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2014)

영화, 그리고 영화 밖 이야기


'최종병기 활'을 연출했던 김한민 감독의 신작 '명량'을 지난 주말 보았다. 이미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명량해전을 영화 화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터 이 영화엔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 더불어 흥행 관련해서도 어지간해서는 흥행 실패하기 힘든 소재라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다. 여기에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작용해서 마치 '레 미제라블'이 그랬던 것처럼 '명량'은 최단 기간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고 (여기서 굳이 독과점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최대 관객 기록을 세울지도 모를 기세로 달려가고 있다. 흥행과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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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에 대한 중론을 모아보자면 초반 부는 지루하고,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 자체보다도 관객들이 더 많은 감동을 얻게 된 다는 점일 텐데, 후자는 확실히 그런 편이다. 이순신이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영웅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만으로도, 그리고 이 이순신을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없을 수가 없다. 즉 충무공 이순신은 어떻게 그려도 역사적 인물 자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 있고, 최민식이라는 배우 역시 이를 오버하지 않고 최대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것이 더 큰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물론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표현해 내기에 '명량'이라는 작품의 틀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이건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순신 외에 다른 캐릭터들은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다. 특히 일본 장수 캐릭터들을 비롯해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은 각자의 이름 소개 외에는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지 못할 정도로,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기 보다는 그저 소품으로 존재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이 영화엔 이미 출연한다고 널리 알려진 배우들 외에도 까메오나 조연 형식으로 상당한 수의 이름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활용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했다. 특히 진구가 연기한 임준영 캐릭터와 그의 아내를 연기한 이정현이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는 여러 가지로 이상했다. 한국 영화가 자주 범하는 실수인데, 관객에게 '이 장면은 감동적인 장면이야, 감동을 받아야 돼'라고 강요하는 경향이 강해 오히려 이질감이 드는 장면이 많았다 ('명량'이 갖고 있는 정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다수의 관객에게 실제로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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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더 해보자면, 이 영화는 각각 부분 부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여러 가지로 어색하고 맞지 않은 구성이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한 초반 부도 개인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다지 큰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몰라도 왜군의 규모나 분위기를 보여주는 초반 장면들은 음악의 힘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크긴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내용과는 별개로 한국 배우들이 왜군과 그 장수들을 연기하는 상황과 제법 괜찮은 이미지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고증의 문제는 별개다. 참고로 명량의 고증 수준은 그리 높지는 않은 듯 하다). 초반의 시퀀스들도 영화 전체와 마찬가지로 각각 별개로 놓여있고 유기적으로 엮여 있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의 이야기의 비중을 줄이고 왜군들의 이야기의 비중을 높인 것은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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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 적인 이야기로 '왜 지금 이순신인가?'라는 담론은 쉽게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들의 정부를 향한 불만 들이 가득 찬 시점에서 이순신이라는 리더의 모습은 국민들이 바라는 이상향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극 중 김태훈 씨가 연기한 캐릭터의 대사 중에 '왜 대장선이 맨 앞에 있어'라는 식의 대사가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집약적으로 이순신의 리더쉽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보통 리더는 뒤에서 빠져 있고 지시를 하게 마련인데, 명량의 이순신은 부하들이 모두 뒤에 빠져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홀로 맨 앞에서 맞서 싸우는 리더쉽을 보여준다. 물론 리더라면 응당 이러한 모습을 손수 보여주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일종의 대리 만족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려서 더 씁쓸한) 을 느낄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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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명량의 초반 부는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영화가 지루해서, 이순신 장군이 겪는 고초가 공감 되어서가 아니다. 