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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라 랜드 (La La Land, 2016)

그렇게 인생 영화가 된다


스틸컷이나 예고편만으로도 '이건 딱 너를 위한 영화야'라고 말해주는 영화들이 있다. 노래와 춤, 로맨스와 삶 그리고 이를 담아낸 뮤지컬이라는 장르. '위플래쉬 (Whiplash, 2014)'를 연출했던 데미언 차젤의 신작 '라 라 랜드 (La La Land. 2016)'는 이미 보기 전부터 인생의 영화가 될 것만 같았던 영화였다. 뮤지컬 영화를 특히 사랑하는 관객의 한 명으로서 어떤 영화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스크린에 펼쳐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해지곤 하는데, 왠지 '라라랜드'는 그 이상일 것만 같았다. 스틸컷과 예고편 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과연 2시간이 넘는 한 편의 영화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전할까 싶던 그 커다란 기대는 결국 더 큰 감동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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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는 2.55:1의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로 촬영된 영화다. 시작 전 등장하는 시네마스코프 로고는 단지 비율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이자 선언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1940~50년대 할리우드가 사랑한 방식으로 또 그 당시의 뮤지컬 영화들처럼 영화를 보여줄 거야'라고. '라라랜드'를 본 많은 관객들이 고전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이야기하는데, '라라랜드'는 어떤 개별 영화들의 장면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기보다는 4,5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 특히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전반적인 존경과 동경을 담아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일례로 대규모의 댄서들이 등장하는 첫 시퀀스만 봐도 그렇다. 아마도 많은 뮤지컬 영화의 팬들은 이 첫 시퀀스만으로도 이미 이 영화와 흠뻑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이 시퀀스는 뮤지컬 영화의 정수이자 이 영화가 담아내고자 하는 영화적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충분히 여러 컷과 편집, 후반 작업등으로 작업할 수 있는 시퀀스였음에도 데미언 차젤 감독은 마치 당시의 대규모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 연습과 여러 차례 리허설을 통해 이 대규모 시퀀스를 원테이크로 완성해 냈다. 이걸 단순히 기술적 성취 혹은 기술적 자랑 등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감독에게 이 시퀀스는 자랑하고픈 장면이기보다는 자신이 만들고자 한 영화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했을 필수의 장면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보고 자란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아주 최소한의 표현으로서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 이 첫 시퀀스. 그렇게 이 시퀀스는 마치 좋아하는 다른 고전 뮤지컬 영화들의 오프닝들처럼 여러 번을 되찾아 보게 될 그런 명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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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가 도달한 뮤지컬 영화로서의 기술적 성취는 일단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근래에도 뮤지컬 영화들이 꾸준히 선보이고는 있지만 고전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최근의 뮤지컬 영화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족함 들은 분명 존재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만족스러운 뮤지컬 영화들을 새롭게 만나게 되어도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다시 보고픈 생각이 더 간절해 지곤 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대형 스크린과 사운드를 통해 제대로 접할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즉, 세대와 시대가 다르다 보니 이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비디오 시절부터 DVD와 블루레이 등을 통해 접할 기회는 있었지만 이런 기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과 같은 만족감은 미처 다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매번 다른 매체로 영화를 접할 때마다 '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면 얼마나 황홀했을까? 그건 어떤 경험이었을까?'하는 궁금증과 아쉬움이 더 들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라랜드'는 바로 그런 궁금증과 아쉬움을 완벽하게 해결해준 이 시대의 클래식 뮤지컬 영화다. 바꿔 말하면 '라라랜드'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다음 세대의 관객들은 분명 '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더라면 과연 어땠을까?'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화면의 비율이라는 건 결국 거리감과 공간감 그리고 그 비율에서 오는 비율 만의 긴장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제작된 이 영화에는, 바로 그 클래식 뮤지컬 영화들에서 느꼈던 리듬감과 긴장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멀리 L.A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세바스찬 (라이언 고슬링)과 미아 (엠마 스톤)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의 촬영 기술은 그야말로 안무의 동선을 카메라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바로 뮤지컬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점을 완벽히 수행해 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이것보다 밋밋하게 촬영했더라도 매력적인 장면이었을 수 밖에는 없지만, 완벽한 촬영이 더해지면서 순간적으로 관객들을 뮤지컬 영화의 세계로 빨아들여 버리는 엄청난 흡입력을 갖게 되었다. 얼마나 흥분되던지. 눈물이 다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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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는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정수를 새 시대에 녹여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한 작품이다. 하지만 '라라랜드'가 진짜 클래식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클래식 뮤지컬만의 매력을 오마주하고 담아낸 영화들은 근래에도 없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오마주와 클래식 함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고전 뮤지컬 영화의 팬들에게는 사랑받았지만 뮤지컬 영화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그렇게 클래식함을 제대로 담아내면 낼 수록 더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노래를 하는 거야? ㅎㅎ)


