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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믿음



올해 최고 대작 ‘헤일, 시저!’ 촬영 도중 무비 스타 ‘베어드 휘트록’이 납치되고 정체불명의 ‘미래’로부터 협박 메시지가 도착한다. ‘헤일, 시저!’의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비.상.상.황! 영화사 캐피틀 픽쳐스의 대표이자 어떤 사건사고도 신속하게 처리하는 해결사 ‘에디 매닉스’는 할리우드 베테랑들과 함께 일촉즉발 스캔들을 해결할 개봉사수작전을 계획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모든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 만드는 일에 대한)영화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코엔 형제의 신작 '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는 1950년대 헐리우드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영화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가끔 당시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의 뒷 이야기들을 전해 듣게 되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그야말로 대단한 에피소드들이어서 제작과정 그 자체로 전설이라 부를 만한 작품들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헤일, 시저!'는 그런 헐리우드 비즈니스의 복잡하고 거대한 뒷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아주 본질적인 영화 제작이라는 일.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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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배우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납치 되고, 새롭게 선택한 다른 작품의 남자 배우는 드라마 연기가 처음이라 연기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며, 거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신작 영화에 주연 배우 (납치된 그 배우)에 대한 스캔들을 기사화 하겠다는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며, 그 와중에 잘 나가는 방위 산업체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받게 되는 이는, 이 영화사의 대표인 에디 매닉스 (조쉬 브롤린)다. 그는 해결사라는 별명 답게 이 동시다발적으로 사건들이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려고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번에 벌어진 사건들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그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이직의 유혹이다. 영화 속 상황으로 미뤄보자면 당장에라도 이 현장을 떠나 더 좋은 조건. 야근도 없고 돈도 더 많이 버는 방위 산업체로 이직하는 편을 관객으로서 응원하고 싶을 정도다. 코엔 형제는 매닉스가 겪게 되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지만 사실 정색하고 다시 보자면 이 상황은,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픈 위급 상황이다. 


그런데 코엔 형제는 매닉스가 처한 상황, 그러니까 영화가 제작되는 스튜디오와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가운데, 그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 제작 과정의 매력을 슬쩍 담아 낸다. 매닉스가 이런 저런 다른 이유로 영화 세트장을 찾을 때 단순히 세트장으로서 현장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참이나 그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가, 순간 그 영화 속 영화의 관객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영화 만드는 일 (이를 테면 편집과정)을 묘사할 때 그냥 웃고 넘길 만한 에피소드처럼 스윽 지나가지만, 은연 중에 영화 만드는 일의 놀라움과 대단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은 결국 매닉스의 마지막 선택으로 확고한 종지부를 찍는다. 코엔 형제는 아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왜 영화 만드는 일이 의미 있는가'를 말하는 것 대신, 어쩌면 무조건 적이고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그 정당성을 말하고자 한다. 코엔 형제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헤일, 시저!'의 순수한 믿음은 지금의 영화 산업과 영화라는 존재가 처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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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라는 예술 혹은 산업을 더 좋아하도록 만든 그 자체의 영화였다. 귀엽고 유쾌한 가운데.


1. 여러 화려한 출연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호비 도일 역할을 맡은 엘든 이렌리치 였어요 ㅎㅎ

2. 나중에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영화 속 영화들이 조금씩이라도 수록되면 정말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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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2013)

