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 IMAX 3D, 2014)

폼 잡지 않는 영웅들이 왔다



처음 마블의 새로운 시리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대한 소식과 포스터를 보았을 땐, '어벤져스'와 그 세계관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바쁠 텐데 그 사이에 마블이 왜 이런 부수적으로 보이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나 싶었다. 물론 목소리 연기로 브래들리 쿠퍼와 빈 디젤 등이 출연하고 있기는 했지만 크리스 프랫은 마블의 새로운 시리즈를 이끌기에는 부족해 보였고, WWE 프로레슬러인 바티스타와 아바타의 그녀 조 샐다나의 출연진 역시, '어벤져스'에 맛을 들인 관객들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마블의 새로운 시리즈니까 직접 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보게 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통일처럼 대박이었다. 무엇보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가볍고 폼 잡지 않는 우주 활극이라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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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피터가 어른이 되어 처음 등장하는 타이틀 시퀀스에서부터 이 작품의 성향을 한 눈에, 그리고 한 귀에 알아차릴 수 있었을 정도로 '딱' 어울리는 시퀀스였는데, 올드팝과 함께 이름 모를 행성을 거닐며 춤을 추는 피터의 모습은 '우린 폼 잡지 않고 유쾌한 영화야'라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사실 내가 감독이라면 이 영화에서 가장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부분은 새롭게 관객에게 선 보이는 이 캐릭터들에 대한 소개였을 텐데, 제임스 건 감독은 주요 캐릭터가 최소 5명이상 등장함에도 (악당들과 주변 캐릭터들까지 하면 더 많고) 그들의 과거 사와 히스토리를 과감히 축소하거나 제한하면서 빠르게 본격적인 사건으로 이야기를 끌고 들어왔다. 물론 영화 속 모습으로 비춰볼 때 이들 각각의 이야기는 몇 편의 영화 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못할 정도로 (별도의 TV시리즈 분량이 필요할 정도로) 많은 사연과 뒷 이야기가 존재할 듯 한데, 그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충분히 소개하지 못한 것이 분명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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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블의 최근 작품들의 경향을 보면 홀로 완벽하게 독립된 작품을 보이는 반면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와 같이), 너무 세계관과 엮을려는 시도가 앞섰거나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서의 비중이 더 큰 나머지 독립적으로는 조금 심심한 작품이 된 경우도 있었는데 (토르 2),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어벤져스'의 떡밥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서도 충분히 홀로 서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었다. 이미 '어벤져스'의 다른 영화들에서 쿠키 장면으로 등장했었던 타노스나 콜렉터 캐릭터의 활용도 적절했고, 적과의 대립 관계도 기승전결의 흐름 안에서 딱 알맞게 풀어내고 있었다. 음.. 뭐랄까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마치 '카우보이 비밥'이 조금 연상되기도 했는데, 특히 지금은 캐릭터들 각자가 별로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지만 속편이나 (잘 된다면) 3편 정도에서는 꺼낼 수 밖에는 없는 구조로 되어 있어, 무언가 비장한 마지막을 예상하게도 되고 '어벤져스'와의 콜라보도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 기대(우려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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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이언맨'처럼 보는 순간 '와 짱 멋지다!'라고 생각했던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언가 좀 약하다고 생각했던 캐릭터들이 결국 영화가 끝날 땐 또 보고 싶은 캐릭터들이 되어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포스터만 봐도 이들의 컨셉이 약간 외인구단 같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각각이 묘하게 팀을 이루는 형태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리 와 닿지는 않았었는데, 영화의 후반부 이들이 진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되는 그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전히 이들의 조합에 동화되어 버리는 경험을 했다. 뭐랄까 다른 영화들은 팀으로 등장하는 경우 처음부터 팀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영화 내내 흐른다거나 아니면 캐릭터들 스스로도 우린 팀이 될거야 라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완벽한 팀이 되는 과정을 시종일관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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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영화 음악일 것이다. 이미 첫 장면에서부터 귀에 익숙한 올드 팝이 우주를 배경으로 흐를 때 알아차렸다. '아! 이 영화는 바로 이 묘한 균형의 지점을 아는 영화구나!'라고. 'Awesome Mix Vol.1'이라는 극 중 테입 제목처럼, 정말 끝내주는 음악들을 선곡한 이 작품은, 영화 음악이 장면과 정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몸소 보여준다. 단순히 기존 유명한 곡들에 묻어가는 장면들도 아니고, 그 곡의 감성과 위대함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그 곡이 왜 이 장면에 쓰였어야 했는지를 아무 설명 없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매치 시킨다. 정말 시대를 앞서가도 한 참 앞서간 곡이라고 생각했던 David Bowie - Moonage Daydream은 역시나 우주에 걸맞는 곡이었으며, 정말 유명해서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Marvin Gaye & Tammi Terrell -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는 이미 수 많은 영화에 삽입되었지만 아마도 이 영화로 더 오래 기억될 듯 하다. 그리고 잭슨 5의 곡을 이 영화에서 듣게 되다니. 그 자체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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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어벤져스 2'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의 쉬어가는 코너라고 생각했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어벤져스' 못지 않게 기다려지는 작품이 되어 버렸다. 이 폼 잡지 않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또 어떻게 될까.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팀의 새로운 이야기가 정말 기다려진다!



1. 전 첨에 바티스타가 출연하는 지도 몰랐는데 등장하길래 까메오 정도인가 했었는데 비중이 완전 많군요. 별도로 연기 수업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어요.


2.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게임 '매스 이펙트'가 연상되더군요.


3. 바로 사운드 트랙과 원작 그래픽 노블을 질렀어요. 사운드 트랙은 도저히 안살 수가 없을 정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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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블루레이 리뷰 (The Grand Budapest Hotel : Blu-ray Review)
웨스 앤더슨 미학의 정점이자 집대성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항상 그렇듯 미적인 요소와 이를 다루는 집착에 가까운 고집이 가득 담긴, 더 나아가 집대성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최근 작들의 경향을 절정으로 끌어 올린 작품이다.





촬영장에도 항상 수트 차림으로 등장한다는 이 멋쟁이 감독은, 단순히 멋을 부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끊임 없이 추구하고 연구하며 그 한계에 까지 이르러 본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런 의미에서 양면의 날이 모두 서 있는, 웨스 앤더슨의 미적 감각과 고민이 경지에 오른 그런 작품이라 하겠다.





일단 웨스 앤더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통해 이야기라는 것 자체에 집중한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과정인 스토리텔링에 집중한다. 이 작품은 구성 측면에서도 드러나듯이 몇 겹의 이야기가 액자 형태로 겹쳐져 있는, 그러니까 끊임 없이 누군 가가 다른 누군 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어딘가 과장되기도 하고 이상한 듯도 보이지만 늘 그렇듯 웨스 앤더슨 월드의 인물들은 그저 진지하다 (그래서 귀엽다). 특히 여러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번 작품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더욱 도드라지는데, 그 많은 캐릭터들 한 명 한 명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의 역할에 열심이지 않은 캐릭터가 없을 정도로, 웨스 앤더슨은 단순히 귀엽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닌 그들의 각자의 삶을 묘사하려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웨스 앤더슨의 양면의 날이 모두 서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1차적으로 미적 요소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미 전작들을 통해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 처럼 되어버린 집착에 가까운 좌우 대칭과 정렬의 구도는 1.37:1의 고전적인 화면 비에서 오히려 더 돋보이고 있으며 (웨스 앤더슨은 이번 작품에서도 수평과 수직의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강렬한 핑크 색으로 각인되는 전체적인 색감은 모든 것이 아기자기해서 어떤 장면을 담아도 엽서가 되었던 전작 '문라이즈 킹덤' 이상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특히 변화하는 화면 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물론 작품 내에서 화면 비는 단순히 비율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하지만 - 1930년대 장면들은 1.37:1, 1980년대 장면들은 1.85:1, 1960년대 장면들은 2.35:1 화면비로 각각 제작되었다 - 그 안에 담으려던 의도를 떠나서 웨스 앤더슨은 마치 자신의 미장센을 각각의 다른 화면비에 맞춰 최적의 미적 성과를 달성하려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의 전작들 보다 더 영화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용적으로 보았을 때 이번 작품은 웨스 앤더슨의 작품 가운데 가장 쓸쓸한 작품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이 쓸쓸함은 지금까지 얘기했던 아름다움에 대한 부분과 깊게 연관이 되어 있다. 앞서 웨스 앤더슨을 설명하면서 '그 한계에 까지 이르러 본' 감독이라고 했었는데, 바로 그 한계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실제로 예전 그의 작품들은 그저 아름답고, 귀엽고, 예쁘고, 낭만적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이건 그가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하는 감독이었기 때문인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그 아름다움이 현실에 가로 막힐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작품이기에 더욱 쓸쓸하고 한 편으론 슬픔이 느껴진다.






영화 속 구스타브의 이야기가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기자기한 배경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구스타브 라는 캐릭터 자체가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비현실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웨스 앤더슨의 영화였다면 구스타브의 희망적이고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끝까지 가져가거나 행복하기만 한 결말로 끝을 맺었을테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그 너머의 현실을 더 담아냈다. 그러니까 웨스 앤더슨은 자신이 항상 끝을 맺고 싶었던 순간이 결국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 만의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구스타브와 제로의 마지막 사연도 그렇고, 직접적으로는 그렇게 화려한 영상을 수놓던 영상이 흑백으로 그려지는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인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어딘가 모르게 애잔하고 쓸쓸한 영화였다. 중간 중간 웃기도 했지만 구스타브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재미있기 보다는 어딘가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려 홀로 애쓰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웨스 앤더슨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소중하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곱씹어 보고 나니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더욱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웨스 앤더슨 월드를 더 디테일하게 묘사하기에 블루레이만한 매체는 없을 것이다. 로케이션과 이미지, 미니어쳐 등 모든 환경은 선명한 화질로 확인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웨스 앤더슨이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색감과 톤이 의도대로 정확히 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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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전작 가운데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제작되었던 '판타스틱 Mr.폭스'가 특히 화질 측면에서 우수한 타이틀이었는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이에 못지 않은 (실사 영화임을 감안하면 더욱)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후반 부 장면에 따라 일부러 스타일을 올드하거나 미니멈한 형태로 연출한 장면을 제외하면 대부분 상당히 만족할 만한 화질을 보여주고 있어, 아마도 1.37:1 화면비의 영상으로는 가장 좋은 화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Blu-ray : Audio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도 의외로(?) 수준급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사실 극장에서 볼 때 영화 음악이 정말 좋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영화의 기본적인 사운드에 대해서는 크게 와닿는 부분이 없었는데, 블루레이로 다시 보니 다양한 소리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후반 부 액션과 추격씬에서는 다양한 소리들이 등장하는데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효과음들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앞서 이야기했던 멋진 영화 음악 역시 멀티 채널로 만나볼 수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블루레이에는 몇 가지 부가영상이 수록되었는데, 작품의 완성도나 기대치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분량의 부가영상이 수록된 것이 사실이다. 'Bill Murray Tours The Town'에서는 극 중 가상의 국가인 '주브로브카 공화국'의 배경이 된 도시 괴를리츠를, 출연자인 빌 머레이가 간단하게 소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별다른 꾸밈 없이도 마치 극 중 주브로브카 공화국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도시가 인상적이었다.






'Vignettes'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몇 가지 내용들을 진지하게 실제처럼 소개하는 구성을 갖추고 있는데, 첫 번째로는 쿤스트 박물관 주브로브카 강연 영상이 수록되었다. 즉, 극 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책을 쓴 작가가 강연을 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영상인데 짧지만 다양한 자료들로 이뤄진, 마치 PT를 보는 듯한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두 번째 역시 극 중 등장하는 '십자 열쇠 협회'의 정체를 소개하는 영상인데, 진지하게 만들어진 자료들 탓에 짧지만 보는 재미가 충분하다.




