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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는 압도적인 미장센과 진취적인 이야기 그리고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캐릭터가 위태롭고 매혹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총 3부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는 숙희의 입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2부는 히데코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그녀의 입장으로 1부 벌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소개하고, 3부에서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종결지으며 두 여인을 비롯해 백작과 코우즈키의 이야기도 모두 마무리 한다.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1,2부의 제목은 아가씨고 3부의 제목은 아저씨'라고도 했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1부의 이야기는 숙희의 입장으로 전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를 소개하고 2부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히데코와 백작 캐릭터를 중심으로 보여주는데, 반전의 요소가 있지만 결코 반전을 위한 구성이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진실이 무엇인지 2부를 통해 소개한 뒤 영화는 3부를 통해 4명의 주요 캐릭터들을 각각 마무리 한다. 즉, 3부는 종결, 해결의 측면 혹은 목적이 강한 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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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근래 동성애를 다룬 좋은 영화 중 하나였던 토드 헤인즈의 '캐롤'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캐롤'은 말 그대로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미묘한 감정 선을 유려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면, 박찬욱의 '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루고는 있지만 동성 간의 사랑이 중심에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남성 중심의 세계 관을 풍자하고 여성 캐릭터가 독립적으로 향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즉, 박찬욱에겐 동성애라는 소재가 더 이상 사회 통념 하에 극복해야 할 과제라기 보다는 이미 극복한 다음의 이야기, 즉 '동성애가 더이상 그렇게 특별한 일이야?'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 스텝으로 건너 뛴 듯한 느낌이다. 다시 말해 히데코와 숙희의 관계와 감정을 '캐롤'의 그것과 1:1 비교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서로가 자신의 삶의 굴레를 깨고 나아가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구원자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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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보아도,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두 여자 인물들에 비해 두 남성 캐릭터인 백작과 코우즈키의 모습은 직접적인 형태로 풍자되고 하찮게 묘사되고 마무리 되는 구조를 담고 있음에도,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페미니즘 영화를 추구하지 않는 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영화가 표현한 방법에 있어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기엔 여전히 애매한 측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씬은 수위 만을 놓고 보자면 제법 파격적인 수준이었으나 감정적으로는 전혀 야하지 않은, 그러니까 두 인물의 감정 선이 녹아들어 있지는 않은 베드씬이라 다른 동성 간의 (이성 간도 마찬가지고) 베드씬과는 다르게 성적 흥분이 들지는 않는 건조한 장면이었다. 이를 바꿔 말하자면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씬은 과연 그 정도의 묘사와 비중으로까지 필요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3부는 두 여성 주인공의 해피 엔딩만큼이나 두 남성 주인공의 배드 엔딩(?)의 비중이 큰데, 마치 이 마지막 베드씬은 두 여성 캐릭터를 위한 (그녀들이 원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두 남성 캐릭터의 배드 엔딩을 더 가혹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더 크게 느껴졌다. 1,2부에 비해 3부는 전체적으로 극이 고조되거나 클라이맥스에 이른다는 느낌보다는, 풀어 놓은 매듭을 모두 정리하는 완결(해결)의 느낌이 더 강한데, 그 보다는 두 여성 캐릭터의 해피 엔딩의 깊이나 감정선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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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단락에 조금만 더 보태자면, 그렇게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바로 박찬욱 스타일의 영화가 아닌가도 싶다. 감정적으로 공감대가 넓고 보편적인 방식 대신, 가지 않은 길을 택하고자 많이 고민하고 자신의 취향을 영화 속에 녹여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것. 그래서 모두가 그를 주목하던 시점에서도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같은 영화를 낼 수 있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3부의 전개와 묘사는 1,2부 보다도 더 박찬욱 스러운 모습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스텝들의 결과물도 연출 만큼이나 큰 기대를 갖게 하는데, 류성희 미술감독이 만들어 낸 미장센은 '아가씨'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히데코가 살고 있는 코우즈키의 대저택은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자체가 캐릭터의 성격을 대변하는 가장 훌륭한 매개체인 동시에 스스로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낭독회가 진행되는 공간은 특히 그 거리감과 구도가 예술이었는데, 좌우로 보았을 땐 인물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띄엄 띄엄 앉아 있는 구도가 매력적이었으며, 앞뒤로 보았을 때도 히데코와 남성 캐릭터들의 거리 (가까이 있을 때 보다도 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거리)가 영화에 리듬과 긴장을 담아 내고 있다. 류성희 미술감독에게도 이번 '아가씨'의 디자인은 모든 것이 총망라된 몹시 모험적이고 고된 작업이었을 텐데, 그 결과물은 정말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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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미장센 만큼이나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히데코를 연기한 김민희와 숙희를 연기한 신인 배우 김태리의 연기다. 이제 더 이상 연기에 관해서 칭찬을 하는 것이 새삼스러워진 김민희의 경우, 연기가 업그레이드 된 것은 물론이요, 그 아름다움이 몇 배는 업그레이드 되어 버린 모습을 '아가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상속녀로 그려지는 1부 속 숙희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히데코의 모습은, 깨어질 듯한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발견은 단연 김태리다. 보통 몇 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 된 배우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관심을 끌지도 매력적이도 않은 것이 사실인데, 김태리의 캐스팅의 경우 새삼스럽게 '아..그 수 많은 경쟁자를 과연 물리치고 선택 될 만하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물론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김태리라는 배우의 얼굴 만이 가진 매력이 숙희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 시켜준 느낌이었고, 애정, 애증, 행복, 모성애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내는 데에 있어서 어색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던, 딱 맞는 연기와 캐릭터였다. 그리고 하정우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를 독보적으로 해냈다. 백작 캐릭터는 자칫하면 풍자의 깊이는 없이 그저 우스꽝스럽기만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우습게 보이는 동시에 연민마저 느껴지는 백작 캐릭터를 적절한 비중으로 연기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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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박찬욱의 '아가씨'는 특유의 조소와 미장센이 시대극이라는 배경과 두 여성 캐릭터라는 매력을 통해 발산 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지 않은 입장에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설정은 정말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것에 집중해서 영화에 빠져든다면 좀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극장에서 문소리 배우는 등장과 동시에 관객들이 웅성웅성 했지만 상대적으로 이동휘 배우는 관객들이 갸우뚱 하더군요 ㅎ

