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걷는 남자 (The Walk, IMAX 3D, 2015)

한 남자와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에 대한 송가



로버트 저메키스의 '하늘을 걷는 남자 (The Walk, 2015)'는 실제로 뉴욕 월드 트레이딩센터 빌딩 사이를 밧줄로 연결하여 건너고자 했던 필리페 페티의 실화를 담고 있다. 아마 이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보다 앞서 필리페 페티의 이 사건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 '맨 온 와이어 (Man On Wire, 2008)'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늘을 걷는 남자'는 '맨 온 와이어'와 거의 똑같은 구성을 갖고 있는 극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면에서 '맨 온 와이어'가 더 매력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일종의 관람 순서도 영향을 전혀 끼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맨 온 와이어'가 워낙 좋았던 작품이라 '하늘을 걷는 남자'가 도달하기엔 처음부터 쉽지 않았던 경지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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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저메키스가 이 영화를 만들 때 '맨 온 와이어'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묘사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야기의 구성이야 실화를 배경으로 했음으로 크게 다를바 없다해도 필리페를 화자로 내세운 것도 '맨 온 와이어'와 유사한 방식이었는데, 애정하는 조셉 고든-레빗의 프랑스인 연기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실제 필리페 페티의 화술과 매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기에,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비교되는 포인트였다. 사실 '하늘을 걷는 남자', 아니 이 필리페 페티의 실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맨 온 와이어'를 통해 다 했었기 때문에 특별히 다시 할 이야기는 많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하늘을 걷는 남자'가 '맨 온 와이어'와 달랐던 점은 쌍둥이 빌딩으로 불리우는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맨 온 와이어'의 경우 철저하게 필리페 페티가 아티스트로서 이 빌딩 사이를 건너는 그 순간과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면, '하늘을 걷는 남자'는 구성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정서적으로는 필리페 보다도 오히려 쌍둥이 빌딩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즉,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9.11로 인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이 건물에 대한 일종의 송가처럼 느껴지는 연출을 자주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주인공 필리페가 이 빌딩을 바라보는 여러 시점 샷들에서는 단순히 3D 기술을 활용한 기술적 측면 외에도 마치 죽음을 맞이한 한 빌딩이 막 탄생했던 순간을 그리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히 단순히 높이에 대한 경이로움의 시선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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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남자'가 그래도 볼 만한 건, 오랫동안 3D 영상에 매진해 왔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한 적절한 3D 소재 영화라는 점이다. 아마 저메키스에게는 어떠한 액션 판타지 영화보다도 이 이야기에서 3D 영상에 대한 매력을 느꼈을지 모르겠는데, 엄청난 고공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줄타기의 순간은 3D 영상을 통해 더 실감나고 집중하게 되는 장면을 선사한다. 사실 이 부분은 '하늘을 걷는 남자'의 분명한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지만, '맨 온 와이어'를 먼저 본 입장에서는 이 부분 마저 조금은 이 작품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지점이었다. 왜냐하면 '하늘을 걷는 남자'가 그리는 고공 줄타기의 순간은 체험하는 느낌과 필리페의 정서를 모두 담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맨 온 와이어'는 3D기술 없이도 다큐멘터리 장르를 통해 이 장면을 더 극적이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맨 온 와이어'는 정서적인 만족감과 동시에 체험하는 느낌마저 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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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얘기해서 이 작품을 재미있게 관람하긴 했으나 막상 글을 쓰려니 '맨 온 와이어'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보니 모든 면에서 아쉬운 것처럼 풀어낼 수 밖에는 없는 형편이다. 만약 '맨 온 와이어'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나와는 조금 다르게, 훨씬 더 재미있게 이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하지만 나처럼 이미 손꼽히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던 '맨 온 와이어'를 본 이들에게는, 거의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된다. 기승전맨온와이어.



1. '맨 온 와이어'는 예전에 하이퍼텍나다 에서 관람했었는데, 그 기억이 생생하네요. 아래는 그 때 작성한 리뷰 입니다. 이걸 읽으시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네요 ^^;


맨 온 와이어 _ 한 편의 시와 같은 찰나의 여정



2. '맨 온 와이어'는 특히 음악이 아주 좋은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은 좀 음악이 아쉬웠어요.


