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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 아포칼립스 (X-Men: Apocalypse, 2016)

공허하게 늘어놓은 세대교체기



미리 말하자면 내게 있어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시리즈는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보다도 더 좋아하고, 특히 시리즈를 거듭해 오며 캐릭터들의 역사와 이야기가 쌓여갈 수록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애정하게 된 시리즈라 하겠다. 그 가운데서도 최근에 선 보였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X-Men: Days of Future Past, 2014)'는 그 애정함을 최고조로 발산할 수 있었던 브라이언 싱어 특유의 아름답고 감정적인 액션 블록버스터였는데, 프리퀄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엑스맨 : 아포칼립스 (X-Men: Apocalypse, 2016)'는 아쉽게도, 그럼에도 선뜻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힘든 영화였다. 적어도 지금은 (왜냐하면 이런 시리즈의 역사 속에 있는 작품들은 간혹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 다시 좋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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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는 전체적으로 장황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액션의 스케일은 크고, 캐릭터들의 갈등도 고조되지만 시각과 청각적으로 볼거리가 화려해질 수록 한 편으로는 '왜?'라는 물음과 함께 공허함이 느껴진다. 러닝타임이 물론 긴 편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길기 때문이 아니라 주 악당인 아포칼립스 (오스카 아이삭)와 엑스맨 멤버들의 갈등의 비중을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말하자면 오스카 아이삭이 연기한 아포칼립스라는 캐릭터는 모든 돌연변이들 가운데서도 신 적인 존재에 해당하는 그야말로 압도적이고 막강한 캐릭터인데, 그 캐릭터 자체로서도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측면이 너무 도드라졌고, 그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보니 후반으로 갈 수록 그 모습에서는 공포스러움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이 정도의 압도적인 악당이 등장할 경우 더 단순한 대립 구조를 취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 텐데, 이번 작품에서는 프리퀄 작품들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 찰스와 에릭의 갈등 구조가 반복되는 동시에, 익숙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로의 (진 그레이, 스톰, 스캇, 나이트크롤러) 세대교체 목적을 달성해야 했기에, 조금은 장황하고 선명하지 못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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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와 에릭의 갈등 테마는 두 배우가 열연을 통해 (특히 패스벤더가)다시 한 번 살려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이미 전작들에서 충분히 활용 되었고 또한 이번 작품에서는 깊이가 그리 깊지 않다보니, 또 한 번 빠져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이 외에도 '아포칼립스'는 공감대의 대부분을 프리퀄 전작들은 물론 싱어가 연출했던 엑스맨 1, 2의 이야기에 기대고 있는데, 물론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의존성은 싱어의 엑스맨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아포칼립스'는 그 단점을 잘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똑같은 이유로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정말 감동적이었는데, '아포칼립스'는 공허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농담처럼 이 영화를 한 줄로 평가하자면 '찰스는 어쩌다가 대머리가 되었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또 하나, 액션 연출에 있어서도 스케일은 엄청나게 키웠지만 (음악 또한), 내실이 부족하다보니 역시 공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지구 상의 모든 핵무기가 출동하고 지축을 흔들 만큼의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나지만, 그 크기도 그 위기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겉 도는 분위기였다. 차라리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압도적인 아포칼립스의 능력을 더 드러내고, 이에 맞서서 고전분투하는 엑스맨들의 활약상을 그리거나 반대로, 아직 어린 엑스맨 캐릭터들이 어떻게 처음 엑스맨으로서 활약하게 되는지를 주목해 브라이언 싱어가 이루고자 했던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목적 달성에 더 집중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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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속에서 '제다이의 귀환'을 이야기하면서 '망했다' '제일 별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엑스맨 프리퀄 삼부작 가운데 이 작품도 그런 평가를 할 수 밖에는 없겠네요. 재밌는건 이 농담 뿐 아니라 스토리상에서도 에릭과 퀵실버의 이야기 속에는 슬쩍 '제다이의 귀환'의 다스베이더와 루크의 설정이 들어있기도 하지요.


