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

3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감독판



이미 지난 11월 개봉해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로는 상당한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는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이 무려 50분 분량이 추가 된 '디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의 감독판으로 다시 개봉했다. 만약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고민할 것 없이 '디 오리지널'을 선택했을테지만, 이미 2시간 10분 버전의 '내부자들'을 보았고 아주 만족하지는 않았던터라 이 감독판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이 들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극장을 잘 못 찾아가서 시간이 되는 영화를 고르다보니)결국 이 3시간 분량의 감독판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부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는 지난 글을 참조하고, 이번에는 간단하게만 소감을 추가하고자 한다.




내부자들 _ 뜨거운 연기로 살려낸 암울한 현실 - 리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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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가 된 분량의 대부분은 안상구 (이병헌)와 이강희 (백윤식)에 관한 내용으로 특히 안상구가 어떻게 이강희를 형님으로서 믿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이 강조되었고, 이강희를 중심으로 한 조국일보의 기획회의 부분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일반판을 보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내러티브에 대한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는데, 충분한 시간을 부여 받은 감독판에서는 이러한 부족한 점이 확실히 보완된 느낌이었다.


2. 전체적으로 내러티브의 완성도가 높아지다보니 3시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은 물론, 이미 그 가운데 2시간 10분의 내용을 보았음에도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오프닝을 조상구의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한 것이 좋았고, 추가된 장면에 권력자들의 과한 접대 장면이 더 추가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 정도면 이미 충분했기에.


3. '디 오리지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조국일보를 배경으로 편집위원(?) 5인이 참여하는 기획회의 혹은 밀실회의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본편에서 아예 빠져 있던 시퀀스였는데, 그렇다보니 여기에만 등장하는 배우들은 아예 첫 출연이나 다름 없었다. 이 중에는 동룡이 아버지이자 학주 역할을 맡았던 유재명 배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명백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오마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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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고 메시지가 더 직접적이었다. 이전 리뷰를 하면서 말미에 '과연 우장훈이 강 건너로 가지 않을까?'라고 했었는데, 이번 감독판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이강희의 전화 통화 장면이 추가되었는데, 여기서 더 직접적으로 암울한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객들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이 마지막은 아마 '내부자들'이 가장 말하고자 했던 추악한 현실에 대한 메시지일 것이다.


5. 감독판에서도 달라지 않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병헌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끝내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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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Inside Men, 2015)

뜨거운 연기로 살려낸 암울한 현실



아마 '부당거래'를 본 관객이라면 '내부자들'을 보고 난 뒤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은 조폭, 검찰, 언론, 정부, 기업 등이 연루 된 이른바 권력 범죄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뭐 아시다시피 이 이야기는 결코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 가운데 누구 하나 마음껏 응원하거나 공감할 만한 캐릭터는 찾아 보기 어려우며, 권선징악을 무작정 바라는 것보다는 오히려 씁쓸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을 담고 있다. 또 다른 영화로는 역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을 들 수 있을 텐데, '베테랑'이 똑같이 암울한 현실을 유쾌한 방식으로 그려냈다면 '내부자들'은 그 암울한 현실의 커넥션과 세기의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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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런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의 관계와 범죄를 다룬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익숙한 시점에서 이 같은 영화가 인상적이려면 일반인들은 쉽게 예상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커넥션의 디테일과 판세를 뒤집을 만한 카드를 영화가 얼마나 잘 숨기고 또 잘 꺼내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내부자들'은 그런 측면에서는 완성도가 조금 아쉬웠다. 이 꼬인 현실 만큼이나 영화가 다루고 있는 권력 범죄의 구도는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그렇다보니 이 각각의 관계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에 조금은 버거움이 느껴졌다. 액션이나 감동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야기가 주는 반전이나 전개 과정의 긴장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이 같은 장르의 경우, 끝까지 그 짜임새를 유지하지 못하면 관객들 입장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되는데 '내부자들'은 중후반부로 갈 수록 조금은 완성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부자들'은 짜임새 측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거나 호평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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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내부자들'을 볼 만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확실하다. 이미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등의 배우들이 그 확실한 이유다. 올해 한국 영화에서 연기 측면으로만 보았을 때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이 대단한 배우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대단한 연기를 펼친다. 앞서 권력 범죄를 다룬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하다는 점과 마찬가지로, 조폭, 언론, 정부 관계자, 검찰 등 전문직 인물의 생활 연기 역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인데, 아주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 아님에도 '내부자들'의 배우들은 연기력만으로 그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살려낸다. 조연들의 연기들도 마찬가지다. 흔히 이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경우도 어느 정도 관성화 된 연기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조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서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새삼스럽지만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참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을 또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뭐,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 점도 있고 (이번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안상구라는 캐릭터는 묘하게 배우 이병헌을 겹쳐지게 하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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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부자들'을 제 2의 '부당거래' 혹은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조금 기대치를 낮추다면 배우들의 뜨거운 연기 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1. 참고로 CGV에서 관람하였는데 상영 전 나오는 '자랑스러운 나라' 광고와 이 영화가 보여준, 실제와 좀 더 가까운 현실의 괴리감은, 다시 한 번 이 광고를 하는 것이 홍보 측면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을 또 하게 만들었음.


