지는 그야말로 알콜 중독자고, 어머니 역시 빠듯한 살림고로 인해 아이의 고민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완전히 무시하는 인물로 그려졌을 텐데, 이 영화 속 선이의 어머니는 빠듯한 살림고 속에도 최대한 두 아이의 삶을 돌보려 노력하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무시해가며 아이에게 헌신하지도 않으며 매일 같이 반복되는 어린 아들의 트러블에도 현명하게 대처해 낸다. 나는 그래서 선이 만큼이나 선이 어머니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더 심장이 조마조마 하고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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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선이의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로 아주 나쁜 아빠였다면, 그리고 선이의 엄마도 하루하루 사는 것에 목 매달려 선이의 삶은 관심 조차 없는 무정한 엄마였다면, 그리고 선이를 따돌리는 보라도 어쩜 저렇게 나쁜 애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약한 아이였다면, 선이가 겪는 고민과 힘겨움들에 오히려 탈출구가 보였을 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너무 현실적이었기에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앞서 내가 내 아이를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키워가야 할지에 대해 아직도 명확한 답, 아니 방향성을 갖지 못했다는 것처럼, 영화 속 선이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것도 쉽게 해결하거나 매듭지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경제적인 생활 수준의 차이는 선이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같을 수 없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학원)의 차이 역시 발생할 수 밖에는 없으며, 이 차이로 인해 아이들이 겪게 될 아픔 역시 그저 어린 아이들 보고 현명하게 대처하라고 놔둘 수는 없는 어른의 문제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 현실의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영화보다 섬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답도 선뜻 내리지 않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선이는 반친구들과의 피구 게임에서 맨 마지막에 지목되는 것에서 결국 벗어나게 되었지만, 이것이 과연 해결이라고 영화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영화가 섣불리 답을 내놓지 않은 태도가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그 문제의 본질의 깊이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신 만의 답을 내놓는 것에 비하자면, 윤가은 감독은 깊이있게 파고들어 이해한 덕분인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음을 알아차린 듯 했다. 그래서 이 영화엔 막연한 긍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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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 속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문제가 고스란히 재현된 탓에 심장이 답답하고 또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도 여럿 있었다. 그 만큼이나 슬펐던 건 객석 뒤에서 영화 중반 소리 내어 훌쩍이던 어느 어머님 때문이기도 했다. 아마도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계실 그 분의 울음 소리는 이 영화가 얼마나 현실을 꿰뚫고 있는 지에 대한 증거인 동시에, 우리가 처한 어려운 문제를 재차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도 얼마 전 아빠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 특별한 영화일 수 밖에는 없었다.



1. 진짜 아역 배우분들 어쩜 이렇게 연기를 다 다 다! 잘하나요!!! 이선 역할을 연기한 최수인 배우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욧! 

2. 올해 '우리들'보다 더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나올까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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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 : 블루레이 리뷰 (Tinker Ticker : Blu-ray Review)



김정훈 감독의 데뷔작 '들개 (Tinker Ticker, 2013)'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 그러니까 보통 현실을 담아낸다고 했을 때 흔히 선택하게 되는 보편적이고 겉 핥기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었을 때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깊이 있는 진짜 현실적인 이야기를,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 있는 사제 폭탄이라는 소제를 활용해 그려낸 수작이다 (다른 얘기로, 요즈음의 한국 사회 모습을 보면 사제 폭탄이 더이상 비현실적인 소제라고 말하기 조차 구차스럽다). 여기에 지금은 제법 알려진 스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첫 장편 출연작이거나 아직 독립 영화계에서만 이름을 알려왔던 변요한과 박정민 두 배우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마 이 작품은 이 두 배우 덕에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더 많은 조명을 받게 될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들개'는 어떤 이유에서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일원으로 완전히 흡수 되지 못한 20대 혹은 30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잘 표현해 낸 작품이다. 흔히들 2,30대 청년들의 사회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청년 실업 문제를 중심으로 경제적인 불투명한 미래 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현재 청년들이 처한 상황은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인 측면이 있다. 김정훈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즉 자신이 겪었던 감정들을 그려낸 이 영화 속 박정구(변요한)의 이야기는 물론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 섞이지 못한 일종의 외부인으로서 겪는 직업과 관련된 직접적인 갈등이 존재하지만, 그 외에도 정확히 이거다 라고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불만 혹은 답답함이 더 큰 갈등이자 문제로서 등장한다. 정구는 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계속 면접을 보지만, 정구가 사제 폭탄을 만들어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등의 일은 단순히 그가 매번 면접에 떨어져서도, 조교실에서 교수와 선배들에게 무시를 당해서 만도 아니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정구의 이야기를 단순히 취준생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이 영화가 담아내고자 했던 현실과 감정/갈등을 다 읽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들개'에는 주인공 정구 외에 박정민이 연기한 이효민 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효민은 정구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불만을 가진, 다른 성격의 같은 인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효민이 정구에게만 존재하는 유령 같은 (혹은 악마같은)존재로 느껴졌다. 정구는 사제 폭탄을 만들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그 폭탄을 사용하지도 못하는 탓에 불특정 다수에게 폭탄을 보내 그 폭탄이 사용되기 만을 바라는데, 그의 눈에 들어온 아주 적합한 이가 바로 사회의 불만이 많아 보이고, 더 나아가 그 불만을 표출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효민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을 나란히 두고 각자 존재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효민을 정구의 욕구가 표출된 분신으로 볼 때 더 큰 매력을 갖게 된다. 정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폭탄을 사용한 정구의 행동에 표현하지는 않지만 쾌감을 느끼게 되고, 효민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하면서도 그를 큰 거리낌 없이 받아 들인다. 하지만 반대로 어느 정도 안정과 안식을 찾게 된 이후 위험한 존재인 효민을 멀리하고자 하지만, 효민은 결코 쉽게 정구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들개'에서 가장 소름끼치도록 들켜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순간은 죽일 정도로 미워했던 담당 교수가 결국엔 정구를 (그래도)신경 써주고 취업을 도와주게 되면서, 정구가 한 순간에 자신도 동경 혹은 멸시했던 그 사회의 일원으로 흡수되는 장면이었다. 그 전에 이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보통과는 다르게 담당 교수가 본래는 착한 사람이었고 정구가 오해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쁜 놈인 것은 그대로인데 정구가 원했던 몇 가지를 해결해 주는 것에서만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담당교수를 향한 정구의 불만과 증오가 단순한 오해만은 아니었음에도 정구가 그렇게 원하던 취직을 해결해 주었다는 점은, 그 취직이라는 것이 오히려 정구가 멸시하던 사회로의 편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 수 있고, 정구 역시 정의와 불의의 가운데 에 있는 영화적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그래서 현실적인 주인공임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시점부터 관객은 온전히 정구의 편에 설 수 없게 된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정구의 편에 서고 싶지 않게 된다. 그건 돌려 말하면 관객 자신도 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점을 송곳 처럼 파고드는 것이 김정훈 감독의 '들개'가 가진 가장 큰 시사점이다.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정구는 과연 살아남았나. 정구는 과연 그가 바라던 사회에 일원이 된 것인가. 처음부터 그 사회를 경멸한 것은 내가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스포일러 끝)


[들개 : 블루레이] 인상적인 데뷔작에 내려진 놀라운 축복




* 플레인 아카이브의 팬이기는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같은 타이틀을 중복으로 A/B타입 모두 구매하지 않는데, '들개'는 둘 다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A타입은 영화와 딱 떨어지는 완벽한 이미지였고, B타입은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또 다른 매력이자 취향이어서 구입하지 않을 수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만약 플레인에서 '들개' 블루레이가 발매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는 훨씬 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말하자면 국내 블루레이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아...이 푸념은 하면서도 늘 지겹고도 슬프다) '들개'같은 독립 영화가 발매 될 확률은 지극히 희미 하다는 점에서 새삼스럽지만 출시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다. 앞서 '훨씬 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라고 한 이유는 플레인 아카이브의 유명세로 인해 이 영화를 흥행 시켰다는 얘기가 아니라, '미생'과 '육룡이 나르샤' 등으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된 변요한과 '파수꾼'을 비롯해 최근 '동주'로 더 큰 인기를 얻게 된 박정민 배우의 팬들이 놓칠 수도 있었던 두 배우의 뜨거운 연기가 담긴 수작 한 편이 적당한 타이밍에 블루레이로 발매된 덕에 서로를 놓치지 않고 알아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군가는 최근 뜨거워진 두 배우의 인기에 편승한 재빠른 출시가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블루레이 제작을 결정했을 시점에서는 결코 두 배우의 인지도가 지금과 같지 않았었다. 좋은 작품을 작품의 크기나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선택한 것인데 이후 두 주연 배우가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오히려 플레인 아카이브의 팬으로서 역으로 고마울 정도다. 