세 번째는 '멘들의 비밀 레시피'로서 극 중 등장하는 멘들 케익의 제조 과정을 차근 차근 소개하고 있다. 이 레시피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꼭 한 번 집에서 그대로 따라해봐야 겠다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The Making of The Grand Budapest Hotel'에서는 간단한 제작 과정을 담고 있는데 감독인 웨스 앤더슨을 비롯해 주요 배우들의 짤막한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두 번째 '십자 열쇠 협회'에서는 극 중 협회에 대한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마치 이 협회와도 같은 웨스 앤더슨과 배우들의 관계를 들려주는데, 주드 로의 경우 그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서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었다는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었다. 촬영장의 모습을 보면 배우들이 단순히 그를 존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동경하고 즐기고 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호텔 만들기'를 통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구석구석을 어떤 의미로 만들게 되었든지 소개하고 있으며, '세상 창조하기'를 통해 웨스 앤더슨이 창조한 주브로브카 공화국과 세계관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디테이한 소품들을 소개한다.





[총평]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의 미적 추구가 절정에 이른 작품인 동시에, 그의 전작들에 비해 많은 생각할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그저 예쁘고 귀엽기만 했던 웨스 앤더슨 월드는 그 뒷면의 현실을 떠올려보게 하는데 까지 확장되었으며, 이런 내면의 성장과 별개로 영화는 외적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AV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타이틀로 웨스 앤더슨의 팬이라면 요만큼도 주절할 필요가 없는 그런 타이틀이라 하겠다. 그래도 요만큼의 아쉬움을 더해보자면 이것 저것 타이틀 측면에서 패키지를 만들어볼 여지가 많은 웨스 앤더슨의 작품답게 좀 더 비용이 상승하더라도 소장가치 높은 구성의 타이틀로 출시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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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길들이기 2 (How to train your dragon 2, 2014)

집에 있는 고양이가 생각나는 속편



'쿵푸팬더'와 함께 드림웍스라는 스튜디오의 부활을 알렸던 '드래곤 길들이기'의 속편을 보았다. 전 편인 '드래곤 길들이기'는 당시 글에서도 썼던 것처럼 재미는 물론 교훈적이기까지 한 유쾌한 성공작이었다.



드래곤 길들이기 _ 교훈적이기까지한 드림웍스의 성공작



속편에 거는 기대는 사실 이보다는 더 단순했다. 전 편에 설명을 끝마친 캐릭터들을 더 확장시켜 더 많은 볼거리와 재미로 시리즈의 연속성을 이어갈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램 정도였다. 그런 기대에 비춰봤을 때 속편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작품이었다. 캐릭터들은 더 성장했고 성장한 그들에게 걸 맞는 스토리가 주어졌으며, 가족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새롭게 어른의 이야기도 추가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편에서는 막 길들여지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제는 다 길들여져 귀여움을 처음부터 뿜어 대는 투슬리스의 매력이 터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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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길들이기 2'가 선택한 전략이라면 몇 가지를 들 수 있겠는데, 전 편에서는 히컵과 투슬리스의 관계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바이킹(인간)들과 드래곤들의 전체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여기에 다른 형태로 이 관계를 바라보는 악당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 가운데 히컵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와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냈다. 개인적으로 이 같은 전략이 새로울 것은 없지만 속편으로서 안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부모에 관한 이야기는 그 중심이 히컵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둘 사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으로 본 부분이었는데, 히컵이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참 좋았다 (개인적으론 제일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렇듯 교훈 적인 내용을 강요하지 않고 적절히 녹여내는 시도는 전체 관람가의 아이들이 보는 영화로서도 괜찮은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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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드래곤들이 전 편에 비해 훨씬 만이 등장하고 알파의 경우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에 비해서는 더 스펙타클한 액션을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다. 마치 '아바타'를 연상 시키는 배경도 그렇고, 이 작품 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활강의 이미지가 더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을 100% 뽑아내지 못한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의외의 부분에서 만족 포인트를 느낄 수 있었는데, 바로 투슬리스 캐릭터였다. 아마 전 편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마치 강아지 같다'라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 이 표현을 이번에 확실히 정정해야겠다고 느꼈다. 투슬리스는 강아지 보다는 확실히 고양이게 가까운 캐릭터였다. 최근 길 고양이 한 마리를 몇 달간 보호하고 있는데, 투슬리스에서 몇 번이나 집에 있는 고양이가 느껴졌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 편에서는 길들여지는 과정 속에 있어 투슬리스의 고양이 같은 매력이 덜 뿜어져 나왔던 것에 반해, 히컵과 완전히 하나가 된 이번 작품 속 투슬리스의 모습은 정말로 고양이를 닮아 있었다. 작은 몸짓 하나도 고양이의 모습을 많이 연구한 듯한 티가 났고, 그 눈빛 역시 고양이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실제로 우리 집 고양이는 가끔 알파에게 복종하는 눈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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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러니하게도 집에 두고 온 고양이 녀석이 계속 보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집에 와서 무심한 녀석의 얼굴을 보니 더 웃음이 나기도 했고.


아마도 3편이 나올 것 같은데, 3편에서는 투슬리스도 히컵도 서로에게서 독립하여 홀로 서는 과정을 담는 (혹은 그런 결과를 담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1. 아래는 영화 보는 내내 떠올랐던 바로 그 고양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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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 민란의 시대

차라리 더 조윤의 영화였더라면



'범죄와의 전쟁'을 연출했던 윤종빈 감독이 다시 한 번 배우/스텝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만든 사극 '군도 : 민란의 시대'는 그의 신작이라는 점과 하정우, 강동원의 대결 구도 등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화려한 캐스팅은 물론이고 예고편에서 뿜어나오는 타란티노스러운 리듬감과 스타일은, 강동원이라는 보증되어 있는 비주얼과 함께 어떤 스타일리쉬한 액션 활극이 될지 큰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군도'는 위의 기대를 대부분 충족시킨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에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균형감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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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의 스토리는 대략 히어로물과 유사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능력도 없고 평범한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이미 대의를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해 오던 무리에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그들에게 훈련을 받아 그들이 오래 계획했던 대업을 결국 마무리하게 되는 중책을 맡게 되는 그런 구조인데, '군도'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조금씩 흔들렸다고 하겠다. 저런 스토리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 스토리가 관객에게 더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초반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공감을 얻어야 하고, 무리로 등장하는 선의의 그룹의 이야기 역시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이유가 필요한데, '군도'의 경우는 이 두 가지가 조금은 부족했다. 돌무치는 불운한 사건을 겪으며 도치가 되지만 이 성장 아닌 성장 과정에서 관객은 별다른 동요를 느끼지 못하고,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백성을 위하고자 하는 도적떼의 이야기 역시 더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시간도 깊이도 부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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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은 이 부족한 부분을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하려 하는데,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이 부분에서 필요했던 건 설명이 아니라 공감대였다는 점이다. 역사적인 내용은 설명으로 해결이 될 수 있었지만 이 설명 만으로는 지리산 도적떼가 이루려고 하는 진짜 세상과 주인공 돌무치의 울분이 생각보다 와닿지 않았다. 써놓고 보니 특히 돌무치의 경우 그 울분이 더 강렬하게 표현되어도 좋았을 법 했는데 너무 쉽게 대의에 섞여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즉, 개인적인 사정과 시대적인 사정이 결합하는 구조에서 둘 모두가 조금은 미지근하게 표현되다 보니, 전반 부는 조금 지루하고 후반 부는 빠르게 진행되나 감정적으로 공감되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강동원이 연기한 조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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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이 설정한 이 영화의 대립 구도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도가 아니라 둘 다 갖지 못한 자들의 싸움 구도였다. 재산은 물론 먹을 것 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백성들과 처음 부터 서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던 이의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앞선 군도들의 이야기는 진정성이 미처 다 어필되지 못했지만,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조윤의 이야기는 비교적 절제된 방식으로도 충분히 설명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후반 부의 클라이맥스에서도 도치가 아니라 오히려 조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결과까지 낳게 되었다. 솔직히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100% 이를 가능케 했다기 보다는 조윤이라는 캐릭터와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비주얼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긴 도포를 휘날리며 신선처럼 걷고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무를 겸비한 조윤은, 강동원이라는 배우를 통해 곱지만 강렬한 선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조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돌무치와 군도들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갖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기에, 말미에 가서도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적'이라기 보다는 또 다른 주인공 (사실상 주인공)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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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차라리 더 조윤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캐스팅은 어려웠을 지도 모르지만, 조윤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조금 더 많은 비중을 조윤에게 할애하고 지금과 같은 구도가 아닌 조윤에게 더 포커스를 맞춘 구도였다면, 혹은 돌무치의 비중과 공감대를 조윤에게 버금가도록 끌어냈다면 (사실은 조윤을 넘어서야 하지만) 더 흥미로운 구도의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도'는 한 편으로 감독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과 닮아 있는데, 여럿을 등장시키면서도 그 균형점을 잘 잡아내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은 조금은 그 균형이 흔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조윤 때문이가. 극장을 나온 뒤로도 계속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영화이기도 하다.



1. 타란티노 스타일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텐데 (실제로 '장고'에 수록된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통쾌함을 주지 못했다는 건 아쉬운 점이었네요.


2.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극 중 캐릭터들의 나이였죠. 나중엔 이성민씨가 연기한 대호역시 25정도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그 땐 정말 힘든 시기였나보네요;;;;


3. 처음 김성균씨가 등장했을 땐 까메오 정도인 줄 알았었는데 쭈욱 나오더라는. 결국 또 하정우의 오른팔인겁니까?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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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의 시대는 이대로 저무는가


일본 애니메이션, 아니 지브리의 팬으로서 어제 본 뉴스는 몹시 충격적이었다. 그 즉슨, 스튜디오 지브리가 더 이상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지 않고 앞으로 기존 작품들의 저작권 관리만 하는 회사로 남게 된 다는 전망이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아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과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는데, 전자는 요 근래 지브리의 성적이 연속적으로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후자는 그래도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일본은 물론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하나의 스튜디오가 이렇게 제작을 접을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존재는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내게도 지브리와 하야오는 인생의 여러 고비에서 위안과 행복, 메시지를 전달해 준 작품을 선사한 곳이었다. 그런 지브리이기에 이번 소식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번 소식이 전해진 결정적인 요인은 지브리의 최신 작 '추억의 마니 (思い出のマーニー, 2014)'의 흥행 부진이었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이 연출한 이 신작은 역시 최근 개봉했던 지브리의 '가구야 공주' 보다 도 흥행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위기는 점점 현실로 받아 들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카하다 이사오의 '가구야 공주'는 올해 본 영화 가운데서도 손꼽힐 정도로 참 좋은 영화였다).



가구야공주 이야기 _ 모든 것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설화



사실 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완성도와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언제부턴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은 우리가 지브리의 열광하던 그 때의 작품들에 비해서 많이 부족한 느낌을 주었다.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아주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모노노케 히메' 이후 처음 은퇴 선언을 했던 때부터 시작해야 하겠지만 (이제와 돌이켜 보면 여기서 부터 무언가 하야오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직접적으로 세간에서 지브리의 위기를 이야기했던 것,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에 대한 의문과 걱정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아마도 그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했던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드전기'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본인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아들을 (본인도 썩 탐 탁 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중에게 선보인 작품이었다. 개봉 당시 국내의 반응도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이제부터 지브리의 작품은 보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쨋든 강도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중론은 미야자키 고로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인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참고로 미야자키 고로는 '게드전기' 이후 2011년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다른 평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람이 분다'가 있기 전까지 거의 유일하게 좋지 않은 평을 했던 지브리 작품이기도 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 _ 직설적이어서 부담스러운 메시지



  '게드전기'는 이제와 다시 보면 그 정도로 혹평을 받을 작품이었나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기도 하지만, 어쨋든 지브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충분한 소스를 가진 작품이었음에도 연출이나 전반적인 면에서 부족함을 많이 드러냈던 아쉬운 작품이었다. 이런 과정을 보면 결국 스튜디오 지브리 = 미야자키 하야오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하야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보았을 때, 하야오가 적절한 시기에 자신의 후계자를 키워내지 못한 것이 지금의 위기와 현실을 맞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후계자에 대한 계획이 없었느냐?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생각한 자신의 후계자는 바로 '귀를 기울이면'을 연출한 콘도 요시후미 감독이었다.