바로 명량 해전이 벌어진 장소가 얼마 전 참혹했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그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물살을 바라보며 전략을 떠올릴 때 검고 빠른 바다가 스크린 한 가득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어찌 세월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우리가 세월호 뉴스를 들을 때 수 없이 많이 듣던 조류와 물 때의 이야기가 나올 땐, 그리고 검은 바다의 이미지는 세월호 사고와 정부의 무능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가 생각나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인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클라이맥스 부분을 지나쳐 엔딩을 맞게 되어도 별다른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명량'을 온전히 감상하기엔 세월호 사고의 상처가 너무 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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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이대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몇 년 전에 류승범, 김아중 등이 출연하고 이해영 감독이 연출을 맡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나 아쉽게 더 나아가지 못했고, 이번에 조근현 감독과 진구, 한혜진, 임슬옹 등이 출연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제작두레 덕에 '26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잘 알려졌다시피 5.18 당시 군사독재정부를 이끌었던 전두환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그 유족들과 또 다른 피해자들이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 나는 영화 평론가도 아닐 뿐더러 그저 개인적인 영화 글을 쓰는 이로서 반드시 영화에 대해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소개해야 할 의무나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좀 더 내 감정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바가 아주 없다 고는 할 수 없을텐데,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 '26년'은 객관성을 갖기는 힘든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먼저 본 이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적지 않게 들어왔는데, 내가 보기엔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 없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이에 대해 완전히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는 얘기다. 나에게 '26년'은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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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는 내게 참 특별하다. 난 광주 사람도 아니고 5.18 유족도 아니며 직접적인 연관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한 사람이라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 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있지만, 분명 내게 5.18 광주는 특별한 의미였고, 그렇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흐른 눈물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날을 떠올려 보면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된, 아니 제대로 인식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첫 번째 한국사가 바로 5.18 광주가 아니었나 싶다.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5.18에 대한 자료들, 사진들, 영상들을 접해왔고, 이후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주변의 좋은 분들 덕택에 이 아픈 현실과 상처 받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5.18 광주에 대한 미안함을 담고 있는 공연 작품을 통해, 5.18 광주에 직접 내려가 금남로 거리 위와 5.18 묘역 앞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었다. 사실 이제와 떠올려 보면 이런 의미를 갖고 있던 공연에 직접 참여해서 여러 차례 노래를 불렀음에도 그 당시에는 어려서 인지 무언가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 광주와 광주 사람들을 둘러 싼 공기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내 일처럼 생각될 정도의 공감대까지는 느끼지 못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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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5.18 광주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몇몇 작품을 보면서도 느꼈던 바가 이번 '26년'을 보면서 비로소 정점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영화 '26년'은 1980년 5월, 참혹했던 당시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여준다. 만약 5.18 광주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이 장면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나에게 이 애니메이션 시퀀스는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눈물을 참을 수가 없는 장면들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저 애니메이션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실제 자료들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절대 영화적으로 보이지 않고 당시의 광주와 사람들이 그대로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영화적으로만 (일부러) 본다면 인물이나 내용에 공감대를 갖기 이전에 등장하는 프롤로그로서 사건을 사건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프롤로그는 한 장면 한 장면에서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는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슬픈 시퀀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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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광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악당을 연기한다)