2. 히데코 아역으로 나온 배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본적이 없더군요...(이상해;;;)

3. 영화를 보고 나니 주연 캐릭터 중 몇몇은 일본 배우가 했어도 좋았겠다 싶더군요.

4. 아... 앞으로 김태리 라는 배우는 과연 어떤 영화를 보여줄까요. 몹시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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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다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를 평균 이상으로 좋아하다보니 가끔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들을 보면 최대한 그 장소를 직접 찾아가서 다시 한 번 영화의 기운과 여운을 느껴보고자 하는 편이다. 바로 지난 주에 본 홍상수 감독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도 보는 즉시 그곳에 가고 픈 욕구가 발동하는 영화였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워낙 저예산이기도 하고 짧은 시간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아 실제 존재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물론, 특별한 장소를 일부러 찾아 촬영하기 보다는 그냥 어떤 동네의 평범한 장소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그의 영화를 보면 꼭 한 번 그 동네를 찾아보고픈 생각이 들곤 한다. 이번 작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수원화성 근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영화를 본 바로 다음 날 가벼운 마음으로 수원을 찾았다.





영화의 첫 장면에 화성행궁 앞에서 극 중 함춘수 (정재영)가 담배를 피는 장면은 바로 저 큰 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영화를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늦여름 찾아간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 입김이 나는 계절에 찾아왔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화성행궁에 입장하기 위해 입장권을 구매하는 장면. 참고로 내가 간 날은 행사 기간이라서 무료 입장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곳. 바로 복래당 (福內堂)이다. 이 곳에서 함춘수는 윤희정 (김민희)을 처음 만나게 되어 어색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정재영이 앉아있던 자리는 볕이 몹시 잘 들었다. 정말 솔솔 잠이 올 것 만 같은 햇살.





