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Right Now, Wrong Then, 2015)

무릅쓰고 편안하게



홍상수 감독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제목을 붙여 쓴 것이 감독의 의도인 듯 하여 그대로)는 감독의 최근작들의 경향과 마찬가지로 같은 인물들의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북촌방향'이나 '옥희의 영화'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등과 이 영화가 다른 점이라면 두 가지의 다른 이야기의 구분이 더 명확한 동시에 특별한 시공간적 (혹은 차원적) 변화로 인한 이야기의 갈래가 아닌 아주 미세한 말과 행동으로 인한 변화의 줄기를 따르는 영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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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이렇게 저렇게 분석해 보고 픈 마음이 가득 들었던 '북촌방향'과 같은 영화와는 다르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얼핏 또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영화적 구성을 곁들여 펼쳐 놓은 영화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훨씬 더 직관적이고 가벼우며 편안한 작품이다. 1부의 이야기는 극 중 영화감독인 함춘수 (정재영)의 주관적인 기억 혹은 조작된 과거, 아니 이런 구성적 가능성은 다 재쳐두고, 그저 솔직함 보다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계산하고 절제하고 고민한 결과물을 만나게 된다. 함춘수는 우연히 만나게 된 윤희정 (김민희)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도 호감을 얻기 위해, 쉽게 말해 되지도 않는 말로 그녀를 칭찬하고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말과 행동을 하며 이른바 그녀에게 많은 공을 드린다. 하지만 어찌보면 처음부터 잘 될리 없었던 이 불안한 관계는 결국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함춘수는 다음날 그 화를 고스란히 떠안으며 쓸쓸히 수원을 떠난다.


그에 반해 2부의 이야기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2부의 함춘수 역시 윤희정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드러낸다. 2부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그녀의 그림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관계가 어긋나는 듯 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특히 그녀의 지인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추태를 부렸지만 관계가 깨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그럴 수도 있지'하는 정도로 지나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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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아주 작은 말들로 인해 관계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도 되지만, 그보다는 바로 그 순간 순간의 말과 행동에 너무 집중하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그렇게 솔직하게 다 보여줘도 아주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이 루틴이 깨진다고 세상이 망하는 건 아니라는 걸 유쾌하게 전하고 있달까. 지금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 때는 틀렸다고 생각되었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 소용없다는 허무한 감정보다는, 그러니까 너무 일희일비하며 자신을 옥죄일 필요는 없다는 말로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근래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소소하고, 부담 없고, 좋은 의미에서 머리 쓸 일 조차 거의 없는 편안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묘하게 또 보고 싶은, 그래서 그 순간의 찰나를 발견하고 픈 영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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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영화는 수원화성 근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영화를 본 다음 날 바로 다녀왔어요 (이건 곧 별도로 쓸 예정). 영화 속 처럼 추운 겨울에 한 번 더 다녀왔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2. 김민희의 연기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연기와 실제가 구분이 안되는 차원이더군요. 이 영화의 유일한 성립필요 조건은 극중 김민희가 연기한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이냐 라는 것 정도였을텐데, 완벽 그 자체.

3. 최화정의 '감독님 왜 그러세요!' 이 대사 잊지 못할 것 같아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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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언덕 (Hill of freedom, 2014)