2.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권력자들의 접대 장면의 수위가 조금 센데, 예전 같으면 '영화가 좀 심하네'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으나 언제부턴가 '현실은 더하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씁쓸한 현실이랄까.


3. 엔딩과 관련해서도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더군요. 우장훈 (조승우)이 과연 강 건너로 가지 않을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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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의견 (2013)

피고 대한민국에게 진실을 묻다



용산 참사와 관련된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소식은 이전에 들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의 개봉도 그리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나 보다. 2013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2015년 6월이 되어 서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는데, 어쩌면 영화의 제목인 '소수 의견'과 같은 대우 혹은 처분을 영화 스스로가 받았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수 의견'이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좀 더 실화 자체에 바탕을 둔 영화인지 아니면 배경으로 픽션을 그려낸 것인지 하는 점이었는데, 김성제 감독의 '소수 의견'은 후자의 방식을 택한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방식은 영화가 본래 말하고자 했던 바를 관객에게 전달 하는 것에 있어서 더 영리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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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영화는 정치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응원을 받든, 질타를 받든 간에 말이다. 물론 지금의 결과물을 가지고도 충분히 이런 논란을 벌일 수는 있겠지만, 느끼기에 '소수 의견'은 최대한 이를 직접적인 방식 보다는 간접적이고 은유 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한 영화로 느껴졌다. 일단 아직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이 작품은 실화입니다'라는 방식의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이 영화의 경우처럼 '영화 속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입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결과적 효과를 만들 수 밖에는 없었다. 왜냐하면 실화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이 사건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실제 인물과 사건에 빗대어 생각할 수 밖에는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제 실화 임을 강조하는 방식은 오히려 사실을 늘어 놓는 것 이상의 효과는 없었을 텐데 (물론 제대로 된 사실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시대다.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이 그랬던 것처럼), 이보다는 관객들이 영화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이 사건의 진짜 문제와 이로 인해 알게 된 진실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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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의 어두운 면, 혹은 누군 가가 숨기고 싶어하는 진실에 대한 영화들을 요 근래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소수 의견'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들 만이 서로 원망하고 다투고, 결국 용서하고 눈물 흘리게 되는 잘못된 사회와 진짜 가해자에 대한 추적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법정 공방 과정 관련하여 기술적으로 보았을 때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물론 그랬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주고자 했던 것은 법정 공방에서 오는 서스펜스와 통쾌함은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작품의 법정 드라마는 진짜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추적하는 과정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다른 법정 드라마와 다른 점이라면 진짜 가해자는 원고 측에도 피고 측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한 소년과 한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간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농성자와 용역 깡패, 더 나아가 작전을 수행한 전경과의 대립 구도는 이 사건의 진정한 프레임이 아니다. 법정 공방은 이들 사이에서 이뤄지지만 진짜 주목해야 할 구도는, 작게는 이런 사건에 큰 관심이 없었던 두 변호사 윤진원과 장대석 같은 사람들과 앞선 프레임 대로 흘러가길 원하는 권력과의 구도, 크게는 이 사건을 그저 남의 이야기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국민들과 그랬으면 하는 권력과의 구도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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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도로 이 영화를 바라보게 되면 사실 영화는 더 답답해 진다. 왜냐하면 영화 내내 매달렸던 사건과 법정 공방의 결과 얻게 되는 건 결국 진실이 아직은 소수 의견일 수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뿐이다'라고 썼지만, 그리고 이 영화는 스스로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소수 의견이자 '뿐'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럴 '뿐'인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정말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나는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소수 의견을 내는 것은 여러 모로 부담스럽다. 특히 그것이 어떤 불안과 공포를 담보로 해야 할 땐 더더욱 주저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영화는 묻는다. 피고 대한민국에게 진실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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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 민란의 시대

