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파트 1 (寄生獣, 2014)

원작 팬들을 위한 실사화



최근 매주 금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기생수' 때문이다. IPTV를 통해 매주 금요일 일본과 하루 차이로 애니메이션 '기생수'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와아키 히토시의 원작 만화는 읽지 못했지만 현재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을 워낙 재미있게 보고 있는 터라 실사화가 된다고 했을 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인데, 대부분 그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좋지 않았다는 건 원작 팬으로서의 애정이 크면 클 수록 실망감 역시 컸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걱정했던 '바람의 검심'의 실사화가 놀랍게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여주면서 다른 실사 화 영화들에 대해서도 '혹시....'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는데, 그러던 차에 개봉한 작품이 바로 이 영화 '기생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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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는 점에서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개인적으로는 코믹스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과의 비교만이 가능) '기생수 파트 1'은 만족할 만한 퀄리티, 영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영상을 특별히 강조한 이유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들의 실망 포인트가 바로 직접적인 표현 부분에 있기 때문인데, 특히 '기생수'처럼 CG가 동원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의 경우 조악한 CG의 수준과 활용 방법 때문에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닌 경우가 허다했었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기생수 파트 1'은 이질감 없이 실사화에 적응한 느낌이다. 기생 생물들의 표현도 우스꽝스럽지 않고 공포스러움까지 전달할 정도로 실사에 적응한 모습이며, '오른쪽이'의 완성도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일단 몰입 할 수 있는 영상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이번 실사화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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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화 과정에서 과감하게 빠져버린 부분들로 인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신이치의 아버지를 비롯해 몇몇 중요한 캐릭터는 영화화 과정에서 빠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요한 감정선들과 내러티브 역시 함께 제외되어 버렸다. 사실 애니메이션만 본 입장에서도 '기생수'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테마들과 관계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는데, 2시간 남짓한 러닝 타임 내에 한정지어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긴 호흡으로 즐겨야 했던 요소들은 대부분 축소되었거나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한 편으론 TV시리즈로 가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효과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원작을 접한 이들이라면 (아쉽기는 하지만) 전개를 따라가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반면, 영화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는 관객 입장에서는 주인공 신이치의 감정선은 물론, 타미야 료코를 비롯한 기생 생물들의 심리를 읽는 데도 턱 없이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다. 즉, 무언가 괴기스럽고 흥미롭기는 하지만, '기생수' 작품 본연이 갖고 있는 깊이까지 느끼기에 실사판 '기생수 파트 1'은 부족함이 많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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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실사화의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역시 이런 아쉬운 점을 몰랐을리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일본이라는 시장은 워낙 원작 팬들의 규모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화 과정에서 과감하게 처음 보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를 배제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즉, 영화화 된 '기생수 파트 1'은 처음 부터 모든 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원작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의 팬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영화화로서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킬 수도 있지만 '극장판'이라는 단어 그대로 자신이 좋아했던 작품을 실사 버전으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측면으로 보면 '기생수 파트 1'은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일본 영화 특유의 과장하는 느낌이 강해요. 애니를 볼 땐 그 정도 위기라고는 못 느꼈는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구종말에 가까운 공포가 느껴지거든요 (느껴야 한다고 영화가 조장하거든요 ㅎ)


2. 사토미가 상당히 보이시해서 애니메이션을 본 입장에서는 잘 적응이...


3. 제목이 파트 1인것처럼 당연히 후속편이 존재합니다. 일본에서는 4월 개봉 예정으로 국내에서도 아마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파트 2에서 본격적인 실사화의 장점이 나올 듯.


4.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나고 파트 2에 대한 짧은 영상이 나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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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Kingsman : The Secret Service, 2014)

매튜 본의 온고지신 스파이 영화



매튜 본이 콜린 퍼스와 액션 영화를 찍었다고해서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처음엔 그냥 액션 영화인줄로만 알았기 때문인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건 정통 스파이물의 구조 안에 있는 영화이자 구체적으로는 007 시리즈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오마주 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스파이 영화치고 007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가 없는 작품이 드물고, 이 작품의 전체 방식 역시 스파이물과 매튜 본이 잘 하는 액션을 더 가미한 작품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킹스맨'을 단순히 이 정도로 표현하기엔 턱 없이 부족할 듯 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매튜 본의 전작 '킥 애스'도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도 참 좋아하지만, 이들 작품 가운데 이제부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킹스맨'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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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킹스맨'은 좀 묘한 구석이 있다. 전형적인 스파이 영화의 구조 안에 있지만 그 안에서 최신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오래 된 007 시리지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만 비틀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까 007 시리즈의 오랜 팬들에게는 향수를, 스파이 하면 제이슨 본을 더 먼저 떠올리는 요즘 관객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극 중 JB라는 이니셜을 두고 제임스 본드와 제이슨 본, 잭 바우어까지 언급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모두 인정하는 이 영화의 방식은,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캐릭터의 구성으로 부터 살펴볼 수 있다. 콜린 퍼스가 연기한 해리는 전통적인 007 영화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고풍스럽고 세련되었으며 수트가 누구보다 잘 어울려 근사하고 무엇보다 매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캐릭터다. 이에 반해 태런 에거튼이 연기한 에거시는 힙합 스타일을 즐겨 입고 출신은 보잘 것 없으며, 삶은 퍽퍽하고 비행 청소년에 가깝지만 야마카시를 연상시킬 만한 신체적인 우수함을 타고 난 캐릭터다. 이 둘 사이의 공통점 아니 전형적인 면에서 벗어나는 장점들이 있다면, 해리는 흡사 제이슨 본과 같은 완벽한 격투 능력을 지녔으며, 에거시는 결과적으로 해리를 통해 매너를 습득하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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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튜 본이 스파이 영화라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은 한 쪽에 치우쳐 있지 않다. 007 시리즈에 대한 존경과 명예는 인정하지만 다른 시대에 맞춰 바뀌어야만 할 것들에 대한 한계도 분명 인지하고 있으며 (이는 극 중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캐릭터의 한계로 빗대어 볼 수 있겠다), 반대로 최근의 단순한 스파이 영화들에는 없는 품격과 매너에 대해서도 한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아크로바틱한 액션의 가미에 대해서는 적극 반영을 주장하고 있다. 사자성어로 이야기하자면 온고지신 (溫故之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 모두를 간절히 원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튜 본의 이 방식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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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에는 이 외에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이나 대중들에 대한 풍자 등으로 볼 수 있는 설정 등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모두는 무겁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지나가도 상관없고 안다한 들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리듬감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심각한 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 만은 않은, 말은 쉽지만 실제 구현하기는 어려운 중도를 잘 표현해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실 '킹스맨'이 매력적인 영화라는 인상을 주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콜린 퍼스라는 배우를 활용한 방법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존에도 멋지게 수트를 차려입은 역할은 여러 번 했었지만, 이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콜린 퍼스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은 작품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은 연기력의 측면이 아니라 분명 그 '이미지'에 관한 것일 터. 수트를 평소 즐겨 입지 않은 남자라 하더라도 이 영화를 보면 당장 양복점으로 달려가 맞춤 양복 한 벌 맞추고 싶은 욕망이 들 정도로, 완벽한 핏의 수트 차림으로 (여기엔 안경과 우산을 비롯한 소품들도 포함된다) 벌이는 액션과 액션이 아닌 장면들이 주는 품격은, 왜 이 영화의 주인공이 콜린 퍼스여야 했는 지를 설득 없이 이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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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은 무엇보다 최근 본 영화들 가운데서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장면과 이미지가 주는 원초적인 쾌감과 일부 장면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의외의 쾌감과 속시원함이 금새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1. 콜린 퍼스와 마크 스트롱은 또 다른 스파이 영화였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도 아주 각별한(?) 사이였는데, 이렇게 또 다른 스파이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흥미롭더군요 ㅎ


2. 여기 또 다른 흥미로운 커플이 있습니다. 루크 스카이워커와 마스터 윈두 ㅋ


3. 시리즈 물이 가능한 구조에요. 후속편이 꼭 나왔으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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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패러독스 (Predestination, 2014)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타임패러독스 (Predestination, 2014)'를 보았다. 일단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보시다시피 원제는 'Predestination' 즉 풀이하자면 '예정'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타임 패러독스'라는 또 다른 영문 제목이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너무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소개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움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제목과 더불어 국내에 홍보될 때 다른 시간 여행 영화들과 맞물려 여기에 포커스가 맞춰진 작품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기 때문인데, 물론 이 영화는 시간 여행에 관한 영화가 맞지만, 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이나 비중을 보면 그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이야기'가 있었기에, 너무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에만 집중하도록 만든 제목과 방식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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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본격적인 시간 여행에(만) 집중된 영화인줄로 알았으나 '타임패러독스'는 '왜?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꺼내들었나'에 대한 물음에 더 충실하고자 하는 영화였다. 마치 슈퍼 히어로 영화들에서 주인공이 히어로로 각성하기까지 1시간 이상 러닝 타임을 할애하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꺼내 드는 데에 1시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한다. 감독이 얼마나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지워도 그리 나쁘지 않을 만큼 (물론 그걸 지운다면 결코 완성될 수 없기는 하지만) 극 중 사라 스눅이 연기한 인물의 이야기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 없이도 빠져들 만큼 흡입력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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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타임패러독스'가 담고 있는 이 소재에 대한 부분은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으나 (이 영화의 한계라기 보단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 자체의 한계 때문), 그래도 그 가운데서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관객이 놀랄 만한 반전 포인트를 뽑아 낸 건 분명 이 영화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흔히 시간 여행 영화라고 하면 그 논리에 집중하여 머리 싸움을 하는 영화거나 아니면 다양한 시간과 배경을 등장시키면서 화려한 볼거리로 유혹하거나, 그 가운데 감동적인 스토리를 이끌어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이런 요소들 보다는 상황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면서 그 안에 담긴 한 사람의 이야기에만 집중한 것이 다른 시간 여행 영화들과는 차별되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인지 아니면 에단 호크가 주연을 맡아서 인지, 직접적인 공통점이 없음에도 왠지 모르게 이 영화의 정서는 '가타카'를 떠올리게 했다. 차갑고 쓸쓸하고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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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패러독스'는 기대 했던 시간 여행 영화는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특히 여주인공을 연기한 사라 스눅이라는 배우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작품이기도 했고.



1. 영화를 보는 내내 혼자 생각한 거지만, 여주인공을 연기한 사라 스눅이라는 배우를 보면서 계속 데인 드한이 떠올랐어요. 묘하게 닮은 마스크 때문인가...


2. 에단 호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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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Deux jours, une nuit, Two Days, One Night, 2014)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다르덴 형제의 신작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리고 명확하다. 직장으로의 복직을 앞둔 산드라 (마리옹 꼬띠아르)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회사에서 자신의 복귀와 보너스를 두고 투표가 진행되었고 동료들이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 하지만 산드라는 반장의 강요에 의해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를 받고는 사장에게 재투표에 대한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이틀 동안 16명의 동료들을 일일히 찾아가 보너스 대신 자신에게 투표해 줄 것을 부탁한다.

