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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 스트리트 (Sing Street, 2016)

처음의 설레임이 가득한 음악영화



'원스'와 '비긴 어게인'을 연출했던 존 카니의 신작 '싱 스트리트 (Sing Street, 2016)'는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한 또 한 번의 음악 영화다. 너무나 완벽했던 영화 '원스'와 그 그늘 아래 존재할 수 밖에는 없었던 '비긴 어게인'의 아쉬움 이후 만든 이 영화는 음악 영화의 장점과 청춘 영화의 발랄함과 동시에 진지함도 잊지 않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존 카니의 세 작품은 모두 음악(노래)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독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탄생의 순간을 관객 또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사명처럼 느껴지는데, 뭐랄까 존 카니는 단순히 '음악이 이렇게 마법같이 탄생한단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봐, 누구나 좋아하면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싱 스트리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이 10대 어린 소년들이 밴드를 이루고 음악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과연 누가 '제대들이 갑자기 어떻게 저런 실력을 가지게 된거야?'라고 개연성을 따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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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고 새롭지 않아도 매번 매력적인 소재가 있는데 바로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걸 가장 잘하는 감독 중 하나인 존 카니의 재능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싱 스트리트'는 이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서 '원스' 보다도 더 솔직하고 직접적인 영화다. 주인공 코너는 악상이 떠오르거나 혼자 곡이 잘 안써질 때마다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바로 친구인 에먼의 집을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곡 쓰는 것 좀 도와줄래?'. 그렇게 하나 둘 의견을 더해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보고 또 봐도 놀랍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이건 관객의 입장에서 음악을 잘 아는가 모르는가, 곡을 써 본 경험이 있는가 아닌가와 무관하게 발견할 수 있는 놀라움이다. 즉, 매일 프로로서 곡을 쓰는 뮤지션의 입장에서 보아도 누군가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또 다시 매력적일 수 밖에는 없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뮤지션이 계속 곡을 쓰고 노래하는 이유 중 하나일테고). 


'싱 스트리트'는 단순한 소년의 밴드 영화, 음악 영화와는 조금 다르게 가족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사실 이런 스타일의 영화에서 이 같은 진지함은 급작스러운 이질감을 주기 쉽지만, '싱 스트리트'는 과장하지 않은 이야기로 진정성도 가질 수 있었다. 코너의 형의 이야기가 그러한데, 계속 주변에 머물렀던 형의 이야기가 한 순간 중심에 들어 왔을 때 그간 영화가 보여주었던 정서와 이질감이 느껴졌다면 영화 후반 완성도를 크게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을 텐데, 형 이야기의 진심이 통했다고나 할까. 우리가 음악 영화에서 흔히 놓치곤 하는 주인공 외의 주변 인물. 즉, 주인공은 이런 저런 역경에도 결국 극복해내 원하는 음악을 하게 되지만, 주인공과 같은 삶을 그저 주변에서 동경할 수 밖에는 없는 인물에 대한 배려가 엿 보이는 장면이라,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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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 스트리트'는 1980년대 팝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더 환장할 만한 영화다. 듀란듀란을 필두로 더 클래시, 모터 헤드, 더 큐어 등의 음악을은 물론 당시의 음악 스타일을 온몸으로 구현하는 '싱 스트리트'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흐뭇하고 즐거워 진다.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영화다.


1. 밴드 멤버들 한 명 한 명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특히 베이스 치는 멤버의 그 시크한 귀여움이란 ㅎㅎㅎ

2. 사운드트랙도 바로 구입해야!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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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哭聲, 2016)

의심과 현혹으로 탄생한 지옥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 (哭聲, 2016)'은 인간의 의심과 무지 그리고 그로 인한 현혹을 주제로 신과 악마의 이야기를 가장 현실적인 공간의 배경에 풀어 놓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감독이 분명한 하나의 의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이나 이해가 가능하도록 만든 구조의 작품들인데, '곡성'도 그 중 하나다. 개봉 첫 날 부터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데 (담론이라기 보다는 궁금함으로 인한 해석과 설명들), 이런 영화들은 사실 한 가지의 답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몇 가지의 답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긴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그만큼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불러 모았던 나홍진의 '곡성'은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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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시작 인용한 성서 구절과 마지막 동굴 시퀀스에서 외지인이 들려주는 대사는 그렇게 의심이라는 주제로 수미상관을 이룬다). 그리고 그 의심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의 가벼움에 대해서도 말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이 발생하고 동네에서는 사람들의 입을 거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바로 외지인인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범인이라는 혹은 귀신이라는 얘기. 경찰인 종구 (곽도원)는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웃어 넘겼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게 되 그 역시 외지인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몇 가지의 확신할 만한 상황들이 벌어지게 되면서 이 의심은 더 확고한 확신으로 번져 간다. 한 번 생겨난 의심 그리고 이를 더 확고하게 해 줄 만한 말들과 현실들이 더해지면서 사태는 것잡을 수 없이 빠르게 전개 되어 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종구의 의심과 현혹됨이 관객에게도 동시에 진행되고 발전된다는 점이다. 관객은 주인공인 종구의 시점을 공유하며 같은 입장에서 인물들을 의심하고 그 현혹된 시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의심에 관한 텍스트는 주인공의 결백 등과 맞물려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만나볼 수 있었던 이야기인데 '곡성'은 여기에 종교적인 이야기를 적절하게 겹쳐 놓았다. 신, 특히 종교야 말로 의심이라는 것에서부터 태어났으면서도 의심이 허용되지 않는 존재가 아니던가. 나홍진은 이를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관객들의 의심 역시 십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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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무라 준이 연기한 외지인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가장 (특히 초반)공포스럽고 악마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벌거벗은 채로 고라니를 뜯어 먹고, 그것이 설령 꿈이라고 하더라도 새빨간 눈동자를 한 모습과 피해자들을 전시해 놓듯 사진들로 가득 찬 그의 공간은 그를 연쇄 살인마 이상의 악마로 (혹은 귀신으로)의심하고 확신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이 외지인 귀신을 떨쳐내기 위해 고용된 무당 일광 (황정민)은 그 등장에서 부터 완벽하게 일본인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서 묘사된다. 더 나아가 일광이 한참 귀신을 쫓기 위해 굿을 벌이던 중, 종구가 결국 약해진 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 굿판을 중지 시키게 되었을 때 관객은 '아, 조금만 더하면 귀신을 죽일 수 있었는데 아쉽다..'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 후 외지인은 힘을 잃고 일광도 떠나고 종구의 딸은 병원에 맡겨진 뒤 영화는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그간 일방적으로 확신을 가졌던 종구의 시점을 뒤흔든다. 귀신이라고 믿었던 외지인이 만져지고 죽음에 이르는 것을 종구가 직접 목격하게 되는 것 (그 시체를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길 아래로 던져버리는 행동도)이나 이를 멀리서 마치 귀신처럼 지켜보는 무명 (천우희)의 모습은 무명 = 목격자, 외지인 = 귀신이 아니라 일광의 전화가 알려준 것처럼 무명 = 귀신, 외지인 = 무당 이라는 해석으로 단숨에 전환된다. 그러면서 영화는 마치 이것이 반전인 것처럼 급박하게 휘몰아 친다. 마치 귀신일지도 모를 무명을 종구가 다시 마주하게 되는 위기의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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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가족의 목숨이 귀신 혹은 악마에게 모두 빼앗겨 버릴 위기에 놓여있는 종구 앞에 이제는 가장 두려운 존재인 무명이 나타난다. 무명은 딸과 가족을 살리려거든 닭이 세 번 울 때까지만 참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직접 외지인의 시체를 목격한 경험과 일광의 전화로 무명의 존재에 대해 깊이 의심하게 된 종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 상황은 외지인이 악마임을 확신하고 죽이고자 찾아간 부제인 이삼 (김도윤)의 상황과 겹쳐진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귀신이 아닌 악마 적인 모습을 대놓고 드러내는 외지인과 이삼의 대화가 영화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외지인은 이삼에게 '너는 나의 존재를 의심해서 알아보고자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묻는다. 대답하지 못하는 이삼에게 외지인은 마치 영화의 시작 성서에서 인용된 예수의 말씀처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있느니라' '나를 만져보아라'라고 말하며 마치 십자가의 못 박힌 예수의 상흔과 같은 손바닥의 상흔을 보여준다. 


이 동굴에서의 대화는 겉으로는 반그리스도 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곡성'의 반그리스도적 상징과 묘사들은 '의심'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스며들어 있다. 언급 했던 것처럼 종교, 신 과 같은 절대적인 믿음의 상징들은 의심이라는 주제를 설명하기에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의심이 아니라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려고 온 것이 아니냐는 질문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참으로 별 것 아닌 말들과 오해들로 갖게 된 의심이 어떻게 확신이 되고 그 확신을 포기하는 것을 인간이 과연 해낼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비관적인 질문은 영화 '곡성'이 던지는 진짜 질문이다. 악마, 악, 공포 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심과 그 의심이 스스로 끌어들인 현혹이 어떤 지옥을 만들어 냈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인물이 귀신도 그 귀신을 쫓으려는 무당도 될 수 있고, 악마가 신(예수)의 모습과도 하나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통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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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영화가 지속적으로 말하고자 한 또 한 가지가 바로 무지다. 귀신을 봤다는 사냥꾼이 자신의 텅빈 냉장고를 보여주며 '이게 바로 증거다'라고 말할 때 종구와 관객 모두가 웃어 넘기지만 사실 이 장면 역시 영화의 메시지와 깊게 맞닿아 있다. 부활한 예수를 보고 직접 손과 발을 만져보고서야 믿게 된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라고 말한 예수의 말처럼, 이 장면 역시 의심의 관한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 


'곡성'에서 말하는 무지란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무명도, 귀신에 씌인 딸도 종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묻는다. '뭐가 중요한지 알기나 해'.

몇 번을 묻지만 이 질문은 오히려 너무 직접적이라 종구는 결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미 종구의 마음엔 확신 만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벌어지는 상황들로 인해 계속 불안해 하는 종구에게 무슨 확신 만이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보면 종구는 불분명한 것들로 인해 불안함을 겪어 왔다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확신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그 확신이 계속 옮겨 갔을 뿐이지. 편협된 혹은 어쩔 수 없이 편협된 정보들로 이룬 자신 만의 결론과 확신을 두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스스로 혼란에 빠져 버리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이 비극은 더 깊어져만 가고, 맨 마지막 종구가 남긴 '괜찮아, 아빠가 다 해결할께'라는 말은 이 비극을 쉽게 해피엔딩으로 위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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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은 이번에도 관객들을 아주 불편하게 하고 특히 영화 속 인물들을 아주 고약하게 괴롭히고 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영화가 주인공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을 대부분의 관객들은 불편해 하는데, '곡성'은 결과만 보면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딸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종구에 대한 연민과 위로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악마와 맞서 싸우는 퇴마사의 이야기거나 혹은 연쇄 살인사건을 파해치는 형사나 전문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별다른 걱정 없이 살아온 듯한 평범한 주인공이 어느 날 연쇄 살인과 귀신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맞닥 들이게 되고, 더 나아가 바로 자신의 딸이 휘말리게 되면서 겪게 되는 과정은, 영화의 주제인 의심과 무지의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어쩔 수 없이 당할 수 밖에는 없었던 한 인물의 비극 그 자체라는 점을 영화는 주지 시킨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 과연 자신의 딸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의심과 자가 비판 등을 통해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의 위로. 그리고 끊임 없이 '왜 우리 딸이'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딸에게 이런 일이'라고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래야 스스로 이해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묻지만, 마치 낚시 처럼 그저 네 딸이 걸려든 것 뿐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는 종구의 모습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가족을 잃거나 상처를 받아야 했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가 엿보인다. 다시 말해 영민한 전문가가 자신의 꾀에 빠져 스스로 자멸하는 패배가 아니라, 어쩌면 의심할 수 밖에는 없고 빠르게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종구의 비극을 말이다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밖에는 없었던 존재가 악마의 하수인이었던 일광이었다는 점도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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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곡성'을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로만 본다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을 듯 싶다. 개연성을 중시하는 시점으로 바라 본다면 몇 몇 장면은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측면이 있고, 어떤 측면으로 보아도 모든 퍼즐 조각이 다 맞아 떨어지는 명쾌한 해석은 어렵기 때문이다 (아, 환각 버섯으로 인한 사건으로 보면 100%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글의 마지막 이야기했던 것처럼 만약 '곡성'을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방식으로 본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거나 특히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원인과 이유에 대해 (반드시)정답을 알고자 하는데, 세상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거나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왜 나인지 알 수 없는 일 가운데는 가족을 잃게 되는 끔찍한 일들도 있으며, 피해자들은 결국 의심하고 또 확신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옥같은 현실에 놓이기도 한다는 것. 나홍진의 '곡성'은 의심과 현혹으로 탄생한 지옥을 그리지만,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도 담아낸 작품이었다.



