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아름다운 걸작 '시'


2010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Poetry)'는 가혹하리만큼 인간이 고통을 겪는 방식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인 동시에, '아름다움' 그 자체에 관한 탐미적인 작품이었으며, 제목인 '시'에 대한 간접적인 비유는 물론 매우 직접적인 텍스트이기도 한 그 해 최고의 작품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 동안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을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 같은 작품들은 이를 통해 감독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이 깊은 공감으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약간의 과잉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서, 완성도 측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지만 '좋은 영화'라 말하기엔 조금 부족함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좋은 영화'란 '착한 영화'와는 전혀 다른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시'는 착한 영화는 아니지만 분명 좋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시'가 사회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찌 보면 가혹하리만큼 냉정함이 그 이면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냉정한 시선이 지향하는 바가 결국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과정과 결과 모두 '좋은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창동의 '시'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응당 있어야 할 가치들이 사라져버린, 죽음과도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마지막 남은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그래서 주인공의 이름도 '미자 (美子)'가 아니던가). 미자는 '시'라는 매개체를 만나게 되면서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극중 미자는 시를 배우는 강좌 중에 그리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인과 그들에게 이렇게 자주 질문한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시상은 언제 찾아오나요?'무언가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싶었던 미자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생각날 때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시상을 얻어 자신 만의 시를 한 줄 한 줄 써내려 가려 하지만, 어느 한 줄 쉽게 나오는 것이 없다. 그래서 미자는 계속 물어본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아무것도 적지 못한 노트에 자연이 직접 쓴 시를 계기로 미자는 진정한 시를 쓰는 것에 대해 전환점을 갖게 되고, 자신을 둘러 싼 삶에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작품의 제목 '시'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일차적으로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현실에서 그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죽어가고 있는 문학으로서의 '시'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순수하고 진실된 '시선'으로서의 시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는 여러 차례 시를 배우는 강좌 장면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단순한 내러티브를 위해서였다면 그냥 '미자가 시를 배운다'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묘사했을 테지만, 이렇게 다큐멘터리에 가깝도록 시 강좌 장면을 다룬 것은 관객들이 이 장면을 보며 영화 속 미자처럼 잠시나마 시라는 예술에 대해 있는 그대로 수용해 보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관객이 이를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미자처럼 동화되도록 만든 것도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관객은 잠시나마 이 작품을 보는 동안에는 극중 미자처럼 시에 대해 무지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가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건 생각해볼 수록 대단한 이 영화의 지점 중 하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술'로서의 '시'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주인공 미자를 비롯해 안내상이 연기하는 기범 아버지로 대변 되는 어른들의 시선, 그리고 한 발 물러서 있는 주변 인물들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등을 통해 또 다른 '시'를 써내려 간다. 특히 미자를 바라보고, 미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데, 세속적인 사건을 겪는 과정 속에서 세속적인 것과는 조금 멀어져 있던 미자 라는 인물이 어떻게 고통과 현실을 인정하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고 겪어가는지(극복하거나 포기하거나 의 이분법 보다는 그냥 '겪는다'가 이 작품에는 더 어울릴 것이다)의 과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참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았을 때는 미자가 세속적인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이 추구하던 많은 가치들을 포기해 가는 텍스트라고 여겨, 마지막 엔딩을 맞닥뜨렸을 때 그 어떤 작품들보다 먹먹하고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는데, 블루레이 리뷰를 위해 다시 보게 된 '시'는 그것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다시 보게 된 미자의 행동들은 자포자기하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인 삶에 대한 표현으로 느껴졌다. 세속에 물든 사람들과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미자가 택한 방법들과 그 과정의 행동들은 미자 나름대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자기 것인 냥 포용하려고 애쓴 노력의 결과물이었으며, 그 결과는 세상으로 하여금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존재조차 인식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관객에게는 깊은 울림과 더불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미자가 쓴 시 '아녜스의 노래'와 영화 '시'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던 강의 이미지는 죽음과 슬픔을 노래하는 듯싶었지만, 다시 바라본 강의 이미지에서는 분명 희망의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THE DVDPRIME COLLECTION 002 – 시 블루레이
 

이 작품은 잘 아시는 것처럼 DVDPRIME과 제작사 UEK, 그리고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낸 자랑스런 'DP 컬렉션' 그 두 번째 블루레이 타이틀이다. 사실 첫 번째 타이틀이었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두 번째 타이틀인 '시' 가 훨씬 더 큰 부담을 본의 아니게 지게 되었는데,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만드는 이들의 심정을 주변에서 가깝게 전해들을 수 있었던 입장으로서 부족한 재능이나마 여기에 보태고자 블루레이 리뷰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시' 블루레이 타이틀은 '김복남…'과는 또 다른 감회가 드는 타이틀이었다. DP 컬렉션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이창동 감독의 '시' 역시 이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국내에서 블루레이로 정식 발매되기 사실상 어려웠던 작품인 동시에, 너무 블루레이로 소장하고 싶은 그 해 최고의 걸작이기도 했다. 극장에서 몇 차례 관람을 하면서도 블루레이 라이센스 발매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과거를 떠올려 본다면, 이렇게 직접 우리 손으로 만든 타이틀을 소장할 수 있게 된 현실은 아직도 놀라울 뿐이다.
 




