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타카의 레드필]

그래도 또 몬타우크행 기차를 탈거야



찰리 카우프만이 쓰고,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이 개봉 10주년을 맞아 다시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인생의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은 그 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었는데, 또 다시 보게 된 이 놀라운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 혹은 새로운 영화가 되어 있기 보다는 오히려 맨 처음 보았던 10년 전의 그 영화처럼 두근거림 가득한 영화가 되어 있었다.


한창 씨네필들 사이에서 이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 그랬던 것처럼 찰리 카우프만이 설계한 이 기억의 퍼즐 맞추기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가 해피 엔딩인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결론적인 것에서부터, 그 타임라인의 순서 맞추기에 있어서 어떤 것이 더 먼저인지에 대한 담론은 이런 장르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연구하고픈 흥미요소가 충분했었다. 나도 한 때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따져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분명 정답에 대해서 까지 분명히 확인했음에도 그 기억은 시간이 갈 수록 흐려졌다. 보통 반복 관람을 하는 경우 이런 팩트에 관한 것은 더 깊이 각인되기 마련인데, '이터널 선샤인'은 정반대로 보면 볼 수록 그 기억만은 점점 지워져 가는 듯 했다.


그리고 또 다시 보게 된 '이터널 선샤인'은 이제는 무엇이 먼저 일어난 일인지, 엔딩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에만 빠져들고 말았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나누는 모든 대화들은 그 시간 순서와는 별개로 하나하나 움찔움찔 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연애를 오래 한 커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다투거나 혹은 한 마디만 더 하면 되었을 것을 하지 못해 후회할 일을 만들거나 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관계에서는 그 열정과 냉정이 모두 느껴져 몹시 치명적이었다. 만약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열정과 냉정의 대화나 상황이 한 100가지 쯤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처음엔 한 2~30개 정도에 공감했었다면 지금은 한 7~80개 정도를 공감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이미 수 없이 반복하고 외우다시피 한 대사들이었는데, 그 변함 없는 대화들이 내가 그간 겪은 시간들과 내가 연인과 나눈 대화들로 인해 더 깊이 있는 대사들이 되어 있었다.


'이터널 선샤인'은 얼핏보면 후회에 관해 인정하는 수동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어차피 또 그럴 꺼니까 그냥 인정하자 라는 약간의 자조적인 느낌이 드는데, 사실은 정반대로 또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래도 또 사랑할 거라는 더 저극적이고 열정적인 이야기라는 걸 오늘 다시 보고 알 수 있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다시 만나도 또 후회할 일이 발생할 거고, 어쩌면 또 다시 서로를 너무 힘겨워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길 바랄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영화의 엔딩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다시 반복된다해도 뭐 어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다시 만나보고 싶어' 정도의 희망적 느낌이었다면, 이번에 본 '이터널 선샤인'은 그보다는 훨씬 더 강하게 '다시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난 너를 꼭 다시 만날거야'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즉, '다시 만나게 되면 이번엔 분명 다를 꺼야'가 아니라 '또 반복을 피할 수 없더라도 난 너를 선택할거야'에 가까운 더 큰 범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라는 이야기보다도 더 강력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난 후회할거야. 그래도 내 선택은 변하지 않아'

'난 그래도 또 몬타우크행 기차를 탈거야'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아쉬타카의 레드필]
인생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개봉 10주년을 맞아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이 국내 개봉 10주년을 기념하여 오는 11월 5일 재개봉을 한다고 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면 자연스럽게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게 되는데, 내 대답은 그 때 그 때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항상 빠지지 않았던 영화 한 편이 바로 '이터널 선샤인' 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셸 공드리라는 아티스트 때문이었는데, 영화 감독이기 이전에 bjork, massive attack, beck 등의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워낙 유명했었고 특히나 당시 이 뮤지션들에 아주 깊게 빠져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드리에게도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는데 그가 연출한 영화라고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건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10주년을 기념하여 재개봉하는 영화에 대한 것이다. 일단 이 영화가 벌써 10년이 되었다니 놀랍기만 했다. 요근래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자주 한국영화 10주년 기념 상영회 기획을 만나볼 수 있는데, 그 때 마다 드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와, 벌써 10년이 되었다니...'