3. 영화의 의도는 분명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에 대한 송가에 가까운데, 북미 성적을 보면 아무래도 미국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엔 보는 자체로 고통스러운 측면이 여전한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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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realfolkblues.co.kr 선정
2010 상반기 좋은 영화 결산


올 상반기에도 참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지난해에 비해 좀 더 작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기회가 적었다는 것인데, 하반기라도 부지런히 챙겨보도록 좀 더 노력해야겠네요. 지금까지는 결산을 할 때 항상 '베스트'라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뭐 개인적인 베스트라는 의미이니 크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 보다는 그냥 내가 좋았던 '좋은 영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선정한 상반기 '좋은 영화' 들을 한번 짧게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작품 간의 순위는 없으며 순서는 개봉 역순이며, 각각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영화의 리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찰리 카우프만 감독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를 걱정했던 것처럼, 공드리 없는 카우프만도 그 걱정의 정도는 조금 덜했으나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결과는 대만족, 아니 대압도된 느낌이었습니다. 카우프만은 항상 인간 존재와 마음의 심연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본인이 감독을 맡게 된 이 작품에서는 드디어 그 심연의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영화란 무릇 이야기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본인만의 것으로 느껴질 때 더 큰 감동이 오기 마련인데, 카우프만의 심연에서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 분석해볼 만한 거리가 참 많은 작품임에도, 완전히 카우프만의 세계에 공감한 탓에 굳이 분석할 필요성을 못느낄 정도였죠.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마크 웹 감독

조이 데샤넬의 열혈팬이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긴 했지만, 그녀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던 좋은 드라마였죠.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들을 진부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방식, 알콩달콩 하지만 현실적이고 씁쓸함과 희망을 동시에 주는 이 작품은, 몇 년간 본 로맨스 영화들 가운데 손꼽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나의 '썸머'를 떠올리게도 했구요.






맨 온 와이어 (Man On Wire)
제임스 마쉬 감독

그냥 포스터에 이끌려 보게 되었던 '맨 온 와이어'는 다큐라서 주는 흥미로움과 다큐답지 않은 극적인 요소가 완벽하게 결합한 작품이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주는 힘과 이를 그리는 방식의 진정성이 뒷받침 하는 가운데, 마지막 그 찰나의 순간의 경험은, 실제 이를 경험한 필리페 페티에 그것에는 절대 못미치겠지만 그래도 그 찰나를 스크린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았네요.






예언자 (Un Prophète)
자크 오디아르 감독

'예언자'는 오랜 만에 본 무게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전체적인 분위기나 범죄를 다루는 방식, 그 안에 캐릭터를 넣은 방식이 회색 빛이라 좋았죠. 특히 '과정'을 그린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되네요. 제목이 주는 강렬함, 그리고 그로 인해 유추할 수 있었던 몇 가지 것들도 이야기거리가 되었었고. 한 번쯤 다시 보아도 좋을 것 같네요.






인 디 에어 (Up in the Air)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

올 상반기 극장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취향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쉽게 권할 만한 좋은 작품을 꼽자면 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를 첫 번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노'를 통해 평범하지만 진리를 그렸던 그답게, '인 디 에어'에서는 좀 더 깊은 삶의 얘기를 한 남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해하기 쉽게 그려냅니다. 조지 클루니라는 배우의 역량이 백분 발휘된 작품이었죠.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마틴 스콜세지 감독

'셔터 아일랜드'는 올 상반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결말의 방향성의 여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해볼 것이 많은(그러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스콜세지가 만든 미장센에 감탄했는데, 올 상반기 호불호가 가장 크게 갈렸던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저의 견해는 물론 '호' 입니다. 






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
코엔 형제 감독

'파고'를 비롯한 코엔 형제의 예전 영화들도 물론 좋아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의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번 애프터 리딩'도 좋았었는데, 이런 취향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시리어스 맨'이었죠. 이 작품을 보면 볼 수록 '아, 진짜 코엔 형제는 천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이렇게 삶이라는 것에 대해 유머와 진지함의 완벽히 조화를 이뤄가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영화적 재미마저 주는 이들의 영화기술은, 날로 대단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많이 배웠던 작품이었어요.







공기인형 (空気人形)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실 이 리스트에 추가할까 말까 끝까지 고민했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공기인형'이었는데, 돌이켜봤을 때 다른 작품들에 비해 남는 잔상이나 깊이는 덜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계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서 (그리고 팬으로서) 또 한번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어서 최종적으로 리스트에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보다는 오히려 그 '공기'가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죠. 