이 쪽은 극 중 김민희가 앉아서 요구르트를 먹던 자리. 특별할 것은 없지만 영화 속에서 워낙 그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소개를 듣다보니 달리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참고로 화성행궁은 정조가 머물던 임시처소였고 복내당은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렀던 곳이였다고 한다.





이 곳은 바로 화성행궁 옆에 위치한 수원호스텔 건물인데, 영화 속에서는 거의 첫 장면 쯤에 정재영이 저 외쪽 창문을 열고 바로 사진을 찍은 이 아래 쪽의 고아성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곳은 행궁 옆의 골목을 조금만 걷다보면 왼편에 나오는 가게인데, 바로 극 중 정재영과 김민희가 술을 마시며 오랜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 스시집이다. 이 곳은 보시다시피 가게 앞에 영화 포스터도 전시해 놓으며 촬영지라는 걸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리얼리티를 위해 직접 들어가서 스시에 소주 한 잔을 할까도 했지만 너무 낮시간이라 이번엔 패스.




그리고 여긴 극 중 김민희가 사는 집으로 등장하는 곳인데, 이 곳 역시 바로 행궁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참고로 영화를 보면 이 집 바로 뒤에서 절이 있어서 종 치는 소리가 들리곤 하는데, 실제로 뒤 편에 큰 불상이 위치해 있었고 종소리도 가깝게 들려왔다.


이 곳 말고도 가보려고 했는데 깜빡하고 못 갔던 곳이 '시인과 농부'라는 찻집인데, 극 중 인물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의 배경이 된 카페다. 이 곳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긴 영화 촬영과 상관없이도 독특한 분위기로 제법 소문이 난 찻집이다. 참고로 이 곳은 개인적으로도 아는 지인들이 다녀온 후기로 먼저 알게 된 곳으로, 영화 속에서 다시 보니 더 반가운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짧게나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배경이 된 수원 화성행궁 근처를 둘러보았다.

찬바람이 부는 한 겨울 즈음에 다시 한 번 찾아, 입김 호호 불며 또 한 번 영화를 느껴보고 싶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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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Right Now, Wrong Then, 2015)

무릅쓰고 편안하게



홍상수 감독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제목을 붙여 쓴 것이 감독의 의도인 듯 하여 그대로)는 감독의 최근작들의 경향과 마찬가지로 같은 인물들의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북촌방향'이나 '옥희의 영화'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등과 이 영화가 다른 점이라면 두 가지의 다른 이야기의 구분이 더 명확한 동시에 특별한 시공간적 (혹은 차원적) 변화로 인한 이야기의 갈래가 아닌 아주 미세한 말과 행동으로 인한 변화의 줄기를 따르는 영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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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이렇게 저렇게 분석해 보고 픈 마음이 가득 들었던 '북촌방향'과 같은 영화와는 다르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얼핏 또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영화적 구성을 곁들여 펼쳐 놓은 영화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훨씬 더 직관적이고 가벼우며 편안한 작품이다. 1부의 이야기는 극 중 영화감독인 함춘수 (정재영)의 주관적인 기억 혹은 조작된 과거, 아니 이런 구성적 가능성은 다 재쳐두고, 그저 솔직함 보다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계산하고 절제하고 고민한 결과물을 만나게 된다. 함춘수는 우연히 만나게 된 윤희정 (김민희)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도 호감을 얻기 위해, 쉽게 말해 되지도 않는 말로 그녀를 칭찬하고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말과 행동을 하며 이른바 그녀에게 많은 공을 드린다. 하지만 어찌보면 처음부터 잘 될리 없었던 이 불안한 관계는 결국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함춘수는 다음날 그 화를 고스란히 떠안으며 쓸쓸히 수원을 떠난다.


