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s Paris, 2011)

우디 앨런의 엑설런트 어드벤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는 감독 중 한 명인 우디 앨런의 신작이었기에 심히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나온 오웬 윌슨의 영화 포스터만 보고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포스터만 보고는 워낙에 도시를 중심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우디 앨런이라 파리에 대해 흠뻑빠진 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소소한 작품이 아닐까라고만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미 '스쿠프 (Scoop, 2006)' 같은 작품을 통해 재치를 보여주었었던 그는, '사랑해, 파리' 연작이 아닐까 싶었던 영화를 또 한 번 우디 앨런다운 작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그리고 자신감있게 만들어냈다. 보는 내내 큭큭 거리고 흐뭇하게도 되었던 '미드나잇 인 파리'는 마치 우디 앨런이 쓴 '엑설런트 어드벤처' 같았다. 키에누 리브스가 출연했던 바로 그 '엑설런트 어드벤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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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는 좁게 보자면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넓게 보자면 개개인의 느끼는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가장 앞선 생각은 오웬 윌슨이 연기한 주인공 '길'이 너무도 부러웠다는 점이다. 나도 종종 그런 꿈을, 내가 평소 동경하는 인물들과 친구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꿈을 꾸곤 하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꿈에서 깨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평소 존경하던 작가, 예술가 들을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게 되는 '길'의 모습에 대리 만족을 해볼 수 있었다.


극중 '길'은 소설을 한 편 쓰고 있는데, 주변 얘기를 빌리자면 돈 되는 것과는 무관한 그리고 대중들의 취향과도 좀 멀어져 있는 자신만의 세계에 근거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현실에서 이렇게 냉대를 당하던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로 부터 영감을 받는 것은 물론, 좋은 반응을 듣게 된다. 앞서 이 영화가 좁게는 작가에 대한 넓게는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작가로서 '길'이 갖고 있는 평소 생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길'이 사건을 겪고 변하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래 갖고 있었던 자신의 생각을 의심없이 믿게 되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 얘기는 곧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얘기가 된다. 작가인 '길'의 이야기는 감독인 우디 앨런과 겹쳐질 수 밖에는 없는데, 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구성 자체에서도 바로 그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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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 많은 예술가들의 면면은 매우 흥미롭지만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사실상 100% 소화하기는 어려운 구성을 취하고 있다. 물론 극 중 등장하는 헤밍웨이, 피카소, 스콧 피트제럴드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분명 유명한 예술가로서 등장하는 것 같기는 한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고, 영화는 기존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던 영화들과는 달리 누구나 다 알만한 유명인만을 등장시키지도, 이들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반대로 얘기해서 만약 영화가 이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면 그건 정말 아니었을 것이다. 이건 '길'의 이야기고 '길'에게 이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디 앨런은 바로 자신이 동경하는 이들에 대해 아는 만큼의 이야기를 자신있게 풀어놓았다. 대사 하나 하나에도 깨알 같은 사전 지식을 기반으로 한 조크들을 배치했는데, 쉽게 얘기해서 아는 사람만 웃어도 좋다는 식이었다. 물론 우디 앨런 쯤 되니 이런 자신감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극 중 '길'이 깨달은 것처럼 개인적으로도 글을 쓸 때 이러한 자신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글을 쓸 때 무엇인가를 100% 설명하려다보면 오히려 내가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차라리 누구나에게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그 정수를 깨닫고 있는 이들을 만족시키는 글이 결국은 더 많은 '누구나'를 끌어 안을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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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결국 누구나 동경하는 바가 다르고, 호불호가 갈리고, 만족도가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것에 근거해 지금(현실)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오히려 과감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위해 그 세계에 남기로 한 아드리아나(마리온 꼬띨라르)의 이야기가 '길'의 선택 만큼이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런 저런 현실적인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자신이 좋아하고 믿는 것들에 대해 100%를 던질 수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은 항상 겪고, 최근 더 절실하게 겪고 있는 문제인데 영화 속 '길'과 아드리아나의 이야기가 전한 작지만 임팩트 있는 깨달음은, 파리의 그 아름다운 풍경들 보다도 더 깊게 남았다. 뭐 그래도 파리는 꼭 가보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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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에도 있지만 극 중 등장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사전 지식이 더 있었더라면 영화를 좀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물론 이것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말이죠;;


2.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역시 배우들 보는 재미죠. 너무 많은 배우들이 등장해서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톰 히들스톤, 마이클 쉰은 물론이요 에드리언 브로디와 앨리슨 필의 출연도 몹시 반가웠어요. 아,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4'에 나왔던 그 바바리 언니 레아 세이두를 보게 된 것도 큰 반가움이었구요.


