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판타지아 (A Midsummer's Fantasia, 2014)

이 우주 어디가 존재 할 너에게



그 제목과 (제목이 너무 좋다) 아련한 수채화 풍의 포스터 이미지들 만으로도 몹시 보고 싶었던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그저 좋기만 한 작품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가득 채워진 세상 (그리고 영화)에서 최소한의 것들 만을 남기고 비우는 것 만으로도 최근은 치유 받는 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최소한의 것들 만으로 여백의 여유와 긴 여운으로 좋은 느낌의 가득 참을 선사하는 동시에, 형식이나 디테일 측면에서도 영화적 흥미를 이끌어 내는 흔치 않은 작품이었다. 어쩌면 그저 쉬고자 했던 입장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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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판타지아'는 크게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눠져 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는 한국에서 온 영화 감독 태훈이 일본의 소도시인 고조시를 방문해 이 곳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이틀 남짓의 여정이 담겨 있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역시 동일한 고조시를 배경으로 한국에서 여행 온 혜정이 우연히 만나게 된 청년 유스케와의 짧은 여정을 담고 있다. 일단 이 두 개의 에피소드가 서로 작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운데, 여러 가지 측면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같은 작품이 연상 되기도 하는데, 단순하게 보면 두 에피소드의 관계를 1편에서 조사를 마친 영화 감독 태훈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서 두 번째 에피소드를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한 편으론 고조시라는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평행우주 저 편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첫 번째 감상 방식을 단순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한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태훈이 보고 듣게 된 사람과 사실, 풍경 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 들여 졌는 지를 두 번째 에피소드의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여러가지의 접촉들 가운데 무엇이 더 인상적이었고, 어떤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느껴 졌는지가 작품을 통해 표현 된다는 점에서, 이 방식의 접근 방법도 생각보다는 단순하지 않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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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접근 방식보다는 오히려 두 번째 평행 우주의 접근 방식으로 이 영화가 더 받아 들여 졌는데, 얼핏 들으면 그냥 두 가지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불과(?)한 것에 과한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마치 '족구왕'을 진짜 SF영화로 느꼈던 것처럼), 이 영화에는 이러한 접근 법을 수긍하게 할 만한 묘한 분위기 들이 여럿 존재하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마지막 태훈이 오래 된 학교 건물에서, 동네 어른에게 전해 들었던 인물의 환영을 본다 거나 (보는 꿈을 꾼다 거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혜정과 유스케가 걷다가 만나게 된 벚꽃 우물의 전설을 한 참이나 들려 주는 것도 그렇고, 이 영화에는 마치 '판타지아'라는 제목처럼 지극히 현실적이고 소박한 단편적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환상적이고 우주 적인 감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것 때문 만은 아니지만, 두 명의 배우가 각 에피소드에서 서로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형식도 이러한 묘한 분위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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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가, 어쩌면 전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었던 혜정과 유스케의 관계와 감정 들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졌다. '더 같이 있고 싶어요'라는 말이 그 어떤 전쟁 같은 사랑을 하는 연인들 보다 도 더 절실 하게 느껴졌던 건 비단 유스케 역할을 맡은 배우 이와세 료의 그 눈빛 때문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차원적인 시간의 계산으로는 비록 이틀이 조금 안되는 시간을 함께 했을 뿐이지만, 영화는 마치 이 둘을 오랜 시간, 다른 차원으로 부터 이어진 애틋한 관계라고 느껴질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영화 속에 등장한 혜정과 유스케의 관계와 그들이 서로 느끼게 되는 감정이 보통 같았으면, 마치 우리가 헐리웃 액션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남녀 주인공이 모든 것을 재쳐 두고 키스할 때 그 어떤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생각되었을 텐데, 어쩌면 비유로 든 헐리웃 영화 속 남녀 주인공 들 보다도 표면적 유대 관계가 없었음에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것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이 바로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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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두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제목이 참 좋다. 내용을 포장하고자 한 제목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더도 덜도 없이 표현해낸 제목. 그것이 '판타지아'라는 점이 놀라울 뿐. 



1. 영화를 봤던 지난 일요일 낮 시간은 정말 몹시 더웠었는데, 이 영화를 보기엔 더 없이 적절한 날씨가 아니었나 싶네요.

2. 영화 속 실제 장소가 존재하는 경우, 그 장소에 꼭 한 번 가보려고 하는 편인데 고조시도 가야 하나요. 다른 경우와 달리, 이 작품은 영화 홍보 자체가 지도까지 나눠주면서 가보기를 부추기고 있어서 더 고민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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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수사 (The Classified File, 2015)

그래도 소신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극비수사'를 보기 전 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었다 (극비도 아니었는데...). 곽경택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뒤늦게 알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 조차 몰랐다. 그저 김윤석과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출연만 알고 있었을 뿐인데, 사실 최근 김윤석의 작품들을 보면 비슷한 이미지를 계속 이어가며 특별함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에, 이 영화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특히 이 포스터 이미지만 보면 또 다른 코미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런데 결과는 근래 본 영화 가운데, 특히 기대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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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의 '극비수사'는 한 편으론 순진하리 만큼 인간적인 작품이다. 아마도 이 작품을 선택하는 많은 관객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유괴 사건'이라는 점에서 스릴러 적인 요소를 기대하는 것일 텐데, 이 유괴 사건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다소 심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직접적인 대사로 여러 번 등장하지만, 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는 유괴 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유괴 된 아이가 무사히 살아 부모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차이는 영화 자체의 성격을 규정 짓는 가장 큰 기준인데, 사건을 풀어가는 두 주인공 공길용 (김윤석)과 김중산 (유해진)은 물론, 유괴 된 아이의 가족과 사건을 맡은 경찰 권력 모두 이 영화 속에서는 이 기준 안에서 묘사되고 있다. 즉, 영화의 이러한 기준과 정확히 부합하는 공길용과 김중산을 중심으로, 이 기준에 반대되는 경찰 권력과 시대 배경이 등장하고, 아이의 가족 묘사 역시 다른 부잣집 아이 유괴 사건 속에 등장하는 부모들과는 차별 되게 그려진다. 다시 말해 자연스럽고, 과장 됨이 없다. 그런 측면이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들 입장에서는 영화의 긴장감이나 몰입도를 떨어트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극비수사'는 그 보다 더 중요한 의무 같은 것을 수행하려는 영화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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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수사'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극 중 도사로 등장하는 김중산이 유괴범에게 전화 올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순간이나 공길용이 용의자를 근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순간이 아니라, 이 수사가 마무리 된 다음 부터다.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서 직접 본 이 사건 해결의 전말과 이 두 명의 행동이, 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부정 되는 순간, 비로소 영화가 왜 이 두 인물을 현재로 끌어 왔는 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영웅담인데, 기존 영웅담과 다른 점이라면 숨겨진 영웅은 맞지만 보통의 숨겨진 영웅담도 영화 속에서는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남겨지도록 둔다. 이것은 어쩌면 영화가 직접 숨겨진 영웅임을 이제라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그들에 대한 진심의 예의가 담겨 있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영웅이 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백 번 옳다 하더라도 제 3자가 이를 자신의 방식대로 노출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화 자체가 그러한 부담을 갖고 있는 작업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 감독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갖췄다는 진정성은 충분히 엿볼 수 있었던 방식이라는 점에서 '극비수사'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에필로그로서 존재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 시퀀스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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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그래서 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참기 힘들 정도로 울컥이게 했다. 스스로 세상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으면 그걸로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할 말을 집어 삼키는 걸 보았을 땐, 난 뭐가 그리 억울한 일들을 살면서 겪어 왔었는지, 공감과 동시에 미안하고 애잔한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똑같이 삼킬 수가 없었다.


이 영화가 단지 유괴 사건 자체에 집중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또 다른 곳에서 등장한다. 1978년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과 어쩌면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재를 떠올려 봤을 때, 이 영화는 과거 소신을 담고 행동했던 어떤 이의 영화가 아닌 소신을 지키며 살기 쉽지 않은 현재의 영화가 된다. 그 소신이 용기와 존경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것으로 비춰지기 쉬운 요즈음. 그래도 소신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좋은 영화였다.



1. 실화라는 걸 영화 시작할 때야 알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소름이. 실화가 더 믿기 힘들 정도로 영화 같은. 두 분의 우정과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2. 개인적으로 유해진씨가 출연한 영화 중에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이 역할을 다른 마스크의 배우가 했다면 아마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설득력이 아주 많이 떨어졌을 거에요.


3. 정말 곽경택 감독이 달리 보입니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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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매거진에 대한 몹쓸 꿈


글을 좀 쓴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긴 글을 읽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일종의 매거진 말이다. 웹진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오프라인에서 만져볼 수 있는 매거진 형태일 수도 있고, 더 포괄하는 개념으로는 책자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쨋든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나 장르의 글들을 한 곳에 모아 소개하는 정기적인 잡지를 직접 만들어 보고 픈 꿈. 나도 어쩌다 보니 이래저래 돈을 받고 글을 쓴지 10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렇다 보니 인생의 고비를 겪을 때 마다, 아니 그냥 문득 문득 내가 한 번 편집장이 되어 하나의 콘텐츠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곤 했다.


하지만 이 글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난 이 꿈이 아주 몹쓸 꿈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르던 어린 20대 시절에 저질러 버렸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직접적인 관련 업계는 아니지만 주변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제법 존재했다보니, 나와 같은 생각으로 스스로 잡지를 만들 거나, 웹진을 만들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를 엿볼 수 있었는데, 결과는 대부분 그리 좋지 않았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곳들도 처음 꿈꿨던 것에 비해서는 실망스러운 반응을 얻거나,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곤 했다.


한 번의 시대가 가고, 다시 콘텐츠가 집중되는 시대가 왔지만 그래도 이 매거진에 대한 꿈은 그리 희망적이진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콘텐츠의 대한 소비 수요가 많아졌지만, 내가 하고 싶은 영화, 음악, 서브 컬쳐 등에 관한 이야기나 이를 모바일에 최적화 된 카드 형 콘텐츠가 아닌 '글'을 읽는 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비교적 긴 글 위주로 구성된 매체는 여전히 시장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아무래도 최근의 트랜드는 어떡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더 축약하고 시각적 이미지 혹은 동영상으로 단 시간에 표현해 내는 가가 중요 포인트이기 때문에, 이 트랜드를 역 주행하는 긴 호흡의 매체는 시장에서 선택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이 몹쓸 꿈을 변호하자면, 어차피 트랜드와 큰 시장을 노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수가 대중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는 아니겠지만, 마니아 혹은 오타쿠라고 불리기도 하는 더 깊이 있는 장르의 이해와 호기심이 있는 이들이 만족하고 흥미로워 할 만한 작은 규모의, 하지만 지속적으로 생존 가능한 글과 매체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또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 보니, 작지만 각자가 관심 있는 분야의 매체나 잡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이들이 제법 적지 않다. 그들은 모두들 지속 가능한 꿈을 꿀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 꿈을 계속 꿀 수 있을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쥬라기 월드 (Jurassic World, 2015)

쥬라기 공원으로부터의 시작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 1993)'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흥분과 떨림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만한 공룡이라는 소재를 스크린에서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구현하면서 그 공포와 떨림을 담아낸 '쥬라기 공원'은 꿈과 가족을 이야기하는 스필버그의 영화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쥬라기 공원'의 새로운 시리즈인 '쥬라기 월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싶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시리즈의 첫 편이자 사실상의 제대로 된 유일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쥬라기 공원' 1편에 적자임을 강하게 어필하고, 또 기대고 있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같은 방식, 그러니까 애초부터 '쥬라기 공원'은 넘사벽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만든 방식은 '쥬라기 월드'를 좀 더 심플하면서 흥미롭게 만든 선택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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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는 태생부터 '쥬라기 공원'과 비교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대상이 같은 방식으로는 쉽게 넘어서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우린 1편의 아들이야. 아버지는 결코 이길 수가 없지'라고 말하는 듯한 영화의 방식은 여름 블록버스터라는 볼거리 측면에만 좀 더 집중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데에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보니 장르적 클리셰로만 이루어진 영화라는 혹평도 듣게 되었는데, 나는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에 기대하는 바가, 더 큰 스크린과 사운드로 2시간 남짓의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 여기기 때문에, 그것이 설령 클리셰로만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충분한 볼거리와 재미를 준다면 상관이 없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쥬라기 월드'는 관객들이 처음 '쥬라기 월드'를 보았을 때의 두근거림과 호기심을 한 번 더 자극하려 애쓴다. 이 부분이 재밌는데, 보통 이미 전편을 본 관객들에게 더 큰 재미나 더 강력한 볼거리를 선사하려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인데, '쥬라기 월드'는 '우리가 더 나아졌어!'라기 보다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1편을 볼 때 느꼈던 그 감정, 그 순간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데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자면 처음 공원 문을 들어설 때의 긴장감이라던가, 처음 공룡이라는 존재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설레임, 그리고 그 설레임이 공포로 변했을 때의 모험과 서스펜스를 느끼게 해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느끼게 해준다기 보단 오히려 기억하게 만든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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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철학 뿐 아니라 직접적인 스토리에 있어서도 1편에 상당히 기대고 있는 구성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텐데, 거의 트라우마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이전 쥬라기 공원이 왜 폐쇄되기에 이르렀는지, 그럼에도 왜 반복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또 일어 나는 지에 대한 묘사와 우려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그 방식 조차 클리셰에 가깝기는 하지만, 영화가 끊임 없이 쥬라기 공원의 사례에 대한 트라우마를 다양한 루트로 말하고 있는 점은, 깊지는 않지만 볼거리 위주의 영화에서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요소였다.


