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소한 스타워즈 컬렉션

(My Star Wars Collection)


다시 스타워즈의 시즌이 돌아왔다. '스타워즈'라는 시리즈 그리고 브랜드는 나에게도 참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이 시리즈가 대단한 이유는 이미 여러 번 언급되었던 것처럼 자신 만의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모든 캐릭터의 뒷 이야기가 궁금할 만큼 광활한 세계관과 팬들이 스스로 그 세계관을 확장시키고픈 의지와 욕구를 갖게 하는 스타워즈만의 매력은, 다양한 부가상품들의 소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도 스타워즈 관련 아이템을 따로 모아야겠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한 번 정리를 해보니 적지 않은 스타워즈 아이템들을 소장하고 있더라. 에피소드 7의 개봉을 앞두고 스스로 한 번 정리 겸 기록을 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1. DVD & Blu-ray





첫 번째로 소개할 아이템은 스타워즈 팬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인 DVD와 블루레이 타이틀이다. DVD 시절에 발매 되었던 에피소드 4,5,6 트릴로지 세트와 별도로 구매한 에피소드 1,2,3 DVD (이건 사진 찍고나서 같이 안찍었다는 걸 알게 됨 --;), 그리고 블루레이로 발매된 에피소드 1~6 사가 타이틀, 마지막으로 최근 DVD로 구매한 스타워즈 반란군 시즌 1까지. 사실 내 다른 컬렉션에 비하면 생각보다 DVD나 블루레이의 컬렉션은 약한 편인데, 여기에 최근 발매되었던 스틸북 블루레이가 있었어야 했다 흑. 나중에 찬찬히 구하기로. DVD와 블루레이 말고 몇 장의 OST 들도 소장하고 있는데, 전 집을 모으려고 했다기 보다는 앨범 커버 이미지를 소장한다는 의미로 몇 장 구매했었다.




2. Clothes & Shoes





사실 요즘 스타워즈 컬렉션 가운데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옷가지다. 스타워즈는 여러 패션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 형태로 많은 아이템들을 발매했는데, 최근 만 해도 유니클로, 아디다스, 스파오, 반스 등의 브랜드를 통해 아주 자주 스타워즈 관련 아이템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옷들을 만약 컬렉션 개념으로 구매했더라면 유니클로만 따져봐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옷들을 구매했었을텐데 100% 실제 입을 옷을 구매했기 때문에 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사진의 회색 긴팔 티셔츠는 Brownbreath 제품이고, 그 아래 검은색 아디다스 반팔 티셔츠를 제외하면 모두 유니클로 제품이다. 유니클로 제품 가운데 맨 오른쪽의 제국군 후리스의 경우 온라인에서 구매했고 나머지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했다. 참고로 바지는 반바지.





이 신발은 Vans에서 나온 제품인데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여름 내내 신고 다녔었다. 그리고 신발도 신발이지만 저 박스가 마음에 들어서 아주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음. 그리고 (아마) 신발장에 아디다스 스타워즈 신발이 하나 더 있는 것 같기도 하다.




3. Drawing





이렇게 저렇게 종이 형태로 말아 둔 포스터들은 몇 장 있는데 이것 말고 별도로 구입한 그림 아이템도 두 점 가지고 있다. 유명한 그림 작품을 모티브로 패러디한 그림들인데 홍대에 갔다가 재미있어서 두 점 구매했던 기억.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퀄리티도 나쁘지 않아서 거실과 방안에 하나씩 걸어두고 있다.




4. Figure





피규어는 한 때 빠졌다가 바로 정신 차리고 손을 씻었다가 근 몇 년 사이에 다시 조금씩 시작하고 있는데, 다행히(?)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어서 본격적인 피규어 수집을 하지는 않고 이 다음에 소개할 레고 위주로 수집을 하고 있다. 이 사진도 앞에 세 개를 제외하면 모두 레고 제품이긴 한데, 저 사이즈의 레고 제품은 오비완과 다스베이더도 있지만 이 제품의 특성상 사람 캐릭터보다는 클론에 더 잘 어울리기도 하고, 특히 그리버스는 이 조립 형태에 아주 걸맞는 캐릭터라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앞에 귀여운 세 캐릭터는 FUNKO 피규어로 일본 디즈니샵에 갔을 때 구매했던 제품들이다. 참고로 FUNKO 시리즈는 드래곤볼과 마블 제품을 몇 개 더 소장하고 있는데, 이 시리즈를 다 모으는게 작은 소망이기도 하다. 아, 그리고 이것 역시 사진을 못 찍었는데 1:1 사이즈의 다스베이더 헬멧도 아주 예전에 구매해서 소장하고 있다. 어른도 직접 착용이 가능하며 보이스 체인저 기능도 제공되서 몇 가지 대사나 자신의 목소리를 변조시켜주는 것도 가능하다 (근데 이건 별로 쓸만한 정도는 아님). 아, 한 가지 더. 반다이에서 발매한 엑스윙과 타이파이터도 하나 씩 소장하고 있다. 타이파이터는 무려 아직 조립 전이라는.




5. LEGO


2015년 한 해 가장 많이 공을 들인 스타워즈 컬렉션은 바로 레고 제품들이다. 레고는 다른 제품에 비해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고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생각보다 비싼 제품은 아직 구매를 못함), 조립하는 자체의 맛도 있어서 한 달에 한, 두 개 정도 구매를 해왔다.





레고 스타워즈 시리즈 가운데 MicroFighters 시리즈로 나온 것들은 몇 개 빼고 대부분 소장한 편인데, 귀여운 작은 사이즈로 대부분의 탈 것(?)을 소장할 수 있어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아직 소장 못한 밀레니엄 팔콘이나 엑스윙 등을 작은 사이즈로나마 소장하는 기쁨이.





이건 좀 큰 사이즈의 레고 제품들. 맨 오른쪽에 있는 제국군 셔틀은 소장하고 있는 레고 제품 가운데 만족도가 가장 높은 제품이기도 하다. 저 정도 사이즈(가격)의 아이템을 몇 개 더 구매하는 것이 내년 목표. 맨 오른쪽 아래를 보면 에피소드 7에 등장하는 아이템도 볼 수 있다.





다른 컬렉션은 그야말로 소소한 수준이지만, 개인적으로 2015년 처음부터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컬렉션을 해왔던 것이 바로 위 사진의 아이템이다. 별도의 장식장을 구매해서 레고 미니피규어, 그것도 스타워즈의 등장인물들로만 이 장식장을 1년 안에 완성하는 것이 올해의 작은 목표 아닌 목표였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기는 했지만 3명만 더 추가하면 완성되는 컬렉션이라 아직 희망이 있다. 가급적 에피소드 7의 캐릭터가 아닌 기존 사가의 캐릭터들로 채워 넣을 예정이다. 이렇게 따로 장식장에 모아 놓고 보니 확실히 그럴싸하고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이 장식장을 다 완성하면 다음엔 하나를 더 해서 또 다른 스타워즈 미니피규어 컬렉션을 만들지 아니면 마블 캐릭터로만 하나를 만들지 고민 중이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나쁜 나라 (Cruel State, 2015)

미약한 촛불이 불꽃으로 타오르길



여기 나쁜 나라가 있다. 극장에서 흔히 보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모 기업의 자랑스러운 나라. 생명이라는 존재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나라가 있다. 기업의 광고처럼 차라리 그 자랑스러움을 잊고 있었던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리고 냉정하게도 그 나라는 바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갔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같은 배를 타고 있던 일반인들까지, 수 많은 생명들을 깊은 바닷 속에 묻어야 했던 세월호 사건은 지금까지 내가 현실에서 겪었던 어떠한 사건들 보다도 충격적이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아팠던 참사였다. 그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이제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관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 (Cruel State, 2015)'를 만나게 되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가 제작한 '나쁜 나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 소중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어떤 현실과 싸워야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차지만, 자식 잃은 부모가 거리로 내몰려 단식하고 더위와 추위와 싸우며 목이 터져라 울부짖고, 삭발하고, 무릎 꿇어야 했던 슬프지만 현실인 기록이다.



ⓒ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All rights reserved


흔히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두 번의 대통령을 겪게 되면서 이 말은 결코 통용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모르는 것은 죄고, 알고자 하지 않은 것 역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일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기업의 비리나 일부 선원들의 잘못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만약 거기서 끝났더라면 어쩔 수 없었던 참사로 기억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참사가 벌어진 그 순간부터 국가가 국민들을, 그것도 생명을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대했는가에 대한 것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될 더 참혹한 참사가 되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알 수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어도 틀린 것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정치라는 것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싸우는 과정이라 할 지라도, 인간의 생명이나 죽음 앞에 섰을 때는 그 어떠한 정쟁도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는 것. 더군다나 그 모든 과정의 기회를 이미 스스로 놓쳐버린 세월호 참사의 경우라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유가족들,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사고의 정상적인 수습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인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행동이라는 것은 솔직히 양심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기본적인 상식 중의 상식,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나쁜 나라의 정부에겐 정말 최소한의 무엇. 양심이라고까지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아주 기본적인 것을 하지 않고 슬픔에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상처를 짓누르는 더 큰 고통마저 주었다. 오죽하면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이 나왔을까. 국가가 나서서 바닷 속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구해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죽하면 부모들이 내가 직접 바닷 속으로 뛰어드는 걸 막지만 말아달라고 했을까. 잘못돼도 너무 잘못 됐다.



ⓒ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All rights reserved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것은 죄다. 모든 눈과 귀가 막혀버린 현실에 진실을 알고자하는 길을 더 번거로워졌지만, 번거롭다는 사사로운 이유로 외면하기엔 이건 너무 명핵히 우리, 아니 나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도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건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광화문에 수십만명이 모여도 그건 맨날 데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그냥 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그냥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또 그냥 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과연 이들의 이야기가 그들 만의 이야기일까.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다 운동권이고 (요새 운동권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본래 사회 불만 세력이고, 정부나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랬던 시절도 있었을지 모른다. 국가의 횡포가 일부에 한했을 때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일로 인해 거리의 투사가 되는 현실. 나는 이 같은 점이 가장 슬프다.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시위라는 것 근처에도 가본 적도 없는 것은 물론, 시위로 인해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이 오히려 불만이면 불만이었던 사람들. 뉴스에 시위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건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 그저 수학여행 간다는 아이한테 용돈 더 못 챙겨줘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한 사람의 엄마가 어쩌다가 짧은 머리로 수십만명이 모인 광장에서 그 어떤 투사보다 강하고 큰 목소리로 투쟁을 외치게 되었을까. 내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의 일들을 모르는 것은 죄다. 내가 이렇게 되고 나서는 이미 늦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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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는 그런 의미에서 꼭 알아야 할 진실이다. 기록이다. 사람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실제로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보낸 500일 넘는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가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유가족이 아닌 이들이 보낸 500일이라는 시간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시간의 깊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한 줄 기사로만 보았던 일들의 이면에는 얼마나 깊은 고통과 인내의 쓰디쓴 시간이 있었는 지를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예전 광우병 문제로 광화문 과장에서 작은 촛불을 들고 행진에 시민들과 함께 가담했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무참히 발포한 물대포 때문도 아니었고, 곧 죽일 듯이 달려드는 전경 들의 모습도 아니었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으로, 시청에서 다시 명동으로 행진했을 때 명동에서 만난 현실 때문이었다. 광화문과 시청에서 촛불을 들고 모인 이들의 분위기와는 달리, 명동의 밤거리는 쇼핑을 하고 저녁 시간을 즐기러 온 또 다른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은 '그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 때의 명동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바로 옆에선 모두가 촛불을 들고 있었던 것에 반해 이 곳은 너무 평화롭고 들떠있고 즐거워 보였다. 관심 없는 이들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언가 몹시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난 그저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몇 번 촛불을 들었을 뿐이었는데도 이 날의 다른 공기는 몹시 서럽게 느껴졌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요 근래에도 느낀다.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면 지겹다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피로감에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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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만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유가족과 실종자가족들 뿐일 것이다. 그들이 그만하기 전에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폭력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 '나쁜 나라'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세월호 참사 500일이 더 지난 지금에도 이 나쁜 나라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쁜 나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 시간 동안 미약하나마 생겨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내 일처럼 나서서 돕고자 하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서명 운동에 참여하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 기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말하고자 한다. 만약 이 영화가 단순히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나 비판으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면 그 이상의 희망은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더 많은 국민들이 잊지 말고 함께 해줄 것을 죄송하게도 조심스레 묻는다. 그래서 미약한 촛불이 언젠가 꼭 불꽃으로 타오르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각자가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 부터 시작하면 언젠간 불꽃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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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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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Sicario, 2015)

범죄와 현실의 가운데서



사상 최악의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미국 국경 무법지대에 모인 FBI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와 CIA 소속의 작전 총 책임자 맷(조쉬 브롤린), 그리고 작전의 컨설턴트로 투입된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극한 상황 속, 세 명의 요원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숨쉬는 모든 순간이 위험한 이곳에서 이들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출처 : 다음 영화)