1. 홍경표 촬영 감독이 담아낸 영상미가 인상적이었어요. 오컬트적 요소를 담은 영화 답게 곡성의 아름답고도 서슬퍼런 풍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한.


2. 영화에 대한 평을 보니 호불호가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는데, 뭐 둘 다 그럴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물론 그 중에는 아예 잘못 읽고 있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영화의 주제와 빗대어 얘기하자면 이미 재미있게 봤거나 재미없게 본 이들이 나중에 평을 나누다가 바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재밌다는 사람이 재미없다는 글을 보는 이유는 '재미없을 리가 없는데'라는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래서 이 논쟁에 뛰어 들고 싶다가도 절대 끝날 수가 없는 (답이 없는. 둘다 맞는) 논쟁임을 깨닫고 현혹되지 말아야지 하고 있지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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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Captain America: Civil War, 2016)

어벤져스 식으로 풀어낸 슈퍼히어로의 딜레마



어벤져스와 관련된 사고로 부수적인 피해가 일어나자 정부는 어벤져스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시스템인 일명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내놓는다. 어벤져스 내부는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찬성파(팀 아이언맨)와 이전처럼 정부의 개입 없이 자유롭게 인류를 보호해야 한다는 반대파(팀 캡틴)로 나뉘어 대립하기 시작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루소 형제가 연출한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 (Captain America : The Winter Soldier, 2014)'는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작품성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그리고 독립적인 작품이었다.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 가운데 몇몇은 이 세계관을 구성하는 역할로서 더 의미를 갖는 작품이라 조금씩 아쉬움을 남기는 편이었는데, '윈터솔저'는 단순한 볼거리 위주의 오락 영화의 한계와 MCU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 이상의 독립적 완성도와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성공, 결국 마블의 세계관을 더 견고하게 쌓아 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작품이었다. 이런 기대를 한 껏 등에 업은 것은 물론, 원작 코믹스의 팬들이 가장 기대하던 이야기중 하나인 '시빌 워'를 담은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어벤져스' 이상의 기대를 갖게 한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어벤져스'가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볼거리와 오락성 그리고 '윈터솔저'가 보여주었던 내적인 깊이와 성장의 작품성 가운데서 적당한 균형을 이룬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미 공개 된 내용들도 있지만 아직 안보셨다면 가급적 모르시는 편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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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작 '윈터솔저'의 이야기와 그간 다른 마블 작품들에서 벌어졌던 일들 (특히 '어벤져스 2'의 소코비아 전투)의 영향력 하에서 시작된다. 원작 코믹스에서 주 된 갈등 요소가 초인등록법을 두고 벌어진다면 영화 '시빌 워'에서는 소코비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결정타가 되어 어벤져스 활동에 대한 전 세계 국가들이 이른바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를 두고 찬성파 (아이언맨)와 반대파 (캡틴)로 의견이 나뉘게 되며 갈등이 깊어지게 된다. 일단 이 갈등의 당위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이미 전작 '윈터솔저'에서 속해 있던 쉴드라는 조직의 문제를 깨닫게 된 캡틴과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더 직접적으로 자신과 어벤져스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한 아이언맨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시빌 워'의 갈등은 그리 급작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즉, 코믹스를 봐야 만 이해 가능한 전개가 아니라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만으로도 충분한 당위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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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벤져스' 같은 영화에서 갸우뚱 하게 되거나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캐릭터가 겪는 갈등과 그 해결의 순간인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전작들이 없었더라면 '시빌 워'에서 캡틴과 아이언맨 등이 협정문의 사인을 두고 겪는 갈등이 그리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심각한데 관객은 '뭐지?'싶은 경우가 아니라, 관객들 역시 양쪽 입장이 모두 공감은 되지 않을 지언정 (한쪽의 손을 완벽히 들어줄 지언정) 양쪽의 입장 모두가 이해는 되는 상황을 이뤄냈다는 것 만으로도 이번 '시빌 워'는 목표를 달성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균형이 무너져 버리면 본래 같은 편이었던 주인공들이 다른 편에서서 대립하게 되는 구도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을 텐데, 다행히도 '시빌 워'는 끝까지 그 균형점을 아슬아슬하게 지켜 냈다. 그렇다보니 '시빌 워'의 몇몇 장면은 대부분의 히어로물이 갖고 있는 익숙한 딜레마를 반복하고 있음에도 또 한 번 집중하도록 만들었는데, 토니 스타크가 피터 파커, 그러니까 스파이더 맨을 처음 만나 대화하는 장면 역시 그렇다. 이 대화 시퀀스는 MCU에서 스파이더 맨이 처음 등장하는 중요한 장면이라는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상당히 긴 시간 중요하게 묘사되는데, 영웅의 능력과 사용 그리고 그 능력을 사용하는 영웅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본질적이면서도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낸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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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적으로 넓게는 슈퍼 히어로물, 좁게는 '어벤져스'의 딜레마를 풀어내야 했다면, 외적으로는 종합선물세트인 '어벤져스' 시리즈 만큼이나 많은 캐릭터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복잡한 영화로서 균형의 딜레마를 풀어내는 것이 숙제였다고 볼 수 있었다. 특히 갈등의 중심인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균형은 물론, 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블랙 팬서 그리고 모든 관객이 기다려 왔던 스파이더 맨까지 이야기의 비중이나 균형을 이뤄내야 했는데, '시빌 워'는 그 균형을 적절하게 이뤄 냈다. 사실 '어벤져스' 시리즈의 경우 하나의 페이즈를 마무리 하는 일종의 보여주기 식 정리 성격이 강해 어느 정도 아쉬운 점들이 있어도 그 자체로 넘어갈 수 있지만, '시빌 워'의 경우는 내적인 이야기의 전개와 해결이 더 중요한 독립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역할과는 다르게 '어벤져스'급으로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구조는 가장 큰 딜레마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블랙 팬서는 윈터 솔저의 이야기와 맞물려 영화의 뼈대가 되는 스토리에 잘 녹여냈고, 익숙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스파이더 맨의 경우 MCU의 스파이더 맨은 이런 모습이다 라는 점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관객들이 스파이더 맨에게 기대하는 액션은 부족하지 않게 보여주는 것도 적절한 균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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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워낙 아쉬운 점이 많아 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시빌 워'가 '에이지 오브 울트론' 보다도 (긍정적인 의미에서) 더 '어벤져스 2'에 어울려 보였다. 즉, 다양한 히어로들이 동시에 등장할 때 기대되는 액션과 볼거리 측면에서도 '시빌 워'가 더 만족스러웠다는 얘긴데, 하이라이트인 공항 결투씬은 물론, 그 외에도 오히려 '어벤져스'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각자의 능력을 협업을 통해 팀을 이뤄 공격하는 장면들은 마치 합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무술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 액션을 담아내는 카메라도 너무 화려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움직였던 것 같고. 액션과 볼거리 측면에서도 확실히 '에이지 오브 울트론' 보다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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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어벤져스'가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볼거리와 오락성 그리고 '윈터솔저'가 보여주었던 내적인 깊이와 성장의 작품성 가운데서 적당한 균형을 이룬 작품이 이 작품이라고 했는데, 이건 호불호의 포인트로 작용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양쪽을 다 적당히 만족시키기는 했지만 한 편으로 더 쏠렸으면 했던 관객들에게는 그 만큼 아쉬운 포인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다 떠나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마블의 영화를 극장에 보러 갈 때 기대하는 바는 끝내주게 충족시켜주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최소한 극장에서 두 번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1. 청년 보다는 소년 스파이더 맨의 풋풋한 매력이 재미있었어요. 내년에 나올 '스파이더 맨 : 홈 커밍'이 몹시 기다려지네요.

2. 영화를 보기 전에는 블랙 팬서의 비중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고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개별적인 소개가 없었음에도 무게있게 잘 녹아든 편이었어요. 2018년에 단독 영화가 개봉 예정인데, 그 사이에 간간히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ㅎ

3. 앤트맨은 분량은 적지만 크게(!) 한 껀 합니다. 정말 크게.

4. 팔콘의 액션을 맘껏 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아이언맨 보다도 더 멋진 장면들을 많이 연출해 낸듯.

5. 마틴 프리먼도 등장하는데 그도 능력이 있는데 쓰지는 않더군요 (반지를 끼면 사라지는 능력)

6. 왕십리에서 아이맥스3D로 보았는데 만족스러웠어요. 한 번 더 보고, 그 다음엔 기회가 되면 돌비애트모스 2D로 한 번 보려구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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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믿음



올해 최고 대작 ‘헤일, 시저!’ 촬영 도중 무비 스타 ‘베어드 휘트록’이 납치되고 정체불명의 ‘미래’로부터 협박 메시지가 도착한다. ‘헤일, 시저!’의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비.상.상.황! 영화사 캐피틀 픽쳐스의 대표이자 어떤 사건사고도 신속하게 처리하는 해결사 ‘에디 매닉스’는 할리우드 베테랑들과 함께 일촉즉발 스캔들을 해결할 개봉사수작전을 계획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모든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 만드는 일에 대한)영화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코엔 형제의 신작 '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는 1950년대 헐리우드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영화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가끔 당시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의 뒷 이야기들을 전해 듣게 되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그야말로 대단한 에피소드들이어서 제작과정 그 자체로 전설이라 부를 만한 작품들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헤일, 시저!'는 그런 헐리우드 비즈니스의 복잡하고 거대한 뒷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아주 본질적인 영화 제작이라는 일.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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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배우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납치 되고, 새롭게 선택한 다른 작품의 남자 배우는 드라마 연기가 처음이라 연기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며, 거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신작 영화에 주연 배우 (납치된 그 배우)에 대한 스캔들을 기사화 하겠다는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며, 그 와중에 잘 나가는 방위 산업체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받게 되는 이는, 이 영화사의 대표인 에디 매닉스 (조쉬 브롤린)다. 그는 해결사라는 별명 답게 이 동시다발적으로 사건들이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려고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번에 벌어진 사건들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그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이직의 유혹이다. 영화 속 상황으로 미뤄보자면 당장에라도 이 현장을 떠나 더 좋은 조건. 야근도 없고 돈도 더 많이 버는 방위 산업체로 이직하는 편을 관객으로서 응원하고 싶을 정도다. 코엔 형제는 매닉스가 겪게 되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지만 사실 정색하고 다시 보자면 이 상황은,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픈 위급 상황이다. 