킥 애스 (Kick-Ass)
매튜 본 감독

'힛 걸' 이라는 인기 캐릭터와 더불어 이를 연기한 클로 모렛츠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 '킥 애스'. '다크 나이트' 이후 힘을 잃었던 (아니 겁먹었던) 히어로물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기본적인 것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도 했죠. 웃어 넘길 수 없는 것과 그냥 웃어 넘겨도 괜찮은 것이 같은 것일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하하하
홍상수 감독

앞서 '시리어스 맨'을 이야기할 때 코엔 형제의 작품들에 대한 선호도와 비슷한데, 개인적으로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 역시 '잘알지도 못하면서'부터 훨씬 더 좋아진 경우에요. 사람들은 흔히 홍상수 영화를 이야기할 때 '먹물' '속물' 등의 표현을 쓰곤 하는데, 전 이것보다는 그 안에 홍상수 감독이 정말 얘기하려는 무엇, 그러니까 너무 순수해보여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의 것이 점점 확인된다는 점에서,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동의'의 수준으로 발전된 것 같네요. 홍상수 월드의 공감대가 점점 확산되고 있어요~







시 (Poetry)
이창동 감독

21세기에 영화를 통해 시를 쓸 수 있는 감독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적어도 국내에서 이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내공을 갖고 있는 감독은 이창동 감독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사실 그의 대표작들로 꼽히는 '박하사탕' '오아시스'등은 너무 자극적이고 과한 느낌이 있어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시'를 보고나서는 '아, 이 사람 정말 차원이 다른 시를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 작품 중 베스트는 단연 '시' 입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딘 드블루아, 크리스 샌더스 감독

드림웍스는 언제부턴가 '픽사'라는 라이벌 스튜디오의 그림자의 가려 이렇다할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었는데 (물론 그 가운데 '쿵푸팬더' 같은 작품은 제외해야겠죠), '드래곤 길들이기'는 작품 자체도 좋지만 드림웍스가 드디어 자신들만의 방향성을 잡았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이겠죠. 사실 이 이야기는 매우 교훈적이고 단순하고 익숙한 구조인데, 픽사가 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거든요. 다 아는 얘기로 울리고 감동 받게 하는것. 드림웍스도 자신들 나름대로 이런 것을 터득한 것이죠.







2010년 하반기에도 좋은 영화 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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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온 와이어 (Man On Wire, 2008)
한 편의 시와 같은 찰나의 여정


단연코 이 영화 <맨 온 와이어>는 저 포스터 한 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형식이 다큐멘터리인지, 저것이 CG를 통해 만들어진 장면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그냥 저 이미지는 너무도 아름다웠었다. 사실 <맨 온 와이어>는 2009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비롯해 많은 영화제에서 많은 상들을 수상하여 더 많은 관객들에게 알려진 작품인데, 이런 많은 수상 수식어로는 다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맨 온 와이어>의 이야기는 실화여서 감동적이었고, 그 어느 작품보다 '극적인' 다큐멘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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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곡예사인 필리페 페티 (Philippe Petit)가 1976년 8월 7일,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쌍뚱이 빌딩 사이를 외줄로 연결하여 그 위에서 펼친 퍼포먼스와 이 퍼포먼스가 실행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들을 담은 실화다. 일반적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느끼는 (그러니까 실화라서 더욱 감동을 느끼는) 감동과 이 작품이 실화라서 주는 감동의 종류는 분명 조금 다르다.

