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Right Now, Wrong Then, 2015)

무릅쓰고 편안하게



홍상수 감독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제목을 붙여 쓴 것이 감독의 의도인 듯 하여 그대로)는 감독의 최근작들의 경향과 마찬가지로 같은 인물들의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북촌방향'이나 '옥희의 영화'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등과 이 영화가 다른 점이라면 두 가지의 다른 이야기의 구분이 더 명확한 동시에 특별한 시공간적 (혹은 차원적) 변화로 인한 이야기의 갈래가 아닌 아주 미세한 말과 행동으로 인한 변화의 줄기를 따르는 영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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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이렇게 저렇게 분석해 보고 픈 마음이 가득 들었던 '북촌방향'과 같은 영화와는 다르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얼핏 또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영화적 구성을 곁들여 펼쳐 놓은 영화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훨씬 더 직관적이고 가벼우며 편안한 작품이다. 1부의 이야기는 극 중 영화감독인 함춘수 (정재영)의 주관적인 기억 혹은 조작된 과거, 아니 이런 구성적 가능성은 다 재쳐두고, 그저 솔직함 보다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계산하고 절제하고 고민한 결과물을 만나게 된다. 함춘수는 우연히 만나게 된 윤희정 (김민희)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도 호감을 얻기 위해, 쉽게 말해 되지도 않는 말로 그녀를 칭찬하고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말과 행동을 하며 이른바 그녀에게 많은 공을 드린다. 하지만 어찌보면 처음부터 잘 될리 없었던 이 불안한 관계는 결국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함춘수는 다음날 그 화를 고스란히 떠안으며 쓸쓸히 수원을 떠난다.


그에 반해 2부의 이야기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2부의 함춘수 역시 윤희정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드러낸다. 2부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그녀의 그림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관계가 어긋나는 듯 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특히 그녀의 지인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추태를 부렸지만 관계가 깨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그럴 수도 있지'하는 정도로 지나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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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아주 작은 말들로 인해 관계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도 되지만, 그보다는 바로 그 순간 순간의 말과 행동에 너무 집중하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그렇게 솔직하게 다 보여줘도 아주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이 루틴이 깨진다고 세상이 망하는 건 아니라는 걸 유쾌하게 전하고 있달까. 지금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 때는 틀렸다고 생각되었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 소용없다는 허무한 감정보다는, 그러니까 너무 일희일비하며 자신을 옥죄일 필요는 없다는 말로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근래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소소하고, 부담 없고, 좋은 의미에서 머리 쓸 일 조차 거의 없는 편안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묘하게 또 보고 싶은, 그래서 그 순간의 찰나를 발견하고 픈 영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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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영화는 수원화성 근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영화를 본 다음 날 바로 다녀왔어요 (이건 곧 별도로 쓸 예정). 영화 속 처럼 추운 겨울에 한 번 더 다녀왔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2. 김민희의 연기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연기와 실제가 구분이 안되는 차원이더군요. 이 영화의 유일한 성립필요 조건은 극중 김민희가 연기한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이냐 라는 것 정도였을텐데, 완벽 그 자체.

3. 최화정의 '감독님 왜 그러세요!' 이 대사 잊지 못할 것 같아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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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Nobody's Daughter Haewon, 2012)

솔직할 수록 슬픈 홍상수 영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해 느낀 바를 글로 옮기는 것이 점점 어려워 진다. 개인적인 역량 때문인 탓이 크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더 이상 설명하거나 글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 근래 몸집은 더 작아지고 이야기는 더 시공간을 오가는 방식으로 촬영된 작품들은 그나마 그 형식에 대해서라도 조금 글로 옮겨볼 여지가 있었는데, 이 작품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그런 형식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 보다는 더 감정적인 영화이기에 글로 표현할 여지가 현저히 제한적인 영화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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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영화를 보며 느낀 단순한 점이라면, 이전 그의 작품 속 인물들도 그러했지만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다른 영화 속 인물들 보다, 더 나아가 현실 속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솔직하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들을 꼽아보자면 대부분이 '정말 예뻐' '정말 맛있겠다' '정말 좋아' 등 감정을 표현하는 대사들이다. 그것도 '정말'이라는 표현이 더해진 강렬하고 극대화된 표현들이다. 글쎄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혹은 아직도 홍상수 영화 속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들을 보고 단순히 '찌질하다'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나는 예전 영화들에서도 그렇고 특히 최근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들에게서 이러한 '찌질함'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순수에 가까운 솔직함을 엿볼 수 있었는데,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저렇듯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듯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들의 표현이 과장하듯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평소 현실에서 그리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속으로는 저렇듯 극대화된 감정을 느끼지만 겉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서툴거나 자신을 숨기는 데에 더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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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요 근래 홍상수 영화를 보며 이런 인물들의 솔직함에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현실 속에는 간혹 판타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솔직한 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그 어떤 액션 영화의 클래이맥스보다도 통쾌하고 시원한 감정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전 영화들의 인물들이 비교적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 감정은 동일하나 그 감정으로 서로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슬픔도 더 깊게 느껴졌다.