그런데 코엔 형제는 매닉스가 처한 상황, 그러니까 영화가 제작되는 스튜디오와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가운데, 그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 제작 과정의 매력을 슬쩍 담아 낸다. 매닉스가 이런 저런 다른 이유로 영화 세트장을 찾을 때 단순히 세트장으로서 현장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참이나 그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가, 순간 그 영화 속 영화의 관객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영화 만드는 일 (이를 테면 편집과정)을 묘사할 때 그냥 웃고 넘길 만한 에피소드처럼 스윽 지나가지만, 은연 중에 영화 만드는 일의 놀라움과 대단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은 결국 매닉스의 마지막 선택으로 확고한 종지부를 찍는다. 코엔 형제는 아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왜 영화 만드는 일이 의미 있는가'를 말하는 것 대신, 어쩌면 무조건 적이고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그 정당성을 말하고자 한다. 코엔 형제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헤일, 시저!'의 순수한 믿음은 지금의 영화 산업과 영화라는 존재가 처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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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라는 예술 혹은 산업을 더 좋아하도록 만든 그 자체의 영화였다. 귀엽고 유쾌한 가운데.


1. 여러 화려한 출연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호비 도일 역할을 맡은 엘든 이렌리치 였어요 ㅎㅎ

2. 나중에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영화 속 영화들이 조금씩이라도 수록되면 정말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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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Seymour: An Introduction, 2014)

삶과 예술 그리고 질문과 대답



감독이자 배우 에단 호크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사실 무대공포증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세이모어 번스타인과 소울 메이트가 되고 자신의 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던 세이모어 번스타인. 그는 좋은 예술가가 되는 것과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예술의 도시 뉴욕 작은 스튜디오에서 피아노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출처 : 다음영화)


배우로서 몹시 애정하는 에단 호크가 연출을 맡은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Seymour: An Introduction, 2014)'는 한 명의 배우이자 예술가인 에단 호크의 진정성 있는 질문과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삶과 대답을 담은 또 다른 예술 작품이다. 에단 호크는 작품성에 대한 인정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둔 헐리웃의 스타 배우이지만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거지?'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선뜻 답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삶 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무대 공포증마저 겪던 즈음, 우연히 만난 세이모어 번스타인에게 자신의 이러한 고민을 털어 놓게 되고 그에게서 그간 찾아내지 못했던 대답 혹은 정답을 듣게 된다. 이 영화는 에단 호크가 자신이 경험했던 삶의 고민에 대한 세이모어의 대답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삶)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마음에 제작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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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혹은 무대 위에서 대중들에게 박수와 관심을 받는 공연자들의 경우,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거나 혹은 자신이 원했던 일정 수준의 경지에 달했다고 생각될 때 그 간의 경력과 삶을 되돌아 보며, 급작스런 회의(懷疑)에 빠지게 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특히 성공을 거뭐지게 된 경험이 있는 아티스트일 수록 그 부와 인기가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뒤에는 더더욱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을 정신 없이 달려왔고, 처음 이 세계에 뛰어 들었던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거나 혹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뒤늦게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런 기승전결 조차 일종의 패턴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전형적인 면이 있는데, 에단 호크와 세이모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깊이의 측면에서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일단 에단 호크가 고백한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회의 그리고 진솔함이 느껴지는 질문에서부터 이 영화는 결을 달리한다. 에단 호크의 그 질문이 형식적이지 않고 진짜라고 느껴진 데에는 이 영화의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면 에단 호크가 영화 속에서 질문을 던진 자신을 최대한 배제하고, 세이모어의 이야기를 자신이 받아 들였던 것처럼 관객들이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기를 바라는 진심이 100% 느껴진다. 스스로가 세이모어와의 만남을 통해 거짓이 아닌 진실 된 답을 얻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관객)에도 진심으로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가 세이모어의 삶을 통해 느끼게 된 것들이 그가 알 수 없었던 질문의 답이 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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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모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러가지 일들을 겪고 감정의 변화 혹은 불안과 상처를 경험하고 나서 백발의 스승이 된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의 가르침에 마냥 평화롭기 보다는 한 편으론 세이모어가 그랬던 것처럼 삶에서 부딪히게 되는 알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결국 오랜 세월이 지나고나서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도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주저 되는 영화다. 왜냐하면 여기엔 두 사람의 진실한 삶이 그대로 질문과 대답의 형태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세이모어와 에단 호크 두 사람의 삶과 삶의 대한 태도를 통해 지금의 내가 겪는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 역시 작은 위로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1. 한 때 글렌 굴드도 듣고 클래식도 찾아 듣던 시절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니 오랜 만에 예전 클래식 음반들을 꺼내 듣고 싶어졌어요.

2. 세이모어는 예전 한국 전쟁 당시 미군 소속으로 한국에 파병되어 경험한 에피소드들도 들려주는데, (한국 관객으로서)묘한 느낌이었어요.

3. 에단 호크는 다음 국내 개봉할 작품도 쳇 베이커의 이야기를 담은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2015)'인데,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아 팬으로서 뿌듯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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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롭 앤 가솔린 (Microbe & Gasoline, Microbe et Gasoil, 2015)

소년, 공드리가 되다


작고 소극적이지만 섬세한 예술가, 마이크롭 ‘다니엘’.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가솔린 냄새 풀풀 풍기는 괴짜 모험가, ‘테오’. 첫만남에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 본 소년들은 영혼의 단짝이 된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가던 중, 길고 긴 여름방학을 맞아 다니엘과 테오는 프랑스 전국을 누비는 로드 트립을 계획한다. 가진 건 고철상에서 주운 잔디깎이 모터와 널빤지뿐. 우여곡절 끝에 제법 그럴싸하게 완성된 시크릿 드림카!  낭만 없이 볼 수 없는 미운 열여섯의 깜찍발칙한 반항이 시작된다. (출처 : 다음영화)


나에겐 어쩔 수 없이 놓아줄 수 없는 애정하는 감독인 미셸 공드리 (또 다른 감독으로는 샤말란이 있다)의 신작 '마이크롭 앤 가솔 린'은 소년의 성장 영화이자 미셸 공드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미 공드리는 자신이 각본을 쓴 전작들을 통해서도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투영해 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경계, 그러니까 공드리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균형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수면의 과학' 이 공드리의 상상력이 스토리텔링의 측면보다 훨씬 더 앞서 간 경우라면,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딱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는 작품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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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전형적인 편이다. 다니엘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기댈 곳,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이해해주는 곳이 없는 외톨이이며, 작은 체구와 긴 머리 탓에 여자 아이로 오해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소년이다. 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같은 반의 로라를 좋아하지만 쉽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런 다니엘이 어느 날 전학 오게 된 엉뚱한 테오를 만나 바로 친구가 되고, 둘 만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소년이 등장하는 로드 무비의 구조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만약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다면 전형적인 소년 성장영화이자 로드 무비인 이 영화에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조심스럽게 추천하고픈 영화다. 왜 그런 영화가 있지 않은가. 특별할 것도 별로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인데, 묘하게 사랑스럽고 행복해 지는 영화. 공드리의 이 영화가 그렇다. 단순히 열 여섯 어린 나이의 소년이어서가 아니라, 미셸 공드리의 어린 시절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 두 소년의 엉뚱함과 순수함은 가식적이지 않은 웃음과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올라 가는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다. 공드리의 전작들을 떠올려 봤을 때 아마도 최대한 상상력의 나래를 덜어내고자 (참아내고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단순히 세상이 포용하지 못하는 외로운 아웃사이더 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그 나이 대의 소년 만이 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그려낸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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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역으로 성숙해진 미셸 공드리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속 소년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런 그들을 그려 낸 공드리는 이전보다 더 성숙해진 느낌. 너무 갑자기 철이 들어서 어색할 정도는 아니라는게 다행스럽다.


이렇게 또 미셸 공드리에 대한 애정을 끊을 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 그가 각본을 쓴 작품도 이제는 조심스럽게 기대해 볼 수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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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4th Place, 2014)

1등이란 이름아래 스러져 간 소중한 것들에 대해



'해피 엔드 (1999)' '사랑니 (2005)' '은교 (2012)' 등을 연출했던 정지우 감독의 신작 '4등'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등만을 위해 살아가는 (살아가도록 만드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질문 이자 대답 같은 작품이다. 부모의 열성적인 지원과 함께 수영을 한 지 2년 쯤 되어 가는 준호는 열심히 하지만 항상 4위를 기록해 부모를 애타게 한다. 부모는 더 좋은 성적을 내고자 준호가 매달을 딸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코치를 수소문 하게 되고, 전직 천재 수영선수라 불리웠던 광수를 만나게 된다. 아, 영화는 그 이전에 광수의 수영선수 시절 이야기를 먼저 흑백으로 들려준다. 광수가 왜 수영선수를 그만 두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건과 그 사건에 얽혀 있는 준호의 아버지 이야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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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의 '4등'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좁게 보자면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교육 방법에 관한 것이다. 영화는 아이를 가르치고 더 잘되도록 함에 있어서 폭력이라는 것이 (사랑의 매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어떤 영향을 끼치고, 무엇보다 그 폭력의 기억이 어떻게 되물림 되는 지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폭력을 경험한 인물이 나중에 자신도 어른이 되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게 되는 점은 한편으론 익숙할 정도인데, 그 인물이 폭력을 어떻게 정당화 하는 가에 있어서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은 더 현실적이고 날이 서있다. 자신의 현재를 비관하며 그 때 감독님이나 부모님이 더 강하게 폭력을 써서 라도 본인을 질책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느끼는 장면은, 단순한 폭력의 되물림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폭력이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의 분위기가 어떻게 폭력을 정당화 하고 피해자 스스로를 길들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더 큰 메시지는 폭력의 되물림 혹은 기들여짐에 있지 않다. '4등'에서 가장 현실의 문제성을 날카롭게 다루고 있고 한 편으론 모두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은연 중에 정당화 하거나 숨기고자 하는 불편한 진실은 준호의 엄마 캐릭터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준호가 이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서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준호의 엄마는, 매번 4등으로 매달 권에 미치지 못하는 준호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리고 그 수단 가운데는 폭력의 묵인도 포함되게 된다. 준호의 엄마는 준호가 코치인 광수로 부터 폭력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것으로 인해 준호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그 폭력을 동반한 교육의 방식이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진실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입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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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준호가 결국 폭력에 못 이겨 수영을 그만 둔 다음 그 잘못된 자식 사랑의 방식이 고스란히 동생에게 이어지는 장면도 공포스럽다. 더군다나 한창 준호의 수영을 지원하던 시절, 절에 가서 사실은 준호가 매달을 딸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는 준호의 동생은 물론, 가족에 대한 기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려 봤을 때, 무엇이 준호의 엄마를, 그리고 아이를 둔 가족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한 방향으로만 앞만 보고 질주하도록 만들었는지 답답한 마음으로 질문하게 된다.


영화 '4등'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영화다. 제목으로 미뤄 봤을 때, 1등만이 인정 받는 세상은 잘못되었다, 매달 밖의 4등도 중요하다.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으로 순진하게 풀어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또 전반적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이 경쟁의 분위기에 골이 깊은지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 부모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부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 더 직접적으로는 아이의 미래와 경쟁에 뛰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고민이 이 영화에도 깊이 자리잡고 있다.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 어느 선까지 적정한 응원이자 지원이고, 어느 선부터가 강요이자 폭력인지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또한 과정이나 의도와는 상관 없이 그 결과로 인해 아이가 더 나은 기회는 물론, 동등한 출발선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 불보듯 뻔하다면, 부모는 아이를 위해 그 과정의 선함보다는 결과의 나음을 택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이 쉽지 않은 문제를 충실하게 던진 뒤 자신 만의 대답도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다. 결국 많은 일들을 겪게 된 준호는 코치인 광수가 부모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그냥 애가 혼자 하도록 놔두는 것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택하게 되는데, 그렇게 진심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되자 결국 2등도 아닌 1등을 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한 편으론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지켜 보았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결과로서 '1등'이라는 등수를 보여준 것은 더 큰 아젠다는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준호가 스스로 수영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1등'을 해야 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기에 꼭 1등을 해야겠다고 말하는 장면 역시, 조금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차라리 대회 장면이 아니라 준호가 정말 하고 싶은 수영을 하기 위해 홀로 수영장을 찾아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을 엔딩으로 했거나, 대회 장면으로 하더라도 순위 발표 이전에 마무리 했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진짜 1등을 만드는 것입니다'라는 느낌보다는 '1등도 4등도, 아이들에겐 등수가 중요하지 않아요'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준호가 1등이 되는 마지막은 한 편으론 아쉬운 부분이었다.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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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감독의 '4등'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고 있는 모든 관객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었다. 사실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조금만 쉬어 가려하면 그 사이에 순위가 바뀌어 버리는 탓에 쉴 틈 조차 없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그럼에도 진지하게 다시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날카롭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도 이제 다시 그 출발점에 서 있다.