이후 배우들이 펼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며칠이 지나 다시 떠올려보니 김갑세 (이경영)가 주도한 살해 계획은 영화적으로 치밀하기 보다는 투박하게 묘사되고 있고, 그렇기에 보통의 스릴러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은 덜하고 몇몇 인물은 그 행동의 당위성을 공감하기가 갸우뚱 거리는 부분이 있지만, 이건 다시 말하지만 며칠 뒤에 일부러 떠올려 보고서야 알게 된 부분이었다.


프롤로그의 애니메이션이 그랬던 것처럼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가 담으려 했던 5.18 광주의 이야기, 그 자체의 슬픔이 너무 컸기에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를 애초부터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보통의 영화 같으면 너무 신파라서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광주의 이야기는 그럴 수가 없었다. '금남로 거리를 싸 돌아 다닌게 쪽 팔려서'라는 건달 두목의 대사에도, 묘역 앞에 놓인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영정들을 보며 '이렇게 보니 다 가족 같네'라는 대사에도, 머리보다는 가슴이 더 먼저 신호를 보냈다. 내가 그냥 영화 속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 정도얐다면 후반부 '그 사람'이 두들겨 맞을 때 통쾌함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런 통쾌함조차 없었다. 과연 이 아픔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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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더 나은 완성도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영화라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영화가 영화가 아닌 메시지 만으로 평가 받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영화는 영화다. 이 영화 '26년'이 5.18 광주를 모두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으며, 반대로 모든 짐과 의의를 짊어져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이대로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전혀 반대의 의미로 하루하루를 정말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는 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너무도 무관심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26년' 영화 속 인물들이 결코 극 중 인물만이 아님을, 이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또 한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 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5.18 광주에게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1. 프롤로그의 애니메이션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연출했던 오성윤 감독이 만드셨더군요.


2. 이 영화를 비판하는 이들 가운데, '더 좋을 수 있었는데' '더 좋았어야 했다'라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3. 영화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이승환의 '꽃'을 다시 듣게 되었는데, 이제 이 곡을 들을 때 마다 눈물을 어찌 참을 수 있을 런지 모르겠네요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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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Mother, 2009)
그녀의 이름은 마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을 연출했던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홍상수 감독의 <잘알지도 못하면서>와 더불어 올해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큰 기대작이었다. 박찬욱과는 다르게 또한 홍상수와는 다르게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히 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은, 앞선 두 감독들 보다는 좀 더 대중적이면서도 그 안에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잘 녹여내는 동시에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완성도와 짜임새 면에서는 항상 만족감을 주었던 감독이기에, 그의 2009년 신작 <마더>는 태생부터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국민 엄마로 불리우는 김혜자씨의 캐스팅도, '얼마면 돼'를 외치던 꽃미남 원빈의 복귀작이라는 이유는 전혀 관람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더>에 대한 기대는 오롯이 감독인 봉준호에 대한 것이었다.

더 기대가 되었던 것은 개봉 전 알려져있던 대략의 시놉시스였다. 조금은 모자란 아들 도준(원빈)이 살인사건에 억울하게 휘말리게 되면서 이를 구하기 위해 어머니인 '혜자'가 (크레딧에는 이름 없이 '마더'라고만 표기되지만 각종 인터뷰를 통해 감독은 이 역할을 '윤제문 - 제문' '전미선 - 미선'과 마찬가지로 '혜자'라고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직접 나서게 된다는 것이었는데, 대략의 줄거리만 놓고 보았을 때 이 영화는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가 되거나 수오 마사유키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가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시놉시스를 놓고 보았을 때는 누가 범인인지를 가지고 <유주얼 서스펙트>식으로 풀어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아보였다. 그렇다면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같은 주인공의 심정에 완전히 동화된 작품이 나올 것인가 하면 이 쪽은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과는 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결국 봉준호 감독은 반전 자체가 핵심이 되기 보다는, 자신의 작품들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사건 자체의 구조보다는 그 안에서 한국사회 특유의 문제점을 꼬집는 동시에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물이 겪는 심리상태와 갈등에 더욱 집중하는 영화를 선사하고 있다. 이 영화가 비슷한 줄거리의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 것은 주인공이 바로 '엄마(mother)'였다는 점일 것이다.