누군가 영화는 시간을 다루는 예술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떤 영화를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보게 되면 그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 비디오 테입으로 영화를 소장하던 시절에 비해 블루레이나 특히 케이블 채널 등을 통해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되는 기회가 잦아진 요즘은 이러한 경험을 더 자주하게 되곤 한다. 근 시일내에 영화를 다시 보게 되는 경우, 극장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이나 순간을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몇 년이 지난 뒤 다시 보게 되는 영화 속에서는 분명히 여러 번 본 장면에서 전혀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이러한 경험을 가장 크게 했던 작품은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였는데, 이 영화를 처음 볼 땐 주인공 빌리에 공감하며 영화를 따라갔었지만 한 참 뒤에 다시 보게 된 영화는 빌리가 아닌 빌리 아버지의 행동에 더 깊게 공감, 아니 공감까지는 못 되더라도 처음 볼 땐 전혀 보이지 않았던 빌리의 아버지의 현실과 가치관의 대립을 통한 갈등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경험은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는데, 그 전까지는 블로그에 영화 글을 쓰면서 별점을 통해 나름의 평점을 주고 있었으나 이 이후 부터는 영화에 점수를 준다는 것이 예술 작품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는 의미 이전에, 지금의 점수가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최종적 판단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의미 없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별점 주기를 지금까지 하지 않고 있고, 이 생각은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듯 하다.


이렇듯 영화라는 매직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 시간을 두고 보게 되거나, 그 시간 속에 개인이 어떤 삶을 겪었는 지에 따라 이미 본 영화를 통해서도 전혀 다른 감정과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어떤 영화의 몇 주년, 몇 10주년 기념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그저 '와, 이 영화가 벌써 이렇게 오래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근래에는 '그렇다면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보면 또 어떤 영화일까?'라는 호기심이 더 발동한다. 거의 처음 영화를 보게 될 때의 버금가는 설레임이다.


내 방에는 이미 '이터널 선샤인' DVD와 블루레이가 모두 존재하지만 스크린에서 다시 볼 기회를 절대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찰리 카우프만이 설계하고 미셸 공드리가 표현한 '이터널 선샤인'은 또 어떤 영화가 되어 있을까.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는 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필립 모리스 (I Love You Phillip Morris, 2009)
유쾌 절절한 러브 스토리


짐 캐리와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 '아이 러브 필립 모리스 (개봉제목 '필립 모리스)'에 대해 처음 접했던 소식은 이 영화가 게이 영화라는 점이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여기서 '게이 영화'란 단순히 주인공이 게이인 것 뿐, 다른 의미는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짐 캐리와 이완 맥그리거가 펼치는 로맨스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했던 영화였는데, 개봉소식이 들려오고 포스터가 공개되었을 때쯤 '엇, 이 영화가 내가 아는 그 필립 모리스가 맞나' 싶었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 포스터와 헤드 카피들을 보면 전부 코미디 혹은 코믹 탈출극 정도로 묘사되어 있었는데, 뭐 그런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관객에게 가장 전달해야할 코드 중 하나인 부분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참 아이러니인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게이라는 점은 그냥 안경을 쓴 정도 밖에는 안되는, 즉 게이 라는 자체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자, 이 영화는 게이 영화에요' 라고 홍보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이런 의미에서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흥행 측면에서 안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게이' 대신 '코믹'이라는 점을 전면에 부각시킨 면이 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낚였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는 없었다. 

서론이 길어졌다. 여튼 개인적으로 낚이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영화 '필립 모리스'는 실화라는 점에서 의미와 재미가 있었지만, 전체적인 임팩트는 조금 부족한 그럭저럭 작품이었다.


 Europa Corp.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기본적으로 유쾌한 작품이다. 가끔 슬프고 진지한 분위기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유쾌한 마무리로 가벼운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사건의 개연성 보다는 인물들에 더 촛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극중 스티븐 러셀 (짐 캐리)이 어떻게 매번 감옥을 탈출하는 지에 대해 '프리즌 브레이크'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장면, 스쳐가는 한 장면 정도로 밖에는 묘사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첫 눈에 반한 필립 모리스 (이완 맥그리거)와의 러브 스토리 부분은 좀 더 비중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 둘의 러브 스토리는 우리가 너무 많이 본 전형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준다(그런데 전형적이라고 뭐라하기 그런 것이 '진짜' 실화가 아니던가). 한 때 둘 만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뜨거운 두 연인과, 그들이 겪게 되는 권태기 그리고 다시 눈물의 화해. 스티븐 러셀의 기이한 사건들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이 남녀가 아닌 남남일 뿐 너무 전형적인 줄거리를 보여준다. 사랑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나중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일이 우선이 되 사랑에 금이 가고, 갈등하고 헤어지고 화해하는. 