드니 빌뇌븨 감독의 '시카리오 (Sicario, 2015)'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을 배경으로 거대한 마약 조직인 카르텔과 이를 소탕하려는 CIA를 비롯한 미국 정부 조직을 중심으로 한 소탕 작전을 그린다. 그리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이 작전의 한 가운데에 마약국 소속은 아니지만 현장 경험이 풍부한 FBI 요원인 케이트를 등장시킨다. '시카리오'에서 케이트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범죄 조직도 이를 소탕하려는 정부 조직도 서로의 이익을 위한 현실적인 것에 만족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종의 이방인 격이자 아직 이상적인 바를 주장하는 케이트는, 이 현실을 다시금 바라보고 질문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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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문은 권력이나 힘, 혹은 균형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했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팔아 넘기는 마약 범죄 조직은 잔혹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를 소탕하고자 하는 정부 조직의 행동이나 방식이 과연 그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조금 진부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참혹한 살인을 지시하고 행하는 범죄 조직원들이나 우두머리도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가족에게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상대적으로 주인공의 편에 서 있는 이들의 냉정함을 들어 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또한 주인공 케이트에 대한 시선 역시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녀가 꿈꾸는 합법하고 이상적인 방법들이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 다는 것. 법과 이상대로 범죄 조직을 어떤 피해나 시간이 들더라도 모두 소탕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또한 가능한 것인지를 묻고, 결국 소탕하지 못한다면 관리 하에 두는 일종의 타협안을 수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영화는 답하기를 유보한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럼에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담론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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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 '시카리오'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범죄 스릴러다. 마치 리들리 스콧의 '카운슬러 (The Counselor, 2013)'를 연상시키는 범죄 조직과 현실의 공포와 무게감, 그리고 캐서린 비글로우의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 2012)' 못지 않은 작전 과정의 치밀함과 디테일한 묘사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접하고 있는 범죄조직과 첩보조직과의 관계와 사건들을 실제하는 현실이라는 것으로 체감할 수 있게 만든다. 에밀리 블런트, 조쉬 브롤린, 베니치오 델 토로의 연기는 과장됨이 없어 더욱 섬뜩하고 현실적이며, 최근작 '스카이폴'에서 정말 멋진 영상을 선사했던 로저 디킨스의 촬영 역시 이 작품의 손꼽을 만한 매력 포인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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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타카의 레드필]

국적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개봉 영화 제목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살아가는 이상 많은 영어권 영화를 즐기려면 누군가가 번역한 버전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영어가 유창하면 어느 정도 자막 없이도 즐길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막 없이 외국 영화를 즐기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자막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영화의 첫 번째 이미지이자 메시지인 제목에 관한 것이다. 국내 개봉하는 외국 영화 제목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성격을 달리 해왔는데, 예전에는 오역이 잦았을 정도로 너무 과한 해석이 들어간 제목이 많았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영어 제목을 그대로 쓰되 발음나는대로 그대로 쓰는 형태가 거의 체감상 대부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많아졌다. 예를 들어 리들리 스콧의 '마션 (The Martian)' 같은 작품의 경우 '화성인'이라는 형태로 쓰지 않고 소리나는 그대로 '마션'이라고 쓰는 형태가 거의 주를 이루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최근 개봉 외화들의 제목들을 보니 거의 번역 된 형태의 제목이 없을 정도로 대부분이 이런 형태였다. '마션' '하트 오브 씨' '스파이 브릿지' '몬스터 헌트' '사일런트 하트' '더 랍스터' '프리덤' '재키 앤 라이언' '세컨드 마더' '싱 오버 미' 등, 오히려 '이민자' '하늘을 걷는 남자' 등 번역한 제목을 찾아 보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방식의 제목 짓기는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본래 감독이 의도한 제목의 의미를 전달 받을 권리를 빼앗겼다는 점이다. 이건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그 영어 단어가 쉽고 어려움을 떠나 100% 의미가 전달된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예를 들어 '마션'이 '화성인'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확실히 받아 들이는 느낌상 '마션'과 '화성인'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은 의미인데 말이다. '하트 오브 씨' 같은 경우도 별로 어려운 단어들은 아니지만 이것을 과연 대부분의 관객들이 '바다의 심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 랍스터' 같은 경우도 '바닷가재'라는 제목이었다면 아마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것도 분명 영어 제목의 뜻, 그러니까 영어 권의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바닷가재'일텐데 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제목이 익숙해지면 질 수록 점점 더 본래 원제가 갖는 의미와 발음나는 대로 표기한 제목의 전달되는 느낌의 차이가 커지게 된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도 이미 어느 정도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진행된 듯 하지만). '언브레이커블' 이라고 하면 뭔가 발음도 멋지고 느낌적인 느낌도 멋져 보이지만 실제로 이 제목을 보고 '깨지지 않는'을 연상하는 이들의 수가 많지 않고, 이런 현상은 추가적으로 'unbreakable'과 '언브레이커블'이 다른 느낌으로 사용되는 지경에 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발음대로 쓴 제목과 해석 된 제목을 나란히 놓았을 때 말그대로 발음이 주는 느낌 혹은 외형적, 디자인적인 표기상의 느낌의 차이만 있어야 하는데, 점점 더 의미상의 차이까지 가져오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라는 언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관객들이 쉽게 해석할 수 있는 언어라는 점도 그렇고, 이렇게 이미 흘러온 시장의 특성상 100% 우리말로 해석한 제목을 내어 놓았을 때 오히려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생경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를 홍보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땐 이런 위험을 감수하기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아쉬운 제목들이 있다. 일단 첫 번째로 단순히 느낌만 강조해 아주 쉬운 영어도 발음대로 쓴 경우다. '파터 앤 도터' 같은 경우가 그러한데, 그냥 '아버지와 딸'로 번역해도 충분했을 제목을 '파터 앤 도터'로 번역아닌 번역 한 것은 참 씁쓸함마저 든다. 기대작인 타란티노의 신작 'The Hateful Eight'도 마찬가지다. 그냥 '증오의 8인' 정도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헤이트풀 8'이 도대체 무슨 제목인가. 헤이트풀 1~7편까지 봤냐는 농담이 나오는 것도 그냥 웃을 일만이 아니다. 뭐 제목 얘기 나올 때마다 회자되곤 하는 우디 엘런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같은 말도 안되는 해석도 물론 큰 문제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불륜영화로 첨부터 예상하고 본 관객들은 아마 대한민국 관객 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또 다른 황당한 경우로는 발음대로 쓴 영어 제목인데 실제 원제목과는 다른 경우도 들 수 있겠다. 그런 제목의 영화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데 가짜 예를 들자면 본래 제목은 'Amy'인데 국내 개봉 제목은 '더 걸 오브 론리' 같은 식이다 (에이미는 다시 말하지만 가짜 예).


불만들을 가득 쏟아냈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실제로 현장에서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또한 갑자기 중국식으로 모두 한국어화 하자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본래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의도를 퇴색시키지 않는 수준에서 최대한 우리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과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요새 외화 개봉 제목들을 보면 몇몇은 너무 성의 없고 그저 멋만 부리는 (그런데 웃기는 건 별로 멋지지도 않다는 점) 이상한 제목들이 너무 많아, 조금만 더 있으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조차 쓸데없는 일이 될 것 같아 글을 썼다.


생각해봐라. 강동원을 좋아하는 해외의 팬이 '검은 사제들'을 자국에서 보게 되었는데 그 나라의 개봉 제목이 'The Priests'가 아닌 'Geomeun Sajaedel'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우리는 웃지 않을까?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괴물의 아이 (バケモノの子, The Boy and The Beast, 2015)

'혼자'와 '함께'가 서로를 인정하는 과정에 대해



갈 곳을 잃고 시부야의 뒷골목을 배회하던 9살 소년 ‘렌’은 인간 세계로 나온 괴물 ‘쿠마테츠’와 마주치게 되고, 그를 쫓다 우연히 괴물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쿠마테츠’에게 ‘큐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소년은 그의 스승을 자처한 ‘쿠마테츠’와 함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지만 너무도 다른 그들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며 변해가고, 진정한 가족의 정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어느 새 훌쩍 커버린 ‘큐타’가 인간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전작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를 통해 어머니의 모성에 대한 더 완벽할 수 없는 이야기를 그려냈던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괴물의 아이 (バケモノの子 The Boy and The Beast, 2015)'는 넓은 의미에서 역시 전작인 '썸머워즈 (サマーウォーズ Summer Wars, 2009)'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늑대아이'의 주제를 또 한 번 확장시킨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 판타지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또 한 번 사랑,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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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괴물의 아이'의 플롯은 같지만 다른 두 인물이 서로에게 자극 받아 동시에 성장하는 익숙한 드라마의 성격을 갖고 있다. 갈 곳을 잃고 외톨이가 된 소년 렌과 역시 자신의 세계에서 인정 받지 못하고 한 편으론 스스로 외톨이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은 쿠마테츠는 우연히 만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게 되면서 각자 조금씩 성장해 간다. 여기서의 성장이란 단순히 세상과의 소통하는 법이나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 받은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버려지거나 소외된 존재라는 점을 들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닫혀 버린 마음, 즉 혼자서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기 방어적인 가치관이 서로로 인해 조금씩 변해 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여기에 호소다 마모루 만의 포인트는 역시 '가족'이다. '늑대아이'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머니인 하나가 스스로 어머니로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였던 것처럼, '괴물의 아이' 역시 렌과 쿠마테츠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탄생 혹은 가족애를 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정한다. 전혀 다른 인물들이 서로에게 자극을 받아 동반 성장하는 이야기는 한 편으론 아주 익숙한 구조인데, 여기에 호소다 마모루가 선택한 가족이라는 테마는 그 역시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걸, '늑대아이'에 이어 또 한 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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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 마모루는 '괴물의 아이'에서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택하는데, 이를테면 인간의 어두운 면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가슴에 구멍이 뚫리거나 그 구멍을 메우는 것의 치유 방식과 같은 것은, 아주 직접적인 방식이지만 어쩌면 애니메이션에서만 표현 가능한 형식으로 메시지 전달에 더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나쁜 생각 혹은 큰 상처를 받았을 때의 자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그 때의 감정으로 남게 되어 스스로를 앗아가게 된다는 설정은 메시지적으로는 물론 시각적으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작품 내내 꺼내들었던 허먼 멜빌의 '모비딕 (백경)'의 비유 역시 아주 직접적인 비유였다고 생각되는데, '모비딕'의 이야기가 결국 상대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괴물의 아이' 역시 앞서 말한 악한 감정으로 남게 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려내고자 했다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여기서 '괴물의 아이'가 더 좋았던 건 결국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하는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결국은 모든 것을 홀로 해내려 하지 말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들의 손을 뿌리치지 말고, 특히 가족이라는 존재가 자신 과의 싸움에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 내 편인지,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터 문구인 '함께라면 모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정말 대책없이 긍정적이고 뻔한 말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그럼에도 왜 함께라면 모든지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는, 아니 그렇다는 것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믿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그 영화의 믿음이 이야기의 힘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 '괴물의 아이'의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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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교가 큰 의미는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해보자면 '괴물의 아이'는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썸머워즈'와 '늑대아이'를 적절히 융합한 작품이다. 즉, 어느 작품이 더 좋냐고 물어본다면 앞선 두 작품을 먼저 이야기할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아쉬운 점들도 있었지만 (이 대부분의 아쉬움은 모두 엄청난 전작들 때문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함께와 가족에 대한 메시지는 이번에도 강렬했다. 자, 이제 다음 작품은 다시 '시달소' 같은 작품 한 번 만들어주세요.



1.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들 중 하나는 바로 렌의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이었어요. 몇 장면 안되고 매우 짧지만, 없으면 안될 만큼 중요한 장면이었기에.


2. 또 하나 좋았던 캐릭터는 이오젠의 아들 캐릭터. 여기서도 호소다 마모루의 성격을 알 수 있어요. 뭐 하나 나쁘기만한 캐릭터가 없죠.


3. 이 영화는 국내 개봉이 언제 될지 몰라 일본서 개봉했을 때 일찍이 보러 갔었는데, 처음 보고 바로 든 생각이 '아, 신주쿠가 배경이네..., 여기 또 다 다녀와야 하나 ;;;;'하는 행복한 고민이랄까. 실제로 이미 몇 군데는 다녀왔던 곳들도 있어서 루트가 바로 머릿 속에 그려지던...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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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피크 (Crimson Peak, 2015)

더 아프고 더 차가운 유령 드라마였다면...