2. 로즈 번의 팬으로서 초반 그녀의 등장 씬을 보면서 마치 '에이전트 카터'처럼 모이라의 이야기를 다룬 스핀오프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CIA 요원으로서 계속 돌연변이들의 흔적을 찾아 연구하는. 


3. 이 영화만 보면 능력은 아포칼립토 보다도 오히려 퀵 실버가 더 짱인듯 ㅎ


4. 스톰은 모습은 그렇다치고, 억양은 전혀 다른데 영재 학교에서 나중에 많이 고친듯.


5. 제니퍼 로렌스는 역시 멋있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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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Joy, 2015)

'가족'이라는 어쩔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이혼한 부모님과 전남편, 할머니와 두 아이까지 떠안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싱글맘 조이(제니퍼 로렌스).
자신이 꿈꿨던 인생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에 지쳐가던 어느 날, 깨진 와인잔을 치우던 조이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아주 멋진 것을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어릴 적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한 조이는 상품 제작에 돌입한다. 그러나 사업 경험이 전무한 조이는 기업과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으며 여자에게 더욱 가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벽 앞에서 매번 좌절하게 된다. 이 때 전 남편 토니의 소개로 홈쇼핑 채널 QVC의 경영 이사인 닐 워커(브래들리 쿠퍼)를 만나게 된 조이는 기적적으로 홈쇼핑 방송 기회를 얻게 되고 5만개의 제품을 제작한다. 하지만 단 한 개도 팔지 못한 채 처참한 상황을 맞게 된 조이는 결국 빚을 떠안고 파산 위기에 처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미국 최대 홈쇼핑 채널의 CEO인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를 그린 데이비드 O.러셀의 '조이 (Joy, 2015)'는 예상외로 성공 신화를 다루지 않는다. 그녀가 엄청난 성공을 이룬 이후의 이야기는 짧게 스케치 정도로만 등장하고 성공하기 까지의 우여곡절 역시 조금은 느슨하게 다루는 편이다. 그녀 역시 힘겨운 시간들을 거쳐서 만인이 바라는 부를 누리게 된 것은 맞지만, 데이비드 O.러셀이 주목한 것은 그녀의 사업적인 흥망성쇠 보다는 오히려 그녀를 둘러싼 특별한 가족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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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현실 속에 놓인 주인공과 가족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족 역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이지만 그 존재 만으로도 힘겨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로 묘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 그 힘겨운 현실을 더 힘겹게 만드는 주된 요인으로 그리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영화 '조이'는 이 둘 중 하나로 말하기가 어렵다. 이혼을 한 남편이나 이복 동생, 이혼한 부모님이 만나는 연인 등의 전통적이지 않은 가족의 구성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 점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각자의 삶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탓에 주인공 조이의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방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방해 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 조이의 모습에서는 이미 본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존재이자 관계 임을 인정한 듯 보인다. 그래서 한 편으론 영화 속 조이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가 한 걸음 내 딛는데 까지 너무 많은 가족들의 직간접적 방해를 해치고 나와야 하는 상황들은, 어쩌면 그녀가 비즈니스 적으로 겪었던 어려움들 보다도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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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데이비드 O.러셀이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그녀의 가족 이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미 전작 '파이터 (The Fighter, 2010)'에서도 이러한 가족이라는 존재를 깊이 그려낸 적이 있는데, '조이'를 보다보면 '파이터'의 가족이 절로 떠오른다. 만약 다른 감독의 영화나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면 조이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애초부터 방해 요인이 되거나 될 변수를 갖고 있는 가족들을 자신의 삶에서 분리해 나갔을 텐데, 이 영화 속 조이는 그러한 노력을 사실상 거의 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완전하게 거리를 두거나 인연을 끊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렇게 조이를 이용하거나 해를 가하는 가족들이 마음을 고쳐 먹는 것도 아니다. 관계는 좋아졌다 나빠졌다는 반복하지만 조이는 그래도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에서라기 보다는 그저 '어쩔 수 없는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수용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도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만인이 부러워 하는 성공을 이뤄낸다. 영화는 그렇게 조이라는 인물의 성공에 있어서 그녀의 악착 같음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어쩌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고도 볼 수 있는 가족을 말한다. 성공이라는 계산적이고 치열한 현실과 경쟁에 있어서 가족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데이비드 O.러셀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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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가 전체적으로는 조금 심심한 감이 있어요. 가족이라는 테마를 성공담에 녹여내고는 있지만 특별하지는 않거든요. 제니퍼 로렌스의 무르익은 연기를 보는 재미가 어느 정도 이런 점을 상쇄시키는 편입니다.