차라리 더 조윤의 영화였더라면



'범죄와의 전쟁'을 연출했던 윤종빈 감독이 다시 한 번 배우/스텝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만든 사극 '군도 : 민란의 시대'는 그의 신작이라는 점과 하정우, 강동원의 대결 구도 등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화려한 캐스팅은 물론이고 예고편에서 뿜어나오는 타란티노스러운 리듬감과 스타일은, 강동원이라는 보증되어 있는 비주얼과 함께 어떤 스타일리쉬한 액션 활극이 될지 큰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군도'는 위의 기대를 대부분 충족시킨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에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균형감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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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의 스토리는 대략 히어로물과 유사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능력도 없고 평범한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이미 대의를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해 오던 무리에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그들에게 훈련을 받아 그들이 오래 계획했던 대업을 결국 마무리하게 되는 중책을 맡게 되는 그런 구조인데, '군도'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조금씩 흔들렸다고 하겠다. 저런 스토리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 스토리가 관객에게 더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초반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공감을 얻어야 하고, 무리로 등장하는 선의의 그룹의 이야기 역시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이유가 필요한데, '군도'의 경우는 이 두 가지가 조금은 부족했다. 돌무치는 불운한 사건을 겪으며 도치가 되지만 이 성장 아닌 성장 과정에서 관객은 별다른 동요를 느끼지 못하고,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백성을 위하고자 하는 도적떼의 이야기 역시 더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시간도 깊이도 부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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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은 이 부족한 부분을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하려 하는데,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이 부분에서 필요했던 건 설명이 아니라 공감대였다는 점이다. 역사적인 내용은 설명으로 해결이 될 수 있었지만 이 설명 만으로는 지리산 도적떼가 이루려고 하는 진짜 세상과 주인공 돌무치의 울분이 생각보다 와닿지 않았다. 써놓고 보니 특히 돌무치의 경우 그 울분이 더 강렬하게 표현되어도 좋았을 법 했는데 너무 쉽게 대의에 섞여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즉, 개인적인 사정과 시대적인 사정이 결합하는 구조에서 둘 모두가 조금은 미지근하게 표현되다 보니, 전반 부는 조금 지루하고 후반 부는 빠르게 진행되나 감정적으로 공감되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강동원이 연기한 조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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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이 설정한 이 영화의 대립 구도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도가 아니라 둘 다 갖지 못한 자들의 싸움 구도였다. 재산은 물론 먹을 것 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백성들과 처음 부터 서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던 이의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앞선 군도들의 이야기는 진정성이 미처 다 어필되지 못했지만,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조윤의 이야기는 비교적 절제된 방식으로도 충분히 설명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후반 부의 클라이맥스에서도 도치가 아니라 오히려 조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결과까지 낳게 되었다. 솔직히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100% 이를 가능케 했다기 보다는 조윤이라는 캐릭터와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비주얼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긴 도포를 휘날리며 신선처럼 걷고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무를 겸비한 조윤은, 강동원이라는 배우를 통해 곱지만 강렬한 선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조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돌무치와 군도들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갖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기에, 말미에 가서도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적'이라기 보다는 또 다른 주인공 (사실상 주인공)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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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차라리 더 조윤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캐스팅은 어려웠을 지도 모르지만, 조윤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조금 더 많은 비중을 조윤에게 할애하고 지금과 같은 구도가 아닌 조윤에게 더 포커스를 맞춘 구도였다면, 혹은 돌무치의 비중과 공감대를 조윤에게 버금가도록 끌어냈다면 (사실은 조윤을 넘어서야 하지만) 더 흥미로운 구도의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도'는 한 편으로 감독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과 닮아 있는데, 여럿을 등장시키면서도 그 균형점을 잘 잡아내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은 조금은 그 균형이 흔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조윤 때문이가. 극장을 나온 뒤로도 계속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영화이기도 하다.



1. 타란티노 스타일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텐데 (실제로 '장고'에 수록된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통쾌함을 주지 못했다는 건 아쉬운 점이었네요.