3. 아직 파리는 못 가봤지만 이제 가게 된다면 꼭 들러야할 명소가 한 군데 더 생겼네요. 12시되면 이제 그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 제법 되지 않을까 싶네요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Gravier Productions 에 있습니다.






전운이 감돌던 1939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유명한 천재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은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폴란드의 국보급 천재 음악가다.
스필만은 여느 때와 같이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는데, 바로 그 순간 방송국이 폭격을 당하고 스필만은 자신의 연주를 완전히 끝내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나치는 폴란드 안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유대계인 스필만의 가족들은 모두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강제로 실린다. 피아니스트인 자신을 알아보는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스필만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나치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게 되는데....



[피아니스트]는 유대계 폴란드인이자 역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블라디슬로프 스필만(Wladyslaw Szpilman)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중요 표적이 되었던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 거주지역인 게토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주인공인 스필만이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러한 배경의 이야기를 로만 폴란스키만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배경에 있다.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는 그 역시 유태인이며, 스필만과 같이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하였으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머니를 잃기도 하였다. 언젠가는 꼭 이 전쟁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폴란스키는, 스필만의 저서를 읽는 순간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물론 폴란스키 감독은 스필만처럼 처절한 생존의 상황에 내버려 지지는 않았었지만, 적어도 스필만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가 이 전쟁을 영화화 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추억하고 되새긴다기보다는,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전쟁이라는 것의 무의미함과 참혹성을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이었을 것이다. 타성에 젖을 수도 있었던 폴란스키는, 그러나 상황을 냉정하고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데 성공하였고, 그의 여러 영화 가운데서도 스스로에게나 관객들에게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가 가장 하려는 이야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영화는 종종 같은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와 비교가 되곤 하는데, 이 같은 시각이 [쉰들러 리스트]와 가장 구별되는 점이다. 스필버그는 그의 영화 답지 않게 어두운 분위기와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쉰들러 리스트]는 휴먼 드라마에 가까웠고, [피아니스트]는 오히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군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들이 기분이 좋지 않다거나 심심풀이로 유태인들에 머리에 총을 겨누었고,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없이 그저 참혹하게 처형당하고 말았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느꼈던 폴란스키의 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독일 군 역할을 맡아 출연한 배우들은 촬영을 하면서도 분노가 일정도로 나쁜 놈처럼 보였지만, 카메라가 멈추었을 때에는 그저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로 돌아온 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처참한 전쟁의 가운데에는 착한 독일인들도 있었고, 반대로 폴란드인들 중에는 악한 폴란드인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절대 악이란 ‘전쟁’ 자체였으며, 절대 선으로 하여금 악으로의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 전쟁이란 것이다. 결국 모두 패배자가 되고 마는 것이 전쟁이고, 폐허와 악몽만이 남는 것이 전쟁일 것이다. 다음에 사실은 이러한 전쟁의 사실적인 내용을 보탬 없이 그대로 들려준다.



바르샤바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The Warsaw Ghetto).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독일 나치의 첫 번째 목표지역 중 하나는 바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였다. 바르샤바는 독일의 민족적, 경제적, 기타 다양한 이유로 시작한 전쟁에 있어 중요한 요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바르샤바에 집중적인 공중폭격을 가한 뒤 1939년 9월 16일, 전면적으로 이 도시를 침공했다. 스테판 스타진스키 시장과 줄리앙 롬멜과 같은 인사들을 필두로 용감한 저항이 시도되었으나 독일은 그들의 전력과 수력 공급 로를 차단했다. 결국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받는 대가로 저항을 포기해야만 했다. 독일군은 10월 1일 도시를 완전 점령했다. 12일에 히틀러 정권은 철조망으로 403 헥타르의 게토 지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16일, 독일군은 도시 인구의 30%가까이 되는 36만 명의 유대인들을 이 지역에 강제 거주시키기에 이른다. 점차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보내지고 곧 50만 명이 넘게 된다. 10만 명의 유대인은 이곳에서 기아와 전염병으로 사망하였다.



