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 (Looper, 2012)

흥미로운 장르 영화 그리고 설마의 가능성



조셉 고든 레빗과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루퍼 (Looper, 20120)'를 보기 전까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개인적으로 조셉 고든 레빗에 팬이라 주저 없이 선택하게 된 영화였는데, 만약 감독이 라이언 존슨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브릭 (Brick, 2005)'을 연출한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더 기대를 했을 것이다. 루퍼는 예고편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가 공존하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시간 여행'에 포인트가 있는 영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를 소재로 장르 영화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감독의 전작이 '브릭'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 '아~'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브릭'이야말로 장르 영화를 아이디어로 승화시킨 매력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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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활용하고 있지만 '루퍼'를 SF영화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SF액션은 더더욱). 또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같이 구조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재구성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와도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즉, 몇몇 장면은 시간 여행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의 관계 활용 같이) 이런 류의 영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내지만, 논리적으로 파고들자면 이 영화의 시간 여행은 어렵지 않게 모순이 발견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쨋든 깨알 같이 분석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소재를 던져준 것이 실수였다면 실수겠지만, '루퍼'에서 시간 여행은 극 중 젊은 '조' 조셉 고든 레빗이 나이가 들어 늙은 '조' 브루스 윌리스로 변한다는 설정을 반박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영화 속 시간 여행은 그저 소재와 배경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만족스러운 감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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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퍼'를 보면서 든 생각은, 감독인 라이언 존슨은 시간 여행이 가미된 서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주인공 조가 미래에서 온 타켓을 제거하는 곳인 캔사스 농지의 풍경도 그렇고, 다른 루퍼들의 총기도 마찬가지지만 조가 사용하는 장총도 서부 영화를 떠올리게 하고, 추격하는 시퀀스는 물론 후반부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갈대밭 속 집 한 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자의 분위기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모자'에 대한 내용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그런데 '루퍼'가 조금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클래식한 장르적 특성을 머금은 동시에 후반부에 가면 전혀 다른 류의 장르를 껴안음과 동시에 감성적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사실 후반부의 급격한 전개는 한 편으론 컬트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이질적인 측면이 강했는데, 이 두 가지의 장르가 크게 어긋나지 않게 결합된 것은 영화가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감성적인 면들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의 조와 미래의 조가 모두 감성적인 측면에서 영화 속 사건을 접근하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관객이 어렵지 않게 장르 영화에 녹아들 수 있는 이유였다고 생각되는데, 반대로 이렇게 감성적인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거였다면 좀 더 두 주인공 (본래는 하나인)의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면,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조'의 입장에 서야 할지, 아니면 둘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받아들이고 이들의 마지막 결정에 대해 더 깊게 궁금증을 갖고 빠져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아래 단락은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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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맨 앞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시간 여행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면에 대해서 일일이 따지고 들 필요는 없지만, 극장을 나오며 '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아직 아무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영화의 마지막 미래에서 온 조가 어린 레인메이커를 죽이려고 할 때, 젊은 조는 잠시 멈춰 생각한 뒤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겨 미래의 조가 어린 레인메이커를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 이후 쓰러진 현재의 조를 어루만지는 여자(레인메이커의 엄마)의 손길에서, 그리고 그 손길을 몹시 비중있게 담고 있는 연출에서 '설마?'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자면 현재의 조가 미래에서 온 조에게 어린 레인메이커의 엄마가 살해되고 이 상처와 분노를 갖고 크게 되는 아이가 결국 분노를 가득 담은 레인메이커가 되겠다 싶어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겼다고 보는게 맞을 텐데, 1차적으로 이 연상 (혹은 회상) 장면의 디테일에서 의문을 갖게 되었고, 2차적으로는 바로 그 문제의 손길 때문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한 예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엄마가 총을 맞은 뒤 분노한 채로 도망치는 레인메이커의 이미지가 기차를 타고 도망가는 장면처럼 매우 상세했기 때문에 설마 이것이 '그럴 것이다' 라는 예상이 아니라 '그랬었지'하는 기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 초반 현재의 조는 어릴 때 엄마가 머리를 이렇게 만져주곤 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죽은 조를 어루만지는 레인메이커의 엄마의 손길이 바로 이것과 같았고 그 다음 장면에 바로 레인메이커의 옆 머리 부분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언가가 더 있고 영화가 끝났다면 모를 텐데 바로 이 장면에서 영화가 그냥 아무런 소리 없이 정적으로 마무리 되어 버린 것이 더더욱 '어? 설마?'하는 기대와 의문을 갖게 했다. 즉, 조가 레인메이커라는 (이상한) 소린데, 물론 이렇게 되려면 몇 가지 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발생하지만, 이 영화 자체가 이 부분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구조이기에 '그렇다면?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예 논리적으로 완벽한 빈틈 없는 영화였다면 바로 답이 나왔을 텐데, 영화 자체가 느슨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보니 이런 생각도 (그 손길은 도대체 마지막에 왜 넣은 것이야 ㅠ)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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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존슨의 '루퍼'는 결과적으로 제법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논리가 무너져도 매력을 잃지 않을 정도의 장르적 매력을 담고 있는 작품이랄까.