1.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더군요. 박해준 배우나 아역인 유재상 군 말고도 개인적으로는 코치를 소개해주는 교회 분으로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더라는.


2. 이런 영화가 더 많은 극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적은 상영 횟수라도 꼭 찾아서 관람하시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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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 10번지 (10 Cloverfield Lane, 2016)

그 시간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영화의 특성상 모든 것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안보신 분들은 (특히 '클로버필드'도 안보신 분들이라면) 가급적..)


2008년 개봉했던 맷 리브스의 '클로버필드 (Cloverfield, 2008)'는 떡밥의 제왕 J.J.에이브람스가 제작한 깔끔한 장르 영화였다. 페이크 다큐라는 형식을 차용해 색다른 재난 블록버스터를 보여주었던 '클로버필드'의 외전 격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 '클로버필드 10번지' 역시 군더더기 없이 2시간이 안되는 러닝 타임을 즐길 수 있는 장르영화다. 사실 '클로버필드'의 외전이라는 표현 자체도 일부 관객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지 모르겠는데, 그 만큼 이 영화는 '그래도...혹시나??'하는 가능성을 끝까지 잡고 놓지 않는 적당한 긴장감을 가진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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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를 보지 않았더라면 전혀 감상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아니,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 속 현실이 진짜인지 아닌지 더 분간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본 이들이라도 그 연관성을 영화가 직접적으로 선언하지는 않고 있는 작품이라 전작과의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클로버필드'와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 벌어진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연관성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차 얘기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영화 말미까지 이것이 같은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존 굿맨이 연기한 캐릭터가 그저 미치광이 이기만 한 것인지를 두고 계속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밀당이 가능할 만큼의 긴장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영화 속 가장 큰 의구심 중 하나인 벙커 밖 바깥 세상의 현실이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훨씬 더 좁은 의미의 재미를 느낄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이런 공포/스릴러 장르 영화가 보여주는 클리셰들을 '클로버필드'라는 전작의 아우라를 통해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괜찮은 작품이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공포, 누구를 믿어야 하는 가에 대한 선택과 공포, 제한 된 공간의 감금과 탈출의 내러티브까지. 익숙한 것들을 또 한 번 즐기는 것이 가능하도록 다듬은 장르영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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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어떤 지구 종말이나 외계인 침공과도 같은 엄청난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중심에서 정면으로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보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채 스스로를 돌봐야 했던 이들의 모험담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는 큰 사건 속 (상대적으로)작은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풀어낸다. 난 더 심하게 고립 되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을 것 같지만, 이 영화는 다행히(?) 그래도 '클로버필드'라는 제목이 붙은 값은 해낸다. 영화의 말미에 갑자기 영화가 너무 뻔한 중심의 이야기로 전환되지 않는 것도 좋았다. 그저 주변의 이야기로 머물러서 제법 괜찮았던 영화.



1. 초반 여주인공이 이 벙커에 들어오는 장면에서 거실(?)에 깔려 있던 카페트에 토끼 그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놈의 토끼발인가?!

2. 브래들리 쿠퍼가 어디 나왔나 했더니 전화 음성이었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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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성급했던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



따지고보면 마블의 '어벤져스'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코믹스 팬들의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작품은 바로 배트맨과 슈퍼맨을 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에 관한 것이었다. 본래 영화화 측면에서도 마블보다 훨씬 더 먼저 관심과 성공을 가져갔던 DC코믹스는 차근차근 시네마틱유니버스를 완성시킨 마블의 성공을 보며 뒤늦게 (많이 늦게) '저스티스 리그' 영화화 계획에 들어 갔는데, 생각보다는 빠르게 바로 이 작품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획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것은 훨씬 오래 되었음에도 생각보다 빠르게 영화화가 되었다고 얘기한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나서 더 확고해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마블의 '어벤져스'에 비해 DC의 '저스티스 리그'는 아직 조금 성급한 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력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더 좋을 수 있었고, 이 기획의 기대감을 감안했을 때 더 좋았어야 했던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 많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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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배트맨 대 슈퍼맨'이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역시 2시간 반이나 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뚝뚝 끊어지는 듯한 편집점과 내러티브의 부자연스러움이었다.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본격적으로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캐릭터들 간의 충분한 연결고리와 갈등 구조를 풀어냈더라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득이 되었을 텐데, '배트맨 대 슈퍼맨'은 지루함도 다 지우지 못하고 성급하게 갈등을 풀어내는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맨 오브 스틸'까지만 보았던 관객 입장에서는 슈퍼맨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배트맨의 이야기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채 바로 중간부터 시작하는 경우라 쉽게 빠져들기는 어려운 정도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본 관객 입장이라고 해도 놀란의 배트맨과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사이에는 분명 스타일은 물론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간극이 있기 때문에, 만약 DC가 놀란의 배트맨을 연장선으로 가져가려고 했다고 보더라도 조금은 억지스러울 수 밖에는 없는 연결이었다. 놀란의 배트맨은 '다크나이트'라는 기본 테마를 중심으로 캐릭터의 갈등과 고민을 끝까지 파고드는 범죄 드라마였다면, 잭 스나이더가 다루는 배트맨은 그 일들을 겪은 한 참 뒤의 배트맨으로서 조금은 더 거칠어 지고 과격해지고, 자경단으로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에 있어서도 놀란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시기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이 연결은 조금 갑작스럽고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는 없던 경우라 전체적으로 공감대를 얻기는 부족했다.


DC코믹스의 '어벤져스' 격이라 할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가 조금은 성급했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어벤져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독립적인 작품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물론 '헐크'도 리부트를 겪기는 했지만)난 다음의 작품이었기에 가능했는데, 이번 '저스티스 리그'는 아직 밴 애플렉과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에 대한 명확한 컨셉이나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바로 '맨 오브 스틸' 이후의 슈퍼맨과 결합해 버린 영화이기에 (여기에 원더우먼까지 등장하고), 조금은 성급함이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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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을 말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배트맨 대 슈퍼맨'이라는 테마가 보여줄 수 있었던 깊이, 바로 그 좋은 재료를 이렇게 쉽게 써버린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과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을 정말 좋아하는 팬으로서, 히어로물이 사유할 수 있는 담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소재이자 프로젝트가 바로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과 협력을 다룬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이런 테마는 어설프게 그리고 액션 측면에서도 100% 만족감을 주지 못한 잭 스나이더의 결과물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잭 스나이더가 놀란의 '다크나이트'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한스 짐머의 장엄한 음악까지 더해져 시종일관 무겁고 웅장한 분위기를 내려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깊지 못했기 때문에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장 분위기를 깨버린 건 역시 그 갑작스러운 갈등 해결의 내러티브였는데, 아무리 이 재료가 보여줄 수 있었던 깊이를 제외하고 순수 액션 블록버스터의 측면으로 보더라도 이 갈등해결을 비롯한 내러티브의 전개는, 다들 너무 갑작스럽고 순진하기까지 한 진행을 보여준다. 그렇다보니 배트맨은 물론이고 슈퍼맨까지도 '왜 저러지?' 혹은 '저렇게 하면 될걸 왜 그러지 못하지?'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렉스 루터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점을 다 포기한다면 액션 측면에서 기가 막힌 볼거리를 제공해서 압도해 버려야 하는데, 뭐 별로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웅장한 음악에 비해 실상은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았던 액션 연출이 한 번 더 아쉬움을 남겼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액션은 배트맨도 슈퍼맨도 아니고 원더우먼의 등장 뿐이었다 (원더우먼은 이 등장 씬을 남기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가장 설득력 없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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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좋은 점을 이야기해보자면 밴 애플렉의 배트맨은 생각보다 괜찮고, 특히 액션에 있어서는 크리스찬 베일은 보여줄 수 없었던 묵직한 덩치 액션(?)이 가능해 시기적으로 잘 어울리는 편이다. 밴 애플렉의 독립적인 배트맨 영화가 가능하다면 (아니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한 이상 이건 꼭 필요하다)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대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고, 크리스토퍼 리브 이후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헨리 카빌의 슈퍼맨 역시 액션 중심의 영화가 아닌, 슈퍼맨(클락 켄트)의 내면의 테마를 기반으로 전개 되는 '맨 오브 스틸' 이후 슈퍼맨 영화를 하나 더 진행한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역시 충분하다. 좀 갑작스럽기는 했으나 원더 우먼 역시 이번 작품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들려준 것이 없음으로 다음 작품에서는 본인을 비롯해 플래시나 아쿠아맨, 사이보그 등과 함께 이야기를 전개 시켜도 좋겠다. 아, 그리고 그린 렌턴도 합류해야 할 텐데 (참고로 이번 관람 전에 코믹스로 저스티스 리그를 읽었더니 그린 렌턴이 다시 보고 싶어지더라), 이미 마블의 '데드풀'을 통해 스스로 디스를 완료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돌아오는 건 불가능해 보이니 여기도 리부트가 필수적일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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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더라면 더 흥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 작품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래도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은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 입장에서 안볼 수는 없는 작품일 것이다. 아...그래서 또 아쉬움이 남는다...



1. 아이맥스 3D로 1차 관람하고 2차로는 돌비 애트모스로 관람할 예정인데, 예상으로는 돌비 애트모스가 더 적절한 포맷이 아닐까 싶네요. 아이맥스 3D도 물론 좋았지만 최적의 포맷이었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게 까지는 아니라고 답할 듯.

2. 별 것 아니었지만 초반에 조금 그랬던게, 아무리 급한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이 겨우(?) 레니게이드를 탄다? 동네 나갈 때도 람보르기니 타던 분이...

3. 제레미 아이언스가 뛰어난 배우라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알프레드 캐릭터는 이미 마이클 케인이 너무 완벽하게 해 냈던 바람에 더 보여줄 여백이 남지 않은 듯 하더군요.

4. 잭 스나이더는 참..... 애증의 감독인듯 ㅎ

5. 관련 예전 글들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http://realfolkblues.co.kr/696)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http://realfolkblues.co.kr/700)

* 맨 오브 스틸 _ 클락 켄트는 없고 칼엘만이 남은 슈퍼맨 (http://realfolkblues.co.kr/1812)

* 왓치맨 _ 히어로에 빗댄 정치와 권력에 대한 담론 (http://realfolkblues.co.kr/897)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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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끝까지 단단하고 새롭기까지 한 역대급 사극



지상파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한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최근엔 별로 재밌게 본 작품이 없었는데, '육룡이 나르샤' 역시 첨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퓨전 사극 냄새가 나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제목이 처음 내용을 몰랐을 땐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봐야지 했던 이유는 역시 배우들이었다. '베테랑' '사도' 등으로 한창 뜨거웠던 유아인을 비롯해 김명민, 천호진, 신세경 등은 물론 개인적으로 '미생' 이후 더 주목하게 된 변요한까지 출연한다는 소식은, 최소한 일단 시작은 해봐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던 배우들은, 이 작품을 더 역대급으로 만들어 내는 완벽한 조각이기도 했다.


