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퀀텀 오브 솔러스 (Quantum Of Solace, 2008)
카지노 로얄의 속편으로'만' 보자
오랜만에 개봉일에 영화를 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만큼 007의 22번째 시리즈인 <퀀텀 오브 솔러스>는 초기대작은
아니더라도 나름 전통의 시리즈로서,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워낙에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으로서 기대작이었으며,
감독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음에도 개봉일날 다른 영화들을 재쳐두고(사실 뚜렷한 경쟁작이 없기도 합니다만;;)극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널리 알려진 것 처럼 전편인 <카지노 로얄>의 이야기에서 불과 1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007시리즈가 각각 다 개별적으로 에피소드를 풀어냈던 것을 보자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더군다나 감독도 교체되었는데 말이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목을
<007 퀀텀 오브 솔러스>라고 할 것이 아니라, <007 카지노 로얄 - 퀀텀 오브 솔러스>라고 부제로 달던가 아니면 제목의 비중상
카지노 로얄 보다는 퀀텀 오브 솔러스가 더 큰 범주라고 할 수 있을테니, 마치 매트릭스 3부작의 제목들처럼
<007 퀀텀 오브 솔러스 - ******> 뭐 이런 식으로 했으면 더 이해가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지금으로선 확실하지
않지만 여기에 이어지는 속편 성향에 007이 제작될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전편인 <카지노 로얄>을 최근에 보았거나 아니면 극장에서 인상 깊게 보고 DVD나 블루레이를 통해 재차 감상한 이들에게는
조금 덜했겠지만, 전작을 보지 않았거나 어렴풋한 기억만 있는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사실상 전편의 이야기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인물들과 이야기가 가득해, 영화를 100% 즐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 속에서 계속 '베스퍼'가
등장하는데 전편을 안본 사람이라면 이게 누구인지 제목에 '퀀텀'보다도 더 궁금할 것이고, 중간 중간 익숙한 척하며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히스토리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몰입도도 덜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아예 제목에서부터 속편임을 강조하고
들어갔다면 관객들이 스스로 복습을 한다던가 아니면 준비를 한다거나 했을텐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 일단 일반 관객들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카지노 로얄>을 인상깊게 보고 블루레이의 놀라운 화질로 다시 한번
감상한 경우였기 때문에 괜찮긴 했지만 말이죠.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007 이야기가 3부작 형식으로 다음 작품까지 이어진다면,
그리고 마지막 작품에 해당할 다음 007 영화가 <본 얼티메이텀>처럼 대박을 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이럴 경우엔 어느 정도 전편에 해당하는 실망스런 한 두편의 시리즈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그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론
나쁘지 않았어', '그래, 중간에 약간 쉬어가는 분위기였군'하며 나름 세뇌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일단은 지금 현재로서의 평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말이 많은 오프닝 시퀀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작인 <카지노 로얄>의 오프닝 시퀀스는
새로운 시대의 본드를 설명하는데 매우 탁월하고 임팩트 넘쳤던 오프닝이었습니다. 깔끔한 비주얼과 동시에(블루레이의
화질은 그야말로 작살이죠), 크리스 코넬(잘 아시다시피 '사운드 가든'의 보컬이었고, 해체뒤에는 'R.A.T.M'의 멤버들과
'오디오슬레이브'를 결성하기도 했으며, 솔로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였죠)의 인상 깊은 보컬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오프닝에서 상당히 깊은 인상을 주고 시작한 경우가 바로 <카지노 로얄>이었습니다.
<퀀텀 오브 솔러스>의 경우는 시작 전 부터 말들이 많았습니다. 일단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es)'의 잭 화이트가
곡을 맡았으며, 그와 알리시아 키스가 듀엣으로 노래를 했는데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라는 점 때문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잭 화이트가 만든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곡을 좋아하기도 하고, 알리시아 키스야 워낙에 좋아하는 뮤지션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건조한 사막을 배경으로 찐득하고 이질적인 사운드의 음악과 보컬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봤을 때도 뭐랄까 '이색적'이긴 하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고 할까요.
제가 감독이거나 잭 화이트라면 '이거 괜찮은데, 하지만 사람들한테는, 특히나 007 보러온 사람들 한테는 안먹히겠다'하면서
이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더군요. 특히나 전작의 크리스 코넬의 임팩트가 아직도 귀에 선하기 때문에 더욱 손해보는
면도 있었던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는 두 뮤지션 모두 좋아하는 이들인데, 이전에 <미션 임파서블 3>의 메인테마송을 맡았다가 자신의 경력에
오점 아닌 오점을 남긴 칸예 웨스트 처럼, 이번 오프닝 테마곡이 이 둘에게 앞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듯 합니다.
<퀀텀 오브 솔러스>가 가장 우려되었던 점은 오프닝도, 본드 걸도 아닌 감독인 마크 포스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전작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는 <연을 쫓는 아이> <네버랜드를 찾아서> <몬스터 볼>등 드라마에 장점을 보인
감독이지 액션 영화는 단 한번도 찍어본 적이 없는 감독이었거든요(전 저 중에서 <네버랜드를 찾아서>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감독이 다른 영화도 아니고 007의 감독이라. 더군다나 전편에서 다른 본드들과는 달리 '제이슨 본'급으로
액션이 상향 조정된 본드의 감독이라니. 걱정이 아니 될 수 없었죠.