일단 <맨 온 와이어>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실화를 바탕으로 인터뷰와 재연 장면, 실제 촬영된 장면들로 이뤄진 이 작품이 몹시도 극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찌보면 이 작품은 좀 더 본격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 특징적인 점이라면 연기자들의 재연으로 구성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적절한 어둠과 그림자를 통해 이 부분을 실제와 혼동하도록 자연스럽게 배치한 점에서 연출의 재치가 느껴졌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이 '재연'이다 라는 점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한데, 이 재연부분의 극적인 요소가 실화라는 다큐적인 부분의 감성을 해치기는 커녕 돕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이것이 마치 거대한 극영화가 아닐까 문득문득 생각하게 될 정도로 (일종의 <트루먼 쇼>처럼), 영화의 주요 사건이 되는 쌍둥이 빌딩 퍼포먼스를 앞둔 시점 뿐만 아니라, 그와 그의 동료들이 처음 만나 뜻을 모으던 때의 이야기를 비롯해, 이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서사할 수 있을 정도의 영상 자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 영상들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자료가 되는데, 이 부분이 이 작품을 더욱 극적인 영화로 느껴지게 했다 (아련한 흑백 필름의 질감은 흡사 안톤 코르빈의 <컨트롤>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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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곡예의 주인공 필리페 페티일 것이다. 그가 너무도 극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것 때문이 아니라, 곡예 만큼이나 이야기 꾼으로서의 재능이 충만한 그 때문이었다. <맨 온 와이어>에 삽입된 그의 인터뷰를 보면 '과연 저렇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외줄 위에서 오랫동안 외로움을 홀로 견뎠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물론 이 부분은 영화의 후반부를 보며 달리 깨달을 수 있었는데, 줄 위의 그에게 '외로움'은 없었다). 손짓, 발짓, 몸짓을 써가며 자신의 무용담을 보기 좋게 늘어놓는 그의 리드에 따라 재연 장면들은 줄을 서듯 따라온다. 너무 열정적으로 스크린 뒤의 관객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필리페의 눈빛에서는, 단순한 무용담이 아니라 내가 느낀 특별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게 해주고 싶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그의 열띤 화법은 적어도 한 명의 관객에게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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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웠던 또 다른 지점은, 대부분 쌍둥이 빌딩을 건넌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다면 그 사건 자체에 집중할 수 밖에는 없을텐데, 이 영화는 여기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핏보면 우리가 (어쩌면) 쉽게 접하는 단 한 장면(빌딩 사이를 건너는)이 사실은 많은 과정들을 거쳐 이뤄낸 산물이다 라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듯도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과정에는 같은 뜻으로 모인 젊은이들 사이의 갈등과 성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반대로 이 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그러니까 극적으로 묘사하려 했다면 영화는 좀 더 일반적인 의미의 극적요소가 가미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감독인 제임스 마쉬는 이런 우를 범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설명하되 어느 한 순간 아무렇지 않게 무심한 듯 빠져나오면서 이야기의 결말을 더 묘하게 마무리 짓고 있다.

사실 한참 이야기를 잘 들어오던 청자의 입장에서 궁금해지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순수한 이상만을 꿈꾸며 함께 달려왔던 젊은이들이 목표를 이루고나서는 왜 그렇게 산화되듯 쉽게 사그라든 것인지, 연인 사이였던 필리페와 그녀의 이별은 더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영화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다는 말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인데, 어차피 안알려줄 것이었다면 없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이들의 이런 갈등 요소를 언급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영화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영화의 화법은 잘 들여다보면 필리페와 그의 친구들이 갔던 길과도 많이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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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우여곡절을 지나 필리페가 드디어 쌍둥이 빌딩 사이를 외줄을 타고 건너던 순간의 장면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니 황홀했다. 진부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시간이 멈춘듯 한 경험을 이 장면을 통해 할 수 있었고, 그 어느 장면보다 평화로워 보였다. 이 표현이 100% 맞거나 아주 틀린 표현이 동시에 될지도 모르겠지만, <맨 온 와이어>라는 작품은 마치 이 한 장면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랄까, 너무도 위험천만한 순간이지만 조금의 불안감이나 위험함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이었으며, 곡예라는 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감성적인 순간이었다.

빌딩 사이을 위태롭게 건너는 장면은 스포츠적인 도전으로 그려질 수도 있겠지만, <맨 온 와이어>는 도전인 동시에 도전이 아닌 것으로 그려냈다. 도전이라는 것은 목표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필리페의 도전에는 목표(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 사이를 건너는 것)는 있지만, 의도는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역시 '왜?'라는 부분이다.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외줄타기를 한거죠?'라는 질문에 필리페는 아무 이유없다고 답한다. 사실 이 장면에서 소름은 더 돋았다. 많은 예술가들이 각자의 의도와 메시지를 전하려 예술 작품을 만들지만, 필리페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예술'이라는 본연의 가치에 가장 근접해 있으면서도,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한 곳이 단숨에 탁 트인듯한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었다. 무언가 심오한 메시지를 들려줄 줄 알았던 그에게서 이런 답변이 돌아왔을 때 불현듯 나를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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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스릴러 거장의 작품을 보는 듯한 범죄영화적 분위기를 이끄는 연출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또 다른 요소는 마이클 니먼이 작곡한 영화 음악이다. 이 영화를 다큐이면서도 극영화로, 극영화이면서도 다큐멘터리로 만든 데에는 마이클 니먼의 음악이 크게 작용했다.

맨 처음 이야기했듯이 <맨 온 와이어>는 압도적인 포스터에 끌렸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더 압도적인 찰나와 예술적 가치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1. 이건 제가 영화에 감동받아 있을 때 영화의 삽입된 클래식을 인용하여 만든 동영상이에요 (직접 촬영~)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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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ll to Wall. 영화사 진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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