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2006)
 
내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원작을 읽은지도 참 오래되었다.
꿈 많던 문학소년으로 살던 중학생 시절.
학교 도서실에서 우연히 눈에 띤 <좀머씨 이야기>를 읽고 난 뒤부터
(독서하는 장면은 아마도 '러브레터' 중 창가에 걸터 앉아 책을 읽는
와타나베 히로코를 연상하면 될듯 --;)
그의 완전한 팬이되어 좀머씨 외에 그의 작품인 <향수>와 <콘트라베이스>를
바로 읽어보게 되었다.
 
원작의 영화화에 대한 오랜 구애 끝에 나온 작품이라 그런지,
원작의 내용이 거의 생각나지 않아 새롭게 보기도 한 작품 --;



영화 속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가 벌이는 연쇄살인은
사실 그야말로 연쇄살인으로 범죄일 뿐, 용서받을 수가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같은 뻔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관객들로 하여금 그루누이의 행동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측은한 마음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든다.
 
그루누이 역할을 맡은 벤 위쇼의 선한 눈빛은
그가 계속 살인을 저지름에도 무언가 측은한 마음을 들게 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그리고 원작 소설이 갖는 가장 큰 흥미로운 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결국에는 모든 것을 이루고, 스스로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마지막을 맞는 엔딩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예전 비디오가게에서 일하던 시절, <롤라 런>은 당시로서 제법 충격적인 기법의 영화였다.
빠른 카메라 편집과 시간 편집, 그리고 인상적인 영상은,
이제와 영화의 내용은 다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그 포스터와 여자 주인공, 그리고 이미지만은
깊게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롤라 런>을 만든 톰 튀크베어 감독은 이 영화 <향수>에서도 특유의 인상적인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마도 워낙에 유명한 원작 소설을 '드디어' 영화화 하는 것이라
상당한 부담이 있었을텐데, 결과적으로 이 정도면 원작에도 충실하고 영화로서의 장점도
적절히 수용한 결과물이라 하겠다.
 
극을 이끌어가고 있는 벤 위쇼는 물론, 더스틴 호프만이나 알란 릭맨 같은 베테랑 연기자들이
서포트 해주는 연기자들의 열연도 돋보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영화화되면서
갖게 되는 부족함을 채워준 것은, 바로 클래식의 영화음악이었다.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이 함께한 영화음악은
그 음악만으로도 인상적이지만, 극의 미묘한 감정과 긴장감을 이어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향수를 다 보고나서 가장 인상적이고 지워지지 않는 것은
대규모 군중이 운집한 사형장 장면이다.
군중들이 '천사다'라고 외칠 때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건, 나도 영화 속 사람들처럼
그 치명적인 향수의 향을 마치 맡은 것처럼, 영화 속 그루누이가 정말 천사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후에 등장하는 올누드의 군중 씬보다도 바로 앞 선 이 장면이 더 충격적이고
깊은 인상을 주게 만들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이 장면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장면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올누드의 대규모 군중씬은 '올누드'라서 충격적이었다기보다는,
'대규모'라서 충격적이었다.
 
하도 수불리기 CG에 익숙해진 요즘, CG가 아니라 여러명의 엑스트라들이 참여해
마치 하나의 퍼포먼스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영화의 흐름에 젖어있다보니 전혀 선정적이지 않았다.



클라이맥스 부분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라스트 씬.
나레이션에서도 나오듯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향수를 갖고 있으면서도
본인이 이미 이루고자 했던 바를 다 이루웠음으로,
스스로 마지막을 선택하는 이 장면은, 감각적인 영상과 더불어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스토리와 영상, 음악이 모두 훌륭한 종합예술로서 손색이 없었던 작품.
다시금 소설책을 꺼내 읽어보야야 겠다.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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