유령을 볼 수 있는 소설가 지망생 ‘이디스’(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상류사회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으며, 글쓰기 외의 다른 것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영국 귀족 ‘토마스’(톰 히들스턴)를 만나게 되고, 둘은 순식간에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아버지 ‘카터’의 만류에도 불구, 이디스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영국으로 향한다. 아름답지만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저택 ‘크림슨 피크’와 토마스의 누나 ‘루실’(제시카 차스테인)이 그들을 맞이한다. 이디스는 낯선 곳에 적응하려 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존재들과 악몽 같은 환영을 마주하게 되고, 그녀 주변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게 되는데… (출처 : 다음 영화)


길예르모 델토로가 연출하고 톰 히들스톤, 제시카 차스테인,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출연한 공포/멜로 드라마 '크림슨 피크 (Crimson Peak, 2015)'는 배우들에 대한 믿음과 감독의 대한 믿음으로 보게 된 영화였다. 마치 팀 버튼 영화 같은 비주얼을 하고 있는 영화는 공포와 멜로를 조합한 드라마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기대되는 바는 역시 토토로, 아니 델토로 감독이라는 점이었다. 뻔한 멜로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어떤 생경한 비주얼을 보여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기대하는 바였는데, '크림슨 피크'는 한 편으론 뻔한 공포/멜로 드라마들 보다 더 나아가지 못했고, 다른 한 편으론 그들에게는 없었던 부분을 충족시켜 준 만족과 아쉬움이 딱 절반씩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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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피크'는 비밀을 갖고 있는 남매인 토마스 (톰 히들스톤)와 루실 (제시카 차스테인)이 이디스 (미아 와시코브스카)에게 접근하여 자신들의 저택인 크림슨 피크로 오게 되면서 겪게 되는, 비밀스럽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진짜일지 가짜일지 모를 토마스와 이디스의 멜로가 섞여 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이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 연출자가 길예르모 델토로라는 점에서 특별히 기대했던 점은, 멜로가 중심이 된 일반적인 드라마가 아닌 공포와, 특히 배경이 되는 크림슨 피크 저택의 활용 비중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로맨스의 비중은 생각보다는 컸으나 절절한 로맨스 드라마로 보기엔 부족한 수준이었고, 델토로 감독이 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후자의 경우도 무언가 하다 만듯한 느낌을 주는 수준이었다. 차라리 한 편의 연출 비중이 더 커서 컨셉을 확실하게 잡는 편이 더 나은 작품이 되었을 듯 싶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강조된 경우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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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델토로는 멜로와 공포, 그리고 본인이 공포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 큰 덕목으로 생각하는 슬픔을 함께 구성하려 했는데, 그것보다는 확실히 깊은 슬픔이 담긴 공포로 집중하는 편이 더 색깔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확신)한다. 예를 들면 토마스와 이디스의 멜로를 넣지 않고 실제로 토마스가 이디스에 대한 사랑 역시 자신과 루실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고, 그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이 무서운 두 명에게 맞선 이디스는 다름아닌 바로 크림슨 피크에서 죽음을 맞아 유령이 된 토마스의 전 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 슬픈 사연이 담긴 크림슨 피크 저택의 사연을 종결 짓는 이야기였다면 훨씬 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 본편에서도 후반부 저택 지하실에서 유령이 살아날 수 있는 복선을 깔아두길래, 후반부 이디스가 위험을 맞았을 때 이 유령들의 도움으로 살아남겠구나 싶었는데 의외로 이런 전개가 없어서 크게 아쉬웠었다 (사실 좀 놀랐다). 만약 그랬다면 사랑한 죄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토마스의 전 부인들의 유령의 슬픔이 깊게 묻어난, 그러니까 영화의 구도가 남매와 이디스를 포함한 전 부인들의 구도로 이뤄졌더라면 '판의 미로'까지는 어려워도 제법 깊이 있는 슬픈 유령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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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이런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크림슨 피크 저택의 고풍스러운 스타일과 인물들의 의상 등 미술적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차가움 만큼이나 시릴 정도의 공기가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아마 이 영화는 한 여름에 보았더라도 손이 시려울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시종일관 입김이 느껴지는 이 추위와 공기의 차가움은 '크림슨 피크'가 담고 있는 매력 포인트다.



1. 제시카 차스테인이 연기한 루실의 후반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럼 그렇지, 차스테인이 어떤 여자인데. 다른 차원에 있는 아버지의 신호까지 알아차리는 진념의 여성인데, 저 정도로 포기할리가 없지' 싶은 ㅋㅋ


2. 여러 편의 출연작을 보았는데 아직도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이름을 못 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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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포 (Citizenfour, 2014)

다음 사람들을 위한 프로파간다 영화



몇 해 전 에드워드 스노든 이라는 이름이 세상을 떠들석 하게 했었다. NSA 계약 직원이자 전직 CIA 분석요원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세상에 폭로한 극비 문서들은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한 미국민들과 외국인들의 전방위적인 감시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티즌포 (Citizenfour, 2014)'는 스노든이 로라에게 이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접근했던 시점부터 그가 가디언지 기자인 그린 월드 등과 함께 이 비밀과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그 이후 겪게 되는 일들까지를 그 여느 스릴러 영화 못지 않은 긴장감으로 묘사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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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이 폭로한 미국의 범죄행위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미국 정부는 단순한 의심 만으로도 자신들이 원하는 미국인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전화, 인터넷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네트워크를 이용해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했고, 이 같은 범죄는 단순히 미국 정부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군사정부와 몇 번의 정부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도청, 감시 등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는 어느 정도 인지되어 있는 사실인데, 그럼에도 '시티즌포'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누구에게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일단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전방위적인 감시 활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 입장에서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가 정말 영화보다 더한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여 질 것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현재의 감시 활동은 감시대상자가 자유를 박탈 당하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고, 이런 행위들의 접근 방식 역시 훨씬 더 자연스럽고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쓰는 전화나 노트북, 이메일 등을 통해 자신의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그 정보들을 분석하여 개인의 생활 패턴이나 이동 경로, 취향, 성향 등 모든 것을 분석하고 혹은 가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행위들이 테러 집단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한 개인으로서 공포감과 동시에 무력함이 느껴지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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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포'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정부의 다른 행위를 폭로하는 고발 다큐멘터리와 달랐던 점은, 어떠한 충격적인 사실을 파해치고 밝혀내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건인 만큼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라는 점과 정부의 불법사찰이라는 국내외 뉴스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아마 이 영화가 주는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티즌포'는 다시 한 번 말하는 것처럼 미정부가 얼마나 많은 인원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랫 동안, 얼마나 조직적으로 감시해 왔는 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가끔 그 자체가 폭로의 핵심이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있는데, '시티즌포'는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시티즌포'는 분명한 프로파간다 (선동) 영화다.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은 최대한 스노든의 의도를 퇴색시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스노든은 이 스캔들이 제보자 개인인 스노든 자신에게 집중되고 그로 인해 이슈가 함몰 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한다. 즉, 이 감시 행위라는 일종의 자유를 빼았는 범죄 행위가 단순히 정부의 일급비밀을 폭로한 한 제보자가 일으킨 스캔들로 포장되고 전파 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선구자라고 말하는 것 처럼, 이 영화는 이 충격적 사건이 계속 진행 중이고 피해자는 우리 모두이며, 이 싸움은 결코 쉽지 않고 오래 진행되겠지만 누군가는 계속 이어 나가야만 할,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키고 싸워야 할 가치가 달린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아, 저런 무서운 일이 있었네' '스노든이 대단한 사람이네' 라고 그칠 것이 아니라, 이런 정부와 권력의 조직적인 비윤리적인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해 한 명 한 명이 쉽지 않은 용기를 내어주길 강력하게 바라고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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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내에서도 이런 불법사찰, 핸드폰 도감청, 개인정보 누출 등 여러가지 형태로 개인의 자유를 국가나 권력이 억압하고 박탈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가끔 주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그 시스템을 잘 알면 알 수록 얼마나 디테일하고 무서운 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더더욱 별 것 아닌 것에도 조심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티즌포'는 용기 내어 공객적으로 말하라고 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의미 있고 현재에 간절히 필요한 이유다.



1. 다시 생각해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나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의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 자기 검열을 은연 중에 하게 만든 다는 건, 스스로에게 창피한 것도 창피한 거지만 그 보다는 이렇게 만든 이들이 명백히 잘못한 일인거죠. 움츠러들 수록 그들의 의도되로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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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Inside Men, 2015)

뜨거운 연기로 살려낸 암울한 현실



아마 '부당거래'를 본 관객이라면 '내부자들'을 보고 난 뒤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은 조폭, 검찰, 언론, 정부, 기업 등이 연루 된 이른바 권력 범죄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뭐 아시다시피 이 이야기는 결코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 가운데 누구 하나 마음껏 응원하거나 공감할 만한 캐릭터는 찾아 보기 어려우며, 권선징악을 무작정 바라는 것보다는 오히려 씁쓸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을 담고 있다. 또 다른 영화로는 역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을 들 수 있을 텐데, '베테랑'이 똑같이 암울한 현실을 유쾌한 방식으로 그려냈다면 '내부자들'은 그 암울한 현실의 커넥션과 세기의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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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런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의 관계와 범죄를 다룬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익숙한 시점에서 이 같은 영화가 인상적이려면 일반인들은 쉽게 예상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커넥션의 디테일과 판세를 뒤집을 만한 카드를 영화가 얼마나 잘 숨기고 또 잘 꺼내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내부자들'은 그런 측면에서는 완성도가 조금 아쉬웠다. 이 꼬인 현실 만큼이나 영화가 다루고 있는 권력 범죄의 구도는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그렇다보니 이 각각의 관계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에 조금은 버거움이 느껴졌다. 액션이나 감동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야기가 주는 반전이나 전개 과정의 긴장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이 같은 장르의 경우, 끝까지 그 짜임새를 유지하지 못하면 관객들 입장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되는데 '내부자들'은 중후반부로 갈 수록 조금은 완성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부자들'은 짜임새 측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거나 호평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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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내부자들'을 볼 만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확실하다. 이미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등의 배우들이 그 확실한 이유다. 올해 한국 영화에서 연기 측면으로만 보았을 때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이 대단한 배우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대단한 연기를 펼친다. 앞서 권력 범죄를 다룬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하다는 점과 마찬가지로, 조폭, 언론, 정부 관계자, 검찰 등 전문직 인물의 생활 연기 역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인데, 아주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 아님에도 '내부자들'의 배우들은 연기력만으로 그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살려낸다. 조연들의 연기들도 마찬가지다. 흔히 이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경우도 어느 정도 관성화 된 연기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조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서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새삼스럽지만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참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을 또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뭐,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 점도 있고 (이번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안상구라는 캐릭터는 묘하게 배우 이병헌을 겹쳐지게 하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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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부자들'을 제 2의 '부당거래' 혹은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조금 기대치를 낮추다면 배우들의 뜨거운 연기 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1. 참고로 CGV에서 관람하였는데 상영 전 나오는 '자랑스러운 나라' 광고와 이 영화가 보여준, 실제와 좀 더 가까운 현실의 괴리감은, 다시 한 번 이 광고를 하는 것이 홍보 측면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을 또 하게 만들었음.


2.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권력자들의 접대 장면의 수위가 조금 센데, 예전 같으면 '영화가 좀 심하네'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으나 언제부턴가 '현실은 더하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씁쓸한 현실이랄까.


3. 엔딩과 관련해서도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더군요. 우장훈 (조승우)이 과연 강 건너로 가지 않을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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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 (The Priests, 2015)

강동원이어서 가능한 매력적인 엑소시즘 영화



'검은 사제들', 무엇보다 '검은' 그리고 김윤석과 강동원이라는 조합 만으로도 이미 보통의 영화가 갖고 싶어하는 매력은 충분히 가진 채로 출발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 (The Priests, 2015)'은 그 매력을 끝까지 잘 활용해 낸 영리하고 매력적인 영화다. 엑소시즘이라는 우리나라 영화에서 흔히 찾아보기 힘든 소재와 신부복을 입은 강동원이라는 설정은, 안먹어도 배부른 반찬 같은 재료였는데, 하나 우려했던 건 그냥 재료로만 소비하고 마는 겉만 화려한 그런 영화가 아닐까 했던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무언가 특별한 설정이나 배우의 이미지를 가져오는 것이 너무 분명한 영화들의 경우, 그것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해 그냥 그런 영화가 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검은 사제들'은 기대 이상으로 영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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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놀랐던(?)건 이 영화가 엑소시즘을 다루는 방식과 비중이었다. 국내 상업영화에서 엑소시즘을 다룬다면 그저 커다란 설정이나 배경 정도로 활용하고 다른 갈등을 불러와 전개하는 경우가 예상되었으나, '검은 사제들'은 그야말로 엑소시즘이 중심이 된 그 자체의 영화였다. 물론 그 악의 기원이나 성장 등에 대한 과정과 설명을 역사적으로 풀어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가 택한 구성이 상업영화로서 거의 최적이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보여줄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정수를 이끌어 낸 편이다. 다시 말해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았다. 김윤석이 연기한 김신부 캐릭터의 과거나 트라우마 등을 드라마 적으로 길게 소개한다거나, 강동원이 연기한 최부제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딱 그 정도로만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쓸데없이 감동을 일으키기 위한 설정이나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바로 엑소시즘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이 작품을 끝까지 몰입도에 있게 즐길 수 있었던 요소였다.