2.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극 중 캐릭터들의 나이였죠. 나중엔 이성민씨가 연기한 대호역시 25정도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그 땐 정말 힘든 시기였나보네요;;;;


3. 처음 김성균씨가 등장했을 땐 까메오 정도인 줄 알았었는데 쭈욱 나오더라는. 결국 또 하정우의 오른팔인겁니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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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이유를 몰랐던 이들의 진혼곡



2003년 작 '지구를 지켜라'를 인상 깊게 보았던 이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기다렸을 장준환 감독의 신작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이하 화이)를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화이'는 전반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가운데 잔인함마저 가득한, 장준환 감독 만의 에너지가 돋보이는 그런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 납치된 아이를 납치범들이 어른이 되도록 키워낸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능한 구조였는데, 여기에 몇 가지 이야기의 구조를 더해 장준환 감독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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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텐데, 하나는 영화의 인물이나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많음을 왜 선택했느냐 일 것이다. 일단 단순하게 보았을 때 '화이'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각자의 이야기는 결코 적지 않은 편이다. 특히 인물들은 화이에게 다섯 명의 아빠가 있는 것처럼 필요 이상으로 느껴질 만큼 다수의 인물이 등장한다. 각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 비중이 모두 적은 편이 아니라 일정 수준이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쉽사리 한 가지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 단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많은 캐릭터들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분명 이 점은 집중 도를 흐릴 수 있는 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 비중과 수준이 필요 적정 선에 닿아 있었기 때문에 허무하다 거나 전체 전개를 흐리는 일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다섯 명의 아빠라는 설정처럼, 때로 나오며 각자의 주특기가 있는 캐릭터로 인해 부가 적인 재미 요소가 있었고, 주변 인물들 역시 이름 있는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어 각각을 인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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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렇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인물을 굳이 등장 시켰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를 통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화이'의 이야기 구조라면 화이 (여진구)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자신을 키워준 납치범 아빠들과 적으로 대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1:1의 대결 구도 (정확히 말하자면 1:5가 될 수도 있지만)에 집중하여, 화이의 분노와 이 이야기의 끝을 주목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준환의 '화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기본 이야기에 몇 가지 곁 가지 이야기를 추가했고, 각각의 캐릭터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부여했다. 그 얘긴 즉,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화이라는 한 인물이 겪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등장하는 모두가 같은 갈등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다수의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그 정서를 느꼈겠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인물은 그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어떻게 든 문제를 해결하고 살고자 하기 보다는, 그저 죽음이 순순히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분위기가 시종일관 느껴졌다. 단순히 죽기 만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저 세기말 적인 분위기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화이'에서는 왜 인물들이 죽기 만을 기다리는 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는 영화 후반에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처럼, '왜?'라는 물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에 대해 결국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이들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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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어린 아들을 납치 당한 부부는 왜 자신들에게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끝내 알거나 인정할 수 없었을 터이고, 괴물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이도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하면 이 괴물을 떨쳐낼 수 있을지 그 방법과 이유를 몰랐기에 결국 영화 속 이야기 같은 행동들이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저 무서운 범죄자 정도로만 묘사되었던 극 중 김윤석이 연기한 인물의 이야기는, 영화의 메시지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왜 나는 남들처럼 못하는지' 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는지' 등과 같이 '왜?'라는 질문에 결국 세상이 답해 주지 못하면서 그 이유를 끝내 알지 못한 채 자신 만의 왜곡된 방법으로 살아 남을 수 밖에는 없었던 그의 이야기는, 그대로 화이에게로 전이되어 슬픈 진혼곡으로 마무리 된다.


그 절절함. 이미 절절하고 치열한 단계를 다 거쳐 무뎌진 인물의 이야기와 현재 그 치열함 속에 놓인 인물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순간이, 이 작품 '화이'의 클래이맥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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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진구의 연기는 제대로 처음 보았는데 괜찮았어요. 교복을 수트로 오해할 만큼 멋지더군요 ㅎ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이 영화를 볼 수 없었다는게 함정.


2. 김윤석은 정말 무서워요.


3. 개봉 첫 날 무대인사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아래 직찍. 조진웅 씨는 생각보다 슬림하셔서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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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 (The Terror Live, 2013)