결과를 놓고 보자면 확실히 아쉬운 면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핸디캡을 너무 의식했는지 액션을(말그대로 시퀀스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크게 한숨 돌리게 되는)여러차례 감행하고는 있는데, 일단 편집이 너무 급한 감이 있어서 정신을
못차리게 되는 것은 맞지만, 액션의 화려함과 숨막힐 듯한 긴장 구조 때문이 아니라 정신없는 편집 때문에 그리 된다는 것이죠.
예고편에서 본드와 적이 함께 유리창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쫓아 떨어지는 장면이라던가, 몇몇 장면에서 카메라가
거의 인물의 시선과 같은 입장에서 이동하는 멋진 샷들이 있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평범함을 넘어서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퀀텀 오브 솔러스>역시 전작의 본드처럼 다니엘 크레이그는 본 스타일의 액션을 보여주는데, 크게 나아지거나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오히려 전작보다 이를 더 강조하려는 듯 창문이나 벽 등을 더 많이 부수고 떨어지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이런 액션들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뭐랄까 의미없는 장면들이라고 할까요. 스토리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다고
하기 보다는 그저 '나 마크 포스터도 이 정도 액션이 가능하다구!'하고 말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애스턴 마틴의 자동차 액션씬과 비행기 액션씬도 등장하는데, 비행기 액션씬은 나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주인공이 탄 비행기라 그런지 어지간히 맞았는데도 폭발하거나 추락하지 않더군요 @@)
확실히 본드는 냉전의 산물이자 총아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냉전이 끝나면서 007은 혼란을 겪는 모습이
역력하거든요. 이렇다할 뚜렷한 적이 없다보니 이번엔 돈으로 무장한 사업가가 그 반대편에 서게 되는데 아무래도 007 무비
에서는 임팩트가 떨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선과 악의 경계가 미묘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새로울 것도 없고 본드에게는 그리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서 그런지 몰라도 악역의 임팩트가 그리 강하질 못합니다. 정말로 악하다기 보다는
그저 '사장'이상의 포스를 주지는 못하거든요. 악당 '그린' 역할을 맡은 매티유 아멜릭은 <잠수종과 나비>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배우이며,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던 <뮌헨>에서도 괜찮은 캐릭터를 연기했었는데,
확실히 이런 두목 역할과 그는 잘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카지노 로얄>처럼 선액션, 후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무리가 어정쩡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같은 MI6 요원들 3~4명도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던 본드가 아무리 미리 몇 대
맞았기로서니 고작 '회사 사장'과 막판 듀얼을 펼쳐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마지막 호텔에서의
액션들도 전체적으로 너무 급작스럽고 임팩트가 부족하게 느껴졌구요. 그렇다고 그 이후에 짧은 드라마에도 전작에 비해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배우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그가 연기하는 본드도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본드는 본래 느글느글하고 여유롭고 바람둥이다 라는 것이 기본적이긴 하지만, 뭐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의
본드는 그렇게 되기 전 본드이니 이런 점에서는 자유로운 것 같구요. 역대 어느 본드들과 비교하여도 쉽게 뒤지지 않는 그의
수트 입은 모습은 남자인 제가 봐도 움찔하게 되며, 최초의 금발 본드이지만 흑발 본드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이미 그는 제임스 본드에 많이 적응된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역대 본드들 가운데 가장 스턴트 액션이 많고 과격해지다보니
수트는 항상 더러워지고 얼굴은 더 더러워지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델 워킹으로 사막을 걷는 것이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에서 다음 007 영화에 그가 더 출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들은 실로 아쉽게 느껴지는군요.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것은 없지만 1~2편 더 정도는 그가 본드로 출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본드하면 본드 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카밀'역할로 출연한 올가 쿠리렌코는 기존 본드걸과는 또 다른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이렇다할 노출이나 배드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액션에 매우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도 아닌데(어느 정도
가담하기는 하죠;), 그 갈색 피부와 검은 머리는 마치 일종의 코스츔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코스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초반 부두가에서 그녀가 입고 나온 의상과 헤어를 보니 마치 애니메이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 주인공인
'나디아'가 절로 떠오르더라구요.
(더 나디아 스럽게 나온 풀샷 사진을 찾아보려 했는데 도무지 없군요;;;)
여튼 얼핏 들으면 어디 동유럽에 테니스 스타 이름 같은 올가 쿠리렌코의 다음 영화도 기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이러저러한 이유들을 들어 조금은 아쉬웠던 22번째 007 영화였습니다.
약한 악당, 모호한 구조, 1편의 연장, 심심한 액션 등 전체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으로서 과연 다음 007 영화의 행보는 어찌될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감독은 누가 맡게 될지.
다니엘 크레이그는 계속 본드로 남게 될지. 이야기는 3부작의 마지막 형식을 띄게 될지 등등 말이죠.
1. 여러 전작 007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가 등장합니다.
2. 오페라 '토스카'가 등장하는 장면 또한 일종의 오마쥬였는데, 이 장면은 나름 멋지더군요
3. 악당이 손에 넣으려는 것이 '석유'가 아닌 '그것'이었다는 점이, 21세기 답게 느껴지면서 씁쓸해 지더군요.
4. 본드가 한 번 휙 눈치보고 자동차를 훔쳐타는 장면을 보니 '저거 너무 쿨한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며 왠지 우습게
보이더군요 ㅋ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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