2. 데이비드 O.러셀 감독은 이번에도 영화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시대 배경을 피부로 와닿게 하는 동시에 인물의 감정 표현까지 음악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편이에요.




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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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X-Men: Days of Future Past, 2014)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월드를 꿈꾸는가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시리즈 외에도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 1995)', '슈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2006)' 그리고 '작전명 발키리 (Valkyrie, 2008)' 등을 연출했지만, 그래도 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를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엑스맨' 시리즈였다. 그렇기 때문에 2006년 그가 '엑스맨' 시리즈를 버리고 슈퍼맨의 리부트를 맡게 되었을 때 많은 팬들은 큰 아쉬움을 표했었는데, 그 아쉬움은 실제로 브렛 래트너가 연출한 '엑스맨 3 : 최후의 전쟁 (X-Men : The Last Stand, 2006)'이 평범한 액션 영화로 남게 되면서 더 큰 아쉬움이 되기도 했었다. 그랬던 '엑스맨' 시리즈는 '킥 애스'를 연출했던 메튜 본을 통해 2011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X-Men: First Class, 2011)'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는데, 프로페서와 매그니토의 시작을 다룬 이 작품은, 당시 붐처럼 일던 프리퀄 열풍에 단순히 몸을 실은 작품이 아니라 '엑스맨'이라는 시리즈 전체를 다시금 조명하기에 충분한 진정성을 갖춘 작품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었다. 그렇게 다시 브라이언 싱어의 손을 떠난 듯 했던 '엑스맨' 시리즈가 다시금 그의 손으로 만들어 진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영화가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론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브라이언 싱어는 자신이 꿈꾸던 엑스맨 월드의 영화화 비전을, 메튜 본이 이뤄 낸 성과 위에 고스란히 펼쳐 놓으며 한 발 더 확장시킨 엑스맨 월드를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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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이야기의 구성이 반복되는 가운데 캐릭터만 하나 씩 추가되는 양상으로 조금씩 흐를 수 있었던 '엑스맨' 시리즈를 새롭게 구원한 것은, 어찌되었든 메튜 본이 선택한 프리퀄의 방식이었다.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매니아들을 제외한 일반 관객들이 서서히 뮤턴트 월드에 지쳐갈 때, 이야기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현재 적이지만 묘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시작을 다룬 선택은 여러 모로 효과적이었다. 단순히 과거를 돌이켜 보게 된 것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이 시리즈의 가장 핵심 테마라 할 수 있는, 존재의 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공감대마저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넓게 봐서 이번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메튜 본의 '퍼스트 클래스'에 이은 자연스러운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즉, 감독은 바뀌었지만 가장 최근 작인 '퍼스트 클래스'를 인상적으로 본 관객들이 위화감이 크지 않도록 큰 맥락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브라이언 싱어는 자신이 만들었던 엑스맨 1,2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은 물론 3편에 등장했던 캐릭터들까지 주조연, 단역에 이르기까지 등장시키며 기존의 엑스맨 시리즈를 아우르는 이른바 '월드'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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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으로는 그러하지만 이런 방식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중 하나는 일반 관객들에게 명확한 구심점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전편인 '퍼스트 클래스'는 앞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찰스와 에릭의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했는지에 대한 뚜렷한 서사구조와 공감대 형성의 기회가 있었던 반면, 이번 작품은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물론 브라이언 싱어 '엑스맨'의 중심이었던 울버린이 등장하면서 일종의 화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데, 여러 명의 중심 캐릭터가 겹쳐지다보니 누군 가에게는 여럿이 등장하는 캐릭터 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채 누구의 이야기에 더 귀기울여야 하나 갈팡질팡 하다가 끝나버리는 수도 있을 듯 하다. 즉, 다시 말해 이번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형식상 미래와 과거를 다루는 것은 물론, 이전 시리즈에 등장했던 캐릭턱들과의 상관 관계도 은연 중에 내제되어 있다보니 이번 작품 만으로 공감대를 이루기에는 부족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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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부분은 그 동안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은 물론 브랫 레트너와 매튜 본의 '엑스맨' 까지 모두 즐겼던 팬들에게는, 뭐라 딱 잘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미묘한 감정선이 포함된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찰스와 에릭의 드라마는 이제 크게 강조하지 않아도 극적인 드라마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중심에 놓인 레이븐의 스토리 역시 제니퍼 로렌스의 표정 연기 하나 만으로도 그 간의 세월을 짐작하게 만드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시리즈 전반에 걸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맨 중에 맨 휴 잭맨이 연기한 울버린 역시, 초기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했던 '엑스맨' 시리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로서 전체적으로 세계관을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다소 산만할 수도 있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감정선에 초점을 맞추며 이 시리즈 전체를 감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퍼스트 클래스'가 독립적으로 완벽한 작품이었다면,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시리즈 전체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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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과거를 직접적으로 다뤘던 '퍼스트 클래스' 보다도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더욱 이전 '엑스맨 1,2'편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또한 제임스 맥어보이와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하는 찰스와 에릭의 캐릭터도 또 한 번, 빠르게 다시 보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었지만 이번 작품은 조금만 더 나아가도 지루해지거나 과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아슬한 지점의 줄타기를 멋지게 해 낸 브라이언 싱어의 다음 엑스맨 영화가 기다려진다.