하지만 '필립 모리스'는 어느 한 편을 선택하지 않은 채 두 가지 이야기를 비슷한 비중으로 이어간다. 이 부분이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큰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일 지도 모른다.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 주인공들의 험난한 러브 스토리로도, 배꼽빠지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로도, 천재적인 주인공이 펼치는 탈출과 사기극으로도, 영화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한편으로 그냥 확 성격을 갖는 작품을 더 선호하는 편이긴 한데, '필립 모리스'는 그런 면에서 조금 심심한 작품이긴 했다. 그런데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 등장하는 구름 동동 뜬 파란 하늘이나, 그 편안한 음악을 보았을 때 영화의 의도자체가 그리 무겁고 복잡한 것을 바라지 않은 듯 하다. 


 Europa Corp. All rights reserved


많은 관객들이 단순한 코미디 정도로 알고 극장을 찾았기 때문에 두 주연배우의 키스 씬이 나올 때마다 소리 내어 '안돼~' 및 탄성을 질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보단 오히려 두 주연 배우의 연기 자체에 몰입하여 볼 수 있었다. 특히 금발의 미소년에 가까운, 그야말로 아름다운 이미지로 등장하는 이완 맥그리거의 경우 속으로 '야, 정말 게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이완 맥그리거에게 반할 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 앵글이나 묘사에 있어서 일반적인 남녀 로맨스를 다룬 영화가 여자 주인공을 다루는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즉, 이 영화를 볼 때 이완 맥그리거의 캐릭터를 보통의 여성 캐릭터로 생각하면, 필립 모리스의 이야기는 조금 특별한 로맨스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현존하는 배우들 중 최고의 연기력을 갖고 있는 배우 중 하나인 짐 캐리 역시, 자신이 그 동안 맡은 캐릭터들과 종종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시원시원한 기럭지가 유난히 돋보였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 자체의 재미는 조금 심심한 편일지 몰라도 두 배우의 팬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작품이 되겠다.


 Europa Corp. All rights reserved


1. '300'과 '러브 액츄얼리' 등에서 그 미모(?)를 뽐낸 로드리고 산토로가 조연으로 출연합니다. 그 역시 이 영화와 캐릭터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2. 뒤늦게 찾아보니 실화의 주인공인 진짜 '필립 모리스'가 깜짝 출연하는 장면이 있었네요. 

3. 따지고보면 참 절절한 러브 스토리인 것 같기도 해요. 주객이 가끔 전도되기도 했지만, 결국 스티븐에게 이 모든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사건들은 다 사랑하는 필립 모리스를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글 / 아쉬타카 (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Europa Corp.에 있습니다.





예스 맨 (Yes Man, 2008)
짐 캐리여서, 주이 디샤넬이어서.

12월 보고 싶은 영화들을 정리하면서 이 영화 <예스 맨>을 소개할 때 '짐 캐리가 출연하는 것 만으로도 보고 싶은 영화다'
'거기에 주이 디샤넬까지 나온다니 더할나위 없겠다'라는 식으로 얘기한적이 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예스 맨>은
애초부터 그 이야기나 완성도에 기대를 했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코미디 연기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연기 스타일을
갖고 있는 짐 캐리의 출연만으로도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은 있으리라는 믿음, 그리고 <해프닝>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등을 통해 완소 배우로 거듭나고 있던 주이 디샤넬의 출연작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이런 기대가 크게 배반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제목과 시놉시스 몇 줄로 알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라는 얘기도 되겠네요.
좀 더 보태자면 짐 캐리보다도 주이 디샤넬에 더 완벽하게 빠지게 된 영화가 되었다고 할까요.