홍상수의 시간



홍상수 감독이 최근 작품들에서 관심을 가졌던 형식적인 측면은 '시간'이었고, 내용적인 측면은 '착함' 그리고 '관계' 그 자체에 대한 것들이었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우주를 발견해 내는 그의 영화 답게, 이번 신작 '자유의 언덕'은 더 직접적인 시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시간이라는 것을 형식 그 이상의 주제로 이끌어 내며, 이를 영화 안에 머물지 않고 영화 밖 현실로까지 끌어내는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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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최근 작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의도적으로 시간의 재배열, 그리고 꿈과 현실의 모호함과 관계에서 오는 각자의 기억을 통해 매번 같은 이야기 같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는데, '자유의 언덕'은 '생활의 발견' '극장전' 등 김상경이 주연을 맡았던 작품들이 담고 있었던 남녀간의 이야기까지 결합한 버전의 또 다른 시간의 관한 작품이었다. 이전 작품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가끔은 무심한 듯 이것이 꿈이어도 상관없고 현실이어도 상관 없으며, 또한 누구의 이야기가 맞고 틀려도 상관 없다는 식으로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었는데, 이번 작품은 이런 모호함 보다는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시간의 재배열에 대해 형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장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중간 중간 화자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시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극중 서영화가 연기한 '권'이 '모리 (카세 료)'가 남긴 편지를 읽는 장면들을 중간 중간 삽입하여 그 때마다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된다는 것을 영화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거의 첫 장면에서 '권'이 모리가 남긴 편지를 가지고 어학원 계단을 내려오다가 떨어트려 그 편지의 순서가 바뀌게 된 것은 이 영화가 갖게 된 형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자유의 언덕'은 상당히 친절한 방식으로 이 시간의 재배열, 아니 각각의 시간에 대해 시작과 끝을 분명히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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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뒤 섞여 버린 편지 속 일기 같은 이야기의 순서를 제대로 맞춰보려는 노력도 해보았으나, 사실 이렇게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재조합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다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는 홍상수의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자연스러운 영화가 되었겠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시간의 뒤 섞임을 설명하고 있는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감독의 의도는 물론 보는 이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일종의 인과관계의 무상함에 대한 이야기로 느꼈다. 처음 이 이야기가 뒤섞인 줄 모르고 어떤 에피소드를 보게 되면 저 인물들이 왜 저런 대화를 하는 지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다음 이 이야기가 본래는 이 에피소드 이전 시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 저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었구나'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이 영화를 보게 되는 첫 번째 방법인데, 이건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처럼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읽게 되면 너무 심심한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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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라는 설정.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대사가 영어로 진행되는 설정은 구성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그 전달 되는 어감 때문에 다른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홍상수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아마도) 말하고자 했던 것 중 하나인 일상 속에서 번번히 벌어지는 '무례함'에 대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일본인으로서 북촌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게 된 모리는 처음 만나는 한국 사람들로 부터 매번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일명 호구조사 라고도 하는 이 일반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사람들의 자세는 친해지기 위한 선의인 경우도 있고, 무언가 의심스러움으로 인한 경계심도 있으며, 정말 별다른 감정 없이 의례 던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무덤덤히 다루고 있는 모리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다보면 별다른 동기 없이도 모리의 입장에서서 약간의 불쾌함이나 피곤함이 느껴진다.


모두들 각자의 방식이 있고 바라는 바가 있을 텐데, 외국인인 모리의 상황을 빌려 보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대의 대한 배려보다는, 혹은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그러했다 하더라도 결국 온전히 홀로 의지에 따라 있고 싶은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 무례를 범한다. 여기서 '무례함'이란 단순히 극 중 이민우가 연기한 캐릭터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불쾌함을 주는 경우 외에도, 불쾌함을 주지 않았을지라도 극 중 '상원 (이의성)'이 연기한 캐릭터가 모리를 대하는 경우처럼 그것이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을 지라도 100% 내 의지로 행해진 결과는 아니었다는 것까지 포함된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뭐랄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특히 영화에서) 우연과 운명에 대한 기대감에 고취되어 있는데, 한 편으론 그저 스스로가 처음 원했던 계획대로만 끝까지 (그것의 성공여부와는 상관없이) 진행하기 어려운 사회와 관계라는 존재의 피로감을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식으로 표출하고 있는 듯 했다. 그것과 연결지어 이번 작품에서 특히 많이 등장한 '행복해요?'라는 질문은 이렇듯 나 자신을 오롯이 제어하지 못하는 사회 속 인물들에게 던지는 질문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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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야기를 처음 꺼냈던 '인과관계의 무상함'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이 뒤섞인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면서 극 중에 펼쳐진 일종의 에피소드들의 인과관계를 맞춰보고 논리를 완성하게 되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홍상수 감독이 전달하려는 바는 물론 이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만약 이 이야기들이 정상적인 시간의 순서대로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뒤섞여 있을 때 불쾌하거나 무례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과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관객이 이 인과관계의 퍼즐을 맞춰가고 있을 때 쯤 몇 가지는 맞추었다는 착각을 하도록 힌트나 (관객 스스로가 생각하는) 답을 던지고 있지만, 일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무관심한 채 그냥 내버려둔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모리가 누군 가와 싸웠다는 것만 알 수 있도록 하고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처럼).