아주 가끔이지만 간혹 영화에 비해 과한 패키지로 출시 된다거나 혹은 굳이 블루레이로 발매될 정도의 영화가 아닌데 (이건 국내의 특수한 시장상황 때문이지 결코 보편적인 이유는 아니다) 급작스럽게 블루레이로 발매되어 조금은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다. 물론 출시 되지 않은 것 보다야 훨씬 더 나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많은 좋은 영화들이 제대로 된 타이틀로 발매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상황에서 상대적인 아쉬움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적어도 '들개'는 그 놀라운 축복을 받을 자격은 충분히 있었던 좋은 데뷔작 임엔 틀림 없다. 저예산의 규모가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영리한 구성과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 그리고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대규모 상업영화들과 견주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긴장감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다시 블루레이 패키지 이야기로 돌아와 플레인 아카이브 넘버링 #021 타이틀로 출시된 블루레이는 역시 플레인 답게 디자인과 패키지의 구성에서 또 한 번 만족감을 주는데,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무릎을 탁!하고 칠 만한 기막힌 아웃케이스(A타입)가 가장 눈에 띈다. 영화 속 수제 폭탄 박스 이미지를 최대한 실제처럼 구현한 이 아웃케이스 이미지는 진짜 '딱'이다. 여기에 청테이프의 질감을 살린 플레인 아카이브 한정판 스티커는, 새삼스럽지만 하나의 블루레이 패키지를 기획하고 디자인할 때 주먹구구식이 아닌 하나의 큰 기획 아래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 디테일!



* 디테일이다!!



* 블루레이 만을 위해 독점으로 수록 된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 (CD)


부가영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블루레이 독점으로 수록된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최초는 아니지만 해외 타이틀에 로컬 음성해설을 별도로 제작해 수록하기도 했던 플레인은 (최초는 블루레이는 아니지만 아마도 예전 스펙트럼 DVD 시절에 쇼브라더스 타이틀에 수록되었던 로컬 음성해설이 아닐까 싶다), 이번엔 별도로 발매되지 않은 영화의 스코어를 블루레이 만을 위해 독점으로 수록하는 또 한 번의 과한(?) 정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취향에 따라 스코어 음반은 누군가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취향을 떠나서라도 어찌되었든 '들개'라는 영화와 블루레이 타이틀의 소장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영화와 관련 된 자료 혹은 정보를 최대한 끌어 담으려한 시도는 그 자체 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다. 스코어의 독점 수록은 새로운 시도였는데 추후에도 국내 영화 출시시에는 유사한 시도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영화 만큼이나 만족스러웠던 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었다. 혹자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것 같은데?'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잘 살펴보면 부가영상으로 수록 된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 및 삭제 장면, NG 장면 등이 사전에 영화 홍보를 위해 일률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블루레이 수록을 위해 진행되거나 염두에 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영화 타이틀의 경우 아직까지도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화질이나 음질 보다도 양적으로 부족하거나 질적으로 평범한 부가영상들인데, 애초 기획 단계에서부터 DVD나 블루레이가 고려되지 않거나 고려되었다 하더라도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뻔한 인터뷰나 그 인터뷰 내용이 중복된 제작영상이 수록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들개'는 당연히 사전에 블루레이 제작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제작이 결정 된 이후 갖게 된 상영회 등에서 블루레이 수록 만을 위해 별도로 인터뷰나 관련 코멘트 등을 추가한 점이, 질적으로 확실히 느껴지는 점이라 만족스러웠다.





김정훈 감독과 변요한, 박정민 두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도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들어 볼 만한 트랙이다. 김정훈 감독에게 이 작품이 갖는 의미와 두 배우가 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보니 흥미롭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아마도)상상마당에서 상영회 후 진행 된 듯한 두 배우의 인터뷰 영상도 진지함이 묻어나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듣게 되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 된 관객과의 대화 영상 역시 불필요한 내용 없이 영화의 메시지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 등을 전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 외에 삭제 장면, NG장면, 또 다른 엔딩, 오디션 영상 등이 수록되었는데 이들 영상이 좋았던 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냥 늘어 놓기 식의 정보성 영상이 아니라, 감독의 코멘트가 텍스트로 제공되어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등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이해가 돋보이는 구성이었다. 확실히 그냥 별다른 설명없이 수록되었을 때보다 해당 영상들을 더 주목해서 끝까지 감상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는데, 이 작품과 배우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나서 더 의미있는 부가영상이었다.





사실 나는 변요한, 박정민 두 배우의 팬이자 플레인의 팬이라서 엎친데 덮친 격이라 '들개' 블루레이를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여서인지는 몰라도, 영화도 타이틀도 만족스럽게 빠진 것이 이렇게 글을 부러 쓰게 되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아마 '들개' 블루레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나중에는 더 소장 가치가 높아지는 타이틀이 될 것이다. 변요한의 데뷔작, 박정민의 초기작이 더 의미있어 질 때, '들개' 블루레이의 가치는 지금보다도 더 크게 빛날 것이다. (두 개 사길 잘했어.)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플레인 아카이브 에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미처 소개 못한 스크린샷 몇 장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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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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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는 압도적인 미장센과 진취적인 이야기 그리고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캐릭터가 위태롭고 매혹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총 3부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는 숙희의 입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2부는 히데코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그녀의 입장으로 1부 벌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소개하고, 3부에서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종결지으며 두 여인을 비롯해 백작과 코우즈키의 이야기도 모두 마무리 한다.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1,2부의 제목은 아가씨고 3부의 제목은 아저씨'라고도 했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1부의 이야기는 숙희의 입장으로 전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를 소개하고 2부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히데코와 백작 캐릭터를 중심으로 보여주는데, 반전의 요소가 있지만 결코 반전을 위한 구성이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진실이 무엇인지 2부를 통해 소개한 뒤 영화는 3부를 통해 4명의 주요 캐릭터들을 각각 마무리 한다. 즉, 3부는 종결, 해결의 측면 혹은 목적이 강한 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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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근래 동성애를 다룬 좋은 영화 중 하나였던 토드 헤인즈의 '캐롤'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캐롤'은 말 그대로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미묘한 감정 선을 유려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면, 박찬욱의 '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루고는 있지만 동성 간의 사랑이 중심에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남성 중심의 세계 관을 풍자하고 여성 캐릭터가 독립적으로 향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즉, 박찬욱에겐 동성애라는 소재가 더 이상 사회 통념 하에 극복해야 할 과제라기 보다는 이미 극복한 다음의 이야기, 즉 '동성애가 더이상 그렇게 특별한 일이야?'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 스텝으로 건너 뛴 듯한 느낌이다. 다시 말해 히데코와 숙희의 관계와 감정을 '캐롤'의 그것과 1:1 비교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서로가 자신의 삶의 굴레를 깨고 나아가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구원자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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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보아도,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두 여자 인물들에 비해 두 남성 캐릭터인 백작과 코우즈키의 모습은 직접적인 형태로 풍자되고 하찮게 묘사되고 마무리 되는 구조를 담고 있음에도,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페미니즘 영화를 추구하지 않는 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영화가 표현한 방법에 있어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기엔 여전히 애매한 측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씬은 수위 만을 놓고 보자면 제법 파격적인 수준이었으나 감정적으로는 전혀 야하지 않은, 그러니까 두 인물의 감정 선이 녹아들어 있지는 않은 베드씬이라 다른 동성 간의 (이성 간도 마찬가지고) 베드씬과는 다르게 성적 흥분이 들지는 않는 건조한 장면이었다. 이를 바꿔 말하자면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씬은 과연 그 정도의 묘사와 비중으로까지 필요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3부는 두 여성 주인공의 해피 엔딩만큼이나 두 남성 주인공의 배드 엔딩(?)의 비중이 큰데, 마치 이 마지막 베드씬은 두 여성 캐릭터를 위한 (그녀들이 원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두 남성 캐릭터의 배드 엔딩을 더 가혹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더 크게 느껴졌다. 1,2부에 비해 3부는 전체적으로 극이 고조되거나 클라이맥스에 이른다는 느낌보다는, 풀어 놓은 매듭을 모두 정리하는 완결(해결)의 느낌이 더 강한데, 그 보다는 두 여성 캐릭터의 해피 엔딩의 깊이나 감정선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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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단락에 조금만 더 보태자면, 그렇게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바로 박찬욱 스타일의 영화가 아닌가도 싶다. 감정적으로 공감대가 넓고 보편적인 방식 대신, 가지 않은 길을 택하고자 많이 고민하고 자신의 취향을 영화 속에 녹여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것. 그래서 모두가 그를 주목하던 시점에서도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같은 영화를 낼 수 있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3부의 전개와 묘사는 1,2부 보다도 더 박찬욱 스러운 모습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스텝들의 결과물도 연출 만큼이나 큰 기대를 갖게 하는데, 류성희 미술감독이 만들어 낸 미장센은 '아가씨'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히데코가 살고 있는 코우즈키의 대저택은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자체가 캐릭터의 성격을 대변하는 가장 훌륭한 매개체인 동시에 스스로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낭독회가 진행되는 공간은 특히 그 거리감과 구도가 예술이었는데, 좌우로 보았을 땐 인물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띄엄 띄엄 앉아 있는 구도가 매력적이었으며, 앞뒤로 보았을 때도 히데코와 남성 캐릭터들의 거리 (가까이 있을 때 보다도 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거리)가 영화에 리듬과 긴장을 담아 내고 있다. 류성희 미술감독에게도 이번 '아가씨'의 디자인은 모든 것이 총망라된 몹시 모험적이고 고된 작업이었을 텐데, 그 결과물은 정말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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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미장센 만큼이나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히데코를 연기한 김민희와 숙희를 연기한 신인 배우 김태리의 연기다. 이제 더 이상 연기에 관해서 칭찬을 하는 것이 새삼스러워진 김민희의 경우, 연기가 업그레이드 된 것은 물론이요, 그 아름다움이 몇 배는 업그레이드 되어 버린 모습을 '아가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상속녀로 그려지는 1부 속 숙희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히데코의 모습은, 깨어질 듯한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발견은 단연 김태리다. 보통 몇 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 된 배우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관심을 끌지도 매력적이도 않은 것이 사실인데, 김태리의 캐스팅의 경우 새삼스럽게 '아..그 수 많은 경쟁자를 과연 물리치고 선택 될 만하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물론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김태리라는 배우의 얼굴 만이 가진 매력이 숙희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 시켜준 느낌이었고, 애정, 애증, 행복, 모성애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내는 데에 있어서 어색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던, 딱 맞는 연기와 캐릭터였다. 그리고 하정우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를 독보적으로 해냈다. 백작 캐릭터는 자칫하면 풍자의 깊이는 없이 그저 우스꽝스럽기만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우습게 보이는 동시에 연민마저 느껴지는 백작 캐릭터를 적절한 비중으로 연기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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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박찬욱의 '아가씨'는 특유의 조소와 미장센이 시대극이라는 배경과 두 여성 캐릭터라는 매력을 통해 발산 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지 않은 입장에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설정은 정말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것에 집중해서 영화에 빠져든다면 좀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극장에서 문소리 배우는 등장과 동시에 관객들이 웅성웅성 했지만 상대적으로 이동휘 배우는 관객들이 갸우뚱 하더군요 ㅎ

