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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2016)

신카이 마코토 세계의 집대성. 간절히 너에게 닿기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2016)'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간 그가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세계관들을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인장과도 같은 영롱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다양한 하늘 이미지들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하고, 닿을 듯 닿지 않는 두 남녀 주인공의 간절한 로맨스는 '초속 5cm'를 연상케 하고, 판타지적인 요소는 '별을 쫓는 아이'를 떠올리며, 극 중 타키가 아르바이트하는 레스토랑의 선배와 나누는 소소한 로맨스는 '언어의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가 가장 잘하는 요소들을 한꺼번에 하나의 세계관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만큼 감동이 배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일단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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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 간절함, 간절하다 못해 필사적이기까지 한 마음과 치닫는 정서를 절제하지 않고 (설령 그것이 혹자들에겐 중2병 증상처럼 보여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밀어붙이는 용기와 기개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호소다 마모루의 '썸머워즈'의 내달리는 후반부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에반게리온 : 파의 그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카이 마코토에게 그것은 애틋함과 닿으려 해도 닿지 않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이러한 그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냈던 작품은 '초속 5cm'나 '별의 목소리'라고 생각되는데, '너의 이름은'은 여기에 판타지적인 설정과 배경을 통해 그 간절함의 배가 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만들어 냈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존재 (심지어 주기적으로 같은 몸을 사용(?)했을 정도의)이지만 한 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결코 만날 수는 없는 존재들이 서로에게 닿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여전히 매력적이고 감동적이다. 몸이 뒤바뀌고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만남을 노력하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한 플롯이지만 그럼에도 '너의 이름은'의 감동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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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신카이 마코토가 가장 잘하는 세밀하고 섬세한 감정의 묘사 때문이다. 혹자들은 이러한 감성들을 흔히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유치함 혹은 과함으로 평가절하 하기도 하지만, 앞서서도 말했듯이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여기에 신카이 마코토가 이번에 선택한 소재는 바로 이름이었다. 누군가를 규정하는 기능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결국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는 이름. 그 이름을 묻고 싶은 혹은 묻고 싶었던 누군가에 대한 깊은 회한은 이 영화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이름이라는 요소로 대변되는 다른 의미들은 무언가 꺼내지 조차 못했던 내 안의 감정들에 대한 아쉬움과 부족했던 용기에 관한 것들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너의 이름은'도 그렇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들 역시 극 중 인물들이 보여준 간절함의 정도가 더했던 이유는 아마도 '절대 그럴 수 없어'라는 정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절대 그럴 수 없어'라는 이전의 실패나 시도해보지 못한 이의 후회가 전제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동기가 관객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자극하는 것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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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유는 주인공인 타키와 미츠하가 닿았던 그리고 닿지 못했던 이유에 관한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의 영화들에 비해 '너의 이름은'은 이 설정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들고 있는데 바로 재해와 사고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상처를 입은 일본인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손쓸 수 없었던 거대한 재난과 자연재해로 인해 소중한 누군가를 한 순간에 잃어야만 했던 이들이 '만약.. 그랬다면?'하고 아프게 떠올려보는 판타지, 아니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순간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단순히 타키와 미츠하 둘 만의 이야기로 한정하지 않은 것은 이 영화가 더 넓은 범위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게 만든다.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적으로 겪었던 일본인들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겪었던 어떤 상실 혹은 준비하지 못했던 이별에 대한 기억을 '너의 이름은'은 소환해 낸다. 아주 간절한 메시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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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삽입곡이 인트로와 엔딩 크래딧 외에도 여럿 등장하는데 확실히 이 부분이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몇 번 정도는 그냥 삽입곡이 없는 편이 더 낫겠다 싶은 순간이 있었거든요.


2. 실제로 저도 그런 적이 많아 공감을 많이 했는데, 한 바탕 꿈을 꾸고 나면 정말 바로 몇 초 전까지 꿈속에서 함께 많은 일들을 함께 했던 누군가 (그것도 꿈속에서는 아주 친한 관계로 묘사되던)의 얼굴이나 이름이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대부분이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바로 몇 초 전까지 꿈속에서 생생하던 얼굴과 이름인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혹시..... ^^;


3. '너의 이름은' 성지순례는 이미 너무 유명해져서 일본 내에서도 화제가 되었을 정돈데, 조금 열기가 식으면 나중에 한 번 찾아가 볼까 생각중에요 (어차피 지금은 갈 수도 없거니와 ㅠㅠ)


4. 마지막은 예전 2012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특별전으로 내한했을 때 함께 찍었던 사진 (감독님 더 유명해지세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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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어 히어로 (I Am a Hero, アイアムアヒーロー, 2015)

