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것 많았던 추노의 마지막


'선덕여왕' 이후 오랜만에 재미있게 끝까지 잘 보았던 '추노'가 드디어 오늘 막을 내렸다. '추노'에 대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 정리하는 것은 너무 방대해질 우려가 있으니, 인상 깊었던 마지막 화에 대해서만 간단히 이야기하고 넘어가보려고 한다(사실 무언가 글로 쏟아내지 않으면 몹시도 답답할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혹시 몰라 스포일러 표시합니다. 당연히 추노 마지막 회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추노'는 구조상 처음부터 누군가가 마지막에 죽을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였다. 단 누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혹은 누가 살아남을지가 관심거리였는데, '추노'는 이렇듯 '누가 죽고 사느냐'에만 몰입하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왜 살아남고'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인상적인 엔딩을 선사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누가 죽네마네'하며 손가락으로 그 경우의 수를 꼽아보았던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첫 번째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 하는 업복이 (공형진). 바로 전회에서 믿었던 그(박기웅)에게 배신 당한 뒤, 이제야 마음을 고백한 초복이를 남겨두고, 초복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궁궐로 향한 업복이의 이야기는,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의미있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보통 같으면 자신들을 배신한 그에게 복수하고 자신은 장렬히 죽음을 당하는 것만으로 업복이의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었을텐데, 업복이의 이야기는 그 자신의 죽음으로 쓰는 메시지보다도 더 큰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극 내내 세상을 바꾸려는 업복이를 (적어도 겉으로는) 못마땅해 하고, 그저 주어진 노비의 삶을 살아가는데에 충실하려 했던(자신의 딸의 고통을 참아내면서까지) 반짝이 아버지에게로의 전파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렇게 어긋난 세상을 그저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있던 평범한 반짝이 아버지에게, 양반노비 구별 없는 세상을 만들려다가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업복이의 삶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꽉 쥔 주먹으로 알 수 있듯이 반짝이 아버지의 삶은 극 마지막의 내레이션을 들려주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추노'는 대부분 대길(장혁)과 송태하(오지호)의 이야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황철웅(이종혁)에게 연민이 들었다. 그리고 황철웅이 사실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어쩌면 '누가 죽을까?'라는 어리석은 질문에서 어렵지 않게 죽음을 예상했었던 황철웅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초반을 제외하고는 인간적인 면모를 거의 지워낸 듯 했던 황철웅에게, 바로 마지막 직전에 다시 한번 어머니를 등장시키며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려 했을 때부터, 무언가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그렇지 않다면 이제 거의 살인귀로 다 몰아갔던 황철웅을 다시 한번 지옥에서 구해낼 이유가 없었다). 대길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대길에게 이렇게까지 자신을 막는 이유를 듣고 나서, 칼을 스스로 내린 순간 이미 황철웅은 이 싸움을 포기 한 듯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들어섰다는걸 스스로 깨닫고 있던 황철웅은, 마지막에와서야 대길과 송태하의 집념을 새삼 느끼고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자인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황철웅은 집으로 돌아가,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불편한 아내에게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이는 극중 내내 터지지 않았던 유일한 황철웅의 감정의 폭발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너무 깊게 잘못 되어 버린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준 황철웅의 마지막 진솔한 눈물은, 대길과 송태하의 눈물에 버금가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대길과 언년이, 송태하의 마지막은 사실 앞선 이들에 비하면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바이고 전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정이 울컥하는건 어쩔 수 없었다(물론 여기에 가장 큰 공은 '대길'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창조해 낸 장혁이라는 배우 덕택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남자와 세상을 바꾸려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운명을 선택해야 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 그렇게 한 세상을 살 다간 이들 이야기의 마지막은 예정되었던 대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사실 다시 생각해봐도 대길의 죽음이 인상 깊은 것은 장혁의 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업복이와 황철웅의 마지막 보다 메시지 측면에서는 대단할 것이 없는 엔딩이었으나, 그 마지막에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장혁의 공이었다. 그리고 애초 '추노꾼 = 현상금 사냥꾼' 이라는 설정으로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을 연상시켰던 '추노'는 엔딩 장면에서는 아예 완벽한 오마주로, 이런 논란 아닌 논란에 대해 깔끔한 마침표를 찍었다. <카우보이 비밥>의 말할 것도 없는 팬인 나로서는, 그 오마주에 소름이 돋을 수 밖에는 없었다.



(아, 이제 이 장면을 볼 때 '대길'이 겹쳐 보일지도 모르겠다 ㅠ)


어쨋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마지막을 (특히 업복이와 황철웅 때문이었다) 선사한 추노. (아, 그리고 초복이가 해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장면은 마치 <매트릭스 3>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라클이 사티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 이제 무슨 재미로 수요일, 목요일을 보낸다니.
이제 정녕 추노가 끝났다는 것이 말이여 당나귀여.

보너스.