(이후 부터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홀로 들판에서 춤을 추는 영화의 첫 장면은 슬프다 못해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이건 완전 신파 드라마 연속극으로 그리기 딱 좋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자신에겐 전부인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게 되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내 정서와 맞물려 찡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손쉬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이렇게 완만한 드라마를 만들리는 만무한 일. 감독은 살인사건이라는 소재를 가져와 직접적으로는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 부수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병폐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한 인간의 집착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들을 정당화 하게 되는지 그리고 눈에 쉽게 보이는 것들 즉 믿고 싶어하는 것들의 허구가 얼마나 많이 인간 스스로를 세뇌시키는지에 대해, 그 시작과 과정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마치 춤추듯 리듬을 타며 전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화 속 엄마와 도준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준은 약간 지체를 겪고 있는 어른으로서 혜자에게는 항상 걱정거리다. 시간 맞춰 약을 먹이고 약 먹다가 도망쳐버리는 도준을 잡기 위해 버스 뒤를 쫓기도 하고, 쉽게 말해 하나 부터 열까지 다 보살펴주려고 애를 쏟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는 단순히 홀어머니와 부족한 아들로만 미뤄 생각하기엔 너무 흥미로운 점들이 많다. 이 영화에서는 상당히 아슬아슬하게 성적인 코드가 담겨있는데, 그 대상이 어머니라는 점에서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 듯 하다. 밤 늦게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눕는 도준은 옆에 누워있는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며 잠이든다. 그리고 밥상 머리에서 삼계탕을 먹으며 정력에 좋다는 얘기를 나누며 '정력은 있어서 어디 쓸 데나 있어?'라며 수줍게 도준에게 묻기도 한다. 물론 정말 제 몸 같은 자식에게 갖는 어머니로서의 모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겠지만, 영화 속 혜자의 미묘한 표정들과 대사들은 단순한 '모정'이라고만 보기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력은 뒀다 모하게?' '잘 여자나 있어?'라고 물어볼 때 혜자의 표정과 목소리는 미묘하게 떨린다. 이는 단순히 자식이지만 이런 말을 나누기가 민망해서라기 보다는 모정 그 이상의 존재 대 존재로서의 사랑이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정말 모정만으로 이런 얘기를 나눴다면 아마도 <박쥐>에서 라여사가 강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되어야 했을 것이다.



(영화 초반 노상방뇨를 하고 있는 도준을 따라가 약을 먹이는 장면은 정말 여러가지를 은유하고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먹는 것과 배설이 동시에 일어나는 그로테스크한 묘사는 물론, 도준이 떠나고 나서 그 현장을 지우기 위해 애써 발을 움직이는 혜자의 모습은 앞으로 일어날 여러가지 일을 암시하기도 한다)

혜자의 캐릭터를 보았을 때 앞선 것들과 같이 성적인 코드로 읽을 만한 장면은 더 있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진태에게서 증거를 잡아내기 위해 진태의 집 안 옷장에 숨었을 때 혜자는 진태와 술집 맨하탄 집 딸이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보게 된다. 여기서도 카메라의 위치 등을 고려해 보았을 때 감독은 분명 혜자의 숨겨진 성적 코드를 의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아들 같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론 마치 집 나간 남편처럼도 느껴지는 진태가 성관계를 갖는 모습을 바라보는 혜자의 시선에서는 묘한 감정이 느껴지는데 이것 역시 민망함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이후 문아정의 친구의 부탁으로 마트에서 생리대를 사다주는 장면에서도 점원의 의심스런 눈초리와 혜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는 컷도 이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영화에서 서 너 차례나 반복되는 '도준이는 엄마랑 잔다며' 식의 농담도 한 두 번은 그저 모자라 보이는 도준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삽입할 수 있는 대사였겠지만 이렇게 여러 번 언급되는 것 또한 같은 의미라 할 수 있겠다(그런 의미에서 남학생이 '진짜 엄마랑 자요?'라는 식으로 얘기했을 때 진태가 화를 내는 장면은 혜자와 진태에 관계를 생각해봄에 있어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을 남긴다).