즉, 홍상수 감독은 관객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이용해 관객들이 오해하고 착각하도록 만들고, 너희 들이 틀렸어 라는 답을 짠~ 하고 내어 놓으며 반전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영화를 끝내고는 관객들이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 만약 '자유의 언덕'이 더 재기발랄하고 형식을 강조하는 작품이었다면 아마도 편지에 쓴 거의 모든 이야기가 끝난 마지막 게스트 하우스 장면에서 영화가 끝났을 것이다 (사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편지의 이야기가 다 끝난 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남겨둠으로서, 이 이야기를 영화 안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라고 마무리 지었었다면, '자유의 언덕'에서는 '자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직접적으로 묻고 있는 듯 했다.


홍상수의 영화는 이번에도 참 놀랍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계속 더 발전하고 있다.



1. 영화 속에 등장한 북촌 코스는 한 번 쭈욱 돌아봐야 겠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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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夏夏夏, 2010)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철학적 놀이


(참고로 이 글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하루를 훌쩍 넘기고도 그 여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막걸리 한 잔을 건하게 걸치고 나서 작성하는 글 임을 밝힌다. 본래 술을 마시고 쓰는 글은 매번 위험하지만, 이번 '하하하' 리뷰 만큼은 이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랬다. 일단 이것저것 복잡한 것을 떠나서 홍상수 감독의 열번째 장편 영화 '하하하'는 나에게 있어 술을 부르는 영화였다. 참고로 그의 전작 '잘알지도 못하면서'는 그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라는 슬픈 국환 때문에 차마 글을 남기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나름 술 한잔을 더해가며 글을 가져가게 되었다. 최근 15주년 기념 버전으로 발행된 '씨네 21'이 특별히 홍상수 에디션을 내어놓은 것도 그렇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홍상수가 대세라고 할 정도다. 사실 나는 예전 홍상수 영화에서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편이었다. 특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같은 작품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떠나서 별로 달갑지 않게까지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그랬던 홍상수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역시 '잘알지도 못하면서' 였다. 남들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이전과 이후의 홍상수가 확연히 달라보일 만큼, 인상적인 변화였고 가볍지만 더욱 생각할 거리는 많아진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기대를 갖고 보게 된 '하하하'는 새로워진 홍상수 월드를 좀 더 견고하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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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를 논하면서 많은 이들이 '속물 근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나도 '잘알지도 못하면서'를 보았을 때는 이런 논리에 동의 했었으나 '하하하'를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그래, 너도 나도 다 속물이다'라는 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남자는 각각 통영에 다녀온 추억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술 한잔에 실어 나누기로 한다(나중에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설정은 은근히 무협지 속의 인물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렇게 두 남자는 서로 만이 겹쳐지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쳐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관객들 뿐이다(영화의 마지막 왕성옥이 이 일부분을 알게 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분이다). 