테러는 거들 뿐, 진실이 먼저다



의외의 복병이었다.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는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기대했다면 하정우 외에는 없었던 그런 영화였다. 대략의 설정을 보고서는 오히려 신파와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으로 볼거리 조차 채워주지 못하는 그런 스쳐가는 영화 정도일 거라고 예상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하정우라는 배우를 좋아하기에 극장을 찾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제목과는 달리 테러를 생중계하는 것은 영화적 구성 요소로만 사용될 뿐, 감독이 전하려는 진심은 블록버스터가 아닌 메시지에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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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 봤을 때 '더 테러 라이브'는 장르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무엇보다 그 측면에서 시간을 지루하게 끄는 부분 없이 빠르게 진행되며 리듬감을 잃지 않는 것이 좋았다. 특히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캐릭터를 설명하는 부분이 상당히 짧은 편이었는데 (사실상 영화가 시작되고 바로 사건이 발생하는 수준), 과감하게 정리하고 필요한 부분은 전개 과정에서 조금씩 풀어놓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흔히 한국영화에서 자주 발견하는 부분이 바로 쓸대 없이 가족이나 유머 코드를 삽입해 한참을 후반부의 신파를 위해 깔아둔다는 점인데,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이런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렇게 관객에게 아직 마음에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사건이 터지는 방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비교적 힘을 잃지 않고 긴장감을 전달해주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면 긴장감을 넘어선 긴박감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긴박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빠른 전개가 결국 관객에게 더 큰 호응을 얻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거나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도 어쩔 수 없지 발생하지만,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면 지금의 영화가 선택한 방식이 더 나았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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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러 가면서 기대했던 바는, 한강 다리가 폭파 되는 테러 그 자체와 '다이하드' 나 '폰부스'등에서 느낄 수 있었던 테러범과의 대결 혹은 커뮤니케이션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의 핵심은 테러를 통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감독은 테러라는 자극적인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가 처한 사회 계급에 관한 문제를 하려 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는데, 여러 곳에서 중의적으로 등장하는 이 계급 사회의 묘사는 겉으로 보이는 테러 보다도 훨씬 더 비중 있게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언론이라는 것에 대해. 계급 사회의 운영 도구로 퇴색되어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걸게 되는 언론이라는 것에 대해 새삼스럽지만 다시 금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오히려 이 영화의 메시지 전달 방법은 너무 직접적이라 거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기에 좀 더 세련되고 정리된 방법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반대로 직접적인 영화의 방식이 현재 관객들에게는 더 필요한 자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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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며 같이 영화를 본 이와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를 하게 됐다. 며칠 전 서울 시청 광장에서는 수 많은 인파가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데 이를 보도한 뉴스는 아무 곳도 없지 않았냐고. 우리도 영화를 통해 전지적 시점에서 극 중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 보았으니 이런 생각도 하지, 아마 영화 속 일반 국민이었다면 눈과 귀를 막혀 조작된 채로 오해를 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냐고.


'더 테러 라이브'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며 현실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씁쓸하구만.



1. 이경영씨와 하정우씨가 동시에 등장하니 저절로 '베를린' 생각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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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2013)