데미안 차젤의 '라라랜드'를 걸작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아마도 감독 본인이 가장 고민했을 바로 그 문제. 그 고민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많은 관객들이 하는 가장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너무 판타지스럽다 라는 것이다.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여기에 단순한 스토리와 그 판타지함을 등에 업고 조금은 허무한 긍정으로 마무리되는 작법 때문에 더 큰 거리감을 느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뮤지컬 영화의 팬으로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갖는 판타지성에 대해서 더 이야기(반박)하고 싶지만 재쳐두고;;).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라라랜드'는 고전 뮤지컬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가져왔음에도 이들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앞서 이야기한 현실과의 고민이다. 여기서 현실이란 영화 속에선 주인공들의 삶의 현실이기도 하고, 영화 밖에서는 뮤지컬/음악 영화가 처한 시대의 현실과 맞물린다. 아마 이 영화가 고전 뮤지컬의 작법을 스토리에도 끝까지 반영했더라면 지금의 결과물과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혹은 같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각자의 삶에서 꿈을 위해 노력하던 과정에 만나 함께하는 것이 잠시 꿈이 되지만, 결국 본래 꾸었던 꿈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재즈 뮤지션으로서 진짜 재즈를 연주하는 클럽을 운영하는 꿈을 갖고 있는 세바스찬은 현실에선 그저 레스토랑에서 캐럴을 연주하는, 대중들이 듣기 좋은 BGM을 연주하는 연주자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미아를 만나게 되면서 미아와 함께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편으론 자신의 꿈이었던 정통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고집을 꺾고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밴드의 연주자로서 합류하게 된다. 간혹 이 과정을 뮤지션으로서 성공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세바스찬이 자신의 고집을 꺾으면서까지 밴드에 합류하게 된 이유다. 바로 미아와의 사랑을 계속해 나가기 위한 또 다른 꿈을 위해서였다는 것. 하지만 나중에 그랬던 것처럼 이 꿈은 오히려 이 꿈으로 인해 깨져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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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의 꿈도 비슷하다. 미아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배우를 꿈꾸며 여러 오디션에 참여하지만 매번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해 힘겨워하던 중 세바스찬을 만나 역시 그와의 삶을 꿈꾸게 된다. 세바스찬의 응원에 힙 입어 자신이 직접 쓴 대본으로 일인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에 성공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고 그 과정 속에서 밴드 활동으로 멀어진 세바스찬과도 더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무대는 결국 캐스팅 매니저에 마음에 들어 기회를 얻게 되고 미아는 자신이 동경하던 바로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삶을 갖게 된다. 


아마도 다른 뮤지컬 영화 혹은 최근의 관객들이 많이 거리감을 느끼는 판타지적인 뮤지컬 영화였다면 '라라랜드'의 이야기와는 결말이나 그 전개 과정이 조금 달랐을 것이다. 세바스찬의 밴드로서의 상업적 성공을 성공으로 규정하거나 세바스찬과 미아의 결론 모두가 성공이며 그 결말에 두 사람이 원하던 행복을 함께 하게 되는 것으로 결론지었을지 모른다. 재미있는 건 이 영화 스스로도 바로 그 해피엔딩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된 그 순간, 다시 영화적 판타지로 돌아가 그간의 삶의 과정들을 펼쳐내는 시퀀스는 아마 다른 영화였다면 최종적으로 선택했을 결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그렇지 못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인다. 그래서 그 시퀀스는 몹시 매력적이고 황홀한 향연이 펼쳐지지만 오히려 더 쓸쓸하고 슬퍼지는 감정을 담고 있다. 이 슬픔과 쓸쓸함에 정점을 찍는 건 그다음 세바스찬과 미아의 반응이다. 마치 서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는 듯이 그저 또 이렇게 흘러 온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맞겠다고 감정을 삼키는 장면은, 생각보다 더 많은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한 때 사랑했던 연인과의 관계가 지금의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계속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씁쓸함 뿐만이 아니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꿈과 현실에 고민하고 부딪히며 겪어야 했던 수많은 감정과 기억들이 이 짧은 눈빛들에 담겨 있기에, 아마 스스로도 왜인지 까닭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눈물이 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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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밖에서의 현실과의 고민은 극 중 세바스찬과 존 레전드가 연기한 키이스와의 대화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키이스는 자신의 밴드 음악을 듣고 계속해야 될지 고민하는 세바스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재즈는 의미가 없다' '재즈는 혁신적인 음악인데 그렇게 전통만 고집해서 무슨 현식적인 음악이 되겠느냐' '재즈는 미래에 있다'