진구가 연기한 진태 캐릭터에 얘기가 나온 김에 더 해보자면, 이 '진태'라는 캐릭터도 쉽게 종잡을 수가 없는 캐릭터다. 처음에는 혜자의 시선처럼 진태가 문아정의 살해범으로 생각되기도 했지만 결국 진태는 용의 선상에서 멀어지게 된다. 자신을 의심한 혜자에게 거액을 요구할 때는 다시 나쁜 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 도준의 결백을 밝혀내려 혜자를 돕는 모습은 그저 까칠할 뿐 살해범이라던가 아주 나쁜 이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동네 전체가 좀 이상해...'라는 식으로 얘기할 때는 마치 모든 것을 다 꿰뚫고 있는 듯한 뉘앙스마저 풍긴다. 얼핏보면 그저 작은 시골 마을에서 힘을 내세워 권력을 얻으려는, 그래서 아마도 나중에는 이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공직을 차지할 것만 같은 진태의 모습은 이 영화 <마더>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이다. 하나 아쉬운게 있다면 무언가 흥미로운 구석은 많이 남겼지만 결국 별다르게 결론짓지 않은 채 마무리 지어버렸다는 것이랄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진태 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굳이 다 설명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진태라는 캐릭터는 아주 흔한 캐릭터 같으면서도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아무도 믿지마, 나도 믿지마'라는 진태의 대사는 관객들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관객들은 언제나 처럼 주인공인 혜자에게 동화되어 그녀가 보고 믿는대로 역시 믿게 되지만 영화의 결론처럼 실제 사건의 결론은 혜자의 믿음을 배신하고 있다. 진태의 말대로 주변의 도움없이 혼자의 힘으로 사건을 추리해 가던 혜자는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는 한 노인이 진짜 범인임을 알게 되는데, 범인이라는 증거를 확보하거나 스스로 확인하려고 만났던 이 노인에게서 정작 진짜 범인은 도준이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혜자에게는 오로지 '도준이 범인은 아니다'라는 진리와도 같은 맹신 밖에는 없기 때문에, 그 노인의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이 노인의 말을 인정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면회를 갔던 자리에서 '네가 진짜 죽였더라도 안그랬다고 해야지'라는 말처럼, 혜자에게는 도준이 범인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나 여지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그 노인의 말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라던가 '아니라고 밝혀졌던데요'라고만 끝맺지 못하고 결국 그 노인을 죽일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을 핵심적인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영화의 반전이라기 보다는 극 중 혜자가 느끼는 반전일 것이며, 관객이 느끼는 반전이라면 '주인공은 항상 옳다'라는 선인겹에서 오는 반전이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생각해보면 혜자는 처음부터 '도준이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믿었다기 보다는 '아닐 것이다' 혹은 '아니어야 한다'라고 믿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극 중 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그녀의 행동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한국사회에서 특히 강한 모정이라는 점에 기인하자면 그 어떤 어머니라도 자신의 아들이 살인자로 몰렸을 때 '아니다'라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게 될 것이며, 아들을 구하기 위해 혜자처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공감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화 속 도준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극 중 혜자의 행동들은 다 이해가능한 부분이었다.

더더군다나 영화 속 혜자에게는 아들에 대해 커다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5살 아들과 동반자살을 하려고 바카스에 농약을 타서 먹였다는, 즉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인데, 도준이 이 일을 또렷하게 기억해 내면서 혜자의 이런 트라우마는 더더욱 그녀를 압박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궁금해지는 것은 바로 혜자와 도준의 관계에 있어 아버지라는 존재다. 영화 속에서는 거의 단 한 번도 혜자의 남편이자 도준의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없는데, 반대로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있음으로 해서 영화는 조금 더 혼란스러워진다. 영화의 중반 사진관을 하는 미선에게가서 찢어진 도준의 옛날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뽑아달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사진에 대한 언급이 그 이후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도 의아하지만 왜 사진이 찢껴져 있었는가에(혹은 찢었는가)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많다.

 그저 '세상 좋아졌구나'라는 대사를 등장시키기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도준의 예전 사진을 포토샵으로 보정하는 장면이 등장했다고 보기엔 어려운 점이 있고, 왜 꼭 찢어진(찢은) 사진이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영화를 보신 동료 분께서 제기하셨던 것처럼 도준이 혜자의 친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설도 가능한 일이다. 또 하나 드는 의문점은 어찌되었든 동반 자살을 결심하고 먹게 된 농약 때문에 도준이 지체장애를 겪게 된 것인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있던 도준과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자살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더 나아가 장애를 겪고 있는 도준을 잠시나마 죽이려고 했었던 것인지(그래서 트라우마가 더욱 깊어진 것인지)가 불분명 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언급한 가능성은 좀 많이 나간 것이라고 쳐도, 앞선 두 가지 의문점은 도준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과 맞물려 이 가족의 관계 설정의 미묘함을 더하고 있다.




