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
관객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
우디 앨런의 신작 '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을 보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라면 단연 홍상수와 우디 앨런을 들 수 있겠는데, 두 감독의 공통점이라면 몹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다는 것 외에 거의 매 년 영화를 발표하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포스터였는데, 그래서 끌리는 바가 적어 놓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디 앨런!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인데!'하는 마음에 보게 된 '블루 재스민'은 최근 우디 앨런의 작품에서 보여주던 경향과는 사뭇 다른 냉정하고 차가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굳이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가 최근 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함과 유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보는 관객에게마저 냉정한 시선을 취하고 있기도 했다.
ⓒ Perdido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블루 재스민'의 줄거리를 아주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부자였던 한 여인이 금전적으로 한 순간에 몰락하며 자신의 뒤바뀐 처치를 인정하지 못해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다른 줄거리의 이야기들이 있다. 왜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이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겪게 되었는지와 그렇게 된 재스민을 영화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가 그것이다. 일단 첫 번째 이유를 두고 혹자들은 이 영화에 마치 '매치 포인트'나 '스쿠프' 같은 스릴러 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는데, 이 영화의 후반부 등장하는 일말의 사실은 반전이나 스릴러로 존재하기에는 지극히 제한적이며,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영화 자체가 스릴러를 전혀 염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두 번째 시선인, 이 영화가 이런 상황에 놓인 재스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정리한 저 줄거리만 보면 대충 예상되는 바가 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부에서 멀어져 버린 주인공을 통해 그저 부와 명예가 부질 없음을, 혹은 명품이나 귀족같은 삶이 일종의 허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소박한 것에 소중함을 깨닫는 전개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루 재스민'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얼핏 보면 그녀의 변화에 주목할 수도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느껴졌던 건 그녀의 변화가 아니라 그녀의 변화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었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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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재스민을 묘사하는 시선에는 분명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래서 재스민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허상과 그녀가 허상에 빠질 수 밖에는 없었던 사회를 동시에 다루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재스민을 두고 영화가 관객과 두고 있는 거리 혹은 메시지였다. 다소 실망스러웠던 우디 앨런의 전작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이런 비슷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극 중 로베르토 베니니가 등장한 일종의 유명인에 관한 에피소드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도 동떨어져 있고, 다른 에피소드들과도 사실상 전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부분이라 아쉬움이 있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는 감독 본인을 비롯해 헐리웃으로 대표되는 영화 배우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의 메시지도 느껴져, 우디 앨런의 최근 작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엿볼 수 있기도 했는데,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블루 재스민' 역시 이런 메시지 적인 측면이 겹쳐져 전달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재스민이라는 인물을 관객과 거리를 두고 묘사하지 않고 그녀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관객과의 접점을 아주 자연스럽게 포착해내, 그녀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관객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극 중 재스민은 명품들에 집착하고 (그것이 그녀를 말해주는 유일한 것들이기에), 부와 돈으로 살 수 있는 세계를 동경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실제 명품 브랜드들의 이름들은 단순히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 위함이나 현실성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을 자극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즉,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스민과 마찬가지로 부에 대한 동경심을 무의식 속에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재스민을 동정하기도하고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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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재스민의 동생 역할과 그녀의 거친 애인과 친구를 관객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극 중 재스민의 그것과 같은데, 이 상황을 정말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재스민과 관객의 시선이 옳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후반부에 등장한 또 다른 부자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는데, 피터 사스가드가 연기한 이 캐릭터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본능적으로 '아, 저 사람도 사기꾼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걸 극장 분위기로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아마도 전형적인 줄거리였다면 그랬겠지만 우디 앨런은 관객의 이런 심리를 꼬집기라도 하듯 보기 좋게 여기서도 또 한 번 재스민을 코너로 몰았다.
나 역시 그랬지만 부에 대한 동경, 그것이 허상이고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갖을 수 있다면 갖고 싶다는 생각(욕심)을 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영화는 이 자체를 꼬집는다기 보다는 갖을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 그제서야 쿨한 척하며 '그래 그건 다 허상이지'라고 말하려 하는 관객을 한 발 물러서서 참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크래딧에 올라갈 때 마치 내 시커먼 속을 다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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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게는 '미드나잇 파리'가 더 좋았지만 '블루 재스민'은 조금은 특별한 우디 앨런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아, 배우들의 참 좋은 연기들도. 케이트 블란쳇이야 너무 많이들 얘기하니까 더할 필요 없을 것 같고,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언제나 참 자연스럽더라. 오랜만에 '해피 고 럭키'가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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