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The Host)
몇년전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난 뒤 바로 들었던 생각은, 아니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영화가 재밌다 보다도 (물론 재밌지만), 완성도가 정말 높구나 하는 것이였다.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에데가 긴박함을 시종일관 유지시키는 리듬감, 감칠맛 나는 대사,
현실적인 캐릭터와 배경, 봉테일이라고 불릴만큼 엄청난 디테일 등은 봉준호 감독의 다음 작품을 몹시도 기다리게 했다.
아마도 <살인의 추억>이 개봉관에서 내린뒤 모 잡지에 난 인터뷰에서 다음 작품은 한강에 사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화할 것 같다 고 했던 것에서부터, 이 영화 '괴물'에 대한 기대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괴물>은 봉준호 감독의 특징이 매우 잘 나타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공포와 스릴러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특유의 리듬감.
공포영화들의 기존 법칙과는 다르게 <괴물>은 초반에 공포에 대상이 완전히 드러나고
사실상 시작하자마자 사건이 터져 끝날때까지 잠시 숨돌릴틈만 주고 몰아치는 스타일이다.
이런 전개에 적절한 리듬감을 준것은 역시 특유의 유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유머는 상황설정의 아이러니와 대사의 맛으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나리오를 직접 작업하기도한 봉감독의 대사와 이 멋진 대사를 더 멋지게 살려내는
배우들의 조화는 그야말로 탁월한 수준이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조금 느낄 수 있었지만, <괴물>에서는 권력(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특히 미국(미군)의 권력)에 대한 풍자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감독의 의도로만 따진다면 극중 가족들이 괴물에게 갖는 분노와 맘먹을 정도로
감독이 권력에 대해 갖는 분노가 느껴질 정도로 노골적인 풍자의 설정들이 가득하다.
국민들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미군이 관련된 상황에서는 아무런 조사, 결정권도
없다는것이나, 주인공 박강두의 인권은 무시한채 사건을 은폐시기고 희생양을 삼아
사건을 매듭지어버리려는 시도는 물론, 다 재쳐두고라도 괴물의 탄생 자체가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린것에서 원인했다는 기본 설정만 하더라도
상당히 공격적인 바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에 풍자와는 조금 별개지만, 합동분향소에서
그 와중에도 차빼달라고 소리쳐 사람을 찾는 경비원에게서,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풍자를 엿볼 수 있었다)
디테일에 있어서는 한국영화 계에서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봉테일, 봉준호 감독.
<괴물>의 표면적인 주인공인 '괴물'의 디테일을 완성시키기 위해(한국영화라는 태초의
한계에 안주하지 않고, 쉽게 말해 어설프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웨타워크숍에 괴물 디자인을 맡겼고, 미국의 오퍼니지 스튜디오에 전체적인 CG를 맡겨
스크린에 괴물이 단지 영화속에 괴물로만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디테일을 완성하였다.
특히 다리 아래를 체조하듯 이동하는 괴물의 멋진 움직임은
약간 과장된 몸짓임에도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았으며, 특히 인물들과 괴물이 겹치는 부분에서
정확히 괴물과 인물들간에 접촉이 있는 장면에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말은 CG의 수준이 대단하다는 것만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이제 우리나라의 배우들도 가상의 캐릭터와 연기하는 것에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했던것보다 괴물의 실체가 상당히 많은 시간 노출된데에는, 괴물의 퀄리티에
상당한 자신감이 없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였을터. 괴물의 디테일은 지금까지의 한국영화는
물론이고 헐리웃 영화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이라는 공포스런 존재로 시선을 끌긴 했지만, 사실상 영화 <괴물>은 가족영화이다.
가족들간의 유대감이 부족하고 구성원들 개개인들도 특별히 유별날 것이 없는 한 가족이,
딸이 괴물에게 잡혀가면서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되고(합동 장례식 장에서 박희봉 왈 '현서야,
너 때문에 우리가 다 한자리에 모였다'라고 했을 정도로), 이후 또 한번의 사건을 겪으면서
그동안 서로를 믿지 못했던 가족이 서로를 조금 더 신뢰하게 된다. 특히 아버지와 딸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주목하며 순간순간 감동마저 불러일으킨다.