2. 히데코 아역으로 나온 배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본적이 없더군요...(이상해;;;)

3. 영화를 보고 나니 주연 캐릭터 중 몇몇은 일본 배우가 했어도 좋았겠다 싶더군요.

4. 아... 앞으로 김태리 라는 배우는 과연 어떤 영화를 보여줄까요. 몹시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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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 아포칼립스 (X-Men: Apocalypse, 2016)

공허하게 늘어놓은 세대교체기



미리 말하자면 내게 있어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시리즈는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보다도 더 좋아하고, 특히 시리즈를 거듭해 오며 캐릭터들의 역사와 이야기가 쌓여갈 수록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애정하게 된 시리즈라 하겠다. 그 가운데서도 최근에 선 보였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X-Men: Days of Future Past, 2014)'는 그 애정함을 최고조로 발산할 수 있었던 브라이언 싱어 특유의 아름답고 감정적인 액션 블록버스터였는데, 프리퀄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엑스맨 : 아포칼립스 (X-Men: Apocalypse, 2016)'는 아쉽게도, 그럼에도 선뜻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힘든 영화였다. 적어도 지금은 (왜냐하면 이런 시리즈의 역사 속에 있는 작품들은 간혹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 다시 좋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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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는 전체적으로 장황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액션의 스케일은 크고, 캐릭터들의 갈등도 고조되지만 시각과 청각적으로 볼거리가 화려해질 수록 한 편으로는 '왜?'라는 물음과 함께 공허함이 느껴진다. 러닝타임이 물론 긴 편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길기 때문이 아니라 주 악당인 아포칼립스 (오스카 아이삭)와 엑스맨 멤버들의 갈등의 비중을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말하자면 오스카 아이삭이 연기한 아포칼립스라는 캐릭터는 모든 돌연변이들 가운데서도 신 적인 존재에 해당하는 그야말로 압도적이고 막강한 캐릭터인데, 그 캐릭터 자체로서도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측면이 너무 도드라졌고, 그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보니 후반으로 갈 수록 그 모습에서는 공포스러움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이 정도의 압도적인 악당이 등장할 경우 더 단순한 대립 구조를 취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 텐데, 이번 작품에서는 프리퀄 작품들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 찰스와 에릭의 갈등 구조가 반복되는 동시에, 익숙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로의 (진 그레이, 스톰, 스캇, 나이트크롤러) 세대교체 목적을 달성해야 했기에, 조금은 장황하고 선명하지 못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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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와 에릭의 갈등 테마는 두 배우가 열연을 통해 (특히 패스벤더가)다시 한 번 살려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이미 전작들에서 충분히 활용 되었고 또한 이번 작품에서는 깊이가 그리 깊지 않다보니, 또 한 번 빠져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이 외에도 '아포칼립스'는 공감대의 대부분을 프리퀄 전작들은 물론 싱어가 연출했던 엑스맨 1, 2의 이야기에 기대고 있는데, 물론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의존성은 싱어의 엑스맨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아포칼립스'는 그 단점을 잘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똑같은 이유로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정말 감동적이었는데, '아포칼립스'는 공허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농담처럼 이 영화를 한 줄로 평가하자면 '찰스는 어쩌다가 대머리가 되었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또 하나, 액션 연출에 있어서도 스케일은 엄청나게 키웠지만 (음악 또한), 내실이 부족하다보니 역시 공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지구 상의 모든 핵무기가 출동하고 지축을 흔들 만큼의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나지만, 그 크기도 그 위기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겉 도는 분위기였다. 차라리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압도적인 아포칼립스의 능력을 더 드러내고, 이에 맞서서 고전분투하는 엑스맨들의 활약상을 그리거나 반대로, 아직 어린 엑스맨 캐릭터들이 어떻게 처음 엑스맨으로서 활약하게 되는지를 주목해 브라이언 싱어가 이루고자 했던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목적 달성에 더 집중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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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속에서 '제다이의 귀환'을 이야기하면서 '망했다' '제일 별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엑스맨 프리퀄 삼부작 가운데 이 작품도 그런 평가를 할 수 밖에는 없겠네요. 재밌는건 이 농담 뿐 아니라 스토리상에서도 에릭과 퀵실버의 이야기 속에는 슬쩍 '제다이의 귀환'의 다스베이더와 루크의 설정이 들어있기도 하지요.


2. 로즈 번의 팬으로서 초반 그녀의 등장 씬을 보면서 마치 '에이전트 카터'처럼 모이라의 이야기를 다룬 스핀오프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CIA 요원으로서 계속 돌연변이들의 흔적을 찾아 연구하는. 


3. 이 영화만 보면 능력은 아포칼립토 보다도 오히려 퀵 실버가 더 짱인듯 ㅎ


4. 스톰은 모습은 그렇다치고, 억양은 전혀 다른데 영재 학교에서 나중에 많이 고친듯.


5. 제니퍼 로렌스는 역시 멋있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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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 스트리트 (Sing Street, 2016)

처음의 설레임이 가득한 음악영화



'원스'와 '비긴 어게인'을 연출했던 존 카니의 신작 '싱 스트리트 (Sing Street, 2016)'는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한 또 한 번의 음악 영화다. 너무나 완벽했던 영화 '원스'와 그 그늘 아래 존재할 수 밖에는 없었던 '비긴 어게인'의 아쉬움 이후 만든 이 영화는 음악 영화의 장점과 청춘 영화의 발랄함과 동시에 진지함도 잊지 않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존 카니의 세 작품은 모두 음악(노래)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독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탄생의 순간을 관객 또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사명처럼 느껴지는데, 뭐랄까 존 카니는 단순히 '음악이 이렇게 마법같이 탄생한단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봐, 누구나 좋아하면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싱 스트리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이 10대 어린 소년들이 밴드를 이루고 음악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과연 누가 '제대들이 갑자기 어떻게 저런 실력을 가지게 된거야?'라고 개연성을 따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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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고 새롭지 않아도 매번 매력적인 소재가 있는데 바로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걸 가장 잘하는 감독 중 하나인 존 카니의 재능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싱 스트리트'는 이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서 '원스' 보다도 더 솔직하고 직접적인 영화다. 주인공 코너는 악상이 떠오르거나 혼자 곡이 잘 안써질 때마다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바로 친구인 에먼의 집을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곡 쓰는 것 좀 도와줄래?'. 그렇게 하나 둘 의견을 더해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보고 또 봐도 놀랍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이건 관객의 입장에서 음악을 잘 아는가 모르는가, 곡을 써 본 경험이 있는가 아닌가와 무관하게 발견할 수 있는 놀라움이다. 즉, 매일 프로로서 곡을 쓰는 뮤지션의 입장에서 보아도 누군가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또 다시 매력적일 수 밖에는 없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뮤지션이 계속 곡을 쓰고 노래하는 이유 중 하나일테고). 