볼거리 측면에서는 정말 새로운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긴장감은 오히려 티렉스로 집중 되었던 전작보다 못하나 것이 사실이지만, 변종 공룡과 랩터 그리고 다시 티렉스까지 연결되는 구조는 러닝타임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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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그런 것처럼 연출을 맡은 콜린 트레보로우 역시 '내가 스필버그의 적자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은 연출과 내용들이 가득했다. 특히 이혼 얘기가 나오고 있는 부모와 이로 인해 불안을 겪고 있는 주인공과 형 (형제). 이들이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이모와 이모의 급남친 (크리스 프랫)의 구도는 스필버그가 자주 이야기하는 가족의 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콜린 트레보로우의 결말은 스필버그와 정확히 같지는 않다).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과 비교하자면 여러 면에서 부족한 작품이지만, 시리즈의 4편 혹은 새로운 1편으로 보자면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1. 극 중 크리스 프랫이 랩터들 길들이는 걸 보니, 속속편 정도엔 드디어 '쥬라기 월드컵'이 가능할지도?! ㅋ

2. 아, 속편이 예정되었다고 합니다.

3. 기존 스필버그 영화 속 캐릭터들과 또 다른 점이라면, 형제 중 형이 생각보다 아주 금방 정신 차린다는 것. 관객이 짜증 날 정도로 더 막 나가야 하는데 말이죠 ㅋ (동생은 이미 E.T에 엘리엇처럼 반 어른)

4. 몇 년 전인가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티라노 사우르스의 모습은 잘 못 된 것이었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실제론 털이 난 모습) 기대도 안했지만 역시 새롭게 발견 된 과학적 이론이 적용되진 않았더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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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앨리스 (Still Alice, 2014)

내가 되어 돌아보다



줄리앤 무어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 앨리스를 연기하고, 워시 웨스트모어랜드와 리처드 글랫저 부부가 연출한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2014)'는, 이전에 알츠하이머병이나 혹은 시한부 인생을 다룬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아니 오히려 남들 부럽지 않은 괜찮은 삶을 살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리게 되면서 겪는 본인과 그 주변(가족)의 이야기는, '스틸 앨리스'도 이전에 보아왔던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과정은 결코 유쾌하지 않고,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대한 질문 만이 남게 된다. 줄리앤 무어의 엄청난 팬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이유에서 '스틸 앨리스'는 딱 예상되고 기대되는 포인트가 분명한 영화였다. 분명 눈물을 흘릴 것이고, 줄리앤 무어는 역시나 완벽한 연기를 펼칠 것이라는 건 예상이라기 보단 확실한 기대였다. 결론은 같았으나 '스틸 앨리스'가 그 결론에 이르게 하는 방식은 기존 유사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과는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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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려 고통스러워 하는 주인공을 다룬 영화들은 대부분, 그 당사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자 하는 방식이거나 혹은 그 주변 사람들의 안쓰럽고 미안한 심정이 짙게 깔린 경우가 많은데, '스틸 앨리스'는 그것 모두와 조금은 달랐다. 뭐랄까. 얼핏보면 당사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쓰려고 한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좀 더 들어가 보면 당사자의 입장에 서되, 마치 앨리스 본인이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느낌은 이 이야기를 그리는 과정에서의 미묘한 순간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앨리스를 묘사함에 있어서 영화는 앨리스가 견디기 힘든 절정의 순간에 도달 했음에도 그 감정을 극적으로만 묘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마치 '그 땐 내가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가족들은 얼마나 더 힘들었겠어.. 이렇게 행동했으면 더 좋았을걸..'하는 심정에서 나온 표현들이 여럿 있었다는 얘기다. 이걸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는 참으로 어려운데, 줄리앤 무어가 연기한 앨리스의 눈빛과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끊임없이 절제하고 인내하려는 것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단순히 자신으로 인해 힘들어 할 가족들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무언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이랬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와 생각하는 마음이 드는, 정말 미묘한 순간과 연출을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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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연기와 연출이 정말로 놀라운 건,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지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꼭 알츠하이머가 아니여도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거나 혹은 사실상 치료 불가 한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주변에게 느끼게 되는 서운함은, 그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고 서는 결코 가늠하기 어려운 감정인데, 놀랍게도 '스틸 앨리스'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어 그 장면에서 특히 감정을 추스리기가 어려웠다. 앨리스의 이야기가 주는 위로는 어쩌면 현재 병과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더 큰 위로일 것이다. 그저 영화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병을 이겨내는 이야기 보다는 오히려 나와 같은 외로운 싸움을 하는 이들이 또 있구나 하는 것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작은 위로다. '스틸 앨리스'가 대단한 건 영화 스스로도 이것이 작은 위로가 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강요하거나 극적으로 묘사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되어 나의 이야기를 한 번 돌아볼 뿐이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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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영화를 공동 연출한 리차드 글렛저가 올해 초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더군요. 투병 중에 이 작품을 연출한 것으로 나오는데, 제가 본문에 썼던 그 놀라운 연출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2. 줄리앤 무어는 물론, 알렉 볼드윈과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비롯한 가족들의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3. 플레인 (http://plainarchive.com/)에서 블루레이도 국내 출시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잘 담아 주시길 기대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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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 _ 10주년 기념 특별상영회 

10년 전과는 달랐던 영화, 아니 관객



지난 5월 30일 토요일.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류승완 감독의 2005년 작 '주먹이 운다' 10주년 기념 특별상영회가 있었다. 평소 류승완 감독님과의 인연도 있고, 더군다나 감독님과 더불어 주연을 맡았던 두 배우인 최민식, 류승범 님이 참여하는 GV도 예정되었던터라 이 날의 상영과 GV는 몹시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역시 가장 기대되었던 것은 실제로 최민식과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그 못지 않게 궁금했던 것은 10년 전 20대 때 극장에서 보았던 '주먹이 운다'와 지금 30대가 되어 다시 보게 되는 '주먹이 운다'는 어떤 영화일까 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궁금함과 설레임을 담고 비가 조금씩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던 토요일, 상암동으로 향했다.





당일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된 '주먹이 운다'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야겠다. 감독님이 GV때 언급했던 내용과 마찬가지로, 당시 내게도 이 영화는 너무 신파스러워 아쉽다는 느낌으로 남은 영화였다 (그래서 아마 DVD도 구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요 근래야 그런 일이 없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되돌아 보니 예전에 나는 단지 '신파'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가 별로다 아니다를 어느 정도 평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평가 기준을 버린 지는 오래되었다. 최근 신파스러웠던 영화 가운데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의 경우 읽는 이들이 '신파라서 아쉽다'로 오해하지 않도록 반드시 추가 설명을 덧붙일 정도로, 단순히 신파라서 재미없거나 별로라는 평가는 이제 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신파'라는 것은 일종의 스타일로, 굳이 따지자면 흔히 지루하거나 재미없음, 관객을 향한 감정의 강요 등의 실수를 할 확률이 다른 스타일에 비해 높은 경우라 하겠는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신파여도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면서 강요 받는다는 느낌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10년 만에 '주먹이 운다'를 다시 보게 되며 가장 궁금했던 건 아직도 내게 이 영화가 그냥 신파여서 아쉽기만한 작품일까 하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나 내가 변한 탓인지 아쉬웠던 영화는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순간과 이야기들이 보여 또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다.


(다음 단락에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 자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다시 보게 된 '주먹이 운다'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큰 두 가지 포인트 중 첫 째는, 결말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 한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게 되는 영화가 아니라 2명 이상의 이야기를, 그것도 똑같은 비중으로 관객에게 소개했을 때, 더군다나 그 결말에 가서 그 둘 가운데 누군가는 패배해야만 하는 룰의 경기가 등장한다면 결국 관객은 둘 가운데 누가 마지막에 승리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먹이 운다'의 이야기는 10년 전에도 알고 있었듯이 승패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이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두 인물의 삶이 중요할 뿐. 하지만 10년 전에는,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에 있어서 명백한 승패를 나누는 것 보다는 관객이 승패를 명확하게 알 수 없도록 놔두는 것이 두 인물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보면서 바뀐 생각은, 오히려 이렇게 명확한 현실의 승패를 보여주는 것이 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해주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강태식 (최민식)과 유상환 (류승범)의 결투 혹은 도전은 이미 심판 판정이 나오기 전에 6라운드가 마무리 되는 순간 끝이 난다. 두 사람 모두 신인왕이 되어야만 할 구체적인 이유들이 있지만, 영화는 두 주인공이 승패가 나오기 전에 이미 스스로 각자의 도전을 이뤄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전에는 약간은 부수적일 수 있는 실제 승패 판정 장면이 없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그 간 나이를 먹은 탓인지, 현실은 영화 속 처럼 그들 스스로의 승리와는 상관 없이 승패를 끊임 없이 선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인지, 영화의 결말이 달리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 이후 강태식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라는 관객의 질문에,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최민식 배우의 대답과 이를 동조하던 감독님의 눈빛은 이런 결말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두 번째 포인트 역시 첫 번째 포인트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영화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던 점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해서 '주먹이 운다'의 강태식과 유상환의 이야기를 빌려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이들이 마음껏 울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들과 실패, 잘못, 실수 그리고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현실, 하지만 그럼에도 나 혹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나 위로를 주기 보다는, 그저 그들이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마음 껏 한 번 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긴 시간을 들여 끝까지 달려온 원동력이라는 걸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극 중 천호진씨가 연기한 배역의 대사처럼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 사연들로 인해 쉽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마음껏 울 기회조차 없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주먹이 운다'는 그들에게 어설픈 위로를 전하기 보다는 그저 그들이 한 번 펑펑 울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렇듯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는 10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다. 물론 영화가 아닌 내가 변한 것일테지만.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것은 역시 '주먹이 운다'의 블루레이 정식 발매 소식이었다. 물론 오프 더 레코드로 조금 더 먼저 알고 있기는 했지만, (감독님의 코멘트를 빌려 보자면) 한국의 크라이테리언을 꿈꾸는 플레인아카이브를 통해 발매 될 예정이라 무엇보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4K리마스터링은 물론, 10주년을 맞는 작품의 블루레이 타이틀답게 새로운 부가영상 등 제작에 벌써 부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날 있었던 GV 사진 몇 장을 더 추가하며 글을 마친다.

어서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길!


1.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한국영상자료원에 무한한 감사를!

2. 플레인에서 출시될 블루레이 정말 기대됩니다.

3. 초대해주신 DP 감사드려요!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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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 영 (While We're Young, 2014)

내게 정확히 필요했던 위로



노아 바움백의 신작 '위 아 영 (While We're Young, 2014)'은 단언컨대 일정 세대에게 집중 된 작품이다. 아마 비슷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세대가 아니었다면 다른 작품들이 그러하듯,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영화다' 라고 이야기 했을 텐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스스로에게 찔려서 최소한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두 주인공인 조쉬 (벤 스틸러)와 코넬리아 (나오미 왓츠)와 정확히 같은 나이나 상황은 아니지만, 20대와 50대. 더 나아가 30대와 40대 사이에 놓여 20대와 같은 젊은 세대에도, 그렇다고 중년이라고도 불리울 수 없는 세대에 놓여있기에 조쉬와 코넬리아의 고민과 현실은 소름 돋도록 공감될 수 밖에는 없었다. 보편적으로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있을) 영화이기도 하지만, '위 아 영'은 주인공과 같은 세대라면 그 어떤 스펙터클한 영화 만큼이나 강한 임팩트를 주는 작품이라 내게는 조금 특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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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를 아주 간단하게만 정리하자면, 이 이야기는 자신들은 젊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한 부부가 어느 날 진짜 젊은 20대 부부를 만나게 되면서, 오히려 현재 자신들이 놓여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를 되돌아 보게 되고, 그 삶의 변화와 사건을 통해 자신의 삶과 위치 혹은 현실을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We're Young'이라는 국내 개봉 제목만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우린 그냥 젊어!'라는 젊음에 대한 찬양 혹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로 생각할 수 있는데, 노아 바움백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경우다. 복잡하다는 것이, 이 영화는 기존에 '젊은' 혹은 '청춘'을 다뤘던 영화들과 달리 딱 떨어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조쉬와 코넬리아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것도 쉽게 결론 내지 않는다. 어쩌면 영화는 담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결론을 직접 소리 내어 이야기하려 하기보다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처럼 영화가 끝날 즈음에 관객을 영화가 아닌 자신을 보도록 만든다. 즉, 결론을 내거나 움직여야 하는 것은 그 다음 관객의 몫으로 온전히 남겨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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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위 아 영'은 결국 인정하는 것. 인정하게 되는 것에 대한 영화였다. 다시 말해 사건을 통해 '아, 그랬었구나'라고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부터 알고 있고, 특히 스스로 알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애써 부정하려 했던 것을 직시할 용기를 주는, 그래서 인정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영화였다. 영화가 한참을 돌려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이 '인정'이 결코 실패나 포기 혹은 패배가 아님을 설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한 오랜 시간 그 사이에 멈춰버린 이들에게 조급해 하지 말라며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 말은 곧, 누군 가를 위해 무언가가 되려 하지 말라는 것과 닿아있다. 사실 진심 어린 위로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인데,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면 그 위로는 위로를 위한 위로가 되기 쉽고, 오히려 '네가 뭘 알아'라는 반응을 얻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로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위로를 찾기는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 되어버렸는데, 적어도 내게 이 작품은 딱 필요한 위로가 되었다.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냥 괜찮다고 쉽게 위로하는 것도 아닌. 내게 딱 필요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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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위 아 영'은 개인적인 영화가 되어 버렸기에 초반 이 작품이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처럼 세상 어딘가에서 멈춰버린, 혹은 스스로 멈춰져 있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 쯤 권할 만한 위로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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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Mad Max : Fury Road, 2015)