부마자로 부터 사령을 끌어내기 위한 구마예식은 이 영화의 전부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구마예식을 이 정도 비중으로 전부로 만든 선택이 무엇보다 탁월했다. 그리고 이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구마예식을 관객들이 끝까지 몰입할 수 있도록 한 디테일들과 영화적 구성은 국내 영화에서 이런 수준의 엑소시즘 영화를 본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흥분되기까지했다. 이 작품을 보는 내내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콘스탄틴'이 떠올랐는데, 커다란 액션 없이 기도문 위주의 구마예식으로 '콘스탄틴'과 비슷한 재미를 이끌어 낸 것은 다시 생각해도 '검은 사제들'이 이뤄낸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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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매력적인 큰 이유 중 하나는 강동원이라는 배우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영화 역시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니까 영화가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의식해 일부러 캐릭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자체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여 이 캐릭터를 완성하고, 또 카메라도 최대한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마예식 중 최부제가 기도문과 외국어로 통역을 하는 장면의 경우, 이 긴장감과 몰입감에 적지 않은 이유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비주얼 그 자체였다. 키아누 리브스의 '콘스탄틴'이 그랬던 것처럼, 강동원의 '검은 사제들'도 강동원이어서 성립 가능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고 영화가 그걸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소담 배우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웰메이드 특수분장과 특수효과에 힘입은 그녀의 연기는 '검은 사제들'을 기억에 남는 엑소시즘 영화로 만든 포인트 중 하나였다. 관객을 그저 눈을 감았다 뜨거나, 갑자기 눈을 뜨거나 하는 것으로 놀래키는 수준이 아니라, 엑소시즘 영화답게 사령에 사로잡힌 (영화 내용상으로 보았을 땐 사로잡고 있는) 캐릭터를 이 보다 더 잘 연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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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적으로 보았을 땐 이 영화의 배경을 서울 명동 한복판으로 설정한 것이 인상적이었고, 영화는 반복적으로 이 사실을 인지시키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 인적드문 시골의 폐가나 외국의 오래 된 성당 등이 아니라,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동 한 가운데. 고몇 걸음만 나오면 바로 북적이는 상점들로 연결되는 이 골목과 건물에서 벌어지는 구마예식이라는 설정은, 이 엑소시즘 영화를 더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더 나아가 영화 속 대사로도 등장하는 것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일에 자의로 몸을 담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적지 않게 생각할 만한 거리를 주고 있어 이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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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속편의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이 이야기가 국내 시장에서 속편까지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검은 사제들'은 시리즈로 연결되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첫 번째 영화였다.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강동원이 출연했던 영화 중에 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작품이 하나 있었더랬다. '초능력자'라고. '검은 사제들'도 속편이 가능할까? 아마 안되겠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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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펙터 (Spectre, 2015)

어쩌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마지막



샘 멘데스가 연출을 맡았던 '007 스카이폴 (Skyfall, 2012)'은 007이라는 브랜드이자 자존심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자 온고지신의 정석이라 할 만큼 고유의 정통성에 대한 주저할 것 없는 인정과 자부심은 물론,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객관적 평가 (인정)와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다. 바로 그 다음 007 영화이자 다니엘 크레이그의 4번째 007 영화인, 그리고 샘 멘데스의 두 번째 007 영화인 '스펙터 (Spectre, 2015)'는 역시 역사성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수용하고 있는 긍정적인 평가와 작품성 측면으로 아쉬움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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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스펙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스카이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영화적 완성도 측면으로 보았을 때 스펙터는 전작에 크게 못 미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다니엘 크레이그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대의 007영화에 더 익숙한 관객들 입장을 고려한다면 더욱 밋밋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완성도 측면에서 보았을 때 '스카이폴'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구성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에 대한 다양한 은유를 이보다 더 적절히 녹여낼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낸 수작이었다. 비교에 앞서 '스카이폴'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는 이유는, '스카이폴'이 처해진 상황이 '스펙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펙터'의 처해진 상황도 그리 녹녹하지는 않았다. 전작 '스카이폴'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제임스 본드를 완벽하게 정의해 놓은 동시에 무엇보다 역사성을 부활 시켰다는 것은 속편에 대한 부담이 될 수 밖에는 없었을 텐데, '스펙터'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끝까지 불안정한 채로 마무리한 결과물 같았다.




007 스카이폴 리뷰 : 50주년을 맞는 시리즈의 완벽한 대답

http://www.realfolkblues.co.kr/1769





일단 풀어놓은 이야기의 욕심이 너무 컸다. 아마 이 욕심은 (또 어쩔 수 없이) '스카이폴'에 기인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카이폴' 역시 실패했다면 욕심이 너무 과했다 라는 평가를 들을 수 밖에는 없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스카이폴'의 성공은 또 한 번 거대한 이야기를 1편의 이야기에 완벽히 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을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건 과욕이었다. '스펙터'는 또 한 번 등장하는 거대한 악의 조직을 빗대어 제임스 본드의 가족사를 통해 이 캐릭터 만의 역사성, 그러니까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했던 제임스 본드의 역사성을 집대성하고자 한다. 일단 이 내용이 주가 되는 후반부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스카이폴' 만큼 좋을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본드가 자신의 얼굴과 지난 인연들을 마주하게 되는 일종의 게임 같은 전개는, 단순히 악당과 맞서는 긴장감 외에 더 깊이 있는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요소이자 이 시리즈를 즐겼던 관객들에게 큰 흥미요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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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후반부에 비해 초중반부의 전개나 이야기의 무게는 그리 탄탄하지 못했다. 초중반부 까지의 전개는 마치 클래식 007 영화를 보든 듯한 느낌의 익숙하고 안정적인 느낌으로 회귀한 듯 했는데, 이 방향성의 호불호 와는 별개로 후반부에 던지는 제임스 본드라는 인물에 대한 거대한 질문은 무언가 급작스럽고, 이 영화가 감당하기 버거운 주제처럼 느껴졌다.


난 '스카이폴'보다도 '스펙터'가 훨씬 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방향성에서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듯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이전 숀 코너리,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등이 연기한 제임스 본드와는 확연히 스타일이 달랐다. 그 다름에는 수긍할 만한 논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제임스 본드가 살인면허를 따기 전의 이야기,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을 떠나보내기 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직 투박하고, 그렇기에 액션이 강력하고, 존재의 대한 무거운 질문들도 '내가 아는 본드는 이렇지 않아'라는 불만에 대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제임스 본드는 '스카이폴'에서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스펙터'는 정확히 과도기 같은 느낌이었다. 이 작품의 본드는 살인면허를 갖고 베스퍼에 대한 감정도 거의 잊혀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이 일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는 동시에, 우리가 예전 007 영화에서 보았던 면모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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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로얄'을 통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올드 팬들은 '이건 본드가 아니야'라며 부정적 입장을 많이 내비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이슨 본과 같은 근육질과 맨몸 격투의 달인인 본드에게서는 로맨스를 즐기고 시종일관 여유와 유머가 묻어나는 기존의 본드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스펙터'의 제임스 본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과도기에 놓인 인물이다. 아직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남아있지만 한 편으론 전작들에는 없었던 부드러움이나 유머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의 연출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위기 뒤에 섹스라던가, 한 편으론 너무 수월한 탈출 같은 걸 보면 최근의 관객들은 허무함이 느껴질 정도로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 007의 오랜 팬들 같은 경우는 '본드는 원래 이래요'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펙터'는 호불호가 더 크게 나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일 것이다. 의견은 더 하자면, 나는 '스카이폴'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줄타기가 아니라 좀 더 한 편으로 치중한 성격의 영화이길 바랐는데, 영화는 한 번 더 중심 잡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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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어쩌면 이번 '스펙터'가 다니엘 크렝그 시대의 마지막 007 영화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생각을 했다기보다 그런 편이 이 007이라는 브랜드에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나는 이전 007 영화들도 대부분 재미있게 보기는 했었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에 더 열광했고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카이폴'에 감동한 관객으로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더 오래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흘러 온 과정이나 샘 멘데스가 '스카이폴'과 '스펙터'를 통해 풀어 놓은 이야기의 전개로 보았을 때 다니엘 크레이그 본드의 시대는 마무리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 더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만나게 될지 못할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결정이 나든 다음 007 영화는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들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 될 듯 하다.



1. 이번에도 오프닝이 끝내줍니다. 끝나고 자연스럽게 박수칠 뻔!

2. 다른 이야기지만 볼드모트와 모리아티의 대결이라니.... 특히 '셜록'에서 모리아티를 연기했던 앤드류 스콧의 'C' 역할은 여러가지 재밌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서 흥미로웠어요 ㅋ

3. 과연 다음 007 영화는 어떻게 될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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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 블루레이 리뷰 (Two Days, One Night : blu-ray review)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관한 딜레마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그리고 명확하다. 직장으로의 복직을 앞둔 산드라 (마리옹 꼬띠아르)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회사에서 자신의 복귀와 보너스를 두고 투표가 진행되었고 동료들이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 하지만 산드라는 반장의 강요에 의해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를 받고는 사장에게 재투표에 대한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이틀 동안 16명의 동료들을 일일히 찾아가 보너스 대신 자신에게 투표해 줄 것을 부탁한다. 줄거리는 명확하지만 이 이틀 간의 시간 속에 담겨 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산드라는 물론 이 동료들이 처한 딜레마는 인간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드라가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도 부탁도 아닌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최근 본 영화 속 장면들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또한 집중하게 되는 장면이었으며, 그 상황 속 인물들의 대화 내용 역시 수긍할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의 수긍이란 영화의 방향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산드라의 입장은 물론, 그녀가 만나는 회사의 직원들의 입장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는 없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르덴 형제는 우울증을 겪고 있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일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역시나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산드라의 입장과 1천 유로라는 현실적인 보너스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직원들의 입장을 모두 정당하게 대변한다. 이런 이야기를 다룰 때 영화가 흔히 '영화적'이게 되는 지점은, 주인공에게만 타당성을 부여해서 반대에 서는 이들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을 잃도록 묘사하거나 일종의 악당으로 묘사하게 되는 부분인데, '내일을 위한 시간'에는 이런 양분론이 없다. 보너스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녀의 복귀를 찬성하는 이들 가운데도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고, 반대로 보너스를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16명의 상황은 모두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어느 한 사람의 입장도 이기적이라고 쉽게 지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산드라와 직원들의 대화 가운데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나에게 투표해줄 수 있어요?'라고 묻는 산드라에게 직원들이 하나 같이 처음 묻는 질문이 바로 '누가 찬성하기로 했어요?' '몇 명이나 찬성표를 던진 데요?'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각자의 입장이라는 점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직원들 대부분이 양심과의 갈등을 겪는 가운데 다른 직원들, 즉 사회라는 구조의 보이지 않는 구속 혹은 힘(꼭 나쁜 의미만은 아닌)을 크게 염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문제가 명확한 정답이 없어 보인다는 바탕 아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크게 모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결정을 재고하려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한 편으론 이 같은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을 보며 '어쩌면 저렇게들 다 이기적이지'라고 쉽게 되 물을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 속에는 그러한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으로 남편의 모습에서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직원들을 만나 설득하기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영화가 이 딜레마를 풀어가는 방식은 극도로 현실적이고 객관적이다.






이 영화는 산드라가 동료들을 하나 하나 만나고 표를 얻거나 못 얻게 되는 과정을 진행하며 관객에게 각자의 가치관을 비춰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아마 다른 영화 같았으면 철저하게 영화가 만들어 낸 정서적 아우라를 든든히 얻으며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펼쳐나갔을 주인공 산드라는, 앞서 언급했듯이 철저히 객관적인 영화적 조건들 속에서 외롭게, 혹은 그래서 더 처연하게 이 짧고 고된 여정을 이어간다 (산드라가 왜 우울증을 겪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제시한 방식에 따라 이 영화를 읽어보자면, '착한 것은 좋지만, 착하지 않은 것이 곧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것에 기인해 상황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산드라의 복직을 찬성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복직 대신에 보너스를 택한 것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극중 산드라의 대사를 통해 이 부분은 여러 번 설명되는데, 이 상황은 산드라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회사가 선택한 것도 아닌, 그냥 상황이 벌어진 것에 가깝다. 다르덴 형제는 이 상황을 아주 특별한 사건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회사와 노동자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는 영화다. 

 

당신은 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보너스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산드라가 아니더라도 곧 누가 실직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저 같이 일하는 직원 이상의 관계도 아닌 한 사람을 위해 내 가정의 경제적 보탬과 직장의 안정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이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보다 조금 더 위대한 점이라면, 이 문제를 단순히 '용기'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용기에 관한 것으로 풀어냈다면 영화는 오히려 맥이 빠질 정도로 허무하고 단적인 영화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결말을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던 이 이야기를 영화가 어떻게 마무리 할까 몹시 궁금했었는데, 마지막 산드라가 남편에게 전화 통화로 이야기하는 말을 듣고 나니 다르덴 형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다르덴 형제는 이 정답이 없는 딜레마에 자신들만의 답을 내어 놓았다. 그리고 그 답은 관객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할까?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할까?