'싱 스트리트'는 단순한 소년의 밴드 영화, 음악 영화와는 조금 다르게 가족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사실 이런 스타일의 영화에서 이 같은 진지함은 급작스러운 이질감을 주기 쉽지만, '싱 스트리트'는 과장하지 않은 이야기로 진정성도 가질 수 있었다. 코너의 형의 이야기가 그러한데, 계속 주변에 머물렀던 형의 이야기가 한 순간 중심에 들어 왔을 때 그간 영화가 보여주었던 정서와 이질감이 느껴졌다면 영화 후반 완성도를 크게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을 텐데, 형 이야기의 진심이 통했다고나 할까. 우리가 음악 영화에서 흔히 놓치곤 하는 주인공 외의 주변 인물. 즉, 주인공은 이런 저런 역경에도 결국 극복해내 원하는 음악을 하게 되지만, 주인공과 같은 삶을 그저 주변에서 동경할 수 밖에는 없는 인물에 대한 배려가 엿 보이는 장면이라,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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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 스트리트'는 1980년대 팝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더 환장할 만한 영화다. 듀란듀란을 필두로 더 클래시, 모터 헤드, 더 큐어 등의 음악을은 물론 당시의 음악 스타일을 온몸으로 구현하는 '싱 스트리트'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흐뭇하고 즐거워 진다.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영화다.


1. 밴드 멤버들 한 명 한 명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특히 베이스 치는 멤버의 그 시크한 귀여움이란 ㅎㅎㅎ

2. 사운드트랙도 바로 구입해야!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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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哭聲, 2016)

의심과 현혹으로 탄생한 지옥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 (哭聲, 2016)'은 인간의 의심과 무지 그리고 그로 인한 현혹을 주제로 신과 악마의 이야기를 가장 현실적인 공간의 배경에 풀어 놓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감독이 분명한 하나의 의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이나 이해가 가능하도록 만든 구조의 작품들인데, '곡성'도 그 중 하나다. 개봉 첫 날 부터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데 (담론이라기 보다는 궁금함으로 인한 해석과 설명들), 이런 영화들은 사실 한 가지의 답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몇 가지의 답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긴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그만큼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불러 모았던 나홍진의 '곡성'은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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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시작 인용한 성서 구절과 마지막 동굴 시퀀스에서 외지인이 들려주는 대사는 그렇게 의심이라는 주제로 수미상관을 이룬다). 그리고 그 의심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의 가벼움에 대해서도 말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이 발생하고 동네에서는 사람들의 입을 거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바로 외지인인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범인이라는 혹은 귀신이라는 얘기. 경찰인 종구 (곽도원)는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웃어 넘겼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게 되 그 역시 외지인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몇 가지의 확신할 만한 상황들이 벌어지게 되면서 이 의심은 더 확고한 확신으로 번져 간다. 한 번 생겨난 의심 그리고 이를 더 확고하게 해 줄 만한 말들과 현실들이 더해지면서 사태는 것잡을 수 없이 빠르게 전개 되어 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종구의 의심과 현혹됨이 관객에게도 동시에 진행되고 발전된다는 점이다. 관객은 주인공인 종구의 시점을 공유하며 같은 입장에서 인물들을 의심하고 그 현혹된 시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의심에 관한 텍스트는 주인공의 결백 등과 맞물려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만나볼 수 있었던 이야기인데 '곡성'은 여기에 종교적인 이야기를 적절하게 겹쳐 놓았다. 신, 특히 종교야 말로 의심이라는 것에서부터 태어났으면서도 의심이 허용되지 않는 존재가 아니던가. 나홍진은 이를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관객들의 의심 역시 십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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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무라 준이 연기한 외지인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가장 (특히 초반)공포스럽고 악마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벌거벗은 채로 고라니를 뜯어 먹고, 그것이 설령 꿈이라고 하더라도 새빨간 눈동자를 한 모습과 피해자들을 전시해 놓듯 사진들로 가득 찬 그의 공간은 그를 연쇄 살인마 이상의 악마로 (혹은 귀신으로)의심하고 확신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이 외지인 귀신을 떨쳐내기 위해 고용된 무당 일광 (황정민)은 그 등장에서 부터 완벽하게 일본인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서 묘사된다. 더 나아가 일광이 한참 귀신을 쫓기 위해 굿을 벌이던 중, 종구가 결국 약해진 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 굿판을 중지 시키게 되었을 때 관객은 '아, 조금만 더하면 귀신을 죽일 수 있었는데 아쉽다..'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 후 외지인은 힘을 잃고 일광도 떠나고 종구의 딸은 병원에 맡겨진 뒤 영화는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그간 일방적으로 확신을 가졌던 종구의 시점을 뒤흔든다. 귀신이라고 믿었던 외지인이 만져지고 죽음에 이르는 것을 종구가 직접 목격하게 되는 것 (그 시체를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길 아래로 던져버리는 행동도)이나 이를 멀리서 마치 귀신처럼 지켜보는 무명 (천우희)의 모습은 무명 = 목격자, 외지인 = 귀신이 아니라 일광의 전화가 알려준 것처럼 무명 = 귀신, 외지인 = 무당 이라는 해석으로 단숨에 전환된다. 그러면서 영화는 마치 이것이 반전인 것처럼 급박하게 휘몰아 친다. 마치 귀신일지도 모를 무명을 종구가 다시 마주하게 되는 위기의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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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가족의 목숨이 귀신 혹은 악마에게 모두 빼앗겨 버릴 위기에 놓여있는 종구 앞에 이제는 가장 두려운 존재인 무명이 나타난다. 무명은 딸과 가족을 살리려거든 닭이 세 번 울 때까지만 참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직접 외지인의 시체를 목격한 경험과 일광의 전화로 무명의 존재에 대해 깊이 의심하게 된 종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 상황은 외지인이 악마임을 확신하고 죽이고자 찾아간 부제인 이삼 (김도윤)의 상황과 겹쳐진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귀신이 아닌 악마 적인 모습을 대놓고 드러내는 외지인과 이삼의 대화가 영화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외지인은 이삼에게 '너는 나의 존재를 의심해서 알아보고자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묻는다. 대답하지 못하는 이삼에게 외지인은 마치 영화의 시작 성서에서 인용된 예수의 말씀처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있느니라' '나를 만져보아라'라고 말하며 마치 십자가의 못 박힌 예수의 상흔과 같은 손바닥의 상흔을 보여준다. 


이 동굴에서의 대화는 겉으로는 반그리스도 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곡성'의 반그리스도적 상징과 묘사들은 '의심'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스며들어 있다. 언급 했던 것처럼 종교, 신 과 같은 절대적인 믿음의 상징들은 의심이라는 주제를 설명하기에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의심이 아니라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려고 온 것이 아니냐는 질문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참으로 별 것 아닌 말들과 오해들로 갖게 된 의심이 어떻게 확신이 되고 그 확신을 포기하는 것을 인간이 과연 해낼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비관적인 질문은 영화 '곡성'이 던지는 진짜 질문이다. 악마, 악, 공포 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심과 그 의심이 스스로 끌어들인 현혹이 어떤 지옥을 만들어 냈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인물이 귀신도 그 귀신을 쫓으려는 무당도 될 수 있고, 악마가 신(예수)의 모습과도 하나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통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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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영화가 지속적으로 말하고자 한 또 한 가지가 바로 무지다. 귀신을 봤다는 사냥꾼이 자신의 텅빈 냉장고를 보여주며 '이게 바로 증거다'라고 말할 때 종구와 관객 모두가 웃어 넘기지만 사실 이 장면 역시 영화의 메시지와 깊게 맞닿아 있다. 부활한 예수를 보고 직접 손과 발을 만져보고서야 믿게 된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라고 말한 예수의 말처럼, 이 장면 역시 의심의 관한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 


'곡성'에서 말하는 무지란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무명도, 귀신에 씌인 딸도 종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묻는다. '뭐가 중요한지 알기나 해'.