여성은 스스로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솔직히 내게 있어 '매드 맥스 (Mad Max, 1979)'는 이미지로만 각인 된 영화였다. 분명 어렸을 때 비디오로 보긴 했었으나 구체적인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고 그저 허름한 가죽 옷과 바이크를 탄 멜 깁슨의 꼬질꼬질한 모습과 사막 아닌 모래 가득의 더럽고 (먼지 때문에) 갑갑한 이미지만이 깊게 남아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런 '매드 맥스' 시리즈가 다시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땐 샤를리즈 테론, 톰 하디가 출연한다는 이유가 더 매력적인 포인트였는데, 누가 연출을 맡았나 확인해 보니 그 옛날 원작을 연출했던 조지 밀러가 다시 연출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보니 조지 밀러가 약 35년 만에 다시 '매드 맥스'를 꺼내든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 궁금증을 떠나, 조지 밀러가 2015년에 다시 꺼내든 '매드 맥스'는 현재에도 이질감 없이 녹아들기에 충분했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Village Roadshow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다루고 있는 '매드 맥스'는 비슷한 세계관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자원 (여기선 물)을 독점하고 있는 권력 층과 이로 인해 피지배 층이 되어 버린 부류들, 그리고 그 중간에서 권력을 추종하는 부류 (여기선 워보이)가 등장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2015년판 '매드 맥스'가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의 모습이 충분히 논리적으로 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즉, 단순히 비주얼 혹은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가 아닌 배경에 깔린 세계관과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점은,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점은 이후 이 영화가 보여주는 모든 액션과 스펙터클에 근원이 되는 포인트로 '매드 맥스'가 단순히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 준다.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역시 영화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흔히 여성 영화, 여성 중심의 영화 라는 표현을 할 때 오히려 평등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하므로 (같은 구성으로 남성이 주인공이라하여 남성 영화라고 부르지 않는 다음에야..) 여성이라는 존재를 주제나 제목에 드러내는 것에 조심스러운 편인데, 남성 영화를 남성 영화라 부르지 않는 현실을 균형을 감안한다면, 이번에는 여성 이라는 존재를 드러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는 요 몇 년간 본 영화 가운데 여성의 대한 태도가 가장 바람직한 동시에, 진정한 성평등 영화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즉, 여성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단순히 여성을 중심에 두는 구성과 비중의 차이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행동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여성을 중심에 두고, 반대로 남성 역시 일반 영화의 여성처럼 남성 주인공의 보조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닌, 나름의 독립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균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 Village Roadshow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이 정말 멋진 (멋지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이유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 캐릭터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는 점이다. 더 깊게 보자면 그냥 주인인척 하는 캐릭터들이 아니라 뼈속까지 독립적인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행동 하나 대사 하나만 봐도 이 여성들이 그 간의 억압된 상황을 극복하고자 생겨난 독립심이 아닌, 태생적으로 평등한 세계관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의 삶을 본인이 결정하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 없을 터이나 특히 영화 속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었는데, '매드 맥스'의 여성 들은 완벽하게 본인들의 삶에 주도권을 쥐고 있다. 더 나아가 모성애라는 감정에 흔들려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도 않는다. 이것은 물론 선택의 영역이겠으나 많은 '남성'영화들이 이 모성애를 여성에게 강요하다시피 하는 방식으로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매드 맥스'의 묘사는 신선하고 통쾌하기까지 했다.

(스플렌디드가 쫓아오는 임모탄을 상대로 임신한 자신의 배를 드러내며 방패이자 무기로 삼는 장면은, 삶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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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작품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영화 속 여성들이 이상향으로 꿈꿨던 녹색땅의 현실과 그 다음 결정에 관한 것이었다. 만약 녹색땅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매드 맥스'는 여성 중심의 또 다른 평범한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녹색땅이라는 것은 남성 중심의 시타델의 고통에서 벗어난, 일종의 도피처 격 파라다이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곳에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던 녹색땅은 이미 폐허가 된지 오래이고, 새로운 또 다른 이상향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닌 시타델로 돌아가 그곳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영화의 결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게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바로 맥스 (톰 하디)의 역할이 중요해 진다. 녹색땅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 퓨리오사 (샤를리즈 테론)가 또 다른 녹색땅을 찾아 떠나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 맥스는 다시 돌아와 퓨리오사에게 시타델로 돌아갈 것을 권한다. 여기에 깨달음을 얻은 퓨리오사는 맥스와 함께, 그리고 여성들로만 이뤄진 새로운 공동체와 함께 시타델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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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은 '매드 맥스'인데 사실상 주인공은 퓨리오사 아니야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 물론 퓨리오사에게 비중이 가 있는 것은 맞지만 맥스의 역할, 특히 그가 일반 영화들의 남성과는 완전히 다른 남성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맥스 역할이 결코 부족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했던 것은 후반 시타델로 다시 돌아오는 시퀀스에서의 액션 구성이었다. 아무리 여성이 중심이 된 텍스트라고 해도 액션 영화임을 감안했을 때 클라이맥스에서는 남성인 (그것도 톰 하디라면 더욱)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서 액션 영웅이 되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이 작품에서는 이런 부분 역시 철저하게 분업화 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클라이맥스에서도 액션의 하이라이트는 여전히 퓨리오사가 쥐고 있으며, 맥스는 자신이 남성으로서 더 적합한 액션을 행할 뿐이다. 비슷한 예로 클라이맥스의 액션 시퀀스 외에 이 거대한 자동차를 몰고 가는 과정 속에서 퓨리오사와 맥스, 그리고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 워보이 (니콜라스 홀트)의 역할을 보면, 누군가가 남성이라서 혹은 여성이라서 주도권을 갖고 명령하는 구성이라기 보다는, 각자가 성별과 상관없이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분업화를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발 밖에 없는 실탄을 날려버린 맥스가 마지막 한 발을 주저 없이 퓨리오사에게 넘기는 것은, 그저 그가 쿨해서가 아니라 확률적으로 퓨리오사가 더 높기 때문이고, 운전과 수리를 나누는 방식도 무언가가 더 쉽거나 덜 위험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그 역할에 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의 끝판왕은 시타델을 차지하게 된 마지막, 유유히 떠나는 맥스의 모습에서 정점을 이룬다. 맥스는 새로운 시타델을 만드는 데에 있어 퓨리오사가 더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은 물론, 본인은 거기에 맞지 않는 역할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을 남성이 지휘하고 주도하고 차지하는 일반적인 영화와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가 가장 다른 점이다. 반대의 경우도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여성이 더 능력이 있는 경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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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글 제목에는 '여성은' 이라고 썼지만 더 나아가 인간은 스스로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주체가 여성일 때 얼마나 더 큰 영화적 힘과 담론이 형성 가능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러 모로 흥미롭고 유익한 영화다. 안 볼 이유가 없다.


1. 구차하게 일일히 설명하지 않는 영화의 태도가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보통 영화 같았으면 퓨리오사가 왜 한 팔을 잃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회상 형식으로라도 꼭 이야기했을텐데 여긴 그런게 없어요. 유추할 수 있을 뿐더러, 그 자체는 이 현실 속에서 크게 중요한 점이 아니거든요.


2. 시작부터 끝까지 길 위에서 차를 타고 달리기만 하는데, 이렇게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재주.


3. 아이맥스 3D로 보았는데 괜찮았습니다. 다음에 또 보게 된다면 이번엔 돌비애트모스로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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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파트 2 (寄生獣 PART2, 2015)

인간으로 살아남는 법



'바람의 검심'에 이어 코믹스 혹은 애니를 원작으로 하는 실사 영화들의 약진을 이어갔었던 '기생수'의 속편은, 원작에서 보여준 무거운 주제는 물론 실사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액션의 쾌감을 선사해야 하는 두 가지 미션을 지닌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미 전 편의 글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원작이 갖고 있는 화두의 깊이를 두 편의 (그것도 액션이 주가 될 수 밖에는 없는) 실사 영화로 표현하기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 그렇다면 밸런스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가 이 작품 '기생수 파트 2'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아, 물론 원작의 팬으로서 '그 정도로 취급될 수는 없었던' 장면들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지만.



ⓒ 판씨네마(주).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기생수' 원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파트는 타미야 료코가 중심이 된 공원 시퀀스와 시청을 배경으로 한 작전 시퀀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연설 장면), 그리고 마지막 오른쪽이와 신이치의 관계에 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세 가지 파트는 '기생수'라는 작품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가치가 담긴 파트로, 앞선 두 시퀀스는 기생수라는 제목을 통해 작가가 사회에 던지고자 했던 질문이 직접적으로 담겨있어 이 작품의 평가 가치를 여러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중요한 지점이며, 마지막 시퀀스는 어쩌면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울컥'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가치들을 제대로 표현해 냈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 예, 아니오로만 답해야 한다면, 아니오라 해야 할 것이다. 타미야 료코의 대사 하나 하나가 작품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공원 시퀀스는 그 자체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으나, 급한 전개 탓에 공감대가 아직 다 형성되지 않은 채 급작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 영화로 처음 접하는 관객들이라면 타미야의 고뇌를 이루다 공감하긴 어려웠을 듯). 개인적으로 이 시퀀스를 그래도 살려 낸 건 타미야 역할을 맡은 후카츠 에리의 연기력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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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중요 포인트인 시청 진압 작전은 애니메이션으로 보았을 때 액션 측면에서 상당히 긴장감 넘치고 손에 땀을 쥐는 구성이 돋보였던 시퀀스였는데, 이 작품에선 역시나 조금 급하게 처리 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시퀀스의 묘미는 기생 생물 입장에서 정체가 탄로나느냐 마느냐의 긴장감 + 기생 생물이 언제 어디서 공격해 올지 모르는 가운데 어두운 복도를 나아가는 공포감인데, 이 두 가지가 조금은 밋밋한 느낌이었다).


시청 시퀀스에서 가장 포인트라면 시장의 연설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이 역시 이 시퀀스 자체가 아쉬웠다기 보다는 이 연설 장면 전까지 끌고 오는 데에 있어 긴장감이나 설득력이 부족했기에, 마지막 순간의 임팩트가 덜했다고 봐야겠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 이 장면은 어지간한 반전 영화에 버금가는 반전으로 충격과 동시에 작품이 갖고 있는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었는데, 영화에서는 너무 급하게 그려진 측면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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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오른쪽이 (아무래도 미기가 더 입에 달라 붙는다;)와 신이치의 관계에 대한 부분은, 원작을 볼 때 '어?...어??'하며 나도 모르게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울컥해서 당황스럽기 까지 했던 장면이었는데, 원작을 볼 때의 잔상이 깊게 남아있던 탓인지 이번 작품에서도 이 장면은 여전히 짠했다. 이건 다른 얘긴데 '기생수' 실사 버전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오른쪽이의 목소리였다. 애니메이션에서의 목소리가 정말 강렬했고 차분하면서도 냉정함이 엿보이는 음성이었기 때문인데, 영화 버전의 목소리는 그 차분함이 부족하고 중성적인 맛이 없어서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졌다. 애니메이션 속 오른쪽이의 목소리는 정말 기생 생물 목소리 같은데, 영화 속 목소리는 그냥 친구 목소리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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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을 늘어 놓기는 했지만 영화로 만난 '기생수'는 글 서두에 언급했던 '바람의 검심'과 더불어 꽤 괜찮은 실사 화 영화였다. 원작이 그랬 듯 기생 생물을 통해 전해지는 돌직구 질문에 가슴이 턱 하고 내려 앉을 정도로, 답할 수가 없게 만드는 순간은 '기생수' 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1. 오른쪽이 성우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끝나고 크래딧이 올라갈 때 영화 버전의 엔딩곡이 아닌 애니메이션 삽입곡이 흘러 나왔다면 감동이 배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번에도 ㅎ


2.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준수해요. 어쩌면 말도 안되는 설정을 말이 되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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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The Avengers: Age of Ultron, 2015)