1. 센티넬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미래의 상황을 초반에 좀 더 묘사해서 더 어두운 분위기를 냈더라면, 이후의 이야기들이 좀 더 매력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바람도.


2. 안나 파킨은 정말 잠깐 나오는데 크레딧에서는 상당히 빠르게 나오더군요.


3. 어쨋든 전 이 라인업이 마음에 들어요. 계속 이들이 만들어내는 엑스맨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4. 진 그레이가 등장하는 장면은 정말 엑스맨 1,2를 꺼내 보고 싶도록 만드는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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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 2013)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



최근 몇 년 사이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 받는 감독 중 하나는 바로 데이비드 O.러셀 일 것이다. '파이터'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두 작품을 통해 급격하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기존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이 작품 '아메리칸 허슬' 역시 기대할 수 밖에는 없는 조합이었다 (참고로 크리스찬 베일과 에이미 아담스는 '파이터'에서,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호흡을 맞췄다. 제레미 레너와는 첫 작품). 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사기, 사기꾼이라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국내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하게 했는데, 분명 영화의 겉모습은 그러하지만 실속은 사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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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빙 로젠필드'라는 캐릭터의 아침 몸 단장으로 시작하는데,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아침부터 세심한 공을 들여 머리를 세팅하는 과정을 영화는 그 세심함 만큼이나 한참을 말 없이 들여다본다. 이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를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렇듯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 혹은 그러기 위해 될 대로 되라 라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공을 들여 그 가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어빙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영화가 이후 들려주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정서에도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사기 자체의 속고 속이는 묘미가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도 치밀한 사기극을 다룬 영화들에 비하면 '아메리칸 허슬'의 사기, 아니 사기극을 묘사하는 방식은 긴장감 넘치는 리듬도 반전이라고 할 만한 연출도 없는 편이다. 이 작품은 실화를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건 자체에 전후 사정과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 흥미로운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정에 서서 각자의 결핍을 그려보려 했던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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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으로 살아 온 어빙이나 시드니 (에이미 아담스) 외에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리치 디마소라는 캐릭터도 FBI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결핍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FBI이기는 하지만 조직 내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승진도 못하고 있어, 자신이 주목 받을 수 있는 큰 한 건을 노리고 이 사건을 기획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승진이라는 형식적인 것 보다는 주목 받는 것 자체, 즉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직접적인 대사로도 나오는 것처럼 무언가 자신이 여러 인물들을 이끌고 주인공이 되면서 드디어 성공에 까지 가까워 짐에 따라, 그가 겪는 감정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인데 브래들리 쿠퍼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또 한 번 감정적이면서도 결핍이 있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고 있다. 그가 연기한 리치와 비슷한 이유로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어빙의 부인인 로잘린 캐릭터도 설명할 수 있겠다. 그녀의 행동도 일부러 남편을 골탕 먹이려고 한 것 이라기 보다는 주목 받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이렇듯 '아메리칸 허슬'은 평생을 남을 속이는 것으로 (신분까지 속여가며) 살아왔던 이들과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즉 가짜로 사는 것에 지쳐버린 이들의 진짜가 되어보려는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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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에는 특이한 리듬이 있다. 기막힌 당시의 선곡으로 순간적인 몰입 도를 선사하는 한 편, 긴장이나 불안감 없이도 한 참을 카메라가 멈춰서 인물을 바라보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보통 이런 장면을 쓸 때는 그 다음에 오는 어떤 사건을 꾸미기 위한 것이라던가, 직접적인 인물의 감정 표현을 위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 경우가 다 아니었다. 어떤 반전이나 장면 전환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인물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오랜 시간 캐릭터를 다른 아무 장치 없이 바라보게 함으로서 가짜의 껍데기 속에 있는 진짜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조금은 이질적인 리듬 감이 존재한다.