관객은 여전히 제 3자일 수 밖에는 없겠지만 홍상수 영화는 그 제 3자를 그들의 방식에 맞춰 이해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더 극중 인물의 심리를 (설령 그것이 제 3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방식이라도) 이기적이리만큼 더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손짓하고 있는 듯 하다. 최근들어 홍상수 영화에는 꼭 홍상수 자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질문과 대답들이 등장하는데 (왜 영화를 만드세요? 같은), 이 작품 역시 영화 감독인 성준(이선균)이 술집에서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하던 중 비슷한 대화가 오간다. 이런 대화 시퀀스에서 느껴지는 것은 홍상수 감독의 일종의 짜증이랄까. 앞서 한 이야기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왜 자신을 이해 못하는지 그들의 방식으로 설득하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자신의 방식대로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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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이 영화는 이미 제목에서부터 뭔가 쓸쓸함과 슬픔이 묻어나는 영화였다. 아마 다른 감독의 영화였다면 '독립적인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어느덧 솔직함이 무기가 된 홍상수 영화에서 이러한 제목은, 결국 해원은 진짜 해원이 되지 못하겠구나 라는 예상을 하게 되었다. 다른 홍상수 영화처럼 중간 중간 키득이게 되는 장면들도 있었고, 같은 장소와 시간을 홍상수 식으로 활용하는 장면들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지만, 잘은 모르지만 이 영화는 솔직할 수록 더 슬픈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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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중 유준상과 예지원 커플은 '하하하'의 연속으로 느껴져서 묘한 느낌이.


2. 홍상수 영화는 언제부턴가 가보고 싶은 영화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서촌과 남한산성이 자연스럽게 가고 싶어지더군요. 조만간 남한산성 한 번 가야겠네요 (좋은 날 말이죠 ㅎ)


3. 정은채는 참 매력적이더군요. 이국적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다 안될 정도로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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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2)