(다음 사진이 나올 때까지 한 단락에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스 맨>은 내용에 대해 그리 깊게 나눌 만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이 한 단락으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혼자있기를 즐기게 되어버렸으며, 주변의 약속이나 연락에도 그냥 무반응으로 줄곧 대응해 오던
주인공 칼 (짐 캐리)은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가게 된 한 강연회(?)에서 무엇에 홀린 듯 '예스 (Yes)'의 힘, 긍정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 강의에 완전히 빠지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마치 모든 점쟁이가 '요즘 힘들지'하면
'맞아요, 힘들어요'하면서 잠시나마 혹하게 되는것 처럼), 단순하지만 뻔한 얘기를 잠시나마 곱씹어 보게 된 그는,
반 강요에 못이겨 '예스'를 외치게 된 일이 발전하여 좋은 인연과 결과를 낳게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러면 정말 '서약'한대로
무조건 '예스'를 외쳐보자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후부터 정말 거짓말 처럼 이 '예스'로 인해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고, 그의 생활은 더욱 활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했으며,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아니 누리지 않았던 삶들을 적극적으로 영유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 무조건 '예스'로 답한다는 것을
안 주변 사람들이나 은행의 고객들은 그를 곤욕스럽게 하는 모습도 등장합니다(물론 은행 고객들의 경우 곤욕보다는
긍정적으로 풀리긴 했죠). 이런 예스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그는 이상한 행동들로 오해를 받게 되고, 이 과정 속에서
점차 좋은 관계를 맺어오던 앨리슨 (주이 디샤넬)과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너무 '예스'를 외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스'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 사건을 통해 그는 '노 (No)'를 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간 간과해 왔다는(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고, 다시금 진심으로 자기 주변과 앨리슨을 받아들이게 된다는...뭐 특별할 것은 없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이 영화는 짐 캐리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에이스 벤츄라>와 <이터널 선샤인>의 중간쯤에 위치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에서 약간 어정쩡한 영화가 되버린게 아닌가 싶은거죠. <에이스 벤츄라>같이 포복절도 할 수준의
웃음은 이 영화에 없습니다. 짐 캐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나 손짓 발짓, 대사들로 인해 웃음 짓게 되는 장면들은
종종 등장하지만, 폭발력 부분에서는 그의 본격적인 코미디 영화들만 못하며, 부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살아왔던 캐릭터가
긍정의 힘을 받아들이게 되며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드라마는 <이터널 선샤인>에 비하면 많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는 거죠. 물론 두 작품들과 비교해서 모두 혹은 한 쪽만이라도 완전히 만족시킬 만한 영화가 어디 쉽게 나오겠느냐
생각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지점이 조금 모호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짐 캐리하면 기대하게 되는 웃음의 포인트도 조금 부족했고, 이런 이야기 속에서 들려주는 그 메시지의
전달력이나 메시지 자체의 내용도 그리 새롭거나 임팩트가 있지 못했던 것 같구요.
오해가 있을까봐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 캐리'라는 전제조건을 적용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아쉬움들입니다.
짐 캐리여서 말이죠.




엄청난 폭발력이 있는 장면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따져보면 디테일한 부분에서 짐 캐리만의 매력과 코미디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짐 캐리는 참 팔 다리가 긴 배우 중 한 명인데, 그의 팔과 다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만들어내는
몸 개그 또한 이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몸 개그 장면들 가운데는 그처럼 긴 팔 다리가 아니라면
별로 우습지 않을 장면들도 많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점이 우리가 짐 캐리 영화를 볼 때 너무 익숙해져서
그만의 장점으로 잘 느끼지 못하는 점 중 하나이기도 하죠.

이 영화 속에서 짐 캐리는 해리포터 코스프레를 하기도 하고, 포크 가수를 흉내내기도 하고,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겉으로 보기엔 대충 하는거 같지만 짐 캐리가 하면 다르다는 걸 확실히 보여줍니다.
특히 포크 가수를 흉내내는 부분은, 엄밀히 말하자면 포크 가수라기 보다는 Dashboard Confessional 같은 이모코어 밴드를
흉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굉장히 특징을 잘 잡아서 성대모사 수준의 패러디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워서 하는 부분 같은 경우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 웃음을 유발할 만한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북미에서 보신 분들 계시다면 외국인들은 이 한국어 시퀀스를 얼마나 재미있어 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유창하다기보다는
잘 외운 듯한 티가 나긴 했지만, 한 두 마디가 아니고 제법 많은 우리말 대사가 스크린에서 나오다보니 색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짐 캐리가 <예스 맨>에서 보여준 연기는 여전했지만 영화 자체가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약간 어정쩡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절제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달리면서 사진찍는 장면 등에서는 절로 뿜게 되더라구요 ㅎ