이 질문은 아마도 감독인 데미언 차젤이 '라라랜드'를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깊이 고민한 바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 속 대사와 마찬가지로 재즈 음악의 신봉자인 그는 그저 듣기 편한 BGM으로 전락한 현실에서의 재즈 음악에 대해 세바스찬과 같은 환멸을 느끼기도 했을 텐데, 또한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가 현재의 할리우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고전 뮤지컬 영화의 팬이라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특히 그것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오래된 것, 별로 인 것 (혹은 어려운 것)으로 대부분 받아들여지는 것일 때, '왜 이 대단한 가치를 몰라주는 거지?'하며 더 정통으로, 정통으로만 파고는 것이 아니라 어떡하면 현재와 소통할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만약 '라라랜드'가 클래식 뮤지컬의 장점을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영화였다면 소수의 뮤지컬 팬들은 몹시 좋아했을지 몰라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위플래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고집스럽고 전통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재 세대가 그 전통의 것들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통의 지점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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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뻔한 것 같지만 세바스찬과 미아가 겪게 되는 삶의 이야기는 굉장히 강렬한 현실감을 전한다. 특히 미아가 오디션 장에서 부르는 'The fools who dream' 시퀀스가 주는 감정은 그냥 미아 만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 미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도 오디션 장에서 연기하듯 말하고 있지만, 이 대사는, 이 노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로 관객에게 녹아든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랬다. 그러니까 미아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완전히 동화되어 느낀 감정이 아니라, 그냥 그 이야기를 빌려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같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클럽에서 두 주인공이 다시 눈빛을 교환하고 각자의 삶으로 걸음을 돌리는 장면에서는 일종의 성숙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이는 동경하고픈 성숙함이 아니라 내게도 있어서 공감되지만 별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은 그런 성숙함이어서 이 역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그 순간 어떤 고민을 했을까. 다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서로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라는 것을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앞서 말한 종류의 성숙한 존재가 되어 버린 뒤였다. 그 과거가 아름답고 그립지만, 이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걸 (못한다는 걸) 서로 인정하고 돌아서기에 이 마지막은 더 아리고 먹먹하게 느껴졌다. 물론 영화는 그 뒤에 한 장면을 더 남겨 두긴 했지만, 이것이야 말로 영화와 관객 모두가 알고 있는 판타지였고.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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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차젤의 '라라랜드'는 영화 속 장면 장면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그립고 또 아려오는 그런 영화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현재로 완벽하게 소환해 내는 것에 성공한. 그것도 현실의 고민과 판타지를 모두 간직한 채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결과물로서 그려낸, 계속 또 보고만 싶어 지는 걸작이었다.


아.... 그렇게 '라라랜드'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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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쇼트 (The Big Short, 2016)