Blu-ray : Plain Archive Collection

 

매번 소장하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플레인 타이틀답게 이번 '내일을 위한 시간' 블루레이 역시 안 밖으로 꽉 찬 구성과 알찬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아트웍과 컬러를 달리 한 A타입과 B타입으로 나눠 출시한 블루레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웃케이스의 질감과 영화의 내용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소장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 잡는다.





▲ 위 쪽이 A타입, 아래가 B타입

 

 

플레인 블루레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성물인 소책자의 경우 이번에도 고심한 흔적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기존 소책자들과는 조금 달리 날개 커버 부착 형 중철 제본 소책자로 아웃케이스 내부에 수록했을 때의 사이즈를 고려하면서도 책자의 넘김의 편의와 보관을 신경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소책자에서 또 마음에 들었던 점은 바로 종이의 질감인데, 인쇄 되었다는 느낌이 강한 빳빳한 느낌의 종이가 아닌 '소책자'라는 구성물의 오리지널리티가 바로 느껴질 정도의 질감이 마치 작은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전달했다. 

 

내용적으로는 현 LA영화비평가협회 부회장이자 영화/음악 평론가인 팀 그리어슨의 글과 김세윤 영화칼럼니스트의 마리옹 꼬띠아르의 관한 글, 그리고 씨네21에 수록되었던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통찰력 깊은 글도 만나볼 수 있어 유익하다. 여기에 다르덴 형제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글과 매거진M과 맥스무비를 통해 진행되었던 감독과의 인터뷰 대화 내용도 수록되었다.





다른 구성물로는 고화질 아트 카드 및 미니사이즈 트레이딩 카드가 수록되었는데 이를 수록하고 있는 고급 봉투가 이번에도 눈길을 끈다. 플레인이 이번 블루레이의 컨셉 컬러로 선택한 핑크 컬러가 돋보이는 이 봉투에는 지난 번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비즈 왁스 봉인 되어 있는데, 지극히 소장하는 입장에서 꼭 그대로 살리고 싶었던 이 봉인 문장을 더 쉽게(?) 살릴 수 있도록, 기존 과는 다르게 구부려도 잘 깨지지 않고 고무처럼 구부러지는 형태의 유연형 비즈 왁스를 사용했다고 하니, 전혀 예상 못했던 업그레이드다.






Blu-ray : Video & Audio

 

1.85:1 의 화면비와 1080P의 풀HD를 수록한 블루레이의 화질은 다르덴 형제가 담아낸 놀라운 자연광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런 드라마 장르의 블루레이 화질을 이야기할 때 자주 하는 이야기처럼 화질의 좋고 나쁨이 최고 우선 순위의 요소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내일을 위한 시간' 블루레이의 화질은 큰 흠집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좋고,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와는 또 다르게 분명 우수한 화질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앞서 언급한 자연광의 표현력은 이 같은 블루레이 화질의 우수함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인데, 밝기에 따라 미묘한 차이로 발견할 수 있는 그늘진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묘사는 단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화질이며, 산드라가 내내 입고 있는 분홍색 민소매 셔츠의 색감이나 한 여름 낮 시간의 좋은 날씨의 느낌도 블루레이로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선명함은 이 같은 드라마 장르에서도 분명 화질의 우수함이 도움이 된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도 크게 흠잡을 부분은 없다. 다만 사운드 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화려함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대사 전달은 선명하고 (잘 알다시피 이 영화의 9할은 대화 시퀀스다) 다른 사운드들도 감상에 크게 부족함이 없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이전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 블루레이 타이틀을 리뷰 하면서 로컬 음성해설 트랙 수록에 대한 칭찬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 '내일을 위한 시간'에도 플레인 버전에만 특별히 로컬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다. 이번 음성해설에는 김혜리 씨네21편집위원과 최근 '베테랑'으로 13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감독인 류승완 감독이 참여하고 있다. 기존 씨네21 지면이나 이동진 평론가와 함께 한 팟캐스트 등을 접했던 이들이라면 김혜리 기자의 팬들도 많을 텐데, 김혜리 기자만의 섬세한 분석과 더불어 이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다르덴 형제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과 평가들을 들려주고 있어 러닝 타임 내내 빈틈 없이 즐길 수 있는 편이다.




PA013 '내일을 위한 시간' 로컬 코멘터리 프리뷰 from PLAIN ARCHIVE on Vimeo.



아마 처음 류승완 감독이 '내일을 위한 시간'의 음성해설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을 텐데, 그가 액션 영화 감독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평소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들을 즐기는 것은 물론, 다르덴 형제의 영화 역시 팬을 넘어서 존경하는 감독이었기에 이번 음성해설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의 감독으로서의 시선은 김혜리 기자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이나 평론가 입장에서는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시선으로 바라 본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대한 소개는 흥미롭고 신선했다. 영화 전체의 러닝타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참여한 음성해설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꼭 추천하고 싶다.





부가영상으로는 전체적으로 인터뷰 영상과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로 만나 볼 '다르덴 형제와의 대화'에서는 약 14분 분량으로 감독의 입을 통해 이 작품에 대한 집약적인 내용을 전해들을 수 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를 말하고 싶게 만드는 동시에, 감독은 과연 어떤 의도와 메시지를 담으려 했을까가 듣고 싶어지는데 이 부가영상은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는 편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10년 전의 일이었으며, 그 당시에는 마리옹 꼬띠아르를 고려하지 않았으나 나중에 다시 제작하게 되었을 때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 출연 당시 본 적이 있는 그녀를 고려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다르덴 형제는 <러스트 앤 본>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마리옹 꼬띠아르와의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모두와 동일한 조건으로 촬영에 임해야 한다는 조건에서는 그들의 영화만큼이나 제작 방식에 있어서도 노동자 중심의 성향을 읽을 수 있었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리허설 방식에 대해서도 살짝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 감독과의 대화 영상이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특별히 좋았던 건 다르덴 형제의 영화인 만큼 질문의 수준도 뻔한 신변잡기나 에피소드 중심이 아닌 영화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들이었다는 점이다. 플랑 세캉스 기법을 선택하게 된 이유나 연출 방식에 대한 철학을 끌어낼 수 있는 질문들은 여러 모로 유익했다.





감독과의 대화와 동일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마리옹 꼬띠아르와의 대화' 부가영상은 그녀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았던 다르덴 형제 영화의 출연 소식에 대한 소감으로부터 시작된다. 평소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특별히 동경하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캐스팅이 그들의 필모그래피에 특별한 이벤트가 되기 보다는, 이미 익숙한 다르덴 형제의 영화 이길 바랬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그녀가 동경하던 그들의 영화임을 알고는 무척이나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외에 산드라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준비했던 점들이나 다르덴 형제 영화 특유의 리허설 작업에 대한 경험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인터뷰 내내 진심으로 다르덴 형제와 함께 작업한 것에 대해 아직도 무척이나 행복해 하고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이 부가영상에는 2014년 7월 파리에서 진행된 별도의 인터뷰 내용도 함께 수록되었다.





'파브리지오 롱지온과의 대화'에서는 남편 역할을 연기한 파브리지오 롱지온과의 대화 영상도 만나볼 수 있는데,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여러 번 출연한 배우답게 감독과의 만남과 그들의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가 연기했던 다르덴 형제의 다른 영화 속 캐릭터들과 이번 영화의 캐릭터와의 비교에 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예고편'에서는 이 작품 ‘내일을 위한 시간’과 마리옹 꼬띠아르의 주연작이자 플레인의 전작인 ‘러스트 앤 본’ 그리고 최근작으로 역시 마리옹 꼬띠아르의 출연작인 ‘이민자’의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참고로 ‘이민자’ 역시 플레인 아카이브를 통해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총평]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을 맡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고민하게 되는 딜레마에 대한 극도의 현실적인 질문이자, 그 과정과 결말을 통해 관객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는 의미 깊은 작품이었다. 플레인을 통해 출시 된 블루레이는 이 버전을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음성해설 트랙과, 블루레이는 안 봐도 책장에 하나 꽂아 두고만 싶은 매력적인 디자인과 구성물로, 이번에도 또 소장하고픈 최상급의 제품이라 부르기에 손색 없는 타이틀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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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타카의 레드필]

그래도 또 몬타우크행 기차를 탈거야



찰리 카우프만이 쓰고,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이 개봉 10주년을 맞아 다시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인생의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은 그 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었는데, 또 다시 보게 된 이 놀라운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 혹은 새로운 영화가 되어 있기 보다는 오히려 맨 처음 보았던 10년 전의 그 영화처럼 두근거림 가득한 영화가 되어 있었다.


한창 씨네필들 사이에서 이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 그랬던 것처럼 찰리 카우프만이 설계한 이 기억의 퍼즐 맞추기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가 해피 엔딩인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결론적인 것에서부터, 그 타임라인의 순서 맞추기에 있어서 어떤 것이 더 먼저인지에 대한 담론은 이런 장르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연구하고픈 흥미요소가 충분했었다. 나도 한 때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따져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분명 정답에 대해서 까지 분명히 확인했음에도 그 기억은 시간이 갈 수록 흐려졌다. 보통 반복 관람을 하는 경우 이런 팩트에 관한 것은 더 깊이 각인되기 마련인데, '이터널 선샤인'은 정반대로 보면 볼 수록 그 기억만은 점점 지워져 가는 듯 했다.


그리고 또 다시 보게 된 '이터널 선샤인'은 이제는 무엇이 먼저 일어난 일인지, 엔딩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에만 빠져들고 말았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나누는 모든 대화들은 그 시간 순서와는 별개로 하나하나 움찔움찔 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연애를 오래 한 커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다투거나 혹은 한 마디만 더 하면 되었을 것을 하지 못해 후회할 일을 만들거나 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관계에서는 그 열정과 냉정이 모두 느껴져 몹시 치명적이었다. 만약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열정과 냉정의 대화나 상황이 한 100가지 쯤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처음엔 한 2~30개 정도에 공감했었다면 지금은 한 7~80개 정도를 공감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이미 수 없이 반복하고 외우다시피 한 대사들이었는데, 그 변함 없는 대화들이 내가 그간 겪은 시간들과 내가 연인과 나눈 대화들로 인해 더 깊이 있는 대사들이 되어 있었다.


'이터널 선샤인'은 얼핏보면 후회에 관해 인정하는 수동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어차피 또 그럴 꺼니까 그냥 인정하자 라는 약간의 자조적인 느낌이 드는데, 사실은 정반대로 또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래도 또 사랑할 거라는 더 저극적이고 열정적인 이야기라는 걸 오늘 다시 보고 알 수 있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다시 만나도 또 후회할 일이 발생할 거고, 어쩌면 또 다시 서로를 너무 힘겨워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길 바랄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영화의 엔딩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다시 반복된다해도 뭐 어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다시 만나보고 싶어' 정도의 희망적 느낌이었다면, 이번에 본 '이터널 선샤인'은 그보다는 훨씬 더 강하게 '다시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난 너를 꼭 다시 만날거야'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즉, '다시 만나게 되면 이번엔 분명 다를 꺼야'가 아니라 '또 반복을 피할 수 없더라도 난 너를 선택할거야'에 가까운 더 큰 범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라는 이야기보다도 더 강력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난 후회할거야. 그래도 내 선택은 변하지 않아'

'난 그래도 또 몬타우크행 기차를 탈거야'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 2015)