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아카데미 10개의 부분에 후보로 오른 것과는 달리 개인적으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더 좋았고, '파이터'와 비교해도 '파이터'가 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아메리칸 허슬'은 이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명 배우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연기한, 연기와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몸을 불린 크리스찬 베일은 마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연기했으면 딱이 었을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고, 에이미 아담스는 근래 그녀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브래들리 쿠퍼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걸음 클래스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제니퍼 로렌스는 이렇게 빨리 어린 배우가 성장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 명 배우들 사이에서 완전히 녹아드는 '어른스러움'과 매력을 사정 없이 발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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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론 에이미 아담스의 팬이라 더 좋았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한 번 쯤 그녀가 원톱으로 나서는 영화를 보고 싶네요.


2. 음악이 참 좋은데 아직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발매된 것 같지는 않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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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 (Silver Linings Playbook, 2012)

한 줄기 빛나는 치유의 영화



데이비드 O. 러셀의 전작 '파이터'를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그의 다음 작품을 그 이름만으로 선택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이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주저없이 선택하게 된 이유는 아카데미 등 여러 시상식의 노미네이트 혹은 수상 등 때문도 있겠지만, 역시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라는 나에게는 아직 뜨거운 두 배우 때문이었다. 브래들리 쿠퍼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제니퍼 가너 주연의 TV시리즈 '앨리어스'를 통해서 였는데, 그 당시만 해도 그저 평범하게 생긴 남자 친구 역의 배우 정도로만 기억에 남았던 그가 이렇게 성장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좀 의외의 캐스팅이다 싶었었는데, '행 오버' 이후로 이제는 헐리웃을 대표하는 어엿한 배우 중 하나로 부각한 것 같아 왠지 뿌듯한 느낌마저 든다. 제니퍼 로렌스야 '윈터스 본'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준 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통해 역시 의외의 매력을 보여주어 앞으로가 기대되던 배우였기에, 이 둘의 주연이라는 점만으로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충분히 볼 만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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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로맨스 인듯 보이지만 사실은 대놓고 상처와 치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즉, 팻과 티파니의 이루어지지 않을 듯, 이루어질 듯 한 관계는 로맨스 영화로서도 훌륭한 긴장감을 주지만 이 둘의 관계는 결국 서로를 향해 있다기 보다는 각자의 상처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치유의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팻은 그 상대에게 폭력을 가해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도 충동을 참지 못하는 일종의 비정상인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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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같으면 팻이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사회에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더 직접적으로 얘기해 정상인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그렸었을 텐데 이 영화의 전개과정은 좀 다르다. 처음에는 팻의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보여주지만, 그 이후에는 그의 아버지, 친구, 주변 인물들 역시 한 두 가지씩 이상한 (비정상적이라고들 얘기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다보면 어느 새인가 팻이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뎌지게 되는데, 결국 데이비드 O.러셀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비정상이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인물이 이런 조건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극 중 등장하는 인물들의 '그것'을 문제나 비정상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처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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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전반적으로 감싸고 있는 이 시선은 이 영화를 겉으로는 쿨해보이지만 속으로는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영화로 만들어냈다. 실제로 팻과 티파니는 물론 팻의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들 거칠 것 없고 모난 듯 보이지만 이 모습과 방식을 일부러 둥글게 다듬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를 인정하고 치유해가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깊게 다가왔고 뭉클하게 느껴졌다.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치유의 이야기 가운데 팻과 티파니의 로맨스를 녹여 놓았는데, 자칫하면 뻔할 수 있는 너무 익숙한 선택이 될 수 있었지만 결국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에 데이비드 O.러셀은 전작 '파이터'를 통해 집중했었던 가족의 이야기도 또 한 번 그려내고 있는데, 팻의 부모님의 대한 묘사가 두 주인공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무언가 다 이해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남편과 아들을 따듯하게 바라보는 어머니 캐릭터도 인상적이었고,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쉽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 (로버드 드 니로)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다.