누구나 신세계로의 구원을 꿈꾼다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라는 배우의 출연 만으로 두근거리게 만드는 박훈정 감독의 영화 '신세계'를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배우들의 이름과 분위기에 끌려 보게 된 영화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박훈정 감독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썼던 이더라. 조직 폭력, 거대한 범죄 조직내 세력 다툼, 그리고 경찰과의 관계에 스파이라는 설정까지. '신세계'는 얼핏 봐도 '무간도'나 '대부' 시리즈를 직간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영화들이 갖는 방향성 혹은 평가는 둘 중 하나일텐데, 결국 그 틀 안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 없이 반복하는 영화이거나 그 틀을 벗어나 한 걸음 더 나아간 영화이거나 라고 보았을 때, 이 영화 '신세계'는 그 두 가지 경우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더 말하자면 그 틀 안에 있지만 새로울 것 없는 반복이 매력적이었고 조금의 나아감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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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신세계'가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는 바로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무게감이다. 그 무게감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에서 나오는데, 어쩌면 뻔한 조직 폭력과 관련된 이야기들에 다시 한 번 집중할 수 있는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물론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아우라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따지고보면 '신세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그 이야기보다도 더 전형적이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익숙한 것은 물론 더 이상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도 되는데, 그럼에도 조직에 심어진 경찰, 그 경찰을 관리하고 조종하는 또 다른 경찰, 그리고 범죄 조직 내의 인물까지 모두, 새롭지는 않지만 매력적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엔딩을 제외하면 사실 거의 기존 비슷한 내용을 다루었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건 자체를 보기 보다는, '신세계'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결국 누구나 현실에서 신세계를 꿈꾼다는 보편적인 명제와 그런 꿈을 꿀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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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크게 공감되었던 것은 그저 현실에 불만이 있어서 신세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굴레에 빠져버려서 탈출이라는 선택조차 사실상 할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에 놓인 이들이 신세계를 꿈꾼다는 점이었다. 즉, 이들이 꿈꾸는 결과로서의 신세계보다 그들이 현재 처해진 현실(굴레)에 더 공감되었다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이자성(이정재)이 놓인 현실은 정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굴레 그 자체다. 그리고 강과장(최민식)과 경찰은 바로 이 점을 볼모로 이자성을 철저히 이용한다. 그 의도가 어떤 것이었던 간에 이자성의 입장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정말로 답답함 그 자체일 것이다. 다른 인물들도 사실 마찬가지다. 강과장 역시 조직 내에서 이런 명령을 할 수 밖에는 없는 위치와 상황에 놓인 인물이고, 강과장으로 부터 제안 아닌 제안을 받게 된 정청(황정민)의 현실이나, 역시 유사한 제안을 받게 되는 이중구(박성웅)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자신이 이미 벌여놓은 일들 때문에, 누군가는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던 시절의 선택 때문에 이러한 진퇴양난의 현실에 놓이게 되는데, 영화는 기본적으로 주요 인물들을 이렇듯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 각자가 신세계로 향하는 방식 혹은 선택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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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신세계'가 조금 더 흥미로웠던 점은 이 영화가 취한 마지막 때문이었다. 영화는 결국 신세계를 꿈꾸던 여러 인물들 가운데 이자성에게만 신세계를 허락하는 듯 보이는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자유를 허락했으나 이자성에게만 그렇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자성은 자신이 결국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는 모든 이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방식으로 골드문의 보스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처음에는 이 엔딩에 대해 무척이나 통쾌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신세계'를 단적으로 요약하자면 여러 나쁜 이들이 결국 단 한 명의 선한 이를 나쁜 이로 만들어버리는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심판의 측면에서 차라리 통쾌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신세계로 가지 못한 것은 이자성 뿐인 것만 같았다. 즉, 나쁜 이들은 모두 속죄 받기를 내심 원했으나 그 기회를 갖을 수 없던 이들이었다면, 이자성은 기회를 갖을 자격조차 없던 이들을 구원하는 동시에 본인 스스로는 영원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어버린 듯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드문 회장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 이자성의 모습에서는 단순한 씁쓸함이 아니라, 더 큰 한숨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초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라며 몇 번이나 애를 쓰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에필로그 속 6년 전 이야기를 통해 이자성이 벌써 예전에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거나 혹은 그 만의 신세계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일말의 동정심도 허락하지 않으려 한 영화의 건조함이 오히려 더 아픈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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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간도'의 뜻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왔듯이, 이 영화 '신세계' 역시 무간지옥에 갇혀 버린 이들의 이야기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신세계 (新世界)'라는 제목은 이 영화에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니었나 싶다.



1. 요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 연기력 측면만 보면 가장 볼거리가 화려한 작품이었어요.


2. 어디서보니까 본래 3부작으로 기획되었단 이야기가 있던데 (미공개 영상으로 공개된 마동석,류승범이 등장하는 에필로그도 그렇고), 전 이 한 편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지만 기대는 되네요. 그런데 3부작으로 가게 되면 너무 '무간도'처럼 가게 될 것 같기도하고;


3. 확실히 이런 캐릭터를 국내에서 황정민 만큼 맛깔나게 소화해내는 배우는 없는 듯. 역시 양면성으로 꼽자면 황정민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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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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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이대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몇 년 전에 류승범, 김아중 등이 출연하고 이해영 감독이 연출을 맡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나 아쉽게 더 나아가지 못했고, 이번에 조근현 감독과 진구, 한혜진, 임슬옹 등이 출연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제작두레 덕에 '26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잘 알려졌다시피 5.18 당시 군사독재정부를 이끌었던 전두환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그 유족들과 또 다른 피해자들이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 나는 영화 평론가도 아닐 뿐더러 그저 개인적인 영화 글을 쓰는 이로서 반드시 영화에 대해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소개해야 할 의무나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좀 더 내 감정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바가 아주 없다 고는 할 수 없을텐데,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 '26년'은 객관성을 갖기는 힘든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먼저 본 이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적지 않게 들어왔는데, 내가 보기엔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 없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이에 대해 완전히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는 얘기다. 나에게 '26년'은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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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는 내게 참 특별하다. 난 광주 사람도 아니고 5.18 유족도 아니며 직접적인 연관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한 사람이라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 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있지만, 분명 내게 5.18 광주는 특별한 의미였고, 그렇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흐른 눈물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날을 떠올려 보면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된, 아니 제대로 인식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첫 번째 한국사가 바로 5.18 광주가 아니었나 싶다.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5.18에 대한 자료들, 사진들, 영상들을 접해왔고, 이후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주변의 좋은 분들 덕택에 이 아픈 현실과 상처 받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5.18 광주에 대한 미안함을 담고 있는 공연 작품을 통해, 5.18 광주에 직접 내려가 금남로 거리 위와 5.18 묘역 앞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었다. 사실 이제와 떠올려 보면 이런 의미를 갖고 있던 공연에 직접 참여해서 여러 차례 노래를 불렀음에도 그 당시에는 어려서 인지 무언가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 광주와 광주 사람들을 둘러 싼 공기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내 일처럼 생각될 정도의 공감대까지는 느끼지 못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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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5.18 광주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몇몇 작품을 보면서도 느꼈던 바가 이번 '26년'을 보면서 비로소 정점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영화 '26년'은 1980년 5월, 참혹했던 당시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여준다. 만약 5.18 광주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이 장면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나에게 이 애니메이션 시퀀스는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눈물을 참을 수가 없는 장면들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저 애니메이션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실제 자료들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절대 영화적으로 보이지 않고 당시의 광주와 사람들이 그대로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영화적으로만 (일부러) 본다면 인물이나 내용에 공감대를 갖기 이전에 등장하는 프롤로그로서 사건을 사건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프롤로그는 한 장면 한 장면에서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는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슬픈 시퀀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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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광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악당을 연기한다)