그에 반해 2부의 이야기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2부의 함춘수 역시 윤희정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드러낸다. 2부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그녀의 그림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관계가 어긋나는 듯 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특히 그녀의 지인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추태를 부렸지만 관계가 깨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그럴 수도 있지'하는 정도로 지나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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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아주 작은 말들로 인해 관계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도 되지만, 그보다는 바로 그 순간 순간의 말과 행동에 너무 집중하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그렇게 솔직하게 다 보여줘도 아주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이 루틴이 깨진다고 세상이 망하는 건 아니라는 걸 유쾌하게 전하고 있달까. 지금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 때는 틀렸다고 생각되었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 소용없다는 허무한 감정보다는, 그러니까 너무 일희일비하며 자신을 옥죄일 필요는 없다는 말로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근래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소소하고, 부담 없고, 좋은 의미에서 머리 쓸 일 조차 거의 없는 편안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묘하게 또 보고 싶은, 그래서 그 순간의 찰나를 발견하고 픈 영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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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영화는 수원화성 근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영화를 본 다음 날 바로 다녀왔어요 (이건 곧 별도로 쓸 예정). 영화 속 처럼 추운 겨울에 한 번 더 다녀왔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2. 김민희의 연기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연기와 실제가 구분이 안되는 차원이더군요. 이 영화의 유일한 성립필요 조건은 극중 김민희가 연기한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이냐 라는 것 정도였을텐데, 완벽 그 자체.

3. 최화정의 '감독님 왜 그러세요!' 이 대사 잊지 못할 것 같아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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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火車, 2012)

삭막한 사회 속 잊혀져 가는 존재에 대한 연민



변영주 감독의 신작 '화차'를 보았다. 이 작품은 버블 경제 붕괴라는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던 일본의 1990년대를 배경으로 신조 교코라는 여성의 삶을 미스테리한 방식으로 풀어낸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그 원인을 주로 사회로부터 찾는 작가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런 측면에서 변영주 감독의 작품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느낀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미스테리와 그 속의 인간성 그리고 이를 만든 사회의 문제에 대한 직간접 은유까지 적절한 조화를 이룬 무게감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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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결혼은 앞둔 문호(이선균)와 선영(김민희)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집으로 내려가던 중 들린 휴게소에서 선영이 갑작스레 실종되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실종의 미스테리를 풀어가기 위해 전직 형사인 사촌 형 종근(조성하)까지 합류하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잡혀가지만, 알아가면 갈 수록 미스테리의 깊이도 마음의 상처도 더 깊어만 간다.


단순히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갑작스레 사라진 선영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선영의 존재에 대한 미스테리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화차'를 본격적인 미스테리 스릴러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화차'는 미스테리가 포인트인 작품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풀어가는 일종의 도구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형사인 사촌 형이 사건을 풀어가는 시점에서, 문호와 선영, 종근의 삼자 구도로 각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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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종일관 차갑고 어두운 색감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거의 웃을 겨를이 없을 정도로 상처가 깊어만 가는 얼굴을 하고 있다. 문호가 선영을 쫓는 과정 속에는 기본적으로 선영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있다. 자신이 결혼을 결심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연인으로서의 애정은 물론이고, 점점 미스테리가 풀릴 때마다 인간적인 실망과 분노가 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더 나아가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인간적 연민의 마음까지 도달한다 (특히 마지막 용산역 에스컬레이터 에서의 그 대사는, 애정으로 기인했을지 몰라도 분명 인간적 연민이 나타난 대사였다). 이렇듯 단순한 로맨스의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적 연민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좋았다.