신념을 지켜낸 자들의 우화 혹은 실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핵무기 전쟁의 공포가 최고조에 오른 1957년, 보험 전문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의 변호를 맡게 된다. 당시 미국에선 전기기술자 로젠버그 부부가 원자폭탄 제조 기술을 소련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간첩죄로 사형된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반공운동이 극에 달했던 단적인 예로 적국의 스파이를 변호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일이었다. 여론과 국민의 질타 속에서도 제임스 도노반은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며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 아벨의 변호에 최선을 다한다. 때마침 소련에서 붙잡힌 CIA 첩보기 조종사의 소식이 전해지고 제임스 도노반은 그를 구출하기 위해 스파이 맞교환이라는 사상 유래 없는 비밀협상에 나서게 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인인 변호사 도노반이 스파이 맞교환 비밀협상에 나서게 된다는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코엔 형제가 각본을, 야누즈 카민스키의 촬영 그리고 톰 행크스가 주인공 도노반을 연기한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 2015)'는 시놉시스를 통해 예상할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 소개에 앞서 이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이름을 굳이 나열한 이유는, 여러 번 반복 된 아주 새롭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이 베테랑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그 완성도로 인해 또 한 번 볼만한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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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결국 신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철저하게 국가의 입장과 이익이 대변되던 시절, 다소 이상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신념을 지켜 낸 주인공 도노반과 스파이로 구속 된 루돌프 아벨 (마크 라일런스)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공기와 더불어 인간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거대한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도노반이라는 캐릭터는 톰 행크스의 연기를 통해 또 한 번 설득력 있게 묘사되고 있으며, 실제로는 스파이 행위에 대한 내용은 없는 이 영화에 스파이 영화의 공기를 불어 넣는 아벨 역의 마크 라일런스는 확실히 이번 영화의 발견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 단락에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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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브릿지'는 결국 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비밀협상을 이상적으로 이끌어 낸 도노반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데, 영화가 내내 말하고자 했던 신념과 특히 후반부 도노반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내가 떳떳하면 그걸로 된거죠'라는 식의 대사는 조금 다른 결말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더 쓸쓸한 결말. 그러니까 결국 이데올로기나 다른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단순하게 자신의 일과 신념에 끝까지 충실했던 사람들을 그리면서, 결국 세상은 이런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는 (인정하지 않았다는) 결말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신념에 대한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마무리 된 뒤 뉴욕으로 돌아온 도노반이 지하철 밖 풍경을 통해 결국 동독내의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것 처럼, 집으로 돌아온 그를 아내가 모르는 척 말 없이 이해해주는 것이 더 강렬한, 즉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라는 메시지 전달 측면이나 실제 이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 따듯한 위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영화적으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결말은 오히려 조금은 기운이 빠지는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묘사들을 비롯해 아벨을 뒷자석에 태우는 것도 그렇고, 이 영화가 쓸쓸하게 끝낼 것만 같은 뉘앙스를 너무 주었기 때문에 이런 아쉬움이 더 들기도).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영화가 끝나고 실존 인물들의 뒷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뭐랄까 실화가 더 영화적이고 말이 안되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실화입니다'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였기에 차라리 실존 인물들의 후일담으로 마무리 하는 대신, 쓸쓸하게 결국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다는 것으로 마무리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그래도 남았다 (왜 이렇게 쓸쓸한 엔딩에 집착하는가...).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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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무리 방식은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스파이 브릿지'는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만큼 짜임새 있는 작품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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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남자 (The Walk, IMAX 3D, 2015)

한 남자와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에 대한 송가



로버트 저메키스의 '하늘을 걷는 남자 (The Walk, 2015)'는 실제로 뉴욕 월드 트레이딩센터 빌딩 사이를 밧줄로 연결하여 건너고자 했던 필리페 페티의 실화를 담고 있다. 아마 이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보다 앞서 필리페 페티의 이 사건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 '맨 온 와이어 (Man On Wire, 2008)'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늘을 걷는 남자'는 '맨 온 와이어'와 거의 똑같은 구성을 갖고 있는 극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면에서 '맨 온 와이어'가 더 매력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일종의 관람 순서도 영향을 전혀 끼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맨 온 와이어'가 워낙 좋았던 작품이라 '하늘을 걷는 남자'가 도달하기엔 처음부터 쉽지 않았던 경지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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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저메키스가 이 영화를 만들 때 '맨 온 와이어'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묘사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야기의 구성이야 실화를 배경으로 했음으로 크게 다를바 없다해도 필리페를 화자로 내세운 것도 '맨 온 와이어'와 유사한 방식이었는데, 애정하는 조셉 고든-레빗의 프랑스인 연기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실제 필리페 페티의 화술과 매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기에,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비교되는 포인트였다. 사실 '하늘을 걷는 남자', 아니 이 필리페 페티의 실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맨 온 와이어'를 통해 다 했었기 때문에 특별히 다시 할 이야기는 많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하늘을 걷는 남자'가 '맨 온 와이어'와 달랐던 점은 쌍둥이 빌딩으로 불리우는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맨 온 와이어'의 경우 철저하게 필리페 페티가 아티스트로서 이 빌딩 사이를 건너는 그 순간과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면, '하늘을 걷는 남자'는 구성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정서적으로는 필리페 보다도 오히려 쌍둥이 빌딩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즉,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9.11로 인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이 건물에 대한 일종의 송가처럼 느껴지는 연출을 자주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주인공 필리페가 이 빌딩을 바라보는 여러 시점 샷들에서는 단순히 3D 기술을 활용한 기술적 측면 외에도 마치 죽음을 맞이한 한 빌딩이 막 탄생했던 순간을 그리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히 단순히 높이에 대한 경이로움의 시선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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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남자'가 그래도 볼 만한 건, 오랫동안 3D 영상에 매진해 왔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한 적절한 3D 소재 영화라는 점이다. 아마 저메키스에게는 어떠한 액션 판타지 영화보다도 이 이야기에서 3D 영상에 대한 매력을 느꼈을지 모르겠는데, 엄청난 고공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줄타기의 순간은 3D 영상을 통해 더 실감나고 집중하게 되는 장면을 선사한다. 사실 이 부분은 '하늘을 걷는 남자'의 분명한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지만, '맨 온 와이어'를 먼저 본 입장에서는 이 부분 마저 조금은 이 작품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지점이었다. 왜냐하면 '하늘을 걷는 남자'가 그리는 고공 줄타기의 순간은 체험하는 느낌과 필리페의 정서를 모두 담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맨 온 와이어'는 3D기술 없이도 다큐멘터리 장르를 통해 이 장면을 더 극적이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맨 온 와이어'는 정서적인 만족감과 동시에 체험하는 느낌마저 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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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얘기해서 이 작품을 재미있게 관람하긴 했으나 막상 글을 쓰려니 '맨 온 와이어'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보니 모든 면에서 아쉬운 것처럼 풀어낼 수 밖에는 없는 형편이다. 만약 '맨 온 와이어'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나와는 조금 다르게, 훨씬 더 재미있게 이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하지만 나처럼 이미 손꼽히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던 '맨 온 와이어'를 본 이들에게는, 거의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된다. 기승전맨온와이어.



1. '맨 온 와이어'는 예전에 하이퍼텍나다 에서 관람했었는데, 그 기억이 생생하네요. 아래는 그 때 작성한 리뷰 입니다. 이걸 읽으시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네요 ^^;


맨 온 와이어 _ 한 편의 시와 같은 찰나의 여정



2. '맨 온 와이어'는 특히 음악이 아주 좋은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은 좀 음악이 아쉬웠어요.


3. 영화의 의도는 분명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에 대한 송가에 가까운데, 북미 성적을 보면 아무래도 미국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엔 보는 자체로 고통스러운 측면이 여전한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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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우리는 감정 매트릭스에 산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하는 호텔이 있다. 이 호텔에서는 약 45일의 유예기간 동안 호텔에서 머물며 자신의 짝을 찾아야 하고, 혼자보다 짝이 있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 것인지 (이를테면 혼자 식사하다가는 목에 무언가 걸려 바로 사망할 수 있지만, 커플이라면 등을 두드려줘 살아날 수 있다든지)를 열심히 교육하고, 기간 중 사냥을 나가 외톨이 사냥에 성공하면 1명 당 1일 씩 유예기간을 늘려주기도 한다. 또한 기간 내에 짝을 찾게 되면 역시 약 4주간의 시간을 주고 진짜 커플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갖는다.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벤 위쇼, 존 C.라일리 등을 만나볼 수 있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는 현대 사회에 대한 거대한 풍자이자 단순한 블랙 코미디 이상의 절제됨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는 설정 등 일종의 판타지 성격을 갖고 있는 이 영화는, 철저하게 이 시스템과 영화적 설정에 충실함을 통해 더 큰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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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의 캐릭터들에게서는 거의 감정이 발견되지 않는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지만 다들 절대 동물이 되지 않을꺼야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 기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어떤 동물이 될지를 더 고민한다. 꼭 커플이 되고자 하는 이들조차 감정적 요인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일종의 테스트에서 낙오되지 않겠다는 정도의 의욕 만이 느껴질 뿐이다. 극 중 벤 위쇼가 연기한 캐릭터가 그런 점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의 목적은 진정한 짝을 찾겠다는 것 보다는 유예기간 동안 짝을 찾고 다시 4주간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만 탈출할 수 있는 거대한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더 철저하고 정반대로 감정적으로 절제되어 있다.


콜린 파렐이 연기한 데이비드 역시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짝을 찾는 것에 성공하지만 결국 호텔을 탈출해 다른 세계에 속하게 되는데, 이 세계는 호텔과는 정반대의 세상이다. 레아 세이두가 연기한 캐릭터가 대장으로 존재하는 이 시스템 밖의 또 다른 시스템 사회는 오히려 커플을 증오하는 세상이다. 철저하게 혼자만이 의미 있다고 여기며 커플이 되고자 이른바 수작을 부리면 스스로가 판 무덤에 묻어 버리곤 한다. 데이비드는 여기서 만난 여자 (레이첼 와이즈)에게 사랑을 느끼고 이 곳 마저 떠나려고 한다. 보통 억압된 시스템에 관한 영화에서 그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느낀 주인공 (혹은 안드로이드)이 각성하여 그 시스템을 탈출하는 이야기를 담는 경우는 많은데, '더 랍스터'는 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바로 주인공의 각성이 없다. 데이비드는 이 시스템들에서 모두 탈출하고자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불합리함을 느꼈다거나 업악되어 있던 감정이 살아났다거나 하는 각성의 과정이 없다. 다시 말해 각성한 듯한 행동을 하지만 이미 시스템에 억압 되어 익숙해진 이들에겐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에 등장했던 어떤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보다도 이 영화의 인물들은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


(다른 단락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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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은 더 의미 심장하다. 결국 모두에게서 탈출하고자 한 데이비드는 이 과정 속에서 탈출 계획을 알게 된 대장이 장님을 만들어 버린 그녀 (레이첼 와이즈)와 함께 도시로 탈출하는 것에 성공하지만, 결국 그가 결심한 것은 자신 역시 장님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영화는 데이비드가 결국 자신의 눈을 찔렀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장면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거의 영화 내내 처음으로 데이비드가 감정을 조금이나마 드러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그것이 두려움이든 다른 혼란이든 간에 자신을 눈을 찌르려는 것을 망설인다. 결론적으로 그가 어떤 행동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이것은 감독이 이 감정이라곤 모두 거세 된 이야기 속에 조금이나마 남겨두고자 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다. 영화의 엔딩은 오히려 데이비드가 스스로 장님이 되었을 확률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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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더 랍스터'는 개개인의 감정마저 강요 받고, 더 나아가 그 강요조차 당연하다고 여기고 어떻게든 그 시스템에 충실하고자 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아주 차갑게, 감정 한 톨 없이 그려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배경이 되는 호텔이나 도시, 그 길에 있는 갈대숲이나 외톨이들이 모여있는 숲속의 풍경은 아름다운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만약 커플이 되지 못했다면 무슨 동물을 택했을까. 랍스터는 아닐 것 같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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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Avengers : Age of Ultron _ Bluray review)

블루레이 리뷰


마블의 히어로들을 하나의 영화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일종의 올스타전 격인 '어벤져스' 는 처음 '트랜스포머'가 그랬던 것처럼 원초적인 쾌감을 선사하는 훌륭한 오락 영화였다. 조스 웨던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각 캐릭더들의 장점들을 하나의 영화에 잘 녹여 냈고, 단순히 볼거리 만을 늘어 놓은 것이 아닌 (그래도 괜찮은데) 각자의 영화에서 진행되었던 이야기들의 흐름을 이어가는 줄거리까지 완성시키면서, 기존 코믹스의 팬들과 일반 대중들 모두에게 환영 받는 작품을 만들어 냈었다. 

 

하지만 이 작품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그것 만으로는 양쪽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없는 태생적 조건을 갖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과연 확장되어 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하나로 중간 정리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이 작품이 어떤 완성도와 방향성을 갖고 있을 지는, 영화 자체의 재미만큼이나 궁금한 포인트였다.






영화 화 된 '어벤져스'는 특히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 를 기점으로 확연히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단순히 코믹스를 영화 화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립적인 영화로서도 충분한 완성도와 이야기를 갖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대부분의 캐릭터들의 각자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어벤져스는,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어벤져스의 이야기를 떡밥으로, 혹은 주요 테마로 등장 시키면서 팬들로 하여금 다음, 더 나아가 그 다음까지 기대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이러한 성공이 계속 될 수록 오히려 부푼 기대감에 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조스 웨던의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비교적 재미와 이 작품이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기능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조금 아쉬운 점은 바로 편집과 특유의 유머에 있었다. ‘어벤져스’라는 또 하나의 프랜차이즈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수 많은 캐릭터들이 단순히 등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누구는 새롭게 등장해 소개부터 해야 하고, 누구는 이미 본인의 독립된 영화에서 진전된 이야기나 갈등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이어가거나 혹은 풀어내야 하며, 누구는 출연 시키되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그리는 가에 따라 작품 자체의 구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편집 포인트는 어쩔 수 없이 그리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다. 단서를 던지거나 전개를 위해 반드시 삽입은 해야 하는데 풀어내는 연출에 있어서는 기복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부 장면에서는 애매하게 다음으로 점프하는 장면들도 있었고, 단순히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 외에 전개의 기능은 하지 못하는 장면들도 여럿 있었다.





