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확실히 날씨나 분위기와 매우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날씨나 분위기에 따라 감정의 폭이 커진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이렇게 움튼 감정을 더 요동치게 하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각각의 날씨마다 음악 듣기 좋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혹은 다른 의미로의 최악)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역시 비가 내리는 날씨다. 비는 여러가지를 제공하는데, 일단 시각적으로 바라봤을 때 비나 내리는 광경은 눈이 내리는 것과는 또 다른 장관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이 광경을 두고 '장관'이란 표현까지 들먹이나 싶지만, 분명 창밖으로 바라보는 비 오는 광경은 흔하다는 이유만 제외한다면 장관이라 할 수 있겠다.

비가 또 좋은 건 역시 빗소리다. 우산과 부딪혀 나는 소리도 복잡한 출근길만 아니라면 귀기울여 볼 만 하고, 카페나 편안한 방 안에서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은, 지구별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호사스러운 일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비는 대부분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대동하는데, 살짝 다운되는 감이 있지만 이럴 때 기분 전환을 위해 유쾌한 음악을 선곡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의 곡들을 자주 듣곤 한다. 그러다보니 비만 오면 듣게 되는 곡들이 어느 새 여러 곡 쌓이게 되었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아니 무슨 비가 내렸는지 처음으로 그 곡들을 조금이나마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덩달아 우울해질 수 있어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나처럼 우울함을 최대한 즐길 수 있는 이들이라면 비오는 날 함께 들어도 좋을 것 같다.

(순서는 아무런 의미없음)

1. Travis - Writing To Reach You



대부분 비와 Travis를 연결시킬 땐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를 떠올리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 곡 '
Writing To Reach You'가 더욱 간절하다. Travis의 곡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비오면 반드시 듣는 대표곡 중 하나.


2. Nell - Good night



넬 (Nell)의 곡은 비오는 날 아무 곡이나 들어도 좋을 정도로 비와 궁합이 잘 맞는다. 김종완의 담백하며 애절한 보컬과 내성적인듯 하지만 극적인 곡의 전개는 비의 우울함과 닮아있다. 정말 비오는 날 아무 앨범이나 꺼내 들어도 넬의 경우는 실패하는 법이없다.


3. Damien Rice - Delicate



넬과 더불어 어느 앨범, 어느 곡을 꺼내 들어도 실패하지 않는 뮤지션이 또 하나 있다면 바로 데미안 라이스 일 것이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전반부와 서서히 고조시키는 중반부, 그리고 마침내 울부짖듯 폭발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데미안 라이스의 감정은 비와 함께 더욱 치닫는다. 수 많은 곡들 가운데 오늘은 'Delicate'를 골랐다.


4. Radiohead - True Love Waits



라디오헤드 역시 비 하면 빠질 수 없는 밴드다. 톰 요크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만 이뤄진 'True Love Waits'은 듣는 것도 좋지만 비오는 날 꼭 한 번 불러보고 싶게 끔 만드는 곡이기도 하다.


5. Portishead - Glory Box



이쯤에서 왜 포티셰드가 안나오나 했던 이들도 아마 있었을 것이다. 한 때 포티셰드에 흠뻑빠져 있었던 때는 정말 '위험했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 같은 것이었다. 그 만큼 이들의 음악은 중독성이 강해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 속을 마음대로 헤집고 다니기도 한다.


6. Aimee Mann - Wise Up



에이미 만의 'Wise Up'을 꼽은 이유는 역시 영화 '매그놀리아'의 영향이 컸다. 물론 영화 속에서 내리던 비가 그냥 비는 아니었지만, 어쨋든 이 곡 역시 비오는 날엔 더욱 간절해 진다. 영화를 봤다면 이 곡을 들으며 한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7. Nujabes - luv



누자베스의 곡은 앞서 선곡했던 곡들과는 조금 분위기는 다르지만 역시 비오는 날이면 꼭 듣게 되는 곡이다. 누자베스의 음악이 슬픔과 따듯함을 모두 포용하고 있는 비트라는 점에서 비오는 날 듣기에 더욱 좋은 곡이라 할 수 있을텐데, 마치 비 속을 유영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살며시 눈을 감으면 더욱 빠질 수 있으니 눈은 감지 않는 것이 안전하겠다 (특히 길을 걸으며 들을 땐 더욱!)


8. Hee Young (희영) - So Sudden



희영은 올해 파스텔뮤직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뮤지션인데, 그 잔상이 아직까지 깊게 남아있을 정도로 인상적인 앨범이었다. 특히 이 곡 'So Sudden'의 중독성은 매우 강해서 한동안 이 곡만 듣고 다니기도 했었을 정도. 비오는 날, 그 촉촉함이 아마 더해질 것이다.