만약 이 영화가 도준이 실제 범인임을 혜자가 알게 되는 것으로 (마치 반전 영화처럼) 끝나버렸다면 아마도 지금과 같은 감흥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이 영화는 반전 영화로서 밖에는 평가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마지막 장면임을 암시하듯 보여준 첫 장면과는 다르게 영화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해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였다면 혜자가 도준이 범인임을 알고서 경악하게 되고 교차 편집으로 도준이 사실은 천재에 가까운 자였다는(이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도 충분히 아직도 가능하다. 이 것에 대해서는 아래에 다시 쓰겠음)것으로 끝나버렸을텐데, 봉준호 감독이 포커스를 두고 있는 점은 스릴러 보다는 한 인간의 드라마였고(사건이 포인트가 아닌 것처럼), 어머니라는 존재로서 풀어냄으로서 다른 결말을 가능케 했다. 실제 범인이 도준임을 알고 있는 혜자에게 경찰인 제문이 찾게 되는데 여기서 관객은 혜자가 고물상 노인을 살해한 것을 제문이 알고 잡으러 왔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제문은 뜻 밖의 얘기를 하게 된다. '범인 잡혔어요.'

혜자가 굳이 범인이라고 하는 종팔이를 면회가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종팔을 만난 혜자는 종팔에게 누구 있냐고, 엄마 있냐고 물어보는데, 아무도 없다는 대답에 더 오열한다. 여기서 종팔은 바로 며칠 전까지의 도준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도준과 종팔이 다른 점이 있다면 (실제 살인범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도준에게는 혜자라는 어머니가 있지만 종팔에게는 이렇게 자신을 구원해줄 존재가 없는 것이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의 양심을 꺽고 또 한 명의 희생양을 만들게 되어버리는 자책감과 자멸감에 슬퍼하는 것이고,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울지 마라'라고 얘기하는 종팔을 도준과 맞바꿀 수는 없었던 어머니로서의 자신 때문에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이다. 혜자는 종팔에게도 어머니가 있길 간절히 바랬겠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고, 그걸 알고도 묵인해야만 하는 혜자의 모습은 또 하나의 씁쓸한 현실과도 같다.




영화의 마지막, 마을 사람들과 관광을 떠나려고 준비하는 대합실에서 도준은 혜자에게 화제 현장에서 주운 침통을 전한다. 스스로 잊으려고 했던 혜자에게(혹은 잊은 줄로만 알았던) 침통을 다시금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리고 버스에 몸을 실은 혜자는 영화 속에서 여러 번 얘기했던 바로 그 '모든 것을 싹 잊게 해주는, 자신 만이 알고 있는 침자리'에 스스로 침을 놓는다. <마더>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 엔딩에 있다. 관객이 공감하고 믿었던 주인공 혜자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하고, 무고한 이가 범인으로 몰리는 데에도 침묵하면서 결국 진실보다는 어쩔 수 없이 도준을 택하는 모습이 비현실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진 점이 섬뜩한 부분이었다.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침을 스스로에게 놓고 나서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는 아줌마들 사이로 모든 것을 포기한냥 춤을 추는 모습은 그래서 압권이었다. 더 인상적인 건 처음에는 많은 아줌마들 사이에서 혜자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지만, 혜자가 버스 중심으로 이동해 갈 수록 혜자를 다른 이들 사이에서 놓쳐버리게 된다. 여기에서는 자신 들의 일이 아니면 금새 잊어버리고 마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엿볼 수도 있다. 자신의 사욕을 위해 스스로 묵인을 결심한 혜자와 같이, 결국 세상도 뒤섞여 버린 혜자의 모습처럼 잊어버리게 될 것이고 이런 일들은 또 어디선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홀로 춤추는 첫 장면과는 달리 여럿과 섞여서 춤추는 마지막 장면은 완벽한 대구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이런 메시지는 영화의 전반에 드리워져 있는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 <괴물>등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마더>에서도 이런 사회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양념으로서만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 가볍게 볼만한 요소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학생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충격을 받기 보다는 그저 '우리 동네에 살인사건이 일어난게 얼마만이지'하며 '허허' 웃는 모습은 대사처럼 살인사건이 그리 자주 일어나는 곳이 아님에도 얼마나 다른 사람에 일해 무뎌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며, 잘잘못을 가려내기보다는 적당한 합의를 권하는 모양이나 다른 사람에겐 전부가 될 수도 있는 문제를 자신과 주변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마무리하려하는 변호사의 모습, 그리고 결국 살인자가 누구인가 보다는 '누군가가 되면 된다'라는 식의 처리 과정은 씁쓸한 현실을 곱씹어 보게 한다.