또 하나,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이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상당히 유쾌하다는 점인데, 이번 작품은 앞선 이유와 마찬가지로 유머 역시 여러 캐릭터들의 이해 관계에 맞게 해결하고 전개해야 했기 때문에,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으나 실제로 공감할 만큼 유머러스 하지는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아쉬움을 꼽자면, 바로 캐릭터들 각자가 겪게 되는 갈등에 관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번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깊게 고민하고, 더 나아가 '시빌 워'의 초석이 되는 고민과 갈등이 바로 여기서 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아이언맨 2, 3'편을 거치면서 점점 부각되고 있는 토니 스타크의 고민과 갈등은 이번 작품에서 주요 포인트가 되며, 캡틴과 헐크, 블랙 위도우, 토르 모두 마찬가지의 갈등을 겪게 된다. 

 

이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시간 상의 한계라고 생각되는데, 굉장히 중요한 고민 포인트 임에도 더 깊이 있게 비중을 둘 수는 없었던 시간적 한계가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 짧은 한 편의 영화 속에서도 각각의 고민을 효과적으로 묘사해서 만족스러웠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호불호 포인트).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같은 작품은 사실 엄청난 기대 속에 관람하기 때문이지, 객관적으로 보자면 사실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큰 손색 없이 재미있는 편이다.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의 영화들은 그 광대한 세계관을 더 많이 알면 알 수록 보이는 것도, 흥미로운 것도 많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장면 하나 하나 대사 하나 하나도 놓칠 수 없게 다양한 떡밥들을 주기적으로 노출하고 있는 구성은, 그 자체로 팬들을 위한 장치이자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리고 다시 얘기하지만 '어벤져스'는 어쩔 수 없이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하는 흥분 포인트가 존재하는 영화다. 영화 말미에 울트론과 결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모든 히어로들이 한 곳에 모여 (마치 게임처럼) 자신의 필살 공격을 퍼붓는 장면에서는 우리가 히어로 영화를 볼 때 기대하게 되는 바로 그 원초적인 쾌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특별히 궁금했던 국내 촬영 분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생각보다 훨씬 분량이 많아서 사뭇 놀랐다. 그저 수 많은 로케이션 중 한 곳으로 한 두 장면 스쳐가는 것이 아닐까 했으나, 주요 로케이션 장소로 다양한 액션 시퀀스가 벌어졌는데 우리나라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옥의 티라던가 (블랙 위도우의 공간 점프), 아무래도 눈과 귀에 들어올 수 밖에는 없는 한글 간판과 우리 말 대사들로 인해 소소한 영화 외 적 재미도 없지 않았다. 기존에 한국을 다뤘던 영화들과 간단히 비교해 보자면, 서울이라는 장소를 아주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오해하지도 않은, 딱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 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반대로 무언가 서울이라는 도시가 특별한 포인트가 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비춰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 등장한 캐릭터 만을 두고 보았을 때 울트론이라는 캐릭터는 이것 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파워와 더 깊이 있고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을텐데, 조금은 쉽게 (혹은 갑작스럽게) 무너져버린 경향이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 어벤져스 멤버들과 만났을 때 대화 시퀀스의 무게감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팽팽하게 가져갔더라면, '윈터솔져'가 그랬던 것처럼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되었을 수 있었을 텐데, 한 편으론 그러기엔 이 작품이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다시 말해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완성해야 하는 기능적인 의무가 있는 동시에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독립적으로도 충분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또 다른 의무가 있는 영화라는, 일종의 확장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수 많은 캐릭터들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도 마블의 영화들이, 특히 어벤져스 시리즈가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균형이 아닐까 싶다.






Blu-ray : Video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블루레이의 화질은 역시 기대했던 것답게 충분한 볼거리와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는 만족스러운 화질이다. 많은 CG와 다수의 렌더링 작업을 거친 영상은 블루레이 영상에서도 특별한 이질감을 주지 않고 비교적 자연스러운 영상을 보여주며, 로케이션 촬영 분에서는 특히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은 작품의 성격 답게 어두운 장면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블랙의 표현력도 준수한 편이라 어두운 장면에서의 감상도 불편이 없는 편이다. 헐크와 헐크버스터의 대결 장면의 경우 전혀 다른 질감과 성질의 표현력을 확인할 수 있는데, 격한 결투로 인해 더럽혀진 헐크의 피부 표현력은 더 디테일 해 졌으며 헐크버스터의 금속성 표면의 경우도 그 질감의 디테일이 확인 가능한 수준의 화질을 제공하고 있다.







Blu-ray : Audio

 

DTS-HD MA 7.1 채널의 사운드는 전반적으로는 준수한 편이나 기본적인 볼륨에 있어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히어로가 총출동하는 첫 시퀀스에서는 사운드 측면에서 기대할 만한 다양한 조건들을 갖춘 장면이라 하겠는데, 기본적으로 세팅 된 볼륨의 레벨이 낮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날카롭거나 화려하기 보다는 상당히 절제된 느낌의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액션 블록버스터의 화끈한 사운드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조금은 감흥이 덜한 사운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우퍼 역시 상당히 절제 된 울림을 들려주며, 채널 분리도 역시 귀가 바로 바로 반응할 만한 화려함까지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대사의 전달력은 상당히 선명하며, 밸런스 측면에서는 좀 더 나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사운드라고 할 수 있겠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루레이의 부가 영상으로는 조스 웨던 감독이 참여한 음성해설과 몇 가지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이 수록되었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인기에 비했을 때 그리 풍부한 부가 영상은 아니라 할 수 있는데, 조스 웨던 감독의 음성 해설이 이러한 아쉬움을 조금 이나마 달래준다.






제작과정 부가영상 중 첫 번째 챕터인 ‘어벤져스 : 에이즈 오브 울트론 메이킹 영상’은 약 20분 분량으로 전편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완성된 팀웍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배우들의 반가운 촬영 소감으로 시작된다. 울트론 역할을 맡은 제임스 스페이더의 연기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단순히 목소리 연기 정도가 아니라 모션 캡쳐 방식으로 촬영되어 특수 수트를 입고 모든 장면을 직접 연기하는 모습은 스크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인 것은 물론, 제임스 스페이더라는 배우와는 쉽게 매치 시키기 어려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아공에서 촬영된 헐크와 헐크버스터의 촬영 뒷이야기와 실제 이 시퀀스가 완성되기까지 사용된 다양한 효과들에 대한 소개도 수록되었다. 그리고 국내 관객들에게는 더 특별할 수 밖에는 없을 한국 촬영에 대한 내용도 제법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데, 메이킹 영상 형태로 보니 서울에서 촬영한 것이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The Infinite Six’에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하나로 연결하는 중요한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인피니티 스톤에 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타노스 그리고 인피니티 스톤 중 영화에 등장한 4개의 스톤에 대한 각각의 짧은 소개와 함께 어떤 마블 영화 속에서 등장 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이해하는 데에 유익한 영상이라 할 수 있겠다.






‘Global Adventure’에서는 우리나라 서울을 비롯해 이탈리아와 영국, 남아공 등의 다양한 로케이션 촬영지에 대한 내용이 짧게 수록되었다.






‘삭제 및 확장 장면’에서는 총 4개의 시퀀스가 수록되었는데 조스 웨던 감독의 음성 해설이 옵션으로 추가되어 장면에 대한 설명과 수록되지 못한 이유 등에 대해 들을 수 있다. 4가지의 삭제 장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건 토르가 노른을 만기 위해 동굴에 가는 시퀀스인데 전체적으로 어벤져스에 수록되기에는 내용이 어렵고 토르에 수록될 법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삭제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NG모음’과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총평]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또 한 번 정리하고, 앞으로 있을 ‘시빌워’를 예상할 수 있는 전개와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들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블루레이의 경우 좀 더 다양한 부가 영상 수록이 조금 아쉽지만 전반적으로 만족할 만한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어 또 한 번 ‘어벤져스’의 흥분을 느껴보고 싶다면 선택에 주저할 필욘 없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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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타카의 레드필]

나는 이제 미래에서 온 사나이



이제 현재도 아닌 과거가 되어 버린 2015년 10월 21일. 이 날을 맞춰 특별 상영을 했던 '빽투더 퓨처 2'를 극장에서 관람하였다. 이미 화제가 된 것과 같이 이 날은 바로 '빽투더 퓨처 2'의 배경이 된 미래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날 영화를 예매할 때만 해도 한 편으론 단순한 이벤트적인 느낌이 더 강했었다. 그러니까, 바로 그 날 바로 그 영화를 보게 된다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의 팬으로서 흥분되는 동시에 또 다른 값진 추억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마티와 브라운 박사의 입을 통해 미래로 묘사되는 2015년 10월 21일을 만나게 되니 기분이 예상보다 훨씬 더 이상했다.


그 짧은 순간 스쳐간 여러 감정들 가운데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 적어보자면, 대부분 아쉬움과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아련함이랄까. 2015년 10월 21일처럼 정해진 구체적인 미래라는 시점은 당연히 언젠가는 맞닥들이게 되는 순간일텐데, 막상 그 순간을 겪게 되었을 때 오만가지 감정이 스쳐지나갔던 것은 아마도 언제까지나 미래로만 남을 것 같았던 시간이 더 이상 미래가 아니게 된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뭐 하나를 또 잃어가는 듯한 느낌. 마치 '서른 즈음에'의 가사처럼 영원히 미래일 것만 같았던 시간과 이별하는 것만 같아 묘한 슬픔 감정이 들었다.


실제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80년대 당시 예상했던 2015년의 모습과 실제 2015년의 모습과의 차이를 비교하며, 어떤 것들은 이뤄졌고 어떤 것들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는지 같이 흥미 위주의 내용에 나도 더 관심이 갔었는데, 막상 접하게 된 이 '미래의 현실'은 전혀 다른 감흥이었다.


그렇게 컵스는 영화 속 미래를 실현하는 듯 했으나 월드시리즈에 오르지 못했고, 자동차를 타고 날아가다가 길이 막혀서 약속에 늦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은 영화 속 80년대 카페처럼 마이클 잭슨을 추억하게 된 것은 같았다. 아마 영화도 마이클 잭슨이 존재하지 않는 2015년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또 웃을 수 만은 없었던 장면이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이제 미래에서 온 사나이가 되었다.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빽투더 퓨처 데이 스페셜 아이템은 감동 그 자체!


한국 시간으로 어제, 미국 시간으로는 오늘인 2015년 10월 21일은 영화 '빽투더 퓨처' 팬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기억할 만한 날일 것이다. 바로 1편의 마지막에 마티와 브라운 박사가 마티의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로 떠나게 되는데, 바로 그 미래의 시점이 2015년 10월 21일인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날도 아니고 10월 21일에 '빽투더 퓨처 2'를 극장에서 관람한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일종의 이벤트였는데, 감사하게도 이런 이벤트를 더 풍성하게 해줄 만한 특별 아이템이 제작되었다. 어제 내가 관람한 상상마당에서의 특별 상영은 관객 전원에게 이 아이템을 제공하는 것으로 공지되어 약 2분만에 매진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행히 서둘러서 좋은 좌석을 예매할 수 있었다 (참고로 다른 극장에서는 예매자 추첨이나 선착순 등의 이벤트를 통해 소량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받아보게 된 빽투더 퓨처 스페셜 아이템은 정말 스페셜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완벽하고 정성이 듬뿍 담긴 아이템이었다. 영화 관련 굿즈를 제법 수집하는 편인데, 근래 몇 년간 수집한 아이템 가운데 단연 최고다. 특히 깨알 같은 디테일과 팬이 아니면 담아 낼 수 없는 정성스러운 아이템들은 감동마저 느끼게 할 수준. 그래서 오랜만에 아이템 소개만을 위한 포스팅도 이렇게 작성하게 되었다.






맨 위의 검은 봉투를 개봉하면 위와 같은 아이템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일단 스윽 봐도 감동이 밀려온다 ㅠㅠ






위의 아이템은 양면으로 되어 있는데, 1987년 국내 개봉 당시의 홍보 팜플렛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복고풍 스타일로 최신 영화를 홍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건 오리지널이라고 보면 되겠다. 주옥 같은 다시의 홍보 문구들과, 한문과 영어가 뒤섞여 있는 문구들을 보면 정감이 넘친다.


"그레이트 썸머 버케이션"! "S.스필버그의 팔칠 핫 프레센트!"
"30년의 시간 차이에서 착상한 크리스탈 유우머"

"써스펜스와 폭소가 믹스된 뉴 어드벤쳐-무비"

"한번만 읽으면 세배로 재미있는 말씀들 아홉개"

"BEST중 BEST만을 선택합니다!"






세 장의 카드와 두 장의 스티커도 수록되었는데, 카드에는 1987년 당시 국내 개봉과 관련된 내용들이 역시 수록되었다. 새서울극장의 당시 영화 시간표와 대한극장과 당시 7~10월까지 달력이 포함된 내용은 정말 어렴풋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건 당시 실제 아이템을 소장하고 있지 않고는 제작 불가능한 내용들이라 할 수 있겠다.





다른 세 장의 옆서도 만나볼 수 있는데 왼쪽부터, 1955년으로 돌아갔을 때 조지 맥플라이가 잠들기 전에 보고 있던 SF매거진의 커버 이미지와 2편에 가장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인 스포츠 연감, 그리고 골디 윌슨 시장 선거 관련 이미지가 수록되었다. 이런 작은 옆서에서도 디테일을 느낄 수 있다.