마블 세계관의 확장 혹은 한계



마블의 히어로들을 하나의 영화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일종의 올스타전 격인 '어벤져스'는 처음 '트랜스포머'가 그랬던 것처럼 원초적인 쾌감을 선사하는 훌륭한 오락 영화였다. 조스 웨던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각 캐릭더들의 장점들을 하나의 영화에 잘 녹여 냈고, 단순히 볼거리 만을 늘어 놓은 것이 아닌 (그래도 괜찮은데) 각자의 영화에서 진행되었던 이야기들의 흐름을 이어가는 줄거리까지 완성시키면서, 기존 코믹스의 팬들과 일반 대중들 모두에게 환영 받는 작품을 만들어 냈었다. 하지만 이 작품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그것 만으로는 양쪽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없는 태생적 조건을 갖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과연 확장되어 가는 마블의 세계관을 하나로 중간 정리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이 작품이 어떤 완성도와 방향성을 갖고 있을 지는, 영화 자체의 재미 만큼이나 궁금한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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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 된 '어벤져스'는 특히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를 기점으로 확연히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단순히 코믹스를 영화 화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래도 괜찮은데!) 독립적인 영화로서도 충분한 완성도와 이야기를 갖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대부분의 캐릭터들의 각자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어벤져스는,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어벤져스의 이야기를 떡밥으로, 혹은 주요 테마로 등장 시키면서 팬들로 하여금 다음, 더 나아가 그 다음까지 기대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이러한 성공이 계속 될 수록 오히려 부푼 기대감에 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조스 웨던의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비교적 재미와 (이 작품이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기능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쉬운 점 먼저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편집과 유머였다. 아마 내가 감독이었다면 가장 많이 고민했을 것이 편집이었을 것 같은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수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누구는 새롭게 등장해 소개부터 해야 하고, 누군는 이미 본인의 영화에서 진전된 이야기나 갈등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이어가거나 혹은 풀어내야 하며, 누구는 출연 시키되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그리는 가에 따라 작품 자체의 구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편집 포인트는 매끄럽지는 않았다. 단서를 던지거나 전개를 위해 반드시 삽입은 해야 하는데 풀어내는 연출에 있어서는 기복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부 장면에서는 애매하게 다음으로 점프하는 장면들도 많았고, 단순히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 외에 전개의 기능은 하지 못하는 장면들도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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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이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상당히 유쾌하다는 점인데, 이번 작품은 앞선 이유와 마찬가지로 유머 역시 여러 캐릭터들의 이해 관계에 맞게 해결하고 전개해야 했기 때문에,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으나 실제로 재밌지는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아쉬움을 꼽자면, 바로 캐릭터들 각자가 겪게 되는 갈등에 관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번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깊게 고민하고, 더 나아가 '시빌 워'의 초석이 되는 고민과 갈등이 바로 여기서 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아이언맨 2, 3'편을 거치면서 점점 부각되고 있는 토니 스타크의 고민과 갈등은 이번 작품에서 주요 포인트가 되며, 캡틴과 헐크, 블랙 위도우, 토르 모두 마찬가지의 갈등을 겪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시간 상의 한계라고 생각되는데, 굉장히 중요한 고민 포인트 임에도 더 깊이 있게 비중을 둘 수는 없었던 시간적 한계가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 짧은 한 편의 영화 속에서도 각각의 고민을 효과적으로 묘사해서 만족스러웠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호불호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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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들만 먼저 잔뜩 늘어놓고 나니 굉장히 실망한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제법 재미있게 본 편이다 (어벤져스 2에 거는 기대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뻔한 이유를 안들 수가 없다).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의 영화들은 그 광대한 세계관을 더 많이 알면 알 수록 보이는 것도, 흥미로운 것도 많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장면 하나 하나 대사 하나 하나도 놓칠 수 없게 다양한 떡밥들을 주기적으로 노출하고 있는 구성은, 그 자체로 팬들을 위한 장치이자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얘기하지만 '어벤져스'는 어쩔 수 없이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하는 흥분 포인트가 있는 영화다. 영화 말미에 울트론과 결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모든 히어로들이 한 곳에 모여 (마치 게임처럼) 자신의 필살 공격을 퍼붓는 장면에서는 탄성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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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했던 국내 촬영 분도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상당히 놀랐다. 그저 수 많은 로케이션 중 한 곳으로 한 두 장면 스쳐가는 것이 아닐까 했으나, 주요 로케이션 장소로 다양한 액션 시퀀스가 벌어졌는데 우리나라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옥의 티라던가 (블랙 위도우의 공간 점프), 아무래도 눈과 귀에 들어올 수 밖에는 없는 한글 간판과 우리 말 대사들로 인해 소소한 영화 외적 재미도 없지 않았다. 기존에 한국을 다뤘던 영화들과 간단히 비교해 보자면, 서울이라는 장소를 아주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오해하지도 않은, 딱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 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반대로 무언가 서울이라는 도시가 특별한 포인트가 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비춰 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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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 코믹스인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다 읽지는 못해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긴 어렵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것만으로 비춰봐도 울트론이라는 캐릭터는 이것 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파워와 더 깊이 있고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캐릭터인 듯 한데, 조금은 쉽게 (혹은 갑작스럽게) 무너져버린 경향이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 어벤져스 멤버들과 만났을 때 대화 시퀀스의 무게감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팽팽하게 가져갔더라면, '윈터솔져'가 그랬던 것처럼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되었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기엔 이 작품이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울트론과 비전의 이야기는 다른 히어로들처럼 독립적으로 한 두 편을 할애해도 충분한 주제와 캐릭터로 느껴지는데...


이것은 단순히 이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 만은 아닐 듯 하다. 전반적으로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코믹스의 영화 화라는 단순함을 넘어서 이미 그 방대한 세계 관의 깊이를 영화라는 매체에서도 확장해 나가고 있는 마블 작품의, 매력이자 한계가 동시에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수 많은 캐릭터들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앞으로도 마블의 영화들이 (특히 어벤져스 류의 작품들이)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균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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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롭게 등장한 스칼렛 위치는 완전 마음에 들었어요. 역시 염력이 제일 멋있음. 집에 와서 동작을 여러 번 따라해 보게 됨 ㅋ

2. 폴 베타니는 자비스 목소리 연기만 해오더니 이번엔 아예 출연을 ㅎ 물론 이번에도 100% 모습은 아니었지만;

3.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캐스팅은 역시 줄리 델피. 거의 까메오 수준의 역할이었는데 그녀가 출연하다니! 마블의 세계관은 워낙 방대하니 혹 다른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4. 제가 '어벤져스'를 얘기할 때 자주 했던 말 중 하나가, '호크아이'가 저들과 동등한 멤버라는 게 말이 돼? (물론 이렇게 따지면 블랙 위도우도;;)'라는 질문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쨋든 호크아이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 인정!

5. 아무리 생각해도 스칼렛 위치와 비전이 가장 매력적이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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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blu-ray)

우주를 설계하고 낭만을 이야기하다

 


리스토퍼 놀란의 2014년 작 '인터스텔라'는 그의 작품 답게 원초 적으로 두뇌를 움직이게 만드는 복잡한 설계가 밑 바탕에 깔려있고 그 위에는 가슴을 움직이게 만드는 낭만과 감동이 자리 잡고 있는, 딱 크리스토퍼 놀란 다운 작품이었다. '인터스텔라'는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Gravity, 2013)' 이후 사실상 처음 선보이는 본격 우주 체험 영화라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수 밖에는 없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고 배우는 것에 그치던 우주라는 공간과 세계를 체험하는 것으로 끌어 들이는 데에 성공한 '그래비티' 이후엔 그 어떤 영화도 (최소한 단 기간 내에는) 우주를 다시 배경으로 하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그래비티'를 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일 거다 라고 밝히기도 했던 놀란은, '그래비티'와는 또 다른 의미로 체험하는 우주를 그리는 동시에 또 한 번 설계자 다운 면모를 발휘해 다층 적인 것을 넘어서 다 차원 적인 구조를 구현해 냈고, 여기에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의 드라마까지 담아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터스텔라' 역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 작품이지만 뭐랄까, 놀란의 영화관에 대해 좀 더 명확해 지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단 '인터스텔라'가 인상적인 본격적인 이유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항상 대단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무언가 저마다 이야기하고 싶도록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에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에 기본이 되는 치밀한 설계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가 주로 만드는 설계도는 항상 무언가 학구 적인 의욕을 한껏 이끌어내 왔었다. 

 

억을 잃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플래시백 형태로 구성한 '메멘토'도 그랬고, 꿈 속의 꿈이라는 다층 구조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낸 '인셉션'은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100% 완벽하게 분석해 내겠어!'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했었던 것처럼, 이번 '인터스텔라' 역시 우주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공간을 배경으로, 역시 익숙하게 들어 왔지만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블랙홀, 웜홀, 4차원, 5차원이라는 개념과 현상들을 시각적으로 수긍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듯 학구 적으로 파고든 설계 탓에 자주 그가 만든 세계는 논리적 오류나 설정의 오류라는 많은 의견들과 부딪히게 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가 그의 동생과 함께 쓴 시나리오가 과학적, 논리적 오류가 있는 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그가 왜 이런 방식을 매번 택하고 있는 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걸 '인터스텔라'를 통해 또 한 번 강하게 느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왜 이렇게 영화를 복잡하고 설명하듯 만드는 것일까.





단하게 정리하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하나는 그 세밀한 설계 자체가 갖는 중요성, 그러니까 '인터스텔라'로 비유하자면 5차원이라는 개념을 관객이 더 쉽게 이해하도록 영화 화 하기 위해 이를 논리적으로 뒷받침 할 만한 만반의 준비와 설계를 건축 하듯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구조와 설계 자체를 중심에 둔 다는 얘기다. 하지만 놀란의 영화는 이 과학적 혹은 호기심의 근거한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 탄생 되었다고 단정 짓기엔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점들이 있다. 사실 이렇게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인셉션'을 보고 나서 부터 인데, '인셉션' 이 개봉하고 나서 흡사 논문에 가까운 영화 글들이 수를 놓았을 정도로 구조가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론 오히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브'라는 캐릭터의 트라우마에 관한 아주 강력한 드라마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란 영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아내를 잃은 남편이거나 가족을 잃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의 분석은 이미 여럿 있어 왔는데, 여기에 더 힘을 보태서 이런 설정들이 어쩌면 그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설계한 구조적 배경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그가 들려주고자 한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인터스텔라'를 보며 또 한 번 강하게 들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결국, 기억을 이야기할 때도, 꿈 속의 꿈을 이야기할 때도, 코스튬을 입은 외로운 영웅을 이야기할 때도, 그리고 우주 속 웜홀 뒷 편의 5차원을 이야기할 때도 결국 한 인간의 드라마를, 더 나아가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실 그런 측면이 놀란의 모든 영화에 드러나고 있다고 봤을 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다크나이트' 의 경우 이 가운데 가장 감정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편이고, 이 작품 '인터스텔라'는 가장 직접적으로 감정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인셉션'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 구조의 황홀함에 압도되어 만족감을 얻기에 벅찼었지만 두 번째 관람을 하고 나니 너무나도 명백한 코브의 슬픈 드라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인셉션'은 놀란 영화의 큰 두 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설계와 감정, 혹은 설계와 낭만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인터스텔라'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 아니 더 노골적인 표현이 담긴 작품이었다.




(다음 단락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골적이라는 표현을 반복 적으로 사용한 데에는 역시 '사랑'이라는 개념을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방식 때문이 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작품은 물론이고 감정적이라고 느꼈던 '인셉션'에서도 그 표현 방식은 직접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인터스텔라'에서의 후반부를 장악하고 있는 정서는, 오히려 한편으론 이런 우주 영웅 가족 영화에 대명사로 불리 우는 '아마겟돈'보다도 더 강력한 세기로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정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앞서 영화의 중반 부까지 우주와 웜홀에 대한 방정식을 풀 듯 논리의 파도를 따라오던 관객 입장에서는, '결국 이 모든 것의 해답은 사랑, 사랑이야!'라는 영화의 후반부가 맥이 빠질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론 '인터스텔라'의 방식이 조금 직접적이었을 뿐 놀란의 영화는 항상 이런 드라마를 바탕에, 아니 중심에 놓았었기에 크게 이질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지만 그래도 '사랑, 사랑이었어!'라는 식의 전개는 이 5차원이라는 개념을 재료로 하기엔 너무 1차원적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들게 마련인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은 마치 찰리 카우프만이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을 통해 본인의 메세지를 정말 끝까지 밀어 붙였던 것처럼, 본인이 항상 두 손에 쥐고 있던 설계와 감정의 개념을 한 발 더 나아가 하나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이 작품에서 후반부 사랑의 개념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인간의 사랑이야말로 차원을 넘어서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존재한다 라는 식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가설을 꺼내 놓는데, 바로 사랑이라는 개념이 아직 인간이 알아 낸 과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이 발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혹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적 개념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즉,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일종의 과학적 산물 혹은 미래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설명이 가능한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러한 접근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접근이었는데, 처음엔 이 같은 영화의 태도가 '와, 정말 대단한데!'라는 정도로만 느껴졌다면,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 작품의 기반이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콘택트 (Contact, 1997)'가 던진 화두인 '과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히 경험한 것'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메시지로 채용했다고 볼 수 있었다. 즉,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영화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이전 다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인터스텔라'가 왜 흥미로운 작품인지를 또 한 번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콘택트'와 근본적으로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콘택트'는 이 광할한 우주에 인간만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공간 낭비인가 라는 말처럼 외계 생명체에 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이 짙게 깔려있는 작품이지만, '인터스텔라'는 그 중심이 외계 생명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혹은 인간의 진화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스포일러 끝!)