몇 번을 묻지만 이 질문은 오히려 너무 직접적이라 종구는 결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미 종구의 마음엔 확신 만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벌어지는 상황들로 인해 계속 불안해 하는 종구에게 무슨 확신 만이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보면 종구는 불분명한 것들로 인해 불안함을 겪어 왔다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확신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그 확신이 계속 옮겨 갔을 뿐이지. 편협된 혹은 어쩔 수 없이 편협된 정보들로 이룬 자신 만의 결론과 확신을 두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스스로 혼란에 빠져 버리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이 비극은 더 깊어져만 가고, 맨 마지막 종구가 남긴 '괜찮아, 아빠가 다 해결할께'라는 말은 이 비극을 쉽게 해피엔딩으로 위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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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은 이번에도 관객들을 아주 불편하게 하고 특히 영화 속 인물들을 아주 고약하게 괴롭히고 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영화가 주인공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을 대부분의 관객들은 불편해 하는데, '곡성'은 결과만 보면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딸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종구에 대한 연민과 위로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악마와 맞서 싸우는 퇴마사의 이야기거나 혹은 연쇄 살인사건을 파해치는 형사나 전문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별다른 걱정 없이 살아온 듯한 평범한 주인공이 어느 날 연쇄 살인과 귀신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맞닥 들이게 되고, 더 나아가 바로 자신의 딸이 휘말리게 되면서 겪게 되는 과정은, 영화의 주제인 의심과 무지의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어쩔 수 없이 당할 수 밖에는 없었던 한 인물의 비극 그 자체라는 점을 영화는 주지 시킨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 과연 자신의 딸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의심과 자가 비판 등을 통해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의 위로. 그리고 끊임 없이 '왜 우리 딸이'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딸에게 이런 일이'라고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래야 스스로 이해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묻지만, 마치 낚시 처럼 그저 네 딸이 걸려든 것 뿐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는 종구의 모습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가족을 잃거나 상처를 받아야 했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가 엿보인다. 다시 말해 영민한 전문가가 자신의 꾀에 빠져 스스로 자멸하는 패배가 아니라, 어쩌면 의심할 수 밖에는 없고 빠르게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종구의 비극을 말이다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밖에는 없었던 존재가 악마의 하수인이었던 일광이었다는 점도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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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곡성'을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로만 본다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을 듯 싶다. 개연성을 중시하는 시점으로 바라 본다면 몇 몇 장면은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측면이 있고, 어떤 측면으로 보아도 모든 퍼즐 조각이 다 맞아 떨어지는 명쾌한 해석은 어렵기 때문이다 (아, 환각 버섯으로 인한 사건으로 보면 100%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글의 마지막 이야기했던 것처럼 만약 '곡성'을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방식으로 본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거나 특히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원인과 이유에 대해 (반드시)정답을 알고자 하는데, 세상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거나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왜 나인지 알 수 없는 일 가운데는 가족을 잃게 되는 끔찍한 일들도 있으며, 피해자들은 결국 의심하고 또 확신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옥같은 현실에 놓이기도 한다는 것. 나홍진의 '곡성'은 의심과 현혹으로 탄생한 지옥을 그리지만,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도 담아낸 작품이었다.



1. 홍경표 촬영 감독이 담아낸 영상미가 인상적이었어요. 오컬트적 요소를 담은 영화 답게 곡성의 아름답고도 서슬퍼런 풍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한.


2. 영화에 대한 평을 보니 호불호가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는데, 뭐 둘 다 그럴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물론 그 중에는 아예 잘못 읽고 있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영화의 주제와 빗대어 얘기하자면 이미 재미있게 봤거나 재미없게 본 이들이 나중에 평을 나누다가 바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재밌다는 사람이 재미없다는 글을 보는 이유는 '재미없을 리가 없는데'라는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래서 이 논쟁에 뛰어 들고 싶다가도 절대 끝날 수가 없는 (답이 없는. 둘다 맞는) 논쟁임을 깨닫고 현혹되지 말아야지 하고 있지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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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Captain America: Civil War, 2016)

어벤져스 식으로 풀어낸 슈퍼히어로의 딜레마



어벤져스와 관련된 사고로 부수적인 피해가 일어나자 정부는 어벤져스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시스템인 일명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내놓는다. 어벤져스 내부는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찬성파(팀 아이언맨)와 이전처럼 정부의 개입 없이 자유롭게 인류를 보호해야 한다는 반대파(팀 캡틴)로 나뉘어 대립하기 시작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루소 형제가 연출한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 (Captain America : The Winter Soldier, 2014)'는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작품성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그리고 독립적인 작품이었다.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 가운데 몇몇은 이 세계관을 구성하는 역할로서 더 의미를 갖는 작품이라 조금씩 아쉬움을 남기는 편이었는데, '윈터솔저'는 단순한 볼거리 위주의 오락 영화의 한계와 MCU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 이상의 독립적 완성도와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성공, 결국 마블의 세계관을 더 견고하게 쌓아 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작품이었다. 이런 기대를 한 껏 등에 업은 것은 물론, 원작 코믹스의 팬들이 가장 기대하던 이야기중 하나인 '시빌 워'를 담은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어벤져스' 이상의 기대를 갖게 한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어벤져스'가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볼거리와 오락성 그리고 '윈터솔저'가 보여주었던 내적인 깊이와 성장의 작품성 가운데서 적당한 균형을 이룬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미 공개 된 내용들도 있지만 아직 안보셨다면 가급적 모르시는 편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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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작 '윈터솔저'의 이야기와 그간 다른 마블 작품들에서 벌어졌던 일들 (특히 '어벤져스 2'의 소코비아 전투)의 영향력 하에서 시작된다. 원작 코믹스에서 주 된 갈등 요소가 초인등록법을 두고 벌어진다면 영화 '시빌 워'에서는 소코비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결정타가 되어 어벤져스 활동에 대한 전 세계 국가들이 이른바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를 두고 찬성파 (아이언맨)와 반대파 (캡틴)로 의견이 나뉘게 되며 갈등이 깊어지게 된다. 일단 이 갈등의 당위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이미 전작 '윈터솔저'에서 속해 있던 쉴드라는 조직의 문제를 깨닫게 된 캡틴과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더 직접적으로 자신과 어벤져스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한 아이언맨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시빌 워'의 갈등은 그리 급작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즉, 코믹스를 봐야 만 이해 가능한 전개가 아니라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만으로도 충분한 당위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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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벤져스' 같은 영화에서 갸우뚱 하게 되거나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캐릭터가 겪는 갈등과 그 해결의 순간인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전작들이 없었더라면 '시빌 워'에서 캡틴과 아이언맨 등이 협정문의 사인을 두고 겪는 갈등이 그리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심각한데 관객은 '뭐지?'싶은 경우가 아니라, 관객들 역시 양쪽 입장이 모두 공감은 되지 않을 지언정 (한쪽의 손을 완벽히 들어줄 지언정) 양쪽의 입장 모두가 이해는 되는 상황을 이뤄냈다는 것 만으로도 이번 '시빌 워'는 목표를 달성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균형이 무너져 버리면 본래 같은 편이었던 주인공들이 다른 편에서서 대립하게 되는 구도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을 텐데, 다행히도 '시빌 워'는 끝까지 그 균형점을 아슬아슬하게 지켜 냈다. 그렇다보니 '시빌 워'의 몇몇 장면은 대부분의 히어로물이 갖고 있는 익숙한 딜레마를 반복하고 있음에도 또 한 번 집중하도록 만들었는데, 토니 스타크가 피터 파커, 그러니까 스파이더 맨을 처음 만나 대화하는 장면 역시 그렇다. 이 대화 시퀀스는 MCU에서 스파이더 맨이 처음 등장하는 중요한 장면이라는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상당히 긴 시간 중요하게 묘사되는데, 영웅의 능력과 사용 그리고 그 능력을 사용하는 영웅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본질적이면서도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낸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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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적으로 넓게는 슈퍼 히어로물, 좁게는 '어벤져스'의 딜레마를 풀어내야 했다면, 외적으로는 종합선물세트인 '어벤져스' 시리즈 만큼이나 많은 캐릭터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복잡한 영화로서 균형의 딜레마를 풀어내는 것이 숙제였다고 볼 수 있었다. 특히 갈등의 중심인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균형은 물론, 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블랙 팬서 그리고 모든 관객이 기다려 왔던 스파이더 맨까지 이야기의 비중이나 균형을 이뤄내야 했는데, '시빌 워'는 그 균형을 적절하게 이뤄 냈다. 사실 '어벤져스' 시리즈의 경우 하나의 페이즈를 마무리 하는 일종의 보여주기 식 정리 성격이 강해 어느 정도 아쉬운 점들이 있어도 그 자체로 넘어갈 수 있지만, '시빌 워'의 경우는 내적인 이야기의 전개와 해결이 더 중요한 독립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역할과는 다르게 '어벤져스'급으로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구조는 가장 큰 딜레마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블랙 팬서는 윈터 솔저의 이야기와 맞물려 영화의 뼈대가 되는 스토리에 잘 녹여냈고, 익숙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스파이더 맨의 경우 MCU의 스파이더 맨은 이런 모습이다 라는 점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관객들이 스파이더 맨에게 기대하는 액션은 부족하지 않게 보여주는 것도 적절한 균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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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워낙 아쉬운 점이 많아 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시빌 워'가 '에이지 오브 울트론' 보다도 (긍정적인 의미에서) 더 '어벤져스 2'에 어울려 보였다. 즉, 다양한 히어로들이 동시에 등장할 때 기대되는 액션과 볼거리 측면에서도 '시빌 워'가 더 만족스러웠다는 얘긴데, 하이라이트인 공항 결투씬은 물론, 그 외에도 오히려 '어벤져스'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각자의 능력을 협업을 통해 팀을 이뤄 공격하는 장면들은 마치 합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무술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 액션을 담아내는 카메라도 너무 화려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움직였던 것 같고. 액션과 볼거리 측면에서도 확실히 '에이지 오브 울트론' 보다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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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어벤져스'가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볼거리와 오락성 그리고 '윈터솔저'가 보여주었던 내적인 깊이와 성장의 작품성 가운데서 적당한 균형을 이룬 작품이 이 작품이라고 했는데, 이건 호불호의 포인트로 작용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양쪽을 다 적당히 만족시키기는 했지만 한 편으로 더 쏠렸으면 했던 관객들에게는 그 만큼 아쉬운 포인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다 떠나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마블의 영화를 극장에 보러 갈 때 기대하는 바는 끝내주게 충족시켜주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최소한 극장에서 두 번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1. 청년 보다는 소년 스파이더 맨의 풋풋한 매력이 재미있었어요. 내년에 나올 '스파이더 맨 : 홈 커밍'이 몹시 기다려지네요.