안일한 자본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표되는 2008년 미국에서 시작 된 세계 금융 위기의 원인과 과정을 다룬 아담 맥케이의 '빅쇼트 (The Big Short, 2016)'는, 이 금융 위기의 전조를 미리 발견하고 오히려 거대한 수익을 낸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만 봐도 그렇고 실제로도 이 영화는 홍보 방식에 있어서 '금융 위기의 가운데 월가를 물먹이고 초대박을 터뜨린 괴짜 천재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은 이와는 전혀 다른 정서다. 즉, 천재적인 인물들이 이 금융 위기의 전조를 미리 발견하고 이를 통해 대박을 터뜨리는 과정을 통해 통쾌함과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는 내용이 아니라, 아주 객관적으로 이 사태가 왜 벌어졌고 어떻게 최악으로 말미암았는지를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빌어 설명하는 내용에 가깝다. 영화는 아주 발랄하고 리드미컬하며 오락적인 구성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 내용은 정말로 끔찍하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세상이 망할 것만 같았던 정도의 세계 금융위기라는 현상을 아담 맥케이는 최대한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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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다 보고 난 첫 번째 느낌은 '왜 다큐멘터리로 만들지 않았지?'였는데, 그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세계 금융위기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하려다보니 내용은 자연스럽게 전문적 경제용어들이 난무하는, 일반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려운 내용이 될 수 밖에는 없었다. 아마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더 심화 된 내용과 메시지가 강한 영화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한 편으론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도, 무엇보다 제대로 이해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미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가 있는 것으로 안다). '머니볼'을 쓰기도 했던 원작자인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 원작은 전문적인 경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 대중적으로도 성공했었는데, 아담 맥케이의 영화 '빅쇼트'는 여기에 한 번 더 친절한 필터링을 거친 설명서라고 보면 되겠다. 즉, 영화 '빅쇼트'는 아주 명백한 제작 의도가 담긴 작품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기로 몰고 간 금융위기가 왜 벌어졌고, 어떤 과정으로 최악으로 치닫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도 모른채 집과 직장을 잃어야만 했던 평범한 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목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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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영화가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극영화라는 장르의 선택이었을테고, 두 번째는 크리스찬 베일, 브래드 피트,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배우들의 캐스팅이었으며, 세 번째는 친절한 설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크리스찬 베일이나 브래드 피트 같은 배우들의 이름에 낚여서 갑자기 의도하지 않았던 경제 공부를 하게 된 관객들도 많겠지만, 어쩌면 이 낚시 아닌 낚시는 영화의 의도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조연급의 유명한 배우들 외에도 마고 로비, 셀레나 고메즈 같은 셀러브리티들은 물론 세계적 셰프인 안소니 브루댕이나 경제 학자 리차드 탈러 박사 같은 이들이 등장하여 스크린에서 관객을 똑바로 보면서 알기 쉽게 소개하는 방식은, 다시 한 번 이 영화가 어떤 목적성을 갖고 있는 지를 알게 한다. 또한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자레드 베넷 캐릭터는 스크린 밖의 관객을 인지하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같은 설명 방식은 실제로 상당히 유효했다. 나 역시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CDO, CDS 등 전문 적인 경제 용어들과 내용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영화는 아주 낮은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설명하고 있어서 적어도 단순화 하여 이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는 다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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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이토록 설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문구들은 이 2시간 넘는 일종의 공부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는데, 이 문제로 처벌 받는 금융인은 단 한 명 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이 엄청난 규모의 사태를 일으켰던 일종의 금융 상품이 이름만 바뀌어서 다시 2015년에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 안일하고 멍청한 자본 주의 사회에서는 모르는 것은 약이 아니다. 아는 것이 힘이기 이전에 생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걸 영화는 전하고자 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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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The Place Beyond The Pines, 2012)

아름다워서 더 슬픈 인생의 굴레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The Place Beyond The Pines, 2012)를 보게 된 것은 라이언 고슬링의 그 표정을 또 한 번 데렉 시안프랜스의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데렉 시안프랜스와 라이언 고슬링이 함께 했던 전작 '블루 발렌타인'은 지난 해 극장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손에 꼽을 만한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다시 한 번 이 둘이 만난 작품이라니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 요새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배우 중 한 명인 데인 드한이 출연하는 것은 물론, 브래들리 쿠퍼와 에바 멘데스, 레이 리오타까지 함께 한 작품이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게 된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전작 '블루 발렌타인'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바라보는 시점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삶의 무게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되,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연출력으로 빚어낸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왜 있지 않은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난 뒤에도 쉽게 좌석에서 일어나기 힘든. 그런.