50부작에 달하는 내용을 하나 하나 다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전체적인 감상과 마지막 회 위주로 간략하게 이야기해볼 텐데, 첫 째는 역시 완성도다. 보통 50부작이나 되는 TV드라마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있어서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은데, 그건 국내 드라마의 퍽퍽한 제작 여건도 부정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전반적인 리듬감이나 균형을 위해 강약을 조절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육룡이 나르샤'는 50부작 전체가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한 회도 그냥 지나치는 화가 없을 정도로 짜임새 있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는 빠른 리듬감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이 끝나고 나면 '벌써 끝났나?'라고 자주 얘기했던 건 그냥 팬심 만은 아니었다.


사극의 특성상 여러 인물들과 관계 들이 등장하는데 그 다양함을 복잡함의 나열이 아니라 깨알 같은 연관성으로 엮어 냈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여러 다른 인물들과 관계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빠지고를 반복해도 완성도의 붕괴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여러 회차가 다 인상적이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25회를 꼽지 않을 수 없겠다. 땅새와 연희의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절정을 치닫는 가운데, 땅새와 무휼, 영규까지 목숨을 건 액션 시퀀스는 과연 한국 TV드라마에서 이 정도 수위와 연출의 액션을 본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는 엄청난 회였다. 액션 측면으로만 봐도 잠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긴 호흡으로 가져간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액션 시퀀스를 비롯한 이 회차 전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밑바닥에는 땅새와 연희의 감정선이 아주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주제를 감정적으로 분출시킨 장면으로서, 볼거리와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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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스포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역사를 묘사하는 작품의 방식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 절정은 역시 정몽주와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나눈 단심가와 하여가 시퀀스였다. 누구나 학창시절 배우고 외워서 잘 알고 있는 이 내용을, 머리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달해 내 이제야 비로소 두 사람의 진심과 심정을 해아리게 만드는 드라마의 힘은 대단했다. 이 밖에도 우리가 흔히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수 많은 역사 속 순간이나 인물, 사건 들이 등장할 땐, 마치 이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해 내는 연출이 돋보였다. 그러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되지?'라는 궁금증 마저 들게 만들거나 혹은 '아..그래서 그랬던 거구나...'하며 비로소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나는 이것이 '육룡이 나르샤'가 달성한 가장 큰 성공이 아닐까 싶다.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 그것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뻔하다고까지 생각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놀랍게도 처음 듣는 얘기처럼 만들어 낸 연출과 구성은, '육룡이 나르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마지막 회는 주로 에필로그를 담는 형식으로 그려졌는데, 보통 에필로그를 그리게 되면 축축 처지면서 정리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마지막 회에서도 마치 더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듯한 에너지를 보여주며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50부작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SBS드라마인 '뿌리 깊은 나무'와의 연결고리가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했던 이 드라마를 '육룡이 나르샤'는 아주 영리하게 활용했다. 특히 마지막 회는 '육룡이 나르샤'의 50회이자 '뿌리 깊은 나무'의 0회 정도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 고리가 단단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은 그 연결 고리를 하나 하나 발견해 내며 이 역사의 계속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뿌나'를 보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선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말 다음 주 부터 '뿌나'를 방영하는게 새로운 드라마를 하는 것 보다 나을 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도(세종)를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로 등장시킨 것도 정말 좋았다. 이도의 존재가 이방원이 꿈꾸었던 자신을 포함한 존재들의 가치를 모두 조금씩 닮아 있었다는 점에서, 그를 연기한 아역이 다름 아닌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라는 점은 묘한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5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쉬지 않고 긴박하게 달려 온 '육룡이 나르샤'는, 배우들의 놀랍고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바탕으로 마지막회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단단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익숙한 역사에 생동감을 불어 넣은 역대급 사극이었다.

아... 다음 주 부터는 정말 뭘 보지. 둘 중 하나는 봐야겠다. '육룡이 나르샤'를 1회부터 다시 정주행하거나 '뿌리 깊은 나무'를 다시 보거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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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레스트 : 블루레이 리뷰 (Everest : Blu-ray Review)

사실적 재난 영화


재난 영화 그리고 산악 재난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클리프 행어 (Cliffhangger, 1993)'나 '버티칼 리미트 (Vertical Limit, 2000)' 같이 액션과 어드벤쳐가 결합 된 장르 영화가 있고, 다른 하나는 산악 영화는 아니지만 '더 임파서블 (The Impossible, 2012)'같이 재난을 액션과 흥미 위주로 다루기 보다는 흡사 다큐멘터리 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여 공포와 인간애를 중심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발타자르 코루마쿠르 감독의 산악 영화 '에베레스트 (Everest, 2015)'를 이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하자면 후자에 더 가까운 작품일 것이다. 즉, 이 영화는 에베레스트라는 누구나 흥미를 갖고 산악 영화로서 가장 매력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하는 과정에 모험과 목적이 있기 보다는 오히려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산을 왜 오르냐고 묻는다면 그곳에 산이 있으니까'라는 질문과 대답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만약 '에베레스트'라는 영화를 제목과 조쉬 브롤린, 제이크 질렌할, 제이슨 클락, 키이라 나이틀리 등 익숙한 배우들이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밋밋한 영화가 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산악 재난 영화에서 (특히 이런 유명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는 경우라면 더욱) 클라이맥스로 구성되는 정상 정복의 순간 혹은 그 직전의 과정이 이 영화 '에베레스트'에서는 서두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정상 정복 이후 몇 년 후로 점프하는 영화가 아니라 어쩌면 상대적으로 쉽다고 까지 느껴질 정도로 묘사되는 정상 정복 이후 산을 내려오는 과정 중에 벌어지는 일들을 재미 보다는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한다.






앞서 언급했던 '더 임파서블'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에베레스트' 역시 이 산과 등산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것보다도, 1996년 5월에 에베레스트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어드벤쳐 컨설턴트 등반팀의 사고를 조심스레 다루는 것에 목적이 더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를 위해 실존 인물들에 대한 조사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 배우들의 연기로 돋보이기 보다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더 목적을 두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러 유명한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배우들이 돋보이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Blu-ray : Video

 

최대한 실제의 에베레스트가 주는 위압감과 공포 그리고 1996년 사고 당시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영화의 촬영/접근 방식답게 블루레이의 화질과 사운드는 레퍼런스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밝은 날씨의 환경에서 진행되는 등반 훈련 장면과 캠프의 모습에서는 다양한 컬러의 등산복들의 색감이 잘 표현되고 있고, 복잡한 캠프의 모습들도 아주 선명하게 표현된다. 또한 조금은 그늘지고 어두운 조명이 뒤섞여 있는 텐트 내의 장면에서도 빛이 들고 들지 않는 곳 모두의 표현력이 우수하여 화질의 우수함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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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에베레스트를 먼 거리에서 비추는 구도에서는 오히려 클로즈업 된 장면에서보다 더 디테일 한 표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캠프 장면 같은 경우는 실제 에베레스트에서 촬영하기도 했지만 일부 위험한 장면의 경우 세트 촬영이 병행되었는데, 이런 탓에 아주 약간은 세트 촬영 분의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후반부 에베레스트에서 폭풍을 만나게 되는 시퀀스의 경우 어두운 조명 가운데 눈보라가 휘몰아 치며 인물들도 폭풍과 눈에 휩싸이게 되는데, 어두운 조명과 환경 탓에 평범한 수준으로 화질이 표현될 수 있는 장면에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있어 집중력을 높인다. 영화의 내용 자체는 산악 재난을 오락적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화질이나 사운드 측면에서는 이런 장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들을 거의 모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만족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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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Audio

 

돌비 애트모스와 True-HD 7.1 채널의 사운드는 관람 환경의 체감 온도마저 변화시킬 정도로 실감나는 사운드를 전달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후반부 에베레스트에서 폭풍이 휘몰아 칠 때 그 강력한 바람이 스피커를 통해 휘감기는 느낌은, 단순히 귀로 끝나지 않고 팔과 다리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입체감 넘치는 바람을 표현해 낸다. 단순히 우퍼 스피커를 중심으로 규모 있게 울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이동과 세기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사운드 디자인은 에베레스트 블루레이 사운드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압도적인 눈 폭풍의 사운드 구성 외에도 맑은 날씨에서 불어오는 미풍이나 이 미풍이 발생시키는 작은 눈가루가 이동하는 소리, 그리고 눈이 등산복과 장비들에 부딪혀 나는 작은 소리들의 디테일도 훌륭하다. 그리고 후반부 헬기 등장 씬의 경우도 일반적인 헬기 씬에서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사운드 (직접적으로는 공기의 움직임)를 만나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그 공간감의 표현이 매우 만족스러운 편이다. 사운드 측면에서는 특별히 흠잡을 점이 없는 타이틀이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블루레이 부가영상 첫 번째로는 감독인 발타자르 코루마쿠르가 참여한 음성해설을 들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질 않아 사실상 즐길 수가 없다. 제작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에베레스트를 만나는 과정이었던 영화인 만큼 감독이 직접 들려주는 제작과 촬영 뒷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것은 몹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Race to the summit : The making of Everest'는 약 10분 분량의 메이킹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실제로 네팔 히말라야 인근의 고지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다 보니, 스텝들은 물론 배우들까지 연기가 아닌 실제 에베레스트를 경험할 수 있었던 현장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열악한 고지대 현장에 촬영을 위한 여러 장비를 설치하고 옮기는 일 자체도 엄청난 도전이었으며, 배우들에게는 영화를 촬영한다는 느낌 보다는 진짜 탐험대의 일원이 되어 고난을 극복해 내는 과정을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그 결과가 고스란히 연기 아닌 연기에 녹아 들었음을 알 수 있다.






'Learning to Clim'에서는 약 5분이 채 안되는 분량으로 오락적인 측면에서의 등반이 아닌 실제 등반가들의 입장에서 다룬 영화답게, 산을 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이 영화를 통해 배우게 된 배우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 들려준다.




'A Mountain of Work'에서는 실제로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현실적인 장면들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로케이션 촬영이 불가능했던 에베레스트 정상 및 위험한 장면들의 세트 촬영 과정을 소개하며, 'Aspiring to Authenticity : The Real Story'에서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던 영화였던 만큼 실존 인물들의 가족과 주변인들 그리고 실제 그 사건 당사자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실제 이야기를 들려준다.





[총평] '에베레스트'는 액션과 어드벤쳐가 중심이 된 산악 재난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조금은 심심하고 밋밋한 영화일 수 있겠지만, 반면 이런 장르적 클리셰 중심이 아닌 실제 사건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자 한 방식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와는 또 다른 영화의 매력에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특히 레퍼런스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화질과 사운드를 담고 있는 블루레이는 아이맥스 상영을 관람하지 못했던 관객들이나 관람한 이들에게 모두, 이 재난을 아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적극 추천할 만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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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 3 : 최후의 대결 (葉問3, Ip Man 3, 2015)

패배를 인정하는 자들의 아름다움


홍콩에 정착하게 된 영춘권 최고수 ‘엽문’, 뛰어난 무예와 올곧은 성품으로 무술인들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존경 받는 지도자이다. 마을에 들어 닥친 외세의 부정부패 속에 학교부지를 뺏으려는 암흑조직이 어린 학생들을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하고 암흑가의 보스를 찾아가 일대일 결전을 벌인다. 밤낮 없는 싸움이 계속 되는 상황, 스스로를 영춘권 정통 계승자라 칭하며 일대종사의 자리를 넘보는 ‘장천지’ 까지 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데… (출처 : 다음영화)