줄거리는 명확하지만 이 이틀 간의 시간 속에 담겨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명확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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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가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도 부탁도 아닌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최근 본 영화 속 장면들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장면이었다. 여기서의 수긍이란 영화의 방향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산드라의 입장은 물론, 그녀가 만나는 회사의 직원들의 입장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는 없는 명확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르덴 형제는 우울증을 겪고 있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일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역시나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산드라의 입장과 1천 유로라는 보너스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직원들의 입장을 모두 정당하게 대변한다. 이런 이야기를 다룰 때 영화가 흔히 '영화적'이게 되는 지점은, 주인공에게만 타당성을 부여해서 반대에 서는 이들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을 잃게 되는 부분인데, '내일을 위한 시간'에는 이런 양분론이 없다. 보너스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녀의 복귀를 찬성하는 이들 가운데도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고, 반대로 보너스를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16명의 상황은 모두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어느 한 사람의 입장도 이기적이라고 쉽게 지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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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와 직원들의 대화 가운데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나에게 투표해줄 수 있어요?'라고 묻는 산드라에게 직원들이 하나 같이 처음 묻는 질문이 바로 '누가 찬성하기로 했어요?' '몇 명이나 찬성표를 던진데요?'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각자의 입장이라는 점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직원들 대부분이 양심과의 갈등을 겪는 가운데 다른 직원들, 즉 사회라는 구조의 보이지 않는 구속 혹은 힘(꼭 나쁜 의미만은 아닌)을 크게 염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문제가 명확한 정답이 없어 보인다는 바탕 아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크게 모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결정을 재고하려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한 편으론 이 같은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을 보며 '어쩌면 저렇게들 다 이기적이지'라고 쉽게 되 물을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 속에는 그러한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으로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직원들을 만나 설득하기를 반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남편의 이러한 성향이 나와는 가장 거리가 있는 부분이라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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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면서 평소 생각하던 가치관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는 '착한 것은 좋지만, 착하지 않은 것이 곧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평소 갖고 있었다.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 보자면, 산드라의 복직을 찬성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복직 대신에 보너스를 택한 것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극 중 산드라의 대사를 통해 이 부분은 여러 번 설명되는데, 이 상황은 산드라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회사가 선택한 것도 아닌, 그냥 상황이 벌어진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해도 누구 하나를 탓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는 영화다. 당신은 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보너스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산드라가 아니더라도 곧 누가 실직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저 같이 일하는 직원 이상의 관계도 아닌 한 사람을 위해 내 가정의 경제적 보탬과 직장의 안정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난 다르덴 형제가 이 문제를 단순히 '용기'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문제를 용기에 관한 것으로 풀어냈다면 영화는 너무 흑백 논리에 가까운 단적인 영화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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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가 어떻게 마무리 될까도 궁금했었는데, 마지막 산드라가 남편에게 전화 통화로 이야기하는 말을 들어보니 다르덴 형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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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渇き, 2014)

이번에도 끝까지 간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작품 '갈증' 역시 기대하는 바가 분명했을 텐데, 그 가운데 한 가지는 호불호가 갈릴 지언정 항상 이야기를 어느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 짓지 않는 다는 점이다. 호불호가 갈린 다는 말처럼 그의 영화는 그 확실한 영상과 음악의 스타일 만큼이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과 전개의 속도에 있어서 극명한 호불호를 보여주는데, '갈증' 역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집대성 해놓은 것 같은 느낌(그것이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간에)이 들 정도로 폭발하는 에너지를 끝까지 밀어 붙이는 가운데, 마무리 역시 보통의 영화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을 택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제목은 '갈증'이다). 보는 내내 괴로움이 드는 가운데서도 이 영화는 끊임없이 나를 유혹하려든다. 바로 내 안에 악마성을 반드시 끄집어 내겠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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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간과 인물을 뒤 섞어가며 다층 구조로 각각의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점점 더 카나코(코마츠 나나)의 이야기로 집중한다. 일부러 못 알아차리게 하려거나 집중을 기울여 이전 시퀀스를 기억해야만 성립할 정도로 어려운 전개는 아니지만, 스타일리쉬한 음악과 영상의 빠른 전개가 더해져 전체적으로는 몹시 빠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영화가 관객과 하는 게임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은 선입견에 관한 것이겠다. 처음에는 극 중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일반적으로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후 영화가 점점 그 진짜 이야기를 드러낼 때에도 몇몇 관객들 가운데는 '아직도' 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영화도 아는 눈치라는게 후반부 이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 가운데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악마 혹은 악마성에 대한 인물들 간의 복잡 미묘한 게임들이 포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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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갈증'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게임은 엄청나게 소모적이며 괴로울 정도로 자극적이고, 서두에 밝혔다시피 결코 대충 끝나는 법이 없다. 이렇게 심화되는 이야기는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감독은 그 안에서도 치열하게 내면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려고 애쓴다. 겉으로만 보면 이 이야기는 가족, 학교, 사회, 야쿠자 등 다양한 관계와 환경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과 위기(혹은 외로움)에 대해 늘어 놓고 발전시키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늘어놓음의 이유는 다른 곳, 즉 내면의 죄의식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를 표현해 내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카나코의 아버지 역할인데, 이 말도 안되는 캐릭터가 끝까지 이 소용돌이의 가운데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내면의 죄의식과 이를 표현해 내는 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이 없었다면 '갈증'은 그저 현란하고 괴롭기만한 폭력적인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영화의 내면에 담겨 있는 죄의식 때문에 '갈증'은 한 번 더 생각해 볼만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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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이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멋진 캐스팅 가운데 가장 성공한 캐스팅을 하나만 꼽자면 역시 주인공 카나코 역할을 맡은 코마츠 나나의 캐스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녀의 연기력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 소녀의 마스크는 그 자체로 영화의 이미지가 되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이 작품도 꼭 국내에 블루레이로 출시되길!

2. 오다기리 조, 나카타니 미키, 츠마부키 사토시 등 익숙한 배우들을 만나는 반가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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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 : 블루레이 리뷰

작품에 걸맞는 컬렉션으로 탄생한 한정판​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 가운데 최근 몇 년 간 가장 꾸준한 완성도와 평단의 열렬한 지지, 더 나아가 조금씩 더 나아지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감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코엔 형제를 가장 첫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07 년 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시작으로, '번 애프터 리딩 (2008)', '시리어스 맨 (2009)', '더 브레이브 (2010)' 그리고 이 작품 '인사이드 르윈'에 이르기까지, 코엔 형제의 작품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미국 사회를 다루는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가 던질 수 있는 메시지의 한계를 조금씩 더 넓혀왔다 (혹자는 '번 애프터 리딩'이 이 리스트에서 빠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확히 이야기하자면 코엔 형제는 위에 언급한 작품들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이른바 '거장'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아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밥 딜런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음악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땐, 그들의 팬이자 포크 음악의 애호가로서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는 이미 여러분들이 확인했다시피 또 한 번 마법 같은 연출력으로, 최고의 음악 영화인 동시에 코엔 형제가 꾸준히 말하고자 하는 삶의 고통을 담아낸 수작으로서 기억될 작품을 만들어 냈다. 바로 '인사이드 르윈'이다.




'인사이드 르윈'은 데이브 반 롱크 (Dave Van Ronk)라는 실제 포크 뮤지션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는데, 데이브 반 롱크는 당대의 포크 뮤지션인 밥 딜런, 존 바에즈 등에게 영향을 끼친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그의 전기 영화로 보기는 어렵다. 코엔 형제는 데이브 반 롱크라는 포크 뮤지션의 이야기를 빌어, 자신들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시대의 공기와 우연의 연속을 통한 삶의 아이러니를 차분하게 그려낸다 (참고로 영화의 제목 'Inside Llewyn Davis'는 데이브 반 롱크의 1963년 앨범 'Inside Dave Van Ronk'에서 가져왔다). 




실 처음 코엔 형제가 음악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일반적인 음악 영화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상을 할 수 있었고, '인사이드 르윈'은 조금 다른 의미지만 실제로 그랬다. 포크 뮤지션인 르윈 데이비스 (오스카 아이삭)를 중심으로 영화는 전개되지만, 그의 음악적 커리어에 대한 성공과 실패에 주목하기 보다는 코엔 형제의 다른 영화들처럼, 주인공이 짧은 여정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개의 우연들과 그 우연들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 내는 전혀 다른 사건들에 대해 무덤덤 하게 그려낸다.

'시리어스 맨'이 나른함과 시니컬 함의 정서였다면 '인사이드 르윈'은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 혹은 꿈을 꾸는 듯 불투명하고 안개 속에 있는 듯 멜랑콜리한 정서를 통해 놀랍게도 영화가 끝나는 순간, 도대체 무슨 체험을 한 것인가 스스로를 몇 번이고 돌아보게 만든다.





인사이드 르윈 - THE BLU COLLECTION LIMITED EDITION




'인사이드 르윈'을 인상 깊게 본 순간 동시에 들었던 한 가지 걱정은, '과연 인사이드 르윈의 블루레이는 출시 될 것인가? 만약 출시된다면 패키지는 너무 소홀하게 나오지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인사이드 르윈'은 정말 그 해 최고의 영화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땐 외면 당할 소지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블루를 통해 출시된 블루레이는 한정판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소장 가치 높은 만족스러운 패키지로 출시되었다. 진심으로 다행이다.




단 이번 한정판 블루레이 패키지의 구성물을 나열해 보자면 40p 분량의 소책자와 오리지널 포스터 카드, 포토 카드 3종과 기타 피크 그리고 더 블루 콜렉션 한정 카드가 수록되었다. 넘버링 스티커 등 한정 판을 더욱 한정 판 답게 만드는 구성물을 통해 '컬렉션'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쓴 모습이다.






저 소책자의 경우 '고양이를 쫓는 이상한 모험'이라는 제목의 영화 리뷰 글과 '포크가 허락한 모든 것'이라는 제목으로 OST를 소개하는 글이 수록되었고, 여기에 감독과 배우들을 각각 소개하는 '피로한 인물의 창조자들' '오스카 아이삭,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수록되어 충분한 읽을 거리 또한 제공한다. 소책자에 수록된 모든 글은 영문으로도 제공된다.



풀 슬립 아웃케이스는 크래프트 재질로 제작되었으며 최근 풀 슬립 아웃케이스의 경향이 그러하듯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내부까지 일부 디자인이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스는 스카나보 투명 케이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영화의 주요 장면을 담은 포토 카드 3종과 오리지널 포스터 이미지가 담긴 카드 1장도 수록되어 소장 가치를 더한다.

그 리고 포크 음악을 담은 영화 답게 기타 피크도 제공하고 있는데, 아까워서 실제 이 피크로 연주를 할 수 있겠느냐 만은 집에 어쿠스틱 기타가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 쯤 이 피크를 사용해서 극 중 오스카 아이삭처럼 'Hang Me, Oh Hang Me~'를 읊조려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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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EG-4 AVC 포맷의 블루레이 화질은 최신작답게 만족스러운 편이다. 아마 극장에서 이 작품을 접하지 못했던 이들이라면 작품의 영상 톤에 대해서 살짝 의문을 갖을 지도 모르겠는데, 전반적으로 무채색의 느낌이 나도록 색감의 레벨을 상당히 낮춘 형태의 영상은 감독의 의도가 담긴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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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영상에 잠시 등장하는 실제 촬영 장면과 비교해보면 영화 속 영상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컬러가 조정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가스등 카페 장면과 실외 장면에서 더 그러하다), 오히려 이렇게 전체적으로 톤 다운 된 영상을 수록하고 있기에 화질의 중요성이 더 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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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음악의 비중이 큰 작품 답게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코엔 형제는 '인사이드 르윈'을 만들면서 음악을 단순히 담는 것이 아니라 라이브로 담아내길 원했는데, 그렇게 담아낸 연주와 노래 장면들은 블루레이의 사운드를 통해 더 집중력 있게 안방 극장으로 전달된다. 특히 이 작품의 연주 장면은 연주와 노래 외에 군더더기가 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배제한 채 오로지 그 곡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사운드의 중요성이 다른 영화들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확실히 이 포인트를 더 배가 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화 음악 외에 이 작품에서 소소하지만 사운드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은 고양이가 등장하는 장면인데, 아마 집사 분들이라면 다 잘 아시겠지만 고양이 특유의 그르렁 대는 사운드를 느낄 때면 묘한 쾌감이 있는데, 특히 블루레이처럼 선명한 사운드로 접하게 될 땐 그 감동(?)이 더 배가 되는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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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가 영상은 Inside “inside Llewyn Davis” 라는 제목의 약 40여 분 분량의 메이킹 영상 만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영상의 내용 자체는 만족스러운 편이지만, 이 영상 외에는 전혀 다른 부가 영상이 수록되지 않은 점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킹 영상에서는 감독인 에단 코엔과 조엘 코엔의 인터뷰는 물론이고, 오스카 아이삭과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 존 굿맨 등 주요 출연진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코엔 형제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전체적으로 '인사이드 르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비롯해, 연기와 노래 특히 연주까지 가능한 르윈 데이비스 역할을 캐스팅하기 까지의 어려움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코엔 형제는 이번 영화에서 노래와 연주가 마치 뮤지컬처럼 직접 라이브로 진행되길 원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오스카 아이삭 만한 적역도 없지 않았나 싶다.





