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인사이드 (The Sea Inside, Mar Adentro, 2004)
 
사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들은 제법 봐 왔었지만
이 영화 '씨 인사이드'에 대한 소식은 접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지난 주말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를 소개해주는데
딱 첫 번째 컷과 대사를 듣고 '아 이영화는 꼭 극장에 가서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TV를 꺼버렸다.
 
이 영화는 2004년 스페인에서 상당히 논란과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다.
안락사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영화라 그랬었는데,
영화 역시 어느 한 편을 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더 논란이 계속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이 영화는 논란을 야기시키는 영화가 아니라 그냥 녹아들면서
논란보다는 좀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라고 해야할 것이다.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채 30년을 병상에서 누워서 지낸
라몬 샴페드로는, 이 상태로는 자신이 더 이상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 없다는
스스로의 판단 아래 자살을 결심하지만, 전신마비인 현실 때문에 스스로 자살할 수도 없는 상황.
그래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법으로 자살을 돕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법정까지가는 일들을 겪게 된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영화는,
전신마비로 30년을 살아온 한 사람의 현실에 대한 매우 솔직한 접근으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는 그의 결심에 결코 쉽게 반대할 수 만은 없게 만든다.
 
하지만 반대로 그에게서 삶의 의미를 얻고,
그가 병상에 누워서도 하루하루 새로움과 기쁨을 얻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그의 죽음으로 인해 겪어야 할 슬픔이나
자책감 등 또한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과연 안락사라는 문제가 본인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쉽게 승인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특히 라몬의 아버지가 가장 슬픈건 자신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걸 이해해야만
하는 현실이라고 말하는 장면과, 다혈질로만 여겨졌던 라몬의 형이 내 집에서는 결코
동생이 죽는 걸 볼 수는 없다며 아이처럼 울면서 눈물을 훔치던 장면에서는 이런 느낌을 더 갖게 된다)




영화 속에서 라몬이 힘들고 고통을 겪을 때 마다 그가 처음 사고를 겪었던
바닷 속 순간으로 돌아가곤 한다.
이러한 편집은 라몬이 인간으로 스스로 존엄성을 갖고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거기서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았아간 그 바다를,
역시 가장 그리워하며 병상에서 상상 속으로 항상 그리기도 한다.
 
영화는 안락사에 관한 두 가지 의견을 비교적 대등히 다루고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라몬의 자유로의 선택을 좀 더 지지하고 있는 편이다.
 
사실상 자살할 계획을 모두 마무리하고 집을 떠나는 차속에
풍경들을 지날 때, 행복하게 미소짓는 라몬의 모습이나 희망적인 배경음악,
그리고 슬플 것만 같았던 엔딩 크래딧이 펼쳐진 바다의 이미지와 더불어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는 것.
 
오히려 라몬이 자유를 찾아 간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어쩌면 헤피 엔딩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씨 인사이드'는 앞서 말한 것 처럼 팽팽하게 맞서는 두 의견을 동등히 다루면서
각각의 입장에서 모두 공감하며 눈물 흘릴 만한 찡한 순간을 담고 있다.
 
자신의 의지로 희망에 닿기 위해 스스로는 1cm도 움직일 수 없는 라몬의 입장에 눈물흘리고,
그런 라몬의 의지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그를 어쩔 수 없이 보내야만하는 가족들에
입장에 공감하며 눈물 흘리게 된다.
 
안락사에 관련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몹시도 논란만 야기하는 텍스트가 되거나, 완전히 신파로 흘러가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으나
감독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놀라운 연출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화법으로 양 쪽을 모두 이해시킬 수 있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미 여러 영화제의 수상으로 그 연기력을 인정받은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는
아메나바르의 연출력만큼이나 놀라운 수준이며,
마치 여러번 봤던 것 같은 인상이라 당연히 그런줄 알았었는데,
알고보니 필모그래피에 이 영화밖에는 없어서 사뭇 놀랐던 벨렌 루에다의 연기는 물론,
<귀향>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로라 두에나스의 연기도 훌륭했다.
 
얼마전에 봤던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과 더불어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런 직접 경험에 가까운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던 영화였다.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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