아... 다시 생각해도 콘도 요시후미는 너무 안타까운 인재였다. '빨강머리 앤'의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 감독을 맡기도 했던 콘도 요시후미는 '귀를 기울이면'으로 데뷔 했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데뷔작이자 유작이 되어버렸다. 실제 스튜디오 지브리에는 적은 수이긴 하지만 몇 명의 후계자로 거론될 만한 이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앞서 있고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이는 콘도였다. 오래 전부터 지브리에서 차근 차근 과정을 밟아왔으며 성공적인 데뷔작을 내놓아 더는 문제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후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금 현역으로 돌아오게 되고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발표하며 전 세계적으로 다시 한 번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귀를 기울이면 _ 리얼리티로 살아나는 아련함



그 사이에 안노 히데아키, 오시이 마모루 그리고 호소다 마모루 까지, 지브리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감독들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저런 이유로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브리 출신인 콘도 요시후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지브리의 현재의 위기가 시작된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복귀 한 이후에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벼랑 위의 포뇨 (2007)'를 선보이며 건재함을 증명하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 다음, 자신의 다음 지브리를 책임질 이에 대한 걱정은 어쩌면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처음 부터 은퇴 작이라고 명명한 '바람이 분다 (2013)'를 내놓은 뒤로는 더 이상 작품 활동은 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바람이 분다 _ 이기적 순수함의 안타까움



문제작 '바람이 분다' 이후 앞서 이야기했던 '가구야공주 이야기'와 신작 '추억의 마니'를 내놓은 지브리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지 않는 다는 소문 아닌 소문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던 자신들의 시대를 떠나 보내는 것일까. 아직 공식적인 것은 없지만, 이런 뉴스를 접하니 참 기분이 허하고 쓸쓸하여 남겨 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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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 (Under the Skin, 2013)

다른 차원의 문을 열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신작 '언더 더 스킨 (Under the Skin, 2013)'을 보았다. 사실 스칼렛 요한슨 외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된 영화라 보는 내내 이 작품이 신작인지 아니면 예전 작품이 이제야 소개된 것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미헬 파버르의 동명 SF소설을 각색했다는 이유로 이 작품의 줄거리에 대해 미리 노출이 되고 있는데, 그 사실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더 폭 넓은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생각을 보는 내내 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어디에나 공개되어 있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굳이 쓰지 않을 것이다). 스포일러라 하기는 조금 애매한 그 시놉시스의 내용이 영화를 처음 보는 이들을 제한하고 있다고 느꼈던 건, 그 시놉시스의 내용 때문에 미리 짐작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짐작을 통해 영화를 감상해도 '언더 더 스킨'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묘한 작품이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더 깊은 심연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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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이미지로 시작한 영화는, 여주인공 로라(스칼렛 요한슨)가 등장하여 어떤 여자의 옷을 모두 벗겨 다시 입는 것으로 또 한 번의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이후 등장하는 시퀀스에서도 반복되지만 여기서 인상적인 건 옷을 뺏는 행위 보다도 그 배경이 되는 공간의 이미지였다. 온통 검기만 한, 또한 마치 발을 딛고 서있는 지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하지만 마치 물 위를 걷듯 반사가 되는) 검은 공간의 이미지는, 마치 미술관에 걸려 있는 예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


'언더 더 스킨'은 쉽게 말하면 SF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한 편으론 공포스러우며 다른 한 편으론 다큐멘터리가 같다. 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각각의 장르와 유사한 것이 아니라, 각 장르의 정반대에 서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장르 영화로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이미지를 실현함으로서 관객이 그 이미지가 주는 모호함의 끝에서 메시지를 발견하도록 만든 작품이라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앞서 미술관에 걸려 있는 예술 작품 (혹은 퍼포먼스)을 예로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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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이 작품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로라가 만나는 남자 배우들의 대부분은 전문 배우가 아닌 이들을 캐스팅하였으며, 몇몇 장면 역시 몰래 카메라 형태로 촬영되기도 했다. 이런 뒷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영화 속 영상은 로드 무비와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그리고 의도한 바 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더 더 스킨'은 2013년 작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오해했을 정도로, 이전 시대의 영화의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다. 특히 영화에 사용된 음악이 그런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 영화는 거의 대사가 없고 영화 음악이 마치 대사 처럼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불안함과 기괴함의 선율은 앞서 언급한 온통 검게 둘러 쌓인 공간의 이미지와 그 장면에서 벌어지는 상황 보다도 어쩌면 더 강렬한 인상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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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이 되는 스코틀랜드의 정경도 무심하게 느껴진다. 스코틀랜드 라는, 세계인들이 그 존재와 이름은 잘 알지만 따지고 보면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 알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곳을 배경으로 한 것은, 이 영화가 철저히 로라의 이야기 만을 다루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남자들이 살해 당하고 로라의 정체와 의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미스테리라 부르기는 어렵다. 즉, 이 영화는 '왜?' 그러했는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 이 말이 맞다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 로라의 정체가 표면적으로 드러났을 때 비로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 마지막 순간에서 어떠한 반전의 느낌이나 충격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말 그대로 표면적일 것일 뿐,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로라라는 캐릭터의 껍데기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 스스로는 영화에서 그 껍데기를 입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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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을 보고 무엇을 보았냐고 누군가 묻는 다면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보았고, 그 어둠에 이유 없이 빠져버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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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 Rise of an Empire (Blu-ray)
이번엔 이퀄(equal)이다!



단순한 영화가 속 캐릭터 혹은 의상이 아니라 '복근'을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만들기도 했던 잭 스나이더의 '300'은 그야말로 화제작이었다. 사실상 팬티만 두른 건장한 스파르타 전사들의 복근과 카리스마는 영화 전체를 압도했고, 잭 스나이더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과감한 슬로우 모션이 더해진 액션 시퀀스는 '300'이라는 영화를 영화적으로는 물론 수 많은 패러디 등 영화 외적으로도 많은 이슈를 만들어 냈다. 어쩌면 '300'의 속 편 제작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는 흐름이었는데, 사실 잭 스나이더는 처음부터 '300' 단 한 편으로 완전히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고 한다.





전 편을 본 이들은 알겠지만 잭 스나이더는 이야기를 완전히 끝내지 않았 던가. 그래서 속 편이 나온다고 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건, 과연 이번에는 어떤 시대를 다룰 것인지. 즉, 프리퀄 형태가 될 것인지 시퀄 형태가 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연출을 맡은 노암 머로 감독이 선택한 방식은 프리퀄도 시퀄도 아닌 바로 이퀄(Equal) 이었다.






'300 : 제국의 부활'은 전작의 중심 전투였던 테르모필레 전투 후 벌어진 페르시아와 그리스 해군 간의 살라미스 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는데, 첫 째는 육박전에 가까운 디테일 액션과 협소한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전투가 주를 이루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전이 중심이 된 다는 점이고 둘 째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전작과 거의 겹쳐진다는 점이다.





일단 해전을 배경으로 한 점은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볼 수 있겠다. 전작 '300'의 매력은 그 카리스마와 복근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액션의 강렬함과 디테일(과할 정도의 슬로우 모션이 더해진)이었는데, '제국의 부활'에서는 이러한 매력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해전 특유의 장점을 특별히 살려낸 것도 아니라서 전술적인 측면에서의 매력도 느낄 수 없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들은 복근을 자랑하려 하지만 그 무대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이런 장면에선 전작의 연출을 맡았던 잭 스나이더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을 이퀄로 잡은 것은 신선하고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전작의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한 레오니다스 왕의 카리스마를 에바 그린이 연기한 아르테미시아가 담당하기에는 부족했고, 전작에 이어 등장한 크세르크세스 역시 전작과 같은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전작의 향수를 중간 중간 느낄 수 있는 시대 배경은 색다른 재미였다. 마치 외전 (外傳)을 보는 듯한 느낌도 있고, 소극적이긴 하지만 조금씩 겹쳐지는 캐릭터와 이야기는 다시금 전작 '300'을 보고 싶게 끔 만든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MPEG-4 AVC 포맷의 화질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가운데서도 확실히 블루레이의 장점을 느낄 수 있는 수준급의 화질을 보여준다. 잭 스나이더가 연출했던 전 편에 비해 노이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스타일로 변모하였으며, 그레인 효과도 현저히 줄었고 오히려 디테일에도 많은 향상을 확인할 수 있다.








검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많음에도 화질의 우수함 탓에 지루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액션 씬에서도 특히 화질 측면에서 전 편에 비해 상당히 나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검은 이미지가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 보니 붉은 피 빛은 더 유난히 돋보인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 크세르크세스의 황금 빛 색감도 드디어 제대로 표현이 되고 있다. 전작 '300'이 복근이 돋보인 영화라면 이번 '제국의 부활'은 수염이 돋보이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특히 화질 측면에서 이 수염은 디테일 한 측면을 확인하는 척도로 활용될 수 있겠다.





Blu-ray : Audio


DTS-HD MA 7.1의 사운드는 엄청난 스케일의 대 해상전 임팩트를 손실 없이 들려준다. 확실히 이 해전의 규모를 전달하는 것은 화질 측면보다는 (특히 극장이 아닐 경우) 사운드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대한 파도가 치는 와중에 배들이 부딪히고 그 위를 병사들이 뛰어다니며 전투를 벌이는 과정의 사운드는, 복잡하지만 상황 속에서도 액션의 몰입도를 최대한으로 이끌어 내는 매개체로 활용된다.





폭발음 같은 사운드는 없지만 비인지 파도의 부딪힘으로 인해 발생한 물벼락인지 모를 상황이 시종일관 발생하는 가운데, 중간 중간 슬로우 모션이 활용된 액션까지 더해진 해전 시퀀스는, 최고 수준의 사운드 쾌감을 선사한다. 전 편 등장했던 스파르타 특유의 기합은 없지만, 좀 더 날카로움이 더해진 사운드는 만족감을 들려줄 것이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본편과 함께 수록된 부가 영상들은 전반적으로 전 편과의 연관성에 대한 부분 그리고 실제 역사와의 비교 혹은 추가 설명에 대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3 Days in Hell'에서는 앞서도 설명했던 것처럼 이 작품이 전작 '300'과 비교했을 때 이퀄의 성격을 갖는 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잭 스나이더는 인터뷰를 통해 속편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었으나, 프랭크 밀러가 지금의 기획을 제안했고, 그렇다면 한 번 영화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전 편과 속 편의 관계는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 같다고 할 수 있는데, 가끔 서로 교차하는 형태로 제작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보완을 해주는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Brutal Artistry'에서는 영화 속 등장한 각종 소품과 배경 등의 디자인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었다. 영상과 그래픽 측면에서 파격적이었던 전 편과 차이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속 편의 가장 큰 숙제였는데, 전 편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으로 배경을 바다로 선택하였다. 또한 당시의 그리스 함선의 디자인을 최대한 복원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거대함과 동시에 어둡고 단순한 금속의 느낌이 강조된 페르시아 건축물과 함선들도 그리스의 것과는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다.





'A New Breed of Hero'에서는 이번 '제국의 부활'의 주인공인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한 짧은 소개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전 작의 메인이자 강력한 주인공이었던 레오니다스를 잇는 주인공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 할지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으로 탄생한 테미스토클레스의 차별점을 소개하고 있다. 레오니다스는 강력한 리더쉽의 왕이었던 것에 반해 테미스토클레스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합의를 이끌어 내는 리더형으로, 역사적으로도 전략가이자 달변가로 그리스의 새로운 역사를 만든 인물이었다고 한다.