양한 제작 뒷 이야기를 담은 메이킹 영상에서도 특히 흥미를 끌었던 장면은, 주인공 오스카 아이삭을 비롯해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음악 감독인 티 본 버넷 그리고 '멈포드 앤 선즈 (mumford and sons)'의 리드 보컬 마커스 멈포드와 그의 아내 캐리 멀리건까지 음악 작업을 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다. 어쩌면 이 과정의 장면들도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유명한 뮤지션과 배우들이 스튜디오에서 서로 눈빛을 맞춰가며 노래와 연주를 함께 하는 장면은,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인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총평] 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은 그들의 놀라운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단연 손꼽힐 만한 마법 같은 작품이었다. 포크 뮤직이라는 세계 관에 자신들이 평소 말하고자 했던 삶의 아이러니에 관한 세계관을 아주 얇은 두께의 레이어로 겹쳐낸 이 작품은, 완벽한 코엔 형제의 영화인 동시에 완벽한 음악 영화이기도 하다.


런 작품을 구성물이 풍성한 패키지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아직도) 반가움이 더 먼저 드는 사건이며, 앞으로도 코엔 형제의 영화를 비롯해 작품성으로 인정 받는 좋은 영화들이 그에 걸맞는 퀄리티의 타이틀과 패키지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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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헤이즐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해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디센던트'를 통해 얼굴을 알렸던 여배우 쉐일린 우들리와 '다이버전트'에 출연했었던 안셀 엘고트가 주연을 맡은 (아시다시피 '다이버전트'의 여자 주인공은 다름아닌 쉐일린 우들리다) 조쉬 분 감독의 영화 '안녕, 헤이즐 (The Fault in Our Stars, 2014)'이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 산소통을 끌고 호흡기를 연결하고 있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만 봐도 이 영화의 줄거리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데, 누구나 예상하는 바로 그것처럼 ' 안녕, 헤이즐'은 암으로 인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주인공 헤이즐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시한부의 삶을 사는 주인공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도 줄거리 측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한부의 삶을 최대한 덤덤하게 받아들이려는 모습은 조셉 고든 래빗이 주연을 맡았던 '50/50'과 조금 닮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 만의 빛나는 점이라면 이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10대 소녀라는 것이고, 영화의 시작 부분 헤이즐의 내레이션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스스로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처럼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현실은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한부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은 대부분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오로지 감정에 기대어 신파로 풀어낸 경우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영화 내내 덤덤하게 참아내던 (그래서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가서 한 번 참지 못하고 감정을 터뜨리고 마는 경우 정도일 것이다. '안녕, 헤이즐'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영화와는 달리 현실을 보여줄께 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두 가지에 모두 속하거나 모두 속하지 않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어떤 측면에서는 덤덤한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일관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감정을 건드릴 수 밖에 없는 부분을 일부러 피해가지는 않으며 그 감정선을 표현할 때에도 관객과 공감대를 충분히 함께해 눈물짓게 만드는 그런 '현실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헤이즐과 그녀의 가족, 그녀의 친구인 어거스트와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전하면서도 10대 소년 소녀만이 갖을 수 있는 현실적인 면을 간과하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정서는 죽음 못지 않게 사랑, 특히 10대의 알콩달콩한 사랑이다. 마치 요새 말로 '사랑꾼'이라 할 수 있는 어거스트의 대사와 눈빛 하나하나는 처음에 보면 느끼하고 닭살 돋아 적응이 안되기도 하지만, 영화는 이런 어거스트의 모습을 (굳이 그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이 마치 극 중 헤이즐처럼 사랑하도록 만들고 있다. 즉, 어거스트는 흡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문어체 대사처럼 두 손이 오그라드는 감정 표현의 대사들을 쏟아내지만, 밉지 않고 귀여운 매력이 느껴지는 동시에 무엇보다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흠뻑 빠져들어 귀엽고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헤이즐과 어거스트의 로맨스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며, 반대로 그렇기에 두 주인공이 처한 현실의 무게는 더 큰 슬픔으로 전해진다.




원작 소설을 썼던 존 그린은 자신이 병원에서 만났던 실제 소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썼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의도적인 신파나 의도적인 거리 두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힘겨운 삶의 무게를 어린 나이로 견뎌야 했던 소녀를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는 없었던 한 어른의 시선이 영화 곳곳에 묻어나 있다. 그 가운데 몇몇 대사는 이런 상황에 놓였거나 혹은 주변 인물이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던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과 대사들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주변에서 직접 함께 했기에 가능했을 폐부를 찌르는 아픈 대사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안녕, 헤이즐'이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에 비해 더 만족스러웠던 건 바로 이 '현실감'에 대한 디테일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가장 허황되게 느껴질 수도 있는 10대의 사랑을 그리면서도 전반적인 균형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헤이즐을 연기한 쉐일린 우들리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어거스트를 연기한 안셀 엘고트의 미워할 수 없는 사랑꾼 캐릭터 역시 참 보기 좋았다 (이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여기에 로라 던과 웰렘 데포 같은 중견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Ed Sheeran, Birdy, Jake Bugg 등의 곡을 만나볼 수 있는 감성적인 사운드 트랙이 더해져 마치 아름답고도 쓸쓸한 가을이라는 계절과도 같은 느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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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헤이즐' 블루레이의 화질은 최근 보았던 드라마 장르 타이틀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화질을 선보이고 있다. 몇몇 장면에서는 마치 초고화질의 TV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이질감을 최소화 한 고화질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드라마 장르의 화질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기보다 첫 번째 고려 사항은 아니다라고 종종 이야기해 왔었는데 '안녕, 헤이즐'의 경우는 확실히 시원시원한 화질로 즐기는 매력이 더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극 중간에 등장하는 암스테르담 노케이션 장면의 경우가 좋지 않은 화질이었다면 그 분위기가 제대로 살지 않았을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작품에서 화질의 우수성이 미치는 영향은 의외로 큰 편이다.






예전 '디센던트' 블루레이를 리뷰하면서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쉐일린 우들리의 주근깨 있는 얼굴은 어떤 의미에서 블루레이에 최적화(?) 된 마스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번 타이틀이 특히 그녀의 이런 피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배경과 인물이 동등한 비율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이른바 '날라가는' 부분 없이 디테일한 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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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도 크게 흠잡을 곳 없다. 드라마 장르의 특성상 사운드 적인 측면을 테스트할 만한 장면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몇몇 사운드 활용도가 높은 장면을 확인해 본다면 타이틀의 사운드 퀄리티가 부족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 못지 않게 매력적이었던 사운드 트랙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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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헤이즐' 블루레이는 극장판과 확장판이 동시에 수록되었는데, 확장판은 러닝 타임이 133분, 극장판은 126분을 수록하고 있다. 감독인 조쉬 분과 원작 소설을 쓴 존 그린이 참여한 음성해설 역시 확장판과 극장판 모두 수록되었다.



음성해설의 경우 조쉬 분과 존 그린이 이 사랑스러운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들어봐도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을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제작과정을 담은 부가영상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안녕, 헤이즐'의 촬영 현장 분위기는 영화 만큼이나 따듯하고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그런 현장임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사실 이 작품 같은 경우 음성해설이 주는 정보가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한데, 정보량 자체는 SF영화나 스릴러 장르에 비해 적을 수 밖에는 없지만 원작자와 감독이 이질감 없이 영화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는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한 번은 들어볼 만한 음성해설이라 하겠다.




'삭제장면'에는 총 6가지 장면이 수록되었는데 삭제 장면 모두에 음성해설이 포함되어 있어 아쉽지만 끝내 본편에서 제외시켜야만 했던 감독의 뒷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안녕, 헤이즐’이 간직한 이야기는 본격적인 제작 과정을 담은 메이킹 다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여주인공을 연기한 쉐일린 우들리가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이야기였다.


어떤 계기나 인연으로 인해 캐스팅 된 것이 아니라 원작 소설을 정말 인상 깊게 읽었던 우들리가 영화사에 먼저 연락을 해서 자신이 꼭 헤이즐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하는 것은 물론, 헤이즐 역할이 아니라 엑스트라라도 좋으니 꼭 이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 대단한 열의를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그 열정만으로 캐스팅 된 것은 아니겠지만 나중에는 원작자인 존 그린도 우들리에게 헤이즐을 연기해 줘서 고맙다고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프로모션 영상'에서는 아주 짧은 영상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 볼만한 영상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작가의 색다른 경험'에서는 존 그린이 화자로 등장하여 촬영장의 뒷 모습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가볍게 전달한다. 이 부가영상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원작자인 존 그린이 영화화 된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만족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무한대'에서는 영화 속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커플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특별한 영화 음악'에서는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 밴드들의 짧은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갤러리'와 '영화 예고편'도 수록되었다.




[총평] '안녕, 헤이즐'은 누구나 포스터만 봐도 예상할 수 있는, 아니 예상했다고 생각하는 영화이지만 막상 보고나면 그 예상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느껴짐에도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젊은 두 배우인 쉐일린 우들리와 안셀 에고트의 사랑스러운 앙상블도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했으며,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도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어서 애틋한 여운도 남는 괜찮은 작품, 그리고 블루레이였다. 이 마지막 가을의 자락에 조용히 추천하고픈 영화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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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사무라이 (猫侍 Samurai Cat, 2014)