ⓒ Sidney Kimmel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오토바이 스턴트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 루크(라이언 고슬링)를 따라간다. 루크의 삶은 희망도 내일도 없이 그저 반복 적으로만 느껴진다. 그러던 중에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루크는, 아이의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한 일종의 목표가 생긴다. 이로 인해 은행 강도 짓까지 하게 되고, 그러다 범죄 현장에서 경찰인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와 맞닥들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훌쩍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 루크와 에이버리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특이한 듯 하지만 사실 일반적이고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고 할 만큼 전형적인 측면도 있다. 아마도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했다면 3류 드라마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15년 뒤 두 주인공의 아들들이 서로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예상된 이야기라는 점의 익숙함과 유치함 보다는 오히려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루크의 잔상과 2대를 이어 온 이 슬픈 운명의 굴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물론 공감까지 이끌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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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데렉 시안프랜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두 주인공(넓게 보면 4명의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에이버리의 경우 경찰으로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응한 것 뿐이지만 본인 스스로도 그 자리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본인의 직무를 다한 바로 그 사건 때문에 본인의 삶은 물론 자신의 아들의 인생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에이버리가 겪는 일들은 더 사면초가의 상황 들이다. 그는 이를 영리하게 해결해 나가지만, 그렇다고 15년 동안은 물론 15년 후의 그의 인생이 결코 행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루크의 경우도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함이다. 삶의 어떤 곳에도 의욕 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던 그에게 아들이라는 존재는 삶의 모든 것을 뒤바꿔 놓을 정도의 사건이었으며, 그로 인해 루크는 어쩔 수 없이 더 큰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루크의 아들인 제이슨 (데인 드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제이슨이 행한 행동들은 분노에 의한 것 이라기 보단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는 굴레에서 온 것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냥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 제이슨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이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운명의 굴레에서 조금이 나마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전한다.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은 정말 묘한 인상을 준다. 희망과 슬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하지만 영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런 장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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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배우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라이언 고슬링은 '블루 발렌타인'과 '드라이브'에 이어 고독하고 외로운 한 남자를 완벽하게 표현해 내는데,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는 얼굴은 물론 삶의 무게를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듯한 뒷 모습은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브래들리 쿠퍼는 라이언 고슬링과는 정반대의 모습에 가까운데, 오히려 이 둘이 영화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다거나 명확한 대칭 점에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 브래들리 쿠퍼는 딱 본인이 맡은 캐릭터 만큼만 연기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캐릭터를 통해 그의 연기가 얼마나 무르 익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에바 멘데스는 이 둘에 비해 비교적 적은 분량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녀 역시 삶의 고단함을 한 껏 머금은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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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이 작품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눈빛을 선사한 배우는 데인 드한이다. 이미 전작 '크로니클'을 통해 단숨에 가장 주목 받는 배우로 거듭한 데인 드한의 매력을 이 작품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첫 등장 장면을 보는 순간 '아, 이 녀석 눈빛이 그 사이에 더 깊어졌구나!'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강렬하게 빨아들이는 흡입 력이 대단했다.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라이언 고슬링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서도 그의 못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데인 드한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감독은 그를 잘 활용하고 있다.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여러가지로 참 매력적인 작품이다. 전작 '블루 발렌타인'에 이어 또 한 번 만족스럽고 자신 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데렉 시안프랜스의 작품이자, 라이언 중에 최고라는(?)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적인 이미지를 가득 만나볼 수 있으며, 데인 드한이라는 적어도 최근 내 게는 가장 뜨거운 배우의 더욱 깊어진 눈빛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1. 아, 그리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한 명 더 출연하고 있어요. 바로 로즈 번인데, 그녀를 오랜 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정말 반갑더군요. 캐릭터도 나쁘지 않고!


2. 라이언 고슬링은 이렇게 이미지가 굳혀 가는가 싶은데, 보통 이러면 이제는 다른 걸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라이언 고슬링은 더 이렇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워낙 멋지니 굳이 변신하지 않아도.


3. 데인 드한은 정말 물건입니다. '크로니클'을 통해 발견했고, 이 작품을 통해 더 깊은 팬이 되었어요.


4. 그리고 최근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무서운 장면을 이 영화에서 발견했어요. 레이 리오타가 등장하는 장면인데, 정말x100 무서웠습니다. 실제로 그가 나를 그렇게 쳐다본다고 생각 만해도 ㄷㄷㄷ 레이 리오타는 정말 무서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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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발렌타인 (Blue Valentine, 2010)