'Taking the Battle to Sea'에서는 이번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해상 전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는 크게 놀랄 것도 없지만, 최근 기술의 발달 탓(?)으로 해전이 중심이 된 영화임에도 실제 물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 작 '300'과 동일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실제처럼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과감하게 더 극적인 표현을 완성하는 데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제작 과정을 보면 거의 후반 작업이 대부분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Real Leaders & Legends'에서는 역사학자, 저자 등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 속 이야기의 내용을 더 흥미롭게 소개해 준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보다는 그 역사에서 흘러 나온 전설을 각색한 작품이라는 것도. 또한 영화 속에서는 배경으로만 살짝 등장하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정세에 대해서도 들려주며, 전설과 허구, 실제 역사와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역사가들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어쩌면 영화 보다도 더 흥미로운 역사 속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Women Warriors'에서는 사실상 테미스토클레스 보다도 더 작품을 이끌고 있는 두 여성 캐릭터인 아르테미시아와 고르고여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으며, 해전이 주가 된 영화인 만큼 전쟁에 사용된 함선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Savage Warships'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300' 시리즈라면 절대 빠질 수 없는 배우들의 몸 만들기 트레이닝 과정도 'Becoming A Warrior'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총평] 전작 '300'은 '스파르타!'라는 구호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화제작이었다. 속 편 '300 : 제국의 부활'은 전작과의 차별 점을 꾀하면서도, 이퀄이라는 형식으로 연결성과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고자 했던 작품이다. 비록 전 작과 같은 화제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만족스러운 화질과 음질로 발매된 블루레이를 통해 한 번 더 '300'의 임팩트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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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4)

유인원이기에 힘을 갖는 영화


루퍼트 와이어트의 2011년 작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수 많은 리부트 작품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작품이었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시저라는 유인원 캐릭터를 완벽하게 공감가도록 만들어 낸 동시에, 이 시리즈 전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 역시 도출해 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루퍼트 와이어트의 손을 떠나 맷 리브스가 맡게 된 속 편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전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승계한 동시에 시저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 작에서 'No!!'라는 시저의 한 마디가 강렬하게 가슴을 때렸다면, 이번엔 거의 초반 부에 말을 할 수 있는 시저의 모습과 더 나아가 인간 세계처럼 집단을 이루고 발전한 유인원 세계를 보여주며, 좀 더 집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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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다시피 전 작에서는 시저가 말을 한 마디 하게 된 것이 엄청난 임팩트가 있었을 정도로, 동물로만 여겨졌던 침팬지가 인간에 가까운 유인원이 되어 감정을 나누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번 속 편에서는 그로부터 거의 10년의 세월이 지난 뒤 자신 만의 세력은 물론 의사 소통과 사회를 이룬 시저와 유인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바이러스로 인해 멸종에 위기에 처한 인간 세계도 다른 한 편으로 등장한다. 사실 '반격의 서막'의 줄거리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전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전혀 다른 경쟁과 적대 관계의 두 세계가 등장하지만, 그 각각에는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 있고, 이를 못 마땅해 하는 캐릭터 역시 각각 존재하며, 뭔가 잘 해보려고 할 때 이 캐릭터들이 문제를 일으켜 결국 더 큰 사건과 사고로 이어져 버리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각각의 가족에 관한 설정 역시 존재한다. 전개는 물론 끝날 때 까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로 흘러가지만, 그럼에도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지루하지 않고 흥미로운 편이다. 그 이유는 이 한 편의 주인공이 바로 유인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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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관객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 밖에는 없을 텐데, 그런 측면에서 유인원인 시저에게 느끼는 감정은 정확히 공감이라고 하기 보다는 동정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즉, 극 중에서 시저는 유인원들이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지만, 관객인 우리가 보기에는 시저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건 유인원으로서 대단하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앞서 말한 전형적인 전개와 구성은 이 영화에 큰 단점이 되지 못한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감정선들이 주된 테마를 이루고 있지만, 이를 수행하는 캐릭터들이 바로 유인원들이기 때문에 (아직은)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전 편에서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 (아마도, 내가 침팬지를 보고 반할 줄이야 라고 했던...)로 등장한 시저의 연속되고 더 강해진 카리스마는 그가 인간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더 임팩트있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으며, 더더욱 전형적이었던 시저와 아들의 관계 역시 감정이 동했던 건, 아들의 그 눈빛이 정말로 묘하게 감정을 흔드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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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만약 이 영화가 '혹성탈출' 아닌 다른 작품의 속 편이었다면 (물론 그렇다면 전 작도 달랐겠지만) 조금은 실망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시저와 유인원 무리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으나 그의 반해 말콤이 주가 된 인간들의 이야기는 크게 어필하지 못하였으며, 사실상 매력을 어필할 충분한 기회도 제공되지 못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균형이 맞지 않아도 괜찮았던 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직은' 이 시리즈가 유인원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이유(매력) 자체만으로 충분히 즐기고 감동할 만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의 엔딩을 보아 이 시리즈는 또 다른 속편을 암시하고 있는데, 속편에서는 단순히 이러한 기본 매력만 가지고는 버티기 힘들 것 같다는 예상도 해보게 되었다. 시저는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세 편 연속으로 주 된 롤을 맡기엔 힘에 부칠 것 같다는 생각. 그래도 속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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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들과 유인원들의 관계를 보면서, 미국인 개척자(혹은 침략자)들과 인디언들의 관계도 떠오르더군요.


2. 재미있는 건 이번에는 시저의 얼굴을 처음 스크린으로 본 순간, 앤디 서키스의 얼굴이 그냥 연상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였다는 점이에요. 그의 표정 연기와 그 과정을 담은 메이킹 영상을 워낙 많이 봐서 그런지, 시저의 얼굴에서 앤디 서키스의 얼굴이 그대로 보이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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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Chernin Entertainment 에 있습니다.







아실 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 연상호 감독님의 '돼지의 왕'과 '사이비'가 DP시리즈를 통해 합본으로 블루레이 발매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아하는 감독님이고 '돼지의 왕'과 '사이비'는 정말 독보적인 작품들이었는데, 좋은 기회에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제 글을 수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제 글은 플레인 아카이브를 통해 발매된 (사이비는 KD미디어) '돼지의 왕' 블루레이 내 소책자에 실렸습니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영광이네요!






플레인 아카이브는 개인적으로도 여러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고 있지만, 단순히 참여해서가 아니라 다른 라이센스 타이틀에는 없는 소책자라던지 (최근엔 점점 다른 제작사들도 이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죠. 좋은 현상입니다), 소장 가치를 최우선 한 손으로 만져 지는 타이틀의 느낌이 좋아서 항상 관심 있게 보고, 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돼지의 왕' 블루레이에는 감독님과 배우들 분 중 한 분의 싸인 엽서가 동봉되었는데, 저도(?) 연상호 감독님 싸인 엽서네요. 최근 분위기는 감독님 옆서를 뽑으면 꽝이라는 것이 대세입니다 ㅎㅎ 





그리고 수록된 소 책자에 가장 첫 번째로 등장하는 제 글. '그 때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나' - 지배자와 피 지배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계급사회의 현실. 이라는 제목의 글을 담았습니다. 이것도 매번 소책자 소개를 할 때 마다 하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제 글이 수록되다 보니 수록된 그 페이지의 이미지도 되게 궁금하거든요. 아, 그런데 이번에도 참 마음에 듭니다. 저 이미지! 그냥 관련 이미지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글의 성격에 따라 최대한 그 글과 맞는 이미지를 선택하려고 한다는 것을 이번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 다른 영화 글을 쓸 때도 이미지를 삽입할 때 이 부분을 상당히 신경 쓰는 편인데, 플레인 아카이브는 제 선택보다도 더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네요.






요렇게 글 말미에 제 서명과 함께. 매번 인쇄되어 지는 매체에 글을 담는 건 대단한 영광이자 부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일인 것 같고요.






씨네21 '전영객잔'에 실렸었던 장병원 평론가의 글도 수록되었습니다. (비교하진 마세요 ㅎㅎ)

아,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자세하게 소개하겠지만, 이번 '돼지의 왕' 블루레이 프로젝트에서는 소책자 글 뿐만 아니라 부가 영상에 수록된 감독님 인터뷰를 직접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제 모습은 안나와요 ^^;





아, 그리고 추가로, 제가 한 때 정말 누구보다 열렬히 지지했던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 블루레이에도 제 짧은 글이 수록되었습니다. 발매된 지는 조금 되었는데, 정작 제가 타이틀을 너무 늦게 받아봐서 이제야 간단하게 소개하네요.







이번 글의 제목은 제법 오래 고민한 제목이었는데, '귀여운 골판지 왕자'와 '귀여운 셀로판지 왕자'를 두고 혼자 오래 고민했었다는 ㅋ 그래도 골판지로 한 게 더 적절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소책자의 톤이 마치 골판지 톤으로 이뤄져 있네요. '수면의 과학' 블루레이 소장하신 분들도 한 번씩 읽어봐주세요~


참고로 아직 저도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최근 1~2달 사이에 제 글이 수록된 타이틀들이 몇 개 더 있는데요.

하나는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블루레이이고, 두 번째는 홍상수 감독 초기작 블루레이 박스세트에도 제 글이 수록되었고 마지막으로 블루레이 말고 애니메이션 '리오 2' OST에 해설지를 썼습니다. 당시에는 다 일정이 몰려 있어서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다 써 놓고 보니 흐뭇하네요 ^^;


앞으로도 계속 영화와 음반 관련된 글들로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 (Transformers: Age of Extinction, 2014)

감정 없는 세 시간의 피로함



극장을 찾는 그 순간까지 볼까 말까를 고민했던 마이클 베이의 4번째 '트랜스포머'를 보았다. 이런 고민을 했던 이유는 이미 본 분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누구도 '트랜스포머'를 보며 감정적 감동이나 꼼꼼한 스토리를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이번 '사라진 시대'는 정말 재미없다는 평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다른 사람들의 평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임에도 이번엔 너무 지배적이라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정도였다. 그래도 직접 봐야 뭐라도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보게 된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는 이 시리즈가 주었던 신선함과 재미 요소는 전부 1편에서 하나도 발전하지 않은 채, 스토리 측면에서는 정말 인간들도 오토봇 들도 모두 감정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져 버린, 그야말로 재미가 '사라진 시대' 같았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마이클 베이의 연출력에 대한 것은 종종 영화 커뮤니티 등에서 이슈가 되곤 하는데, 그 중 자주 반복되는 논란 중 하나가 마이클 베이의 작품 중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전 작품들 (아마겟돈, 나쁜 녀석들, 더 록 등)도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연출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아마겟돈'의 드라마적인 성격은 분명 이번 '사라진 시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딸을 애지 중지 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그런 딸의 애인인 남자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건 심지어 완전히 똑같이 반복되기까지 한다. 마이클 베이의 이전 작품들과 스토리나 전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연출력이 그대로라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아마겟돈'이나 '더 록'이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단순한 전개였음에도 재미있었던 것은, 그 단순한 스토리를 리듬감 있게 다루는 방식(연출) 때문이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속편 부터, 특히 3편에 이르러서 부터는 점점 이 전개와 리듬감에 있어서 감정이 메말라 가기 시작했고, 이번 4편에서는 정말 쉴새 없이 폭발시키고 액션 씬이 이어지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라는 질문을 영화를 보는 내내 던지게 될 만큼, 아무런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못한 의미 없는 시간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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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1편은 개인적으로도 정말 매력적인 작품으로 보았었는데, 그 매력의 가장 큰 포인트는 극적인 요소나 여주인공의 섹시함 때문이 아니라, 자동차와 여자를 갖고 싶었던 극 중 주인공의 마음처럼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하는, 이른바 변신로봇의 판타지를 리얼하게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중간 중간 썰렁한 유머가 나오고, 전체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전개에도 (저렇게 하면 쉬울 걸 왜 고생이지 같은;) 1편을 재미있게 보았던 건, 눈 앞에서 '퓨슝~'하는 소리를 내며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하는, 트럭이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변신하는 그 장면이 주는 원초적인 쾌감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쾌감은 2편에서 4편까지 오면서 더 이상 신선함을 주지 못할 수 밖에는 없었는데, 마이클 베이는 속편이 계속 될 때마다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추가하는 것 대신, 더 많은 물량이나 폭발 등 단순 액션을 추가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고, 결국 그 결과는 참담했다. 즉, 마이클 베이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트랜스포머' 1편에서 멈추는 것이었는데, '트랜스포머'가 성공을 해도 너무 성공을 한 탓에 무려 4편까지 속편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거의 최악이라고 평가되었던 3편 - Dark of the Moon 보다도 이번 '사라진 시대'가 실망스러운 것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오히려 더 서툴러졌기 때문이다. 관객은 극 중 인물들의 대사나 감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마이클 베이는 혼자서만 감정에 100% 동화되어 '아~ 진짜 멋지지 않니!'라고 생각하는 듯한 폼 잡는 장면들을 보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예전엔 그저 허세라고 느껴졌다면 이번엔 피곤한 수준이었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러닝타임이 3시간에 달하는 것도 큰 문제였던 것 같다. 화려한 액션 만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더군다나 그 액션이 감정 없이 진행되는 것이라면 더), 3시간이라는 러닝 타임은 버티기를 넘어서서 견디기가 힘겨운 수준이었다. 실제로 영화가 끝나고 나서 피로함이 몰려왔던 것은 좌석의 불편함 등 때문이 아니라, '왜 저러지?' 싶은 액션의 과잉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와! 갈 때까지 간 것 같지만 그래도 공룡을 타고 싸우는 옵티머스 프라임이라니!'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는데, 원초적인 재미는 줄 수 있었던 이 설정의 매력도 전혀 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5편도 나올 것 같은데, 5편은 아마도 극장에 가서 보진 않을 것 같다.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