제가 이 영화에 최소한 별 반개를 더 주게 된 이유는 바로 짐 캐리가 아니라 앨리슨 역할을 맡은 주이 디샤넬 때문이었습니다.
주이 디샤넬은 제가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헐리웃의 여배우 이기도 한데, 이렇게 주목하게 된데에는 배우로서
그녀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의 모습도 물론 좋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모습도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영화에서 그녀가 더 돋보였던 것은 이런 그녀의 뮤지션스러운 재능이 영화 속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제 블로그를 통해서 그녀가 속한 밴드인 She & Him의 음악을 살짝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예스 맨>에서는 그녀의 이런
뮤지션으로서의 매력을 한껏 엿볼 수 있습니다. 극중 배역이 밴드의 보컬이라 직접적으로 여기서 그녀의 노래 실력을
맛볼 수도 있지만,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Yes Man'이라는 곡의 보컬을 비롯해 그녀가 직접 노래하고 있는 곡들이
사운드트랙에 담겨있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음악이 와닿았던 영화이기도 했는데, 역시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인
'Eels'가 전체적인 음악을 맡고 있어 중간 중간 그의 아련하고 매력적인 보컬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코미디 영화치고는 드물게 사운드트랙을 구매하게 될 것같은 영화였어요. eels와 주이 디샤넬이라면 구입하고도 남죠.
암요(찾아보니 아직 국내에는 라이센스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요즘 해외주문은 꿈도 못꾸는 터라 제발 라이센스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뿐 입니다).

주이 디샤넬에 대해서 조금 더 보태자면, <해프닝>에서 그녀가 맡았던 캐릭터가 그녀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인물이었다면, 이 영화에서 맡은 '앨리슨'은 실제 그녀와 많이 닮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밴드 멤버인 것도 그렇고, 자유분방한 듯 하면서도 여림이 느껴지는 '앨리슨'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주이 디샤넬이라는 배우를 좀 더 선보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나온 영화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나오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은하수를...>의 캐릭터와 살짝 겹쳐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저는 '앨리슨'의 경우가 더 좋았네요.




이 영화에는 짐 캐리와 주이 디샤넬 외에 조연으로 테렌스 스템프가 등장하는데, 그가 누구인가 하면 왕년에 <슈퍼맨>에서
'조드 장군'역할로 출연했었던 배우이며 재미있게도 슈퍼맨의 청소년기를 다룬(하지만 영화 속 슈퍼맨 보다 더 늙어버릴
때까지 진행되고 있는) 미드 <스몰빌>에서는 슈퍼맨의 아버지인 '조엘'의 목소리 연기를 맡기도 했던 배우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바로 '예스 맨'이 되라는 강연을 하는 교주스러운 강사로 출연하고 있는데, 그의 진지한 포스가 있어서인지
이 캐릭터가 아주 가볍게 그려지지 만은 않더군요. 테렌스 스템프는 특히 목소리가 너무 멋진 걸로 유명한데, 이 영화 속에서도
그의 멋진 목소리를 충분히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 안젤리나 졸리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했던 <원티드>에도
출연했었는데, 어쨋든 자주 뵙는거 같아 반갑습니다 ^^;

그 외에 미드 <앨리어스>시리즈의 '윌 티핀'역할로 눈에 익히고, <미드나잇 미트트레인>을 통해 스크린에서도 어느 정도
각인을 새긴 브래들리 쿠퍼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분량이나 역할이 그리 크지가 않아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거리가
많지는 않네요.




<예스 맨>은 큰 기대없이 본다면 그럭저럭 볼만한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코미디 배우들에 비해 짐 캐리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는 '미국적'인 색깔이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에
보는데 크게 불편함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지 않을 듯 하구요.