가지 않았던 길 앞에 서다



홍상수의 신작 '다른나라에서'를 보았다. 이자벨 위뻬르의 출연으로 더욱 화제가 되었던 '다른나라에서'는 전작인'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과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한 편으론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간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그냥 하는 말로 '재미있다'가 아니라 극장을 나오며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아, 정말 영화 재미있게 만들었네!'라는 생각이 드는 아기자기함과 그 속에 묘한 감정선이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홍상수는 전작들을 통해 같은 인물들을 두고 시공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거나 (북촌방향),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이야기로 풀어내 모호함 속의 논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옥희의 영화), '다른나라에서'는 모호함은 덜하고 좀 더 명확해졌으며 시공간은 같지만 같거나 다른 인물들의 또 다른 이야기 (가지 않은 길)를 통해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재미를 한가득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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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엄마와 함께 빚에 쫓겨 모항에 내려온 딸 (정유미)이 심심해서 써 본 세 편의 작은 이야기(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안느 (이자벨 위뻬르)에 관한 이야기다. 모항이라는 동일한 공간, 여름이라는 같은 시간대 그리고 그 시공간에 존재하는 같은 사람들. 하지만 세 명의 다른 안느가 만나는 이 시공간과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낸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는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물론 이자벨 위뻬르가 모항을 배경으로 유준상, 정유미 등 우리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신선함과 매력을 준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개인적으로 '다른나라에서'는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의 어느 한 접점이라고 생각되는데, 좀 더 명확해진 '옥희의 영화'이자 대놓고 챕터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정유미가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을 매번 삽입하면서 챕터화를 한 '북촌방향' 말이다. 이렇게 관계나 구성에서 좀 더 명확해지면서 영화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편안한 작품이 되었고, 그의 다른 여름 영화들처럼 (해변의 여인, 하하하) 좀 더 유쾌함과 살랑거림을 담은 가능성의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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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과의 접점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나라에서'의 가장 큰 매력은 세 명의 안느의 이야기가 모두 밀접한 점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블록버스터 영화였거나 반전을 핵심으로 내세운 영화였다면 영화 속 다양한 복선과 연결고리들을 굉장한 무기로 활용했겠지만, 홍상수는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또 다른 우연의 가능성인냥, 그냥 자연스레 흘러버린 물줄기인냥 손 가는대로 그려냈다. 세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을 때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그들은 모르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또 다른 모습 (그들이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일 텐데, 아마도 블록버스터 영화였다면 시간 여행을 통해 그 인물의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만나보게 될 때와 유사한 흥미로움과 영화 속 인물들은 처음 겪는, 처음 하는 일이지만 이를 본 관객들 입장에서는 반복을 보게 되는 것에서 오는 다른 재미와 다른 포인트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홍상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배열해 놓고 관객에게 반복과 가능성의 재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안느에게도 일부 관객과 같은 능력(?)을 부여하고 있다. 즉, 정말 각기 다른 이야기 속 다른 안느라면 (이럴 경우 같은 안느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지만)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주었는데, 이 장치를 묘사하는 방식이 관객으로 하여금 '엇, 이상한데?'라고 단순히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애잔함을 남기고 있어 특히 더 인상적이었다. 바로 안느의 뒷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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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가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가능성을 마치 인생극장처럼 펼쳐놓은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 앞에 선 안느의 모습 때문이었다. 한 쪽으로 가면 안전요원을 만나게 되고 다른 한 쪽으로 가면 등대로 가는 길인데, 안전요원과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등대에 가게 되면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서의 중요함 보다는, 이 길 앞에 잠시 멈춰선 안느의 뒷 모습이 무언가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안느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로 이루어진 짧고 응축된 대화들을 통해 단순히 프랑스 여인 안느 만이 '다른나라에서'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다른나라'를 경험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세트 하나 없이 실존 하는 장소들만 가지고 촬영한 이 영화가 마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모항'이라는 가공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모항의 자연적 아름다움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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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작들의 비하자면 정서적인 메시지는 좀 덜하고 유쾌한 편안함이 더 가미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몇몇 장면들은 정말 홍상수 영화의 다른 명장면들이 그러하듯이,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 눈물겹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예고편에서도 등장했던 유준상이 연기한 안전요원이 텐트 안에서 안느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그 장면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맥락이 없는 장면이라고 해도 무방한 순간이었는데, 그 장면이 주는 임팩트가 어떠하였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유준상이 너무 아름답게 노래해서도 아니고, 곡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만도 아닌데 그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ANNE, THIS IS A SONG FOR YOU.
ANNE, YOU HAVE A BEAUTIFUL NAME.
IT'S RAINING. BUT IT'S RAINING.
ANNE WANT TO GO TO… GO TO LIGHTHOUSE.
BUT IT'S RAINING, ANNE IS COLD.
DO YOU WANT TO GO LIGHTHOUSE?
BUT, WE DON'T KNOW. WE DON'T KNOW.
ANNE, ANNE, ANNE.





1. 전 개인적으로 안전요원의 텐트 안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은 것이 가장 훌륭한 선택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하긴 홍상수 영화에서 텐트 안을 잡아냈다면 그것도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네요 ㅎ


2. '하하하'를 보고 가장 크게 발견한 건 역시 유준상이었는데, '다른나라에서' 드디어 터져나왔어요! 주옥 같은 영어 명대사를 여럿 만드셨습니다 ㅋ


3. 홍상수 투어의 장소가 또 추가되었군요. 이제는 모항도 가봐야할 곳!


4. 이 작품에서 새롭게 발견한 이자벨 위뻬르의 모습이라면 '귀여움' 이었어요. 빨간 원피스를 차려입고 나선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더군요.


5. 도올 선생님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서 이미 첫 등장의 뒷모습부터 웃음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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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 (The Day He Arrives, 2011)

시공간 속 가능성을 얘기하는 홍상수



홍상수 감독의 열 두 번째 장편영화 '북촌방향'을 보았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항상 '영화'라는 것 자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는데, 언제부턴가는 여기에 '마법'과도 같은 '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곧 영화로 직결된다고 볼 수 있겠지만. '북촌방향'은 그의 전작 '옥희의 영화'와 짝을 이루는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인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두 작품의 연결고리를 찾지 않더라도 '북촌방향'은 정말 묘한 가운데 홍상수 영화의 정수를 잘 담아내고 있는 멋진 작품이라 하겠다 (진짜 '멋진'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영화 감독이었던 성준(유준상)이 친한 선배 영호(김상중)를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와 북촌에서 겪는 우연과 운명의 시간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성준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이 시점에는 여러가지 함정과 여지가 가득하다. 1차적으로 '북촌방향'은 성준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지점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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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과 영호가 만날 때 연속으로 같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즉, 다른 시간과 날이 아니라 같은 날의 다른 기억으로 가정할 여지도 있는 것이다)