2. 영화를 보기 전에는 블랙 팬서의 비중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고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개별적인 소개가 없었음에도 무게있게 잘 녹아든 편이었어요. 2018년에 단독 영화가 개봉 예정인데, 그 사이에 간간히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ㅎ

3. 앤트맨은 분량은 적지만 크게(!) 한 껀 합니다. 정말 크게.

4. 팔콘의 액션을 맘껏 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아이언맨 보다도 더 멋진 장면들을 많이 연출해 낸듯.

5. 마틴 프리먼도 등장하는데 그도 능력이 있는데 쓰지는 않더군요 (반지를 끼면 사라지는 능력)

6. 왕십리에서 아이맥스3D로 보았는데 만족스러웠어요. 한 번 더 보고, 그 다음엔 기회가 되면 돌비애트모스 2D로 한 번 보려구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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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믿음



올해 최고 대작 ‘헤일, 시저!’ 촬영 도중 무비 스타 ‘베어드 휘트록’이 납치되고 정체불명의 ‘미래’로부터 협박 메시지가 도착한다. ‘헤일, 시저!’의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비.상.상.황! 영화사 캐피틀 픽쳐스의 대표이자 어떤 사건사고도 신속하게 처리하는 해결사 ‘에디 매닉스’는 할리우드 베테랑들과 함께 일촉즉발 스캔들을 해결할 개봉사수작전을 계획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모든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 만드는 일에 대한)영화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코엔 형제의 신작 '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는 1950년대 헐리우드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영화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가끔 당시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의 뒷 이야기들을 전해 듣게 되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그야말로 대단한 에피소드들이어서 제작과정 그 자체로 전설이라 부를 만한 작품들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헤일, 시저!'는 그런 헐리우드 비즈니스의 복잡하고 거대한 뒷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아주 본질적인 영화 제작이라는 일.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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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배우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납치 되고, 새롭게 선택한 다른 작품의 남자 배우는 드라마 연기가 처음이라 연기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며, 거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신작 영화에 주연 배우 (납치된 그 배우)에 대한 스캔들을 기사화 하겠다는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며, 그 와중에 잘 나가는 방위 산업체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받게 되는 이는, 이 영화사의 대표인 에디 매닉스 (조쉬 브롤린)다. 그는 해결사라는 별명 답게 이 동시다발적으로 사건들이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려고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번에 벌어진 사건들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그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이직의 유혹이다. 영화 속 상황으로 미뤄보자면 당장에라도 이 현장을 떠나 더 좋은 조건. 야근도 없고 돈도 더 많이 버는 방위 산업체로 이직하는 편을 관객으로서 응원하고 싶을 정도다. 코엔 형제는 매닉스가 겪게 되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지만 사실 정색하고 다시 보자면 이 상황은,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픈 위급 상황이다. 


그런데 코엔 형제는 매닉스가 처한 상황, 그러니까 영화가 제작되는 스튜디오와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가운데, 그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 제작 과정의 매력을 슬쩍 담아 낸다. 매닉스가 이런 저런 다른 이유로 영화 세트장을 찾을 때 단순히 세트장으로서 현장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참이나 그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가, 순간 그 영화 속 영화의 관객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영화 만드는 일 (이를 테면 편집과정)을 묘사할 때 그냥 웃고 넘길 만한 에피소드처럼 스윽 지나가지만, 은연 중에 영화 만드는 일의 놀라움과 대단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은 결국 매닉스의 마지막 선택으로 확고한 종지부를 찍는다. 코엔 형제는 아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왜 영화 만드는 일이 의미 있는가'를 말하는 것 대신, 어쩌면 무조건 적이고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그 정당성을 말하고자 한다. 코엔 형제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헤일, 시저!'의 순수한 믿음은 지금의 영화 산업과 영화라는 존재가 처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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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라는 예술 혹은 산업을 더 좋아하도록 만든 그 자체의 영화였다. 귀엽고 유쾌한 가운데.


1. 여러 화려한 출연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호비 도일 역할을 맡은 엘든 이렌리치 였어요 ㅎㅎ

2. 나중에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영화 속 영화들이 조금씩이라도 수록되면 정말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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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Seymour: An Introduction, 2014)

삶과 예술 그리고 질문과 대답



감독이자 배우 에단 호크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사실 무대공포증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세이모어 번스타인과 소울 메이트가 되고 자신의 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던 세이모어 번스타인. 그는 좋은 예술가가 되는 것과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예술의 도시 뉴욕 작은 스튜디오에서 피아노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출처 : 다음영화)


배우로서 몹시 애정하는 에단 호크가 연출을 맡은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Seymour: An Introduction, 2014)'는 한 명의 배우이자 예술가인 에단 호크의 진정성 있는 질문과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삶과 대답을 담은 또 다른 예술 작품이다. 에단 호크는 작품성에 대한 인정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둔 헐리웃의 스타 배우이지만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거지?'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선뜻 답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삶 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무대 공포증마저 겪던 즈음, 우연히 만난 세이모어 번스타인에게 자신의 이러한 고민을 털어 놓게 되고 그에게서 그간 찾아내지 못했던 대답 혹은 정답을 듣게 된다. 이 영화는 에단 호크가 자신이 경험했던 삶의 고민에 대한 세이모어의 대답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삶)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마음에 제작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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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혹은 무대 위에서 대중들에게 박수와 관심을 받는 공연자들의 경우,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거나 혹은 자신이 원했던 일정 수준의 경지에 달했다고 생각될 때 그 간의 경력과 삶을 되돌아 보며, 급작스런 회의(懷疑)에 빠지게 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특히 성공을 거뭐지게 된 경험이 있는 아티스트일 수록 그 부와 인기가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뒤에는 더더욱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을 정신 없이 달려왔고, 처음 이 세계에 뛰어 들었던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거나 혹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뒤늦게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런 기승전결 조차 일종의 패턴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전형적인 면이 있는데, 에단 호크와 세이모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깊이의 측면에서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일단 에단 호크가 고백한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회의 그리고 진솔함이 느껴지는 질문에서부터 이 영화는 결을 달리한다. 에단 호크의 그 질문이 형식적이지 않고 진짜라고 느껴진 데에는 이 영화의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면 에단 호크가 영화 속에서 질문을 던진 자신을 최대한 배제하고, 세이모어의 이야기를 자신이 받아 들였던 것처럼 관객들이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기를 바라는 진심이 100% 느껴진다. 스스로가 세이모어와의 만남을 통해 거짓이 아닌 진실 된 답을 얻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관객)에도 진심으로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가 세이모어의 삶을 통해 느끼게 된 것들이 그가 알 수 없었던 질문의 답이 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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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모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러가지 일들을 겪고 감정의 변화 혹은 불안과 상처를 경험하고 나서 백발의 스승이 된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의 가르침에 마냥 평화롭기 보다는 한 편으론 세이모어가 그랬던 것처럼 삶에서 부딪히게 되는 알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결국 오랜 세월이 지나고나서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도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주저 되는 영화다. 왜냐하면 여기엔 두 사람의 진실한 삶이 그대로 질문과 대답의 형태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세이모어와 에단 호크 두 사람의 삶과 삶의 대한 태도를 통해 지금의 내가 겪는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 역시 작은 위로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1. 한 때 글렌 굴드도 듣고 클래식도 찾아 듣던 시절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니 오랜 만에 예전 클래식 음반들을 꺼내 듣고 싶어졌어요.

2. 세이모어는 예전 한국 전쟁 당시 미군 소속으로 한국에 파병되어 경험한 에피소드들도 들려주는데, (한국 관객으로서)묘한 느낌이었어요.