1. 다 써놓고 보니 개인적으로 역대급 악평인듯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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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2014)

시간과 경계가 머물러 있는 곳



처음 '경주'의 예고편을 보았을 땐 누군가가 박해일, 신민아라는 배우를 데리고 풋풋한 로맨스 영화를 만들었나 보다 했었다. 그런데 그 감독이 다름 아닌 장률이라는 것을 알고 이 영화에 대한 기대는 급격하게 커질 수 밖에는 없었는데, 장률이 누구던가. 최근 작 '풍경'을 비롯해 '두만강' '이리' '중경' '경계' 등 재중동포라는 개인의 특별한 환경을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여 내며 '우리'에게 계속 생각해 볼만 한 것들을 던지는 시네아스트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장률의 영화에 박해일과 신민아가 출연을 하는 것도 놀라운데, 무언가 로맨스 적인 느낌이 풍겨나오는 영화라는 점에 기대, 아니 궁금증이 더할 수 밖에는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장률은 이 영화 '경주'를 마치 홍상수 영화처럼 끌고 가다가 결국에는 다시 자신이 항상 관심을 갖고 있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은연 중에 던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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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한다. 현재 중국에 살지만 선배의 죽음 때문에 서울에 오게 된 최현(박해일)은, 7년 전 선배와 함께 갔었던 경주를 다시 가보기로 한다. 그렇게 경주에서 최현이 겪는 하룻 밤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전부다. 장률은 전작들에서도 지역, 도시를 주인공으로 다룬 적이 많았다. 그가 묘사하는 도시는 그냥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를 하나의 인격체 혹은 정서로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그가 바라보는 도시는 한 명 한 명의 인격체가 만들어 낸 집단 정서 혹은 그 영혼이 담겨 있는 공간이자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선택한 새로운 도시는 바로 '경주'다. 경주는 우리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하나씩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모두가 아는 도시인 동시에 사실은 모두가 잘 알지 못하는 도시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가운데 '죽음'이라는 정서가 어쩌면 드리워진, 특별한 정서가 흐르는 도시이기도 하다. 장률은 바로 그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있는 경주라는 도시를 주목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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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작 하루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천천히 흐른다. 마치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영화는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커다란 하루의 흐름에, 더 나아가 7년의 시간을 헤아리듯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간다. '경주'는 형식상 홍상수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비슷한듯 하면서 조금은 다르다. 홍상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감정의 서사가 더 중요한 반면, 장률의 '경주'는 주인공들의 감정 선보다는 오히려 이 공간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경주라는 유수한 역사와 시간이 흐르고 있는 도시 속에 하나의 요소로 존재하는 듯 하다. 그와 동시에 이 영화는 구체적인 경주에 관한 영화이자 단순히 경주라는 도시를 빌린 영화이기도 하다. 장률은 과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주라는 도시를 흥미롭게 여겨 자신이 흥미롭게 생각했던 경주의 생경함을 그대로 옮기고자 했으며, 또한 경주라는 이 도시에 빗대어 자신이 지속해서 주제로 삼던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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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이 바라 본 경주는 그저 신비롭기만 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미로 담겨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보면 죽음이라는 것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죽음으로 인해 오게 되었고, 누군가는 죽기 위해 오게 되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 때문에 남겨진. 그리고 역사가 죽음으로 잠들어 있는 도시. 장률이 바라 본 경주는 이렇게 죽음이라는 테마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래도 묘하게 경주를 다시금 가고 싶게 끔 만들었다. 어쩌면 가슴 한 켠에 그냥 이렇게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일 것이다. '경주'는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백현진의 '사랑'처럼, 가끔 눈감고 생각해보고 싶은 그런 영화였다.



1. 장률 감독이 박해일, 신민아를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역시 장률 영화네요. 좋았어요.


2. 백현진씨와 류승완 감독님의 연기는 단연 이 작품의 활력소더군요. 특히 개인적 친분이 있는 류감독님의 메소드 연기를 보고서는 극에 집중이 안될 정도였어요 ㅎ 감독님 종종 연기도 보여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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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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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야공주 이야기 (かぐや姫の物語, 2013)

모든 것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설화



지브리의 신작이자 다카하다 이사오의 신작이라는 이유 만으로 아무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된 영화 '가구야공주 이야기 (かぐや姫の物語, 2013)'를 보았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의 포스터를 만났을 때는 손 안에 담긴 작은 공주의 모습에 '아, 저런 작은 크기의 공주가 겪는 이야기구나'라고 마냥 생각했었는데, 이야기의 전개는 전혀 달랐다. 전혀 다르긴 했지만 '가구야공주 이야기'의 내용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설화인 ‘다케토리 이야기 (竹取物語)'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다케토리 이야기라는 설화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지만, 어느 나라든 상관없이 대부분의 설화 들이 그러하듯이 다케토리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익숙한 구조라 전반적인 흐름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설화에서 가구야를 데리러 온 달의 사자가 “가구야공주님은 죄를 저질러서 이 땅에 내려와, 너희처럼 천한 자들 집에 잠시 계신 것이다. 그 죄를 갚는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렇게 모시러 왔다”라는 부분에 대해 감독은 가구야가 달에서 저지른 죄는 어떤 죄며, 달과의 약속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이야기를 출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라는 내용을 보았는데, 이미 이 설화에 너무도 익숙한 일본인들에게는 다카하다 이사오의 이 또 다른 생각의 전환이 새롭게 받아들여졌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설화의 내용이라는 것이 혹은 교훈이라는 것이 오늘 날에 와서 보면 너무 진부하고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그 새삼스러운 것들의 감정이 모두 솜털이 하나 하나 서 듯 살아나 가슴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시대와 배경을 떠나서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많은 것을 되돌아 보게 만들었는데, 일단 가장 첫 번째로는 공주의 어린 시절을 보낸 대나무 숲과 그 곳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극장에도 부모들과 온 아이들이 많았었는데 그 아이들이 이 장면을 보고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나 같은 어른에겐 그저 잠시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의 모습. 풀과 들에서 뛰 놀고, 특별한 무엇이 없어도 그저 자연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던 그 때가 요즘 아이들에겐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했다. 영화 속에서도 공주의 어린 시절은 훗날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기 때문에 다카하다 이사오는 이 어린 시절을 더 담백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이 어린 시절의 장면들은 너무 단순하고 순수해서 더 기억에 남는 그런 장면들이었다. 한 편으론 다시 그런 시절을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고.




ⓒ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그 다음은 이 작품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부모의 관련된 정서다.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설화에 근거해 판타지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너무 명백한 부모님에 관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식을 금이야 옥이야 키워낸 부모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아주 조용하게, 대놓고 드러내는 것 자체가 죄송스러워 아주 조용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자, 어쩌면 이제는 스스로가 부모가 되어 알게 된 그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 하겠다. 이 영화의 감정선은 바로 그런 시점에서 작용한다. 공주와 부모와의 거리도 시종일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으며, 어쩌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는 부모의 행동들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지만 영화 스스로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깨닫게 되는 순간 이 영화의 감정선은 조용히 터져 나온다. 내내 돌아가고 싶었으나 결국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땐 남아있는 것이 훨씬 행복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그 회환과 후회의 감정, 미안함과 죄송스러운 마음이 아주 조용하게 터져 나온다.



ⓒ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 굳이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도 영화 속 이별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막상 이별을 하게 될 땐 그리 슬플 수가 없었다. 뭐랄까 이 작품이 이 회환과 슬픔의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담백하면서도 몹시 간절하달까. 과장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을 최대한 그대로 담으려 영화가 무척이나 애쓰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다카하다 이사오가 선택한 수묵화스럽고 스케치만 한 듯한 느낌의 담백한 작화는, 처음에는 빈 듯하게 느껴졌지만 점점 그 빈 공간에 감정이 스며들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을 주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쩌면 요즘 같이 디테일로 꽉꽉 채워진 애니메이션 들에 비해 여백이 있는 이 작화는, 영화가 말하려는 정서와 닮아 있었다.



ⓒ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평소에도 영화보며 잘 울컥하는 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데 옆에 부모와 함께 온 어린 아이가 우는 탓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 아이는 단순히 영화 속 이별이 슬퍼서 울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우는 아이와 이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이 영화 속 정서와 겹쳐져 더 눈물이 나버렸다. 아직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기 전에도 이 정도인데, 만약 나중에 딸 아이를 낳게 되면 이런 영화는 도대체 어떻게 참으며 볼 수 있을까.


참 좋은 작품을 보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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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오브 투모로우 (Edge of Tomorrow, IMAX 3D, 2014)

켠 김에 왕까지



톰 크루즈와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또 다른 SF액션 영화 정도로 생각했던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아주 구체적으로 게임을 영화화 한,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FPS게임을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그대로 영화화 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흔히 게임을 영화화 했다고 하면 게임의 배경이 되는 내용이나 그 스토리를 그대로 영화화 한 경우를 떠올릴 수 있겠는데,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경우는 이와는 달리 1인칭 슈팅 게임인 FPS 게임을 유저가 실제로 플레이하는 과정 그 자체를 영화로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 여행의 개념이 아닌 리스폰, 혹은 리플레이의 개념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



ⓒ Village Roadshow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주인공인 빌 케이지 (톰 크루즈)는 외계인과의 전투 중 우연히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갖게 되어 매일 같은 하루를 살게 된다. 이런 비슷한 설정의 영화로는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을 떠올릴 수 있겠는데, 이 작품은 정확히 타임 루프라는 설정을 가져온 작품인 반면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타임 루프라기 보다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으로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즉,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주인공이 어떻게 다르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됨으로 인해 오늘은 가지 못했던 그 다음을 조금씩 계속 전진해 간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것은 정확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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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게임을, 특히 FPS 싱글 모드를 한 번이라도 플레이 해 본 이들이라면 영화 속 케이지의 이야기가 너무 쉽게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유저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게임이 익숙해 졌다고 생각될 때, 노멀 난이도가 아닌 극한의 난이도로 싱글 모드를 다시 플레이 해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정말 수십번을 반복하고 여러 날을 같은 에피소드를 반복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일이 많다. 사실 게임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보여지는 현실보다 더 어려운 경우인데, 근래의 FPS 게임들은 영화의 경우와는 달리 반복할 때마다 정확히 100% 그대로의 상황이 구현되지는 않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플레이를 해야 만이 여러가지 경우에 미리 대처할 수 있는 편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공감하게 되었던 순간은 케이지가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는데, 게임으로 따지자면 이른바 패드를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이 떠올라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수십 번을 반복한 탓에 더 이상은 시도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되던 순간, 우연한 실수 혹은 시도가 드디어 다음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는 순간의 쾌감도 영화의 전개에서 그대로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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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이 반복되는 게임 설정에 집중하고 있다보니 몇 가지 제한된 부분들도 있었는데, 지구를 지배하려는 외계인들의 설정이나 이에 대응하는 최첨단 수트를 기반으로 한 병기들의 활용 등도 딱 필요한 만큼만 노출될 뿐 추가 설명이나 활약상은 제한적인 편이라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아마도 이 내용이 실제 게임이었다면 좀 더 자세한 배경이나 활용이 가능했지 않았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영화 속 주인공인 케이지 입장에서는 리스폰 될 때마다 세이브 된 상태에서 다시 시작되는 형태이긴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시작과 동시에 플레이를 시작해 최종 보스 전까지 한 숨에 달려야 하는, 즉 켠 김에 왕까지 깨버리는 그런 영화였다. 그래서일까. 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혼자서 고약한 생각을 했다. 맨 마지막 장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하루에 케이지가 '아 몰라, 이제 안해안해'하고 손사래를 치면서 허무하게 끝나는 그런 엔딩. 아니면 '아놔, 저장 안했네'하며 황당하게 끝나는 그런 엔딩. 그랬다면 정말 극장에서 환불 소동 벌어졌으려나. 고약한 상상이네.