마침내 도시의 모든 유대인은 이 강제거주지로 몰린다. 그들은 파란별이 그려진 흰색완장을 반드시 착용해야했다. 또한 노역을 당해야했고 식량은 아주 조금씩 배급되었다. 나치군은 자기 기분에 따라 유대인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처럼 공포에 휩싸인 환경 속에서도 강제거주지역, 즉 게토지역 주민들은 그들의 삶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게토 내에서 그들은 학교를 다녔고 정치적 활동도 조심스레 진행되었다. 1942년 7월, 8월에 거대한 이송이 시작되었다. 31만 명에 가까운 게토의 유대인들은 트럭 혹은 배로 이동, 대부분이 트레블링카 실험 캠프로 옮겨졌다. 1943년 3월, 히틀러는 남아있는 유대인 처형을 위해 나치 군을 보냈다. 같은 해 4월, 나치의 학살계획이 확실해지면서 처형당하는 자들은 급속히 늘어났다. 게토 지역은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사회주의자이자 시오니스트 운동의 지도자 모데하이 아닐레빅이 이끈 폭동에 4만 명의 유대인이 참가했다. 그들 중 무장된 이들은 단지 200명뿐이었다. 이 처참한 전투는 계속되었다. 5월 16일까지 거의 한달 동안 주민들은 탱크와 화력을 앞세운 독일 군에 강력하게 대항하였다. 이 싸움은 폴란드 저항군이나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군의 도움 없이 진행되었다. 이 전투에서 7천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고 3만 명의 생존자는 강제 이송되었다. 독일이 바르샤바를 포기한 1945년 1월, 이 도시에 살아남은 유대인은 불과 20여 명뿐이었다. (보도자료)



[피아니스트]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여과 없이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희망과 생존에 관한 것이다. 실제 스필만은 영화 속처럼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과 배고픔, 추위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내 살아남았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일 것이다. 폴란스키 역시 스필만이 역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돌아온 스필만이 연주회를 여는 장면으로도 알 수 있다.

또한 스필만의 생존의 이유가 그가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이었다는 주장에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연주로 인해 독일 군 장교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Wilm Hosenfeld‘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독일 군 장교는, 폐인에 모습을 하고 있던 스필만 으로부터 연주를 들을 후에 독일 군과 유태인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전쟁을 초월한 인류애적인 입장에 서서 그를 돕게 된다. 사실 많은 헐리우드의 영화들이 극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만 있으면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었다. [피아니스트]역시 따지고 보자면, 그러한 입장에 서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 둘 간의 분명한 차이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스필만의 연주가 사치스럽다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러한 모든 생각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동의하게 때문일 것이다.



일단 타이틀은 3장의 디스크로 이루어져 있다. 본 편을 담은 첫 번째 디스크와 서플먼트 만을 수록한 두 번째 디스크, 그리고 초판 한정으로만 수록되어 있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디스크가 세 번째 디스크로 수록되어 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가운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사실적인 배경 묘사에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알 수 있는데, 타이틀의 화질은 그때의 전장의 비극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고 있는데, 총소리나 폭발음에 포커스를 맞춘 사운드는 아니기에 이러한 소리들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레퍼런스 급의 사운드를 지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폐허가 된 건물 안에서 스필만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반드시 볼륨을 키우고 감상해 볼만한 장면이라 하겠다. 그리고 영어 더빙 외에 프랑스어 더빙도 지원하고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갖가지 서플먼트가 담겨있는데, 무엇보다도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과 감독인 폴란스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A Story of Survivor'가 눈길을 끈다. 다른 타이틀의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들보다는, 좀더 숙연하고 조심스레 접근한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다 하지 못했던 폴란스키의 얘기와 그가 표현하려 했던 의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여기에는 주연 배우인 애드리언 브로디와 독일 군 장교역할을 맡았던 토마스 크래츠만의 인터뷰도 들을 수 있다. 이외에 각종 예고편들과 골든 글로브와 칸 영화제 스케치, 포스터 모음, 포토 갤러리, 보너스 오디오 트랙, 스필만을 비롯해 스텝들과 배우들의 소개 또한 담고 있다.

2003.06.26
글 / 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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