1. 개인적으로 조셉 고든 레빗의 분장은 없어도 상관없었다는 쪽이에요. 미래의 조인 브루스 윌리스를 염두에 둔 것 같기는 한데, 저는 이런 분장 없이도 유대감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조토끼의 연기력을 믿으니까요.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런 측면에서 분장이 별로 도움이 안되었다는 얘기도...


2. 폴 다노는 또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군요. '리틀 미스 선샤인'에 이어 '데어 윌 비 블러드'에 나올 땐 더 많은 영화에 주연급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말이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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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 (Brick, 2005)
누아르 장르의 진화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이 되었다 혹은 선댄스에서 무슨 상을 수상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부터인가 개인적으로 깐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 등의 수상작이라는 수사들보다 한층 더 끌리는 홍보문구가 된 것 같다. 2005년작이지만 국내에는 최근 개봉한 <브릭> 역시, 그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 끌려서 극장으로 이끌렸던 영화였다. 재기발랄한 신인들의 등용문 혹은 무언가 주류 정서와는 다른 신선함을 맛볼 수 있는 영화들이 주로 출품되는 선댄스 영화제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배우들도 감독도 낯설은 영화였지만, 그래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선댄스의 선택답게 첫 감독작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치밀한 연출력과 내러티브, 그리고 장르적인 특성을 완전히 업그레이드한 라이언 존슨 감독은 주연을 맡은 조셉 고든 레빗과 더불어 앞으로 주목해야할 영화인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영화의 장르는 기본적으로 누아르 혹은 미스테리라고 보면 될 텐데, 누아르라는 장르는 사실 21세기에 성행하는 장르라기보다는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르가 아닌가. <브릭>은 기본적으론 누아르 장르이지만 그 배경을 완전히 현대로 가져오는데 성공하였다. 바바리 코드에 중절모를 쓴 형사가 주인공이 아니라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며, 배경도 무슨 암흑가 따위가 아니라 평범한 고등학교 일 뿐이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을 가져오는 시도는 자칫하면 코미디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데, <브릭>은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더불어 21세기 현대의 스타일에 완전히 녹여내면서 누아르 장르의 성공적인 진화를 이끌어냈다. 고등학교와 마약이라는 소재를 배경으로 그 사이에서 세력이 나뉘고 갈등이 생기며, 그 사이에 생긴 중요한 사건에 대해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앞서 말한 것처럼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것만 뺀다면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물론 배경을 바꾸더라도 이 정도 연출이면 평범함은 넘어서는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터). 하지만 고등학교와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면서 영화의 뻔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젊고 신선한 영화가 되었고,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 코스튬 플레이는 상당히 인상적이면서도 재미있었는데, 패거리를 형상화 하면서 한 편으론 이를 감각적으로

비꼬기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의 시작은 어느 스릴러 영화 못지 않게 미스테리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수구에 버려진 시체와 그를 바라보는 주인공. 주인공 브랜든은 아마도 이전에 내부밀고 형식으로 친구를 학교에 고발한 일로 인해 일종의 '왕따'가 되어버린 캐릭터로서 자신이 스스로 몸을 내던지고 고민해가며 홀로 사건을 풀어간다(물론 친한 친구 하나가 도와주긴 하지만). 그리고 여주인공인 에밀리 역시 주류 친구들의 무리에 끼기 위해 마약에 가까워지게 되고. 이렇듯 완전히 마약 얘기로만 가는거 같지만 한편으론 현재 고등학교 내의 현실적인 문제까지 슬쩍 껴넣고 있는 치밀함이 보인다. 그리고 지하실에선 엄청난 마약 거래와 음모를 꾸미지만, 지하실을 나와 거실로 올라오면 엄마가 시리얼과 음료수를 챙겨주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다시 한번 부각시킨다. 이렇게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에 충실하면서도 그 이면에 누아르 정서를 새겨넣으며 영화를 끝까지 몰입할 수 있고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거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잠깐 잠깐 정신을 잃고 깨어나는 부분을 삽입해 왠지 몽환적인 느낌도 들게 하고 있다.




(영화 속 브랜든의 저 포즈는 한동안 인상깊게 남을 것 같다. 점퍼를 입으면 꼭 손을 주머니에 깊게 파고 넣는

저 스타일. 점퍼를 안입으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더라 ㅎ)

분명 영화 시작해서 얼마 안되었을 때는 '이게 뭔가'하는 이질감이 느껴졌던 영화였지만, 사건이 진행되고 시간이 흘러갈 수록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재주가 있는 작품이었다. 히스 레저를 꼭 빼닮은 주인공 조셉 고든 레빗은 이 영화를 통해서 앞으로 더 많은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21세기에 누아르 장르가 진화하는 방법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 <브릭>!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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