집사만이 포용할 수 있는 영화



한 사람의 집사로서 '고양이 사무라이'라는 제목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감독이 누구인가 배우가 누가 출연하는지도 알아보지 않은 채 극장을 찾았다 (냥심은 역시 칼보다 강한 것인가!). 사실 '집사만이 포용할 수 있는 영화'라는 이 글의 제목에 '고양이 사무라이'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거의 다 담겨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야마구치 요시타카 감독의 이 작품은 집사만이 포용할 수 있기에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다소 심심한 작품이며, 반대로 집사들이라면 자신들 만이 캐치할 수 있는 포인트가 존재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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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야 특별히 말할 것도 없이 간단하고 그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구성이나 연출력 역시 특별한 수준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냥심에 기댄 측면이 강한 탓에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땐 감정 선에 공감하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사무라이와 고양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존재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재미를 선사하는 이야기인데, 고양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공 사무라이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인 것에 갇혀 있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국내에서 만들어 졌다면 아마도 김보성 씨가 연기했을 법한 딱 그런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이 캐릭터가 영화 전반을 이끌기에는 다소 무리가 느껴졌다. 고양이라는 존재와의 연계 성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소극적인 부분이었는데, 사건 자체보다 둘 간의 교감에 포인트를 두었더라면 좀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2013년에 TV시리즈로 먼저 제작된 작품을 영화 화 한 작품인데, TV시리즈의 긴 호흡으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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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고양이 사무라이'엔 집사들이라면 혹할 만한 장면들이 분명 존재한다. 일부 집사들의 경우 사실상 영화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고양이를 보러 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충분히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이 느슨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고양이, 고양이 때문이었다. 집사들이라면 꼭 보라고 까지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 정도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만약 더 교감에 집중한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누도 잇신 감독의 2008년 작 '구구는 고양이다'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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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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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우주를 건축하고 낭만을 이야기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인터스텔라'를 개봉 첫 주말 아이맥스로 보았다. '인터스텔라'는 그의 작품답게 원초적으로 머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복잡한 설계가 밑바탕에 깔려있고 그 위에는 가슴을 움직이게 만드는 낭만과 감동이 자리 잡고 있는, 딱 크리스토퍼 놀란 다운 작품이었다. '인터스텔라'는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Gravity, 2013)' 이후 사실상 처음 선보이는 본격 우주 체험 영화라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수 밖에는 없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보고 배우는 것에 그치던 우주라는 공간과 세계를 체험하는 것으로 끌어 들이는 데에 성공한 '그래비티' 이후엔 그 어떤 영화도 (최소한 단 기간 내에는) 우주를 다시 배경으로 하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그래비티'를 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일 거다 라고 밝히기도 했던 놀란은, '그래비티'와는 또 다른 의미로 체험하는 우주를 그리는 동시에 또 한 번 설계자 다운 면모를 발휘해 다층적이다 못해 다 차원적인 구조를 구현해 냈고, 여기에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의 드라마까지 담아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터스텔라' 역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 작품이지만, 뭐랄까 놀란의 영화관에 있어서 좀 더 명확해 지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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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이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았던 본격적인 이유를 하기에 앞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항상 대단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도록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에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에 기본이 되는 치밀한 설계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가 주로 만드는 설계도는 무언가 학구적인 의욕을 한 껏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플래시백 형태로 구성한 '메멘토'도 그랬고, 꿈 속의 꿈이라는 다층 구조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낸 '인셉션'은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100% 완벽하게 분석해 내겠어!'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했었던 것처럼, 이번 '인터스텔라' 역시 우주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공간을 배경으로, 역시 익숙하게 들어 왔지만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블랙홀, 웜홀, 4차원, 5차원 이라는 개념과 현상들을 시각적으로 수긍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듯 학구적으로 파고든 설계 탓에 자주 그가 만든 세계는 논리적 오류나 설정의 오류라는 많은 의견들과 부딪히게 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가 그의 동생과 함께 쓴 시나리오가 과학적, 논리적 오류가 있는 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그가 왜 이런 방식을 매번 택하고 있는 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걸 '인터스텔라'를 통해 또 한 번 강하게 느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왜 이렇게 영화를 복잡하고 설명하듯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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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정리하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하나는 그 세밀한 설계 자체가 갖는 중요성, 그러니까 '인터스텔라'로 비유하자면 5차원이라는 개념을 관객이 더 쉽게 이해하도록 영화화하기 위해 이를 논리적으로 뒷 받침할 만한 만반의 준비와 설계를 건축하듯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구조와 설계 자체를 중심에 둔 다는 얘기다. 사실 대다수가 이 의견에 손을 들어줄 텐데, 내 의견은 조금 다르다. 사실 이렇게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인셉션'을 보고나서 부터인데, '인셉션'이 개봉하고 나서 흡사 논문에 가까운 영화 글들이 수를 놓았을 정도로 구조가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론 오히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브'라는 캐릭터의 트라우마에 관한 아주 강력한 드라마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놀란 영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아내를 잃은 남편이거나 가족을 잃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의 분석은 이미 여럿 있어 왔는데, 여기에 더 힘을 보태서 이런 설정들이 어쩌면 그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설계한 구조적 배경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그가 들려주고자 한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인터스텔라'를 보며 또 한 번 강하게 들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결국, 기억을 이야기할 때도, 꿈 속의 꿈을 이야기할 때도, 코스츔을 입은 외로운 영웅을 이야기할 때도, 그리고 우주 속 웜홀 뒷편의 5차원을 이야기할 때도 결국 한 인간의 드라마를, 더 나아가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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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측면이 놀란의 모든 영화에 드러나고 있다고 봤을 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다크나이트'의 경우 이 가운데 가장 감정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편이고, 이 작품 '인터스텔라'는 가장 직접적으로 감정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인셉션'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 구조의 황홀함에 압도되어 만족감을 얻기에 벅찼었지만 두 번째 관람을 하고 나니 너무도 명백한 코브의 슬픈 드라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인셉션'은 놀란 영화의 큰 두 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설계와 감정, 혹은 설계와 낭만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인터스텔라'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 아니 비중이 크다기 보다 더 노골적인 표현이 담긴 작품이었다.



(다음 단락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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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데에는 역시 '사랑'이라는 개념의 표현 방식 때문이 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작품은 물론이고 감정적이라고 느꼈던 '인셉션'에서도 그 표현 방식은 직접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인터스텔라'에서의 후반부를 장악하고 있는 정서는, 오히려 한편으론 이런 우주 영웅 가족영화에 대명사로 불리우는 '아마겟돈'보다도 더 강력한 세기로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조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앞서 영화의 중반부까지 우주와 웜홀에 대한 방정식을 풀 듯 논리의 파도를 따라오던 관객 입장에서는, '결국 이 모든 것의 해답은 사랑, 사랑이야!'라는 영화의 후반부가 맥이 빠질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론 '인터스텔라'의 방식이 조금 직접적이었을 뿐 놀란의 영화는 항상 이런 드라마를 바탕에, 아니 중심에 놓았었기에 크게 이질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 사랑이었어!'라는 식의 전개는 이 5차원이라는 개념을 재료로 하기엔 너무 1차원적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들게 마련인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은 마치 찰리 카우프만이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을 통해 본인의 메세지를 정말 끝까지 밀어 붙였던 것처럼, 본인이 항상 두 손에 쥐고 있던 설계와 감정의 개념을 한 발 더 나아가 하나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나싶다. 이 작품에서 후반부 사랑의 개념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인간의 사랑이야말로 차원을 넘어서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존재한다 라는 식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가설을 꺼내놓는데, 바로 사랑이라는 개념이 아직 인간이 알아 낸 과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이 발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혹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적 개념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즉,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일종의 과학적 산물 혹은 미래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설명이 가능한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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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접근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접근이었는데, 처음엔 이 같은 영화의 태도가 '와, 정말 대단한데!'라고만 느껴졌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 작품의 기반이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콘택트 (Contact, 1997)'가 던진 화두인 '과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히 경험한 것'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메시지로 채용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즉, 아빠가 똑같이 딸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은 맞지만 그 이유가 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영화가 바라보든 태도는 이전 다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인터스텔라'가 왜 흥미로운 작품인지를 또 한 번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콘택트'와 근본적으로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콘택트'는 이 광할한 우주에 인간만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공간 낭비인가 라는 말처럼 외계 생명체에 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이 짙게 깔려있는 작품이지만, '인터스텔라'는 그 중심이 외계 생명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혹은 인간의 진화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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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어쨋든 '인터스텔라'는 놀란의 다른 작품들처럼 하나 하나 따져보면 '왜 그런한가?'에 대해 소품이나 배경, 인물, 대사 등 모두 이유를 찾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영화일테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것들을 다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더 강력하게 드러난 낭만적인 가족 드라마이기도 했다. 뒤돌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은 다들 순수하리만큼 낭만적인 인물들이 중심이 된 드라마였던 것 같다. 마치 더 이상 막는 것이 불가능한 디지털의 시대에 끝까지 필름 촬영을 우선하고 3D를 배제해 온 그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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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차원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건 '그래비티'의 우주를 경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체험이었어요. 오히려 이 부분은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오면 서플먼트를 통해 좀 더 구조적인 뒷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네요.


2. 한스 짐머의 음악이 참 좋았어요. '다크나이트' 이후 가장 인상적인 그의 작품인듯. 김혜리 기자의 말만 따라 정말로 놀란 작품만 특별히 더 신경 써주는 것 같은 느낌이 ㅎㅎ


3. 본문에도 전반적으로 뉘앙스를 밝혔지만 개인적으로 놀란은 '5차원은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다!'라는 것을 생각했던 것 만큼, 극 중 쿠퍼가 비디오를 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을 먼저 떠올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극의 구성상 중간 정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마치 마지막 대사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싶었던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처럼 감정적으론 이 장면을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싶은.


4. 그냥 다른 얘긴데, 만약 이 영화를 그대로 번역해서 '별과 별 사이'로 개봉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네요. 감독이 전한 의도는 분명 '별과 별 사이' 일텐데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되어버리는 묘한 영어 제목 번역의 현실. 꼭 이 작품 만의 얘기가 아니라 가끔 미국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제목들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해지더군요. 우리는 아무래도 영어 그대로를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보니 오히려 번역하게 되면 느낌이 애매해지는 경우도 발생하다보니.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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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오픈케이스] 악마를 보았다 스틸북 : PET 아웃케이스 넘버링 한정판

(Blu-ray open case _ I Saw the Devil _ Plain Archive)



어쩌다보니 블루레이 오픈케이스 포스팅은 플레인 타이틀만 하게 되는데, 그 만큼 플레인에서 나오는 타이틀들이 꾸준히 일부러 소개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의 퀄리티와 구성으로 출시된다는 반증이 되겠다. 최근에는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몇몇 블루레이 제작사에서 플레인의 한정판 구성을 템플릿처럼 가져다가 발매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는데, 한 편으론 유저 입장에서 더 나은 퀄리티의 타이틀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기도 하겠으나, 나 역시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수도 없이 후발 주자들에 견제 및 서비스 복제(?)를 당해 본 터라 남일 같게 만은 느껴지지 않아 묘한 감정이기도 하다. 여튼 이번에 나온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총 3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는데, 나는 그 가운데서 PET 아웃케이스 넘버링 한정판을 구매했다.







이번 한정판이 마음에 드는 첫 번째 이유는 영화의 살벌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붉은 빛의 PET 아웃케이스 때문이다. 거칠게 써내려간 영화의 영어 제목과 잘 매치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본 스틸북 케이스의 이미지와도 은근한 조화를 이뤄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고어함이 아웃케이스에서도 잘 묻어나는 느낌이다.






투명 PET 케이스 내에는 40PAGE 분량의 소책자와 스틸북 케이스가 수록되었다.






스틸북에 선택된 양면의 이미지 역시 본 영화의 이미지를 좀 더 스타일리쉬하게 변형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좀 더 유니크한 맛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





역시 스틸북은 이 옆면을 보는 맛!






이번 한정판에는 총 4종의 미니사이즈 영화 카드와 2종의 양면 아트 카드가 수록되었는데, 해외 개봉시 포스터 이미지를 담은 아트 카드가 눈길을 끈다.  나중에 역시 플레인에서 출시된 '마스터' 블루레이를 소개할 때 또 언급하겠지만, 이 미니사이즈 영화 카드는 아마도 플레인 한정판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언가 컬렉팅 한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 소소한 재미가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플레인 타이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책자. 이번 책자 역시 알찬 내용의 글들이 수록되었다.








최근 플레인에서 출시된 타이틀들은 해외 블루레이 유저들 사이에서도 많은 관심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이번에도 지난 번 '멜랑콜리아'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내부 책자의 소개글을 영문으로도 소개하고 있다. 또 놀라운 점은 오히려 해외 유명 기고가의 글을 번역하여 수록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아, 점점 글로벌해지는 소책자 내용이 아닐 수 없겠다.





현재는 아쉽지만 '악마를 보았다' 플레인 한정판 3종은 모두 품절이 된 상태이다. 다른 타이틀도 그렇듯 플레인에서 발매하는 타이틀들을 손에 넣으려면 미리미리 프리오더 전쟁에서 승리하여야만 할 것이다.



플레인 아카이브 홈페이지 (쇼핑몰) - http://plainarchive.co.kr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블루레이] 엣지 오브 투모로우 (Blu-ray : Edge of Tomorrow)

슈팅 게임의 프로세스를 그대로 영화화한 흥미로운 작품



톰 크루즈와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또 다른 SF 액션영화' 정도로 생각했던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아주 구체적으로 게임을 영화화 한,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FPS게임을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그대로 영화화 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흔히 게임을 영화화 했다고 하면 게임의 배경이 되는 내용이나 그 스토리를 그대로 영화화 한 경우를 떠올릴 수 있겠는데,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경우는 이와는 달리 1인칭 슈팅 게임인 FPS 게임을 유저가 실제로 플레이하는 과정 그 자체를 영화로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 여행의 개념이 아닌 리스폰, 혹은 리플레이의 개념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


물론 이 작품은 따로 있고 그 것은 게임이 아닌 일본의 라이트 노벨인 'All you need is kill'인데, 원작에서는 루프나 외계인의 침공 등의 설정만 가져왔을 뿐 다른 스토리 적인 측면이나 기타 설정들은 다른 측면이 많은 편이다 (※ 참고로 이 작품은 헐리웃에서 일본 라이트 노벨을 영화화한 최초의 작품이다).