이후 배우들이 펼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며칠이 지나 다시 떠올려보니 김갑세 (이경영)가 주도한 살해 계획은 영화적으로 치밀하기 보다는 투박하게 묘사되고 있고, 그렇기에 보통의 스릴러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은 덜하고 몇몇 인물은 그 행동의 당위성을 공감하기가 갸우뚱 거리는 부분이 있지만, 이건 다시 말하지만 며칠 뒤에 일부러 떠올려 보고서야 알게 된 부분이었다.


프롤로그의 애니메이션이 그랬던 것처럼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가 담으려 했던 5.18 광주의 이야기, 그 자체의 슬픔이 너무 컸기에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를 애초부터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보통의 영화 같으면 너무 신파라서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광주의 이야기는 그럴 수가 없었다. '금남로 거리를 싸 돌아 다닌게 쪽 팔려서'라는 건달 두목의 대사에도, 묘역 앞에 놓인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영정들을 보며 '이렇게 보니 다 가족 같네'라는 대사에도, 머리보다는 가슴이 더 먼저 신호를 보냈다. 내가 그냥 영화 속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 정도얐다면 후반부 '그 사람'이 두들겨 맞을 때 통쾌함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런 통쾌함조차 없었다. 과연 이 아픔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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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더 나은 완성도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영화라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영화가 영화가 아닌 메시지 만으로 평가 받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영화는 영화다. 이 영화 '26년'이 5.18 광주를 모두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으며, 반대로 모든 짐과 의의를 짊어져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이대로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전혀 반대의 의미로 하루하루를 정말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는 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너무도 무관심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26년' 영화 속 인물들이 결코 극 중 인물만이 아님을, 이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또 한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 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5.18 광주에게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1. 프롤로그의 애니메이션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연출했던 오성윤 감독이 만드셨더군요.


2. 이 영화를 비판하는 이들 가운데, '더 좋을 수 있었는데' '더 좋았어야 했다'라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3. 영화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이승환의 '꽃'을 다시 듣게 되었는데, 이제 이 곡을 들을 때 마다 눈물을 어찌 참을 수 있을 런지 모르겠네요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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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1985 (2012)

끝나지 않은 현실의 쓰라림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를 보았다. 그의 전작 '부러진 화살'과 마찬가지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김근태 님의 자전적 수기인 '남영동'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자연스럽게 '부러진 화살'과 비교하면서 영화적 완성도와 실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로 평가를 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는 적어도 실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로만 보았을 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아니, 메시지라기 보다는 다루고 있는 사건이나 상황 혹은 그 대상 자체에 대한 분노의 크기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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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화적으로 본 '남영동 1985'는 제법 완성도 있는 작품이었다. 정지영 감독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있었던 비인간적인 고문 현장과 시간들을 그리는 방법에 있어서, 주인공 편에서 적극적으로서 감정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상당히 건조하고 덤덤하게 그려내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대공분실에서 김종태 (박원상)를 고문하는 이들을 정치적인 이념으로 뭉친 가해자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약 누군가를 고문하는 일만 아니라고 하면 다른 여느 회사와 다를 바 없는 직장인의 삶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처음 이 글의 제목으로 쓰려고 했던 것이 '80년대 직장인들의 고단한 삶'이었을까.