혹자는 결국 현서가 죽음에 이르고 현서와 함께 있던 남자아이는 살아나며, 별볼일 없던
박강두가 괴물과 1:1로 맞설정도로 초인적인 캐릭터로 변한 것에 대해 오바라고 하기도 하지만,
현서가 아닌 현서가 구하려던 남자아이가 살아남은 것은 어쩌면 구하려던 현서가 살아남은것
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영화내내 함께 느꼈던 가족의 분노가
그들을 용사로 만들었던것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과장된 것은 아니였다.
(개인적으로는 박강두든지 아니면 박남일이라도 마지막 장면에 괴물에 면상에 대고 욕지껄이라도
한번 해주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줬으면 어땠을까 기대하기도 했었다.
마치 <에일리언 2>에서 리플리가 에일리언에게 덤빌테면 덤벼봐라고 멋지게 말했던것처럼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봉감독의 디테일만큼이나 섬세했다. 송강호는 약간은 모자란 박강두 역할을 맡아
딸을 잃고 모든 것을 괴물을 찾는데 쏟다가 권력에 의해 고통받기까지 하는 캐릭터를
너무나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특히 병원에 갖혀있을때 미국인 의사가 노 바이러스 하는 것을
알아듣고 '바이러스 없구나'할때의 그 특유의 억양은 송강호만이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대사였다고 생각된다. 변희봉은 <살인의 추억>에서는 이렇다할 포스를 펼치지 못했던것과는 달리
<괴물>에서는 러닝타임내내 가족을 리드하는 리더쉽을 보여준다. 변희봉 역시 대사를 치는데
있어서는 연기경력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경지에 오른 수준을 보여준다.
박해일이 맡은 박남일은 후반으로 갈 수록 빛을 발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운동권 시절에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후반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배두나가 맡은 박남주 역할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비중이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괴물을 똑바로 쳐다보고 활을 날린 뒤
쳐다보지 않고 돌아서는 장면에서의 포스는, 국내 여배우에게 저런 아우라를 풍길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현서 역을 맡은 아역 배우 고아성은 상당히
비중있는 역할로서, 특히 괴물과 대치하는 대부분의 긴장되는 상황에 등장하면서 단순 아역이
아니라 당당하 주, 조연 배우급의 활약을 펼쳤다 (극중 캐릭터들의 이름을 잘 보면 알겠지만
배두나가 맡은 '박남주'를 제외하면 모두 실제 배우와 캐릭터간의 이름이 한글자 이상씩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살인의 추억>에 출연했던 김뢰하, 박노식 등도 잠깐씩 만나볼 수 있으며,
<남극일기>에서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 윤제문도 매우 중요한 결정적 캐릭터를 맡았다.
그리고 이미 여러번 화제가 되었던것처럼 오달수는 괴물의 목소리 더빙을 맡기도 했다.
<괴물>은 여러가지 면에서 최고라 불릴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극장을 나오면서 바로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한동안 멍해질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이미 2번째 얘매는 마친 상태. 최소 2번은 더 볼듯하다. 벌써부터 DVD가 기다려지는건
봉준호 감독작품이라 아무래도 더한것 같다.
p.s / 1. 영화 초반 뉴스 장면에서 앵커를 맡은 최일구 앵커는 너무 유명해서 제쳐두고 라도,
현장에 기자로 나왔던 김원장 기자까지 실제 기자를 쓴 것을 눈치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듯. 김원장 기자는 KBS기자로서 뉴스나 라디오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던지라
제법 반가웠는데 MBC앵커에 KBS기자라니 이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2. 오프닝 크래딧에 음악 이병우 라고 나왔을때, 사실 조금 어울리지 않을 듯해 우려섞인
걱정을 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런 영화음악이 나왔다.
이병우는 이제 기타리스트 보다는 먼저 영화음악가가 더 우선적으로 호명되어야
할 것 같다.
3. 이제 원효대교 밑을 비롯해 한강둔치는 다리 아래들은 관광명소가 될듯.
4. 극장을 나올땐 더 많은 p.s가 생각났었는데 지금은 졸려서 그런지 생각이 잘...
몇번 더 관람뒤 제 정리해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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