▲ (좌) 영문 소설 표지 / (우) 만화 중 한 장면


주인공인 빌 케이지 (톰 크루즈)는 외계인과의 전투 중 우연히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갖게 되어, 죽으면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 매일 같은 하루를 살게 된다. 이런 비슷한 설정의 영화로는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을 떠올릴 수 있겠는데, 이 작품은 정확히 타임 루프라는 설정을 가져온 작품인 반면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타임 루프라기 보다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흥미로운 점이다.


즉,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주인공이 어떻게 다르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됨으로 인해 오늘은 가지 못했던 그 다음을 조금씩 계속 전진해 간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것은 정확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과 겹쳐진다.





사실 게임을, 특히 FPS 싱글 모드를 한 번이라도 플레이 해 본 이들이라면 영화 속 케이지의 이야기가 너무 쉽게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유저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게임이 익숙해 졌다고 생각될 때, 노멀 난이도가 아닌 극한의 난이도로 싱글 모드를 다시 플레이 해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정말 수십번을 반복하고 여러 날을 같은 에피소드를 반복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일이 많다.


사실 게임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보여지는 현실보다 더 어려운 경우인데, 근래의 FPS 게임들은 영화의 경우와는 달리 반복할 때마다 정확히 100% 그대로의 상황이 구현되지는 않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플레이를 해야 만이 여러가지 경우에 미리 대처할 수 있는 편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공감하게 되었던 순간은 케이지가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는데, 게임으로 따지자면 이른바 패드를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이 떠올라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수십 번을 반복한 탓에 더 이상은 시도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되던 순간, 우연한 실수 혹은 시도가 드디어 다음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는 순간의 쾌감도 영화의 전개에서 그대로 만나볼 수 있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이 반복되는 게임 설정에 집중하고 있다보니 몇 가지 제한된 부분들도 있었는데, 지구를 지배하려는 외계인들의 설정이나 이에 대응하는 최첨단 수트를 기반으로 한 병기들의 활용 등도 딱 필요한 만큼만 노출될 뿐 추가 설명이나 활약상은 제한적인 편이라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아마도 이 내용이 실제 게임이었다면 좀 더 자세한 배경이나 활용이 가능했지 않았을까 싶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들 대부분이 갖는 특성 중에 하나는, 드라마 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시나리오나 스토리 자체에 집중하고 있지 않은 작품들이라 할지라도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는 것 만으로 일종의 설득력이 있는 드라마가 생성된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특히 그가 주연한 영화들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점인데, 일종의 영화 외 적인 효과라고도 볼 수 있고 반대로 배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궁극의 효과라고도 볼 수 있겠다.





관객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톰 크루즈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보면서 연기력 + 연기력 외적인 이미지로 인해 (여기서 연기력 외적이라는 건 친절한 톰아저씨의 이미지가 아닌, 그가 위험한 스턴트를 대부분 직접 수행한다는 정보처럼, 그가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에 관한 것이다), 스토리 적으로는 빈약한 드라마가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여지는 이야기 외에 영화 속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얼굴을 보면, 그 이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자동적으로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도 그대로 발휘된다.





결과적으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영화 속 주인공인 케이지 입장에서는 리스폰 될 때마다 세이브 된 상태에서 다시 시작되는 형태이긴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시작과 동시에 플레이를 시작해 최종 보스 전까지 한 숨에 달려야 하는, 즉 켠 김에 왕까지 깨버리는 그런 영화였다. 그래서일까. 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혼자서 고약한 생각을 했다. 맨 마지막 장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하루에 케이지가 '아 몰라, 이제 안해안해'하고 손사래를 치면서 허무하게 끝나는 그런 엔딩. 아니면 '아놔, 저장 안했네'하며 황당하게 끝나는 그런 엔딩. 그랬다면 정말 극장에서 환불 소동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약한 상상이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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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의 화질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장면들이 많은 영상을 블루레이 만의 장점으로 인해 만족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우수한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으며, 블랙 레벨의 깊이에서도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어 전반적으로 최신작 다운 훌륭한 화질을 선보이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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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화면에 등장하는 배우 외에 거의 모든 것들을 CG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을 쉽게 하게 되는 작품인데, 실제로는 외계인이나 액션 시퀀스에서 활용된 CG 외에는 최대한 실제하는 세트와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한 작품으로 좀 더 블루레이의 고화질에서도 덜한 이질감은 물론, CG와 실사가 겹쳐지는 장면에서의 이질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위와 같이 최대한 실제 촬영을 하려고 한 감독의 방향성은 영상에 있어 좀 더 질감이 느껴지는 깊이를 표현하는 데에 근본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병장기와 엑소슈트의 질감 그리고 여기에 진흙과 모래가 뒤 섞여 있는 손에 만져질 듯한 이 질감은 확실히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디테일이라 하겠다.


Blu-ray : Audio







DTS-HDMA 7.1의 사운드는 주저 없이 레퍼런스라 부를 만 하다. 특히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연상 시키는 해변 전투 시퀀스에서는 그야말로 '휘몰아 치는' 사운드의 향연을 만나볼 수 있는데, 변화 무쌍한 촉수의 움직임과 전장의 아수라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소음과 잡음, 비명 등의 복잡한 사운드들은 극장 못지 않은 공감감을 느낄 수 있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첫 번째 부가영상인 'Operation Downfall'의 'Adrenaline Cut'에서는 다운폴 시퀀스를 좀 더 액션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더 역동적인 리듬으로 즐길 수 있다. 'Storming the Beach'에서는 해변 액션 시퀀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데 2차대전을 참조해 좀 더 현실적인 느낌을 가미하였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직접적으로 참고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공상과학보다는 전쟁 영화에 더 포커스를 두고 작업하였으며 그로 인해 일종의 미래 버전의 2차 대전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최대한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하는 더그 라이먼 감독의 성향 탓에 영국에 대형 해변 세트를 제작하여 좀 더 현실적인 액션 시퀀스를 촬영하였으며, 폭발 등의 액션 역시 CG에 의존하기 보다는 특수 효과를 통해 구현하였으며 배우들의 액션 역시 와이어를 이용해 좀 더 고전적인 액션 시퀀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Weapons of the Future'에서는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 것 중 하나인 엑소 슈트에 대한 소개를 만나볼 수 있는데, 실제로도 40킬로가 넘는 슈트를 배우들이 입고 촬영에 임해야 했기에 슈트를 입고도 모든 액션 연기가 가능하도록 디테일한 개발 연구를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 과정의 뒷 얘기가 수록되었다. 출연진 모두 액션을 위한 사전 훈련을 진행할 때도 대부분 슈트를 입은 상태로 훈련에 임했기에 이후 촬영 때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배우들은 연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엑소슈트에 적응하는 것이 더 우선적인 미션이었던것.


부가영상을 보면서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점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SF적 측면보다 전쟁 영화의 측면에 더욱 신경 쓴 작품이라는 점과, CG로 가능한 해결하고자 했던 영화가 아니라 특수효과, 로케이션, 스턴트를 통해 현실감을 주려한 ‘현장’의 영화였다는 점이다.






'Creatures Not of This World'에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컨셉과 기획, 제작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아무래도 최근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들의 공통된 고민이겠지만, 더 새로운 외계인의 외형을 만들어 내기가 이제는 정말 힘들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진도 이 크리쳐의 새롭고 독창적인 움직임을 개발하는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촉수를 활용한 액션을 통해 훨씬 더 복잡하고 화려한 시퀀스 연출이 가능했으며, 또한 엄청난 속도로 인한 역동적 동선들도 매력적인 액션을 표현할 수 있었다.






'On the Edge with Doug Liman' 에서는 부지런한 톰 크루즈와의 작업을 준비하면서 톰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감독 스스로도 사전 제작 과정에서 체력 단련을 하는 독특한 영상으로 시작된다. 감독인 더그 라이먼이 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초반, 사전 제작과정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으며, 감독과 처음 작업을 해보는 톰 크루즈의 소감을 비롯해 배우들과 스텝들이 전하는 더그 라이먼의 연출 스타일을 전해 들을 수 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 작품의 감독인 더그 라이먼은 여러 번 소개했던 것처럼 현실감을 중시하는 감독이라는 점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약 8분 가량의 삭제 장면 역시 부가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총평] 더그 라이만이 연출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점점 더 새로운 것을 선보이기가 어려워 지는 SF영화들 가운데, 작은 아이디어와 고전적인 영화 기법을 가지고 색다르게 표현해 낸 나름 신선한 작품이었다. 영화 자체가 심심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이 부족함을 톰 크루즈라는 신뢰가 넘치는 배우가 부족함 없이 채움으로서, 드라마로서도 제법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화질과 사운드 측면에서 블루레이 유저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퀄리티 역시, 이번 타이틀을 마무리 하며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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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

결국은 시선에 관한 영화



데이빗 핀처의 신작 '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를 보았다. 핀처의 작품이라면 아무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의 최근 작이었던 '소셜 네트워크'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워낙 좋았고 완성도가 높았었기 때문에 이 작품 '나를 찾아줘 (원제를 따르자면 '사라진 소녀'가 적당하겠다)' 역시 아무런 주저 없이 선택하게 되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개봉 전 어디에선가 핀처의 최고 작품 중 하나인 '조디악 (Zodiac, 2007)'과 비교하는 평들이 있었기에 더더욱 큰 기대를 앉고 극장을 찾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를 찾아줘'는 '조디악'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으며, 스릴러 이기는 하지만 스릴러 본연의 재미와 요소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를 둘러싼 이야기와 시선에 더 관심이 많은, 조금은 다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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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아무런 정보를 얻지 않고 보는 편이 최적의 관람 방법입니다)


기본적인 시놉시스는 대략 이러하다. 어느 날 닉은 잠시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은 사고가 난 것처럼 어질러져 있고 아내 에이미는 사라져 버렸다. 아내 에이미를 찾기 위한 노력은 언론 등에 노출되며 더 큰 사건으로 퍼져 나가는 가운데, 닉과 에이미의 이야기는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에게 조금씩 이 둘의 결혼 생활에 이미 균열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까지만 해도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핀처의 전작인 '조디악'과 스타일이 유사한, 그러니까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한 아주 치밀하고 긴장간 넘치는 추리극 일 줄로만 알았다. 에이미가 처음 실종되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싶었지만 영화는 관객에게 단서를 던지고 이른바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실종 사건을 두고 주인공 닉 던 (벤 애플렉)을 바라보는 언론과 주변의 시선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영화는 어느 순간 부터 이 영화의 또 다른 부제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 맞아 떨어지는 놀라운 에이미 던 (어메이징 에이미)의 활약상(?)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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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는 노골적으로 실종 사건을 두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고 마녀사냥에 빠져드는 언론과 움직이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조금 연출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언급했다시피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한 편으론 정말로 사라진 소녀를 찾아가는 과정의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이건 그런 영화가 아니야'라는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표현해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형식적으로 표현되는 주변과 언론의 반응들은 그야말로 어메이징 한 에이미라는 캐릭터에 비해 굉장히 단편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물론 아주 단편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을 통해 더 바보스럽고 멍청해 보이도록 의도했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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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로자먼드 파이크가 연기한 에이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벤 애플렉이 연기한 닉 던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극 중 닉 던이라는 캐릭터는 참 묘한 느낌을 주는데, 치밀한 에이미와 같은 레벨로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다면 관객들로 하여금 '불쌍하다'라는 생각에 공감대 혹은 동정심이라도 얻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멋대로 인 부분이 있어서 100% 부합하지는 않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극 중 많은 장면에서 닉 던이라는 캐릭터와 벤 애플렉이라는 배우가 겹쳐지면서 의도치 않았던 (그 중 반은 의도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이 의도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영화 전체가 이 사건을 약간의 조롱기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심각한 사건 속에서도 당사자들은 황당할 정도로 허술하고 초라한 행동을 하게 되는 인물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아마 영화가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극 중 대중들처럼 오해했을 관객들에게 '자, 현실은 이럴 때도 있어. 쉽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선 안되'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튼 농반진반 이지만 이 작품은 벤 애플렉의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연기력이 최고조로 발휘 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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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애플렉 이야길 하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나를 찾아줘'는 에이미 역을 연기한 로자먼드 파이크의 영화다. 이 영화는 그녀의 다양한 매력을 모두 담고 있는 영화로, 초반에는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은 물론 마치 중간계의 갈라드리엘을 연상시키는 신비스러운 보이스의 내레이션으로 묘한 매력을 선보이는 한 편, 후반부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의 모습은 극장 내 관객들이 모두 무서워서 치를 떨 정도로 소름 돋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나 역시도 올해를 통 틀어 무서워서(이것도 공포긴 공포다) 소름 돋기는 거의 처음이었다. 