유준상이 연기한 성준이라는 캐릭터는 본인 스스로도 불안함과 우유부단함을 많이 노출하고 있는 캐릭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는 완전한 객관적 3자가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준이 1인칭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했을 때 여기에 어느 정도 힌트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흔들리는 성준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그와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늘어 놓게 된다. 사실 이 영화의 모호함은 이미 여러 관객들이 별다른 의심을 갖지 않고 바로 수긍해 버리는 김보경의 1인 2역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한 배우가 각기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아주 원초적인 영화적 장치라고 할 수 있을텐데, 관객은 너무나 당연히 '아, 김보경이 성준의 옛 여자친구와 술집 주인 모두를 연기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이지만 홍상수는 이 뻔한 1인 2역의 장치를 이야기와 맞물려 매우 영민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성준의 이야기 속에 김보경이 연기한 두 명의 캐릭터는 단순한 1인 2역의 범주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 두 사람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성준 밖에는 없는데, 그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술집 주인의 대사와 태도는 옛 여자친구와 동일시 할만한 요소가 충분해 보인다. 갑작스레 술집 주인이 성준을 '오빠'라고 불렀을 때 1차적으로는 영호가 들려준 그녀의 이야기들에 빗대어 무척이나 외로운 존재여서라고 인식할 수 있지만, 2차적으로는 아니 이미 옛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성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그래, 내 새끼'하며 둘을 동일 인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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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여주인은 매번 어딜 갔는지 자리를 비우는 것도 이상하지만 - 마치 1인 2역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 테이블에 앉아있는 영호 무리를 대할 때마다 매번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인사하는 것도 흥미롭다. 여러번 같은 대답을 하는 영호의 대답도 그렇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흑백 영화로 인한 날과 시간의 모호함 혹은 분명함이다. '북촌방향'은 '오!수정'에 이은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흑백영화인데, 이번 작품에서 흑백영상이 갖는 의미는 시각적으로 오는 아름다움과 영화다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영화는 흑백 영상으로 인해 날과 날의 경계가 흐려짐과 동시에 낮과 밤의 경계도 흐려졌다. 처음 성준이 서울에 올라온 뒤 북촌을 기웃거리다 낮술을 한 잔 하고는 다시 젊은 영화하는 남자 세 명과 택시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이미 아주 늦은 밤인줄로만 알았었는데, 옛 여자친구와 헤어져 나온 뒤 만나게 된 영호의 첫 마디는 '너 술마셨구나'다. 즉, 이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물론 하루가 지나고 그 다음날도 혼자 술을 한 잔 하고 영호를 만났다고 할 수도 있으나, 이쪽이 더 가깝다) 흑백 영상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즉, 이렇게 되면 성준이 옛 여자친구의 집에서 얼마의 시간 동안 머물렀는지에 대한 추정이 어려워지는데,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북촌방향'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처럼 사실을 추론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중요한 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모호함의 여지는 매우 흥미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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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은 소설의 여 주인과 이별하며 그녀를 위한 세 가지 좋은 충고를 약속받고 떠난다. 이 약속은 과연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