1. 게임의 세계관과 외계인 등 설정을 보니 자연스럽게 몇 년 전 참 재미있게 했던 게임 '기어즈 오브 워'가 떠오르더군요. 여러가지로 겹쳐요.


2. 톰 크루즈 주연 영화를 소개할 때 마다 하는 얘기지만, 이 영화 역시 관객을 이끄는 요소 중 절반 이상은 톰 크루즈라는 배우의 힘이죠. 톰 아저씨가 하면 모든지 그럴싸 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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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간다 (A Hard Day, 2014)

충실해서 군더더기 없는 장르 영화



사실 최근 한국 영화들은 제목과 배우, 포스터만 보면 그리 변별력을 갖기 힘든 작품들이 많은 편이다. 액션이나, 느와르, 스릴러 등의 장르를 내세운 영화일 수록 특히 그런 경향이 심했는데, 배우만 바뀌었을 뿐 다들 영화 속 이야기라는 걸 감안해도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는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특히 많았다. 이선균과 조진웅 주연의 영화 '끝까지간다' 역시 그런 영화 중 하나인 줄로만 알았다. 두 배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냥 포스터 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앞서 이야기한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111분 간의 러닝 타임 동안 단 1분도 지루하지 않았을 정도로 참 재미있는 장르 영화였다. 무엇보다 장르 영화라는 것에 충실했고,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영화라 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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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감독의 '끝까지간다'는 전형적인 장르 영화다. 이런 종류의 장르 영화의 클리셰들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장르 영화를 많이 접한 이들이라면 다음 장면을 예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정도다. 다시 말해 영화 속 이야기에서 충격적인 죽음이나 반전이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예상이 가능했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영화가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 반전이나 충격이 핵심인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고, 전반적인 리듬과 속도가 매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주인공이 짧은 시간 동안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러 가지 악제들을 겹겹히 겪게 되면서 벌어지는 곤란함과 피로함, 여기에 추격과 추리가 더해져 일정하게 빠른 속도로 끝으로 달려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끝까지간다'는 군더더기를 최소화 하는 데 집중한 듯 보인다. 가끔 이런 장르를 선택한 영화들 (특히 한국영화에서)이 실수하는 것이, 영화 스스로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보이는 듯한 너무 거대한 담론을 끌어오려 한다던지, 너무 반전과 충격에 집중한 나머지 그 과정이 결국 재미를 잃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끝까지간다'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딱 주인공의 겪는 그 사건에만 집중한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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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에도 서브 텍스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서브 텍스트가 수면 위로 부상할 때 쯤, 영화는 다시금 주인공의 이야기로 돌아와 집중하는 것을 택했다. 또 하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어쩌면 영화적일 수 밖에 없는 설정과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상당히 한정적인 현실 사건으로 범위를 좁게 가져 감으로 인해 리얼리티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벌어지는 일들도 '야, 이건 좀 너무한다'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잘 연출되어 있고, 조진중이 연기한 '박창민'이라는 캐릭터 역시 활약상만 놓고 보면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라 할 수 있음에도, 영화 속에서 현실적으로 적절하게 녹여내고 있어 관객들이 시종일관 긴장감을 늦추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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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포와 긴장감이 지속되는 동시에 유머를 잃지 않은 것도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다. 의외로 전혀 다른 포인트에서 관객들이 많이 웃기도 했지만, 어쨋든 전반적으로 주인공의 시점에 100% 몰입하게 만든 동시에 중간 중간 어색하지 않은 선에서 유머를 녹여낸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 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사회 및 공권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는 분명 담고 있으나, 딱 그 정도로만 멈춘 것도 좋았다. 만약 여기서 더 나아갔더라면 전체적인 긴장감의 리듬이 속도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는 역효과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농담처럼, 에필로그처럼 스쳐가도록 비판의 메시지를 표현한 것은 오히려 이렇게 한 번 더 회자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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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가운데 열혈 영화 팬이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 하나의 영화를 추천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끝까지간다'를 추천할 것 같다. 누구든 영화가 상영된 111분 동안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이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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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피스 (Short Peace, 2013)

전통과 미래가 만난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와 '스팀보이'를 연출한 오오토모 카츠히로를 중심으로, 모리모토 코지, 모리타 슈헤이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 단편 애니메이션 '쇼트피스 (Short Peace, 2013)'는 일본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오히려 4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각 감독 마다의 색깔과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의 추세와 분위기를 엿볼 수 있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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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십구 


폭풍우가 치던 밤, 한 나그네가 비를 비해 밤을 보내기 위해 우연히 들어간 작고 오래된 사당에서 벌어지는 아주 짧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이 작품은 '쇼트피스' 전체의 짧은 오프닝 영상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시대극과 SF의 묘한 결합을 한 번 더 발전시키고 있는 작품이었다. 캐릭터는 물론 배경과 색까지 온통 일본 전통의 색과 분위기를 품고 있지만, 여기에 SF적인 상상력을 더해 마치 '애니 매트릭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작화의 경우 손으로 그린 느낌이라기 보다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아니 게임 속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단편이라는 구성을 가장 잘 활용한 작품인 동시에, 화려한 색과 단순한 아이디어가 빛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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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요진


'쇼트피스'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마지막 작품인 '무기여 잘있거라'까지 포함하여) 상당히 일본적이고 전통의 느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작품 '화요진'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여기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면의 구성 자체가 마치 일본의 오래된 전통 그림을 보는 듯한 구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쇼트의 전환이나 카메라의 이동 역시 이 구도를 해치치 않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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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보


세 번째 작품인 '감보'는 아주 전통적인 색체와 약간의 SF적인 요소가 결합된 묘한 작품이었다. 전통 설화에나 나올 법한 괴물의 존재와 백곰으로 표현되는 샤머니즘 적인 요소, 그리고 이것들이 SF적으로 결합된 설정까지. '쇼트피스'에 수록된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역동적이고 조금은 잔인한 표현을 담고 있다. '감보'도 그렇지만 첫 번째 '구십구'를 제외하면 여기에 수록된 단편들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시작과 끝이 확실히 진행된다기 보다는, 마치 장편의 한 부분을 잘라 꺼내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단편을 보고 나면 그 이전과 이후 (특히 이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이 작품 '감보'와 다음 작품 '무기여 잘있거라'의 경우 이 아이디어를 확장시켜 장편으로도 꼭 한 번 보고 싶은,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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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기여 잘있거라


세 편의 시대극이 끝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단편이 시작된다.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부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기여 잘있거라'는 밀리터리 적인 요소로 일단 흥미를 끈다.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밀도가 높은 메카닉과 설정들이 흥미로운데, 폐허가 된 도시에서 전차형 무인 병기와 벌이는 전투 장면은 SF영화의 한 시퀀스를 보는 듯 하다. 무기여 잘있거라' 역시 시대와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앞선 세 편과 전반적인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묵시록적인 분위기와 일본의 현실 혹은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배경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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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X-Men: Days of Future Past, 2014)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월드를 꿈꾸는가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시리즈 외에도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 1995)', '슈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2006)' 그리고 '작전명 발키리 (Valkyrie, 2008)' 등을 연출했지만, 그래도 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를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엑스맨' 시리즈였다. 그렇기 때문에 2006년 그가 '엑스맨' 시리즈를 버리고 슈퍼맨의 리부트를 맡게 되었을 때 많은 팬들은 큰 아쉬움을 표했었는데, 그 아쉬움은 실제로 브렛 래트너가 연출한 '엑스맨 3 : 최후의 전쟁 (X-Men : The Last Stand, 2006)'이 평범한 액션 영화로 남게 되면서 더 큰 아쉬움이 되기도 했었다. 그랬던 '엑스맨' 시리즈는 '킥 애스'를 연출했던 메튜 본을 통해 2011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X-Men: First Class, 2011)'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는데, 프로페서와 매그니토의 시작을 다룬 이 작품은, 당시 붐처럼 일던 프리퀄 열풍에 단순히 몸을 실은 작품이 아니라 '엑스맨'이라는 시리즈 전체를 다시금 조명하기에 충분한 진정성을 갖춘 작품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었다. 그렇게 다시 브라이언 싱어의 손을 떠난 듯 했던 '엑스맨' 시리즈가 다시금 그의 손으로 만들어 진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영화가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론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브라이언 싱어는 자신이 꿈꾸던 엑스맨 월드의 영화화 비전을, 메튜 본이 이뤄 낸 성과 위에 고스란히 펼쳐 놓으며 한 발 더 확장시킨 엑스맨 월드를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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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이야기의 구성이 반복되는 가운데 캐릭터만 하나 씩 추가되는 양상으로 조금씩 흐를 수 있었던 '엑스맨' 시리즈를 새롭게 구원한 것은, 어찌되었든 메튜 본이 선택한 프리퀄의 방식이었다.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매니아들을 제외한 일반 관객들이 서서히 뮤턴트 월드에 지쳐갈 때, 이야기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현재 적이지만 묘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시작을 다룬 선택은 여러 모로 효과적이었다. 단순히 과거를 돌이켜 보게 된 것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이 시리즈의 가장 핵심 테마라 할 수 있는, 존재의 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공감대마저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넓게 봐서 이번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메튜 본의 '퍼스트 클래스'에 이은 자연스러운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즉, 감독은 바뀌었지만 가장 최근 작인 '퍼스트 클래스'를 인상적으로 본 관객들이 위화감이 크지 않도록 큰 맥락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브라이언 싱어는 자신이 만들었던 엑스맨 1,2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은 물론 3편에 등장했던 캐릭터들까지 주조연, 단역에 이르기까지 등장시키며 기존의 엑스맨 시리즈를 아우르는 이른바 '월드'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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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으로는 그러하지만 이런 방식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중 하나는 일반 관객들에게 명확한 구심점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전편인 '퍼스트 클래스'는 앞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찰스와 에릭의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했는지에 대한 뚜렷한 서사구조와 공감대 형성의 기회가 있었던 반면, 이번 작품은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물론 브라이언 싱어 '엑스맨'의 중심이었던 울버린이 등장하면서 일종의 화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데, 여러 명의 중심 캐릭터가 겹쳐지다보니 누군 가에게는 여럿이 등장하는 캐릭터 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채 누구의 이야기에 더 귀기울여야 하나 갈팡질팡 하다가 끝나버리는 수도 있을 듯 하다. 즉, 다시 말해 이번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형식상 미래와 과거를 다루는 것은 물론, 이전 시리즈에 등장했던 캐릭턱들과의 상관 관계도 은연 중에 내제되어 있다보니 이번 작품 만으로 공감대를 이루기에는 부족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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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부분은 그 동안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은 물론 브랫 레트너와 매튜 본의 '엑스맨' 까지 모두 즐겼던 팬들에게는, 뭐라 딱 잘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미묘한 감정선이 포함된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찰스와 에릭의 드라마는 이제 크게 강조하지 않아도 극적인 드라마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중심에 놓인 레이븐의 스토리 역시 제니퍼 로렌스의 표정 연기 하나 만으로도 그 간의 세월을 짐작하게 만드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시리즈 전반에 걸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맨 중에 맨 휴 잭맨이 연기한 울버린 역시, 초기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했던 '엑스맨' 시리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로서 전체적으로 세계관을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다소 산만할 수도 있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감정선에 초점을 맞추며 이 시리즈 전체를 감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퍼스트 클래스'가 독립적으로 완벽한 작품이었다면,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시리즈 전체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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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과거를 직접적으로 다뤘던 '퍼스트 클래스' 보다도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더욱 이전 '엑스맨 1,2'편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또한 제임스 맥어보이와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하는 찰스와 에릭의 캐릭터도 또 한 번, 빠르게 다시 보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었지만 이번 작품은 조금만 더 나아가도 지루해지거나 과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아슬한 지점의 줄타기를 멋지게 해 낸 브라이언 싱어의 다음 엑스맨 영화가 기다려진다.