로자먼드 파이크는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전국민이 알고 있는 캐릭터와 평생을 비교 당해야 했을 에이미의 스트레스와 (아마도)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내적으로는 망가지고 폭력적이고 정신이상의 행동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최적화 된 행동을 하게 되는 캐릭터를 '왜 저래?'보다는 '무섭다'가 먼저 느껴지도록 이끌어 냈다. 아마도 많은 영화 팬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될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무서우리 만큼 소름 돋았다.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는 핀처의 또 다른 재주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막장 드라마에 익숙해진 국내 관객들에게는 극장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 워낙 강해 그 이면의 디테일이 다 전달되지 않는게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하긴 그게 너무 강하긴 했다.



1. 정말로 '사랑과 전쟁' 극장판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2. 핀처는 최근 작품들에서 영화 음악을 특히 더 매력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 작품 역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어요. 영화 음악에 의도가 많이 담겨있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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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 (Boyhood, 2014)

12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바로



수년 전 쯤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실제 12년 전의 뉴스 한 토막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이 정말 기대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는 없었던 뉴스였다. 에단 호크와 함께 한 비포 시리즈와 '웨이킹 라이프 (Waking Life, 2001)'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리차드 링클레이터가 또 한 번 에단 호크와 함께 촬영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는데, 한 소년의 성장기를 무려 10년이 넘는 실제 시간을 들여 촬영하겠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잊혀졌던 이 소식은 실제로 2014년 완성된 작품으로 극장 상영을 하게 되었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 형식적 기대감과 별개로 그의 최근 작이었던 '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 2013)'을 인상 깊게 본 터라 이 작품 '보이후드'는 극장에 가는 발 걸음 부터 몹시 두근거렸다. 과연 리차드 링크레이터는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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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링클레이터가 1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조금씩 만들어 온 이 '진짜' 성장담. 작은 의미로는 한 소년, 더 큰 의미로는 한 가족의 성장담을 담은 이 영화는 무엇보다 그 세월 속의 평범하고 보편적이지만 소중한 일상 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지만 영화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요, 오히려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3시간에 나누어 담기엔 숨 가쁘기 까지 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감독은 시간의 흐름을 일부러 표현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관객에 이 압축된 3시간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2년이라는 세월을 문득 돌아보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하고 있다. 즉, 보통의 영화가 사용하는 '몇 년 후'의 자막은 쓰지 않을 뿐더러, 마치 우리가 실제 삶에서 10여 년 전을 추억하며 '그 때가 정말 엇 그제 같은데..'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 들도록, 놀라운 3시간의 압축 물을 만들어 냈다. 이 것만으로도 '보이후드'는 놀라운 3시간의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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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를 통해 새삼 느꼈던 감정은 최근 들어 종종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볼 때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감정이었는데, 내가 너무 일반적인 영화의 흐름 혹은 템플릿에 익숙해져 영화적인 선입견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운전하는 장면을 보다가 조금이라도 부주의한 장면이 나오면 아마도 사고로 이어지겠지 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절로 발동하고, 비슷한 이유들로 기존의 영화적 방식에 익숙해져 나도 모르게 다음을 유추 (결국엔 착각)함으로 인해 미리 몇 가지의 결과를 대비하게 되는 습관 말이다. '보이후드'를 보면서도 그런 장면들이 여럿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리차드 링크레이터는 이런 순간들을 그리면서 그 어떤 자극적인 사고나 극적인 요소로 이끌지 않고 있다. 글의 서두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저 일상, 일상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매일 살고 있는 일상 말이다. 영화는 이 일상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시종일관 특별함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냥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덤덤히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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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0년 넘는 시간의 일상을 늘어 놓는 것 만으로도 사실 충분히 인상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하지만 '보이후드'가 정말 대단한 영화라는 것은 후반부 리차드 링크레이터가 드디어 본인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꺼내 들었을 때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을 보여주기만 했던 그는 주인공 소년이 다 커서 부모의 곁을 떠날 즈음이 되자, 하나 씩 감정이 심하게 동요할 만한 장면들을 선사한다. 스포일러 랄 것도 없지만, 즉 알고 있어도 이 장면에서 이 대사를 들었을 때 그 누구도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직접적인 이야기는 피하고 말하자면,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스럽지만 다시금 진심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순간을 담고 있으며, 아마 내가 부모였다면 그 장면에서 더 큰 감정적 공감으로 인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참 인상적이었다. 패트리샤 아케이드의 연기도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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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더 놀라웠던 것. 마치 엄청난 반전 영화의 끝에 그 반전의 내용을 알았을 때 만큼의 충격을 받았던 소름 돋는 순간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사실 난 앞서 이야기한 부모 곁을 떠나는 주인공의 대화 시퀀스에서 영화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한 시퀀스를 더 준비한 리차드 링클레이터는 비로소 본인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이 영화 감독이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아마도) 쉽지 않았을 제작과 촬영을 거쳐 끝에 하고 싶었던 말은 놀랍게도 '순간' 이었다. 12년이라는 세월을 실제의 시간으로 촬영하고 나서야 들려준 해답이 순간 이라니. 아, 정말로 소리 내어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올해 극장에서 느꼈던 가장 황홀한 경험이자 놀라운 순간이었다. 너무 진부해서 한 편으론 오그라들 수도 있는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 해답을 찾은 감독이 관객에게 진정성을 얻고자 긴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순간이라니. 순간의 중요성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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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직전까지의 내용 만으로도 '보이후드'는 충분히 올해의 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지만, 이 마지막 장면 아니 순간을 통해 '보이후드'는 내게 있어 정말 중요한 영화가 되었다. 나와 같은 경험을 더 많은 이들이 하길 바라며.



1. 극 중 소년의 누나로 나온 배우 로렐라이 링클레이터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 리차드 링크레이터에 딸이에요. 그렇다면 영화 속 아버지로 나온 에단 호크와의 피임 관련 대화 시퀀스에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던 행동이 연기 만은 아니었겠네요.


2. 리차드 링크레이터의 영화 답게 영화 음악이 참 좋습니다. 극 중 밴드 활동을 하는 에단 호크가 부르거나 들려 준 노래들이 정말 좋아요.


3. 꼭 보세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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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즈 러너 (The Maze Runner, 2014)

시리즈가 완결되어야 알 수 있을 것



'메이즈 러너'는 포스터와 스틸 컷, 대략의 줄거리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 까지 관객에게는 매우 최소한의 정보 만이 제공되며, 그 최소한의 정보량 때문에 궁금증과 아쉬움이 모두 들게 마련인 그런 작품. 영문도 모르고 미로로 둘러 쌓인 어떤 곳에 어느 순간 부터 갇힌 채 살게 되어 버린 아이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소년들)이 주인공이며, 영화는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똑같은 방식으로 이 곳에 오게 된 신참 주인공이 새롭게 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왜 이 신참은 다른 소년들과 조금 다른 지에 아주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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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즈 러너'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대한 미로를 달리는 소년들, 그 안에 갇힌 소년들에 관한 얘기다. 여기서는 유사 장르에서 이미 수없이 보아 왔던 클리셰들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 의문점 투성이의 현실과 미로 안과 밖의 또 다른 미지의 세계, 그리고 무리를 짓게 된 구성원들 간의 갈등. '메이즈 러너'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이 구성원들이 모두 소년 (나중에 소녀가 등장하기는 하지만)들로만 이뤄져 있다는 점 정도일 텐데 이마저도 아주 신선한 구성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소년들로만 이뤄진 무리라는 특성을 살린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지의 존재로 일종의 크리쳐들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이 작품이 선택한 미스터리의 한 조각이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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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본 이유는 단 하나였는데, 시리즈로 기획되었다는 사전 정보 때문이었다. 시리즈로 제작되는 작품의 경우 간혹 속편이나 추후 작품들에서 잠재력이 폭발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최악으로, 절대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면 시리즈 물의 첫 번째 작품은 최대한 관람을 하는 편이고, '메이즈 러너'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 물의 특성 상 첫 편에서는 거의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메이즈 러너'는 좀 너무했다. 그리고 그 비밀이라는 것이 장르의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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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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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언덕 (Hill of freedom, 2014)

홍상수의 시간



홍상수 감독이 최근 작품들에서 관심을 가졌던 형식적인 측면은 '시간'이었고, 내용적인 측면은 '착함' 그리고 '관계' 그 자체에 대한 것들이었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우주를 발견해 내는 그의 영화 답게, 이번 신작 '자유의 언덕'은 더 직접적인 시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시간이라는 것을 형식 그 이상의 주제로 이끌어 내며, 이를 영화 안에 머물지 않고 영화 밖 현실로까지 끌어내는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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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최근 작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의도적으로 시간의 재배열, 그리고 꿈과 현실의 모호함과 관계에서 오는 각자의 기억을 통해 매번 같은 이야기 같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는데, '자유의 언덕'은 '생활의 발견' '극장전' 등 김상경이 주연을 맡았던 작품들이 담고 있었던 남녀간의 이야기까지 결합한 버전의 또 다른 시간의 관한 작품이었다. 이전 작품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가끔은 무심한 듯 이것이 꿈이어도 상관없고 현실이어도 상관 없으며, 또한 누구의 이야기가 맞고 틀려도 상관 없다는 식으로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었는데, 이번 작품은 이런 모호함 보다는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시간의 재배열에 대해 형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장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중간 중간 화자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시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극중 서영화가 연기한 '권'이 '모리 (카세 료)'가 남긴 편지를 읽는 장면들을 중간 중간 삽입하여 그 때마다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된다는 것을 영화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거의 첫 장면에서 '권'이 모리가 남긴 편지를 가지고 어학원 계단을 내려오다가 떨어트려 그 편지의 순서가 바뀌게 된 것은 이 영화가 갖게 된 형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자유의 언덕'은 상당히 친절한 방식으로 이 시간의 재배열, 아니 각각의 시간에 대해 시작과 끝을 분명히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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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뒤 섞여 버린 편지 속 일기 같은 이야기의 순서를 제대로 맞춰보려는 노력도 해보았으나, 사실 이렇게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재조합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다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는 홍상수의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자연스러운 영화가 되었겠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시간의 뒤 섞임을 설명하고 있는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감독의 의도는 물론 보는 이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일종의 인과관계의 무상함에 대한 이야기로 느꼈다. 처음 이 이야기가 뒤섞인 줄 모르고 어떤 에피소드를 보게 되면 저 인물들이 왜 저런 대화를 하는 지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다음 이 이야기가 본래는 이 에피소드 이전 시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 저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었구나'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이 영화를 보게 되는 첫 번째 방법인데, 이건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처럼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읽게 되면 너무 심심한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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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라는 설정.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대사가 영어로 진행되는 설정은 구성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그 전달 되는 어감 때문에 다른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홍상수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아마도) 말하고자 했던 것 중 하나인 일상 속에서 번번히 벌어지는 '무례함'에 대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일본인으로서 북촌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게 된 모리는 처음 만나는 한국 사람들로 부터 매번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일명 호구조사 라고도 하는 이 일반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사람들의 자세는 친해지기 위한 선의인 경우도 있고, 무언가 의심스러움으로 인한 경계심도 있으며, 정말 별다른 감정 없이 의례 던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무덤덤히 다루고 있는 모리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다보면 별다른 동기 없이도 모리의 입장에서서 약간의 불쾌함이나 피곤함이 느껴진다.