있는 그대로의 러브 스토리



'블루 발렌타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손 꼽는 여배우 미셸 윌리엄스와 최근 가장 핫한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함께 출연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극장을 찾은 절대 이유였던 두 배우와 함께 너무나도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낸 예고편에 홀려 보게 된 '블루 발렌타인'은, 그저 사랑의 아름다운 순간만을 담은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것의 무서우리만큼 현실적인 이면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래서 한 편으론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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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딘 (라이언 고슬리)과 신디 (미셸 윌리엄스)의 러브 스토리를 그 시작과 현재의 모습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묘사한다. 처음 느꼈던 두근거림과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사랑의 감정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동시에, 현재 아이의 부모로서 현실과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힘겨운 관계를 그린다. 기본적으로 이런 교차 구조는 다른 관계나 감정이 아니라 동일한 관계와 감정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현재의 힘겨운 관계나 처음에는 어떠했는지를 보여줌으로서 힘겨운 현재의 긍정적 변화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블루 발렌타인'의 교차 구조는 단순히 이러한 변화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한 발 물러서서 관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즉,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은 그 순간 자체로 아름답게 담아내고, 지금의 현실은 현실 그대로 식어버린 사랑 그대로를 그리되 반드시 둘 간의 상관관계를 엮으려는데에 큰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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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발렌타인 (Blue Valentine)' 이라는 제목의 뉘앙스처럼 영화는 아름다움과 슬픔을 조금씩 다 담아내는데, 일단 그 각각이 너무도 충실하다. 예고편으로도 만나볼 수 있었던 신디가 딘의 노래와 연주에 맞춰 쇼윈도 앞에서 탭댄스를 추는 장면은 올해 스크린에서 만나본 수 많은 장면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사랑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딘과 신디가 다툼을 겪는 과정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하나하나 일일이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얼마나 깊은 감정의 골이 생겨버렸는지 아픔이 뼈속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감정의 골이 깊어져버린 딘과 신디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힘겨울 정도로 영화의 무게가 대단했다. 자극적으로 그려내지 않으면서도 식어버린 사랑, 감정의 골이 깊어져 회복이 어려운 관계가 주는 힘겨움은 사랑과 이별을 겪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그 감정의 무거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딘과 신디를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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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발렌타인'을 보며 한 편으론 사랑의 아름다움보다는 아픔을 더 뼈져리게 공감하는 나를 보면서, 어떤 의미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린 자신을 돌아보게 됬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은 맞지만, 아프지 않고도 성숙할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현실을 겪어버린 이에게는 순간의 빛나는 아름다움도 물론  느껴지겠지만 그보다는,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을 다시 되새기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 되새김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채 말이다.


1.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엔딩 크레딧이었어요.



Blue Valentine Title Sequence from Jim Helton on Vimeo.


2. 라이언 고슬링과 미셸 윌리엄스는 이 관계를 더 효과적으로 그리기 위해 어린 딸을 연기한 아역배우와 함께 셋이서 영화 촬영 전 1달 간을 함께 살았다고 하더군요 (참고로 두 배우는 출연 외에도 모두 프로듀서로도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3.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정말 또 보기 힘든 영화였는데, '블루 발렌타인' 역시 그렇지만 묘한 아름다움이 있어 매력적인 영화였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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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The Ides of March, 2011)

최선의 선택이란 무엇인가?



조지 클루니가 출연에 연출까지 맡고, 라이언 고슬링, 폴 지아마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마리사 토메이, 에반 레이첼 우드 등 화려한 캐스팅이 눈길을 끄는 영화 '킹메이커 (The Ides of March, 2011)'를 뒤늦게 보았다. 평소 정치에 관심은 물론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치기도 하는 조지 클루니의 작품이라 정치적인 소재를 다뤄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영화는 적극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펼치기 보다는 오히려 이를 소재로 활용하는 영리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히려 정치에 관심도 생각도 많은 조지 클루니이기에 가능한 여유가 아닐까도 싶은데, 조지 클루니는 민주당내 선거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주인공 스티븐 (라이언 고슬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면서 여러번 맞닥들이게 되는 '최선의 선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또 한 번 던지고 있다.



ⓒ Cross Creek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스티븐은 민주당내 차기 대선 후보를 뽑는 것이나 다름 없는 선거에서 모리스 (조지 클루니)를 당선시키기 위해 일하는 선거 캠프의 팀장이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재능으로 정치계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스티븐은, 선거 운동 중 상대 후보 캠프의 모략에 걸려들어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믿고 지지하던 모리스의 치명적인 스캔들을 알게 되고 만다.