1. 센티넬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미래의 상황을 초반에 좀 더 묘사해서 더 어두운 분위기를 냈더라면, 이후의 이야기들이 좀 더 매력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바람도.


2. 안나 파킨은 정말 잠깐 나오는데 크레딧에서는 상당히 빠르게 나오더군요.


3. 어쨋든 전 이 라인업이 마음에 들어요. 계속 이들이 만들어내는 엑스맨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4. 진 그레이가 등장하는 장면은 정말 엑스맨 1,2를 꺼내 보고 싶도록 만드는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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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Godzilla, 2014)

또 다른 히어로 영화의 시작



롤랜드 에머리히의 1998년작 '고질라'는 여러모로 부족한 작품이었다. 일본 원작 '고질라'에 대한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지만 전해들은 바만 해도 원작과의 먼 거리는 알 수 있었고, 그렇다고 이런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스케일이나 재미 측면 역시 특별히 매력적이지는 않은 평작이었다. 특히 이번 가렛 에드워즈의 2014년 '고질라'를 보고 나면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 혹은 오판 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일본 원작 고질라의 팬들이라면 더더욱 그랬으리라.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입장에서 2014년 버전 '고질라'에게 바랬던 것은 그다지 없었다. 오로지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볼 때와 비슷한 기대 정도랄까. 대화면의 극장용 영화로서 평소에는 체감하기 힘든 스케일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 정도였다. 그래서 왕십리 아이맥스 3D 포맷을 선택하기도 했고. 결과는 만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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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작 고질라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이번 '고질라'는 신선했다. 일단 처음에 등장한 이름 있는 배우들이 너무 쉽게 사그라드는 것에서 그랬고, 전개 과정도 고질라가 전면에 나오기 전에 무토라는 또 다른 괴수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도 흥미로웠다. 즉, 일반 관객 입장에서 '고질라'라고 했을 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지구인들이 어떻게 고질라를 무찌르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 영화는 그 손가락을 무토로 돌리고 있었고 고질라의 존재를 애매하게 등장시키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인간들 중심의 드라마는 약해질 수 밖에는 없었다. 사실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드라마는 다른 재난, 괴수 영화에 비해 약한 편인데 그래서 아쉬웠다는 것이 아니라 신선했고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박사나 군인 등 주요 인물들의 드라마를 더 걷어 내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그렇다면 흥행은 더 어려웠겠지만) 생각도 했다. 일단 이렇게 조금은 일반 재난 영화들과 다른 구성이 나쁘지 않았고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에 (이야기의 무게가 가벼웠음에도) 빠져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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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마치 재난 영화로서 고질라를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질라가 주연인 히어로 영화로서 성립하는 듯 했다. 보통의 히어로물이 그렇듯 주인공이 자각하고 영웅이 되기 까지 한참이 걸리는 것처럼, '고질라' 역시 고질라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더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고질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의 행보(?)는 더 히어로스럽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반농담을 섞어서 눈물이 찡할 정도의 감동까지 느끼게 되는데, 정말 완벽한 '다크나이트' 급의 뒷 모습을 고질라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고질라와 무토의 대결 장면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고질라가 화염을 쏟아 부을 땐 이 영화를 왜 보게 되었는 지에 대한 확실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흡사 이 영화가 고질라를 다루는 방식은 '킹콩'이 킹콩을 다루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는 적어도 속편까지는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영웅 고질라가 또 어떤 힘든 상황 속에서 균형을 가져오게 될지 궁금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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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고질라를 보니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를 본 일본 원작 팬들은 얼마나 실망스러웠을지 짐작이 뒤늦게 되더군요.

2. 마지막에 TV뉴스를 통해 고질라의 활약이 나오는 장면은 오히려 대놓고 유치해서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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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Le passé, The Past, 2013)

끝나지 않은 과거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연출했던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근작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를 뒤 늦게 보았다. 참고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그 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놀라운 영화 중 하나였으며,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여러 가지를 겹쳐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걸작이었다. 그의 신작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전작과 유사하게 많지 않은 인물들 간의 관계와 그 관계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한 갈등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란을 둘러 싼 정치/사회적인 이슈들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영화는 좀 더 극 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자체에만 의미를 둔 작품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작의 영향 때문인지 이 이야기 속에서도 무언가 다른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를 저절로 하게 되어, 여러가지로 복잡해지기도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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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The Past', 즉 지난 일이다. 관객이 보게 되는 영화 속 이야기 속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일들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세 남녀 주인공은 이미 지난 일 혹은 수 년 전에 벌어진 일들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또 갈등을 겪게 된다. 영화는 초중반까지는 아마드가 부인과 이혼 서류를 마무리 짓기 위해 돌아와 만나게 되는 생경한 분위기와 가족들과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 하다가, 중반 부터는 마리와 사미르의 관계, 더 나아가 사미르와 그의 아내가 겪게 된 사건으로 조금씩 파고 든다. 전작인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도 그러했지만, 이 작품 역시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그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이 작품 더더욱 진실로의 행보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고, 이러한 영화의 시선은 엔딩에 가서 더 확실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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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과거에 일어난 일로 말미암은 것들이 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인물들에게 어떤 고통과 상처 그리고 갈등을 남기는지를 안쓰럽지만 철저히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이는 현실과 인물들의 모습에서는 황량한 상처만이 느껴지는데, 영화가 끝나게 되면 그 매마르고 남겨진 감정이 깊은 여운을 준다. 하나의 과거를 두고 진실을 통해 봉합하려는 시도가 교차하지만, 결국 국내 개봉 제목처럼 결론적으로는 아무도 머물지 않은, 끝내 누구도 머물지 못한 채 남겨진 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역으로 그래서인가,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금이나마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나 싶다.

 

 

1. 전작에 비해서는 확실히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어요.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와 스토리텔링의 재미는 만족.

 

2. 본문에도 있지만 감독의 전작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여러가지 은유를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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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The Amazing Spiders-Man 2, 2014)

철저한 오락 영화로서의 발전



마크 웹과 앤드류 가필드의 리부트 된 스파이더맨 시리즈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확실히 기존 샘 레이미와 토비 맥과이어의 그것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은 좀 더 히어로 물의 플롯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한 편,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은 좀 더 오락적인 측면이 강화 된 대중 친화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얘긴 즉슨, 각 인물들의 겪는 고뇌에 대해 깊은 탐구를 긴 러닝 타임을 할애하여 설명하기 보다는 액션과 (특히) 로맨스를 부각시켜 대중들로 하여금 더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얘기다. 이 이유 때문에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은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고 샘 레이미 삼부작과의 비교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 편에 비해 속편은 확실히 나았다. 실제로 나아지기도 했고, 아마도 마크 웹의 히어로 영화 작법에 좀 더 익숙해져서이기도 할 것이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보면 마크 웹은 마치 스파이디 슈트를 입은 청년이 주인공인 또 다른 '500일의 썸머'를 찍은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그가 꼭 '500일의 썸머'를 연출한 감독이어서가 아니라, 이 작품 속 피터와 그웬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500일의 썸머'의 톰과 썸머의 관계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로맨스는 실제 연인이기도 한 앤드류 가필드와 엠마 스톤을 통해 좀 더 달달하고 극적인 요소를 만들어 냈다. 이 영화를 셋으로 나누어 보자면 하나는 피터와 그웬의 로맨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파이더맨과 일렉트로의 대립관계일 것이며 마지막은 피터와 해리의 애증의 관계일 것이다. 이 셋의 비중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좀 애매해진 부분도 없지 않다. 만족하는 입장에서는 세 가지 모두의 재미를 느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에서는 셋 다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일단 처음 러닝 타임을 확인했을 때 142분이라는 시간에 놀라기도 했었는데, 의외로 영화는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세 가지의 이야기를 각각 동등하게 늘어 놓느라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는 없었는데, 2시간 20분이 가는 걸 거의 못 느꼈을 정도로 연출은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더 좋아하는 취향은 이 세 가지를 두 가지로 압축 시켜서 좀 더 각각의 내실을 더 하는 편이긴 한데, 그래서인가 외톨이였던 맥스의 슬픔과 분노도 공감하기엔 조금 부족했고, 또 다른 스토리를 갖고 있는 해리의 간절함도 조금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해리의 이야기는 데인 드한이라는 배우로 인해 200%의 공감 효과를 불러올 수 있었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솔직히 마크 웹의 전작은 만족보다는 실망에 더 가까웠었는데, 이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는 만족에 더 가까웠다. 2시간 20분이 넘는 러닝 타임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하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유머와 가벼움에 어느 정도 적응 되어 불편함이 없었으며, 새로운 해리를 연기한 데인 드한 덕에 그리 많지 않은 비중이었지만 후반부 해리라는 캐릭터를 계속 주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의 테마였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가 더 마음에 들고 취향이기는 하지만, 좀 더 소년의 입장에서 바라본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도 그럭저럭 흥미롭고 갈 수록 기대되는 부분이 있었다. 최근 영화화 된 히어로들 가운데 청춘물로 그려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마 스파이더맨 뿐 일 것이다. 마크 웹은 그 지점을 주목했고, 나쁘지 않은 결과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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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인 드한에게 빠져버린지 벌써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 그가 만든 해리 오스본은 또 다른 슬픔이 느껴지더군요. 분명 통쾌해야 하는 지점에서도 그의 아픔이 느껴져 (어쩌면 피터 파커보다 더 공감되서) 영화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밖에는 없었을 정도. 데인 드한은 확실히 현재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배우입니다.


2.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찡했어요. 아마도 3편에 가면 이 테마를 좀 더 메인으로 가져오지 않을까 싶네요.


