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아이 러브 유 (New York, I Love You, 2008)
아기자기한 영화적 순간들


2006년작 <사랑해, 파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할 또 하나의 시티 옴니버스 프로젝트 영화 한편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파리를 배경으로 수많은 감독들과 배우들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로 만나볼 수 있었던 <사랑해, 파리>에 이은 프로젝트 영화로서 이번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참고로 영화 엔딩 크래딧 말미에 소개하듯이 이 프로젝트의 다음 행선지는 '상하이', 즉 다음 작품의 제목은 <사랑해, 상하이>이다). <사랑해, 파리>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 작품은 파리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다른 인물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뉴욕, 아이 러브 유> 역시 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기존 옴니버스 형식과는 조금 다른 '느슨한 옴니버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것이 무슨 말인고하니 기존 옴니버스 영화의 경우 각개의 작품의 맺고 끊음의 확실해 에피소드의 크기를 정확히 분간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암전등을 통한 완전한 맺고 끊음 없이 전체적인 큰 틀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되도록 애쓰고 있다. 물론 이렇다고는 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등장인물들과 이야기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몇몇의 컨 전환(뉴욕의 풍경을 비추는)과 흐르는 배경음악 만으로도 구별이 가능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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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 쿠퍼의 새로운 별명은 '택시남'??)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보여지길 원했던 제작자 에마뉘엘 벤비히의 의도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작품처럼 결국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 '우연'이라는 것을 가장해서 모두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하나의 작품이라는 느낌은 덜했고, 오히려 옴니버스라는 구성 특유의 맛은 조금 덜해진 감이 없지 않았다. 이 작품은 이냐리투의 그것처럼 각기 다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간의 조우를 시도하고 있는데, 크게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거나 시너지 효과를 내진 못한 듯 하다(오히려 몇몇 관객들에게는 혼란을 심어 주기도 한듯;;). 만약 이 작품을 보러오면서 일반적인 기승전결을 기대했다면 아마도 '이게 뭐야'할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아무리 한 작품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해도 엄연히 옴니버스 영화이고, 각개의 이야기가 스스로 서면서 큰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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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좋아하는 배우들이 화면을 가득채우며 각자의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나누어 쓰며 자신 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는 점,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 작품을 보러 올 때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예전 <사랑해, 파리>의 경우도 그랬지만 일단은 에피소드 마다 등장하는 익숙한 얼굴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레이첼 빌슨은 <점퍼>에 이어 또 한번 함께 연기하게 된 점이 흥미로웠고, 아무리 다른 영화들을 보아도(심지어 그 가운데에는 <미드 나잇 미드 트레인>이 있었음에도) 아직까지는 미드 <앨리어스>의 그 남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래들리 쿠퍼를 비롯해, 전작에 이은 출연과 동시에 이번에는 연출까지 맡은 나탈리 포트먼과 지저분해 질 수록 조니 뎁을 닮아가는 올랜드 블룸, 그리고 오랜만에 한 장면만으로 자신의 매력을 완전 발산한 크리스티나 리치도 빼놓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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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 호크가 이런 역할 맡은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데, 주름은 여전하지만 오랜만에 활발한 캐릭터로 등장한 그의 모습이 오랜 팬으로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얼굴에 주름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에단 호크와 자신이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를 보여준 로빈 라이트 펜, 역시 캐릭터와 멋진 조화를 이룬 매기 큐도 반가웠다. 제임스 칸과 앤디 가르시아, 존 허트, 엘리 웰라치, 크리스 쿠퍼, 버트 영 등 노련한 연기자들의 깊은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거리이며, <스타트랙>에서 반짝 했던 안톤 옐친의 경우 그 만의 귀여움을 드디어 제대로 보여준 듯 하다. 그리고 점점 나이들 수록 공리를 닮아가는 듯한 서기의 모습도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고, 점점 <트랜스포머>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샤이아 라보프와 줄리 크리스티의 연기 호흡도 정말 멋졌다. 줄리 크리스티의 경우 몇해 전 개봉했던 <어웨이 프롬 허>에 이어 그래도 익숙한 편이었는데, 역시나 줄리 크리스티는 줄리 크리스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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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크리스티와 샤이아 라보프가 연기한 에피소드는 따로 장편으로 만들어져도 기대할 만 하겠다. 무엇보다 줄리 크리스티를 만난 반가움, 그리고 샤이아를 재발견한 놀라움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세자르 카푸르 감독이 연출하고 줄리 크리스티와 샤이아 라보프가 출연한 순간이었다. 일단 샤이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예전 <이글 아이>를 리뷰하면서 점점 그에게서 <트랜스포머>를 벗어난 성인 연기자의 연기가 엿보인다 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좀 더 이런 생각을 굳건히 하게 될 정도로 깊은 내면연기를 선보였다. 샤이아의 조용한 눈빛을 크로즈업 했을 때 이런 감흥을 느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고, 캐릭터를 위한 독특한 억양들의 메쏘드 연기는 재쳐두더라도 이런 깊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상대역은 줄리 크리스티가 아니었는가!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뉴욕, 아이 러브 유>라는 작품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는 듯 보이기도 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 말할 순 없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훨씬 무거운 이야기와 절제된 표현들, 그리고 이야기를 보태려 삽입된 수많은 영화적 장치들로 인해 특별히 인상이 깊은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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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랑해, 파리>가 그랬듯이 전체적으로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파리와 뉴욕의 분위기가 같을 수 없기에 이야기의 느낌은 사뭇 다르지만, 이끌어가는 방식은 같다. 어떤 이야기는 뉴욕의 지명과 장소들을 직접적으로 이야기에 등장시키며 멋진 홍보영화에 가까운 구성을 갖고 있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뉴욕을 사는 사람들의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통해 '뉴욕은 이런 곳이에요'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 말하는 화자로는 귀여운 어린 소녀부터 종교적으로 다른 남녀와 이곳에서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 그리고 죽음과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등 여러 입장을 통해 다양하게 펼쳐진다.