날과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가운데 공간적인 장소의 개념은 더욱 선명해진다. 영화 속 성준의 동선은 매우 한정적이다. 영호를 만나기 위한 길, 그리고 영호와 만나서 함께 가는 '소설'이라는 술집. 그 외에 등장하는 공간들도 반복되는 곳들이 많다. 같은 공간, 모호한 시간의 경계 속에 성준은 극 중 대사를 통해 운명론에 가까운 인연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영화가 보여준 태도로 보았을 때 이 인연에 관한 이야기는 역시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겠다. 뭐랄까, 영화 속 주인공들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스스로가 그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텍스트라는 점이 '북촌방향'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영화 속 성준의 얘기와도 같이 주인공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로서의 인연과 가능성도 흥미롭지만, 영화 스스로가 막연히 모호한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의 활로를 열어두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인연들의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구성은 생각하면 할 수록 놀라운 구조라 하겠다. 누군가 '북촌방향'을 '인셉션'과 연관지은 제목을 스치듯 본 기억이 있는데, 홍상수 감독은 '나도 몰라'하며 허허 웃지만 이 영화의 구조는 '인셉션'의 그것처럼 깊이와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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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이 보여준 '가능성'에 흠뻑 빠져있다보니 너무 이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이 와중에도 홍상수는 자신이 그 동안 지속적으로 보여준 남녀상열지사, 아니 인간 관계에 대한 매우 섬세한 과정 역시 담아내고 있다. 전작인 '하하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좋은 것' '좋은 것만 보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북촌방향'은 '착한 것'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좋은 것'에 대해서도 그러했지만, 홍상수가 화두를 던지는 방법은 너무나도 본편적인 것, 그래서 오히려 단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해 다시금 (혹은 처음) 생각해보게끔 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대중들이 흔히들 사용하는 유행섞인 '착하다'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근본적인 의미로서의 '착하다'에 대해 떠올려 보게 했다. 홍상수 영화에서 처음 이런 대사를 만났을 때만 해도 '큭'하며 코웃음 치는 것으로 그치곤 했는데, 이제는 '넌 너무 착해'라고 이불 속에서 얘기해도 '야, 저런 속물이 다있네'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렇다면 착하다는 것은 진정 어떤 것인가?'라는 걸 떠올려보게 되니, 이렇든 저렇든 결과를 떠나서 참 대단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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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안할 수가 없는데, '성준' 역할을 맡은 유준상의 경우 이미 '잘알지도 못하면서'를 통해 홍상수 세계에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터라 이번 작품이 처음부터 기대되었던 경우인데, 역시나 김상경과는 다른 그 특유의 깔끔하면서도 나태한(?) 목소리는 '성준'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했다. 기존 TV드라마 출연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배우 유준상의 가능성은, 이제 더 이상 가능성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 작품을 통해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그와 반대로 마치 '잘알지도 못하며서'의 유준상 처럼 '북촌방향'을 통한 개인적 발견이라면 '보람' 역할의 송선미를 들 수 있겠다. 기존 TV를 통해 접했던 그녀의 이미지는 사실 와닿는 것이 없는 평범한 연예인의 그것이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녀가 보여준 캐릭터는 '잘알지도 못하면서'의 고현정이 그러하였듯, 새로운 가능성과 동시에 홍상수 세계에도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더불어 '이렇게 목소리가 좋았던가'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으며, 그 미소 역시 그간 TV를 통해 보았던 얼굴이었으나 처음보는 미소였다.

1인 2역을 연기한 김보경의 이미지도 좋았다. 그녀 역시 발견이라 할 만한 것이었으며 여배우가 가질 수 있는 매력을 거의 대부분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영호'를 연기한 김상중은 마치 계속 홍상수 세계에 존재했었던 인물 마냥 그 자리에 떡 하니 있는데,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이제야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김상중 역시 발견 또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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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이 일은 몇 일 간의 이입니까 아니면 하루 동안의 일입니까?' 그러자 선생이 대답했다. '허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홍상수의 열 두 번째 장편영화 '북촌방향'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홍상수! 홍상수!'를 외치게 한 마법 같은 작품인 동시에, 왜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하고 기다리고 빠져들게 되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했던 경험이었다. 그의 가능성 더 나아가 영화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1. 적어도 극장에서 한 번은 더 볼 작정입니다. 반복으로 이뤄진 작품임에도 또 무엇이 있을까 또 보고 싶은 작품이라서요!

2. 이 영화를 시간의 의미로 풀어낸 글 가운데는 씨네21 정한석 님의 글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만큼이나 흥미로운 글이었어요!
(http://www.cine21.com/do/article/article/typeDispatcher?mag_id=67246&page=1&menu=&keyword=&sdate=&edate=&reporter=)

3. 언젠가 한적한 날을 골라 북촌방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싶네요. 물론 '소설'에 가서 맥주도 한 잔 하구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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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월드, 그 솔직함을 넘어선 순수의 세계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서는 언제부턴가 그 만의 확실한 세계관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초기작들에서도 그 만의 독특한 영화적 시각은 느낄 수 있었지만 최근 작에 오면서 그의 작품은 분명 방향성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고, 더 구체화되고 노골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런 홍상수를 조금씩 느끼게 된 것은 '극장전'과 '해변의 여인'부터였고, 2008년 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와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좀 더 노골적이 되었다. 홍상수 감독의 최근작을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모두들 알 수 있겠지만 이 '노골적'이라는 표현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로도 그 의미를 희석시키기 어려울 정도의 순수함 그 자체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홍상수 영화를 논하면서 많은 이들이 '속물 근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나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았을 때는 이런 논리에 동의 했었으나 '하하하'를 보고 나서는 이것이 단순히 '그래, 너도 나도 모두 속물이다'라는 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남자는 각각 통영에 다녀온 추억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술 한잔에 실어 나누기로 한다 (나중에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설정은 은근히 무협지 속의 인물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렇게 두 남자는 서로 만이 겹쳐지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쳐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관객들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왕성옥이 이 일부분을 알게 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분이다).