Blu-ray 메뉴






Blu-ray : Picture & Sound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블루레이에 걸 맞는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작품 자체의 화질이 다른 해외 영화에 비해 뛰어나게 좋은 편은 아니고, 또한 극장에서 보았던 화질도 뛰어난 화질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블루레이의 화질이 오히려 더 좋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블루레이 화질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 단순히 느낌 때문 만은 아닌 것이, 실제로 극장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영상의 디테일 한 부분과 색감들을 블루레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처럼 영화 역시 인위적인 조명 보다는 자연광과 최소한의 조명들을 활용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런 빛의 디테일 한 활용의 정도를 블루레이 영상을 통해 좀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좀 더 안방 극장의 환경에 맞게 적절한 레벨로 수록되었다. 사운드 적인 측면의 활용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5.1채널의 서라운드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느껴질 정도로 괜찮은 편이었으며, 대사 전달에 있어서도 감상에 지장을 주는 부분은 없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만나볼 수 있었던 강물이 흐르는 소리 같은 경우는 영화의 여운을 더 오랜 시간 잡아주는 중요한 사운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더욱 선명한 강물 소리에 그 여운을 지속할 수 있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시'




'시' 블루레이에서 가장 눈에 띠는 부가영상이라면 본편 재생 시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이창동 감독의 영상 메시지'를 꼽을 수 있겠다. 2차 영상물을 즐기는 사용자로서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 확장 판이나 길예르모 델토로의 타이틀들을 보며, '아, 국내 타이틀에도 감독이 DVD나 블루레이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해주는 챕터를 가져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만 했었는데, '시' 블루레이에는 바로 이창동 감독의 이런 인트로가 블루레이만을 위해 담겨 있다. 사실 이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오로지 블루레이 만을 위한 부가영상이라는 점에서, DP 컬렉션이어서 가능한 서플먼트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 하나 DP 컬렉션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부가영상이라면, 이 타이틀이 탄생하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DP 회원이자 소비자인 분들의 이름(닉네임)이 담긴 'BD 메이킹 크래딧'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단순한 구매자 목록이 아님은 우리가 더욱 잘 알고 있기에 여기에 많은 부연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한 마디만 보태자면, 이 메이킹 크래딧은 내 이름이나 닉네임이 실려 영광스러운 것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는 '뿌듯함'이 더 밀려오는 훈훈한 크래딧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부가영상은 이창동 감독과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참여한 음성해설을 들 수 있겠다. 이창동 감독 스스로가 작가이자 각본을 썼기 때문에 '시'라는 작품에 대한 더 풍부한 의미는 물론 감독으로서의 연출 의도 그리고 전설적인 배우 윤정희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시'를 인상 깊게 본 이라면 꼭 한 번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참고로 음성해설 트랙을 선택하면 편의를 위해 본편 한글자막이 자동으로 켜지도록 설정되어 있다. 만약 음성해설을 들으면서 본편의 한글자막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리모컨을 통해 음성 트랙을 다이렉트로 변경하면 된다.

 



이 밖에 부가영상으로는 전반적인 메이킹 영상들과 감독, 배우 들의 짧은 인터뷰 들이 각 주제에 맞게 메뉴 별로 수록되어 있다. 모든 부가영상은 DVD에 수록되었던 내용과 동일한 영상으로 SD 포맷으로 수록되었다. 