그리고 저처럼 주이 디샤넬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보셔야 할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 그리고 eels와 주이 디샤넬이 참여한 영화 음악도 빼놓을 수 없겠구요~



1. <해리포터>를 비롯해 <300>까지 코스츔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주인공들 외에 조연들 캐릭터를
코스츔 하고 온 주변 인물들의 모습 때문에 무척이나 웃었습니다.

2. 주이 디샤넬이 극중 참여하고 있는 밴드의 음악도 그닥 나쁘지 않았어요. 특히 가사가 좋았죠 ㅋ

3.

이건 그냥 팬으로서 사진 한 장 추가.
너무 예쁘게 포장되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게 가장 평범하게 나온 그녀의 사진을 한 장 골라봤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워너브라더스에 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이라는 영화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던 건 전적으로 감독 미셸 공드리 (Michel Gondry) 때문이었다. 뷔욕 (Bjork)의 광팬이었던 나는 그녀의 'Human Bahavior', 'Bachelorette',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Joga'의 뮤직비디오를 접하게 되면서 과연 이 기묘하고도 괴상하기까지 했던, 당시로서는 뷔욕의 음악과 함께 충격적인 영상으로 다가왔던 이 작품들을 한 사람이 감독했다기에 당연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뮤직비디오라는 매체에서 시도할 수 있는 실험이 극한까지 도달해 이제는 복고적인 성향으로 회귀하고 있는 요즈음에도, 그가 예전에 만들었던 뷔욕, 벡 (Beck), 라디오헤드 (Radiohead), 매시브 어택 (Massive Attack), 레니 크래비츠 (Lenny Kravitz)등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는 누구라도 감상한 뒤 감독이 누구인지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는 완성도 높고 초감각적인 영상이었다. 또한 뮤직비디오의 감독 외에도 리바이스, 나이키, 코카콜라,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의 CF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2001년작 <휴먼 네이쳐>이후, 각본을 담당한 찰리 카우프만과 함께 새롭게 내놓은 영화가 바로 <이터널 선샤인>이다. 이터널 선샤인을 주목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각본을 담당한 찰리 카우프만 (Charlie Kaufman) 때문이었다. 천재 시나리오 작가로 불리우는 카우프만은 이미 전작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휴먼 네이쳐> 등을 통해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창조적인 시나리오로 천재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었다. 그의 각본은 굉장한 두뇌 회전을 요하면서도 동시에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펼쳐왔는데,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그의 장난끼와 복잡함은 계속되지만, 전작들과 비교해 봤을 때, 러브스토리에 걸 맞는 매우 사랑스럽고 감성적인 면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터널 선샤인을 지배하는 정서는 대충 이렇다.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처음 사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정서와 이별에 아픔을 잊기 위해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뇌에서 지워 버린다는 비현실적인 정서, 그리고 이 현실과 비현실을 감싸는 따뜻한 감성. 앞선 현실적인 정서가 주를 이뤘다면 영화는 어떤 큰 줄기의 사건을 통해 ‘처음 만날 때와 같은 설레임은 이제 없지만, 그래도 널 영원히 사랑해’라는 식의 결론을 맺는 일반적인 영화가 되었을 테고, 비현실적인 요소가 주를 이뤘다면 영화는 <메멘토>식 시간 퍼즐 놀이와 같이 관객과 두뇌 싸움을 치열하게 벌이는 영화가 되었을 테지만(실제로 많은 주변 사람들이 <메멘토>를 연상했다), 이터널 선샤인에만 있는 따뜻한 감성은 이 영화를 앞선 두 가지 형태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영화로 만들었다. 만약 이 같은 복합적인 요소 없이 현실적인 러브스토리나 기억과 현실을 어지럽게 배치한 이야기로만 진행되었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주고받는 'Okay', 'Okay'라는 대사가 그렇게 가슴 시리도록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며, 마지막 해변에서 나누던 대화 중 ‘조엘, 이제 이런 기억들이 사라지게 돼 (This is it, Joel. It's gonna be gone soon)’, ‘알아 (I Know)’, ‘어떻하지? (What do we do?)’라는 물음 뒤에 ‘그냥 음미하자 (Enjoy it)’했을 때, 참을 수 없는 전율과 눈물이 쏟아지진 않았을 것이다(여러 번 보아도 이 대사는 정말로 감동적이라 원문을 굳이 참조하였다. 'Enjoy it'을 ‘음미하자’로 해석한 것은 정말 탁월했던 것 같다).




