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Sherlock)
우아한 21세기형 셜록
오늘 소개할 셜록 홈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가 셜록 홈즈와 왓슨으로 분한 영화가 아닌, BBC에서 방영한 드라마(TV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셜록'이다. 아서 코난 도일의 유명한 추리소설 '셜록 홈즈'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셜록 홈즈'는 지금까지 영화와 드라마, 만화 (개가 주인공인) 등 다양한 버전과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었는데, 그 중 거의 대부분은 빅토리아 시대에 머물러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BBC가 제작하고 '닥터 후'의 작가로 유명한 스티븐 모팻과 마크 게티스가 각본과 제작을 맡은 '셜록'이 기존의 '셜록 홈즈'와 가장 다른 점이라면 역시 '현대의' '모던한' '21세기형' 셜록 홈즈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여러 고전들이 현대에 와서 재해석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 중 하나가 '현대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현대화 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면 단순히 활동 배경을 현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현대에 맞게 최적화했느냐라고 봤을 때 '셜록'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현대화를 이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현대화된 '셜록 홈즈'를 만들면 재미있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간단한 아이디어로 부터 시작되었다. 만약 셜록이 빅토리아 시대가 아닌 현재의 런던을 누비고 다닌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21세기의 왓슨이라면 일기 대신 블로깅을 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과 흥미에 기반하여 논리적으로도 자연스러운 추론이 가능한 그림을 그려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고전을 현대화 했지만 마치 고전 속 캐릭터가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 '셜록'은 '아주 있을 법한'을 넘어서서 이미 이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아니다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바로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될 정도의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이건 말로하기는 간단하지만 고전을 현대화 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인 동시에, '셜록'이 가장 잘 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가이 리치의 영화 '셜록 홈즈'에서 홈즈 특유의 능력을 영상화 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액션(주로 결투)에 있어서 미리 리허설 하듯 정확하게 계산한 뒤 슬로우 슬로우 퀵퀵 스피드를 조절해가며 표현한 경우였다면, '셜록'은 논리의 추론 과정에 있어서 단서가 되는 것들을 화면 상에 텍스트로 표현 하는 등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니어처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거나 차갑지만 상당히 감각적인 색감과 앵글로 이뤄진 영상미를 바탕으로, 그 위에 텍스트가 뿌려지는 방식은 자칫 너무 앞서가려는 이질감을 줄 수 있는데, '셜록'의 그것은 세련됬다 라는 느낌을 누구나 받게 된다. 그러니까 그냥 현대화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세련됨까지 느껴지도록 각본이며 구성이며 배경, 설정 등을 잘 고안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21세기의 셜록이라면 편지 대신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했겠지'라는 가정하에 방식만을 후자의 것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야기를 더 깊게 전개시킨다는 점이 '셜록'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하겠다.
(현재의 런던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런던의 모습 가운데 고풍스러움을 맛볼 수 있는 부분들도 함께 녹여내고 있어, 현대화의 이질감을 덜함은 물론 굉장한 리얼리티를 선사하고 있다)
여러가지 현재에 걸맞게 특화된 부분들이 물론 '셜록'을 결정 짓는 가장 대표적인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근본에는 역시 '셜록 홈즈' 특유의 추리하는 맛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야 워낙에 다양한 드라마들에서 완성도 높은 각본들을 만나볼 수 있는 터라 시청자의 눈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셜록'은 여기에 원작의 팬들까지 더해져 커다란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상당히 완성도 높은 각본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셜록'처럼 추리 그 자체가 극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미치는 작품의 경우, 각본에서 그 작품 자체의 평가가 갈린다고 까지 말할 수 있을 텐데, '셜록'의 각본은 시청자가 쉽게 미리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극 중 셜록 홈즈처럼 일반인들을 훨씬 뛰어넘는 추리력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경우에는, 결국 각본이 시청자를 뛰어넘거나 속이는 것이 가능해야만 된다는 얘기라고 봤을 때 이 작품은 이 미션을 훌륭하게 완료해 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그 것이 '셜록' 만의 재미이기도 하고.
이 작품의 매력 가운데 주인공 '셜록'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에 대한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톤먼트'를 보았음에도 '엇? 그가 어떤 역할로 출연했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셜록과는 잘 매치가 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셜록이라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이전의 필모그라피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앞서서 이야기 한 것처럼 이 작품은 우아함을 가득 담고 있는데, 거기에는 베네딕트의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큰 키와 클래식한 마스크, 그리고 무언가 이상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의상까지. 여기에 마치 알란 릭만을 연상시키는 특별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셜록'이라는 자신 만의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그 목소리는 이 작품의 전체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까지 생각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준다. '셜록'으로 탄력 받아 스필버그의 '워 호스 (War Horse, 2011)'에도 출연했고 앞으로 제작될 스타트렉 시퀄과 호빗 후속편에도 캐스팅 된 상태라고 하니 앞으로는 스크린에서 더 자주 보게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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