기회의 땅의 그림자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신작 '월가의 늑대'를 보았다. 이미 여러 번 좋은 작품을 만들었던 콤비라 세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임에도 다른 보고 싶은 개봉작들을 제쳐 두고 가장 먼저 선택하게 되었는데, 영화는 역시 스콜세지가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미국의 역사에 관한 또 다른 버전의 '좋은 친구들'이었고, 그의 페르소나인 디카프리오 역시 한껏 과장되고 힘이 들어간 캐릭터로 강렬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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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990년대 월 스트리트의 주식 중계인으로 큰 돈을 벌었던 조던 벨포트라는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할 만한 교훈 적인 삶을 살았거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연을 갖고 있는 경우인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에 다 해당하지 않는 작품이다. 즉, 이야기는 조던 벨포트의 흥망성쇠를 따라가지만 스콜세지가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조던 벨포트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 라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한 국가이자 사회의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가의 늑대'는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다룬 '에비에이터 (The Aviator, 2004)'보다는 '좋은 친구들 (Goodfellas, 1990)'이나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 2002)'에 더 가깝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이면을 그렸었다면, 미국의 가장 상징적인 곳 중 하나 인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성공과 실패를 겪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스콜세지는 또 한 번 이 기회의 땅이 어떤 꿈과 좌절을 주는지, 그리고 그 기회라는 것 이면에 얼마나 많은 추악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지를 한참이나 늘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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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최근 본 어떤 작품들 보다 도 노출이나 선정성의 빈도가 잦은 작품이었다. 강도로 따지면 제일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빈도 만을 놓고 보면 3시간의 러닝 타임 가운데 거의 2시간은 노출과 욕설, 마약과 섹스로 점철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과장과 답답함, 불편함이 섞여 있는 영화였다. 마초 적이어서 불편 하다기 보다는 이 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이 농담이나 친근함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한 편으론 조롱이라고 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던 벨포트의 개인 사에 집중하기 보단 그가 본격적으로 월 가에 뛰어 들면서 부터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영화가 전반적으로 지니고 있던 과장과 불편함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세미나 장면에서 벨포트의 얼굴이 아닌 그의 강의를 초롱 초롱 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로 끝 맺음을 지은 것은, 겉으로 보기엔 누구 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고자 하는 듯 했다. 이렇게 3시간 내내 이야기했음에도 관객 중 적지 않은 수는 벨포트가 극 중에서 누렸던 그 부를 한 번 쯤은 누려보고 싶거나, 벨포트와는 달리 폭주하지 않고 적당히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관객들을 영화가 바라보는 시점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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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확실히 과장되어 있어요. 그의 연기가 과장되었다기 보다는 이 캐릭터 자체가 과장되었다고 봐야겠죠. 그의 얼굴과 연기는 점점 더 잭 니콜슨을 닮아가네요. 다음 작품은 좀 더 힘이 빠진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작품이어도 좋을 것 같아요.


2. 매튜 매커너히는 출연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반가웠어요.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댕도 그랬구요~


3.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극 중 벨포트를 소개해주는 사회자가 실제 조던 벨포트 인 것 같더군요.


4. 국내 용 영화 제목은 그냥 '월가의 늑대'로 했어도 좋았을 텐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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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Moneyball, 2011)