실존 인물인 영춘권의 계승자 엽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엽문'이 벌써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견자단이라는 현재 중화권 최고의 무술 액션 배우를 통해 빚어낸 엽문의 이야기는 1차적으로 쿵푸 액션이 주는 볼거리를 전하는 동시에 무협, 즉 정신적인 측면의 뿌리를 강조함으로서 스스로 깊이와 정통성을 말하고자 한 시리즈였다. 세 번째 작품인 '엽문 3'의 구도는 마치 오래 전 이연결이 연기했던 '황비홍' 시리즈를 연상시키며, 견자단이 연기한 엽문은 보여주기 식의 액션이 아닌 정반대로 보여주기를 최소화 한 액션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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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1,2편에 이어 3편까지 감독을 맡은 엽위신의 이번 '엽문'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액션 만큼이나 드라마를 강조하고 있는 이번 작품에서 그 약점은 도드라지는데, 배우들의 연기도 전반적으로 아쉽고 드라마와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연결도 자연스럽지 못한 편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그럭저럭이지만 별개로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을 보며 받은 깊은 인상이 있었다. 중화권 영화 특히 무협 영화에서 등장하는 강호라는 개념, 그리고 그 강호 속에 등장하는 고수들의 면면을 보자면 쉽게 말해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호의 의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그러니까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의 우정이나 의리 뿐만 아니라 목숨을 두고 겨루는 상대와도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술적인 실력 만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고수가 되기 까지의 과정에 대한 존경과 서로 지켜야 할 선을 지킴으로서 오는 공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엽문 3'에서도 그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타이슨이 연기한 캐릭터나 장진이 연기한 캐릭터 모두 엽문과 대결을 하게 되는데, 서로 협의한 방식에 대해 정당하게 겨루고 그 결과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결이 끝난 후에 안심하고 돌아서는 주인공을 뒤에서 비겁하게 공격하거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막판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당 들의 모습, 혹은 현실에서 만나는 구질구질한 인간 군상의 모습에 비춰 봤을 때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은 부러움을 넘어서 판타지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부정을 저질렀거나 옳지 않은 방법으로 부나 권력을 얻게 되었더라도 그 과정이 밝혀지거나 어떤 합의 한 룰에 의해 패배했을 때 '아, 끝났구나'하고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근래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끝까지 거짓말을 하거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결과를 뒤집거나 흐리기 위해 더더 인간성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들을 보면, 영화 속 인물들이 패배 후 단 한 마디 없이 깨끗하게 인정하는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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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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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Joy, 2015)

'가족'이라는 어쩔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이혼한 부모님과 전남편, 할머니와 두 아이까지 떠안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싱글맘 조이(제니퍼 로렌스).
자신이 꿈꿨던 인생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에 지쳐가던 어느 날, 깨진 와인잔을 치우던 조이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아주 멋진 것을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어릴 적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한 조이는 상품 제작에 돌입한다. 그러나 사업 경험이 전무한 조이는 기업과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으며 여자에게 더욱 가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벽 앞에서 매번 좌절하게 된다. 이 때 전 남편 토니의 소개로 홈쇼핑 채널 QVC의 경영 이사인 닐 워커(브래들리 쿠퍼)를 만나게 된 조이는 기적적으로 홈쇼핑 방송 기회를 얻게 되고 5만개의 제품을 제작한다. 하지만 단 한 개도 팔지 못한 채 처참한 상황을 맞게 된 조이는 결국 빚을 떠안고 파산 위기에 처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미국 최대 홈쇼핑 채널의 CEO인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를 그린 데이비드 O.러셀의 '조이 (Joy, 2015)'는 예상외로 성공 신화를 다루지 않는다. 그녀가 엄청난 성공을 이룬 이후의 이야기는 짧게 스케치 정도로만 등장하고 성공하기 까지의 우여곡절 역시 조금은 느슨하게 다루는 편이다. 그녀 역시 힘겨운 시간들을 거쳐서 만인이 바라는 부를 누리게 된 것은 맞지만, 데이비드 O.러셀이 주목한 것은 그녀의 사업적인 흥망성쇠 보다는 오히려 그녀를 둘러싼 특별한 가족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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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현실 속에 놓인 주인공과 가족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족 역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이지만 그 존재 만으로도 힘겨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로 묘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 그 힘겨운 현실을 더 힘겹게 만드는 주된 요인으로 그리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영화 '조이'는 이 둘 중 하나로 말하기가 어렵다. 이혼을 한 남편이나 이복 동생, 이혼한 부모님이 만나는 연인 등의 전통적이지 않은 가족의 구성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 점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각자의 삶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탓에 주인공 조이의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방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방해 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 조이의 모습에서는 이미 본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존재이자 관계 임을 인정한 듯 보인다. 그래서 한 편으론 영화 속 조이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가 한 걸음 내 딛는데 까지 너무 많은 가족들의 직간접적 방해를 해치고 나와야 하는 상황들은, 어쩌면 그녀가 비즈니스 적으로 겪었던 어려움들 보다도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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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데이비드 O.러셀이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그녀의 가족 이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미 전작 '파이터 (The Fighter, 2010)'에서도 이러한 가족이라는 존재를 깊이 그려낸 적이 있는데, '조이'를 보다보면 '파이터'의 가족이 절로 떠오른다. 만약 다른 감독의 영화나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면 조이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애초부터 방해 요인이 되거나 될 변수를 갖고 있는 가족들을 자신의 삶에서 분리해 나갔을 텐데, 이 영화 속 조이는 그러한 노력을 사실상 거의 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완전하게 거리를 두거나 인연을 끊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렇게 조이를 이용하거나 해를 가하는 가족들이 마음을 고쳐 먹는 것도 아니다. 관계는 좋아졌다 나빠졌다는 반복하지만 조이는 그래도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에서라기 보다는 그저 '어쩔 수 없는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수용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도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만인이 부러워 하는 성공을 이뤄낸다. 영화는 그렇게 조이라는 인물의 성공에 있어서 그녀의 악착 같음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어쩌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고도 볼 수 있는 가족을 말한다. 성공이라는 계산적이고 치열한 현실과 경쟁에 있어서 가족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데이비드 O.러셀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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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가 전체적으로는 조금 심심한 감이 있어요. 가족이라는 테마를 성공담에 녹여내고는 있지만 특별하지는 않거든요. 제니퍼 로렌스의 무르익은 연기를 보는 재미가 어느 정도 이런 점을 상쇄시키는 편입니다.

2. 데이비드 O.러셀 감독은 이번에도 영화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시대 배경을 피부로 와닿게 하는 동시에 인물의 감정 표현까지 음악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편이에요.




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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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Room, 2015)

우리는 타인의 상처를 진정 배려하고 있는가


7년 전, 한 남자에게 납치돼 작은 방에 갇히게 된 열일곱 살 소녀 ‘조이’. 세상과 단절된 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중, 아들 ‘잭’을 낳고 엄마가 된다.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엄마와 아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잭은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태어나 단 한번도 방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한 잭을 더 이상 좁은 방안에 가둬 둘 수 없다고 생각한 조이는 진짜 세상으로의 탈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들의 극적인 탈출과 충격적인 과거 때문에 세상은 두 사람을 또다시 보이지 않는 방안에 가두려 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엠마 도노휴의 아마존 베스트셀러 '룸'을 원작으로 한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영화 '룸 (Room, 2015)'은 영화 속 이야기와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모두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소녀 시절 작은 방에 납치되어 7년 간을 살아가게 된 조이와 이 곳에서 태어난 조이의 아들 잭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갇혀버린 공간으로부터의 탈출에 관한 내러티브를 전개한다. 보통 공간과 탈출이 주된 목적인 이야기라면 이 작은 공간 밖의 세상과 이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고통을 더 부각 시키기 마련인데, '룸'이 이 갇힌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한 편으론 자발적 감금을 의심할 정도로 이 작은 방 안에서 모자의 생활은 비슷한 다른 영화 속 감금 된 주인공들보다는 우울하지 않은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우울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영화가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어린 잭의 시선처럼 이 작은 방 안에서도 자신 만의 우주를 만들고, 적응해 살아가는 모습을 더 부각시키면서 이 감금의 상황을 더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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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정적으로 보통 같았으면 탈출과 동시에 끝나 버렸을 이야기를 그 이후에도 한참이나 더 이어간다. 일반적인 감금의 스토리라면 감금 기간 동안 그 고통과 답답함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관객 역시 어서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증폭시킨 뒤, 결국엔 아주 극적으로 탈출하고 구조되는 것으로 안도의 한 숨과 함께 영화가 끝나는 것이 대부분 일텐데, '룸'은 오히려 극적인 탈출 이후의 이야기에 더 주목한다. 아니, 탈출 이후의 이야기에 주목했다는 것 보다는 인물이 진짜로 이 상황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고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그 사건이 일차적으로 종료되었을 때 제3자의 시선에서 안도와 함께 당사자의 삶도 함께 일단락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어쩌면 철저히 제3자의 시선일 것이다. '어떻게 저런 끔찍한 일이...' '와, 정말 구조되서 다행이다', '이제 됬네'로 마무리 하는 것은 사실 당사자들을 많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자기 만족에 가까운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 판단 속에는 당사자들이 겪은 일들을 결국 100% 공감할 수는 없는 한계와 더불어 그들이 실제로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견뎌야 할 지리한 시간들은 지켜볼 엄두가 나지 않거나, 지켜볼 생각이 없다는 심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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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룸'은 바로 그 지리한 시간, 마치 모두가 그들 만을 위하고 안도하는 것 같았던 난리통이 다 지나간 뒤의 시간까지 차분히 기다려준다. 그리고 실제로 오랜 감금 생활에서 벗어난 모자가 그 오랜 감금의 시간으로 인해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지, 그런 시간들로부터 회복한다는 것이 당사자인 그 두 사람에게는 물론, 그들을 아끼는 가족들에게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를 한 발 물러나 바라본다. 보통 재난 영화 같았으면 탈출과 구조의 시점에서 모두 행복함과 안도감만 남기고 끝나 버렸을 그 이후의 시간들을 말이다. 그리고 조이와 잭이 스스로 이 사건과 오랜 심적 감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영화를 조심스럽게 끝낸다. 완전히 벗어 났을 때야 끝을 낸다 라고 말하지 않은 건, 영화가 끝을 내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영화 '룸'에서 발견한, 모정이나 탈출의 극적인 요소보다도 더 인상적인 점, 바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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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잭이 룸을 탈출해서 바깥 세상을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은 올해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그 눈빛이 정말 모든 것을 말해주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2. 영화를 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보고 나니 제이콥 트렘블레이가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것을 두고 평론가들이 불만을 얘기했는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냥 아역으로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쓴 브리 라슨 보다도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거든요.




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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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 (Saul fia, Son of Saul, 2015)

죽음의 한 가운데 구원을 행하다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시체들을 처리하기 위한 비밀 작업반이 있었다. ‘존더코만도’라 불리던 이들은 X자 표시가 된 작업복을 입고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직 시키는 대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존더코만도’ 소속이었던 남자 ‘사울’의 앞에 어린 아들의 주검이 도착한다. 처리해야 할 시체더미들 사이에서 아들을 빼낸 ‘사울’은 랍비를 찾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기로 결심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라즐로 네메스 감독의 '사울의 아들 (Saul fia, 2015)'은 홀로코스트의 참혹했던, 아니 지옥같았던 현실을 그려낸 작품이다. 아유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대규모의 유대인 학살 한 가운데서 시작하는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크게 들이 쉰 숨을 끝날 때까지 내뱉지 않는다. 4:3의 제한된 화면비와 오로지 주인공 사울의 등 뒤에서 혹은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카메라 역시 최소한의 것들만을 보여준다. '사울의 아들'은 지옥 같았던 홀로코스트 현장을 그려내면서도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것들만을 보여주고자 한다. 오로지 카메라의 포커스는 사울의 얼굴과 사울의 등, 그리고 사울이 만나는 이들의 얼굴에게 맞춰질 뿐, 참혹하게 쌓여있는 죽은 자들의 현실은 철저한 포커싱 아웃되어 묘사된다. 이것은 어쩌면 관객에 대한 영화의 배려다. 대부분의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참혹한 비극을 더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감동과 비극을 극대화 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사울의 아들'은 오히려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관객에게 이 참혹한 진실을 각자의 눈으로서 어떠한 의도됨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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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극 중 사울의 행동은 한편으론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백명이 넘게 유대인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는 한 가운데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자신의 아들 (나는 이 아들이 사울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이 더 의미하는 바가 크기도 하고)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수용소를 탈출하고자 계획을 세웠던 동료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면서까지 랍비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듯한 사울의 모습은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기적인으로 보여지는 측면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사울의 이러한 행동은 영화가 선택한 구원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는 사울을 비롯해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라는 이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데, 이들은 자신들도 유대인이면서 끌려온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안내하고 이후엔 시체를 치우고, 청소를 하고, 귀중품을 챙기는 등의 행동을 했던 이들로서 어쩌면 극 중 사울의 대사처럼 '이미 죽어버린'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아유슈비츠의 환경 속에서 능동적으로 기생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목숨을 담보로 같은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 동참할 수 밖에는 없었던 또 다른 비극의 피해자로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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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아들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랍비를 찾아 해매는 사울의 행동은 자신만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작게는 존더코만도들에 대한 구원, 더 나아가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아야 했던 모든 유대인들에 대한 구원을 바라는 행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이 지옥같은 상황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히려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서도 거부할 수 없었던 사울이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간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미를 반영하듯 영화 내내 사울의 등 바로 뒤에서 오로지 사울의 행동 만을 쫓고 보여주었던 카메라는, 마지막에 가서 마치 이 지옥 속에서 모두를 구원하고자 했던 사울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신(God)이 그만의 방식으로 사울이 구원을 이뤄낸 순간 비로소 그를 떠나는 듯한 느낌으로 그의 등 뒤에서 떨어져 나온다. 사울의 아들이란 그저 그 한 아이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구원 받지 못했던, 구원 받아야 했던 모든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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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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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 (Zootopia, 2016)