 

쨋든 '인터스텔라'는 놀란의 다른 작품들처럼 하나 하나 따져보면 '왜 그러한가?'에 대해 소품이나 배경, 인물, 대사 등 모두 이유를 찾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영화 일테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것들을 다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더 강력하게 드러난 낭만적인 가족 드라마이기도 했다. 또한 모두가 어린 시절 막연하게 우주 여행을 꿈꿔왔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아무도 우주를 꿈꾸지 않는 이 시대에 대한 그의 안타까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뒤돌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은 다들 바보처럼 순수하고 낭만적인 인물들이 중심이 된 드라마였던 것 같다. 마치 더 이상 막는 것이 불가능한 디지털의 시대에 끝까지 필름 촬영을 우선하고 3D를 배제해 온 그처럼 말이다.


 

Blu-ray : Menu

 

[디스크 1]






[디스크 2]





Blu-ray : Video







'인터스텔라' 블루레이 화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일단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이맥스 촬영 분과 35mm 필름 촬영 분에 대해 나누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다른 포맷으로 촬영된 영상은 서로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을 듯 한데, 이 점은 블루레이 화질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먼저 아이맥스로 촬영된 영상의 화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보는 순간 눈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시원하고 선명한 화질은 수록하고 있다. 특히 아이맥스 촬영이 특별히 시퀀스 별로 의도 되었다기 보다는 중간 중간 짧게 수록된 장면들도 있기 때문에, 비교적 여러 장면들을 최고의 화질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면 장점.






지만 이렇듯 아이맥스로 촬영한 영상의 화질이 태생적으로 압도적 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35mm 필름으로 촬영된 장면들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필름으로 촬영된 장면들의 화질도 사실 문제가 있거나 하는 정도의 화질은 아닌데, 워낙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이 화질이나 화면 비에서 오는 시원함이 압도적이다 보니 조금의 답답함은 어쩔 수 없이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어디 까지나 상대적인 비교와 교차에서 오는 느낌으로, 평균적으론 만족할 만한 퀄리티의 화질임은 분명하다.


 

Blu-ray : Audio

 

개 인적으로 아이맥스 촬영 분이 수록되었음에도 화질보다 좀 더 만족스러웠던 것은 사운드 퀄리티였다. 이는 기술적인 퀄리티 외에도 영화의 사운드 메이킹 덕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주라는 공간과 우주선 (이 영화에서 우주선이라는 공간은 사운드 측면에서 매우 중요도가 높다)이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들려줄 수 있는 일종의 '가상'의 사운드를 최대한 현실감 있게 구성한 사운드는 블루레이를 통해 더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히 우주선이 빠른 속도로 착륙하거나 이동하는 과정 중에서 발생하는 사운드에 있어서는, 그 내부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 넘치는 진동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러한 진동을 만들어 낸 것이 단순하게 우퍼 스피커를 중심으로 한 사운드의 볼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밸런스와 사운드 메이킹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가장 인상적인 사운드 포인트였다. ‘인터스텔라'가 깊은 몰입 감을 전달 하는 데에는 확실히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사운드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약 50분 분량의 영상인 ‘The Science of Interstellar’는 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자문을 맡은 과학자 킵 손을 중심으로 ‘인터스텔라’가 들려준 이야기의 과학적 근거 혹은 근원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아마도 이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저 ‘영화니까’하고 넘겨 버렸을 여러가지 설정과 현상에 대해, 이론적으로 어떻게 가능하고 현실적으로 어디까지 가능 혹은 진행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어찌보면 어려울 수 있는 과학과 중력, 우주와 시공간의 이야기를 비교적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이유는, 첫 째 ‘인터스텔라’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며, 둘 째 이 다큐멘터리가 이론과 영화의 접점을 정확하게 알고 친절하게, 하지만 뜬구름 잡지 않는 형태로 소개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과학 선생님이라면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큼 지식의 접근성이 높고 유익한 다큐멘터리라 꼭 감상해보길 권한다.








‘Plotting An Interstellar Journey’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뷰를 통해 왜 ‘인터스텔라’를 만들어야 했는 지에 대한 제작 초기의 의도와 과정을 들려준다. 또한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또 다른 다큐멘터리에 관한 이야기와 아이맥스 촬영에 관한 비교적 상세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Life On Cooper's Farm’에서는 영화 속 쿠퍼의 집이자 농장의 배경이 된 로케이션에 관한 이야기와 이 농장이 갖는 영화의 내적 의미에 대해, 역시 놀란 감독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다른 영상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인터스텔라’ 부가 영상에서는 특히 더 크리스토퍼 놀란의 친절한 작품 설명을 전반적으로 만나볼 수 있어 여러모로 부가 영상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한 편이다. 

 

‘The Dust’에서는 영화 속 먼지 폭풍이 어떻게 (아날로그적으로) 탄생 되었는지 만나볼 수 있으며, ‘Tars and Case’에서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인간적인 기계 ‘타스’와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는데, 여기서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아날로그적이고 현실성을 강조하는 철학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The Cosmic Sounds Of Interstellar’에서는 한스 짐머와 크리스토퍼 놀란이 어떻게 ‘인터스텔라’의 영화 음악을 (사실상) 함께 만들었는지에 대한 과정이 담겨있는데, 이미 ‘배트맨’ 시리즈를 통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에 했던 작업 방식과 아이디어들은 최대한 피하려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새로운 소리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 역시 결코 부족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었다 (실제로 약간의 진부함이 느껴졌던 근래의 한스 짐머의 음악과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인터스텔라’의 스코어는 환상적이었다).

 

‘The Space Suits’는 지나치게 미래 지향 적이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나사의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우주복의 탄생 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The Endurance’를 통해서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네이슨 크로울리를 통해 인듀어런스호 세트 디자인과 그런 구조를 갖게 된 논리적 근거에 대해 상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다.

 

‘Shooting In Iceland’에서는 영화 속 밀러 행성과 만 행성의 로케이션 촬영지였던 아이슬란드의 촬영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다른 행성으로 소개 되는 곳이지만 컴퓨터 그래픽 보다는 실제 촬영으로 현실 감을 주기 위해 아이슬란드를 로케이션 촬영지로 선택하였고, 스텝들의 말을 빌리자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라는 말처럼 아이슬란드는 놀란의 의도를 정확히 구현 가능한 장소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e Ranger And The Lander'와 ‘Miniatures In Space'에서는 레인저 우주선의 구석구석 설명을 통해 우리가 영화를 보며 미처 다 확인하지 못했던 선 내의 디테일과 각각의 기능, 구조를 확인할 수 있으며, 미니어처 촬영을 통해 시각 효과가 어떤 방식을 통해 활용되었는지도 짧게 나마 소개하고 있다.

 

‘The Simulation Of Zero-G’에서는 영화 속 무중력 장면 촬영을 위해 사전 진행되었던 리허설에 관한 영상이 수록되었으며, ‘Celestial Landmarks’에서는 웜홀과 블랙홀 등을 영화 속에서 어떻게 구현이 가능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한 번 더 만나볼 수 있다. 참고로 앞선 ‘The Science of Interstellar’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지만, ‘인터스텔라’의 부가 영상을 모두 감상하고 나면 개봉 당시 많은 이야기가 있었던 과학적(이론적) 오류 혹은 타당성 논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될 듯 하다.

 

‘Across All Dimensions And Time’에서는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테서랙트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수록되었으며, ‘Final Thoughts’에서는 놀란 감독을 비롯해 각본을 함께 쓴 조나단 놀란은 물론, 주요 스텝들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인터스텔라’가 어떤 의미를 갖는 영화인지 짧지만 명확한 메시지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Trailers’에서는 총 4개의 버전의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인터스텔라'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기에 충분한 작품이자, 그가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전달 방식이 좀 더 균형을 이룬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블루레이 담긴 부가 영상들을 꼼꼼히 감상하고 나면, 적어도 크리스토퍼 놀란과 과학자 킵 손을 중심으로 한 영화의 스텝들이 과학과 현실의 접점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적으론 크리스토퍼 놀란의 심오한 과학적 호기심에 못지 않은 꿈과 낭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재차 발견할 수 있었고, 또한 그 사이에서 계속 균형과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결과물을 만나게 되어, 감독으로서 놀란을 더 좋아하게 된 작품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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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바이어런트 (A Most Violent Year, 2015)

악마의 탄생이 아닌 정도(正道)의 죽음



'마진 콜'과 '올 이즈 로스트'를 연출했던 J.C.챈더 감독의 신작 '모스트 바이어런트'를 보았다.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포스터와 스틸컷에서 마치 '대부' 시절의 알 파치노를 연상 시키는 강렬한 이미지의 오스카 아이삭과 근래 가장 흥미로운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는 여배우인 제시카 차스테인 때문이었다. 특히 오스카 아이삭의 이미지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알 파치노의 '대부'를 떠올리기 쉬운 것이었기에, 작품 역시 범죄가 만연하던 1981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 또 다른 갱스터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J.C.챈더는 정반대로 이 힘든 시절 속에서 끝까지 정도(正道)를 지키고자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지만 아주 치열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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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모랄레스 (오스카 아이삭)는 이민자 출신으로 장인어른의 기름 사업을 물려 받아 계속 사업을 성장시켜온 재능있는 사업가다. 하지만 그가 성공할 수록 그는 각종 비리와 공격에 타겟이 되어 안밖으로 커다란 압박을 받는다. 범죄가 만연한 시기였기에 어쩌면 큰 흠이 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여러 유혹과 회유에도 아벨은 끝까지 자신의 방식, 제대로 된 방식으로 그 만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한다.


'모스트 바이어런트'는 주인공 아벨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의 가족적인 면, 인간적인 면을 감성적으로 부각하는 대신, 상당히 드라이하게 사업가로서의 그의 행동과 결정 위주로 묘사한다. 다시 말하자면 아벨은 범죄와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는 물론 아닐 뿐더러,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고귀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는 본인의 방식대로 본인의 꿈을 이루려는 사업가 일 뿐이다. 표현은 '뿐이다'라고 했지만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 작품엔 그 어떤 비하나 상대적 평가 절하의 표현도, 시선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오히려 아벨의 이야기를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 남게 된다. 왜 아벨은 이토록 정도(正道)에 집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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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역설이다. 즉, 이 질문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관객들을 향한 감독의 질문일 것이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것을 추구한 아벨이 이토록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통해 이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더 나아가 그런 사회에 얼마나 대중들이 익숙해졌는지를 되묻도록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악마의 탄생으로 봐야할 것이 아니라, 정도(正道)의 죽음으로 봐야할 것이다. 순수한 한 남자가 결국엔 어떻게 악에게 잠식되는 지에 대한 과정이 아닌, 아벨이 대변하는 가치관들이 어떻게 스러져가는지에 대한 기록의 측면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 영화는 이런 측면에서 관객들에게 커다란 짐을 전달하고자 한다. '모스트 바이어런트'엔 극적 쾌감이나 짜릿함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상황적인 측면도 그러하지만, 간혹 아벨이 그 어려움들을 우여곡절 끝에 해결해 낸다하더라도 (그것이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은 물론,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도 느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혹여 성공처럼 비춰질 수 있는 순간이라도 사실은 죽어가는 과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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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바이어런트'의 아쉬운 점이라면 한 남자의 심리와 상황 묘사를 조금은 직접적으로 미국이라는 현상과 비교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금은 은근하게 빗대어 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었으나, 조금은 직접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연상케 하는 샷과 구도들은 영화 전체가 담고 있는 무거움을 조금은 가볍게 만드는 요소였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아벨이 처한 상황과 직접적으로 같지는 않지만 상황적으로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인지, 그의 고민 하나하나가 200% 와 닿았다. 지켜야 하는 것들과 지키지 않아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것들. 성공이라는 상황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수단까지 가능한 것인지. 혹은 이 같은 어려움에 처하는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면 끝까지 정도를 가려는 것 자체가 너무 이기적이거나 어리석은 판단은 아닐지.

가장 폭력이 만연하던 해를 온 몸으로 통과하고 있는 아벨의 이야기는 새삼스럽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게 만든 영화였다.


