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영화 별점주기를 하면서 매번 고민스러웠던 일은, '점수주기'의 의미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포츠도 아니고 (하물며 스포츠도 결과보단 과정의 중요성을 더 보고 있는데!) 영화 같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작품을 가지고 점수를 준다는 것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항상 생각했었다. 만약 이 이유만으로 별점 주기를 포기한다고 치자면, '그렇담 어차피 개인적인 것인데, 개인적으로 점수를 주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냐'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유보다는 바로 그 '개인적'인 감상이 볼 때마다는 아니더라도 분명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좋아하는 영화는 극장에서 여러번 보기를 주저하지 않고,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로 출시되면 구매해 시간 날 때마다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게 되는 일이, 같은 영화를 여러 다른 시간대 (나이)에 보게 되는 경우가 잦은데, 이렇게 되면 바로 이 '개인적' 감상이 변하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영화가 어른이 되어, 혹은 세월을 갖은 뒤에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전혀 다른 영화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로 당시의 추억만으로 공유하게 되는 (그러니까 영화적인 재미보다는 그 외적인 내용으로 간직하게 되는) 작품도 생겨나게 되며, 인생의 어떤 일들을 겪고 겪지 않음에 따라 그 작품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공감하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영화들을 여럿 겪었었다. 어떤 사건을 겪기 전에는 그냥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일 뿐이던 어떤 영화는, 비슷한 일을 겪게 된 뒤엔 더이상 주인공이 주인공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영화가 되었으며, 쓰기 위해 봐야만 했던 어떤 영화를 아무런 부담없이 그냥 보게 되었을 땐 또 다른 영화가 된 경우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별점이란 그 순간의 기록일 수 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 기억은 당시의 내 심정을 반영하는 '기억'으로 존재하기보단 오히려 이 작품에 대한 또 다른 '선입견'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즉, 예전에 만점을 주었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무의식적으로 '이건 만점짜리 영화야'가 인셉션 되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운 백지 상태는 아니더라도 이미 어떤 확실한 평가 기준으로 가지고 보기 때문에, 당시의 선택이 맞았나, 틀렸나에 오히려 집중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별점을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에 선입견이 전혀 없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분명 별점은 이런 것에 있어 확실한 잣대로 남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전에도 한 번 별점주기를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말을 매번 그렇게 했으면서 리뷰 말미에는 계속 점수를 표기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던 차에 주저없이 포기했었다. 하지만 그리고나서 내 글을 자주 읽어주시던 분들이 '글도 좋지만 별점이 어떤 기준점이 되었었는데 아쉽다'라는 의견이 제법 있었던 터라, 당시에는 독자를 위해 다시금 별점주기를 곧 부활했었다. 하지만 (이것은 독자에 대한 무시는 절대 아니다) 결국 글은 개인적인 것이고, 영화 역시 개인적인 것이며, 내가 내키는 글을 그나마 써내려가야 오히려 읽게 될 누군가에게 더욱 떳떳한 글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정성일 평론가처럼 '점수주기는 전혀 의미없다'라고 확언할 만큼의 절대적 기준은 갖고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소중한 기준점이 될 것이며, 자신의 글을 마무리 하는 좋은 재료임은 물론, 오히려 긴 글보다 더 확실한 표현방법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다시금 이 영화나 음악에 대한 별점 주기를 그만 두기로 했다 (글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음악 역시 영화와 다를 바 없이 같은 이유다). 예전에 작성한 글들의 별점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부터 새롭게 쓰게 되는 글들에 대해서는 점수 주기의 평가는 하지 않으려 한다. 또 한 번의 번복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써본 글.



2010.08.19. pm. 01:07
글 / 아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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