3. 에단 호크는 다음 국내 개봉할 작품도 쳇 베이커의 이야기를 담은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2015)'인데,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아 팬으로서 뿌듯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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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롭 앤 가솔린 (Microbe & Gasoline, Microbe et Gasoil, 2015)

소년, 공드리가 되다


작고 소극적이지만 섬세한 예술가, 마이크롭 ‘다니엘’.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가솔린 냄새 풀풀 풍기는 괴짜 모험가, ‘테오’. 첫만남에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 본 소년들은 영혼의 단짝이 된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가던 중, 길고 긴 여름방학을 맞아 다니엘과 테오는 프랑스 전국을 누비는 로드 트립을 계획한다. 가진 건 고철상에서 주운 잔디깎이 모터와 널빤지뿐. 우여곡절 끝에 제법 그럴싸하게 완성된 시크릿 드림카!  낭만 없이 볼 수 없는 미운 열여섯의 깜찍발칙한 반항이 시작된다. (출처 : 다음영화)


나에겐 어쩔 수 없이 놓아줄 수 없는 애정하는 감독인 미셸 공드리 (또 다른 감독으로는 샤말란이 있다)의 신작 '마이크롭 앤 가솔 린'은 소년의 성장 영화이자 미셸 공드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미 공드리는 자신이 각본을 쓴 전작들을 통해서도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투영해 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경계, 그러니까 공드리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균형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수면의 과학' 이 공드리의 상상력이 스토리텔링의 측면보다 훨씬 더 앞서 간 경우라면,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딱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는 작품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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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전형적인 편이다. 다니엘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기댈 곳,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이해해주는 곳이 없는 외톨이이며, 작은 체구와 긴 머리 탓에 여자 아이로 오해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소년이다. 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같은 반의 로라를 좋아하지만 쉽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런 다니엘이 어느 날 전학 오게 된 엉뚱한 테오를 만나 바로 친구가 되고, 둘 만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소년이 등장하는 로드 무비의 구조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만약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다면 전형적인 소년 성장영화이자 로드 무비인 이 영화에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조심스럽게 추천하고픈 영화다. 왜 그런 영화가 있지 않은가. 특별할 것도 별로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인데, 묘하게 사랑스럽고 행복해 지는 영화. 공드리의 이 영화가 그렇다. 단순히 열 여섯 어린 나이의 소년이어서가 아니라, 미셸 공드리의 어린 시절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 두 소년의 엉뚱함과 순수함은 가식적이지 않은 웃음과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올라 가는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다. 공드리의 전작들을 떠올려 봤을 때 아마도 최대한 상상력의 나래를 덜어내고자 (참아내고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단순히 세상이 포용하지 못하는 외로운 아웃사이더 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그 나이 대의 소년 만이 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그려낸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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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역으로 성숙해진 미셸 공드리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속 소년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런 그들을 그려 낸 공드리는 이전보다 더 성숙해진 느낌. 너무 갑자기 철이 들어서 어색할 정도는 아니라는게 다행스럽다.


이렇게 또 미셸 공드리에 대한 애정을 끊을 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 그가 각본을 쓴 작품도 이제는 조심스럽게 기대해 볼 수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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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4th Place, 2014)

1등이란 이름아래 스러져 간 소중한 것들에 대해



'해피 엔드 (1999)' '사랑니 (2005)' '은교 (2012)' 등을 연출했던 정지우 감독의 신작 '4등'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등만을 위해 살아가는 (살아가도록 만드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질문 이자 대답 같은 작품이다. 부모의 열성적인 지원과 함께 수영을 한 지 2년 쯤 되어 가는 준호는 열심히 하지만 항상 4위를 기록해 부모를 애타게 한다. 부모는 더 좋은 성적을 내고자 준호가 매달을 딸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코치를 수소문 하게 되고, 전직 천재 수영선수라 불리웠던 광수를 만나게 된다. 아, 영화는 그 이전에 광수의 수영선수 시절 이야기를 먼저 흑백으로 들려준다. 광수가 왜 수영선수를 그만 두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건과 그 사건에 얽혀 있는 준호의 아버지 이야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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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의 '4등'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좁게 보자면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교육 방법에 관한 것이다. 영화는 아이를 가르치고 더 잘되도록 함에 있어서 폭력이라는 것이 (사랑의 매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어떤 영향을 끼치고, 무엇보다 그 폭력의 기억이 어떻게 되물림 되는 지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폭력을 경험한 인물이 나중에 자신도 어른이 되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게 되는 점은 한편으론 익숙할 정도인데, 그 인물이 폭력을 어떻게 정당화 하는 가에 있어서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은 더 현실적이고 날이 서있다. 자신의 현재를 비관하며 그 때 감독님이나 부모님이 더 강하게 폭력을 써서 라도 본인을 질책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느끼는 장면은, 단순한 폭력의 되물림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폭력이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의 분위기가 어떻게 폭력을 정당화 하고 피해자 스스로를 길들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더 큰 메시지는 폭력의 되물림 혹은 기들여짐에 있지 않다. '4등'에서 가장 현실의 문제성을 날카롭게 다루고 있고 한 편으론 모두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은연 중에 정당화 하거나 숨기고자 하는 불편한 진실은 준호의 엄마 캐릭터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준호가 이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서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준호의 엄마는, 매번 4등으로 매달 권에 미치지 못하는 준호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리고 그 수단 가운데는 폭력의 묵인도 포함되게 된다. 준호의 엄마는 준호가 코치인 광수로 부터 폭력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것으로 인해 준호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그 폭력을 동반한 교육의 방식이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진실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입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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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준호가 결국 폭력에 못 이겨 수영을 그만 둔 다음 그 잘못된 자식 사랑의 방식이 고스란히 동생에게 이어지는 장면도 공포스럽다. 더군다나 한창 준호의 수영을 지원하던 시절, 절에 가서 사실은 준호가 매달을 딸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는 준호의 동생은 물론, 가족에 대한 기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려 봤을 때, 무엇이 준호의 엄마를, 그리고 아이를 둔 가족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한 방향으로만 앞만 보고 질주하도록 만들었는지 답답한 마음으로 질문하게 된다.


영화 '4등'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영화다. 제목으로 미뤄 봤을 때, 1등만이 인정 받는 세상은 잘못되었다, 매달 밖의 4등도 중요하다.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으로 순진하게 풀어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또 전반적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이 경쟁의 분위기에 골이 깊은지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 부모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부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 더 직접적으로는 아이의 미래와 경쟁에 뛰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고민이 이 영화에도 깊이 자리잡고 있다.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 어느 선까지 적정한 응원이자 지원이고, 어느 선부터가 강요이자 폭력인지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또한 과정이나 의도와는 상관 없이 그 결과로 인해 아이가 더 나은 기회는 물론, 동등한 출발선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 불보듯 뻔하다면, 부모는 아이를 위해 그 과정의 선함보다는 결과의 나음을 택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이 쉽지 않은 문제를 충실하게 던진 뒤 자신 만의 대답도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다. 결국 많은 일들을 겪게 된 준호는 코치인 광수가 부모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그냥 애가 혼자 하도록 놔두는 것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택하게 되는데, 그렇게 진심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되자 결국 2등도 아닌 1등을 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한 편으론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지켜 보았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결과로서 '1등'이라는 등수를 보여준 것은 더 큰 아젠다는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준호가 스스로 수영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1등'을 해야 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기에 꼭 1등을 해야겠다고 말하는 장면 역시, 조금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차라리 대회 장면이 아니라 준호가 정말 하고 싶은 수영을 하기 위해 홀로 수영장을 찾아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을 엔딩으로 했거나, 대회 장면으로 하더라도 순위 발표 이전에 마무리 했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진짜 1등을 만드는 것입니다'라는 느낌보다는 '1등도 4등도, 아이들에겐 등수가 중요하지 않아요'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준호가 1등이 되는 마지막은 한 편으론 아쉬운 부분이었다.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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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감독의 '4등'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고 있는 모든 관객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었다. 사실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조금만 쉬어 가려하면 그 사이에 순위가 바뀌어 버리는 탓에 쉴 틈 조차 없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그럼에도 진지하게 다시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날카롭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도 이제 다시 그 출발점에 서 있다.



1.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더군요. 박해준 배우나 아역인 유재상 군 말고도 개인적으로는 코치를 소개해주는 교회 분으로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더라는.


2. 이런 영화가 더 많은 극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적은 상영 횟수라도 꼭 찾아서 관람하시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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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 10번지 (10 Cloverfield Lane, 2016)

그 시간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영화의 특성상 모든 것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안보신 분들은 (특히 '클로버필드'도 안보신 분들이라면) 가급적..)