1. 정말 오랜만에 카타리나 산디노 모레노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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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질주 : 더 세븐 (Fast & Furious 7. 2015)

형제들이 폴을 추모하는 방법



사실 이제와 고백하자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내게 있어 처음부터 그렇게 특별했던 시리즈는 아니었다. 자동차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꼭 봐야 할 만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고, 1,2편에서 주로 보여주었던 액션 역시 다음 편을 꼭 봐야지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시리즈가 꼭 봐야 할 영화가 되었던 이유는 지금 와 생각해 보면 폴 워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대중들에게는 이 시리즈를 통해 각인이 된 배우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폴 워커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된 건 '러닝 스케어드'를 비롯해 대중적으로는 그리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 때문이었다. 폴 워커라는 배우에 매력에 빠지게 된 뒤, 자연스럽게 더 관심을 갖게 된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아이러니하게도 폴 워커 때문에 전혀 다른 영화, 아니 시리즈가 되어버렸다. 너무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나 버린 폴을 추억하려 하지 않고, 그저 신나게 러닝 타임을 즐기고자 극장을 찾았던 '분노의  질주 : 더 세븐'은,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쏟게 만들어 버린,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일단 영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시리즈를 거듭하며 더 강력한 적들과 자동차 액션 외에 몸으로 하는 육탄전의 비중이 커지게 된 일곱 번째 작품 답게, 전편의 루크 에반스를 훨씬 능가하는 진짜 형님 제이슨 스테덤의 등장으로 기선 제압에 성공한다. 제이슨 스테덤의 캐릭터는 사실 어느 영화에 나오든지 비슷한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긴 하고 이번 영화에서 역시 그렇지만, 싱크로율이 나쁘지 않다고 해야할까? 빈 디젤, 드웨인 존슨과 1:1로 맞붙어도 중압감을 줄 수 있는 흔치 않은 배우로서 극의 대결 구도를 긴장감 있게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제이슨 스테덤이 등장하면서 시리즈에 더해지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격투 액션 측면일 텐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를 비롯해 무려 '옹박'의 토니 쟈까지 출연하면서 (여기에 UFC 챔피언 론다 로우지의 특별 출연까지) 오랜만에 육중한 볼거리의 액션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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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향은 전편 드웨인 존슨이 등장하면서 부터 좀 더 가속화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본 시리즈의 영향력 하에 있는 전문 격투 액션이 너무 보편화 되면서 오히려 이렇게 큰 근육과 몸을 더 쓰는, 무게 있는 액션을 보기가 귀해짐에 따라 '분노의 질주' 시리즈 역시 자동차 액션 외에 또 다른 볼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매력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아날로그 액션에 대해 좀 더 이어가자면, 드웨인 존슨이나 빈 디젤 정도의 근육 (혹은 덩치)이 발달해야만 성립이 가능한 도구나 액션 시퀀스는 보는 것 만으로도 쾌감을 선사했는데, 약간은 억지스럽고 '저게 가능해?' 싶은 설정이 분명 있지만 그냥 '가능해'라는 식으로 밀어 붙이는 뚝심도 무식해 보이기보단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소소한 재미이기는 하지만 론다 로우지와 미셸 로드리게즈의 격투 장면은 론다 로우지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챔피언이라는 걸 잘 알기에 오랜만에 로드리게즈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더 락' 드웨인 존슨이 락 바텀을 시전 할 땐 남모를 쾌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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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액션 영화로서 '분노의 질주' 만큼 창의력 돋보이는 영화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번 편의 자동차 액션은 그 '창의력' 면에서 아주 새롭지는 않았다. 일례로 비행기에서 자동차를 자유 낙하 시키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탑기어 코리아'에서도 시도했던 장면이어서인지, 영화가 주려고 하는 만큼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 낭떨어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시퀀스도 새롭다기 보다는 조금은 진부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 시퀀스는 '미션 임파서블 2'의 첫 시퀀스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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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리고 폴 워커. 개인적으론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그의 얼굴을 어찌볼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완전히 러닝 타임을 즐기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는 것에 성공했던 터라, 다른 개인적 감정 없이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영화가 계속 폴 워커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쭉 봐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 작품은 액션 영화를 표방하는 가운데 우정과 가족에 대한 메시지를 아주 강하게 지속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영화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7편의 내러티브도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일 수 있겠으나, 폴 워커라는 특별한 한 사람 때문에 이 평범할 수 있는 (혹은 신파처럼 느껴질 수 있는) 뻔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그대로 꽂힐 수 밖에는 없었다. '더 이상 장례식을 치루고 싶다 않다'라던지, 그를 바라보는 진짜 친구 빈 디젤의 표정 하나 하나에서 영화와 현실이 혼동되는 경험을 여러 차례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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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영화는 결국 마지막에가서 스스로 현실과의 경계선을 넘어버리는 것을 택한다. 바로 폴 워커를 위해서.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인 해변 장면은 아마 올해 가장 슬프고 인상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뛰어오는 폴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표정은 이미 스크린을 벗어난 감정이었다. 특히 여기서 울음을 억지로 참아내는 미셸 로드리게즈의 표정은 연기가 아니었음을 장담할 수 있다. 작별 인사를 하지 않으려는 친구들. 영원히 함께 있다는 것을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 친구, 아니 형제들의 이야기는 정말.


15년 가까운 시간을 한 영화에서 함께한 동료이자 친구이자 형제를 보내는 그들의 방식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고, 옳았다. 아... 폴 워커가 오늘도 그립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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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 전설의 최후편 (るろうに剣心 伝説の最期編, 2014)

큰 욕심 안 부린 켄신의 마무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교토 대화재편'을 보러 극장에 갔을 때 '전설의 최후편'이 같이 개봉 중인 줄 알았더라면 연달아서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겠지만, 뒤늦게 알게 되 어쩔 수 없이 상영하는 극장을 찾지 못하고 시리즈의 대미는 IPTV를 통해 감상하게 되었다. 전편이 3편으로 가는 중간 다리 같은 역할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의 마지막인 '전설의 최후편'은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는데, 결론적으로 마지막 편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무난한 선에서 마무리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실사 버전에서 과하게 욕심을 부려 1,2편을 통해 얻었던 원작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위험을 택하는 대신, 아쉬움이 남을 수는 있지만 큰 실망은 하지 않는 선택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 T-JOY. All rights reserved


일단 아쉬운 점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기대했던 부분인 시시오와 켄신의 대결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기대가 컸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생각보다는 그 임팩트가 부족했던 것 같다. 사실 이건 정말 문자 그대로 '기대가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원작에서 시시오가 담고자 했던 분노와 한, 그리고 켄신이 역날검을 사용해야만 했던 죄의식은 긴 호흡을 통해 천천히 차곡차곡 쌓아나아간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3편의 영화로 대등한 효과를 얻기엔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리적 아쉬운 점만 배제한다면 영화는 본질을 흐릴 정도로 다른 각색은 등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영화화가 좋았던 또 다른 점은 이 시리즈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카오루와의 아슬아슬한 로맨스를 중심에 두지 않고 앞서 언급한 시시오와의 대립과 켄신 스스로의 죄의식에 두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본 영화 시장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한데, 더 많은 일반 대중들을 타겟으로 하기 보다는 기존 원작 팬들에게 포커스를 둔 (둘 수 있는) 구성은 원작 팬으로서 쌩뚱맞은 이야기를 접하지 않게 되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원작에서도 이 둘의 로맨스는 말그대로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를 해야하는데, 만약 적극적으로 극의 가운데로 끌고 왔더라면 아마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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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실사판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사실 메시지의 전달 측면이 아니라 액션에 대한 묘사였다.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가장 망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실사에서는 어색하기 쉬운 액션이나 판타지적인 묘사 부분 일텐데, '바람의 검심'은 바로 그 부분의 균형을 잘 이뤄냈다. 켄신의 비현실적인 속도를 표현한 부분은 잘못하면 아주 우스꽝스러워지기 쉬운 부분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수긍 가능한 정도로 표현해 냈으며,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고수의 우월함 역시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이 같은 액션 묘사의 균형은 전설의 최후편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특히 켄신이 다수를 한 꺼번에 상대할 때 확실히 드러났다. 개인적으로는 이 액션 시퀀스를 코웃음치지 않고 몰입해서 볼 수 있도록 만든 것 만으로도 켄신의 실사화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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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가장 우려했던 실사판 영화였던 '바람의 검심'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남긴 시리즈가 되었다. 그로인해 앞으로의 실사화에 대해서도 다시 기대를 갖게 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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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폴 토마스 앤더슨의, 감히 최고의 걸작


폴 토마스 앤더슨의 모든 작품을 빼놓지 않고 보았고 또 좋아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그의 최근작 '마스터 (The Master)'는 참 설명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보통 어렵다고 느껴지는 작품들은 처음에는 뭐라 말하기 어렵다는 벅찬 감정으로 극장을 나오게 되지만 몇 차례 더 반복 감상을 하게 되면 어느 정도 감독이 말하려는 바나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 명확해 지는 것이 (설령 그것이 감독의 의도와 다르다 하더라도)대부분인데, '마스터'는 이 와는 정반대의 경우라고 해야겠다. 극장에서 처음 보았을 땐 마치 그의 전작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2007)' 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객이 미처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에너지를 통해 발산해 내는 그런 작품인 줄로만 알았는데, 물론 그 에너지의 버거움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지만 이 영화를 말하고자 할 때 알면 알 수록 더 불분명해 진다는 것은 최근 또 다시 보게 되면서 깨닫게 된 점이었다. 도대체 폴 토마스 앤더슨은 무슨 영화를 만든 것인가!




혹자는 '마스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이언톨로지를 주제로 한 영화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 PTA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 담긴 작품이라고도 하며, 또 누군가는 트라우마에 관한 (특히 참전 후 트라우마) 이야기라고도 한다. 더 이야기하자면 지독한 러브 스토리로 볼 수도 있으며, 포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프레디 퀠 (호아킨 피닉스)과 랭케스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라는 전혀 다른 두 캐릭터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심연을 파고 든 분석적인 작품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에 대해서는 수 많은 평론과 분석이 존재하는데, 일단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PTA의 그 어떤 작품보다 다각적인 분석과 평가가 가능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물론 '마스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팬 입장에서는 이 텍스트 안에서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더 분석하고픈 욕구가 발생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흥미로운 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분석을 하면 할 수록 이 모든 것이 마치 영화의 기이한 분위기 마냥 한 없는 멜랑콜리로 느껴지게, 무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다시 보게 된 '마스터'를 통해 느꼈던 건,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최근 이 영화를 간절하게 다시 보고 싶었던 이유는 쌩뚱 맞게도 '위로'받고 싶어서 였다. 이미 영화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고, 위로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 영화를 어떤 연유였는지 위로 받고 싶어서 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마스터'는 일종의 실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실패를 인정할 수 밖에는 없는 상대를 (실패했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 만나게 되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점 때문인지 이 영화엔 묘하게 관객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이러한 영화의 정서는 어느 정도 전작 '매그놀리아 (Magnolia, 1999)'와도 닮아있다.





사실 '마스터'는 여러 분석과 평가 이전에 거대한 힘 앞에 압도 당할 수 밖에는 없었던 작품이었다. 메소드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는 호아킨 피닉스가 뿜어내는 에너지와 마스터라는 칭호에 부족함이 없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에너지가 맞 부딪히는 장면들은 숨 쉬는 것 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압도적이었으며, 이 두 배우 못지 않게 (캐릭터 상으로는 가장 무서울 정도의 분위기를 보여주었던) 힘 있는 연기를 펼친 에이미 아담스까지 더해지면서 폴 토마스 앤더슨은 또 한 번 마치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그러하였듯이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 붙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마스터'는 일종의 체력이 필요한 영화라고 해야겠다. 이 압도적인 에너지를 견뎌 낸다면 그 안에 또 다른 감정과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Blu-ray : Menu







Blu-ray : Plain Archive Collection




언제부턴가 플레인 아카이브에서 출시 된 타이틀을 소개할 때면 오히려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는데, 너무 칭찬 일색으로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번에도 칭찬을 좀 해야겠다. 현재 국내 블루레이 시장 상황이 결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스터'의 블루레이 발매는 더 놀라운 사건이라 하겠다. '인터스텔라' 같은 대흥행작도 아닌 '마스터'를 무려 세 가지에 달하는 패키지로 선택 구매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A or B의 상술이라기 보다는 각각의 타입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는 출시 기획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 중 하나다.




일단 이번 플레인 아카이브 콜렉션으로 출시 된 '마스터' 블루레이는 일반판은 물론 스틸북 형태로 각각 렌티큘러 슬립, 풀 슬립, 쿼터 슬립 형태로 출시가 되어 소비자가 각각 원하는 형태와 가격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팬들은 결국 중복 구매를 하기도 하는 ㅎ). 최근 스틸북 열풍에 이어 그 못지 않게 자주 선택되는 패키지 유형 중 하나가 렌티큘러 방식인데, 이번 '마스터' 렌티큘러 패키지는 그냥 의미 없이 렌티큘러를 활용한 것이 아닌 렌티큘러에 적합한 이미지를 선택하여 (너무 당연하지만) 렌티큘러를 선택하는 본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스틸북 역시 덴마크에서 제작한 우수한 퀄리티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아웃케이스의 퀄리티 역시 플레인 콜렉션 답게 소장가치와 퀄리티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을 손으로 만져보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플레인 타이틀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책자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 특히 이번 '마스터' 소책자는 기존 씨네21의 마스터 특집 기사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좋은 글들을 소장할 수 있게 되어 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을 추모하는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그의 필모그래피를 되돌아 볼 수 있으며, 씨네21에 수록되었던 글 뿐만 아니라 LA영화비평가협회 부회장이자 영화평론가인 팀 그리어슨의 글 까지 만나볼 수 있어 소책자의 수준을 한 걸음 더 발전시켰다.