사실 처음 극 중 아버지 역할로 등장하는 로버트 드 니로를 보았을 때 주변 캐릭터로 그냥 소비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웬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에 울컥하게 만든 건 오롯이 로버트 드 니로라는 대 배우의 연기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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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너도나도 힐링을 외치는 시대에 쿨하게 자신 만의 방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치유하는 한 줄기 빛나는 작품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씨익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으로 증명된다.



1. 제니퍼 로렌스는 정말 매력적이더군요. 이전까지 그냥 괜찮다 싶은 배우였다면 이 작품을 통해 팬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2. 영화 음악이 참 좋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웨스트사이드스토리'도 슬쩍 등장하고. OST를 질러야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he Weinstein Company 있습니다.


 






윈터스 본 (Winter's Bone, 2010)
소녀는 울지 않는다


산골 마을의 열 일곱 소녀 '리 돌리 (제니퍼 로랜스)'는, 어느 날 마약협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던 아버지가 집과 땅을 모두 담보로 한채 보석금을 내고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병든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리는 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집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가정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 행방이 묘연해 진 아버지를 수소문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달갑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계속 들쑤시고 다니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반응들이다. 하지만 리 는 이에 굴하지 않고 홀로 외롭게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계속해 나간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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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윈터스 본'을 미스테리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영화는 리의 아버지가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과 리를 둘러싼 이 마을 사람들의 어두운 뒷이야기를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의 부제는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도 만들어냈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미스테리와 그 해답이 아닌 다른 것에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주인공 리를 시작부터 바로 사건에 던져 놓는다. 아버지의 부제와 그의 행방을 찾는 여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리의 표정에서, 한편으론 현실을 예상이나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지만, 오히려 보통의 열 일곱 소녀마냥 이 상황에서 도망치려하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닌, 고민해볼 여지도 없이 무조건 무거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리의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차갑고 스산하다 못해 황량하기까지한 한 겨울 마을의 풍경은, 마치 한 겨울 개발로 인해 나무가 꺽여나가는 숲 속에 남아 생사에 갈림길에 놓인 한 마리 다람쥐처럼, 무거운 현실과 자신을 탐탁치 않아하는 마을 사람들 속에 홀로 가족과 남겨진 리의 상황을 더욱 시각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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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가 처한 현실은 그녀를 둘러싼 상황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해 이어져 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한다.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은 외부와 고립되어 마을 전체가 마약 사업를 통해 경제생활을 해오고 있으며, 리의 아버지와 그의 친척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을 사람들은 일반적인 '마을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마약 조직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리의 행동을 마을 전체가 나서서 판결하고 제거하려 든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주인공 리가 처해있는 위치다. 