1편에서 마티가 여자친구인 제니퍼를 기다리다가 행인에게 시계탑을 살리자는 홍보 전단지를 받게 되는데, 그 전단지도 그대로 담겨 있다. 마치 종이의 질도 진짜 전단지 같은 느낌이 나는 디테일을 수록하고 있어 놀랐는데, 더 놀란 것은 아래 사진 때문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 제니퍼가 마티와 헤어지면서 전화번호를 전단지 뒤에 적어주는데, 이 아이템도 혹시 몰라 뒤집어 보니 바로 그 메모까지 그대로 깨알같은 디테일로 실려 있었다. 이런 디테일은 단순히 영화 관련 아이템을 소장하게 된 느낌이 아니라, 실제 영화 속에 사용 된 아이템을 소장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해 더 큰 만족으로 다가온다. 아..진짜!






이 신문을 보고도 그 디테일이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극 중 마티의 행동에 따라 과거가 달라지게 되는데, 그 달라진 과거를 확인할 수 있는 USA TODAY 신문과 브라운 박사의 과거를 확인할 수 있는 hill valley telegraph를 마치 진짜 신문과 같은 디테일로 만나볼 수 있다. 일단 종이의 질에서 진짜 신문지 같은 재질로 제작된 것이 디테일을 더하고, 기사의 내용들 실려있는 내용들의 깨알 같은 디테일이 놀라운 수준이다. 딱 하나 조심할 것은, 이 아이템을 소중히 다루지 않고 그냥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간 잘 모르는 사람이 구겨 버릴 정도로 그냥 진짜 신문 같다는 것.





'빽투더 퓨처 2'편을 보면 아버지가 된 마티가 화상 전화 중에 해고를 당해 팩스로 해고 내용을 받게 되는데, 그 해고 팩스가 역시 완전 진짜 같은 디테일로 수록되었다. 누군가를 막 해고하고 싶을 정도의 디테일이다.





사실 이 놀라운 스페셜 아이템 중에서도 가장 감동 받았던 2개의 아이템 중 첫 번째는 바로 이 편지다. 1편에서 마티가 브라운 박사의 미래(혹은 현재)를 걱정하여 그 당부하는 내용을 편지로 써서 전달하게 되는데, 그 편지와 봉투가 역시 진짜 영화 속 소품처럼 재현되었다. 봉투 겉면에 적힌 'Do Not Open Until 1985'라는 메모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짠한 미소가 흘렀다.





봉투 안에는 그 편지의 내용 역시 소름 돋는 디테일로 수록되어 있었다. 와, 이런 아이템을 소장하게 되다니.

워낙 완벽한 디테일들의 아이템을 만나다보니 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120% 디테일을 위해 찣겨진 부분을 이어 붙인 형태의 아이템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과한 기대도 하게 될 정도.




마지막으로 감동 받은 아이템은 바로 이 사진. 1편에서 마티가 엉킨 시간 여행을 확인할 때 사용한 아이템인데, 조금씩 흐려져 가는 디테일도 만나볼 수 있고, 무엇보다 진짜 인화 된 사진 형태로 되어 있어 현실감을 높여준다.





많은 영화 관련 굿즈를 수집했지만 이번 빽투더 퓨처 스페셜 아이템 같은 경우는 그 중에도 손 꼽을 만한 퀄리티와 정성의 아이템이었다. 마치 내가 진짜 영화 속 소품을 소장하게 된 느낌이나 더 나아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마저 느껴질 정도의 완벽한 아이템이었다. 이렇게 의미 있는 날에 너무 완벽한 선물을 받게 된 것 같아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더 비지트 (The Visit, 2015)

샤말란의 완벽한 코믹호러스릴러



M.나이트 샤말란이 돌아왔다. 다들 샤말란을 이야기 할 때 '식스센스'를 가장 많이 언급하기는 하지만, 내가 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언브레이커블'이나 '싸인' 쪽에 가깝다. 많이들 샤말란의 이후 작품들에 대해 대부분 아쉬워 하는 것이 중론인데, 특히 호불호가 갈렸던 (그렇다기 보다 대부분 별로라고 했던) '해프닝'은 인상 깊게 본 편이지만, 나 역시도 '라스트 에어벤더'나 '애프터 어스'는 큰 실망을 했던 작품이었다. 이 두 작품에서 실망했던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샤말란과는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포인트다. 샤말란은 한정된 공간과 인물들을 배경으로 미묘한 심리와 그 안에서 서서히 조여드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잘 다루는 감독인데,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좀 과한 배경과 스케일이었다. 그럼에도 샤말란을 (아직까지) 지지하는 입장에서 그의 신작은 여전히 기대하고 있었기에 이번 2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조금 먼저 선보인 '더 비지트 (The Visit)'를 놓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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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지트'는 명확한 컨셉 영화이지 장르영화다. 샤말란은 마치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의 타이틀서부터 이 영화가 명확한 장르영화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전형적인 룰 안에서 충실히 룰을 따르며 자신의 장기를 펼쳐낸다. 이런 장르 영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더 비지트'는 종합 선물 세트에 가깝다. 한정 된 (혹은 고립된) 공간, 한정 된 인물, 정해진 시간,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 (그로 인한 핸드 헬드 촬영방식까지), 고전 공포영화에 딱 어울리는 영화 음악까지. 공포 스릴러 영화의 고전적인 방식으로 샤말란은 오히려 이 전형적 요소들을 더 고전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깔끔하고 무엇보다 몹시 재미있다. '더 비지트'가 재미있다고 이야기할 땐 두 가지의 다른 포인트가 있는데, 하나는 아역 배우들이 실제로 재미있는 장면과 대사들을 연출하는 것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공포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한 쾌감의 재미다. 전자의 경우 남동생으로 나온 아역 배우는 자칭 랩 뮤지션을 꿈꾸고 있는데, 이 캐릭터가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 안에서 펼치는 랩 뮤지션으로서의 자세가 촌스럽지 않고 제법 수준있는 재미를 준다. 확실히 대중적인 측면에 있어서 이 캐릭터의 성격이 없었다면 '더 비지트'는 더 심심하거나 조금 더 평범한 공포 스릴러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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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재미 포인트는 조금 성격이 다른데, 공포의 요소가 커가면 커질 수록 웃음이 동반된 재미가 더해지는 경향이 있다. 약간의 B급 정서랄까. 로드리게즈의 영화처럼 의도 된 잔인함 혹은 촌스러움을 볼 때 처럼, 혹은 샘 레이미의 '드래그 미 투 헬'이 준 재미처럼 공포가 가중 될 수록 그 의도 된 장면이 끝나고 난 뒤에 땀이 한 번 스윽 지나가면서 시원한 쾌감이 느껴지는 특유의 재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더 비지트'는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한 거의 모든 무서운 설정과 행동, 장면들은 거의 모두 다 이런 성격의 재미를 담고 있어서 하나 같이 눈을 질끈 감는 동시에 웃음이 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마 이런 류의 공포 영화를 즐겨 본 이들이라면 무슨 경험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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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지트'는 이 장르 영화 속에 가족 드라마까지 삽입하였는데, 나는 오히려 조금의 감동 포인트도 없이 완전한 컨셉 장르 영화로 남는 편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가족 드라마의 테마 역시 전체적인 장르 영화의 완성도를 해칠 수준으로 포함되어 있지는 않고, 한 편으론 이 테마가 매우 중요한 테마로 낮은 곳에 깔려 있기 때문에 영화 속 내러티브가 가능해진 측면이 있어 오히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더 풍성해지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영화의 호불호나 샤말란 감독에 대한 선호도를 떠나, 단순히 러닝 타임에 가장 충실하고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현재 고르라면 주저 없이 '더 비지트'를 추천하고 싶다. 아,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재밌다는 표현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많이 무서운 영화이기도 하다. 깜짝 놀래키고, 가슴 떨리고, 반전도 있고. 단지 그것들이 장르라는 놀이터 안에서 충실히 활용되고 있다 뿐이지, 무섭다. 깔끔하게 한 번 또 보고 싶다.



1.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방영했던 코미디 프로인 임하룡, 이홍렬씨가 연기한 '귀곡산장'이 떠올랐어요. 왠지 그런 컨셉으로 보면 더 재밌는 영화 ㅋㅋㅋ '망태망태망망태 망구망구망망구 ㅋ'


2. 어디 이래서 자식 있는 분들 명절 때나 방학 때 시골 부모님 집에 애들 보낼 수가 있을지 ㅋ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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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Life, 2015)

아티스트가 되려 한 남자와 그렇지 않았던 한 남자



'컨트롤 (Control, 2007)'과 '모스트 원티드 맨 (A Most Wanted Man, 2014)' 등을 연출했던 안톤 코르빈이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제임스 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라이프 (Life, 2015)'. 제임스 딘이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워낙 강한 이상을 주고 지금까지도 깊은 여운을 남긴 탓에 그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것 만으로도 '라이프'는 호기심을 갖게 하는 작품인데, 안톤 코르빈은 제임스 딘이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임스 딘을 아이콘을 만든 화보를 찍은 주인공이기도 한 사진 작가 데니스 스톡에 이야기에 주목했다. '라이프'는 플롯 상으로는 아티스트가 되고자 했던 사진 작가 데니스 스톡이 주인공에 가깝고, 오히려 제임스 딘은 데니스가 아티스트로 발돋움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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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아티스트라고 불러줘야 진짜 아티스트지' 라는 극 중 대사처럼, 단순한 사진 기자 혹은 사진사가 아니라 작가로서 새로운 작품을 이루고자 하는 데니스 스톡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데니스는 우연한 기회에 제임스 딘이라는, 당시에는 아직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배우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남들이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고 포토 에세이를 촬영해 라이프지에 싣고자 한다. 이 과정 속에서 데니스가 지미(제임스 딘)에게 느끼게 되는 것은 아티스트로서 존재감 혹은 질투다. 그의 시선에 포착된 지미는 스스로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 헐리우드 비지니스에 염증을 느껴 일탈과 자유를 꿈꾸지만, 그가 동경하는 진정한 아티스트의 면모를 이미 갖추고 있기에 스스로를 자극하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고 '라이프' 속 지미와 데니스의 관계를 보편적인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안톤 코르빈은 이 둘의 관계를 서로 자극 받는 적극적인 관계라기 보다는, 잠시 인연을 맺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 건조한 분위기로 그린다. 지미와 데니스는 제법 많은 대화와 시간들을 함께 하지만 건조하다는 표현처럼, 서로 평행으로 달려가는 서로를 반대편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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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는 제임스 딘을 전면에 내세우고 사실은 사진 작가 데니스 스톡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아마 안톤 코르빈이 더 매력을 느낀 인물은 역시 제임스 딘이었을 것이다. 제임스 딘이라는 배우가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태생적으로 우울함을 다루는 것에 민감한 촉각을 갖고 있는 안톤 코르빈은 데니스를 중심에 두면서도 제임스 딘이라는 캐릭터를 효과적이고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를 보면 마치 감독이 '사실 내가 더 끌리는 인물은 지미야. 그가 갖고 있던 우울한 정서는 결국 해결되지 않았잖아?'라고 말하는 듯 했다. 영화가 끝나고 지문을 통해 제임스 딘이 어떻게 죽음을 맞게 되었고, 데니스도 그 이후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간단히 소개가 되지만, 안톤 코르빈이 그려 낸 제임스 딘은 교통 사고로 불운한 죽음을 맞지 않았더라도 과연 그가 이 비지니스를 오래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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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제임스 딘의 영화인 줄로만 알았던 영화가 비중을 데니스와 반으로 나눠 갖거나 어쩌면 오히려 플롯의 중심에 있지 않았음에도 이 영화를 제임스 딘의 영화로 기억하게 될 것만 같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데니스 스톡의 사진 속에 담긴 제임스 딘의 진짜 모습을 담고자 했던 영화는, 아마도 안톤 코르빈의 바람처럼 영화가 끝나고 나면 제임스 딘이라는 배우를 더 안타깝게 그리워하도록 만든다.



1. 이미 너무 유명해진 제임스 딘의 그 사진들이 만들어 지는 순간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데, 그 순간을 묘사하는 방식이 더 흥미로웠어요. 영화는 이 유명한 장면들을 아주 자연스러운 순간 속에 스쳐지나가도록 하는데, 특히 타임스퀘어 앞에서의 그 유명한 사진의 경우 배경이 되는 타임스퀘어를 한참이나 보여주지 않고 그 곳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으로만 묘사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2. '라이프'를 보고 나면 바로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가 몇 편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컨트롤'이 몹시 보고 싶어졌고, 그 다음으로는 역시 '이유없는 반항'이 되겠네요.


3. 데인 드한은 자신 만의 제임스 딘을 연기하는 쪽 보다는 실제 제임스 딘을 재현하는 것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모습은 물론 말투에서도. 데인 드한에게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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