사실 조지 클루니의 그간 정치적 활동이라던가 '킹메이커'라는 국내 개봉 제목으로 미뤄봤을 때, 예전 비슷한 영화들처럼 선거 캠프의 인물들을 통해 선거와 그 뒷 이야기 그리고 미국내 여러가지 정치적 이야기들을 다룬 영화가 아닐까 했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킹메이커'의 포커스는 분명 그 곳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앞서 이야기한 현실적 소재들이 모두 등장하고 실제 사례 (클린턴의 스캔들)들을 인용한 부분들도 등장할 만큼 실제 정치판의 뒷이야기가 살아 있지만, 이것들을 통해 미국내 정치판을 비판하거나 다큐멘터리처럼 재조명하려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 사건에 놓인 주인공 스티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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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스티븐의 선택이 그러한 점을 더 돋보이게 하는데, 스티븐은 말그대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정의의 편에 서기 보다는 선택에 선택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씁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론도 물론 중요하지만 스티븐이 자신이 믿고 따르던 모리스의 스캔들을 알게 된 후 벌이는 갈등과 그로 인한 몇 번의 선택들을 통해 영화는 끊임없이 '최선의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킹메이커'의 이러한 질문은 개인적으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주 깊게 다가왔는데, 최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과정의 정의는 포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과정의 정의가 없는 최고의 결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지를 또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다. 실제로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최고의 결과를 위해 과정의 정의는 무시해도 된다가 아니라, 부득이한 경우 결과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며, 과정의 정의 없는 최고의 결과는 무조건 잘못 되었다 가 아니라, 과정의 정의를 위해 최고의 결과를 포기하여 결국 상대의 승리 혹은 최악의 결과를 낳도록 하는 것을 잘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에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는 삶의 여러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쉽지 않은 선택의 기로인데, 그것이 신념과 맞물렸을 때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한 번 깊게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였다 (아, 이 영화에서 역시 답은 없다. 이 문제에 공통된 답이란 것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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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영화가 바로 '킹메이커'이다. 최근 보았던 '디센던트'를 통해 더더욱 사랑하게 된 조지 클루니의 경우 정말 못하는게 무엇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연출력을 보여주었으며, 등장만으로 무게감을 주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폴 지아마티의 캐스팅은 양 캠프의 무게감을 동등하게 부여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큰 역할이 아닌 듯 하지만 마리사 토메이가 연기한 타임지 기자 역할도 가볍지 않았고, 에반 레이첼 우드 역시 자신의 순수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소비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주인공을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의 경우, '드라이브' 이후 최고의 주가를 기록하고 있는 남자 배우답게 연기와 이미지가 완전히 결합된 또 한 번의 결과물을 보여주었으며, 점점 동년배의 헐리웃 다른 남자 배우들과는 차별되는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이유로 곧 개봉예정인 '블루 발렌타인'이 기대되는 바이다 (미셸 윌리엄스까지 출연하니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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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극장 상영버전이 화면비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보고 패스했다가 이번에 IPTV로 보았는데, 대충 비교해보니 이 버전은 잘린 것 같지는 않더군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2. 저는 라이언 고슬링과 동갑입니다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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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Drive, 2011)

