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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없다 (The Truth Beneath, 2015)

암묵적 은폐 되었던 진실들을 꺼내다


'미쓰 홍당무 (2008)'를 연출했던 이경미 감독의 신작 '비밀은 없다'는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손꼽힐 만한 성격(그렇다, 성격이다)과 스타일의 작품이다. 거두절미 하고, '비밀은 없다'가 색다른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가 잘 다루지 않았던, 발견하지 않았던, 혹은 발견했으나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정서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손예진과 김주혁이 전면에 나선 포스터, 그리고 아이의 실종과 대선 15일전.. 등의 문구를 내세운 포스터를 보았을 땐 이 영화의 내면을 미처 예상하기 어려웠었다. 바로 앞서 언급한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로 인한 선입견이라면 선입견 때문이었는데, 역시 '미쓰 홍당무'를 연출했던 이경미 감독은 뻔한 이야기를 꺼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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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없다'는 관객들이 쉽게 흥미를 가질 만한 전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선거를 보름 앞 둔 후보자 부부와 경쟁 후보와의 묘한 관계는 그 이상의 음모나 모략이 있을 것만 같아 기대를 모으고, 여기에 아이의 실종이라는 사건의 발생은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며 미스테리를 전개해 나갈지 역시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단, 조금 다른 점이라면 '비밀은 없다'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것과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미리 (잘못)짐작한 이야기로 보자면 이 영화는 남편의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아내의 이야기와 딸의 실종 이야기가 연관되어 전개될 것으로 보기 쉽지만, 이 영화는 손예진이 연기한 '연홍'을 통해 잘 드러나듯이 그런 상황 속에서도 홀로 꿋꿋이 딸의 실종과 관련된 사건 만을 파고 들고자 한다. 아마도 주객이 바뀐 다른 영화였다면 딸 아이의 실종으로 인해 반쯤 미쳐버린 엄마 정도로 묘사되었을지 모르지만, '비밀은 없다'는 그 반쯤 미쳐버릴 수 밖에는 없는 엄마의 심정에 주목한다. 하지만 영화는 연홍을 그저 폭주하는 인물로 바라보는 시선들을 담아내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날 뛰는 세상과 인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홍은 딸의 실종 사건의 본질에 홀로 더 깊이, 깊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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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밀은 없다'에는 한 편에서 괴이하다고 까지 표현되는 여중생 소녀들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소녀들의 이야기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지, 아니 몰이해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사회가 만들어낸 일종의 이상향으로 인한 최면의 결과에 가깝다. 남성 중심의 사회, 권력자 중심의 사회에서는 그 반대 편 (약자의 편)의 이야기에 대해 권력층 본인은 물론 전체적인 사회의 분위기 조차 상대적 약자 층의 이야기에는 큰 관심이 없거나 큰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다시 말해 무시를 한다기 보다 관심이 별로 없어서 그냥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존재했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선 후보자의 아내와 중학생 딸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선거를 앞 둔 종찬(김주혁)의 입장에서는 아내나 딸이나 별 문제 없이 남아 있기를, 최소한 중요한 선거가 끝날 때 까지만이라도 자신의 일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인데, 이 영화는 보란 듯이 사건을 터뜨리고 모두를 역으로 무시한 채 오직 딸을 되찾는 것에만 집중하는 연홍의 이야기를 영화의 한 가운데로 끌고왔다는 점에서부터, 같은 배경의 다른 이야기가 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관객들은 민진이와 미옥이의 이야기 비중이 커지고 깊이를 더해가면서 무언가 이질감을 느끼게 되지만, 사실 이 이질감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몰이해에서 오는 것이 더 크다는 점이다. 특히 중학생이 아닌 관객들. 더 나아가 중학생 소녀를 자녀나 형제 등으로 함께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저 공부 열심히 하고 별 탈 없이 졸업하고, 고등학교 가고 또 대학가기 만을 바라고 그것이 너무나 일반적이고 자연스럽다고만 여기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민진이와 미옥이가 영화 속에서 겪는 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에 몰입을 해치는 요소가 되어 영화 전체가 혼란스러워 지는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경미 감독은 그저 왕따 라는 것 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이 시기의 혼란과 더 나아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내 가족과 주변 사람의 이야기만 아니면 상관 없다고 여기는 왕따 이야기를 다시 꺼내들며, 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시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오히려 이 이야기를 민진이와 미옥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로 접하는 것보다는, 본인도 역시 잘 몰랐던 어른인 연홍이 사건을 통해 알게 되는 방식을 취한 것이 더 좋았다. 어쩌면 이 과정은 연홍이 민진의 실종과 이와 연결된 다른 사건들을 풀어가는 전개보다도 더 의미 있고 본질적인 미스테리의 해결 과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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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 암묵적으로 은폐되다시피 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된 연홍이 굉장히 빠른 시점에서 또 빠른 속도로 각성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초반 연홍은 자신의 출신에 대한 루머 등으로 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데, 아이를 잃고 그것에만 집중하게 된 연홍이 거친 사투리로 남편을 몰아 붙이는 장면은 더 이상 이 시점에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누군가를 위해서 보여주기 식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장면이라 그 이후 이어진 뺨을 되갚아 주는 장면과 더불어, 아주 원초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심지어 쾌감까지 느껴지는)인물의 묘사였다. 다시 말해 왜 쾌감이 느껴졌나 생각해보니, 따지고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인물의 행동인데 그간의 한국 영화에서는 좀 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여성 캐릭터의 행동과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연홍의 캐릭터에서 느껴지는 대부분의 쾌감과 공감대는 대부분 너무 당연하지만 우습게도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가 그간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는 상대적인 감흥이었다는 점은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는 씁쓸한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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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단순히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를 위한 제목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한 편으론 암묵적 침묵 속에 벌어지는 잘못과 범죄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의 비밀은 '없다'로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론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생각하기 위해 역시 암묵적으로 비밀로서 규정한 것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꺼내 놓으며 비밀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역시 경고의 메시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비밀은 없다'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웠지만 이 영화가 어떻게 읽히고 느껴지는 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들었던, 몹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1. 글 중에는 따로 언급을 못했지만 이 영화는 미술과 음악에 많은 공을 들인 영화라는 걸 쉽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던 작품이었어요. 극장에서 빠르게 내려간 것도 너무 아쉽지만, 나중에 블루레이라도 온전히 출시되어 그 질감과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 손예진의 캐스팅은 여러 모로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앞서 언급 했던 것처럼, 무지와 몰이해에서 빠르게 각성하고 변해 가는 인물을 표현하기에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가진 기존의 이미지와 그녀가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 사이의 거리는, 더 큰 몰입도를 주기에 완벽한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은.