모두들 각자의 방식이 있고 바라는 바가 있을 텐데, 외국인인 모리의 상황을 빌려 보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대의 대한 배려보다는, 혹은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그러했다 하더라도 결국 온전히 홀로 의지에 따라 있고 싶은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 무례를 범한다. 여기서 '무례함'이란 단순히 극 중 이민우가 연기한 캐릭터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불쾌함을 주는 경우 외에도, 불쾌함을 주지 않았을지라도 극 중 '상원 (이의성)'이 연기한 캐릭터가 모리를 대하는 경우처럼 그것이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을 지라도 100% 내 의지로 행해진 결과는 아니었다는 것까지 포함된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뭐랄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특히 영화에서) 우연과 운명에 대한 기대감에 고취되어 있는데, 한 편으론 그저 스스로가 처음 원했던 계획대로만 끝까지 (그것의 성공여부와는 상관없이) 진행하기 어려운 사회와 관계라는 존재의 피로감을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식으로 표출하고 있는 듯 했다. 그것과 연결지어 이번 작품에서 특히 많이 등장한 '행복해요?'라는 질문은 이렇듯 나 자신을 오롯이 제어하지 못하는 사회 속 인물들에게 던지는 질문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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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야기를 처음 꺼냈던 '인과관계의 무상함'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이 뒤섞인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면서 극 중에 펼쳐진 일종의 에피소드들의 인과관계를 맞춰보고 논리를 완성하게 되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홍상수 감독이 전달하려는 바는 물론 이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만약 이 이야기들이 정상적인 시간의 순서대로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뒤섞여 있을 때 불쾌하거나 무례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과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관객이 이 인과관계의 퍼즐을 맞춰가고 있을 때 쯤 몇 가지는 맞추었다는 착각을 하도록 힌트나 (관객 스스로가 생각하는) 답을 던지고 있지만, 일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무관심한 채 그냥 내버려둔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모리가 누군 가와 싸웠다는 것만 알 수 있도록 하고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처럼).


즉, 홍상수 감독은 관객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이용해 관객들이 오해하고 착각하도록 만들고, 너희 들이 틀렸어 라는 답을 짠~ 하고 내어 놓으며 반전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영화를 끝내고는 관객들이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 만약 '자유의 언덕'이 더 재기발랄하고 형식을 강조하는 작품이었다면 아마도 편지에 쓴 거의 모든 이야기가 끝난 마지막 게스트 하우스 장면에서 영화가 끝났을 것이다 (사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편지의 이야기가 다 끝난 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남겨둠으로서, 이 이야기를 영화 안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라고 마무리 지었었다면, '자유의 언덕'에서는 '자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직접적으로 묻고 있는 듯 했다.


홍상수의 영화는 이번에도 참 놀랍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계속 더 발전하고 있다.



1. 영화 속에 등장한 북촌 코스는 한 번 쭈욱 돌아봐야 겠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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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The Internet's Own Boy, 2014)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다



이번 EIDF 2014에서 내가 두 번째로 선택한 작품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레딧, RSS 등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애런 슈워츠에 관한 작품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The Internet's Own Boy, 2014)'다. 원제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인터넷을 위해 태어난 소년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우리 말 제목인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는 좀 더 직접적으로 그의 편에 서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IT업계에 있긴 하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난 뒤였다. 앨런 슈워츠는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블로그를 이용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RSS를 개발한 것은 물론, 저작권과 관련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C) 역시 만든 장본인이다. 특히 그는 매우 어린 나이에 이미 프로그램에 눈을 떠서 자신이 생각하고 하고자 하는 바를 코드로 구현 하는 데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사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할 수는 있었지만, 제대로 그의 인생에 대해 특히 천재 프로그래머로서의 면면 외에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이 작품을 통해서였다. 이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 앨런 슈워츠는 단순한 천재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진심으로 더 나은 세상을 원했던 용감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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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줄거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레딧, RSS 등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해커 애런 슈워츠. 그가 2013년 1월,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미 정부의 정보통신 제도에 반기를 들고 인터넷 사용자의 권리 옹호에 힘썼던 그의 일대기를 돌아보며, 현대 정보 통신 이면에 숨어 있는 통제와 권위의 구조를 파헤친다. 무엇이 그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는가? 2014년 Hot Docs 개막작


세상을 바꾼, 혹은 바꾸려 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보면 감탄과 동시에 우러러 보게 되는데, 앨런 슈워츠의 경우는 정말 최근 내가 알게 된 누군 가의 삶 가운데 가장 진심으로 우러나와 그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가 주장했던 것들은 그가 천재 개발자나 해커여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해할 만한 평범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그 문제를 바로 잡으려 하거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순 없을 땐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역시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던. 그래서 천재 해커로서 그가 이룬 것들 보다 오히려 사회운동가로서 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더 대단하고 인정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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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가 사회의 불합리와 싸워온 과정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너무도 보편적이고 뻔하게만 느껴지는, 바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명제였다. 더 나은 세상은 누구나 꿈꾸지만 막연하거나 실제로는 이를 위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진심으로 이를 위해 싸우기를 주저 하지 않았던 (겁내지 않았던 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도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몹시 두려워 했고 힘겨워 했다) 애런 슈워츠의 삶과 행동을 보니 무언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 그러니까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만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시스템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좋은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 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애써 생산한 콘텐츠를 너무 쉽게 도용하는 잘못된 사용과 이해가 만들어 낸 상황들 때문이기도 한데, 이 점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좀 더 공유 보다는 만든 사람의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 시스템을 만들게 된 계기와 이후 그의 삶에서 그가 보여준 정보 공유가 한 사회, 아니 세대와 역사에 끼치는 영향을 보고 나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작게 생각하면 정보라는 것은 생산하거나 처음 취득한 사람이 개인적 이익의 측면 때문이라던가 아니면 정말 속 좁지만 내가 어렵게 알게 된 걸 그저 남이 쉽게 알게 되는 자체가 못 마땅해서 지식 공유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애런 슈워츠의 경우 처럼 이를 더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식이 한 사회의 단위로 공유될 때, 그 이전엔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까지 가능한 가를 그가 설파 한 논리는 물론 실제 그의 생각을 믿고 있던 이들이 이뤄낸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애런 슈워츠는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프로그램 안에 갇혀 있는 우리들은 미처 보지 못했던,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공유라는 마법의 스펙트럼이 코드로 쫙 머리 속에 펼쳐졌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의 삶에 진정으로 감동 받았고, 단순히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가 만들고자 했던 '더 나은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고, 무엇을 행동으로 옮길 까를 고민해 보게 되었다.



[EIDF]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 다시보기

http://www.ebs.co.kr/replay/show?prodId=112658&lectId=10245365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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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인디게임 (Indie Game: The Movie, 2012)

모든 인디 제작자가 겪게 되는 일들



정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거기다가 인터넷에서 다시 보기로 까지!) EIDF! 매 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영화제라 이번 역시 어떤 작품을 먼저 볼까 고르던 중이었는데, 일단 가장 구미가 당겼던 '인디게임'을 선택하였다. 뭐 게임이라면 워낙 관심이 많고, 지난 해 흥미롭게 읽었던 조던 매크너의 '페르시아 왕자 개발 일지'처럼 내가 평소 즐기는 게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지 궁금했기에 주저 없이 이 작품을 가장 먼저 택했다. EIDF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간략한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여기에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젊은이들이 있다...에드먼드와 토미는 게임 <Super..Meat..Boy>의 출시를 7개월 앞두고 있고,..필은 4년 동안 준비한 게임 <FEZ>의 공개를 5개월 남겨두고 있다...화려한 그래픽으로 가득한 스크린 뒤에는 개발자들의 고난과 역경만이 계속되는데……...과연 게임은 무사히 완성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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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인디게임 한 편이 어떤 과정, 특히 소비자는 미처 알기 어려운 힘겨운 과정과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출시가 가능한지 그 이면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론 사실 '인디게임' 이라는 제목 가운데 '게임'에 더 흥미가 느껴져서 보게 된 작품이었는데, 보고 난 느낌은 '인디'에 더 전반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게임 측면으로는 나도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엑스박스 마켓 플레이스에 출시되는 인디 게임을 다룬 이야기라 하나 하나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역시 '인디'게임의 제작 과정을 소재로 했다는 것. 대형 게임 회사에서 하나의 게임이 출시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물론 이 과정도 나름 흥미로울 것이다) 1~2명의 개발자가 기획, 개발, 디자인, 퍼블리싱, 마케팅까지 담당하는 독립적인 제작과정의 이야기는, 그 성공 여부를 떠나 과정에서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게임 개발이라는 특성상 홀로 사회와 멀어져 오랜 시간을 개발에만 몰두하거나, 그렇게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개발한 게임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기대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심리적 상태를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에서는, 이 독립적으로 게임을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싸움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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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인디 게임과 그 시장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부터 출시까지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십분 공감할 만한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서비스를 운영했던 입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보기도 했고, 특히 최근 다른 새로운 서비스(제품)를 처음부터 하나 씩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터라, 이들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는 없었다. 게임에 관심이 있는 일들은 물론, IT업계에서 기획, 개발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본다면 아마 여러 부분에서 공감하며 즐길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EIDF는 정말 감사하게도 방영 시간을 놓친 작품이라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보기를 제공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아래 링크를 통해 감상하길 바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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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왕 (The King of Jokgu, 2014)

이토록 진지한 SF영화



장안의 화제인 '명량' 아니 '족구왕'을 보았다. 처음 '족구왕'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땐 그 제목과 더불어 코믹함이 연상되는 포스터와 스틸컷들로 인해, 아주 유쾌하고 코믹한 청춘 영화일 것으로 예상했다. 대부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본 듯 하나, 내가 본 '족구왕'은 조금 달랐다. 극장에서 막이 오를 때까지만 해도, 아니 영화 중반 까지만 해도 이미 알려진 것과 같은 코믹, 청춘 영화인 줄로 알았는데 중반 이후 부터는 점점 이상한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더니 결국 엔딩에 가서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족구왕'은 완벽한 SF영화다. 너무 진지하고 영화 스스로도 별로 이를 설득하려 하지 않을 뿐이지, 따지고 보면 이처럼 자연스러운 SF영화가 또 어딨나 싶다. 마치 극 중 소재로 등장하는 '백 투 더 퓨처'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시간 여행을 다룬 하지만 그 여행을 바라보는 입장이 주인공이 아닌 그 외의 인물들이라 미처 깨닫지 못하는 그런 SF영화가.


(굳이 따지자면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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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주인공 홍만섭 (안재홍)이 '난 사실 미래에서 왔어'라는 대사를 할 때만 해도 이것이 단순히 코믹 요소로 활용된 그저 지나가는 대사로만 여겼었다. 실제로 영화는 그 이후 현재의 만섭에게만 집중하지 이 '유머'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후반부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만드는 그 영어 수업 발표를 보면 조금 의아한 생각도 들었는데, 초반에 등장해서 별로 (다른 유머에 비해) 먹히지 않았던 이 시간 여행 유머를 진지하게 다시 꺼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확신하지 못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 체육 대회 이후 주인공 들의 에필로그를 다룬 장면에서 영화가 만섭을 그리는 방식을 보고서는 확신하게 되었다.