이토록 황홀한 아름다움



매년 백 편이 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면 그 가운데에는, 하마터면 놓칠 뻔 했으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되는 감격을누리고 있구나 라고 실시간으로 체감하게 되는 작품이 한 두 작품 나오기 마련인데, 올 해는 아마도 이 영화 '드라이브 (Drive, 2011)'가 아닐까 싶다. 처음 11월에 봐야 할 영화 목록에 '드라이브'는 없었다. 그저 캐리 멀리건이 나오는 영화라 한 번 보고 싶기는 했지만, 더 보고 싶은 다른 작품들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만 같아 결국 다음으로 미루는 것으로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적은 상영관을 통해 (왜 항상 좋은 영화의 상영관 수는 이리도 적은 것일까!) 이미 본 이들의 반응을 보니 '엇, 이거 그냥 지나쳤다간 나중에 큰 후회를 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안봤으면 큰 후회 정도가 아니라 계속 재개봉이라도 혹시 안하나 하는 마음으로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를 체크하고 다니는 날들이 계속될 뻔 했을 정도였다. 쟁쟁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올해,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영화의 손꼽는 후보작이 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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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팬들이라면 아마 '드라이브'에서 여러 영화의 감각과 향이 느껴질 것이다. 어두운 도시의 밤을 배경으로 조용히 (정말 조용히) 달리는 자동차와 한 남자. 그리고 핑크색 컬러로 뿌려지는 오프닝 크래딧과 마치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감각의 배경음악까지. 니콜라스 빈딩 레픈의 '드라이브'는 이미 오프닝만으로 관객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마치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를 연상시키는 오프닝의 감각과 구성은 영화를 내내 감싸고 있는데, 이것 만으로도 '드라이브'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주인공의 모습이나 포스는 '첩혈쌍웅'으로 대표되는 당시 홍콩 느와르 영화 속 주윤발의 그것을 정확히 떠올리게 했다. 입에 문 이쑤시게가 오히려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져 없었어도 충분한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은 주윤발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당시 홍콩 영화를 즐겨봤던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당시 영화 속 주윤발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적 무언가가 충만한 이미지였다. 물론 라이언 고슬링이 이 한 편 만으로 시대를 관통했던 주윤발의 아우라를 보여주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시 홍콩 느와르 속 주윤발이라는 캐릭터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배경과 시대에 다시금 불러와 소화해 냈다는 점만은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하다. 말 한 마디 보다는 표정과 몸짓, 그리고 미세한 동선의 차이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라이언 고스링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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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러티브 측면에서 보자면 '드라이브'는 상당히 간과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은 편이다. 극중 라이언 고슬링과 캐리 멀리건이 가까워지는 속도에 있어서도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쿨하게 넘기고, 이름도 없이 그저 '운전사'로만 불리는 라이언 고슬링의 과거에 대해서도 영화는 거의 정보를 주지 않고 그저 분위기로만 슬쩍 풍길 뿐이다. 그리고 이 드라이버가 처하게 되는 상황의 큰 그림에 있어서도 영화는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는다. 마치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영화는 뚝뚝 끊겨서 불편하고 주인공들에게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빠져들지 못하고, 결국 결론에 가서도 무슨 영화를 본 건가 싶어야 맞을 텐데, '드라이브'에게는 이런 점이 발견되기는 커녕 오히려 매우 깊은 만족감을 전해 준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마치 주윤발이 주연을 맡은 '블레이드 러너'를 베이스로 하여,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 도시의 밤을 그리는 데에서는 마이클 만을, 그리고 폭력을 묘사하는데에 있어서는 크로넨버그마저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터미네이터'의 느낌마저 풍길 정돈데 (이 영화는 묘하게도 몹시 SF영화스럽다), 이런 점들 역시 말로만 전해 들으면 장점들을 다 가져다 놓기는 했으나 조합 측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번잡스러워 실패하는 경우가 아닐까 싶지만, 이 영화는 놀랍게도 거장들의 인장 과도 같은 장점들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다 흡수해 소화까지 시켜버린 경우라고 하겠다. 즉, 이건 이 작품을 연상시키고, 이건 이 감독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이브' 자체는 독립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얘기다. 아... 이 얼마나 황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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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를 본 소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황홀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최근 본 영화 가운데 테랜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의 '황홀경'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의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드라이브'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듯 싶다. '트리 오브 라이프'의 경우 담고 있는 주제와 포괄하는 범위 자체가 근본적 아름다움과 우주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황홀경'을 담아내기에 비교적 용이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반 면, '드라이브'는 매우 상업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범죄, 액션, 로맨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와 동등한 영화적 아름다움을 담아냈다는 점이 이 영화가 칸에게도 선택 받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 작품으로 감독 니콜라스 빈딩 레픈은 올해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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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는 첫 인트로 부터 액션과 스릴러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풍기고 있는 그 아름다움에 손에 땀을 쥐었던 흔치 않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극장을 나오며 '머니볼'의 대사 마냥 '이래서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니까'라고 되내일 수 밖에는 없는 '황홀한' 작품이었다. 강력한 올해의 영화 추천작!



1. '황홀하다'라는 표현을 이렇게 많이 쓴 리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어요, 황홀하니까!

2.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입할 예정입니다. 아마존으로 가야할듯.

3. 라이언 고슬링이 입고나온 그 스콜피온 점퍼! 저 점퍼 입는 다고 영화 속 고슬링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소장하고 싶은 아이템이네요 ㅎ

4. 극장에서 벌써 대부분 내린 것 같은데, 꼭 상영관을 찾아서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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