이렇게만 보면 김민희가 연기한 극중 선영이라는 캐릭터가 이 사회가 만든 어쩔 수 없는 피해자임만을 강조하여 연민이 들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만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관객이 선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맞지만, 그녀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받은 인물들 (여기에는 문호도 포함)과 혹은 선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는 중에 간과될 수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묘사들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선영에 대한 연민 외에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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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은 '화차'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삭막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직접적으로는 김민희가 연기한 선영이 자신으로 살아오지 못한 현실을 묘사하면서, 사람하나 죽거나 어찌되어도 아무도 관심조차 없는, 무관심과 단숨에 무너져 버리기 쉬운 낱알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즉, 더이상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도록 내몰린 사람과 내몰고 있는 사회, 또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각박한 사회와 어쩌면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살기에 바뻐서 역시 내가 당하기 전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로 구성된 사회에 대한 씁쓸한 자화상이자, 그 사회를 살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연민을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용산역, 용산 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은 더욱 의미 깊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용산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세 주인공들의 교차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했고, 마지막 용산역 옥상 위에 선 선영의 모습에서는 자연스럽게 같은 장소인 용산에서 철거민으로 내몰려 망루 위에 올라야만 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변영주 감독의 작품이라 더더욱 연관 지을 수 밖에는 없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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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발견하게 되는 동물병원 간호사 역할의 배우 김별 님. 좋았습니다.

2. 누가 이 영화가 16억 예산의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가격대비 매우 훌륭한 때깔이었습니다.

3. 영화 음악도 은근히 좋았어요.

4. 이 영화를 용산 CGV에서 봤으면 어쩔 뻔 했는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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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의 진짜 같은 모습

크리스마스 이브. 유명 패션지 '보그 (Vouge)'의 특별 화보 촬영을 위해 20대부터 60대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여섯 명이 이례적으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이렇게 여섯 명의 여배우들이 함께 한 이 자리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정사' 등을 연출한 이재용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는데, 리얼 다큐멘터리인듯 하지만 사실 극영화인 영화 '여배우들'이 오늘 소개할 작품이다.





영화는 '남자, 여자, 그리고 여배우들이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문장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나서는 실제 배우들의 짤막한 인터뷰가 이어진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각기 다른 여섯 명의 여배우가 하나의 프레임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패션지의 특별 화보 촬영을 위해서였다. 이 프로페셔널 한 이벤트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묘사되는 배우들의 진짜 같은 모습과 함께 관객들에게 한껏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 촬영을 위해 패션지 화보 촬영이라는 컨셉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패션지와 영화의 기획된 콜라보레이션이라할 수 있는데, 이 같이 패션업계라는 트랜디한 - 그리고 스타를 동경하는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업계라는 점에서 더욱 - 집단의 이야기 배경은, 자신을 연기하는 여배우들의 이야기를 더욱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 이런 점이 이 영화 '여배우들'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도 아니요, 잘 짜여진 이야기를 연기하는 100% 극영화도 아닌, '있는 그대로를 연기하는' 영화라는 점 말이다.