좀비물과 영웅물의 조금 다른 전개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사토 신스케 감독의 '아이 엠 어 히어로'는 좀비 영화의 장점과 현 일본의 사회문제, 젊은이들이 느끼는 현재의 일본의 문제를 녹여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단순한 좀비 액션 영화로 포장된 감이 없지 않지만, 전개 과정 중 영화가 선택하는 방향이나 마지막을 비롯해 영화 내내 존재하는 단절과 무력함은 이 영화를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로 만든다.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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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분의 짧지 않은 러닝 타임이지만 관객이 느끼기에는 많은 부분이 축약되거나 소개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아마도 원작 만화를 접한 이들이라면 더 그러한 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가 나타나고 확산되는 과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좀비와의 맞닥들임과 거리를 온통 뒤덮은 좀비들로 간략하게 묘사한다. 


이후 주인공 히데오 (오오이즈미 요)는 좀비를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 여고생 히로미 (아리무라 카스미)와 동행하게 되는데, 다른 일반 좀비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이 히로미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법에 있었다. 히로미는 상당히 빠른 타이밍에 자신이 좀비에게 물렸다는 것을 고백하고 또 그로 인해 좀비로 변하게 되는데, 아마도 다른 좀비 영화 같았으면 (이를 테면 최근의 '부산행'이라던가)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가까운 인물이 좀비로 변하게 되는 것은 최대한 뒤로 미루었을 텐데, 이 영화는 거의 초반에 주요 캐릭터인 히로미를 등장시키자마자 좀비로 변하게 만드는 점이 이채로웠다. 그래서 이 히로미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하려나 싶었을 때 히로미가 다른 좀비를 힘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것도 아주 빠른 타이밍에), '아, 히로미가 일종의 좀비와 대적하는 대에 꼭 필요한 인물로 활용되는구나'라고 예상하게 되었지만,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알다시피 히로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오히려 짐이 되고 만다 (정말 마지막에 히데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땐 무언가 능력이 발휘되겠지 싶었는데 정말로 끝까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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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히로미의 약간은 낭비 혹은 방치되는 듯한 캐릭터 활용에 대한 의문은 이후 주인공 히데오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그렇고 초반 히데오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 극적인 순간에 영웅으로 탄생하는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데, 표면적으로만 보면 '아이 엠 어 히어로' 역시 그런 영화로 오해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은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히데오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항상 '한자로는 영웅이라고 쓴다'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정작 영화의 맨 마지막 살아남은 이들이 히데오를 가리켜 영웅이라고 부를 땐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더 이상 '영웅'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이쯤 되면 영웅적인 면모가 들어 나야할 장면에서도 (캐비닛에 숨어 있다가 무전을 받고 일행을 구하기 위해 뛰쳐나가는 장면), 몇 번이나 상상 속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반복한 뒤 드디어 실제 벌어진 상황에서는 실패가 아닌 좀비들을 무찌르는 결과를 보여주기는커녕 그냥 아무도 없는, 그러니까 성공도 실패도 아닌 결과를 보여준다. 


아마 이 이야기를 일반적인 직선의 방향으로만 풀어냈다면 평소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용기도 부족했던 히데오가, 결국 좀비들로 인해 모두가 쓰러지는 상황 속에서 용기를 발휘해 모든 좀비를 해치우는, 그래서 진짜 영웅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 엠 어 히어로'가 흥미로운 건 표면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전개와 결말이 그대로 벌어졌는데도, 영화의 정서는 영웅담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모든 끔찍한 상황이 마무리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히데오 스스로 더 이상 자신의 이름에 영웅이라는 소개를 하지 않는 장면은, 겸손으로 또 긍정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현실 세계에서는 결국 영웅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씁쓸한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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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좀비물 만의 장점이라면 끔찍한 움직임과 모습 탓에 가끔 움찔하며 눈을 피하게 되는 공포와 동시에 '킥킥'거리며 웃을 수 있는 유머가 공존할 수 있는 점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 엠 어 히어로'는 그 끔찍함과 잔인한 장면들에 긴장하는 동시에 묘하게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었던 괜찮은 좀비 영화이기도 했다. 내용적으로도 아주 뻔한 선택으로 흐르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그 이면에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가 깔려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1. 엔딩 크래딧을 보니 한국 스텝들이 많이 나오길래 찾아봤더니 쇼핑센터 일부 장면은 한국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군요 (파주 아웃렛에서).


2. 아리무라 카스미는 최근 필모그래피가 꾸준하고 또 괜찮네요. 드라마 mozu, 영화 '나만이 없는 거리'와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까지'. 요새 지켜보고 있는 일본 여배우 중 하나.


3. 국내에 블루레이로도 정식 발매 예정이라고 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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