편견없는 판타지아를 꿈꾸며


오래 전 우리가 보고 자랐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그 당시에는 몰랐었으나 사실 대단한 편견과 잘못된 가치관을 담은 이야기들이 많았었다. 이미 드림웍스의 '슈렉' 시리즈를 통해 풍자 되었던 것처럼 단순히 외모로 캐릭터를 판단하거나 외모를 중심으로 삶의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기도 했었고, 육식공룡은 나쁜 편, 초식공룡은 착한 편 같은 흑백 논리를 펼치거나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캐릭터는 악당이라는 선입관을 심어주기도 했었다. 이런 디즈니 스튜디오의 가치관을 그저 한 영화사의 성격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앞서도 잠시 이야기했던 것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전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것이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 아닌 편견을 갖게 되는 샘인데, 바로 그 지점으로 미뤄봤을 때 이번 '주토피아 (Zootopia, 2016)'라는 작품은 여러 모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디즈니가 픽사 인수 이전부터도 아주 예전과 같은 보수성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주토피아'처럼 바로 그 잘못된 편견에 대해 근본부터 제대로 다룬 작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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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이런 변화가 직접적으로 드러났던 좋은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이 작품을 연출한 리치 무어 감독의 전작인 '주먹왕 랄프 (Wreck-It Ralph, 2012)'였는데, 디즈니의 세계관에서는 매번 악당 역할을 해야 만 했던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가운데로 끌여들여, 그런 편견이 옳지 않았음을 표현해낸 작품이었다. '주토피아'는 이보다 더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니까 육식동물은 위험하고 초식동물은 착하고 라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기본이요, 그것을 반대로 뒤집는 경우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어쩌면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것이 편견이나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조차 못한 것들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 주디 홉스가 처음 경찰이 되어 주토피아 경찰서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입구에서 안내하던 육식동물 경찰은 제법 편견없는 시선으로 주디를 바라보며 '정말 귀엽게 생긴 토끼네'라고 이야기한다. 정말로 사심없이. 하지만 이 때 주디는 이렇게 얘기한다. '토끼끼리 귀엽다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동물이 귀엽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실례라고'. 와! 이런 정도의 대사를 디즈니 영화에서 만나게 되다니. 크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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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영화는 텍스트 전반에 걸쳐 이 편견에 대한 풍자 혹은 뜨끔한 농담을 늘어 놓는다. 엄청나게 느린 나무늘보의 이름은 '플래시 (Flash)'이고 이름부터 큰(?) '미스터 빅'이라는 캐릭터는 다름 아닌 작은 생쥐다. 이 미스터 빅을 묘사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는데 '대부'의 돈 꼴리오네를 패러디하다 못해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딸의 결혼식까지 똑같다 ㅎ) 이 캐릭터는 작은 몸집 임에도 훨씬 큰 북극곰들을 수하로 거느리고 있는데, 이것 자체가 편견을 뒤집는 설정이다. 쉽게 생각하면 왜 저런 큰 덩치의 곰들이 한 주먹 거리도 안되는 생쥐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나 의아해 할 수 있는데, '한 주먹 거리도 안되는' 이라는 생각 자체가 이미 크기를 기반으로 한 힘으로서 누군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설정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가면 또 한 번 기존의 보수적인 설정을 뒤집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반전의 의미라기 보다는 설정을 뒤집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겠다), 기존의 영화들 특히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단순한 구조의 애니메이션 작품의 경우 착한 편인 주인공이 하는 행위는 모두 그래도 되는 것으로 넘어가는, 아니 그렇다고 믿는 경우가 많은데 '주토피아'는 그 반대의 경우도 똑같은 폭력이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걸 놓치지 않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행동하기 쉽지 않는 문제이고, 아이들에게는 머리와 가슴 모두로 새겨야 할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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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가 담아 낸 이 편견없는 판타지아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완벽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꺼내 들었기 때문에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본다면 위태위태한 부분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토피아'가 의미 있고 무엇보다 좋은 영화라는 점은 들려주고자 했던 메시지의 건강함 때문이다.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평소 편견이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만이 아니라, 이런 것도 편견이 될 수 있겠다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남녀의 차별, 인종으로 인한 차별과 편견, 외모로 인한 차별과 편견, 지역, 출신 등 모든 것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들 가운데는 겉으로 드러나 잘못되었다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들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이 곱씹어 보아야만 그것이 편견이 될 수 있겠구나, 차별이 될 수 있겠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것들도 많았다. 그래서 마지막 샤키라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엔딩곡의 가사 내용은 더 의미 심장하다. 내일도 실수할 거고, 또 실수할 거에요. 라는 말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노력을 멈추지 말자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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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카데미 시상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브로 TV를 통해 시청한 건 이번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매번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인터넷이나 다른 중계등을 통했었는데, 이번엔 쾌적하게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CGV의 동시통역 환경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다. 동시통역이라는 것이 본래 매끄럽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번 처럼 현장의 소리와 통역 소리가 거칠게 겹쳐지고, 또한 대충 들어도 빼먹는 부분이 많거나 통역사의 말투가 매끄럽지 못하다면 차라리 이전처럼 자막으로 제공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듯 싶다. 내년에는 좀 늦더라도 실시간 자막으로 제공하는 편이 좋을 듯.


2. 시상식 전부터 흑인 후보가 한 명도 지명되지 않는 것을 두고 일부 보이콧 까지 벌어졌던 이번 오스카는, 이를 의식한 듯 사회자 크리스 록의 작정 멘트들과 함께 다양한 부분에서 흑인들의 배제를 역으로 이용하는 순서들이 진행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데, 단 하나 스스로 만든 논란과 그 반대의 의견을 그 스스로의 무대에서 펼치는 것이 가능한 아카데미의 환경이 조금은 부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논란을 안만드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3. 개인적으로 촬영상과 더불어 가장 주목했던 부문이 바로 여우조연상이었는데, 다섯 작품을 모두 관람한 결과 '대니쉬 걸'의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가 가장 손꼽을 만 했으나, '캐롤'의 루니 마라는 물론, '헤이트풀 8'의 제니퍼 제이슨 리와 '스티브 잡스'의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도 충분히 좋았고, '스포트라이트'의 레이첼 맥아담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이변이 나지는 않을까 흥미로웠던 부문이었다. 수상은 예상대로 비칸데르가 가져갔다. 루니 마라는 뭐, 칸에서 주연상도 받았는데 뭐. 차라리 주연상 후보에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이 동시에 올랐다면 더 흥미진진 했을 듯.


4.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초반 기세는 대단했다. '매드 맥스가 아니네요'라는 수상 발표 농담이 나올 정도로. 하지만 오히려 감독상이나 작품상의 주연 부문에서는 수상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작품성이 몹시 뛰어난 작품으로, 경쟁작들을 재치고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수상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오히려 한 편으로는 받았어야 할 작품이기도 하다.


5. 주제가상 후보로 오른 '유스'의 더 심플송의 공연이 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근데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곡이 주제가상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올랐던 생각이 '과연 이 곡을 어떻게 공연할 것인가'였는데, 역시나 시간 상 공연이 어려워 취소된 것이 아쉬웠다.


6. 음악상은 쟁쟁한 후보들을 재치고 엔니오 모리꼬네가 '헤이트풀 8'로 수상했는데, 공로상을 먼저 받고 아카데미를 그 후에 수상하는 경우가 또 있었나 싶다. 레오의 남우주연상도 그렇고, 스콜세지의 감독상도 그렇고, 모리꼬네도 '헤이트풀 8'로 수상하는 건 아이러니랄까.


7.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부문은 아마 촬영상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엠마누엘 누베즈키가 만든 '레버넌트'의 촬영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혹시라도 그가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엠마누엘 누베즈키와 만난 다른 후보들이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시카리오'의 로저 디킨스는 그저 눈물 ㅠㅠ





8. 이렇게 긴장되는 시상식이 또 있을까. 아마 나중에 우리나라 배우나 감독이 아카데미의 유력 수상 후보로 올라간다 해도 이보다 더 걱정되고 긴장되지는 않을 듯 하다.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모든 예상이 디카프리오의 수상을 점칠 때마다 '혹시...'하는 걱정은 더 커져만 갔다. 그의 팬으로서 상을 꼭 탔으면 하는 것 보다도, 빨리 이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심정이 더 컸던 것이 사실 ㅋ '레버넌트'보다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로 수상하는 것이 더 적절했겠지만서도. 눈물이 날 법도 한데, 초연한 듯 환경 문제에 대한 수상소감을 힘있게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후광마저 느껴졌다 @@ 다음 작품은 좀 덜 고생하고 가벼운,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영화 하나 했으면 좋겠다.


9. 나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작품들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지만, 감독상을 누구에게 줘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는 조지 밀러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레버넌트'는 감독을 비롯한 배우, 스텝들의 영화적 야망이 아주 강렬하게 묻어난 작품이었는데, 아무래도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보다는 좀 더 아카데미 취향의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10. 맨 마지막 작품상 수상작으로 '스포트라이트'라고 모건 프리먼이 짧게 외쳤을 때, 혹시 일종의 페이크는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예상 못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의외의 결과였다. 좋은 영화였고,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극 중 마크 러팔로가 연기했던 실제 인물이 함께 자리를 한 것도 의미있었다.


11. 이렇게 이번 아카데미도 막을 내렸다. 뭐 상을 받고 못 받고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레오에게는 아닐 듯), 그보다는 인상 깊게 봤던 영화들의 장면들과 배우, 감독, 스텝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후보작들 가운데 아직 못 본 '룸'이나 '사울의 아들', '트럼보', '브루클린' 등도 어서 봐야겠다.



* 이번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주요 작품들의 리뷰들.