3. 영화를 보면서 민진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어디서 많이 봤는데 누구지 싶었는데, 오디션 프로에 나왔었던 신지훈 양이더군요. 기존에 노래하는 모습만 봐서 매치가 바로 안된 듯.


4. 아마도 이 영화는 이번에 많은 관객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놓쳐버린 경우가 많을 텐데, 나중에 더 많이 찾아보게 되는 영화가 반드시 될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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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홍당무 (2008)
궁상이라 욕해도 좋다!


개봉 전 부터 제법 화제가 되었던 <미쓰 홍당무>를 오늘 드디어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는지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다시피, 박찬욱 감독 제작작품이라는 점 때문이었죠. 일반관객들에게는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작품이다라는 걸 마케팅 측면에서 강조하여 홍보하고(전 근데 아직도
박찬욱 감독이
대중적인 홍보 포인트가 된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만 느껴집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흥행 실패한 이유는
관객들이 박찬욱이라는 감독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전혀 달랐음으로 벌어진
현상이라고 생각되거든요. 
<복수는 나의 것>이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올드보이>보다는 더 박찬욱스럽다고 생각되는데, <올드보이>의 엄청난 성공이 그를 너무 대중적인 감독으로 많은 이들이 오해하도록 만든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ㅎ),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역시 박찬욱 감독이긴 하지만 그 이름 자체가 아니라, 박찬욱 감독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밀병기를 드디어
꺼낸다는, 신인 이경미 감독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목을 받았던 영화였죠.