3. 쿠키는 없지만 크레딧 중간에 엑스맨 예고편이 등장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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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_ 블루레이 리뷰 (The Hobbit: The Desolation of Smaug _ Blu-ray Review)
또 다른 삼 부작의 가운데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삼부작은 두말 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팬이지만, 새로운 삼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호빗 : 뜻밖의 여정' 은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아쉬움은 전부 '반지의 제왕' 삼부작 때문이라고 - 그 엄청난 기대감 때문이라고 - 할 수 있겠는데, '호빗'은 원작이 그러한 이유도 있긴 하겠지만, 영화 작법으로 보았을 때도 몹시 '반지의 제왕'과 거울처럼 그대로 겹쳐졌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보다 진일보한 영화를 기다렸던 이로서는 아쉬움이 들 수 밖에는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번째 작품인 '스마우그의 폐허'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삼부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점점 더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즉, '반지의 제왕'의 두 번째 작품인 '두 개의 탑'이 그러 했듯이, 이번 작품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나 인물의 구성, 갈등 요소까지 거의 '두 개의 탑'과 유사한 구성으로 진행되고, 두 번째 작품으로서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세 번째 작품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데에 더 충실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전편에 이어서 이번에도 실망스러웠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명확히 들 수는 없으나, 분명 전 편보다 재미있었고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도 거의 지루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황당해 한 엔딩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두 개의 탑' 때도 극장 반응은 거의 유사했었다). 아마도 전 편을 통해 익숙해진 드워프들과 새롭게 등장했으나 '반지의 제왕'을 통해 익숙한 캐릭터들의 등장 덕에, 조금은 쉽게 따라갈 수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전작인 '뜻밖의 여정'도 그랬지만 '스마우그의 폐허'는 이보다 더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전작에서 엘론드나 골룸 등의 캐릭터의 등장으로 그 연장선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엔 좀 더 절대 반지의 비중이 높아지고 '반지의 제왕'의 주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사우론의 존재가 점점 드러나면서, 직접적으로 '반지의 제왕'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확장해서 이야기하자면 호빗 3부작, 반지 3부작으로 각각 나누기 보다 거의 중간계 6부작으로 봐도 좋을 만큼, 전반적인 톤이나 캐릭터, 구성, 음악까지 통일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나온 뒤에 한 번 더 생각해볼 부분이긴 한데, 이렇게 생각하면 전작에서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을 대부분 긍정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 하다.






'반지의 제왕'과 구성은 유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각 인물들의 성숙 도를 들 수 있겠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캐릭터들은 '호빗'에 비하자면 상당히 안정되고 이미 성숙된 캐릭터들이 많았다. 아라곤과 소린을 비교해도 그렇고, 엘론드와 스란두일은 말할 것도 없으며 (물론 이건 성숙도의 차이라기 보다는 성격으로 인한 부분이 크긴 하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레골라스는 그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소린은 아라곤과 겹쳐지지만, 그보다 더 노골적이고 충동적이며 이루고자 하는 바가 처음부터 뚜렷한 편이고, 구성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간달프는 '두 개의 탑'과 마찬가지로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역시 홀로 원정대를 떠나 퀘스트를 수행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올랜드 블룸이 연기한 레골라스의 등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반지의 제왕' 속 여유 넘치고 위트까지 있는 레골라스와 '호빗'의 레골라스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르다.


훨씬 더 거칠고 날카로우며, 아직 날 것의 느낌이 충만하다. 개인적으로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아직 성장 중인 레골라스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극 중 스란두일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에겐 눈 깜빡 할 사이 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을 텐데, 그래도 조금이 나마 젊은 레골라스의 거칠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캐릭터를 지켜보는 재미는 이 작품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또한 이번에도 대부분의 명 장면은 레골라스가 다 만들어 낸다. 그가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스마우그의 폐허'를 극장에서 볼 이유는 충분했었다. 그 정도로 이번 작품 역시 멋진 장면은 대부분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기적으로) 독식하고 있다.





그리고 개봉 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있던 스마우그의 등장 씬은 후반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액션은 물론 대화(혹은 수다) 시퀀스로서 만족감을 주기도 해,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아마도 본격적인 스마우그의 액션은 3편에서 펼쳐지지 않을까 싶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딱 그 중간까지만 맛만 보여주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렇게 '스마우그의 폐허'는 피터 잭슨의 또 다른 삼부작의 가운데에 놓인,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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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의 화질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영상을, 그 어두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충실히 표현해 낸다. 피터 잭슨의 호빗 시리즈를 이야기하면서 HFR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참고로 전 작이었던 '뜻 밖의 여정'을 처음 극장에서 보았을 땐 정말 너무 영화 같지 않는 화면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으나, 두 번째여서 인지 아니면 그 간 좀 더 자연스러운 기술의 발전이 있었던 것인지 '스마우그의 폐허'는 조금은 이질감이 덜한 편이었다. 블루레이의 영상에서도 HFR 특유의 영화 영상 같지 않은 (반대로 얘기하자면 실제 장면 같은) 장면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다른 어떤 작품 보다도 그린 스크린과 CG가 폭 넓게 사용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는데, 배우들과 배경의 조화에 있어서 블루레이의 선명한 화질은 조금은 단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너무 선명한 화질 탓에 조금만 집중해서 보게 되면 배우들과 배경과의 이질감을 느낄 수 있고, 액션 장면에서는 대역인 스턴트 맨의 얼굴을 확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마우그의 폐허'의 전반적인 영상 톤이라면 브라운과 그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간혹 너무 치우친 것이 아닌가 하는 장면도 등장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디테일이 우수하고, 만족스러운 블랙 레벨을 보여준다.


Blu-ray : Audio


DTS-HD MA 7.1 채널의 사운드는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기대할 수 있는 스케일과 사운드를 들려준다. '스마우그의 폐허'는 사운드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시퀀스가 여럿 있었는데, 특히 술통 안에 든 채로 강을 흘러 내려가며 벌이는 액션 시퀀스의 경우 다양한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었다. 조금 의외였던 건 이 장면에서 사용된 소리들 가운데 상당히 현실적인 폴리 사운드들의 비중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었는데, 영상 측면에서도 중간 중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상을 끼워 넣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운드 역시 현실감을 주려고 상당히 노력했음을 알 수 있었다.







후반 부의 사운드 포인트라면 역시 스마우그가 등장하는 시퀀스를 들 수 있을 텐데, 워낙 스케일이 큰 스마우그이기에 (극장에서 그 거대한 규모를 온 몸으로 이미 체험했기에) 블루레이의 사운드 퀄리티가 훌륭함에도 조금은 스케일 측면에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디테일 측면에서는 확실히 가정에서 블루레이를 감상할 때 더 확인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많았다. 그런 작은 소리들을 만나게 되는 건 분명 블루레이 만의 장점이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 영상으로는 본 편이 수록된 디스크에 수록된 'New Zealand: Home of Middle-earth, Part 2'를 먼저 만나볼 수 있는데, 중간계를 표현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촬영지였던 뉴질랜드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이다. 본격적인 부가 영상은 별도의 디스크에 수록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이 후 발매될 확장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구성이라 하겠다. 'Peter jackson invites you to the set'은 총 야 40여분의 영상으로 촬영장의 뒷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총 네 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 'in the company of the hobbit'에서는 스튜디오는 잠들지 않는다는 말처럼, 밤늦은 시간부터 새벽에 이르기까지 다음날 정상적인 촬영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수많은 스텝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그렇지만 피터잭슨의 반지의 제왕 삼 부작과 호빗 삼 부작 역시 정말 많은 스텝들이 참여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스텝들의 활약상이 부가 영상의 주인공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다 (피터 잭슨 작품 타이틀의 부가 영상은 항상 스텝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새벽 일찍 도착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장을 받는 장면으로 배우들의 일과가 시작되는데, 1차로 보형물 작업이 완료되면 그 다음에야 분장과 헤어 등의 작업이 진행되고 마지막으로 의상까지 갖추게 되면 비로소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본 캐릭터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워낙 많은 스텝들과 분야들이 존재하다 보니 결정 권한이 있는 피터 잭슨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될 정도인데, 각각의 부서를 돌며 최종 결정을 해주고 의견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피터 잭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제는 후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집을 사실상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구현하고 작업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편집자가 촬영장에서 편집을 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 때부터 워낙 오래 함께 해온 스텝들이다 보니 모두의 생일을 촬영장에서 챙겨주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흔히 얘기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 라는 건 바로 이들 스텝들을 두고 하는 얘기라고 보면 되겠다






두 번째 'All in a day's Works'는 자신의 촬영 장면을 기다리다가 오랜 기다림에 지쳐 잠든 배우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촬영 2팀 감독을 맡은 앤디 서키스가 촬영장을 지휘하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는데, 이제는 제법 감독 의자에 앉는 모습이 제법 능숙해 보였다. 또한 피터 잭슨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인 웨타 워크샵의 작업장 모습도 만나볼 수 있는데, 중간계 특유의 다양한 아이템들, 무기, 갑옷, 조형물 등이 어떤 작업을 통해 실제 만질 수 있는 소품들로 완성 되는지 과정을 소개해준다.






워낙 고되고 빠듯한, 하지만 많은 익숙한 동료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양한 장난과 놀이들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중 '위너의 놀라운 바퀴'라는 이벤트는 매일 촬영이 끝날 때 마다 돌림 판을 돌려 나오는 혜택을 제공하는 일종의 뽑기 이벤트를 제공 하는 것으로 촬영장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루 종일 배우들을 불편하게 했던 두꺼운 보형물과 헤어, 분장을 떼어낼 때 배우들이 얼마나 시원해 하고 후련해 하는지 이렇게 나마 엿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I see fire'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되었고, 마지막인 'Live event : In the Cutting Room'에서는 개봉 전 라이브 이벤트로 진행했던 촬영장 소개 실황이 담겨 있다. 피터 잭슨이 촬영장을 돌며 라이브로 현재 이뤄지고 있는 장면들이 어떤 부분인지 편한 분위기에서 소개를 하기도 하고, 각 부서를 지나가며 그 부서에서 어떤 작업을 하는 지에 대해 기본적인 소개를 해주기도 하며, 이후에는 트위터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팬들의 질문을 받아 답변해주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우들이 셀프 카메라에 가까운 영상으로 그들의 짧은 코멘트를 들어보는 이벤트도 만나볼 수 있다.





단순히 라이브 Q&A라고 하면 팬들의 질문에 대해 단순히 코멘트로 답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데, 이번 이벤트는 질문과 답변은 물론 그 답에 대한 부분을 촬영장의 비하인드 씬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부가영상으로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라이브 이벤트 영상이었다. 실제로도 37분에 달하는 분량의 영상이기 때문에 상당한 정보 량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다.






'Production Videos'에서는 개봉 전 블로그를 통해 공개했던 제작 영상 가운데 총 4개의 비디오를 소개하고 있다. 'Production Videos 11'에서는 호빗 1편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스텝들과 배우들이 반가워 하는 모습과 1편 촬영 종료 이후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세트와 장비들을 꺼내 다시 2편 작업에 돌입하는 모습 그리고 드워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코믹한 율동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1편에 참여했던 엑스트라 들을 다시 연락해서 모집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는데 엘프를 연기했던 30명의 엑스트라 연기자 중에 2명 밖에 연락이 안되 어려움을 겪는 섭외 스텝의 모습을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Production Videos 12'에서는 후반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데, '혹성탈출' 촬영 관계로 자리를 비운 촬영2팀 감독 앤디 서키스를 대신 해 피터 잭슨과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사전 시각화 아티스트를 대신 감독으로 촬영한 부가 장면들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배네딕트 컴버배치의 스쳐 지나가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다.





'Production Videos 13'에서는 스마우그가 등장하는 장면의 촬영 장면을 살짝 엿볼 수 있는데, 개봉 전 블로그를 통해 공개된 영상이었기 때문에 스마우그의 모습에 대한 비밀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점이 지금으로서는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Production Videos 14'에서는 하워드 쇼어의 작업실에서 그와 함께 이번 작품의 영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웰링턴에 위치한 홀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영화 음악을 녹음하는 장면도 수록되었는데, 영화 음악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시하는 피터 잭슨의 모습이 이채 로웠다. 또한 하워드 쇼어를 통해 이번 작품에 새롭게 등장한 테마곡들에 대한 짧은 소개도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마우그의 폐허' 예고편 3종과 '뜻밖의 여정' 확장판 예고편 그리고 레고 호빗 게임 예고편과 또 다른 게임인 Kingdoms of Middle-earth의 코믹한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총평] 피터 잭슨의 호빗 삼부작, 그리고 그 가운데에 놓인 '스마우그의 폐허'는 확실히 전작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혹은 좀 더 이 시리즈가 삼부작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작품을 바라보게 되는 시선을 전달하고 있어 조금 더 긍정적인 마인드로 감상하게 된 작품이었다.


즉, 평가에 대한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삼부작이 마무리 된 시점에서야 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듯 하다. 마지막으로 블루레이 타이틀은 아무래도 언젠간 출시될 확장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극장을 나오며 혹은 극장에서 놓쳐 빨리 보고 싶었던 이들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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