'하하하'를 보면서 시종일관 느껴졌던 주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대화들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그의 전작 '잘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작품은 아는 것에 대한 물음과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단 한 시퀀스도 이 주제를 다루지 않은 대화가 없을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이 안다는 것인가에 대한 선문답으로 이뤄져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이 뭘 알아요?' '이걸 안다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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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알고 모르는 문제'는 영화가 택하고 있는 구조로 더 선명히 드러난다. 영화는 두 남자의 하나이지만  두 개인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각자는 서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그대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이들이 각자 말하는 인물들과 관계의 이야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이 많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들의 이야기는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의 인물을 두고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상을 두고도 말하는 화자에 따라 청자의 입장에서 '좋은 어머니'도 되었다가, '돈 많은 식당 주인'도 되는 것, '동굴 같은 곳'에서 '희망을 꿈꾸게 되는 집'도 되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알고 모름의 방식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비유가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방식도 아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속내를 겉보다도 더욱 진솔하게 드러낸다.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속물'이내 뭐내 하는 것은 바로 이 미칠듯한 진솔함 때문일텐데, 사실 이런 솔직함을 그냥 '찌질함'으로 얼버무리기에는 정말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하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찌질한게 아니라 지극히 솔직한 것 뿐이다. 뭐랄까 우리가 일상에서 속으로만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들 겉으로 거침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이것은 분명 찌질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지나치리 싶을 정도의 솔직함은 (그런데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런 솔직함 자체를 '지나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영화가 의도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극 중 인물과 나를 완전히 겹치도록 만든다. 겉으로는 웃을 지언정 그 안에서 내가 완벽하게 보이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처럼 솔직하게 '저건 완전히 나다'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맞아, 나도 저런 적 있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하기만 한 듯한 영화에서 나를 보는 완벽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홍상수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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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하하'에 대한 감회를 짧은 글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따른다. 진짜 홍상수 월드 속 인물들처럼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모두 주당이다) 대낮부터 나 한잔 너 한잔하며 이야기 꽃을 피워줘야 어느 정도 정리해볼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어설프게 남아버린 글에서 더 본격적인 것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다시 영화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려 한다. 이번 씨네 21에 실린 홍상수와 정성일의 엄청난 대담을 보면(아직도 못 본 이들이 있다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지난 호를 반드시 소장해야 한다. 그 만큼 압도적인 컨텐츠가 실려있다), 홍상수는 줌을 사용하는 것이 일종의 리듬으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확실히 '하하하'에 사용된 줌에서는 리듬 감이 느껴진다. 그냥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을 살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음악 역시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홍상수 영화에 이렇게 음악이 많이 사용되었던가 싶을 정도로, 많은 음악이 인식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어떤가. 이제는 다른 설명 필요없이 그냥 '홍상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짙게 풍기는 김상경은 말할 것도 없고(주책 떠는 그의 연기가 단순히 '주책'으로만 보이지 않고 진정이 느껴졌던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 하겠다), 전작에 이어 또 다시 출연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점점 만들어내고 있는 유준상의 발견은 계속 되고 있으며(영화를 보고나니 흡사 한석규의 말투를 연상케하는 그의 말투를 자꾸 따라하게 된다), 예지원, 윤여정, 김강우, 김민선의 연기들도 잘 녹아들고 있다. 앞선 두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지만, 김강우나 김민선의 경우는 홍상수 월드에 들어오게 되면서 발견할 거리를 제공한 듯 하다. 이순신 장군 역의 김영호도 인상적이었으며(리뷰를 하다보니 이 시퀀스에 대해서 아무 언급도 하지 못했는데, 작정하고 쓴다면 이 시퀀스만 가지고도 한 편의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연기를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던 문소리의 연기가 무엇보다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 문소리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그녀의 연기였던 것 같다('오아시스' 보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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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없는 듯 했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완벽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번 영화 '하하하'. '잘알지도 못하면서'와 마찬가지로 인물 하나하나의 대사를 곱씹어 볼 수록 그 속에서 나와 너를 발견하게 되는 아름다운 대사들. 이제는 홍상수 월드에 완벽히 적응한 페르소나들과 이제막 세계에 입성한 신예들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홍상수. 내게 있어 '하하하'는 참 재밌고, 참 의미있고, 참 깊은 영화였다.


1. 리뷰를 그저 '하하하하하하하하'라고 써보고도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2.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영화 속 배경이 된 통영에 다녀온지라 살짝 남다르더군요. 나폴리 모텔에서 잘 뻔도 했었구요.
3. 서두에 밝혔듯이 술을 부르는 이 영화 때문에, 아래의 그림 처럼 순대에 막걸리 한잔하고 쓰는 글입니다. 영화 속 처럼 '막걸리에 도토리묵', '순대에 소주'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영화 분위기가 나더군요 ㅎ




4. 재미있어요. 또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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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강풀의 원작인 <26년>은 너무도 인상적이고 감동적으로 보았었기 때문에,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큰 기대를 갖게 되었던 작품이 바로 영화 <29년>이었습니다.

예전에 변영주,김태용,이해영 감독이 시네마천국 MC를 볼 때, 이해영 감독이 차기작으로 <29년>영화화를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게 되었고, 얼마전 주요 캐릭터로 변희봉, 천호진, 류승범 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법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더욱 기대를 하게 되더군요.

최종적으로 세 배우 외에 진구와 한상진, 김아중 씨가 캐스팅 된듯 한데, 한상진 씨는 처음 스크린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고, 김아중 씨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과연 이 무거운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해집니다.

이들 외에도 <님은 먼곳에>의 주진모씨와 기주봉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2009년 개봉을 목표로 이제 캐스팅이 막 확정된 상태이니, 아직도 많이 기다려야 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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