개인적으로는 처음에는 아주 큰 기대를 가졌었다가 막상 포스터 등이 공개되던 시점에서는 그저 그런
코미디인가 보다,
즉 안면 홍조증이 주가 되는 코미디인가 보다 해서 살짝 기대를 접었었는데, 이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안면 홍조증은
마치 주인공이 안경을 썼다 안썼다 정도의 차이일뿐 그저 캐릭터를 소개하는 하나의
소재일 뿐이더군요.
<미쓰 홍당무>는 정말 오랜만에 대한민국에서 만나는 캐릭터가 빛나는 영화이며,
 마치 우디 알랜의 영화처럼 수다에서 오
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슬랩스틱
코미디서부터 결국엔 유쾌한 웃음과 씁쓸한 웃음마저
동시에 느껴지는 보석과도 같은 2008년
한국영화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슬랩스틱 코믹연기는 정말 빛이 나더군요. 왠지 '허걱'이란 통신용어를 몸으로
시각화 하는
 느낌이었달까요)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공효진의 인상적인 표정으로 떡하니 채워져있는 포스터가 인상적인 <미쓰 홍당무>는
정말 리얼한
캐릭터 영화입니다. 일단 공효진이 연기한 주인공 '양미숙'의 캐릭터는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캐릭터이자, 오
랫동안 기다렸던 본격적인 캐릭터랄까요. 안면 홍조증으로 인해 시도때도 없이 붉게
변하는 얼굴 빛을 재쳐두더라도,
그녀의 다양한 표정연기와 표정연기에 가려 도드라지진 않지만 몸을 쓰는
연기에서도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그
 자체로 독보적인 존재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미숙'은 캐릭터 영화의 주인공 답게 마치 히어로 영화의
히어로처럼 의상도 거의 저 회색 코트의 단벌로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그녀의
대사에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연상
시킬 만큼
(실제로 이경미 감독은 우디 앨런의 영화와 찰리 채플린의 영화 같은 분위기를 염두에 두었었다고 합니다),

속사포 같은 대사들과 굉장히 잡다한 대사들이 가득한데,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다'라는 것의 미덕은 단순히 그 양이 많아서 좋은 것이라기 보다는, 그 쓸때 없어 보이는 많은 말들 가운데
(나름) 논리적인 바탕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을 들 수 있을텐데, '양미숙'의 말들을 듣다보면 굉장히
많은 말들을 하고
또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철저히 양미숙 만의 논리적인 바탕을 깔고 있는
대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바로 그 '잡다함' 때문이었는데, 보통 일반적인
캐릭터의 대사에서는 좀 더 일반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기 위해 생략하고 절제했던 말들을 최대한
짜르지 않고 확장한 듯한 대사라고 할까요. 시시콜콜 구차한
것을 다 들먹여가며 남들은 신경쓰던 안쓰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끝내고야 마는 대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공은 공효진씨의 맛깔스런 대사 연기에 있다 해야겠죠.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이 올해 한국영화 상반기의 캐릭터였다면, 후반기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양미숙'만으로도 괜찮은 캐릭터 영화가 됐을 법한 <미쓰 홍당무>에는 이 외에도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몇몇
더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캐릭터는 신인 배우 서우가 연기한 '서종희'라는 인물입니다.
극중 이종혁이 연기한 서종철의 딸로 등장하는데, 기존 한국영화에서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학생 캐릭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아우라를 선보입니다(교복입은 학생의 대부분은 침 뱉는 불량 학생 아니면
뭔가 사연있는
아리따운 학생이었죠. 아, <좋지 아니한가>에서 황보라가 연기한 캐릭터는 열외로 해야겠군요.
하지만 이 경우는 학교
보다는 집이 주배경이 된 영화였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군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신인배우 서우의 경우 기존에 몇몇 CF를 통해 코믹함과 세련된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던
배우였는데,
일단은 이렇게 키가 작은 배우인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극중 공효진과 키 차이가
정말 학생과 선생님처럼
나는걸 보고는 처음엔 일종의 카메라 페이크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풀샷을 보니
아니더라구요;), CF 속에서의 진한
화장을 한 모습만 보았던터라 이렇게 화장기 하나 없고 오히려 주근깨와
다크써클까지 있는 얼굴을 보니 같은 사람인가
싶기도 하더라구요.

