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쥬(Hommage)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불어에서 온 말로 ‘경의의 표시’ 또는 ‘경의의 표시로 바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영화의 경우에는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부러 모방을 한다든가 기타 다른 형태로 인용하는 것을 지칭하곤 한다. 일부 감독들은 오마쥬의 형식을 빌어 그저 패러디나 표절 수준 밖에 않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그의 작품속에서 보여준 오마쥬는 그야말로 ‘경의의 표시’, ‘존경의 표시’를 보는 사람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신중하면서도 정성스레 만든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 <킬 빌 Vol.1>에는 그가 평소에 광적으로 좋아하는 예전 쇼브라더스 시절 홍콩영화들과 일본의 사무라이물, 저패니메이션, 마카로니 웨스턴, 쿵푸 영화 등 다양한 장르와 영화에 대한 오마쥬를 담고 있는 영화다. 장르적 오마쥬 뿐 아니라 병원 씬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 식의 구성을 사용한 것이나 어린 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일본 배우 소니 치바를 실제로 출연시킨 것처럼 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오마쥬 또한 담고 있기도 하다. 사실 <킬 빌 Vol.1>은 오마쥬란 것을 영화적 기법 정도로 사용했다기보다는 하나의 장르로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시피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대단한 비디오키드이며, 영화 감독이기 이전에 엄청난 영화광이다. 이러한 타란티노의 영화광적 면모는 본 타이틀 서플에 수록된 영화음악을 맡은 우탱클랜의 맴버 RZA의 인터뷰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는데, RZA 역시 예전 쇼브라더스 영화의 광팬으로서 비디오 테입들을 여럿 소장하고 있었는데, 타란티노는 이 영화들의 원본 35mm 필름들을 모두 소장하고 있었다고 하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킬 빌 Vol.1>은 타란티노 자신의 역량과 함께 각 장르의 전문가들이 모여 공동작업을 이룸으로써 더 완벽한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 대부분의 영화 장면은 중국과 일본 등지의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는데, 미국내의 스텝이 현지까지 동행하길 원치않았던 타란티노는 중국에서는 중국 현지 스텝을, 일본에서는 일본 현지 스텝과 작업을 하였다. 이 같은 방식은 오마쥬로서 수박 겉핥기 식의 묘사가 아닌 완벽한 장르 영화를 만드는 데에 보이지 않게 크게 기여하였다고 생각된다. 또한 무술감독은 이미 <와호장룡>과 <매트릭스 시리즈>를 통해 헐리웃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원화평이 참여하였고, ‘오렌 이시’의 챕터에서 그 진가를 들어낸 애니메이션은 <공각기동대>, <인랑>등을 제작한 ‘프로덕션 I.G'가 참여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 같이 다양한 장르와 국가, 문화의 스텝들이 한 영화에 참여한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감독의 이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킬 빌 Vol.1>은 예전 홍콩영화의 스토리 전개처럼 주인공이 원수에게 복수를 하는 단순한 구조를 갖추고 있듯 영상에서도 선이 굵고 강한 원색의 사용이 대부분이다. 이소룡에 대한 오마쥬가 짙게 깔린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는 그를 상징하는 노란색의 트레이닝복(일명 ‘츄리닝’)차림의 주인공과 모두 검은 정장을 입은 적들, 그리고 오렌 이시와의 결투에서는 하얗게 눈덮인 장소를 배경으로 두 주인공의 새빨간 선혈이 뿌려진다. 이렇듯 <킬 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노란색과 빨간색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특히 타란티노가 심혈을 기울인 낭자한 피부림의 이미지는, 여타 다른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하드고어함과 함께 액션의 또 다른 도구로서 역할을 한다. 조금은 과장된 마치 분수가 뿜어대는 터져나오는 피와 사지가 뚝뚝 절단되는 영상은, 철저히 고전적 법칙을 따르면서도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장면들을 연출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킬 빌 Vol.1>을 극장에서 감상하고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바로 사운드 트랙이었다. 영화의 첫 장면에 흐르던 낸시 시나트라의 'Bang Bang'을 시작으로 브라이언 드 팔마식 전개와 딱 맞아 떨어졌던 ‘Twisted Nerve', 마지막 전투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던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 오렌 이시의 결투 마지막에 흐르던 엔카 ‘Flower of Carnage'와 마치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게오르그 잠피어의 'Lonely Shepherd'에 이르기까지...영화 속에 삽입된 곡들은 마치 이 영화만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스토리와 영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의 극적 감정을 최고조로 이끈다. 음악감독 RZA의 역량도 뛰어나지만 대부분의 주요곡들은 감독인 타란티노 자신이 직접 컨텍한 것을 알 수 있는데, <펄프픽션>이나 <저수지의 개들>등 그의 이전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 음악을 선택하는 역량에도 아주 탁월함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특히 <킬 빌>의 경우는 피부림이 낭자하는 영상이 맘에 안드는 사람은 설령 있을 지언정 가슴을 후벼파는 사운드트랙이 맘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큰 인상을 남긴 음악 때문에 영화 관람 뒤 사운드트랙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음반샵을 찾았지만 불행히도 영화 상영 당시에는 국내에서는 사운드트랙을 구할 수가 없었다. 왜나하면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던 엔카가 한 곡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일본어로 노래한 곡이 수록된 음반은 국내 출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4년이 되면서 일본 문화의 추가개방이 이루어지면서 국내에서도 엔카를 포함하여 모든 곡이 수록된 사운드트랙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타이틀 출시전에 사운드트랙이 포함된 다는 이야기가 있어 많은 이들이 기대를 가졌지만, 결국은 빠지게 된 점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킬 빌 Vol.1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영화 <킬 빌 Vol.1>만큼이나 오랫동안 깊은 인상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출시된 타이틀은 일단 합격점을 줄 만하다.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타이틀에 함께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누락된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이를 대체할만한 다른 아이템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그것은 바로 Vol.1과 Vol.2의 오리지널 포스터인데 처음 계획하였던 포스터의 이미지가 많은 소비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있자 이를 바로 적극 수렴하여 비교적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은 제작사의 정성이 일단 돋보인다. 오리지널 포스터외에 킬 빌을 상징할 만한 노란색 케이스와 제법 볼만한 부클릿도 인상적이다. 타이틀 외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본격적으로 타이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화질은 2.35:1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을 제공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극장에서보다 더 괜찮은 화질이라고 얘기가 나올 만큼, 다른 지역 코드의 타이틀보다도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였던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마지막 전투씬의 흑백 영상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곤 하는데, 이는 본래의 영상이 삭제된 것이 아닌 분명 감독에 의해 의도된 처리임으로 크게 아쉬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그 장면에서는 올칼라로 표현하는 것 보다 흑백처리를 하는 것이 더 좋았다고 생각된다. 사운드는 dts트랙과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dts의 강력한 음장감과 더불어 채널의 분리도 또한 뛰어나다. 액션씬에서의 칼이 몸을 베는 효과음과 피가 뿌려지는 등의 효과음 역시 실감나게 전달된다. 액션씬들에서도 물론 채널의 분리도를 느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킬 빌 Vol.1>의 사운드를 빛나게 하는 것은 사운드트랙이 아닌가 싶다. 5.1채널을 타고 흐르는 사운드트랙은 (영화에 쉽게 몰두할 수 있었음으로 그랬을런지는 모르겠지만)어렵지 않게 채널의 분리도를 실감할 만큼 뛰어난 음질을 보여주었고, 풍부한 공간감도 느낄 수 있었다. <마스터 앤 커맨더>에서처럼 웅장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사운드를 맛보기는 어렵지만, 채널의 분리도와 사운드트랙의 전달성, 액션씬에서의 효과음 등은 우수하다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1장으로 구성된 타이틀에는 본 편외에 몇가지 서플먼트가 수록되어 있는데, <킬 빌>이라는 영화적 중요도에 비해 1장에 디스크만으로 출시된 것이 일단은 조금 아쉽다(아마도 이후에 출시될 Vol.2와 혹 출시될지도 모를 Vol.1,2 합본 박스세트를 염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예측일 뿐이다). 서플먼트는 일반적인 메이킹 다큐와 마지막 전투씬을 따로 수록한 메이킹 다큐 두 가지가 수록되어 있다. 메이킹 다큐를 통해 타란티노가 얼마나 영화를 찍으며 신이나 했을까? 즐거워 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이외에 감독인 타란티노를 비롯하여 주연 배우인 우마 서먼, 루시 리우, 비비카 폭스의 인터뷰와 제작자인 로렌스 벤더의 인터뷰를 수록하고 있는데,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접할 수 있어 흥미롭고 재미있긴 하지만, 각 인터뷰의 주제가 챕터로 나뉘어져 있어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이외에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던 'the 5,6,7,8's'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되어 있고 두 가지 버전의 예고편도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의 씬 하이라이트 장면 5가지를 따로 감상할 수 있는 서플과 포토 갤러리도 수록되었다.