2008년 개봉했던 맷 리브스의 '클로버필드 (Cloverfield, 2008)'는 떡밥의 제왕 J.J.에이브람스가 제작한 깔끔한 장르 영화였다. 페이크 다큐라는 형식을 차용해 색다른 재난 블록버스터를 보여주었던 '클로버필드'의 외전 격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 '클로버필드 10번지' 역시 군더더기 없이 2시간이 안되는 러닝 타임을 즐길 수 있는 장르영화다. 사실 '클로버필드'의 외전이라는 표현 자체도 일부 관객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지 모르겠는데, 그 만큼 이 영화는 '그래도...혹시나??'하는 가능성을 끝까지 잡고 놓지 않는 적당한 긴장감을 가진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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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를 보지 않았더라면 전혀 감상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아니,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 속 현실이 진짜인지 아닌지 더 분간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본 이들이라도 그 연관성을 영화가 직접적으로 선언하지는 않고 있는 작품이라 전작과의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클로버필드'와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 벌어진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연관성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차 얘기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영화 말미까지 이것이 같은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존 굿맨이 연기한 캐릭터가 그저 미치광이 이기만 한 것인지를 두고 계속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밀당이 가능할 만큼의 긴장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영화 속 가장 큰 의구심 중 하나인 벙커 밖 바깥 세상의 현실이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훨씬 더 좁은 의미의 재미를 느낄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이런 공포/스릴러 장르 영화가 보여주는 클리셰들을 '클로버필드'라는 전작의 아우라를 통해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괜찮은 작품이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공포, 누구를 믿어야 하는 가에 대한 선택과 공포, 제한 된 공간의 감금과 탈출의 내러티브까지. 익숙한 것들을 또 한 번 즐기는 것이 가능하도록 다듬은 장르영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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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어떤 지구 종말이나 외계인 침공과도 같은 엄청난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중심에서 정면으로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보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채 스스로를 돌봐야 했던 이들의 모험담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는 큰 사건 속 (상대적으로)작은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풀어낸다. 난 더 심하게 고립 되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을 것 같지만, 이 영화는 다행히(?) 그래도 '클로버필드'라는 제목이 붙은 값은 해낸다. 영화의 말미에 갑자기 영화가 너무 뻔한 중심의 이야기로 전환되지 않는 것도 좋았다. 그저 주변의 이야기로 머물러서 제법 괜찮았던 영화.



1. 초반 여주인공이 이 벙커에 들어오는 장면에서 거실(?)에 깔려 있던 카페트에 토끼 그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놈의 토끼발인가?!

2. 브래들리 쿠퍼가 어디 나왔나 했더니 전화 음성이었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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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성급했던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



따지고보면 마블의 '어벤져스'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코믹스 팬들의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작품은 바로 배트맨과 슈퍼맨을 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에 관한 것이었다. 본래 영화화 측면에서도 마블보다 훨씬 더 먼저 관심과 성공을 가져갔던 DC코믹스는 차근차근 시네마틱유니버스를 완성시킨 마블의 성공을 보며 뒤늦게 (많이 늦게) '저스티스 리그' 영화화 계획에 들어 갔는데, 생각보다는 빠르게 바로 이 작품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획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것은 훨씬 오래 되었음에도 생각보다 빠르게 영화화가 되었다고 얘기한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나서 더 확고해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마블의 '어벤져스'에 비해 DC의 '저스티스 리그'는 아직 조금 성급한 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력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더 좋을 수 있었고, 이 기획의 기대감을 감안했을 때 더 좋았어야 했던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 많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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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배트맨 대 슈퍼맨'이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역시 2시간 반이나 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뚝뚝 끊어지는 듯한 편집점과 내러티브의 부자연스러움이었다.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본격적으로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캐릭터들 간의 충분한 연결고리와 갈등 구조를 풀어냈더라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득이 되었을 텐데, '배트맨 대 슈퍼맨'은 지루함도 다 지우지 못하고 성급하게 갈등을 풀어내는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맨 오브 스틸'까지만 보았던 관객 입장에서는 슈퍼맨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배트맨의 이야기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채 바로 중간부터 시작하는 경우라 쉽게 빠져들기는 어려운 정도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본 관객 입장이라고 해도 놀란의 배트맨과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사이에는 분명 스타일은 물론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간극이 있기 때문에, 만약 DC가 놀란의 배트맨을 연장선으로 가져가려고 했다고 보더라도 조금은 억지스러울 수 밖에는 없는 연결이었다. 놀란의 배트맨은 '다크나이트'라는 기본 테마를 중심으로 캐릭터의 갈등과 고민을 끝까지 파고드는 범죄 드라마였다면, 잭 스나이더가 다루는 배트맨은 그 일들을 겪은 한 참 뒤의 배트맨으로서 조금은 더 거칠어 지고 과격해지고, 자경단으로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에 있어서도 놀란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시기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이 연결은 조금 갑작스럽고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는 없던 경우라 전체적으로 공감대를 얻기는 부족했다.


DC코믹스의 '어벤져스' 격이라 할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가 조금은 성급했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어벤져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독립적인 작품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물론 '헐크'도 리부트를 겪기는 했지만)난 다음의 작품이었기에 가능했는데, 이번 '저스티스 리그'는 아직 밴 애플렉과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에 대한 명확한 컨셉이나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바로 '맨 오브 스틸' 이후의 슈퍼맨과 결합해 버린 영화이기에 (여기에 원더우먼까지 등장하고), 조금은 성급함이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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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을 말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배트맨 대 슈퍼맨'이라는 테마가 보여줄 수 있었던 깊이, 바로 그 좋은 재료를 이렇게 쉽게 써버린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과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을 정말 좋아하는 팬으로서, 히어로물이 사유할 수 있는 담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소재이자 프로젝트가 바로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과 협력을 다룬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이런 테마는 어설프게 그리고 액션 측면에서도 100% 만족감을 주지 못한 잭 스나이더의 결과물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잭 스나이더가 놀란의 '다크나이트'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한스 짐머의 장엄한 음악까지 더해져 시종일관 무겁고 웅장한 분위기를 내려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깊지 못했기 때문에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장 분위기를 깨버린 건 역시 그 갑작스러운 갈등 해결의 내러티브였는데, 아무리 이 재료가 보여줄 수 있었던 깊이를 제외하고 순수 액션 블록버스터의 측면으로 보더라도 이 갈등해결을 비롯한 내러티브의 전개는, 다들 너무 갑작스럽고 순진하기까지 한 진행을 보여준다. 그렇다보니 배트맨은 물론이고 슈퍼맨까지도 '왜 저러지?' 혹은 '저렇게 하면 될걸 왜 그러지 못하지?'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렉스 루터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점을 다 포기한다면 액션 측면에서 기가 막힌 볼거리를 제공해서 압도해 버려야 하는데, 뭐 별로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웅장한 음악에 비해 실상은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았던 액션 연출이 한 번 더 아쉬움을 남겼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액션은 배트맨도 슈퍼맨도 아니고 원더우먼의 등장 뿐이었다 (원더우먼은 이 등장 씬을 남기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가장 설득력 없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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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좋은 점을 이야기해보자면 밴 애플렉의 배트맨은 생각보다 괜찮고, 특히 액션에 있어서는 크리스찬 베일은 보여줄 수 없었던 묵직한 덩치 액션(?)이 가능해 시기적으로 잘 어울리는 편이다. 밴 애플렉의 독립적인 배트맨 영화가 가능하다면 (아니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한 이상 이건 꼭 필요하다)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대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고, 크리스토퍼 리브 이후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헨리 카빌의 슈퍼맨 역시 액션 중심의 영화가 아닌, 슈퍼맨(클락 켄트)의 내면의 테마를 기반으로 전개 되는 '맨 오브 스틸' 이후 슈퍼맨 영화를 하나 더 진행한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역시 충분하다. 좀 갑작스럽기는 했으나 원더 우먼 역시 이번 작품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들려준 것이 없음으로 다음 작품에서는 본인을 비롯해 플래시나 아쿠아맨, 사이보그 등과 함께 이야기를 전개 시켜도 좋겠다. 아, 그리고 그린 렌턴도 합류해야 할 텐데 (참고로 이번 관람 전에 코믹스로 저스티스 리그를 읽었더니 그린 렌턴이 다시 보고 싶어지더라), 이미 마블의 '데드풀'을 통해 스스로 디스를 완료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돌아오는 건 불가능해 보이니 여기도 리부트가 필수적일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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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더라면 더 흥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 작품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래도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은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 입장에서 안볼 수는 없는 작품일 것이다. 아...그래서 또 아쉬움이 남는다...



1. 아이맥스 3D로 1차 관람하고 2차로는 돌비 애트모스로 관람할 예정인데, 예상으로는 돌비 애트모스가 더 적절한 포맷이 아닐까 싶네요. 아이맥스 3D도 물론 좋았지만 최적의 포맷이었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게 까지는 아니라고 답할 듯.

2. 별 것 아니었지만 초반에 조금 그랬던게, 아무리 급한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이 겨우(?) 레니게이드를 탄다? 동네 나갈 때도 람보르기니 타던 분이...

3. 제레미 아이언스가 뛰어난 배우라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알프레드 캐릭터는 이미 마이클 케인이 너무 완벽하게 해 냈던 바람에 더 보여줄 여백이 남지 않은 듯 하더군요.

4. 잭 스나이더는 참..... 애증의 감독인듯 ㅎ

5. 관련 예전 글들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http://realfolkblues.co.kr/696)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http://realfolkblues.co.kr/700)

* 맨 오브 스틸 _ 클락 켄트는 없고 칼엘만이 남은 슈퍼맨 (http://realfolkblues.co.kr/1812)

* 왓치맨 _ 히어로에 빗댄 정치와 권력에 대한 담론 (http://realfolkblues.co.kr/897)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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