이야기 자체는 <사랑해, 파리>에 비해 신선한 맛이 떨어지고 감독 개개인의 장기들이 덜 부각되기는 했지만, 이런 측면보다는 익숙한 배우들 혹은 오랜만에 만나는 배우들의 아기자기한 순간의 연기, 그리고 대화의 스킬이랄까? 주고 받는 짧은 호흡에서 오는 영화적 쾌감에 포인트를 둔다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순간의 모음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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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시 이 작품은 엔딩 크래딧을 평소보다 더욱 주목해서 보게 되더군요.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어떤 감독의 작품인지 여기서야 뒤 늦게 확인할 수 있거든요. 이와이 슌지의 이름이 등장했을 땐 '역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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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와이 슌지 작품의 올랜도 블룸도 잘 어울렸습니다. 재미있는 건 극중 올랜드 블룸의 직업이 영화음악가 인데, 작업하고 있는 작품이 다름 아닌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인 <게드전기>였다는 점이었죠. 혼자서 알아보고 큭큭 거렸네요; 방안에 <데쓰 노트> 애니메이션 포스터도 붙어있고, 누가 이와이 슌지 작품 아니랄까봐 일본 작품의 소품들이 여러군데서 발견되더군요.

3. 본래는 스칼렛 요한슨이 연출한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하는데 빠지게 되어 아쉽네요. 제작자의 말로는 흑백으로 제작된 것도 있고 전체적으로 조화가 맞지 않아 최종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하네요.

4.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프로젝트의 다음 작품은 <사랑해, 상하이>입니다.

5. 이 작품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안소니 밍겔라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안소니 밍겔라 역시 이 프로젝트 중 하나의 에피소드를 직접 쓰기도 했죠.

6. 엔딩 크래딧 맨마지막에 스페셜 땡큐를 지나 퍼스널 땡큐에서 'Park Chan Wook'이라는 이름을 제일 먼저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박찬욱 감독이 맞는걸까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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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죽음과 새로운 인연, 그리고 로드무비.

<엘리자베스타운>은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최신작으로 큰 기대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다. 아카데미를 수상한 <올모스트 훼이머스>는 물론이고, 그의 전작인 <클럽 싱글즈> <제리 맥과이어> <바닐라 스카이>등을 통해 평범하지 않은 드라마를 그려내는 연출력은 이미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인정받기도 했던 카메론 크로우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아직까진 레골라스의 느낌이 다 지워지지 않은 ‘올랜도 블룸’과 스파이더맨의 연인에 이어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을 맡는 다는 소식은, 두 청춘 남녀주인공의 색다른 러브 스토리를 기대하게 하는 동시에, SF나 액션이 아닌 장르에서 올랜도 블룸이라는 배우는 어떻게 그려질까 하는 또 다른 궁금증도 유발시켰다.