영화의 해석에 대해서는 이 DVD, 정확히 미셸 공드리와 찰리 카우프만이 함께한 음성해설을 듣기 전에는 나조차도 분분했었다. 논란에 중심은 아무래도 해피엔딩이냐 언해피엔딩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마지막 장면에서 ‘또 시간이 지나면 서로 지루해하고, 따분하게 여길텐데?’하는 클레멘타인의 질문에 웃으며 'Okay'로 답한 조엘과 역시 웃으며 'Okay'로 답한 클레멘타인을 보며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후 극장에서 2번째 관람하였을 때에는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겼고, 급기야 영화의 크래딧과 함께 조엘이 차안에서 슬프게 울며 테이프를 차 밖으로 던져 버리는 장면에서 조엘에 눈가에 기억을 지울 때 사용하는 자국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결국 둘은 다시 만났다가 다시 헤어진다는 언해피엔딩이라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음성해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조차 100% 완벽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어쨌든 감독과 작가의 말을 통해 알게 된 확실한 사실은 그들은 영화를 결말짓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의 마지막 눈 덮인 해변 가를 뛰어가는 장면이 현실인지 추억인지의 여지를 남기면서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음성해설 중 테이프를 밖으로 던져 버리는 장면에서 카우프만은 ‘저것은 라쿠나 테이프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음성해설에 그 어느 때 보다도 집중했던 것은 이같이 모호한 결말 때문이었는데, 다 감상하고 난 뒤 생각해보니 감독과 작가는 그 자체에 그렇게 큰 비중은 두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석적으로만 달려들었던 자에게 결말은 관객에게 남겨두었다는 작가의 말은 처음에는 조금 허무했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결말의 종류나 시간 퍼즐 맞추기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그것과는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엘이 클레멘타인과 처음 만난 뒤 헤어지면서 창밖으로 인사를 전해 받은 뒤 살짝 눈 내리는 거리를 뒤로하고 너무나도 행복해하며 차로 돌아가던 장면(그리고 그 때 흐르던 존 브라이언의 그 음악!), 첫 전화 통화를 하며 너무나도 행복해하던 조엘의 얼굴,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 비 오던 날을 떠올리며 탁자 아래로 비를 피하던 장면(그 때 흐르던 그 감성적 스코어!), ‘몬타우크에서 만나자’라며 속삭였을 때 느꼈던 애잔한 정서, 그리고 이미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전율이 흐르던 장면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정서가 바로 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말하고자 하는 따뜻함이 아닐까 한다.

이제 배우들에 연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사실 ‘이터널 선샤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거나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이유는 짐 캐리라는 배우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짐 캐리 하면 <마스크>나 <덤 앤 더머>를 떠올리며 코믹 연기에 달인 정도로만(사실 짐 캐리가 펼치는 코믹 연기는 그 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정극 연기를 한다고 할 때는 그리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 같다(아담 샌들러 주연의 <펀치 드렁크 러브>가 소수에게만 사랑받는 이유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맨 온 더 문>, <트루먼 쇼>, <마제스틱> 등에서도 이미 괄목할만한 드라마 연기를 펼쳤으나 아직도 그를 단순히 코미디 연기자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가장 아쉽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짐 캐리의 연기는 어느 명배우 못지않은 감동을 전한다. ‘조엘’ 캐릭터는 이전에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들과 달리 짐 캐리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짐 캐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클레멘타인 역할에 케이트 윈슬렛은 본인에게도 그러하듯이 조금은 의외에 캐스팅 이였는데, 그동안 주로 영국의 시대극을 주로 연기했던 그녀에게 가장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맡긴 영화의 선택은 어찌 보면 모험일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케이트 윈슬렛에 말을 빌리자면 ‘조엘’은 케이트 윈슬렛이 그 동안 연기했던 캐릭터들을 닮았고 ‘클레멘타인’은 짐 캐리가 그 동안 연기해왔던 캐릭터를 닮았지만,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다른 배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는 케이트 윈슬렛의 영화를 여러 편 보았지만, 그녀가 이리도 사랑스러운 여자인 줄은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밖에 ‘프로도’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갖가지 다른 역할에 도전하고 있는 일라이자 우드는 영화에 잘 묻어드는 연기를 선보였으며, 마크 러팔로와 커스틴 던스트, 톰 윌킨스 역시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영화 전체를 풍성하게 해주는 캐릭터로서 열연을 펼쳤다. 감독과 작가가 톰 윌킨스와 커스틴 던스트의 연기를 보면서 ‘지도할 필요가 없는 배우다’, ‘너무 잘 해 주었다’라고 말한 것이 단순히 예의상으로 한 말이 아님을 영화를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극장을 나오자마자 DVD는 언제쯤 출시될까 기다리게 되었는데, 사실 내 생애의 영화로 꼽을 만큼 사랑한 영화지만 DVD의 퀄리티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지도 못하였으며 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성을 비춰봤을 때 국내 DVD출시 여건상 우수한 스펙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1장의 디스크에 본편과 예고편만 달랑 수록한 초라한 버전으로 출시될 것 같다는 우려와는 달리 코드 1로 출시된 콜렉터스 에디션을 기본으로 한 2장의 디스크의 스페셜 에디션 DVD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타이틀이다. 먼저 1.85:1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신작 DVD로서 손색이 없는 화질을 수록하고 있는데, 영화 자체가 의도적으로 뿌옇거나 흐리거나 어둡거나 하는 등의 기법을 쓴 장면이 많아 100% 화질의 우수함을 체험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DTS 트랙이 특유의 강력함을 뿌리는 장면은 드라마의 특성상 그리 많지 않지만, 감독이 음악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 만큼,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스코어와 감동적인 배경음악과 함께 대사 또한 또렷하게 전달된다.