레버넌트 _ 생존 그 자체에 대한 경외 (http://www.realfolkblues.co.kr/2063)

빅쇼트 _ 안일한 자본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http://www.realfolkblues.co.kr/2068)

스파이 브릿지 _ 신념을 지켜낸 자들의 우화 혹은 실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38)

마션 _ 다시 우주를 꿈꾸게 만드는 휴먼드라마 (http://www.realfolkblues.co.kr/2017)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_ 여성은 스스로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http://www.realfolkblues.co.kr/1971)

스포트라이트 _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http://www.realfolkblues.co.kr/2077)

스티브 잡스 _ 전기 영화 아닌 치열한 캐릭터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66)

대니쉬 걸 _ 진짜 나를 찾아줘 (http://www.realfolkblues.co.kr/2076)

캐롤 _ 아름답고 확고한 사랑의 이름 (http://www.realfolkblues.co.kr/2071)

헤이트풀 8 _ 타란티노의 첫 번째 오리지널 서부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62)

인사이드 아웃 _ 부모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미안함 (http://www.realfolkblues.co.kr/1985)

시카리오 _ 범죄와 현실의 가운데서 (http://www.realfolkblues.co.kr/2049)

침묵의 시선 _ 악마와 얼굴을 마주하다 (http://www.realfolkblues.co.kr/2010)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_ 새로운 삼부작의 시작 (http://www.realfolkblues.co.kr/2054)

007 스펙터 _ 어쩌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마지막 (http://www.realfolkblues.co.kr/2041)

엑스마키나 _ 인공지능에 관한 깊은 반복의 결과물 (http://www.realfolkblues.co.kr/1988)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동주 (The Portrait of A Poet, 2015)

부끄러움이 절실한 시대에 바침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륙첩방은 남으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 쉽게 쓰여진 시 中)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나라를 빼았긴 암흑과도 같았던 시절을 배경으로 애국심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독립운동이라는 숭고한 행동에 대해서도 또한 일제 강점기 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한 발 물러서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동주라는 청년이 있다. 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 그렇게 영화 '동주'는 물러설 곳이 없었던 어두운 현실 한 가운데 있었던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야기를 들려줌에 있어 시대 정신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문학적인 내러티브로, 마치 윤동주의 시와 같은 쓸쓸함을 머금은 공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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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윤동주 - 자화상 中)


영화 '동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윤동주의 시 구절을 내러티브로 활용한다. 영화 속 장면과 시의 구절이 뜻하는 바가 실제로 반드시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착각이 들도록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윤동주의 시 한 구절 한 구절의 힘을 관객에게 최대한 가슴 깊이 전달하고자 한다. 문학 장르 가운데서도 '시'라는 형태는 가장 쉬운 방식인 동시에 가장 그 깊이를 다 소화하기 어려운 문학이기도 한데, 영화 '동주'를 보고나면 실제로 학창시절 별다른 생각 없이 혹은 그저 문장의 아름다움 만으로 읽었던 윤동주의 시에 대해 조금이나마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설령 그 구절이 영화가 만들어 낸 것과는 다른 심정으로 쓰여졌다해도 말이다. 그 지점이 영화 '동주'의 첫 번째 의미다. '시'가 죽어버린 시대에 '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윤동주를 다른 요소를 최대한 섞지 않고 그려내고자 한 점. 그것은 아마도 박정민이 연기한 송몽규라는 인물을 비중있게 다루게 되면서 윤동주라는 인물을 좀 더 시대의 그림자처럼 그려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주'는 그저 시집을 내고 싶었던 청년 윤동주의 심정과 그로 인해 느껴야 했던 부끄러움을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일제 시대라는 무시하려해도 할 수 없는 시대의 문제와 그 시대를 독립운동이라는 정신으로 이겨내고자 했던 이들의 숭고함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어느 한 편으로 기울었다면 결코 좋은 작품이 되기는 힘들었을 영화였을 텐데, 이준익 감독은 균형점을 찾는 것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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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 서시 中)


영화 '동주'가 말하고자 했던 건 결국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부끄러워 한다는 것.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윤동주의 이야기를 지금에 와서 다시 꺼내고자 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힘이 없고, 앞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두려워서 그저 닥친 현실과 벌어진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대해 모른척 하거나 무시하려 자기 합리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동주'는 바로 그런 자들, 이런 저런 이유들을 들어 그럴 수 밖에는 없다고 스스로를 속여가며 못 본척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뼈저린 부끄러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현실에게 보내는 과거로부터의 메시지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던 시대에 시인이라는 작은 꿈을 꾸었던 윤동주가 거대한 시대 앞에서 죽음으로 느껴야만 했던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을 통해 과연 현재의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움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가를 되묻는다. 그리고 최소한 부끄러워는 해야 할 양심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윤동주라는 한 청년의 짧은 삶과 그가 남긴 시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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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며 많은 것들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최소한 부끄러워 하자. 그것이 시인 윤동주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절실한 외침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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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팀은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려 할수록 더욱 굳건히 닫히는 진실의 장벽. 결코 좌절할 수 없었던 끈질긴 ‘스포트라이트’팀은 추적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성스러운 이름 속에 감춰졌던 사제들의 얼굴이 드러나는데… (출처 : 다음영화)


2002년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지 내 스포트라이트 팀을 통해 폭로된 가톨릭 사제들의 충격적인 아동 성추행 스캔들 실화를 다룬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는, 충격적일 수 밖에는 없었던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시 한 번 고발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제목처럼 이 스캔들을 세상에 폭로하기 위해 스포트라이트 팀이 겪어야 했던 과정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영화다. 단순하게 성직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성추행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영화는 이 충격적 사실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조명하는 것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보스턴이라는 오래되고 견고한 도시의 특성을 배경으로 보스턴에서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단순한 종교 이상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즉 이 가톨릭 커뮤니티가 가족, 동료, 학교, 회사 등 모든 영역에 근본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배경 가운데 오로지 진실 만을 위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했던 스포트라이트 팀의 활동을 건조하지만 치밀하게, 비교적 감상적이지 않는 입장을 취하며 전개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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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명감을 강조한다. 꼭 언론과 기자라는 직업군을 이유로 들지 않더라도 여러 일 가운데는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하는 일과 굳이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일이 있는데, 이 영화는 후자의 일을 전자의 일로 감수해 낸 용감한 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로 내 가족과 동료, 그리고 내가 다닌 학교 등 나를 구성하는 많은 커뮤니티들이 묵인했던 진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믿고 있고 나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묵인하고 부정할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반드시 '내'가 해야만 했던 일을 해낸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일차적으로 요금 같이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기자라면 더욱)자신이 하는 일과 직업에 대해 사명감과 장인정신을 찾아 보기 힘든 세상에서, 기사를 내 자식처럼, 온전히 내 것이라는 인물들의 열정과 신념은 그 자체로 주는 감동이 있었다. 굳이 취재라는 것이 거의 실종되어 버린 국내 언론의 현실을 비춰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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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는 사명감의 이유나 목적을 추상적인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상황을 무릅쓰기엔 너무 먼 개념인 추상적 정의로움이나 선의 등의 이유가 아닌, 그 아동성추행의 대상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통해, 누군가가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 조직적이고 거대한 범죄와 고통은 결코 끝나지 않음은 물론이요, 다음 피해자는 나나 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조언을 한다. 실제로도 현실에서 보면 뉴스에 나오는 어떤 끔찍한 사건 등을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까워 하면서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곤 하는데, '스포트라이트'에서는 단순히 '내가 될 수도 있었어' 수준이 아니라 '내가 선택되지 않은 것이 운이 좋은 것 뿐이야'라고 더 센 강도로 이야기한다 (놀라운 건 실제 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수를 본다면 정말로 운이 좋아서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고 충분히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가서 만약 이들이 이 기사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들 역시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 일 없이 덮으려고 했다면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들이 그 이후로도 발생되었을 지를 단적인 자료들로 보여준다. 그 엄청난 수의 리스트는 이 스캔들의 규모를 보여주는 데이터라기 보다는 이들이 살려 낸 생존자 리스트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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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크 러팔로는 이번에도 참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를 비롯해 이 스포트라이트 팀은 정말 다 진짜 같아요.

2. 리브 슈라이버의 저런 지적인 연기는 처음 본 것 같아요 ㅎ

3. 전혀 다른 얘기로 요새 (주)더쿱 에서 수입한 영화들을 자주 극장에서 보게 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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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쉬 걸 (The Danish Girl, 2016)

진짜 나를 찾아줘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 풍경화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아이나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와 야심 찬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이자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파트너이다. 어느 날, 게르다의 아름다운 발레리나 모델 울라(엠버 허드)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게르다는 아이나에게 대역을 부탁한다.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 에이나르는 이제까지 한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날 이후, 영원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사랑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그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세계 최초의 성전환수술을 한 남자로 알려진 아이나 베게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원작으로 '킹스 스피치'와 '레 미제라블' 등을 연출했던 톰 후퍼가 연출한 작품이다. '대니쉬 걸'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인물의 이야기를 묘사함에 있어서 철저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편에 서서)이야기를 전개하는 동시에, 또한 제3자의 시선일 수 밖에는 없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아주 조심스럽지만 용기 있는 태도를 유지하려 애 쓰고 있는 영화다.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설정의 다른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배우의 아주 뛰어난 연기가 뒷받침되었다는 점과 혼란을 겪는 주인공 만큼이나 더 큰 혼란을 겪었을 그의 아내인 게르다라는 캐릭터를 아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압도적일 수 밖에는 없었던 전자의 인상을 넘어설 정도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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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 번째로 아이나 베게너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신체적 고생이 겸비 된 '레버넌트'의 디카프리오의 연기와 마찬가지로 '대니쉬 걸'의 아이나 베게너라는 캐릭터는 내면의 갈등과 외면의 변화를 모두 표현해야만 하는 캐릭터인 동시에 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이른바 오스카 수상에 적합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동일한 선상에서 연기상이라는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그 누구보다 레오의 오스카 수상을 바라는 자임에도 이 영화를 본 뒤에는 에디 레드메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는 없었다. '대니쉬 걸'에서 에디가 연기한 아이나 베게너는 남성의 몸으로 여성의 인생을 살게 되는 인물이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감정과 외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진정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기에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 연기를 선보인다. 외향적으로는 아이나에게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표정이나 손짓, 발짓 모두 부족함이 없었으며, 내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쩌면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갈등과 고민의 과정을 또 한 번 보여주었음에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라는 이 영화의 근본적인 대답의 신뢰와 공감을 얻어내는 훌륭한 연기가 아닐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만약 '대니쉬 걸'의 다른 요소들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얻지 못하더라도 단지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로 탄생시킨 아이나 베게너라는 성전환자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의미있는 영화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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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한 극 중 아이나의 부인인 게르다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이 더 인상적이었다. 성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결국 여성으로 살기 위해 수술을 감행하는 아이나의 고통(여기서의 고통이란 단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못지 않게, 가장 사랑하는 남편을 남편이 아닌 여성으로 맞아야 했던 게르다의 복잡한 심경을 도드라지지 않게 묘사하고 있다. 게르다의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는데, 얼핏 보면 게르다는 자신이 함께 했던 일종의 장난이 커져서 결국 남편이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었다고 여기는 장면들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게르다는 어쩌면 처음부터 아이나가 여성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혹은 끝까지 막을 생각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동성애나 성정체성의 혼란 등을 영화가 그리는 방식을 보면 그 당사자들이 어느 순간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조차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고치려 해봐도 되지 않자 결국 받아 들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니쉬 걸'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이나는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그려낸다. 그런 측면에서 게르다가 아이나를 바라보는 방식도 이해할 수 있는데, 게르다의 얼굴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겉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아이나가 결국 여성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겠다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이나가 릴리(아이나의 여성 자아)가 되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면 그렇게 되는 것을 적극 응원하겠다 라는 심경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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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게르다라는 캐릭터의 묘사는 '대니쉬 걸'이라는 영화가 성전환수술자의 실화 혹은 이야기를 어떤 시선과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 지를 엿볼 수 있도록 한다.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의 이야기는 행여 그것이 이제는 조금 진부할 수 있는 갈등이나 혼란이라고 여겨질 지라도 그들이 다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는 반면, 그(그녀)의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게르다를 묘사함에 있어서는 조금 더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서, 어쩌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성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주제에 대한 묘사도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한 게르다라는 캐릭터를 통해 좀 더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세심한 레이어로 이뤄진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게르다라는 인물의 인상이 더 깊게 남았다. 끝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아이나를 릴리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의심이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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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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