이전의 카메론 크로우의 영화가 그랬듯이 이 영화 <엘리자베스타운>역시 평범한 로맨스 드라마는 아니다. 영화의 시작부분은 회사(사회)에서 크게 실패와 실연당한 주인공의 인생에 집중되며, 이 후에는 실패에 대한 파장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라는 또 다른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가족과 나, 나와 다른 사람들에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그 사건 사이에 만나게 되는 새로운 인연인 ‘클레어’를 통해 자살까지 생각했었던 주인공이 희망을 되찾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대충만 훑어보아도 흔하지는 않은 스토리는 카메론 크로우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한 편으론 극장에서의 흥행성적과 평단의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처럼, 카메론 크로우의 작품 치고는 조금 부족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이 <엘리자베스타운>이기도 하다.




유머와 감동을 모두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크로우의 말처럼, 이 영화에는 슬픔과 웃음의 요소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하지만 슬픔의 요소는 조금은 중심을 잃은 이야기 구조 덕에 100%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유머러스한 부분도 모두가 공감할 만한(특히 미국 외에 국가에서 충분히 공감하기에는)정도의 것은 아니라 이것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올랜도 블룸과 커스틴 던스트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를 쉽게 놓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 올랜도 블룸이 본격적으로 드라마와 로맨스 장르에서 연기를 펼친 것은 이 영화에서 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전 작품들에서는 칼과 활을 쓰는 액션 때문에 레골라스의 이미지가 어쩔 수 없이 떠올랐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반지의 제왕>의 후광 없이도 충분히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커스틴 던스트는 깜찍하면서도 신비롭고 무언가 슬픔을 숨긴 듯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냈으며, 제시카 비엘, 알렉 볼드윈 등의 조연 연기자들의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수잔 서랜든의 연기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추모식 장에서 그녀의 마지막 연설과 탭댄스는 그 자체만으로는 훌륭했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그 시퀀스가 의도만큼 감동적으로 전달되기엔 2% 부족했던 것 같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작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하나에 요소, 장점을 꼽으라면 누구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전작들에서는 그저 괜찮은 곡들을 한 두 곡 선곡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신이 음악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터라 마니아들에게는 반가움을, 대중들에게는 좋은 곡들을 소개해주는 역할로서도 손색이 없는 최적화된 선곡을 보여줬었다. 이 작품 <엘리자베스타운>에서도 사운드 트랙은 절대적이다. 부인인 낸시 윌슨이 만든 곡들을 비롯하여, 엘튼 존, 라이언 아담스, 톰 패티 앤 하트브레이커스 등의 곡들이 요소요소 삽입되어 있다. 사운트트랙 부분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선곡된 곡들이 장면을 한층 부각시켜주는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특별할 것이 없는 장면을 좋은 곡들로 무마시켜버리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만큼,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아마도 선곡의 문제라기보다는 앞에서 언급했던 스토리에 아쉬움이 이곳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면서 마지막 로드 무비 식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역시도 영화가 거의 끝나는 느낌을 주는 장례식 장면 다음이라 약간 쌩뚱 맞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영화를 통틀어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퀀스였다. 클레어가 만들어준 지도를 통해 음악과 더불어, 의미 있는 여러 곳들을 차례차례 여행하는 형식은, 차라리 영화를 애초부터 이런 스타일의 로드 무비로 끌어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DVD는 최근 출시된 작품답게 수준급의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1.78: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인물들의 클로즈업의 많은 장면과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장면에서 빛을 발하며, 사운드 역시 여러 가지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과 아름다운 사운드트랙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스페셜 피처로는 배우들의 오디션 장면과 리허설 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 'Training Weels'와 스탭들을 소개하는 'Meet the Crew', 영화 속 재미있는 소품 영상이었던 ‘아이들 달래기 비디오’를 포함한 두 가지의 확장판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모두에게 권할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카메론 크로우의 팬이라면 쉽게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작품임에도 분명하다. 자켓 이미지나 홍보 문구들로만 봐서는 단순히 두 남녀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영화로 오인하기 쉬운데, 오히려 그것과는 다른 세계를, 크로우의 시점에서 관찰한 작품이라는 점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다.

2006.04.10
글 / 아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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