(시골 형사들의 디테일을 보여줌에 있어서는 한국영화계에서 아마 봉준호 만한 이는 없을 듯 싶다)

이 영화는 의외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다양한 설들을 낳기 충분한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준이 혜자의 친아들이 맞는 가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고, 진태와 혜자의 묘한 관계도 그렇고, 가장 핵심적으로는 과연 도준이 문아정을 죽인 것인가에 대한 것도 그렇다. 고물상 노인의 말이 100% 사실이라고만 단정 짓기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며, 애초에 커다란 돌이 날라왔던 것으로 보았을 때 여학생인 문하정이 그렇게 무거운 돌을 쉽게 던졌다고 생각하는데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또한 고물상 노인도 역시 문아정과 관계를 했던 이들 중 하나였음을 감안한다면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해 도준을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바로 도준이 어린 시절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엄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치밀하게 이용했다는 점이다. 영화 속 도준의 모습에서는 가끔씩 정상적인 모습이 발견되곤 한다. 특히 도준이 무혐의로 출소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혜자와 식사를 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확연히 드러나는데, 항상 자신만 알았던 도준이 스스로 물을 뜨러가서는 본인 것 외에 혜자의 것도 함께 가져온다. 이는 다양한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며, 침통을 혜자에게 돌려주는 장면 역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 속 도준은 기억의 패턴이 일정치 않아서이지 두 손을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면서 예전 기억을 끄집어 내곤 하는데, 만약 도준이 실제 범인임을 더 확실히 하려면 (그리고 도준을 정말 지체 장애를 겪는 인물로 그렸다면) 혜자가 도준이 범인임을 알게 되는 것과 동시에 교차편집으로 도준이 자신이 죽인 것을 기억하게 되는 장면을 넣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마치 자신이 원하는 것만 의도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영화 전체에 미묘한 점들과 맞물려 충분히 다른 생각을 하게 끔 만들고 있다.

만약 이 영화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누가 범인인가' 하는 것에 관한 집중적 서스펜스 스릴러였다면 이 같은 떡밥들에 대해 미친 듯이 파고들어야 마땅하겠지만, <마더>는 이 것보다는 주인공 '마더'가 겪는, 자신이 믿었던 것들에 대한 배신과 허탈함에 스스로를 견뎌내지 못하는 존재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마쳐도 좋을 듯 하다(하지만 몹시도 궁금한 것 사실이다. 이건 <괴물>에서 박강두가 굳이 골뱅이 통조림을 먹었던 것보다 더 큰 떡밥이 아닐 수 없겠다).