이번 스페셜 에디션 DVD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서플먼트에 있다 하겠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함께 미셸 공드리와 찰리 카우프만이 함께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음성해설은 기술적인 면이나 스토리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로케이션에 관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 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음성해설 도중에 말이 없을 경우 영화 본편의 대사에 대한 자막 처리가 된 점도 특징적이다. 아, 또한 모든 메뉴의 한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터널 선샤인 영화 속으로’는 별도로 제작된 홍보용 영상으로서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가 영화 속 장면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미셸 공드리와 제작진이 들려주는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좀 더 본격적인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데, 여기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천재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블루 스크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미셸 공드리는 대부분의 장면들을 순수하게 아이디어만으로 극복하여 만들어냈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저런 장면은 CG를 썼겠지’했던 장면들이 너무나도 간단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편집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상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배우와 스텝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만들어낸 롱 테이크 원 샷으로 촬영된 장면이라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짐 캐리와 미셸 공드리 감독과의 대화’와 ‘케이트 윈슬렛과 미셸 공드리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서로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들과 촬영 중 에피소드들을 전해들을 수 있는데, 단순히 웃고 떠드는 내용이 아닌 서로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전재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깊고 소중한 대화가 오간다. ‘Saratoga Avenue 장면이 완성되기 까지’에서는 이 한 장면 속에서 어떠한 컴퓨터 그래픽 등이 사용되었으며 어떠한 아이디어 들이 사용되었는지를 상세하게 그려낸다. 조엘이 창밖으로 클레멘타인에게 너를 지워가고 있다며 말할 때 클레멘타인의 다리가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 서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밖에 ‘메이킹 필름’에서는 촬영장에 모습을 더 가깝게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삭제/추가 장면’은 본편에는 수록되지 못한 장면들로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장면들이 담겨있다(영화 초반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집에 가게 되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되었는데, 이 삭제 장면을 통해 사건에 시간 순서에 대해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이밖에 Beck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의 뮤직비디오와 그래픽을 통한 짐 캐리의 립싱크가 재미를 주는 'Light & Day'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되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라쿠나 회사의 광고가 담겨있어, 뭐하나 놓칠 것이 없는 서플먼트를 마무리한다.




<이터널 선샤인>은 <반지의 제왕>에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의 위대함과는 또 다른 위대함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영화 한 편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해 질 수 있으며 또한 얼마나 슬퍼질 수 있는지,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알게 해준 작품이다. <이터널 선샤인>으로 인해 받았던 감동과 행복함,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포함한 여운은, 영화 속 ‘라쿠나’ 회사와 같이 기억을 지워주는 인위적인 행위 없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글 / 아쉬타카

2006.01.18


+ Recent posts