사실 이런 영화에서 이런 요상한 캐릭터는 그냥 요상함만으로 내세우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우가 연기한
'서종희'캐릭터는 '양미숙' 못지 않게 매력적인 캐릭터로서 신인배우 서우의 연기력도 엿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것 처럼 CF속의 그 인물과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완전히 중학생스러운 그 표정들,
그리고 우는 장면에서는 정말 여배우임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완전히 표정연기함에 있어 '놔버린' 그 연기가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첨에 CF에 등장할 때만 해도 그저 요상한 춤을 추는 '무슨 녀'로 잠시
주목 받고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앞으로도 상당히 기대가 되는 신인 배우로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공효진의 열연이 예상된 수순이었다면, 서우의 발견은 <미쓰 홍당무>의 가장 큰 보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인배우인 서우의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영화를 통해 인상깊은 연기를 펼친 또 한명의 신인배우 황우슬혜의 대한
얘기도 마저하고 넘어가야 겠네요. 극중 러시아어 교사 '이유리'역할을 맡은 황우슬혜 역시 강한 캐릭터가
버티고 있는
이 영화에서 빛을 잃지 않는 열연을 펼치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어디서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 내숭 가득한 '이유리'역할을 소화하기에 그녀의
청순한 마스크는
확실히 큰 도움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외에 상당히 순수함을 넘어서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밉지만은 않게 표현된 것은 아마도 그녀의 모습과 연기가 큰 몫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에도 출연을 하고 있는데, 독특한 이름과 더불어 앞으로 역시 기대가 되는
신인 배우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남성 관객분들은 벌써부터 '황우슬혜'라는 이름을 외우셨는지도 모르겠군요 ㅎ)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언급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것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 사실 이 영화가 단순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씁쓸한 웃음이 동시에 드는 코미디 영화더군요. 그렇다고 본격적인 블랙 코미디는 아니지만요.
일단 영화는 이른바 '왕따'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안면 홍조증으로 주목받고
주변인들에게
비호감으로 낙인아닌 낙인이 찍혀 학생 시절이나 선생님이 된 지금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양미숙의
캐릭터를 그리는
태도나 주변인들의 시선을 그리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루저나 왕따(이 표현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요)가 주인공이 영화에선,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고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즉 루저는 끊임 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1등이 되고,
왕따는 우여곡절 끝에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이런 전개는
신파극 중의
신파극 보다도 뻔하다고 느껴지기에 별다른 흥미나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더나아가
교훈적인 면에서는 더더욱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래서인지 <미쓰 홍당무>에서 이들을 그리는
방식은 참 마음에 들더군요.


사실 본래 이 리뷰의 제목도 보통 같으면 '궁상이라 욕하지 마라'라고 했겠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전달하는 면에서 접근했을 때는 지금처럼 '궁상이라 욕해도 좋다'가 더 맞다고 생각되더군요.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양미숙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하나도 이루어지지도 않고 피부과를 다녔지만 안면 홍조증이 결국 낫는 것도 아니죠.
영화의 마지막에 보면 결국 자신과 비슷한 동료 한 명을 더 얻은 것 외에는 이렇다할 긍정적 변화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서종희'역시 축제 무대에 올라 공연까지 마쳤지만 그렇다고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갑자기 '절친'이
됐을리는 만무하고 계속 찐따나 찐따 애인으로 놀림거리가 됐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합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건 포스터에 있는 '내가 뭐 어때서?!'라는 문구처럼 루저인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네들의 방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내가 뭐 어때서?!'라면서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끝까지 편견과 오해와 싸워가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외롭게 지내왔을 그들이 왜 사랑받고
관심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느냐만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지지 않겠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라는 식의 오기가 발동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영화가 씁쓸했던 건 결국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사회와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건으로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감독은 의도적으로 외모나 편견들만으로 사회가 소수를 왕따시키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여러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집요하게 이들을 무시하는 학생들의 대사라던가,
본인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찐따와 찐따애인'이라고 이름까지 붙여서 신청해 놓고는, 시간내에 자리에
나타나지 않자 계속 방송으로
이들을 비꼬듯 반복하는 장면에서는, 이들을 왕따로 만든 다수의 악마적 횡포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단체로 리본 달고 춤을 췄던 여학생들의 미소 띤 얼굴들이 결코 예뻐보이지 않았던 것
또한 이런 면에서 가능한
연출이었죠.