'아, 이건 진짜 백 투 더 퓨처 같은 SF영화였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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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진지하게 이 영화를 SF영화, 그러니까 만섭이 극 중 했던 말 대로 그가 미래에서 온 것이라고 가정 한다면 영화의 부족한 몇 몇 부분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사실 영화 초반 가장 설득력이 떨어졌던 부분은, 군대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족구를 했다곤 해도 제대 이후 복학한 만섭이 그렇게 족구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조금은 부족해 보였었다. 뭐랄까, 그냥 '우린 영환 족구왕이니까 족구는 그냥 필연적인거야'라는 정도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는데, 앞서 이 영화를 만섭의 말 그대로 따르자면 이 부분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죽음을 앞둔 노인 만섭은 다시 청춘으로 돌아와 그 당시 맘 껏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게 되는데, 그 후회를 만회하기 위해 돌아왔다면 군대에서도 그리고 복학해서도 족구는 물론 모든 생활에 저리도 열심인 것이 모두 한 번에 납득이 된다. 처음엔 그냥 족구도 이유 없이 좋아하고, 아르바이트와 생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한)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는 만섭의 모습이 그냥 그의 타고난 성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역시 성품이라기 보단 20대에 맘껏 해보지 못했던 후회로 인한 '열씸'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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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무슨 일을 겪어도 단 한 번도 남에게 화를 내지 않는 만섭의 모습 역시, 억척스럽게 일하는 모습과 겹쳐서, '에이, 요새 저런 청년이 어딨어'라고 생각할 정도의 착한 성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보다는 이미 다 겪은 자로서의 여유와 편안함에서 나오는 배려라고 생각하니, 만섭의 표정 하나 하나가 다르게 느껴졌다. 즉, 정말 힘든 상황과 열악한 멤버들과 함께 하는 족구 대회여도 그가 화를 내거나 포기하지 않는 건, 그에겐 영화 속 지금이 그 토록 바라던 제 2의 기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흔히 '청춘'을 이야기할 때 청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는데, 대부분 그 청춘을 보내고 있는 당사자들은 이를 모르기 마련이다. '족구왕'은 분명 청춘 영화이지만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 '청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뒤 늦게 알아채고는 뼈저리게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주인공이 다시 그 때로 돌아가 다른 청춘들과 함께 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자신의 청춘을 구하는 동시에 과거의 청춘들도 구해내는 이야기랄까. 만섭에게는 이렇듯 시간을 헤아릴 수 없는 표정이 담겨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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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극 중 등장한 윤준경의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이라는 싯구도 아주 직접적이었다. 만약 돌아가고 싶은 청춘의 그 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것이 족구든 아니든 간에 홍만섭처럼 정말 열정적이면서도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족구왕'은 정말로 의외의 감동을 느낀 영화였다.

청춘을 그렸지만 정말 진지한 가운데 티내지 않으면서 시간 여행을 다룬 SF영화. 아마도 프리퀄이 있다면 만섭이 20대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을지도.



1. 저는 진지합니다.

2. 전 영화가 진지하게 이런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증거를 아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본문에 언급한 내용 말고도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만섭의 필살기를 영화가 남용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딱 두 번만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엔딩 에필로그 부분에 다른 인물들과 떨어트려 만섭의 이야기를 홀로 정리했다는 것. 즉, 코믹 요소를 지우고 드라마와 감동적인 부분을 더 추가했다면 (그래서 CG로 활용된 부분도 덜어냈다면) 아마 이 영환 일반적인 SF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 하지만 이렇게 관객 대부분이 오해하도록 만든 방식이 더 좋았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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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海霧, 2014)

내 몰린 이들의 잔혹극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각본을 썼던 심성보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고 봉준호 감독이 기획과 제작을 담당한 영화 '해무'를 보았다. 국내 영화 계는 특히나 어떤 스타일의 영화가 갑자기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오곤 하는데, 이번 여름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두 글자 제목의 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엄청난 기세로 기록을 모조리 갈아 치우고 있는 '명량'과 헐리우드 스타일을 가져온 여름 오락 영화 '해적', 그리고 이 작품 '해무'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조금 다른 분류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던 '군도'를 제외한다면 세 작품 중에 가장 기대한 영화는 바로 '해무'였다. 봉준호 라는 이름을 빼더라도 영화의 시놉시스나 장르를 보았을 때 가장 흥미를 끄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심성보 감독의 '해무'는 어쩔 수 없이 벼랑 끝으로 몰린 이들이 서로 뒤엉켜 벌이는 잔혹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 (주)해무. All rights reserved


'해무'는 기본적으로 한정된 공간 (바다 위 고기잡이 배)을 배경으로 한정된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배경으로는 IMF시기를 다루고 있어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한 선장과 선원들의 이야기와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 목숨을 걸고 밀항을 시도하는 조선족의 이야기를 겹쳐 놓는다. 이렇게 '그럴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의 이유를 배경으로 가볍게 설명한 영화는 바로 먼 바다로 나가 중심 사건을 진행한다.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모두 설명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시간일 수 밖에는 없었는데, 그래도 비교적 각자의 배경을 짧게 소개한 탓에 큰 무리 없이 녹아드는 편이고 무엇보다 이들이 처하게 되는 상황의 특성 상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 상황에 빗대어 각각을 바라보는 편이 흥미로웠다.


여기저기 녹이 쓸고 비린내가 진동하며 기능적으로도 수리할 곳이 많은 이 배(전진호)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확실히 이미지 적인 측면에서는 영화의 분위기에 딱 걸 맞는 도구였다고 생각된다. 특히 기관실의 미장센은 갑판 위와 확실히 구별되는 이미지로 공포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활용된다.계단과 계단 아래, 쇠와 철로 된 파이프들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공간이 생겨남으로서 관객에게 긴장감을 전달하고 있다.



ⓒ (주)해무.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해무'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선장을 포함해 여섯 명의 선원들이 가끔은 하나의 공동체처럼도 보이지만 사실은 다 각자의 욕망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쉽게 생각하면 김윤석이 연기한 선장 혼자 사이코 처럼 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도 그렇게 된 데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보긴 힘들고 (그가 전진호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래서 이상하다기 보다는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김상호가 연기한 갑판장 캐릭터 역시 조직과 대의라는 것에 함몰된 인물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이 사고 속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만 몰두하는 이희준이 연기한 캐릭터 역시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보면 박유천이 연기한 주인공 캐릭터가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는 가장 설득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한 편으론 그가 홍매 (한예리)에게 가졌던 감정이 인간 애인지 사랑인지 조금은 모호한 것이 이 작품에는 더 어울렸던 것 같다.



ⓒ (주)해무. All rights reserved


'해무'가 더 깊은 몰입도를 전달하는 데에는 영화 음악의 공도 빼놓을 수 없겠다. '해무'의 영화 음악은 정재일이 담당했는데 긱스 출신으로 천재 소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그 정재일이 맞다. 정재일의 음악 스펙트럼이야 워낙 넓다 보니 영화 음악도 나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기대보다도 더 멋진 영화 음악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바다라는 배경과 그 위에 홀로 떠 있는 배라는 한정적 공간의 분위기를 공포스러우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데에는 음악의 힘이 컸고, 전체적으로 영화가 담고 있는 슬픔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의 표현 범위 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해 낸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근래 나온 한국 영화의 사운드 트랙 (스코어) 가운데 단연 인상적인 음반이었다.



ⓒ (주)해무.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해무'는 끝까지 다 보여준 영화는 맞는데 기분은 뭔가 더 갈 때까지 가 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뒷맛이 남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야기 자체는 더 공포나 스릴러로 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구조라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해무'의 이야기는 본래 장르적이기 보다는 그 가운데 시대의 고통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지로 내 몰릴 수 밖에는 없었던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로 담는 데에 더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잔혹극은 더 슬프게 다가왔다.



1. 이제야 관객들이 한예리 라는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되겠네요!

2. 트위터에도 썼지만 이희준과 한예리가 함께 출연하다 보니 '환상속의 그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래서 극 중 이희준의 집착이 왠지 이유 있게 느껴졌다는 ㅎ

3. 본래는 극단 연우무대의 작품이 원작으로 알고 있는데, 연극 무대에서는 이 작품이 어땠을지 궁금해지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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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2014)

영화, 그리고 영화 밖 이야기


'최종병기 활'을 연출했던 김한민 감독의 신작 '명량'을 지난 주말 보았다. 이미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명량해전을 영화 화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터 이 영화엔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 더불어 흥행 관련해서도 어지간해서는 흥행 실패하기 힘든 소재라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다. 여기에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작용해서 마치 '레 미제라블'이 그랬던 것처럼 '명량'은 최단 기간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고 (여기서 굳이 독과점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최대 관객 기록을 세울지도 모를 기세로 달려가고 있다. 흥행과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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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에 대한 중론을 모아보자면 초반 부는 지루하고,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 자체보다도 관객들이 더 많은 감동을 얻게 된 다는 점일 텐데, 후자는 확실히 그런 편이다. 이순신이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영웅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만으로도, 그리고 이 이순신을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없을 수가 없다. 즉 충무공 이순신은 어떻게 그려도 역사적 인물 자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 있고, 최민식이라는 배우 역시 이를 오버하지 않고 최대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것이 더 큰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물론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표현해 내기에 '명량'이라는 작품의 틀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이건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순신 외에 다른 캐릭터들은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다. 특히 일본 장수 캐릭터들을 비롯해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은 각자의 이름 소개 외에는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지 못할 정도로,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기 보다는 그저 소품으로 존재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이 영화엔 이미 출연한다고 널리 알려진 배우들 외에도 까메오나 조연 형식으로 상당한 수의 이름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활용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했다. 특히 진구가 연기한 임준영 캐릭터와 그의 아내를 연기한 이정현이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는 여러 가지로 이상했다. 한국 영화가 자주 범하는 실수인데, 관객에게 '이 장면은 감동적인 장면이야, 감동을 받아야 돼'라고 강요하는 경향이 강해 오히려 이질감이 드는 장면이 많았다 ('명량'이 갖고 있는 정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다수의 관객에게 실제로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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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더 해보자면, 이 영화는 각각 부분 부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여러 가지로 어색하고 맞지 않은 구성이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한 초반 부도 개인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다지 큰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몰라도 왜군의 규모나 분위기를 보여주는 초반 장면들은 음악의 힘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크긴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내용과는 별개로 한국 배우들이 왜군과 그 장수들을 연기하는 상황과 제법 괜찮은 이미지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고증의 문제는 별개다. 참고로 명량의 고증 수준은 그리 높지는 않은 듯 하다). 초반의 시퀀스들도 영화 전체와 마찬가지로 각각 별개로 놓여있고 유기적으로 엮여 있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의 이야기의 비중을 줄이고 왜군들의 이야기의 비중을 높인 것은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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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 적인 이야기로 '왜 지금 이순신인가?'라는 담론은 쉽게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들의 정부를 향한 불만 들이 가득 찬 시점에서 이순신이라는 리더의 모습은 국민들이 바라는 이상향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극 중 김태훈 씨가 연기한 캐릭터의 대사 중에 '왜 대장선이 맨 앞에 있어'라는 식의 대사가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집약적으로 이순신의 리더쉽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보통 리더는 뒤에서 빠져 있고 지시를 하게 마련인데, 명량의 이순신은 부하들이 모두 뒤에 빠져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홀로 맨 앞에서 맞서 싸우는 리더쉽을 보여준다. 물론 리더라면 응당 이러한 모습을 손수 보여주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일종의 대리 만족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려서 더 씁쓸한) 을 느낄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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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명량의 초반 부는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영화가 지루해서, 이순신 장군이 겪는 고초가 공감 되어서가 아니다. 바로 명량 해전이 벌어진 장소가 얼마 전 참혹했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그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물살을 바라보며 전략을 떠올릴 때 검고 빠른 바다가 스크린 한 가득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어찌 세월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우리가 세월호 뉴스를 들을 때 수 없이 많이 듣던 조류와 물 때의 이야기가 나올 땐, 그리고 검은 바다의 이미지는 세월호 사고와 정부의 무능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가 생각나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인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클라이맥스 부분을 지나쳐 엔딩을 맞게 되어도 별다른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명량'을 온전히 감상하기엔 세월호 사고의 상처가 너무 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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