글 / 아시타카

2004.04.26



프로듀서스 (The Producers, 2005)
 
사전 정보 없이 그냥 오랜만에 괜찮은 뮤지컬 영화가 나왔다길래
뮤지컬 영화의 팬으로서 봐야지 해서 봤다가,
엔딩 크래딧에 멜 브룩스 이름을 보고 '아....'하는 탄성을 자아냈던 영화.
최근 나왔던 뮤지컬 영화들이 생각보다 덜 임팩트가 있었고,
기대했던 것에 비해 항상 아쉬움이 많았었기 때문인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편안하게 킬링타임용으로 관람을 해서인가,
이 영화 <프로듀서스>는 확실히 기대했던 그 뮤지컬이었다.



뮤지컬 영화하면 떠올리게 되는 노래와 춤.
여기에 멜 브룩스의 유머까지 더해져 러닝타임 동안 지루함없이 달려올 수 있었다.
물론 뮤지컬 팬이 아니라면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뮤지컬 영화의 팬, 특히 최근작들이 아닌 예전 뮤지컬의 향수를 그리워했던
이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작품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억지스럽고 오버스런 설정과 몸짓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거부감없이 웃을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뮤지컬 영화 장르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단체로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도 좋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누가뭐래도 극중 맥스와 레오의 앙상블 연기와 노래이다.
특히 실제로 영화가 아닌 브로드웨이 무대에서도 각각 맥스 비알리스탁과 레오 블룸 역할을
맡았던 네이단 레인과 매튜 브로데릭의 연기는 이 영화를 즐기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매튜 브로데릭에 카랑카랑하면서도 선명한 보컬과 네이단 레인에 노련하면서
변화무쌍한 보컬과 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히 빠져들게 만들어버린다.
특히 네이단 레인에 연기는 그야말로 뮤지컬 배우로서 '연기'에 경지에 오른
수준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듯.



두 주연배우 외에 윌 패럴과 우마 서먼 역시
자신들의 평소 갖고 있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와서 영화 속에서
또 하나의 웃음을 선사한다.
사실 이 영화에는 나치, 게이 등 어쩌면 이런 유쾌한 주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마저도 유쾌하게 만들어버리는,
모 리뷰에서 표현했듯이 '크리에이티브를 완전히 무시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적인 풍자라던가 역설이니 뭐니 해도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음악이었다.
오랜만에 진정 뮤지컬 음악 다운 음악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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