'하하하'를 보면서 시종일관 느껴졌던 주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대화들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그의 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작품은 아는 것에 대한 물음과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단 한 시퀀스도 이 주제를 다루지 않은 대화가 없을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이 안다는 것인가에 대한 선문답으로 이뤄져 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이 뭘 알아요?' '이걸 안다고 할 수 있어?'

이런 '알고 모르는 문제'는 영화가 택하고 있는 구조로 더 선명히 드러난다. 영화는 두 남자의 하나인 동시에 두 개인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각자는 서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그대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이들이 각자 말하는 인물들과 관계의 이야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이 많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들의 이야기는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의 인물을 두고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상을 두고도 말하는 화자에 따라 청자의 입장에서 '좋은 어머니'도 되었다가, '돈 많은 식당 주인'도 되는 것, '동굴 같은 곳'에서 '희망을 꿈꾸게 되는 집'도 되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알고 모름의 방식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비유가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방식도 아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속내를 겉보다도 더욱 진솔하게 드러낸다.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속물 근성'을 들먹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미칠듯한 진솔함 때문일 텐데, 사실 이런 솔직함을 그냥 '찌질함'으로 얼버무리기에는 정말 부족한 부분이 많다. '하하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찌질 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솔직한 것뿐이다. 뭐랄까 우리가 일상에서 마음 속으로만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들 겉으로 거침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이것은 분명 찌질 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평소 우리가 얼마나 가식적인 관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지나치리 싶을 정도의 솔직함은 (그런데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런 솔직함 자체를 '지나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영화가 의도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극 중 인물과 나를 완전히 겹치도록 만든다. 겉으로는 웃을지언정 그 안에서 나를 완벽하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처럼 솔직하게 '저건 완전히 나다'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맞아, 나도 저런 적 있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하기만 한 듯한 영화에서 나를 보는 완벽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홍상수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 하겠다.




이런 홍상수 월드에 대한 순수함의 경이로움은 영화를 보고 막 극장을 나왔을 때보다, 하루 지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막걸리 한 잔 하며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더 깊어졌고, DVD리뷰를 위해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더 나아가게 되었다. 다시 만난 이들의 대화들은 그냥 단편적인 영화적 에피소드로 보아도 소소한 재미가 있는 것이지만,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덜 성숙한 어린아이 같은 결핍이 가져온 순수함이 아니라, 어른이 범접하기 어려운 궁극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대사인 '전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대사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대사가 될 수 밖에는 없다. 마치 코엔 형제의 최근작 '시리어스 맨'에서 그저 웃고 넘길 뻔했지만 작품을 가로지르는 가장 중요한 대사였던 '주차장을 봐'라는 어린 랍비의 말처럼, '전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극중 김상경이 연기한 조문경의 한 마디는, '와,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세계관을 이 정도까지 밀어붙이려 하는구나'라는 홍상수의 작가적 야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하하하'에 대한 감회를 짧은 글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따른다. 진짜 홍상수 월드 속 인물들처럼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모두 주당이다) 대낮부터 나 한잔 너 한잔하며 이야기 꽃을 피워줘야 어느 정도 정리해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지난 씨네21에 실렸던 홍상수와 정성일의 엄청난 분량의 대담은 이 작품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었다. 여기서 홍상수는 줌(Zoom)을 일종의 영화적 리듬으로 사용한다는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하하하'에 사용된 줌에서는 전작들보다 더한 리듬 감이 느껴진다. 그냥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을 살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음악 역시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홍상수 영화에 이렇게 음악이 많이 사용되었던가 싶을 정도다.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어떤 가. 이제는 다른 설명 필요 없이 그냥 '홍상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짙게 풍기는 김상경은 말할 것도 없고(주책 떠는 그의 연기가 단순히 '주책'으로만 보이지 않고 진정이 느껴졌던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 하겠다), 전작에 이어 또 다시 출연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유준상의 발견은 계속 되고 있으며(영화를 보고나니 흡사 한석규의 말투를 연상케 하는 그의 말투를 자꾸 따라 하게 된다), 예지원, 윤여정, 김강우, 김민선의 연기들도 잘 녹아 들고 있다. 앞선 두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지만, 김강우나 김민선의 경우는 홍상수 월드에 들어오게 되면서 연기자로서 발견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평범한 동시에 가장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문소리의 연기가 무엇보다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 문소리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였다. ('오아시스' 같은 작품 보다 더!)