(청각 자료실(?)이라고 해야되나요? 여튼 이 공간에서 이 둘이 등장하는 장면과 후에 모든 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남을 법한 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이 영화가 왜 18세 관람가를 받았는가 의아해 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폭력적이나 선정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아, 그림으로 등장하기도 하는군요 --;), 마치 영화 <클로저>의 경우처럼 음란한 채팅이나
<카마수트라>에서 인용한듯한 성적인 표현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것에 비해 실제로 시각적인 18세 관람가 장면은 없어서 아쉬운(?)분들도 있을 듯 하네요 ㅎ

개인적으로 극중 양미숙+서종희와 이유리가 채팅을 하는 장면에서는 <클로저>도 그렇고,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역시 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건 러시아어를 이용한
개그였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참 단순하지만 그 발음 때문에 웃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 영화가 별 세 개 정도에서 별 개를 넘어 다섯에 가까운 영화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바로 그
'청각 자료실(?)'에서 벌어지는 시퀀스 때문이었습니다. 극 중 주요 모든 인물들이 드디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거침없이 의견교환을 나누는 이 시퀀스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시나리오를 맡은 작품이기 때문에 그의 전작인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폐교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이 시퀀스는 정말 대박이더군요.
이 공간만의 특성을 제대로 이용한 소소한 유머도 그렇고, 마치 법정에 선듯 서로가 서로를 변호하고 주장하는
이 장면은 마치 최근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비몽>에서 갈대밭 씬이 그랬던 것처럼, 단 한 장면에 굉장한 에너지가
담겨있는 멋진 장면이 아니라 할 수 없겠습니다. 특히 이 장면이 더욱 그럴듯 하고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데에는
종철의 아내 역할을 맡은 방은진씨의 포스가 크게 작용한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구요. 방은진씨가
묵직하게 무게를
잡고 있던 탓에 이 장면이 왠지 모르게 이상한 아우라를 갖게 된 부분도 분명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미쓰 홍당무>는 이 시퀀스 하나 만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공효진의 섬세한 표정연기는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저 아기자기한 눈코입과 볼이 만들어내는 표정연기는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를 만나 120% 결과물을 쏟아냅니다)

영화를 보기 전만 해도 '올해의 한국영화다' '상반기에 <추격자>가 있었다면 후반기엔 단연코 <미쓰 홍당무>다'
라던지,
'박찬욱 감독이 밀어주는 신인 감독은 역시 다르다' 등등의 표현들에는 거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영화나 그렇겠지만 개봉 전 홍보 때는 다들 조금씩 과하게 부풀리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미쓰 홍당무>도
너무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거대 포장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이런 표현들이 결코
크게 과장된 것 만은 아니었음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공효진을 비롯해 신인배우 서우와 황우슬혜, 그리고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보여준 방은진씨, 그리고 리뷰에도 거의
노출이 되지 않아 살짝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 이종혁씨 등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도 볼만하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캐릭터 영화이자 코미디이며, 그 안에 쓸씁한 뒷 맛과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까지 넣어놓은 훌륭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 마이너한 코드와 개성적인 분위기가 가득담긴 영화라 보는
이에 따
라서는 시종일관 집중할 수 없고 불편하게까지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코드에 맞는 이들이라면 보는 내내
킥킥
거리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독특한 개성만큼 엄청난 흥행까지는 거두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개성 강한 영화가 좀 더 한국영화계에서
대접받을 수 있는 케이스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봅니다.



1. 뭐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의 까메오 출연 이야기는 다들 너무 많이 하신터라 ^^;
2. 극중 피부과 병원에 간호원으로 나온 분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마지막에 대모하던 사람 중에
   멀리서 오는
괴물을 한강에서 발견하고 카메라로 촬영하던 그 분이더군요.
3. 엔딩 크래딧에 도움 주신 분들에 '류승범'씨도 있더군요 ^^
4. 음악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전자음악단과 달파란이 참여하기도 했던데 너무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삽입된 것 같습니다.
5. 아마도 제가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여성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6. 서우씨는 본래 서종희 역할이 아니라 이유리 역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당시 다른 촬영때문에 교복을
    입고 오디션장에 가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 아 '서종희'역할에 딱이다 라고 생각되어 급 변경 되었다고
    하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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