 



[총평] 영화적으로만 보아도 이창동 감독의 '시'는 지난해 개봉한 작품들 가운데 손꼽을 정도의 걸작임은 물론, 그의 수준 높은 필모그래피에서도 단연 꼽을 만한 작품이었다. 이런 작품의 장점을 고스란히 담아낸 동시에, 'DP 컬렉션 002' 타이틀이라는 또 다른 소중한 의미를 갖는 블루레이 타이틀 역시, 퀄리티나 내용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와 노력이 엿보이는 만족스러운 타이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DP 컬렉션에 더 큰 응원을 보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시 (Poetry, 2010)
시가 죽어버린 시대, 다시 시를 쓰다


주인공 '미자 (윤정희)'는 경기도 소도시에서 이혼한 딸이 남긴 손자와 함께 살아간다.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많은 나이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거동이 불편한 회장님 (김희라)의 수발을 드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고 있는 평범한 할머니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직도 소녀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추구하고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이런 미자에게 어느 날 얘기치 않은 세속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영화는 오히려 사건 그 자체보다는 미자에게 더욱 주목하게 된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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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창동의 '시'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응당 있어야 할 가치들이 사라져버린, 죽음과도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마지막 남은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그래서 이름도 '미자 (美子)'가 아니던가). 미자는 '시'라는 매개체를 만나게 되면서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극중 미자는 강좌 중에 그리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인과 그들에게 이렇게 자주 질문하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시인의 대답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대답 속에도 있듯 시라는 것, 시를 쓴다는 것 자체는 무어라 정답지을 수 없을 터. 무언가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싶었던 미자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생각날 때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시상을 얻어 자신 만의 시를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려 하지만, 어느 한 줄 쉽게 나오는 것이 없다. 그래서 미자는 계속 물어본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이런 미자에게 며칠 전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중생의 죽음이, 자신의 손자의 성폭행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현실을 풀어놓는다. 사실 미자는 이 상황을 그리고 이 상황을 대처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피해자들의 부모들은 완벽한 악당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서로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식으로 이 이야기를 조용히 마무리하려 한다. 가해자의 부모들 뿐 아니라 학교 측, 언론, 그리고 나중에는 결국 합의금을 받을 수 밖에는 없었던 피해자의 부모까지. 이들에게 미자가 알고 있었던 도덕적인 가치는 거세되고 없다. 하지만 미자는 투사가 아니라 그저 힘없는 노인일 뿐이다. 합의금 500만원을 만들기 어려워 그나마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 같은 같은 가해자 아버지 (안내상)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쉽게 들어줄리 없다.

그런데 이창동의 '시'는 이런 도덕이 거세된 세계를 현실로 등장시키면서도 이들의 모습을 더 극적으로, 악한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안내상이 연기한 가해자의 부모 같은 경우만 봐도 사람이 나빠보이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극중 미자가 처음 본 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게 될 정도로 사람 좋은 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묘사 방식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간직한 미자와 상반되어 더 큰 쓰라림을 준다. 도덕적인 헤이가 너무 당연해진 세상. 그러니까 꼭 악당이라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도덕적 헤이가 익숙해진 세상이라 가해자도 피해자도 이런 순리 아닌 순리에 익숙해져 버린 세상을 그림으로서, 어쩌면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닐까 하는 돌이킬 수 없을 듯한 쓰라림과 회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주인공의 정의의 투사가 되어 이런 세상을 계몽하려 드는 것보다, 이렇게 자신도 힘없이 휩쓸릴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이 더 무섭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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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는 결국 오백만원의 합의금을 만들기 위해 본인의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야 만다. 그런데 회장님 (김희라)에게 돈을 받기 위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오백만원을 달라는 말을 굳이 노트에 적어서 보여준 이유는 단순히 주변에 가족들이 있어서, 이들의 귀를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등장하는 노트의 클로즈업 장면을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감독은 오백만원만 달라는 이 메시지를 이전 미자가 어렵게 작성했던 시 한줄을 보여주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며 시를 쓸 때는 그렇게 한 줄 한 줄이 어렵던 것이,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 세속적인 활동에 있어서는 너무도 쉽게 써지는 모습을 볼 때, 또 한 번 쓰라림을 겪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미자는 스스로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사건이 잘 마무리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에 있을 용기도 없고, 시를 좋아한답시고 모였지만 사실은 미자처럼 시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가벼운 마음, 또 하나의 유흥으로 여기고 모인 이들 사이에서도 더 외로움을 느낀다.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 세속에 적당히 물들어야만 '좋은게 좋은' 이 세상을 미자는 견딜 용기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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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자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를 쓴다. 시를 쓰고자 마음 먹은 이후부터 계속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울림을 찾으려 했던 미자의 마지막 시는 결국, 자신의 손자로 인해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여중생에 대한 미안함을 담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는 곧 그 여중생의 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영화 속 미자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서 기억을 잃게 되는 것 또한 쓰라린 일이다. 이미 물들어버린 세상과 더불어, '아름다움' 그 자체가 스스로를 점점 더 잃어가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난다.


1. 글을 쓰면서도 계속 울컥하네요.
2. 사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예전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밀양'은 좋아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가 제일 좋았어요. 진정 그는 작가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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