DVD Menu






DVD Review

누가 '하하하'같은 작품을 보면서 화질과 음질을 첫 번째 고려요소로 선택하겠냐 만은, 이런 작은 영화치고는 나쁘지 않은 화질과 5.1채널의 멀티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일단 화질 같은 경우는 보통 블루레이 시대의 DVD타이틀이라는 점과 영화가 화질의 우수성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끔씩은 아쉬움이 솟아나는 작품들이 많았던 것을 떠올려 봤을 때, '하하하' DVD의 화질은 비교적 준수한 편이다. 물론 이 준수하다는 표현에는 극장에서 보았던 원본 소스와 비교했을 때 큰 손실이 없었다 라는 의미로 쓰였다.





사운드 역시 2.0채널만 지원했어도 전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을 작품이었지만, 5.1채널을 지원하게 되어 앞서 이야기했던 음악을 통한 영화의 리듬감을 좀 더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가영상으로는 2분 분량의 예고편과 30초 짜리 스팟 만을 제공한다. 물론 이 작품의 제작 여건 상 DVD부가영상을 위한 소스들의 기획이나 제작이 쉽지 않았던 것도 이해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른 감독의 촬영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홍상수 감독 작품의 촬영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긴장감과 편안함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클립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떠올려보니 우리가 본 영화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총평]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최근 개봉했던 '옥희의 영화'와 함께 우리 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씨네 아티스트 중 한명인 작가 홍상수의 세계관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었던 대담한 작품이었다. 특히나 한 번 볼 때보단 두 번 보았을 때, 그리고 문득 궁금해져 다시 보았을 때 또 다른 의미를 새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뜻 깊은 소장이 될 수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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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夏夏夏, 2010)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철학적 놀이


(참고로 이 글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하루를 훌쩍 넘기고도 그 여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막걸리 한 잔을 건하게 걸치고 나서 작성하는 글 임을 밝힌다. 본래 술을 마시고 쓰는 글은 매번 위험하지만, 이번 '하하하' 리뷰 만큼은 이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랬다. 일단 이것저것 복잡한 것을 떠나서 홍상수 감독의 열번째 장편 영화 '하하하'는 나에게 있어 술을 부르는 영화였다. 참고로 그의 전작 '잘알지도 못하면서'는 그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라는 슬픈 국환 때문에 차마 글을 남기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나름 술 한잔을 더해가며 글을 가져가게 되었다. 최근 15주년 기념 버전으로 발행된 '씨네 21'이 특별히 홍상수 에디션을 내어놓은 것도 그렇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홍상수가 대세라고 할 정도다. 사실 나는 예전 홍상수 영화에서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편이었다. 특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같은 작품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떠나서 별로 달갑지 않게까지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그랬던 홍상수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역시 '잘알지도 못하면서' 였다. 남들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이전과 이후의 홍상수가 확연히 달라보일 만큼, 인상적인 변화였고 가볍지만 더욱 생각할 거리는 많아진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기대를 갖고 보게 된 '하하하'는 새로워진 홍상수 월드를 좀 더 견고하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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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를 논하면서 많은 이들이 '속물 근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나도 '잘알지도 못하면서'를 보았을 때는 이런 논리에 동의 했었으나 '하하하'를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그래, 너도 나도 다 속물이다'라는 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남자는 각각 통영에 다녀온 추억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술 한잔에 실어 나누기로 한다(나중에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설정은 은근히 무협지 속의 인물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렇게 두 남자는 서로 만이 겹쳐지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쳐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관객들 뿐이다(영화의 마지막 왕성옥이 이 일부분을 알게 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분이다). 