광고 이후 나온 정말 '추노'의 마지막 장면.(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pedr.com/10b6i


p.s 1. 내가 정녕 죽은것인지 아닌지 어심을 읽으시게
     2. 나는 전반적으로 맞아 죽지 않았나 싶은데
     3. 형님들, 남아로 태어났으면 블루레이 한번은 출시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4. 이히히히히, 나 천지호야, 나 마지막회 안나왔다고 잊지마, 천지호야~~~~~~~

이제 이런 성대모사 연습한거 다 어디 써먹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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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선덕여왕> 이후, 요즘 KBS에서 방영하는 <추노>를 1회부터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게 본 편인 <선덕여왕>의 경우도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이야기했고 특히 미실없는 덕만이 등장한 이후에는 많이들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나는 미실없는 덕만 스토리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본 편이었다), 한 번도 따로 글을 쓴 적은 없었는데 이번 <추노>는 도저히 짧게라도 한 마디 안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뭐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상태라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분위기로 보았을 때 이대로의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추노>는 개인적으로 (아마도 많은 드라마 팬들이 그러할듯) 국내 TV드라마 가운데 블루레이 출시를 소원하게 되는 작품이 될 듯 하다.




어제 10화를 보고 든 생각은 '와, 진짜 연출, 연기, 로케이션 모두 비교대상을 훨씬 뛰어넘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드라마(월화수목 방영되는)가 벗어나기 어려운 약점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아쉬운 점들을 조금 이야기해보자면, 송태하와 언년이의 문제의 키스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감정선을 고려했을 때 이럴 수도 있겠다는 싶다(난 관대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동안 송태하라는 캐릭터가 보여주었던 충성심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미뤄봤을 때 자신이 말한 것처럼 일각이 급한 시점에서, 그토록 보호해야 하는 마마가 배위에서 굳건히 기둥을 꼭 쥐고서 기다리고 있음에도, 언년이와 시간을 지체한 지점이었다(사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키스씬이 아닌 지체 부분이었다). 한섬이 이를 두고 어찌되었든 또 누군가를 구하러 갔다는 식으로 미화하려고 했지만 (마치 '네오'를 보는 듯), 그간 송태하를 보았던 시청자들로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추노>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주로 언급하는 점들 가운데는 역시 '현실성'을 들 수 있겠는데, 뭐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리얼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허구는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언년이가 송태하의 큰 도를 한 손으로 번쩍번쩍 드는 것이나, 배에 상처를 입은 황철웅이 관군 수십명을 모두 제압한 뒤의 장면이라던지 등은 그 동안 일부 리얼리티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당시 재현 언어와 무기들로) 작품이어서 좀 더 아쉽게 느껴진 감이 없지 않다. 만약 이 작품이 이런 리얼리티를 모두 살렸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나 관심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다큐로 오해하지 말자!) 아, 추가로 막장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출생의 비밀' 건은, 받아들이는 사람들로서는 '출생의 비밀'로 오해할 수 있지만 연출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당시 양반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 더욱 강했다고 생각한다. 즉, 대길과 언년이, 큰놈이 형제이자 남매라는 것도 분명 충격포인트이지만 그것보다는 양반들이 노비들을 어떻게 대하고 당시의 잘못된 제도가 만들어낸 폐해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더 포인트라는 점이다.




여튼 <추노>는 참 흥미로운 작품이다. 일단 연기를 이야기해보자면 주연을 맡은 장혁 같은 경우 본인 최고의 작품을 드디어 만났다고 볼 수 있을텐데, 분명 오버스러움이 더해진 연기이지만 '이대길'이라는 캐릭터와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터라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는다. 오지호의 경우 분명 처음에는 책을 읽는 듯한 대사 톤이 어색하게 느껴졌었는데, 익숙해져서 인지 점점 '송태하' 캐릭터와 겹쳐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내에 역대 최고 민폐 캐릭터로 등극한 '언년이' 역할의 이다해의 경우, 본인의 연기에 대한 내용보다는 역시 캐릭터에 대한 찬반(물론 반이 압도적으로 많지만)이 뜨거운데 뭐 이것저것 다 떠나서 민폐의 수준은 확실히 넘사벽인듯(어느 게시판을 보니 언년이의 민폐를 따로 정리한 고문서가 있던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흐르더라...).

<추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인상적인 조연 캐릭터들과 연기자들이 아닐까 싶다. 그 중 최고는 역시 성동일 일텐데, 그간 코믹한 이미지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에게 공감대와 공포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최고의 열연을 펼치고 있다(사실 천지호가 황철웅에게 '버릇없이' 대들 때는 저래도 되나 싶을 때가 많다 ㅋ). 처음엔 까메오 출연인줄로만 알았던 공형진도 인상적이고 대길 패거리와....여튼 거론하기조차 너무 많은 한명한명 조연들의 연기만으로도 <추노>는 충분히 재미있다. 따지고보면 이렇게 주인공 외에 각각의 캐릭터에게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이 얼마나 있었나 싶기도 하고(화방 아저씨의 울컥함에도 살짝 공감이 되었을 정도니;;;).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로케이션이었다. <추노>는 정말 로케이션의 승리라고 할 만한 장면들이 여럿 등장했는데 특히 어제 10화에서 등장한 제주도 장면들은 장소가 장면을 만들어낸 최고의 순간이었다(이 장면을 보는 순간 블루레이 구입 욕구가 200% 증가했다!). 그리고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레드원 카메라로 촬영이 되었는데, 역대 한국 드라마 가운데 최고의 영상과 화질을 선사하고 있다. 국내 TV방영 환경이 소스의 우월함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블루레이의 출시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앞으로 또 <추노>에 대해 글까지 쓸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엔딩 시점이나 아니면 완전히 막장으로 흐르게 되었을 경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튼 누군가에게 '언니, 저도 추노 열심히 보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으로 짧게 나마 글을 남겨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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