'마더'를 연기한 김혜자씨의 연기는 나무랄데가 없다. 그녀는 두말할 필요없는 베테랑이며 그간 TV속에서 '국민엄마'이미지에 가려 보여주지 못했던 열정을 이 영화를 통해 여지없이 표출해내고 있다. 특히나 새로웠던 것은 '어머니'라는 이미지는 물론이고 '여자'라는 이미지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모습이었는데, 장면장면의 임팩트 측면에서도 그렇고, <마더>는 누가봐도 김혜자의 영화임이 분명하다.  원빈의 경우 사실 조금 걱정한 부분이었는데 캐릭터 자체가 더 단면적이라 그랬던 것도 같다. 캐릭터 자체의 운신폭이 그리 넓지 않았기 때문에 배우로서도 한계가 있었겠지만, 너무 뻔하지 않으면서 크게 어색함이 느껴지지도 않는 괜찮은 연기였다. 진구는 아무래도 <비열한 거리>가 겹쳐보이기도 했었는데, 확실히 이런 남성적인 캐릭터에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은 있지만 너무 굳어져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하긴 두 작품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초감각 커플>이 어색하게 느껴진 걸 보면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나을지도;;).

영화를 딱 본 소감은 마치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 답게 찾아내기 어려운 떡밥보다는 좀 더 섬세하고 명확한 것들을 미리 배치해 두고 관객들이 발견하게 하는 쪽이었는데, <마더>는 마치 박찬욱 감독의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미지로 설명하려는 장면들이 상당히 많았다. 몇몇 앵글이나 장면 같은 경우는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들이라 봉준호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 물론 여기에는 박찬욱 감독과 여러 작품을 함께 해온 미술감독 류성희씨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녀의 손길이 아마도 여러 장면장면에서 박찬욱스러운 스타일을 느끼게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병우씨가 맡은 영화음악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완벽하게 비극적이지만 않고 리듬감이 있는 음악을 배치하면서 묘한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춤'과 '축제'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1. 버스에서의 엔딩 장면은 요 몇 년간 본 엔딩 중에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만을 보면서 속으로 '와, 봉준호 감독이 또 한 걸음 성장했구나'하는 걸 절로 느끼게 되더라구요. 그 음악과 곁들여진 최고의 결과물이란 ㅠㅠ

2. 문방구 오락실 앞에 있던 아이들의 배역 이름이 참 다채롭더군요. 문방구 오락기 중딩, 문방구 오뎅 중딩, 문방구 떡복이 중딩, 문방구 안경 중딩 등. 그 외에도 박수치는 룸아가씨로 표현된 캐릭터 이름도 재미있었구요.

3. 그러고보니 전미선씨는 <살추>에서는 남에게 주사를 놔주시더니, <마더>에서는 침을 맞는 것으로 상황이 역전되었군요.

4. 약사 역할로 나오셨던 이대현씨는 <살추>에서도 국과수 직원 역할로 나왔던 분이라 반갑더군요.

5. 일부 극장에서는 김혜자씨가 들판에서 춤을 추는 첫 장면에서 관객들이 웃었다던데...그 극장에서 안보길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살았습니다.

6. 역시 한 번 더 봐야 할까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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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봉준호 감독 "스포일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http://10.asiae.co.kr/Articles/view.php?tsc=06.02.02&a_id=2009060810434166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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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강풀의 원작인 <26년>은 너무도 인상적이고 감동적으로 보았었기 때문에,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큰 기대를 갖게 되었던 작품이 바로 영화 <29년>이었습니다.

예전에 변영주,김태용,이해영 감독이 시네마천국 MC를 볼 때, 이해영 감독이 차기작으로 <29년>영화화를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게 되었고, 얼마전 주요 캐릭터로 변희봉, 천호진, 류승범 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법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더욱 기대를 하게 되더군요.

최종적으로 세 배우 외에 진구와 한상진, 김아중 씨가 캐스팅 된듯 한데, 한상진 씨는 처음 스크린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고, 김아중 씨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과연 이 무거운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해집니다.

이들 외에도 <님은 먼곳에>의 주진모씨와 기주봉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2009년 개봉을 목표로 이제 캐스팅이 막 확정된 상태이니, 아직도 많이 기다려야 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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