야구에 빗대어 전하는 삶의 위로



'카포티'를 연출했던 베넷 밀러가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머니볼'은 실제 MLB팀인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단장을 1998년부터 지금까지 맡고 있는 빌리 빈의 실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스포츠 영화가 주로 선수나 감독의 입장에서 바라봤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구단을 실제로 이끌어 가는 단장(GM)의 입장에서 전개된다는 점이 다른 스포츠 영화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수가 아닌 단장의 입장에선 이야기 전개로 인해 그 어떤 영화보다 특별한 스포츠 영화가 되었지만, 동시에 스포츠 영화 이상의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베넷 밀러의 '머니볼'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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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의 배경이 된 2001~2년 당시 메이저리그를 한창 열심히 보던 이들이라면, 영화 속 등장하는 MLB의 트레이드 관련 뉴스들이나 선수들의 이름들, 그리고 기록적인 연승을 이어가던 애슬래틱스의 활약상 등이 기억에 생생할 것이다.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제이슨 지암비, 이슬링하우젠, 조니 데이먼 등은 물론, 이후 재정비 된 애슬래틱스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데이비드 저스티스와 팀 허드슨 등까지... MLB팬들이라면 작은 기록지, 전력분석 영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실제 선수들과 경기 장면에 반가움을 느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이 당시 MLB에 관심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빌리 빈이 뽑은 선수들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되는지, 애슬래틱스가 연승 기록을 새로 쓰게 될지 말지 등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 자체가 그다지 극적인 요소로는 받아들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머니볼'이 인상적인 이유 역시 바로 이 부분이다. 당시 MLB를 빠삭하게 다 알고 있는 이들이 보아도 빌리 빈과 애슬래틱스의 이야기는 충분히 짜임새 있고 흥미로우며 심지어 긴장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이런 부분은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와 비슷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 역시 아론 소킨이 각본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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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거나 스포츠를 주제로 한 영화 가운데 명작들을 살펴보자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경우 실화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신선함을 전달함은 물론 이미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역시 지루하지 않은 흥미로움을 선사한다는 것이고, 스포츠 영화의 경우 경기의 룰이나 관련 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즐길 수 있고 깊이가 있는 작품인 동시에, 아는 사람이 보아도 디테일과 완성도가 높아 스포츠 이상의 극적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머니볼'은 바로 이 지점에 정확히 위치한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묘사함에 있어서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기 힘든 단장이라는 자리를 중심으로 MLB라는 전체적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구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이 이 세계에 그리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도록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야구와 MLB에 관심이 많은 팬들에게도 머니볼 이론이 실제 야구에 적용되는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그리는 것은 물론, 아마도 팬들이라면 한 번쯤 호기심을 가졌을 단장의 입장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FM이 괜히 마약같은 게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머니볼'은 이렇듯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흔치 않은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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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주인공 빌리 빈은 그 어느 곳 보다 오랜 전통이 중시되는 곳 중 한 곳인 MLB에서 파격적인 머니볼 이론을 도입해 주변으로부터 많은 질타와 걱정을 동시에 받게 된다.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인 이유는 머니볼 이론의 성공 여부나 애슬래틱스의 월드시리즈 진출 여부를 가리키지 않고 더 넓은 의미의 위로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을 위해 영화는 애슬래틱스와 빌리 빈 간의 거리를 둔다. 즉, 애슬래틱스의 단장으로서 팀과 운명을 같이 하는 빌리 빈도 묘사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끊임 없이 싸우고 홀로 외로움을 겪는 인간 빌리 빈의 삶을 더욱 비중있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앞서 말한 일들의 결과가 궁금해지고 이에 따라 기쁨과 탄식도 겪게 되지만, 그 보다는 그 가운데 남겨져 있는 빌리 빈의 등 뒤의 모습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만약 이 영화의 내용을 애슬래틱스의 다른 선수 위주로(페냐나 제레미 지암비 등) 전개했거나 기존 팀의 스카우트를 맡았던 수뇌부들 혹은 감독의 입장에서 그렸다면, 빌리 빈은 그야말로 독선적이고 자기 맘대로인 악역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 영화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거나 혹은 좀 더 극적인 요소로 본다면, 데이터가 아닌 오랫동안 업계를 지켜온 장인들의 '감'에 의존하여 승리를 거두는 편이 훨씬 더 일반적이고 정의롭기까지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가 선택한 빌리 빈의 이야기는 어쩌면 예상하지 못했던 위로를 전해준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이다. 유명한 Lenka의 팝 넘버 'The Show'의 가사 내용을 이토록 완벽하게 이야기에 녹여버린 이 영화의 마력은 마지막 장면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말로 이루다 표현 못할 위로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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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찬호 선수가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갑니다.

2. 이 영화에서 빌리 빈 역할을 맡은 브래드 피트는 정말 로버트 레드포드 같더군요.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해왔지만 이 역할은 정말 싱크로율이 90%이상이더군요.

3. Lenka의 'The Show'는 이미 익숙한 곡이었는데, 앞으로는 이 곡을 듣게 되면 이제 '머니볼'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될 것 같네요. 이제는 정말 가사가 들려요 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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