사실 이런 비슷한 컨셉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의 경우 대부분은 너무 '진짜인 것처럼' 연기하려는 극영화 성격이 강해 이런 미묘한 감흥을 느끼기 어려운 것이 보통인데,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은 이 미묘한 지점을 잘 간파하고 있다. 사실 제목은 '여배우들'이지만 여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깊은 고뇌와 속 시원한 이야기들 보다는, 대중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기인한 토크쇼 식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 여섯 명의 여배우들의 대한 기본 정보 - 혹은 가십거리 - 에 관심이 많으면 많을 수록 이들의 이야기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된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선후배간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영화는 이렇게 무거운 주제보다는 그 이면에 더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대중의 호기심에 기인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윤여정 보다 윤여정을 더 잘 연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김옥빈 보다 김옥빈을 더 잘 연기할 여배우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대로 연기할 때 더 큰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배우들'에 출연한 여섯 명의 배우에 관해 박수를 보내야 할 점은, 연기력이 아니라 자신 만이 알고 있는 진짜 자신과 대중들이 알고 있는 여배우로서의 자신을 모두 자신의 캐릭터 안에 녹여내었다는 점일 것이다. 극중 최지우는 한류스타 '지우히메'로서 다른 다섯 명의 배우와 자신을 차별하려 하고 특히 조금 애매한 관계에 놓여있는 고현정과는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 고현정 역시 이런 최지우를 못마땅해 하며 이를 참지 못해 최지우와 한바탕 말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분명 대중들이 이들의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낸 갈등관계라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장면이 진짜 같은 이 영화에서 펼쳐졌을 때 대중들은 묘한 재미와 긴장감을 얻게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더 진짜 같이 연기하는 구성 덕에 진짜 이 둘의 사이가 불편한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계속 '진짜'를 강조하던 영화는 갑자기 창밖에 내리는 눈,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몰래 기타 연주와 함께 휴대폰으로 러브 송을 들려주는 한 남자 스텝의 이야기와 함께, 조금은 급작스럽게 이 영화가 극영화임을, 더 나아가 판타지일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준다. 사실 이 눈 내리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는 영화의 제목을 '여배우들'보다는 '크리스마스의 기적' 쯤으로 하는 것이 더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 이후 전개과정을 보니 이재용 감독은 이 시퀀스를 일종의 경계로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시퀀스 이후 영화는 와인과 함께 좀 더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무릎팍 도사’를 한 차원 넘어서는 여배우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짜를 바탕으로 진짜와 허구가 뒤섞여 있는 이 오랜 대화 시퀀스는 이 작품을 평가하는데 좋은 지점이 된다.

DVD Menu




DVD Quality

1.8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영상은 평균적인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극영화이긴 하지만 리얼 다큐멘터리 같은 구성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기에 화질 자체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반대로 화질 자체가 크게 중요한 타이틀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여배우 여섯 명의 모습을 블루레이 화질로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지만, DVD화질로도 충분한 편이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수록한 사운드 역시 멀티 채널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인터뷰와 대화가 99% 이상인 작품인지라 사운드 퀄리티가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99%를 차지하는 대사 전달 부분이 아쉬운 것은 아니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DVD Special Features

‘여배우들’의 진면목은 바로 음성해설에서 드러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6명의 여배우가 모두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은 이번 타이틀의 가장 큰 장점이다. 6명의 여배우는 물론 연출을 맡은 이재용 감독까지 총 7명이 참여한 음성해설은, 영화 속 ‘여배우들’이 어찌되었든 ‘연기’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진짜 ‘여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 작품 이전부터 친했던 혹은 이 작품을 통해서 친해지게 된 이 배우들이, 짧았던 촬영 기간을 추억하고 영화 속 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탈함을 넘어 거침없이 나누는 분위기는 영화 속 장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실제로 와인을 한 잔씩 하며 아주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뤄진 음성해설은 참여하고 있는 여배우들도 듣는 DVD구입자들도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다. 이 음성해설 트랙만으로도 DVD타이틀의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본격적인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일단 이채로운 것은 작품을 멀티 앵글로 새롭게 즐겨볼 수 있는 ‘그녀들의 대화’를 들 수 있겠다. 아무래도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하다 보니 일반 극 영화에 비해서는 앵글이 한정적으로 사용된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가영상을 통해서 본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른 각도의 그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배우, 이야기’에서는 여섯 명 여배우들의 진솔한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그녀들 각각이 생각하는 ‘여배우’라는 것에 대한 의미, 배우가 된 계기 등에 대한 솔직한 답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제작과정’은 제목 그대로 촬영장의 뒷얘기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작품 자체가 뒷이야기 그 자체에 가깝다 보니 보편과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겠다.



마지막으로 ‘촬영현장 스케치’ 영상과 ‘포토 갤러리’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총평]
처음에는 단순히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여배우들이 모였다는 것 정도의 이슈로 그칠 것만 같았지만,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은 무겁지 않으면서도 그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괜찮은 작품이 되었다. 작품 자체도 괜찮았지만 진짜 여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는 음성해설 트랙으로 인해 좀 더 완벽해진 느낌을 갖게 된 타이틀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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