Blu-ray : Video


1.85:1 MPEG4 / AVC / 1080p / 23.976 fps의 화질은 기대 이상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는 65mm로 촬영된 영상인데, 그냥 65mm로 촬영을 해 본 정도가 아니라 이 포맷을 정확히 이해하고 65mm만의 장점과 당시의 감성을 그대로 재현해 낸 (어쩌면)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기에 '마스터'의 영상은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65mm로 촬영한 의도와 그 고집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 영상이 블루레이로 넘어오면서 어떤 퀄리티를 보여줄지에 대해서는 기대 반 걱정 반이기도 했었는데, 블루레이의 화질은 몇 몇 장면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수준을 보여준다. 특히 65mm를 활용하면서 와이드한 풍경을 주로 담은 것이 아니라 아주 타이트 한 클로즈 업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배우의 연기를 극대화 시키는 것에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숨막히는 클로즈 업 장면에서 화질의 우수함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질감. 필름 특유의 질감을 블루레이의 화질로 느낄 수 있다는 건 '마스터' 블루레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원스러움과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영상과 화질로 극장에서 볼 땐 미처 느낄 수 없었던 디테일을 여럿 발견할 수 있기도 했다.







Blu-ray : Audio



DTS-HD Master Audio 5.1채널의 사운드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역시 조니 그린우드의 영화 음악이라 하겠다. 라디오헤드 출신으로 영화 음악가로도 이미 유명한 조니 그린우드는 폴 토마스 앤더슨과 이 작품 '마스터'는 물론 전작 '데어 윌 비 블러드'와 최근 작인 '인히어런트 바이스 (Inherent Vice, 2014)'의 음악을 맡기도 했는데, '마스터'의 영화 음악은 그 특유의 신비롭고 기이하면서도 멜랑콜리한 느낌으로 쉽게 잊혀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실제로 이 영화가 기이하다고 느끼는 데에는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데, 마치 연기가 주변을 휘감 듯, 영화는 물론 영화를 보고 있는 이들의 공간까지 퍼져나와 주변의 공기를 서서히 삼켜 버리는 듯한 영화 음악은 DTS-HD MA 멀티 사운드로서 더 실감나게 발휘된다. 선율 하나 하나에 자연스레 귀 기울이게 되는 경험은 '마스터' 블루레이 감상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닐 것이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참여한 음성 해설이다. 사실 영화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감독이나 배우, 스텝들이 아닌 평론가를 비롯한 제 3자의 음성 해설은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는 없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평소 이동진 평론가가 얼마나 폴 토마스 앤더슨을 특히 이 작품 '마스터'를 애정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인지 그의 음성 해설 참여는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동진 평론가의 입장에서도 제 3자의 입장에서 음성 해설을 (그것도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을 수 밖에는 없을 텐데, 그럼에도 참여한 것은 이 작품에 대한 또 다른 '애정'의 증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이나 배우, 스텝들이 참여한 음성 해설들이 주로 촬영장의 뒷 이야기나 (작가가 참여했을 경우)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이동진 평론가는 각 장면에 대한 영화 평론가로서의 해석은 물론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세계와 각 배우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적절하게 들려주고 있어서 심심하다는 느낌 없이 끝까지 즐길 수 있는 경우.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작품 답게 이동진 평론가 입장에서도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입장에서 음성 해설을 진행하고 있어 일방적이기 보다는, 풍부해 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영화를 흥미롭게 본 이들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음성해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 만나볼 수 있는 부가영상은 존 휴스턴 감독의 1946년 작 '빛이 있으라'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은 '마스터'에 모티브가 된 2차 대전 참전 후유증을 다룬 작품으로서 몇 몇 장면에서는 '마스터'의 잔상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영상이라 하겠다. 영화의 직접적인 촬영 뒷 이야기나 과정의 에피소드를 담은 일반적인 제작 영상이 수록되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렇듯 작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또 다른 작품을 한 타이틀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외에 짧은 촬영 현장 스케치 영상과 티저, 예고편 모음 그리고 확장 & 추가 장면이 수록되었는데,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확장 & 추가 장면의 구성이다. 일반적으로는 확장 장면들을 챕터를 나누어 장면 별로 수록하거나 혹은 별도의 감독의 코멘트나 소개 영상을 담아 장면을 풀어 주는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보통인데, '마스터'의 확장 & 추가 장면은 마치 또 다른 '마스터'의 짧은 편집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묘한 느낌을 주는 구성이 돋보이는 부가영상이었다. 아마도 이 메뉴 명을 미처 보지 못하고 이 영상을 보게 된다면, 다른 짧은 버전의 '마스터'인가 착각할 정도로 기이하게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확장 & 추가 장면은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총평]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는 그의 여러 강렬한 작품들 가운데서도 손 꼽힐 만한, 아주 이상하면서도 대단한 걸작이었다. 작품에 대한 매력을 더 배가 시키는 플레인의 블루레이 콜렉션은 이번에도 소비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며, 그저 겉보기에 화려한 포장이 아닌 영화 본연이 돋보이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브랜드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타이틀 내에 수록된 소책자에서도 따로 소개되고 있기도 하지만,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역시 새삼 그리워지는 작품이었다. 지난 2월 2일이 벌써 그가 떠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었기에 더더욱.


스펙

 

- 자막 - 한국어, 영어

- 화면 비율 - 1.85:1 MPEG4 / AVC / 1080p / 23.976 fps

- 오디오 - 영어 DTS-HD Master Audio 5.1

 

* 스페셜 피처 

- 이동진 평론가의 전편 음성해설 트랙

- 영화의 모티브가 된 2차 대전 참전 후유증에 존 휴스턴 감독의 1946년작 ‘빛이 있으라’(58분)

- 촬영 현장 스케치(8분)

- 확장 & 추가 장면(20분)

- 티저, 예고편 모음(16분)

* 전체 한글자막 수록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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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Whiplash, 2014)

초월의 양면성



보통 영화를 본지 한참이 지나면 기억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물론 어느 정도의 상관은 있다만) 글로 풀어내기엔 상당히 어려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연유로 영화를 정말 인상 깊게 보았음에도 결국 글로 쓰지는 못한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이 영화 '위플래쉬 (Whiplash, 2014)'도 그럴 뻔 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럴 뻔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한참이 지났음에도 유독 생생한 기억과 머릿 속 '글감' 때문에 그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 낸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여하튼 오랜만에 드럼을 소재로 한 음악 영화가 나온 줄로만 알고 보게 된 '위플래쉬'는, 끝까지 달려가는 동시에 우리가 흔히 한 쪽으로만 판단해 버리는 주제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절반 이상 제공하고 있는, 참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Bold Films. All rights reserved


아마 보통의 음악 영화, 혹은 성장 영화였다면 앤드류는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끝내 극복해 낸 천재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고, 그의 스승인 플레처는 그런 천재 뮤지션을 키워 낸 아버지 같은 멘토가 되었을 것이다. '위플래쉬'가 흥미로운 건 보통의 음악, 성장 영화가 갖는 위와 같은 성취를 이 작품 역시 거두고 있는 동시에, 정반대의 시각이 가능하다는, 더 나아가 그 반대의 시선에 오히려 더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일단 일반적인 측면으로 바라 본 '위플래쉬'의 이야기는, 제 2의 찰리 파커를 키워내기 위한 플레처라는 스승의 노력(방법)이 결국 앤드류의 잠재력을 일깨워 (일종의 각성) 또 다른 천재 뮤지션이 탄생하게 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해 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방식과 주제로 그려낸 영화들과 비교하더라도 '위플래쉬'가 도달하게 된 그 '순간'의 짜릿함과 희열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영화 말미 앤드류가 마치 초사이어인이라도 된 냥 스스로의 한계 점을 뛰어 넘어버리는 초월의 순간은, 근래 본 장면 가운데 가장 말초적으로 자극되어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마치 집단에게 얻어 맞은 듯한 욱신 거림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 Bold Films.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어라?'하고 조금씩 다르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앤드류의 아버지와 여자친구로 대표 되는 그의 음악 외 일상에 관한 묘사였다. '위플래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드러머로서의 앤드류가 아닌 그 외적인 앤드류를 영화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얼핏 보면 '어? 왜 이런 의미 없는 장면을 넣었지?' 싶을 정도로 건조하게 그려진 앤드류의 일상은, 그렇기 때문에 '왜?'를 질문할 수 밖에는 없었다. '스파이더맨'도 아닌 것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설정을 이렇게 전면에 자주 등장 시키는 것을 보았을 때, 특히 그 방법에 있어서 특별히 감정이 교류되거나 갈등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 그저 상황을 묘사하는 것 (아버지와 둘이서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에 그쳤을 때, 저 장면이 왜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전반 부에는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후 앤드류가 좋아하게 된 여자친구와의 시퀀스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그려졌을 때 무언가를 직감할 수 있었다.



ⓒ Bold Films. All rights reserved


여자친구 니콜 과의 이야기들은 아버지와의 그것보다 더 건조하게 그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영화였다면 음악과 여자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앤드류의 모습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면서 고조시키거나, 말미에 가서도 그럼에도 돌아온 앤드류와 니콜과의 관계를 더 발전시키는 것으로 정리되었을 텐데, '위플래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배제하거나 다른 길을 택하고 있었다. 즉, 앤드류의 갈등은 갈등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단순한 결정처럼 묘사되고 있으며, 그 이후에 상황에 대해서도 극적인 결말은 영화가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영화가 이렇게 앤드류의 음악 외적인 일상 들을 비교적 건조하게 늘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글 서두에 언급한 바로 그 절정. 초월의 순간에 있다.



ⓒ Bold Films. All rights reserved


그 초월의 순간, 영화는 엄청난 에너지로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드럼과 음악 역시 말초 신경을 몹시 자극하며 인계 치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에서 정확히 마무리하며 아직 흥분이 가실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끝내버렸음에도, 그 만큼의 정서적 해탈감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드디어 플레처의 바램대로 제 2의 찰리 파커가 된(그 순간 만큼은) 앤드류의 모습에서 성공, 성취, 해피엔딩 이라는 단어들 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상실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앤드류는 플레처가 바라는 대로 음악적으로는 경지에 가까워 짐에 따라 아버지와의 관계,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인간성과는 멀어져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앤드류가 음악적으로 초월하는 순간을 명확하게 그리고 있는 것처럼, 인간성과 멀어지게 되는 또 다른 순간 역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마지막 아버지와 무대 뒤에서 만나고 이별하는 장면이 바로 그렇다. 앤드류는 음악적으로 경지에 오를 수록 일상에선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Bold Films. All rights reserved


그렇기 때문에 '위플래쉬'를 보고 나면 이런 질문이 남게 된다. '플레처의 교육 방식은 옳았는가?' '경지에 이르기 위해 포기 가능한 가치들은 어디까지인가?' '그렇게 까지 해서 도달한 경지에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는 쪽과 정도를 두어서는 결국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특히 예술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의견,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결코 어느 한 분야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는 (그건 그야말로 배부른, 속 편한 소리라는) 의견도 가능할 것이다. 영화는 이렇듯 초월이라는 순간을 단순히 멋지고, 일방적인 성공과 연결 지어 이상향만으로 그리지 않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면을 부각 시켜 양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위플래쉬'는 엄청난 영화인 동시에 진심으로 인상적인 영화였다. 다시 말해 엄청나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 인상적이기까지 해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영화였다.



ⓒ Bold Films. All rights reserved


1. 어서 블루레이로 보고 싶네요. 물론 집에서 맘 놓고 볼륨 키워 감상하긴 어렵겠지만 ㅠ

2.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버드'를 관람하는 걸로?

3. 저에 다음 팬질은 멜리사 비노이스트로 거의 확정적!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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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Bold Films 에 있습니다.


 





갓 헬프 더 걸 (God Help the Girl, 2014)

벨 앤 세바스찬 같은 영화



이 영화 '갓 헬프 더 걸'을 봐야겠다 마음 먹은 건 어쩔 수 없이 벨 앤 세바스찬 때문이었다. 평소 광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거의 모든 앨범은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밴드였던 벨 앤 세바스찬의 프론트맨이 스튜어트 머독이 쓰고 감독한 영화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어떤 영화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스튜어트 머독이 연출한 작품이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 영화는 그 예상 그대로였다. 머독은 자신의 이야기, 벨 앤 세바스찬의 이야기를 스크린을 빌려 아주 덤덤하게 하지만 솔직하게 그려냈다.



ⓒ 찬란. All rights reserved


아마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을 접해보지 못했거나 별 다른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보게 된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고 나서, 소소하고 예쁘지만 많이 심심한데? 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반대로 벨 앤 세바스찬의 팬들이 본 영화는 어떠할까? 사실 똑같다. 팬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이 영화는 소소하고 예쁘지만 심심한 영화였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그 심심함의 여백이 평소 그들의 음악과 닮아 있기에 오히려 여유로웠달까. 평소 극적이기 보다는 평온하고, 자극적이기 보다는 평화로운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처럼 이 영화 '갓 헬프 더 걸'은 마치 그들의 음악처럼, 혹은 그들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뒷 이야기를 만나게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적인 측면에서 몰입이 쉽지 않고 소품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더 나아가 스튜어트 머독이 벨 앤 세바스찬이라는 밴드를 통해 전달하려는 음악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 찬란. All rights reserved


흔히들 거대한 뮤직비디오 같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론 그 보다는 오히려 조금 긴 단편영화 같다는 느낌이었다. 벨 앤 세바스찬의 팬들이라면 아마도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며 미소짓게 될 그런 영화.


1. 미드 '왕좌의 게임'에 출연해서 익숙했던 배우 한나 머레이를 다시 만나게 되서 반가움. 그녀의 묘한 매력이 터지더군요.