만약 리의 아버지의 시점에서 영화가 전개되었다거나, 리 역시 이미 마을에 물든 것을 전재로 영화가 시작되었다면 '윈터스 본'은 일반적으로 조직에서 떠나려는 한 인물의 몸부림을 그린 범죄드라마로 그려졌겠지만, 영화 속 리의 위치는 어두움에 잠식되어 있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했던 아버지를 두었지만 여기에 합류하지는 않은 존재로 그려진다. 이렇게 주인공 리가 경계에 서 있게 되면서 영화는 많은 희망이 이미 잠식된 동시에 아직 미약한 희망이 남아있는 주인공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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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경계에 서게 된 것과 더불어 영화는 많은 것을 '가족'이라는 정서와 공동체에 직접적으로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마약 사업에 관련된 마을 사람들 모두 각각 가족 공동체 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리가 아버지를 찾아 해매는 것은 단순히 그가 가족의 유일한 터전인 집을 담보로 했기 때문도 아니고, 가족을 모두 보살피기 어려워 도움을 청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리는 아버지와의 관계, 그러니까 아버지가 가족에게 드리운 이 마을의 어두운 굴레를 확실히 끊어버리기 위한 증명과 맺음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만약 리가 혼자였다면 그녀도 아마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이 지옥같은 곳을 떠나려 발버둥쳤을 테지만, 리에게는 그녀가 책임져야만 하는 어린 두 동생과 병든 어머니, 즉 가족이 존재한다. 한 때 친척들에게 동생들을 맡기고 군에 입대해 돈도 벌고 오랜 시간 이 곳을 떠나는 것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결국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택한다 (여기서 상담을 해준 군인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가족과 함께 남기론 한 리는 이 굴레를 끊기 위한 힘든 길에 뛰어든다. 결국 리는 아버지로 이어져 있는 이 거대한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직접 아버지의 시체를 부여잡고 그의 손을 전기톱으로 잘라낸다. 이것은 매우 직접적인 비유였다. 마을 사람들은 뒷탈이 없도록 하기 위해 리의 아버지 시체를 그녀가 보는 앞에서 확인시켜주었고, 이 잘린 손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이 증명되어 그녀는 결국 아버지가 드리운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 보석금도 돌려 받고 집도 지킬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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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서 소녀는 행복해졌을까? 아버지로부터 원치 않게 물려 받은 현실의 굴레를 일부 벗어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그녀는 아직 지켜야할 집과 가족이 있고 무엇보다 이 마을을 쉽게 떠날 수 있을 만큼 장미빛 미래는 약속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 마을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상 끊임없이 유혹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과 싸워야 할 것이며, 그 두려움의 크기는 오히려 점점 커져만 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여전히 따스한 봄은 오지 않았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겨울이 계속되고 있으며 달라진 것이라곤, 리가 아버지의 부재를 스스로 증명했다는 것 (할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 밖에는 없다. 그래서 아버지가 남긴 악기를 어린 동생이 연주하며 마무리 하는 마지막 장면에는 영화 전반에 흐르던 차가운 공기가 여전하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리와 함께 이 가족을 돌보기로 한 티어드롭은, 리의 동생들에게 작은 병아리 두 마리를 선물한다. 아마도 영화는 이런 현실에 그대로 남겨진 리와 가족들에게 조금의 희망이나마 주고자 새 생명을 선물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영화가 영화 속 인물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따스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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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이 참 많이 내린 날 보게 되었는데, 현실의 펑펑 눈 내리는 날씨보다도 영화 속 마을의 풍경이 훨씬 더 차갑고 스산하게 느껴지더군요.

2.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외롭고 제약된 공간 탓인지 보는 내내 스웨덴 영화 '렛 미 인'이 떠오르더군요.

3. 티어드롭 역을 맡은 존 호키스는 어디서 봤나 계속 생각이나질 않았었는데 미란다 줄라이의 작품 '미앤유앤 에브리 원'에 나왔던 그더군요. 너무 초최한 모습으로 나와서 몰라보겠더군요.

4. 엔딩 크래딧을 보면 다시 한번 영화가 조금이라도 따스한 희망을 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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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inter's Bone Productions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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