그냥 유머나 가벼운 설정 차원으로 이들을 '직장인'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작정하고 묘사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고문하는 이들의 너무도 일상적인 대화들 (여자친구와의 애정 문제, 야구 중계에 대한 관심, 승진을 기대하는 모습들)이 영화 중반 이후까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종태를 고문하는 이들은 김종태가 빨갱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김종태를 고문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제가 있다고 남영동에 불려온 이를 고문해서 거짓으로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 말그대로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묘사 방법에 대해서는 해석이 조금 다를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결국 고문을 행한 이들도 모두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피해자였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단순화 해버리기에는 그들이 행한 고문의 강도가 너무도 끔찍한 것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역시 잊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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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으론 애매한 지점이고 다른 한 편으론 한 가지로만 설명할 수 없기에 택한 지점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모두 각각의 비중으로 들려왔다. 남영동에서 김종태에게 고문을 가한 이들 (이두한을 제외하고)을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묘사한 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행한 고문을 보고 있노 라면 그럼에도 당시 남영동에서 있었던 일들을 결코 용서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강한 어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정지영 감독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느낌인데,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불안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오히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명확하게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즉, 만약 이두한도 그렇고 대공분실의 사람들이 정치적 이념에 휩쓸려 있는 광기 어린 이들이었다면, 영화 속 김종태가 당한 고문이나 그가 갖고 있던 민주주의 의지는 그저 한낱 몇몇의 광기에 스러져버린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데, 영화가 택한 방식으로 인해 일차적으로는 극중 김종태가 느꼈을 법한 더 큰 공포를 체감할 수 있었고, 이차적으로는 김종태가 지키려고 했던 가치가 고문과 맞서 싸운 것이 아닌 시대와 맞서 싸운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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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이 영화를 보면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을텐데, 그 이유는 이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보는 내내 '남영동 1985'라는 영화의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과연 김종태가 그렇게 굽히지 않았던 민주주의는 현재 실현되었는가? 저런 고문을 했던 자들의 죄는 모두 처벌 받거나 용서 받았는 가에 대한 아픔이 아직 까지도 남아있기에 결코 1985년의 과거사로만 느껴지지 않을 수 밖에는 없었다. 많은 이들이 과거사를 다시 꺼내는 것에 대해 '매번 과거사를 들추면 미래가 없다'라고들 하는데, 그건 과거사가 말끔히 청산되었을 때의 얘기다. 즉, 과거의 어떤 일들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이 정당한 보상이나 사과를 받았거나, 피해자가 스스로 가해자를 용서했거나, 그러한 일들을 저질렀던 가해자들이 그에 맞는 처우를 받았을 때나 가능한 주장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남영동 1985'에 얽힌 이들의 사연은 과연 그러한가? 김근태 의장은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고, 가해자인 이근안은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에 그쳤으며, 당시 서슬퍼런 시대를 만들었던 장본인들은 아직도 권력과 세력을 갖고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수 많은 피해자들은 평생을 죄인으로 몰려 몸과 마음이 상해 죽거나 고생했고, 소수는 무죄를 인정받기도 했지만 그러면 그 세월은 누가 보상할 것이며, 더더군다나 아직도 무죄를 인정받지 못해 억울하게 죽어간 피해자들은 누가 위로한단 말인가. 위로는커녕 적어도 가해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죄값을 치뤄야만 이 사회가 상식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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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는, '그래, 85년도 군사독재시절엔 저런 아픈 과거가 있었구나...'하며 눈물을 훔치게 되는 영화가 아니라, '저런 일들이 다 밝혀졌음에도 왜 아직 현실은 그대로 인거지?'하며 더 큰 쓰라림을 겪게 되는 작품이었다.



1. 이러다 박원상씨는 민주화 전문 배우가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 즉슨, 그에 따른 피해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얘기죠;;;)


2. 극 중 김종태가 환상으로 자신을 보는 장면(니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냥 포기해, 괜찮아 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부분)이 가장 안쓰럽더군요. 어쩌면 영화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네요.


3. 사실 보통 같으면 대공분실에서 여러 명이 김종태를 고문하는 장면의 화면 구도나 캐릭터들의 위치 설정이 영화적으로 좋았다고 말했을 텐데, 차마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네요 ㅠ


4.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나고 극장을 나오는데 관객들이 다들 숨죽이며 나온 영화는 참 오랜만이었네요 (물론 몇몇 분은 욕을 하시기도 했지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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