9. Michael Jackson - Smile



비오는 날이라고 MJ의 곡을 일부러 듣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도 물론 좋았지만, 그가 떠난 뒤 더 애틋해진 이 곡 'Smile'. 후반부 아이의 코러스가 인상적인 곡.


10. Cowboy Bebop - Rain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의 수록곡 'Rain'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비의 곡'이다. 정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이 곡이 떠 오를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은 곡인데, 이 곡을 들으면 왠지 우산없이 비를 그대로 온몸으로 맞아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1. Wolf's Rain - Gravity



애니메이션 OST를 꺼낸 김에 한 곡 더. '울프스 레인'은 작품 보다도 어쩌면 음악이 더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그래서 당시 비싼 가격에 일본에서 발매된 사운드트랙 2장을 뒤도 안보고 구매하기도 했었고. 특히 이 곡 'Gravity'의 깊은 슬픔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인데, 비 오는 날 듣게 되면 그 슬픔이 몇 배로 증폭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 vol.3 _ 매그놀리아 (Magnolia)

 
01. One - Aimee Mann
02. Momentum - Aimee Mann  
03. Build That Wall - Aimee Mann
04. Deathly - Aimee Mann
05. Driving Sideways - Aimee Mann
06. You Do - Aimee Mann
07. Nothing Is Good Enough (Instrumental) - Aimee Mann
08. Wise Up - Aimee Mann
09. Save Me - Aimee Mann
10. Goodbye Stranger - Supertramp
11. Logical Song - Supertramp
12. Magnolia - Jon Brion


 
최근 <데어 윌 비 블러드>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1999년 작품
<매그놀리아>의 사운드트랙이다.
개인적으로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감독을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에 한 명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이 작품 <매그놀리아>였는데, 심야영화로 관람하고 어두워진 텅빈 거리를 먹먹하게
걸어왔던 기억이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다.
영화가 주는 삶의 고단함과 구원의 메시지도 가슴 깊숙히 다가왔지만, 이런 메시지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바로 시적이고 서정적인 사운드트랙에 있었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감독인 폴 토마스 앤더슨은 세 번째 작품을 구상하던 중 에이미 만 (Aimee Mann)의
노래를 계속 들으며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그녀의 곡 'Wise Up'을 반복해서 듣고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이 곡의 메시지를 확장하여 영화화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운드트랙이 영화가 완성되고
난 뒤 영화에 맞춰 작업되는 것에 반대로, 이 영화는 감독이 음악에 영감을 얻어 그 메시지를 영화화한
경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부분 이런 경우 그저 노래가 삽입되는 것 이상의 효과를 이끌어 내기 어렵고,
스토리상에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으나, 재주꾼인 폴 토마스 앤더슨은 '깨닫지 않으면, 결국
고통은 멈추지 않을거에요'라는 곡의 메시지를 가지고 탄탄한 플롯을 구성하여, 이 사실을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당연히 곡이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여겨질 만큼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매그놀리아>의 사운드트랙이 이런 점에서 다른 사운드트랙과 다른 점은, 대부분의 사운드트랙이
경음악과 1,2곡의 노래로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여러 뮤지션의 곡을(기존곡이던 신곡이던) 수록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그놀리아>의 사운드트랙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총 12곡 가운데 9곡이나 에이미 만의
곡들로만 수록이 되어있을 정도로, <매그놀리아>의 사운드트랙인 동시에 에이미 만의 솔로 앨범에도
가까운 음반이라 하겠다. 에이미 만은 이미 이 작업 이전에도 2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한 여성 싱어송 라이터였고,
다른 영화에 사운드트랙에도 곡을 준 적이 있는, 포크 뮤지션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 사운드트랙을
듣게 된 이후 에이미 만의 솔로 프로젝트를 모두 구해서 들어보았는데, 아마도 이 사운드트랙을 인상깊게
접한 이들이라면 에이미 만의 솔로 앨범들도 깊게 와닿을 것이다.

이 사운드트랙에는 에이미 만 외에 존 브리언 (Jon Brion)이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는데,
존 브리언은 에이미 만의 앨범을 프로듀서한 것은 물론이고, 이후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의
음악을 맡기도 하였으며, 힙합 아티스트 칸예 웨스트 (Kanye West)의 앨범에도 스트링 세션에 참여하여
역량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사실 이 앨범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존 브리언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는데, 이번 연재를 하면서 찾아보니 여기에도 그의 이름이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들은 곡 베스트 5에 당연히 선정될 'Wise Up'.
개인적으로 힘들거나 어려움을 겪는 순간마다 항상 나를 지탱해주고 다시 일어서게 만들어준 곡이었다.
'Wise Up'만으로도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는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다른 11곡이 너무도 좋은 사운드트랙이다.

그 어느 사운드트랙보다도 듣고 있노라면 영화를 그대로 다시 한 번 그대로 감상하는 듯한
감흥을 느낄 수 있는 <매그놀리아>사운드트랙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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