'하하하'를 보면서 시종일관 느껴졌던 주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대화들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그의 전작 '잘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작품은 아는 것에 대한 물음과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단 한 시퀀스도 이 주제를 다루지 않은 대화가 없을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이 안다는 것인가에 대한 선문답으로 이뤄져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이 뭘 알아요?' '이걸 안다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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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알고 모르는 문제'는 영화가 택하고 있는 구조로 더 선명히 드러난다. 영화는 두 남자의 하나이지만  두 개인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각자는 서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그대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이들이 각자 말하는 인물들과 관계의 이야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이 많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들의 이야기는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의 인물을 두고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상을 두고도 말하는 화자에 따라 청자의 입장에서 '좋은 어머니'도 되었다가, '돈 많은 식당 주인'도 되는 것, '동굴 같은 곳'에서 '희망을 꿈꾸게 되는 집'도 되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알고 모름의 방식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비유가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방식도 아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속내를 겉보다도 더욱 진솔하게 드러낸다.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속물'이내 뭐내 하는 것은 바로 이 미칠듯한 진솔함 때문일텐데, 사실 이런 솔직함을 그냥 '찌질함'으로 얼버무리기에는 정말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하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찌질한게 아니라 지극히 솔직한 것 뿐이다. 뭐랄까 우리가 일상에서 속으로만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들 겉으로 거침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이것은 분명 찌질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지나치리 싶을 정도의 솔직함은 (그런데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런 솔직함 자체를 '지나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영화가 의도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극 중 인물과 나를 완전히 겹치도록 만든다. 겉으로는 웃을 지언정 그 안에서 내가 완벽하게 보이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처럼 솔직하게 '저건 완전히 나다'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맞아, 나도 저런 적 있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하기만 한 듯한 영화에서 나를 보는 완벽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홍상수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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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하하'에 대한 감회를 짧은 글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따른다. 진짜 홍상수 월드 속 인물들처럼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모두 주당이다) 대낮부터 나 한잔 너 한잔하며 이야기 꽃을 피워줘야 어느 정도 정리해볼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어설프게 남아버린 글에서 더 본격적인 것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다시 영화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려 한다. 이번 씨네 21에 실린 홍상수와 정성일의 엄청난 대담을 보면(아직도 못 본 이들이 있다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지난 호를 반드시 소장해야 한다. 그 만큼 압도적인 컨텐츠가 실려있다), 홍상수는 줌을 사용하는 것이 일종의 리듬으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확실히 '하하하'에 사용된 줌에서는 리듬 감이 느껴진다. 그냥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을 살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음악 역시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홍상수 영화에 이렇게 음악이 많이 사용되었던가 싶을 정도로, 많은 음악이 인식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어떤가. 이제는 다른 설명 필요없이 그냥 '홍상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짙게 풍기는 김상경은 말할 것도 없고(주책 떠는 그의 연기가 단순히 '주책'으로만 보이지 않고 진정이 느껴졌던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 하겠다), 전작에 이어 또 다시 출연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점점 만들어내고 있는 유준상의 발견은 계속 되고 있으며(영화를 보고나니 흡사 한석규의 말투를 연상케하는 그의 말투를 자꾸 따라하게 된다), 예지원, 윤여정, 김강우, 김민선의 연기들도 잘 녹아들고 있다. 앞선 두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지만, 김강우나 김민선의 경우는 홍상수 월드에 들어오게 되면서 발견할 거리를 제공한 듯 하다. 이순신 장군 역의 김영호도 인상적이었으며(리뷰를 하다보니 이 시퀀스에 대해서 아무 언급도 하지 못했는데, 작정하고 쓴다면 이 시퀀스만 가지고도 한 편의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연기를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던 문소리의 연기가 무엇보다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 문소리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그녀의 연기였던 것 같다('오아시스' 보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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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없는 듯 했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완벽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번 영화 '하하하'. '잘알지도 못하면서'와 마찬가지로 인물 하나하나의 대사를 곱씹어 볼 수록 그 속에서 나와 너를 발견하게 되는 아름다운 대사들. 이제는 홍상수 월드에 완벽히 적응한 페르소나들과 이제막 세계에 입성한 신예들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홍상수. 내게 있어 '하하하'는 참 재밌고, 참 의미있고, 참 깊은 영화였다.


1. 리뷰를 그저 '하하하하하하하하'라고 써보고도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2.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영화 속 배경이 된 통영에 다녀온지라 살짝 남다르더군요. 나폴리 모텔에서 잘 뻔도 했었구요.
3. 서두에 밝혔듯이 술을 부르는 이 영화 때문에, 아래의 그림 처럼 순대에 막걸리 한잔하고 쓰는 글입니다. 영화 속 처럼 '막걸리에 도토리묵', '순대에 소주'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영화 분위기가 나더군요 ㅎ




4. 재미있어요. 또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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