2. 사운드트랙은 솔직히 음악이 엄청 좋아서라기 보다, 벨 앤 세바스찬스러운 앨범 커버 덕에 안 살 수가 없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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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 교토 대화재편 (るろうに剣心 京都大火編, 2014)

더 이상의 실사화 걱정은 무의미하다



이미 전작 '바람의 검심' 글을 통해 이야기 한 바 있지만, 아마도 처음으로 만화/애니 원작 실사화 작품에 대한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 준 작품이 바로 '바람의 검심'이었다. 다른 실사화 작품들의 실패를 거듭할 때도 개인적으로는 (다행히) 별로 애착이 없는 원작들이라 큰 관심이 없었는데, '바람의 검심'이 실사화 된다고 했을 땐 두 손 들고 말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려 속에 등장한 영화 '바람의 검심'은 만족을 넘어서서 속편을 기대하게 만들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드디어 그 속편인 '교토 대화재편'을 극장에서 만나보게 되었다. 참고로 2편 격인 '교토 대화재편'과 3편이자 최종편인 '전설의 최후편'은 동시에 제작되었는데, 국내에서도 다행히 두 편 다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 T-JOY. All rights reserved


'바람의 검심'은 원작을 접한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몇 가지의 갈등 구조,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관계가 등장하는데 역시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줄기의 이야기라면 시시오와의 대립 관계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겠으며 실사화 역시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본 '기생수' 글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긴 호흡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을 실사로 옮길 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부분을 옮기느냐 혹은 어떤 갈등 구조에 집중하거나 어떤 인물과 이야기를 버리거나 축소하거나 하는 결정일텐데, '바람의 검심' 3부작은 시시오와의 갈등 구조를 중심에 두는 대신, 어정번중으로 통하는 아오시의 이야기는 비교적 축소하였다 (아마 최종편에서도 지금과 같은 비중이 아닐까 싶다). 이 밖에도 십본도 역시 원작보다는 축소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는 시시오에게 포커스를 맞추기 위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같은 부분은 모든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면 겪게 되는 호불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시시오와의 갈등 구조에 집중하는 결정이 더 나은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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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보태어 더 만족스러운 점은 전작도 그랬던 것처럼,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 속에서 원작이 갖고 있는 메시지 적인 측면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흔히 영화화 할 때는 원작 (특히 그 원작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일 때)의 화려함과 볼거리를 실사 버전으로 보여주는 것에 급급하여 원작이 갖고 있는 깊이와 철학은 가볍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바람의 검심'은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영화 스스로가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켄신의 이야기를 빌어 등장시키고 있다. 바로 역날검의 의미에 대한 것이 그것인데, 왜 켄신은 역날검을 들게 되었는지를 관객들이 계속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한 편, 또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시오의 대한 묘사 역시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분노를 관객이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듦으로서, 원작이 갖고 있던 힘을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스크린에서 실사 버전으로 만나는 '바람의 검심'이 만족스러운 가장 큰 이유라 하겠다.



ⓒ T-JOY. All rights reserved


이번 '교토 대화재편'을 보고 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흠칫 했던 포인트는, 이제 더 이상 실사 버전의 싱크로율이나 이질감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치 처음으로 일본 사극 액션 영화를 보게 된 관객처럼, 영화 속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전작이 보여준 믿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제는 더 이상 '옮겨 온' 것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게 된 점은 이번 속편이 이뤄낸 또 다른 성과라 하겠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원작의 팬 입장에서는 특별히 아쉬운 점은 없었는데, 이 작품으로 켄신을 처음 만나는 이들이라면 캐릭터, 특히 이번에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 설명이 부족한 탓에 그들의 행동에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아오시의 경우도 짧게 과거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정번중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더 깊이를 느끼기는 어려우며, 앞서 언급한 십본도의 활용 역시 시시오를 위해 많이 축소된 느낌이 있어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 T-JOY. All rights reserved


시시오라는 캐릭터가 워낙 아우라가 대단하고 강력한 캐릭터인 점을 감안할 때 (마치 '이누야사'의 나락 처럼), 후지와라 타츠야가 연기한 시시오의 실사화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특히 영화가 시시오라는 캐릭터를 그릴 때 음악이나 배경 등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교토 대화재편'에서는 켄신과 시시오가 거의 만남을 갖은 수준에 그쳐서인지, 더 본격적인 혈투가 벌어질 최후편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최후편의 특성상 아마도 더 극적이고 강렬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보았을 때, 영화화 된 '바람의 검심' 3부작은 꽤 매력적인 3부작이 될 것이라고 미리 평가할 수 있을 듯 하다.



1. 사토 타케루의 켄신은 보면 볼 수록 잘 어울리네요. 켄신이 실사화에서 이 정도로 어울릴 줄은 정말 몰랐었는데 말이죠.


2. 소지로와의 대결 장면도 좋았어요. 그 특유의 발 구르는 장면도.


3. 켄신이 등장하는 액션 장면의 경우 분명 특수효과가 가미 된 장면이지만, 크게 이질감이 없는, 그러니까 원작을 본 이들이라면 켄신은 저 정도는 가능하다는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수준의 액션이라, 멋과 현실감이 공존해 만족스러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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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JOY 에 있습니다.


 





기생수 파트 1 (寄生獣, 2014)

원작 팬들을 위한 실사화



최근 매주 금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기생수' 때문이다. IPTV를 통해 매주 금요일 일본과 하루 차이로 애니메이션 '기생수'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와아키 히토시의 원작 만화는 읽지 못했지만 현재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을 워낙 재미있게 보고 있는 터라 실사화가 된다고 했을 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인데, 대부분 그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좋지 않았다는 건 원작 팬으로서의 애정이 크면 클 수록 실망감 역시 컸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걱정했던 '바람의 검심'의 실사화가 놀랍게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여주면서 다른 실사 화 영화들에 대해서도 '혹시....'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는데, 그러던 차에 개봉한 작품이 바로 이 영화 '기생수'였다.



ⓒ 판씨네마(주). All rights reserved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는 점에서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개인적으로는 코믹스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과의 비교만이 가능) '기생수 파트 1'은 만족할 만한 퀄리티, 영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영상을 특별히 강조한 이유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들의 실망 포인트가 바로 직접적인 표현 부분에 있기 때문인데, 특히 '기생수'처럼 CG가 동원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의 경우 조악한 CG의 수준과 활용 방법 때문에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닌 경우가 허다했었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기생수 파트 1'은 이질감 없이 실사화에 적응한 느낌이다. 기생 생물들의 표현도 우스꽝스럽지 않고 공포스러움까지 전달할 정도로 실사에 적응한 모습이며, '오른쪽이'의 완성도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일단 몰입 할 수 있는 영상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이번 실사화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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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화 과정에서 과감하게 빠져버린 부분들로 인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신이치의 아버지를 비롯해 몇몇 중요한 캐릭터는 영화화 과정에서 빠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요한 감정선들과 내러티브 역시 함께 제외되어 버렸다. 사실 애니메이션만 본 입장에서도 '기생수'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테마들과 관계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는데, 2시간 남짓한 러닝 타임 내에 한정지어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긴 호흡으로 즐겨야 했던 요소들은 대부분 축소되었거나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한 편으론 TV시리즈로 가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효과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원작을 접한 이들이라면 (아쉽기는 하지만) 전개를 따라가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반면, 영화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는 관객 입장에서는 주인공 신이치의 감정선은 물론, 타미야 료코를 비롯한 기생 생물들의 심리를 읽는 데도 턱 없이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다. 즉, 무언가 괴기스럽고 흥미롭기는 하지만, '기생수' 작품 본연이 갖고 있는 깊이까지 느끼기에 실사판 '기생수 파트 1'은 부족함이 많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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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실사화의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역시 이런 아쉬운 점을 몰랐을리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일본이라는 시장은 워낙 원작 팬들의 규모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화 과정에서 과감하게 처음 보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를 배제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즉, 영화화 된 '기생수 파트 1'은 처음 부터 모든 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원작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의 팬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영화화로서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킬 수도 있지만 '극장판'이라는 단어 그대로 자신이 좋아했던 작품을 실사 버전으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측면으로 보면 '기생수 파트 1'은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일본 영화 특유의 과장하는 느낌이 강해요. 애니를 볼 땐 그 정도 위기라고는 못 느꼈는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구종말에 가까운 공포가 느껴지거든요 (느껴야 한다고 영화가 조장하거든요 ㅎ)


2. 사토미가 상당히 보이시해서 애니메이션을 본 입장에서는 잘 적응이...


3. 제목이 파트 1인것처럼 당연히 후속편이 존재합니다. 일본에서는 4월 개봉 예정으로 국내에서도 아마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파트 2에서 본격적인 실사화의 장점이 나올 듯.


4.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나고 파트 2에 대한 짧은 영상이 나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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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Kingsman : The Secret Service, 2014)

매튜 본의 온고지신 스파이 영화



매튜 본이 콜린 퍼스와 액션 영화를 찍었다고해서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처음엔 그냥 액션 영화인줄로만 알았기 때문인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건 정통 스파이물의 구조 안에 있는 영화이자 구체적으로는 007 시리즈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오마주 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스파이 영화치고 007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가 없는 작품이 드물고, 이 작품의 전체 방식 역시 스파이물과 매튜 본이 잘 하는 액션을 더 가미한 작품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킹스맨'을 단순히 이 정도로 표현하기엔 턱 없이 부족할 듯 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매튜 본의 전작 '킥 애스'도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도 참 좋아하지만, 이들 작품 가운데 이제부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킹스맨'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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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킹스맨'은 좀 묘한 구석이 있다. 전형적인 스파이 영화의 구조 안에 있지만 그 안에서 최신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오래 된 007 시리지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만 비틀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까 007 시리즈의 오랜 팬들에게는 향수를, 스파이 하면 제이슨 본을 더 먼저 떠올리는 요즘 관객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극 중 JB라는 이니셜을 두고 제임스 본드와 제이슨 본, 잭 바우어까지 언급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모두 인정하는 이 영화의 방식은,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캐릭터의 구성으로 부터 살펴볼 수 있다. 콜린 퍼스가 연기한 해리는 전통적인 007 영화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고풍스럽고 세련되었으며 수트가 누구보다 잘 어울려 근사하고 무엇보다 매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캐릭터다. 이에 반해 태런 에거튼이 연기한 에거시는 힙합 스타일을 즐겨 입고 출신은 보잘 것 없으며, 삶은 퍽퍽하고 비행 청소년에 가깝지만 야마카시를 연상시킬 만한 신체적인 우수함을 타고 난 캐릭터다. 이 둘 사이의 공통점 아니 전형적인 면에서 벗어나는 장점들이 있다면, 해리는 흡사 제이슨 본과 같은 완벽한 격투 능력을 지녔으며, 에거시는 결과적으로 해리를 통해 매너를 습득하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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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튜 본이 스파이 영화라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은 한 쪽에 치우쳐 있지 않다. 007 시리즈에 대한 존경과 명예는 인정하지만 다른 시대에 맞춰 바뀌어야만 할 것들에 대한 한계도 분명 인지하고 있으며 (이는 극 중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캐릭터의 한계로 빗대어 볼 수 있겠다), 반대로 최근의 단순한 스파이 영화들에는 없는 품격과 매너에 대해서도 한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아크로바틱한 액션의 가미에 대해서는 적극 반영을 주장하고 있다. 사자성어로 이야기하자면 온고지신 (溫故之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 모두를 간절히 원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튜 본의 이 방식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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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에는 이 외에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이나 대중들에 대한 풍자 등으로 볼 수 있는 설정 등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모두는 무겁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지나가도 상관없고 안다한 들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리듬감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심각한 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 만은 않은, 말은 쉽지만 실제 구현하기는 어려운 중도를 잘 표현해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실 '킹스맨'이 매력적인 영화라는 인상을 주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콜린 퍼스라는 배우를 활용한 방법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존에도 멋지게 수트를 차려입은 역할은 여러 번 했었지만, 이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콜린 퍼스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은 작품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은 연기력의 측면이 아니라 분명 그 '이미지'에 관한 것일 터. 수트를 평소 즐겨 입지 않은 남자라 하더라도 이 영화를 보면 당장 양복점으로 달려가 맞춤 양복 한 벌 맞추고 싶은 욕망이 들 정도로, 완벽한 핏의 수트 차림으로 (여기엔 안경과 우산을 비롯한 소품들도 포함된다) 벌이는 액션과 액션이 아닌 장면들이 주는 품격은, 왜 이 영화의 주인공이 콜린 퍼스여야 했는 지를 설득 없이 이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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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은 무엇보다 최근 본 영화들 가운데서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장면과 이미지가 주는 원초적인 쾌감과 일부 장면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의외의 쾌감과 속시원함이 금새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1. 콜린 퍼스와 마크 스트롱은 또 다른 스파이 영화였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도 아주 각별한(?) 사이였는데, 이렇게 또 다른 스파이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흥미롭더군요 ㅎ


2. 여기 또 다른 흥미로운 커플이 있습니다. 루크 스카이워커와 마스터 윈두 ㅋ


3. 시리즈 물이 가능한 구조에요. 후속편이 꼭 나왔으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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